[독후감]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 최진실<수원 영일초등3> ‘메주도사’에는 10가지 짧은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는 많은 교훈도 들어 있습니다. 욕심내지 말자, 탐내지 말자, 돈만 생각하지 말자, 도둑질을 하지 말자, 나무를 잘 기르자 등 많습니다. 이 중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자’인 메주도사 이야기도 있습니다. 메주도사는 선비가 많은 주막집에 허름한 차림으로 들어왔습니다. 선비들은 허름한 메주도사를 내쫓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메주도사가 선비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골려준 내용입니다. 선비들은 메주도사를 무시했습니다. 나도 2학년때 겉모습만 보고 무시한적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공부도 못하고, 체육도 못하고, 매일 돌아다니는 아이였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너무 속이 상하셨는지 그 아이는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놀리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불쌍하기도 했고 공부도 잘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듣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의 행동이 그 아이를 나쁜길로 가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을 무시하지도 말고 공부를 못해도 같이 놀아야겠습니다.

[논설문]여행인의 예의를 갖추자

여행인의 예의를 갖추자 윤하경<수원 호매실초등3> 우리는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다보면 어디론가 떠나서 자유롭게 여행하기를 원한다. 여행은 편안한 휴식과 새로운 환경을 통한 체험을 주며, 소중한 추억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힘과 즐거움을 주는 여행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알아보자. 첫째, 여행하기 전에 목적을 가져야 된다. 여행을 가기 전에 기대감 때문에 왜 여행을 하는지의 목적을 잊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에 내가 왜 여행을 가는지 생각하여 본다. 계획성이 없다면 놀다오는 휴가와 같아진다. 둘째, 여행하는 곳의 문화와 특징을 알아본다. 여행을 하기 전에 미리 알아보지 않고 떠난다면 방문을 하였을 때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여행지의 문화와 특징을 알고 떠난다면 내가 어느 곳을 다녀갔는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고 돌아와서도 오랫동안 기억할 수 있게 된다. 셋째, 눈으로만 체험하고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는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면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이 많다. 그러나 다음에 나처럼 방문할 사람을 위해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를 가져야 하겠다. 여행은 놀고 즐기는 휴식이 아니다. 책으로만 배웠던 내용을 교실을 떠나 더 생동감 있게 직접 보고 느끼는 연장수업이다. 여행지에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생각하며 행동한다면 여행의 참맛도 느낄 수 있고, 다음 방문에도 환영을 받을 것이다.

[논설문]더불어 살아가요

더불어 살아가요 한경민<수원 칠보초등2>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벼운 종이 한 장이라도 맞들면 힘이 덜 드는 것처럼 힘든 일도 힘을 합치면 쉬워진다. 이처럼 어울려 살아가기 위해서는 도우며 살아야 한다. 진심으로 남을 돕는 올바른 자세는 어떤 것일까? 첫째, 돕는 마음에는 정성이 있어야 한다. 똑같은 돈을 내더라도 남들이 내니까 같이 덩달아 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작은 돈을 내도 남을 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둘째, 남을 존중해야 한다. 남을 도울 때는 내가 잘났으니까 도와주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도 소중하지만 내 도움을 받는 친구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셋째, 힘과 용기를 갖도록 격려해준다.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격려해 준다. 남을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친구가 용기를 갖고 응원해 주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우리들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이웃과 도와가며 친절함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워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사회속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서로서로 도와가며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잘 살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

[생활문]나는 신선이 되고

나는 신선이 되고…… 유지민<수원 칠보초등4> 지난달 우리 학교 4학년 전체 학생들은 청태산으로 소풍을 갔다. 4,5,6학년은 청태산으로 가고 1,2,3학년은 대부도로 갯벌체험학습 을 갔다. 청태산에 도착하자 안내하는 아저씨께서 나무와 풀에 관한 설명을 해주셨다. 아저씨께선 ‘노루오줌’이라는 풀은 신기하게도 뿌리에 서 오줌냄새가 난다고 하셨다. 또 민들레는 외국에서 온 서양민들 레와 우리나라 토종민들레로 나뉘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서양민들레 는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꽃이 핀다고 하셨고 서양민들레는 꽃에 검은 색깔이 섞인 것이고 토종은 검은색이 없다고 하셨다. 산을 오를 때 아저씨께서 “숨을 크게 들어마시고 흙도 만져보면 서 올라가세요.”라고 하셔서 숨도 크게 쉬고 흙도 만져보니 참 좋 고 흙도 부드러워 기분이 좋았다. 산에는 바위도 많고 바위에 낀 이끼 때문에 넘어질 뻔 하였다. 산을 내려와서 잔디에서 자리를 펴 고 점심을 먹었다. 잔디 가운데엔 큰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점심 을 먹고 모여서 체육선생님과 사진도 ‘찰깍’ 찍었다. 산에서 흐 르는 물은 참 맑았다. 모처럼 산에 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맑은 물과 풀들을 보고나니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신문고가 울고 있다

신문고(申聞鼓)는 왕권시대에 백성이 원통한 일을 호소할 때 치게 한 큰 북이다. 조선조 태종2년(1402)부터 대궐문루에 달아 놓은 이 신문고를 치면 당부에서 고충을 알아 처리했다. 태종원년(1401)에 처음으로 설치할 때는 등문고(登聞鼓)라고 하였다. 조선 세종16년(1434)에 승문고(升聞鼓)로 잠시 이름을 고쳤었는데 아무튼 신문고의 위력은 대단하였다고 역사는 전하고 있다. 신문고의 설치목적은 왕권시대에도 백성의 고충을 직접 듣는 민주적인 제도였지만 억울한 사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문제점도 있었다.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백성이 통치자에게 호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권력있는 자, 금력있는 자들로부터 받는 억압과 서러움 밖에 더 있겠는가. 지난 1994년 4월 발족한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현대판 신문고’라고 할수 있는데 그동안 위법·부당한 행정처분 등 국민들의 크고 작은 억울함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행정기관들이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시정권고권만 갖고 있고 집행권이 없는 점을 악용, 고충처리위의 시정권고 조치를 묵살하고 수용치 않는 사례가 빈발한다고 한다. 공무원 사회의 관료적인 폐해를 지적하는 3무(無)형태(선례가 없다, 규정이 없다, 재정이 없다는 핑계)가 국민고충처리 과정에도 예외가 없는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들은 민선시대 이후 고충처리위의 시정권고조치를 외면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 정부행정이 중앙과 지방정부가 손발이 맞지 않음을 입증한다. 문제는 고충처리위에 행정집행권이 없다는 점이다. 민원사무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정권고권과 언론공표권, 대통령보고권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그렇게 질타해도 시큰둥한 판국에 공문서로 전달되는 시정권고조치가 무슨 힘을 받겠는가. 대통령이 호령 호령하고 감사원이 들쑤셔놔도 위법과 부당한 행정처분이 계속 자행되는 실정이다. 공직사회에도 위계질서가 무너진지 오래됐다는 이야기가 들려 나온다. 옛날 대궐에처럼 청와대 정문에 신문고를 매달아 놓으면 청와대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국민의 쓴소리를 들을 것인가. 지금 현대판 신문고는 전국 도처에서 밤낮으로 울고 있다. 위정자들은 그 아픈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광우병 문제점, 사실대로 밝혀야

광우병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동물사료를 국내에서 사용하고 동물사료를 수입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등 광우병 파문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더구나 동물성 성분이 섞인 음식물 사료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축산농가는 물론 사료업체·소비자들이 모두 골탕을 먹고 있어 사태가 심각하기 짝이 없다. 지난 1998년 쇠고기·뼈 등이 포함된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사용하도록 적극 권장했던 농림부가 최근 광우병 문제가 불거지자 동물성 사료로 인한 광우병 발병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사료를 소 등 반추동물에 일절 먹이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공문을 전국 시·도에 보냈었다. 그런 농림부가 지난 6일 다시 “음식물 사료는 광우병과는 무관하다”고 정정 발표했으니 누가 신뢰하겠는가. ‘병주고 약주는’ 정부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축산농가와 사료업체는 도산 직전에 처했고 소비자들은 불안한 나머지 쇠고기를 먹지 않고 있다. 한갑수 농림부 장관이 “정부가 국민보건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철저한 광우병 대책을 시행중이므로 믿고 쇠고기를 먹어 달라”고 한 말도 안심이 안된다. 한 장관 스스로 “광우병은 발병원인이나 전염경로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음식물 찌꺼기를 사료로 먹인 소가 광우병에 걸리는지도 확실하지 않다”고 토로했기 때문이다. 말꼬리를 붙잡으려는 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광우병의 원인이 ‘재활용된 사료’라고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동물성 사료를 초식동물인 소에 먹이는 것을 광우병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광우병 문제는 단순히 농정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보건에 대한 장기적 안전보장의 측면에서 신중하고 완벽하게 대책을 수립, 시행하여야 한다. 눈앞의 난관이나 책임회피 때문에 임기응변으로 이 문제를 처리한다면 그 후환은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광우병 사태의 정면대응을 위해서는 모든 관련자료와 사실들을 추호도 가감없이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지금이라도 광우병의 유입, 발생위험이 있는 모든 분야를 빈틈없이 점검, 확인하고 실상을 투명하게 국민들 앞에 알리는 동시에 국가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대우차 自滅하자는 건가

대우자동차의 앞날이 갈수록 암담하다. 대우자동차가 정리해고 통보에 앞서 부평공장의 가동을 3주동안 중단키로 한데 대해 노조측이 반발, 창원 군산 등 5개 지부와 함께 총파업에 돌입키로 결의하는 등 노사가 벼랑끝 극한 대치로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측은 회사측이 휴업하는 동안에도 조합원들을 출근시켜 농성장을 확보하고 파업투쟁을 벌이기로 함으로써 휴무가 끝난다 해도 정상가동의 지장은 물론 노사간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등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대우자동차 노사의 이같은 극한적 대립은 인력감축 등 현안에 대한 이성적 해결보다는 상호 불신속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우차가 협력업체의 부품공급 중단이나 노조원의 파업아닌 자체결정으로 장기간 공장가동을 중단하는 것은 지난해 11월 부도 이후 처음으로 재고물량을 줄이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 회사측 주장이다. 그동안 매각협상 지연과 내수시장 위축으로 지난달 내수 및 수출실적이 지난해 1월보다 52%나 줄어 1개월 이상의 재고물량이 쌓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조측은 이달 중순께 희망퇴직자 등을 제외한 1천918명의 정리해고를 앞두고 집단 반발을 우려한 의도적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노사의 이같은 엇갈린 시각으로는 순조로운 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우차는 지금 노사가 상호 이해와 양보로 협력체제를 구축하지 않으면 파국을 면치 못할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회사측이 휴업 이유로 든 매출급감도 따지고 보면 노사 모두의 책임이 크다. 내수시장 위축도 한 원인이겠지만 노사갈등에 대한 수요자의 외면도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관성이 요구되는 생산 라인에서 파업과 조업중단이 반복되고 있으니 그런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제품의 품질을 수요자들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대우차가 회생하려면 노사합의의 신속한 구조조정과 정상가동에 의한 신뢰회복, 그리고 품질제고가 최우선 과제다. 본란이 누차 지적한 바 있지만 사측의 정리해고안에 대해 노조가 선뜻 합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은 심정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노조측이 한치의 양보없이 고집만 부릴 상황은 아니다. 구조조정에는 고통이 따를 수 밖에 없는 냉엄한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사측도 일방적 가동중단조치로 노조를 자극할 것이 아니라 대화분위기 조성방안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야말로 노사 모두 극단적 사고와 행동이 파멸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제하고 구조조정에 합의함으로써 회생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임을 각성해야 한다.

홍역

지난해 말부터 크게 유행하던 홍역(紅疫)이 올해에도 여전히 번지고 있어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 비상이 걸렸다. 주로 어린이들이 앓는 홍역은 처음에는 발열·기침·콧물·눈곱이 끼다가 얼굴·목·가슴·몸통의 순서로 온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다. 환자 1천명 중 1명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진 홍역은 40여년전만 해도 많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이었다. 전염병으로 인한 비극은 동서고금이 비슷하지만 우리나라도 참혹했다. 조선시대 17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약 200년간 전염병이 무려 79차례나 휘몰아쳤고 그 결과 어떤 해에는 인구의 7.8%인 50만명 이상이 죽기도 했다. 전염병이 ‘오랑캐보다 더 무섭다’는 말은 그래서 생겼다. 그 전염병을 역병(疫病) 또는 염병(染病)이라고도 했으며 반 우리말로는 ‘돌림병(病)’이라고도 했다. 이 돌림병이 한번 ‘돌고’ 지나가면 삼천리 강산이 온통 죽음의 강토로 변하곤 했다. 시체가 도처에 널리지만 행여 옮을까 치우기도 겁이 나 아예 정든 고향을 등지고 멀리 타향으로 떠났다. 당시 전염병은 콜레라나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는데 그 중 홍역은 특히 무서웠다. 누구나 한 번은 걸린다고 하는 이 홍역은 일단 발생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갔다. 조선 숙종 33년(1694)의 경우, 초봄에 평안도에서 발생하기 시작하여 1만여명이 죽었고 그해 가을에는 전국적으로 만연돼 죽은 자가 이루 셀수 없을 정도로 많아 ‘동네 골목에 어린아이가 드물었고, 한 집안이 몰수한 경우도 부지기수’에 이르렀다. 요행히 홍역에서 살아 남아도 사후(事後)에 겪는 고통은 죽은 자나 별반 다름없었다. 역병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었으므로 기근이 그림자처럼 따랐고 주위의 소나무는 모두 벗겨지고 풀뿌리조차 남아나지 않을 정도였다. 초근목피로 연명한 것이다. 그래서 ‘홍역을 치렀다’는 표현은 비참의 극을 형용하는 말이 되었다. 최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정부가 4월말까지 전국의 모든 초등 1년생에서 고등 1년생 600여만명을 대상으로 일시에 무료로 홍역 백신을 접종하는 캐치업(catch-up)을 한다고 발표했다. 예방은 하지 않고 꼭 큰 일이 터져야만 허둥지둥대는 게 정부가 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다. 홍역은 ‘평생에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앓는다’는 전염병이다. 자녀는 국가가 키워주는 게 아니다. 먼저 부모들이 미리 미리 예방해주는 게 도리이다. /淸河

부끄러운 음란사이트 1위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음란사이트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통계가 발표되어 부끄럽다. 그 동안 한국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보다도 컴퓨터, 무선전화의 보급률 등이 앞서 정보화 수준이 높아 21세기를 선도하는 정보사회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어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최근 외국 언론사의 보도에 의하면 지난 1월 한달 동안 인터넷에 접속한 한국 네티즌들의 56%가 성인물사이트를 방문해 홍콩, 싱가포르, 대만보다도 높은 수치를 나타냈으니 인터넷 강국이라는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현재 한국은 약 300만명의 네티즌이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어 명실공히 인터넷 강국을 나타내고 있다. 인구 대비로 보면 미국 18%, 홍콩 17%, 일본 14%에 비하여 34%라는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같이 각종 유해 음란사이트를 접속하는 것 때문에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해 음란사이트의 각종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도박 사이트로 가산을 탕진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자살 사이트까지 등장하여 동반 자살은 물론 청부살인까지 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청소년들의 유해 음란사이트 접속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의 무관심 속에 청소년들이 유해 음란사이트를 접속하여 각종 살인, 폭력 등 모방 범죄를 자행하는가 하면 성범죄까지 증가하여 중요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음란사이트는 성적으로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을 유혹하여 성범죄를 유발시키고 나아가 유흥비마련 등을 위한 강도행위까지 유발시키는 예가 허다하여 철저한 단속이 요구된다. 유해 음란 사이트에 대한 단속이 검찰이나 경찰의 힘으로만 되지 않는다. 물론 경찰 등에서 지속적으로 단속하면 일정한 수준의 효과는 기대되나, 인터넷의 특성상 이를 완전히 폐쇄하거나 또는 음란사이트 운영자를 모두 처벌하기는 어렵다. 이를 단속하기 위하여 범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가정과 학교에는 물론 언론 등에서도 지속적으로 유해 음란사이트의 문제점을 지적함은 물론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퇴치 운동을 전개하여야 된다. 정보화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더 이상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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