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체육협회의 변화와 혁신

안세영 선수는 7월6일,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협회의 선수 부상 관리 및 훈련 방식 등을 비판하며 협회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 파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필자는 구기종목 국가대표 선수, 국가대표팀 지도자(코치), 협회 임원(이사)을 두루 역임했기에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협회, 선수와 지도자의 삼박자가 조화를 이룰 때 좋은 성과가 나타난다.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단체전 10연패, 남자 단체전 3연패의 위업을 이룬 대한양궁협회와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여자 탁구 단체전 동메달, 혼합복식 동메달을 따낸 대한탁구협회가 그 본보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가 점검의 기회로 삼아 MZ세대 선수들을 보듬을 수 있는 협회로 거듭나기 바란다. 협회가 글로벌 트렌드에 맞게 변화와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먼저 협회장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선수가 필요하면 라켓 잡는 열정의 회장, 무더위에도 매 경기 관람하며 힘을 실어주는 감동의 회장, 선수 도시락을 먼저 시음하며 체크하는 사랑의 회장이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협회장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선수를 보듬어 주는 회장의 등장을 바라고 있다. 회장은 열린 마음을 갖고 선수, 구성원과 기꺼이 소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협회와 선수들, 지도자들의 신뢰다. 서로 믿고 한마음이 돼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 및 지도자의 선임이 파벌 없이 오직 실력으로만 공정,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오로지 실력을 통해서만 선발돼야 더욱 능력 있고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협회의 각종 규정, 내규 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제정·개정돼야 한다. 협회는 조직도에 선수위원회를 둬야 한다. 단지 구색 갖추기가 아닌 실질적인 선수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운영해야 하며 선수 인권도 존중돼야 한다. 협회의 재정 안정화, 스포츠 과학화를 통한 경기력 향상, 체계적인 우수 선수 육성 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협회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협회는 선수를 지원하고, 선수와 지도자는 그 고마움을 느끼고, 또 선수와 지도자는 서로에게 공을 돌리는 것이 ‘상식과 원칙’이 아닐까 싶다. 협회가 투명, 공정, 원칙, 시스템을 지키며 협회, 선수와 지도자의 삼박자가 하모니를 이룰 때 비로소 스포츠팬과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고 스포츠 강국으로의 위상을 굳건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시론] 정치 구호가 승패 이끌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 1956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신익희 후보의 선거 구호였다. 그 당시로는 매우 선동적이었고 유권자들에게 호응이 컸으며, 그래서 역대 대통령 선거 구호 중 가장 호소력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 측에서는 ‘갈아봤자 별수 없다’는 구호로 대응했는데 이 역시 대응 구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국 투표를 앞두고 큰 인기를 보여주던 신익희 후보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선거는 싱겁게 끝났고 선거 구호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선거에서 구호는 정말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1년 일본 시가현 지사선거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유키꼬’라고 하는 여 교수가 기반이 단단한 현직 지사를 물리치고 여성의 몸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세금이 아깝다’라는 구호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현직 지사가 주민 혈세를 함부로 낭비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구호. 미국에서도 1992년 클린턴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크게 히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내세운 ‘준비된 대통령과 경제를 살립시다’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이기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선거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대통령 출마 3수를 거치는 동안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이며 당시 IMF 사태로 나라 경제가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했고 거리에는 실업자가 넘칠 때이니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선전, 특히 선거 구호에서는 보수 여당보다 야당, 특히 진보 후보 측이 높은 성과를 올렸다. 수세에 있는 여당보다 공격이 생명인 야 측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를 계기로 ‘먹사니즘’을 발표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 문제에 올인하겠다는 구호다. 이 구호가 발표되자 벌써 2027년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3년 후에 있을 대통령선거 구호에서 선점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국민의 힘에서는 뚜렷하게 내세울 구호가 없다. 이런 가운데 오세훈 서울시장이 2036년 올림픽 서울 유치를 발표했는데 마침 이번 파리 올림픽으로 국민 정서가 뜨거워진 터라 반응 역시 긍정적이다. 물론 2036년 서울 올림픽 유치를 대통령선거와 연계시키는 시선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뛰어난 구호가 아니라면 이런 정책 제안이 국민들에게 더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이재명 대표의 ‘먹사니즘’이 얼마만큼 효과를 발휘할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먹사니즘’이 더 부각되려면 민주당의 초강경 정치 발언들을 순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검, 청문회, 탄핵 같은 정쟁이 매일 주류를 이루고 심지어 아무리 현직 대통령 부부가 미워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국회에서 ‘살인자’라고 외치는가 하면 ‘독도를 팔아먹는다’ 같은 괴담은 국민들을 피곤케 하는 것이다. 특히 그런 막말이 강성 당원들에게는 박수를 받겠지만 중도층 외연 확장에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국민의 힘이나 민주당이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은 중도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선거 전문가들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누가 이기든 지난 선거 때처럼 근소한 표 차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근소한 1~2% 표 차를 좌우하는 것은 중도층이다. 따라서 아무리 선거 구호를 잘 만들어 내도 중산층이 등을 돌리면 허사가 되고 만다. 여야는 진정 승자가 되고 싶으면 구호보다 중도층의 민심을 얻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경기만평] 희망사항...

[사설] 정작 출퇴근 때 못 오는 돌보미가 복지인가

아이돌봄서비스는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복지증진이 목적이다. 보호자의 일·가정 양립도 지원한다. 양육친화적인 사회 환경도 조성한다. 아이돌봄지원법 제1조에 명시돼 있다. 지원 대상은 12세 이하 아동이다. 구체적으로 생후 3개월~만 12세다. 12세 이하 아동은 시간제 서비스, 36개월 이하 영아는 영아종일제 서비스로 구분된다. 취지가 좋은 사업인데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돌보미 기다리다가 아이 다 큰다’는 볼멘소리다. 과한 소리도, 괜한 소리도 아니다. 돌보미를 배정받는 게 그만큼 어렵다. 한 달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려 6개월~1년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신청 아동이 10세 또는 11세라면 어떻게 될까. 대기하다가 자격 연령 초과하는 셈이 된다. 경기도내 돌보미 수급 상황을 보자. 7월 기준 경기도 아이돌보미는 5천409명이다. 실제 이용 아이들은 1만2천54명이다. 돌보미 1명에 아이들 1.44명꼴이다. 수치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돌봄서비스 수요의 집중이다. 신청이 주로 몰리는 시간대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출퇴근 시간이다. 수요 병목으로 공급이 따라가지 못한다. 도 관계자가 ‘낮 시간대에는 (공급이) 남아돌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하나마나 한 소리다. 제도 목적이 ‘직장 생활 지원’이다. 직장은 출퇴근을 전제로 한다. 이 기본 취지도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요 분산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출퇴근 시간을 달리해야 하는데, 그건 산업계 전반의 영역이다. 결국 현 상태에서 생각해 볼 대안은 하나, 돌보미 공급 확대다. 현재 돌보미는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한다. 80시간의 양성 교육과 현장 실습이다. 주로 은퇴 연령대 여성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기동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다 많은 돌보미를 양성하는 것이 대안이다. 현장에서는 낮은 보수 개선도 과제로 든다. 현재 보수는 최저 시급을 겨우 웃돈다. 무작정 봉사정신만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예산이 없을 테니 돌보미 증원부터라도 해야 한다. 안 한다면 모를까, 한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복지마다 소비자에 이르는 공급망이 있다. 아동 복지의 아동돌보미, 노인 복지의 노인돌봄생활지원사 등이 예다. 그 자체로 일자리다. 복지가 창출하는 고용이다. 그나마 최소한의 공급망이다. 이마저 예산 없어 외면할 것인가. ‘돌보미 대기’ 원성을 계속 방치할 건가. 이런 복지는 복지가 아니다. 아이돌봄지원법 1조에 대상 아이들을 특정해 놨다. 그 애들 100%에 대한 공급은 법의 약속이다.

[사설] 미성년자 무면허 렌터카 사고, 안전대책 강화해야

렌터카 이용자가 증가함에 따라 렌터카 사고도 매년 1만여건씩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28일 더불어민주당 맹성규 국회의원(인천 남동갑)이 한국교통안전공단과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의 분석에 따르면 렌터카 사고는 2020년 1만223건, 2021년 1만228건, 2022년 9천779건, 지난해 9천496건 등으로 나타났으며, 사고로 발생한 사상자 수는 연평균 약 1만5천588명수준에 이르고 있어 이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렌터카 사고는 9월부터 12월까지 발생 건수가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추석과 같은 연휴가 있는 9월과 개천절 등이 있는 10월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행락철과 겹쳐 렌터카 수요 증가와 더불어 교통사고도 늘어나고 있다. 또 겨울철에는 짧아진 일교시간과 날씨로 인한 도로 상황 등으로 렌터카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심각한 사회 문제는 렌터카 사업의 활성화와 휴대폰 이용의 편의성 등을 이유로 앱을 통해 비대면으로 자동차를 빌릴 수 있는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무면허 렌터카 사고가 매년 수백 건씩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229건의 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352명이 다쳤다. 2022년에는 258건, 2021년 320건, 2020년 399건이 각각 발생했다. 무면허 렌터카 사고에서 더욱 큰 문제는 미성년자의 무면허 렌터카 운전으로 인한 사고다. 무면허 렌터카 사고를 나이대별로 분류한 결과 운전자가 20세 이하인 경우가 최근 5년간 발생 건수의 약 36.69%인 580건으로 가장 크다. 이들 중 상당수는 휴대전화 앱을 통한 회원 가입을 타인 명의를 도용해 비대면 인증을 받아 쉽게 렌터카를 이용하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심지어 특정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무면허자를 대상으로 차를 빌려준다는 게시글까지 올라오고 있다. X(옛 트위터)에 ‘무면허 렌트’를 검색하면 인증 계정을 판매한다는 글 등이 있어 청소년의 무면허 운전을 조장하고 있다. 이런 SNS 게시물은 불법을 조장하는 행위이므로 조사해 엄벌해야 한다. 미성년자를 비롯한 무면허 렌터카 이용을 차단하기 위한 확실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 렌터카 업체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차량 대여 및 운행 시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는 등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 국토부 등은 렌터카 이용을 시작할 때 얼굴 또는 지문인식을 의무화하는 등 관계 규정을 강화해 더 이상 미성년자가 무면허 렌터카 사고로 희생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슈&경제] 홍익인간의 현대적 이념

이념의 사전적 정의는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로 무엇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지에 대한 정신적 지주요 철학이다. 홍익인간 이념과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홍익인간은 홍도익중주인간(弘道益衆主人間)의 줄임말로 ‘널리 인간 세상에 도(道)를 넘치게 해 널리 골고루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건국·통치·정치·교육·윤리 이념의 근간이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前文)에 홍익인간 정신이 행간에 깔려 있고 교육법(1949년)과 교육에 관한 기본법률(1997년)에 교육 이념으로 명시돼 있다. 둘째, 신시개천(神市開天) 자체가 기업가정신이다. 셋째, 인간의 행복을 중시하고 봉사하는 보편적 인본주의와 인류 공영의 박애주의를 추구하므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거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이기주의와 향락주의를 거부한다. 넷째,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나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를 우선한다. 인간은 물론이고 사회와 공동체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을 배려하는 공감과 이타심을 가진 유기적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다섯째, 만물 병육의 상생 사회를 지향하므로 자유주의, 평화주의, 공동체주의를 추구한다. 여섯째, 소통과 통합의 사회를 의미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식, 정신, 인정, 의사, 정보, 일자리, 물자 등이 물처럼 넘쳐흐른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와 갑과 을의 대립이 없는 지식, 인정, 물자, 정보 등이 막힘이 없는 원활한 소통과 통합을 의미한다. 일곱째, 천지인 삼재(三才)의 조화를 기조로 한다.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추지 아니함)의 재세이화를 통해 이룬다. 이는 통치자나 지도자들이 국민 행복을 위해 실천해야 할 정치 기능이나 역할 또는 국가권력이 추구해야 할 부국강병과 국민 안전 같은 목표 가치나 사명일 뿐만 아니라 준법, 질서, 근검절약, 정직 같은 이웃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한 소극적 덕을 넘어 협동, 관용, 참여, 봉사, 이타심 같은 적극적 윤리와 덕성을 제시한다. 여덟째, 공동체의 안녕과 번영을 위한 선공후사의 윤리 규범을 제시한다. 아홉째, 널리 인간 세상에 도를 넘치게 해 널리 골고루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열 번째, 도와 자연의 흐름처럼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생산과 교역 활동을 할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홍익인간은 한국적 인문학의 출발점으로서의 의의뿐만 아니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과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 통합이나 경제발전 같은 실천적 과제와 관련해 홍익인간이 주는 지혜도 크다. 홍익인간이 지향하는 이념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 할 수 있으며 공동선과 정의를 확립하고,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평화롭고 창의적인 인류 공동의 과제와 관련해 재해석되고 천명될 가치가 있다. 우리의 국가와 공동체를 다듬고 개개인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꿔 가는 과제에 적용할 기준 가치로서의 의의 또한 중요하다. 홍익인간이 우리의 교육이념으로 제정됐다는 것은 첫째, 교육을 통해 양성해야 할 인간상이 홍익인간 하는 덕성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둘째, 교육사업 자체가 홍익인간 하는 최고의 활동임을 규정한 것이다. 교육이 권력, 자본 및 교육 종사자의 이해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 계발과 행복 증진에 봉사하는 것을 명기한 것이다.

[아침을 열면서] 바람을 맛나게 맞으며

오늘 바람은 맛있다. 잠을 깨는 순간 반갑게 닿는 바람의 촉감. 창을 열고 오늘의 온도를 재듯 바람을 흠뻑 마신다. 맑아진 바람의 결이 한층 상큼하게 밀려온다. 며칠 새로 삽상하다는 어감에 딱 맞게 바람의 감촉이 달라졌다. 바람을 한껏 들이며 드디어 가을이라고, 가을이 오긴 왔다고 뇐다. 폭염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쓸어주는 바람의 위무를 받으니 살맛도 살짝 솟는다. 늘 같은 아침도 바람에 따라 색다른 기분이 된다. 새롭게 차려오는 바람의 걸음새에 마음이 움직이고 몸도 일으켜지는 것이다. 그렇듯 때에 따라, 곳에 따라 바람이 사람살이에 끼쳐온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해마다 새 잎과 꽃을 피우고 과일이며 곡식을 익히는 등등 세상을 경영해온 바람의 힘이 새삼 짚인다. 물론 태양과 비와 구름과 더불어 하는 일이라지만. 아무튼 태풍 같은 게 아니면 대부분의 바람은 우리네 삶을 널리 이롭게 하는 일로 지구를 분주히 돌고 도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처서 바람은 더 각별하게 맞는다. 그때부터 시원해지는 바람이 예를 갖춰 맞이할 만큼 고마운 까닭이다. 예의란 다름 아니라 바람의 위무를 크게 맞이하는 번개 치기다. 세상 불쾌하게 끈적대던 폭염 습도를 확 내리고, 선도는 상큼하게 올리는 가을바람을 애타게 기다려온 우리의 소소한 마중이다. 동네 골목 어디서든 만나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면서 여름 내 고생했다고 위무하는 바람의 맛과 깔을 더 높이 즐기는 것이다. 행복에는 즐거움의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지 않는가. 그러고 나면 더 기운 내서 가을을 맞이하고, 할 일도 챙겨 보게 된다. 시큰둥하던 일상이 축제 후에 새삼 소중해지고 조금 더 열심히 살려는 마음을 새기는 것처럼. 사실 바람은 ‘두 장소 사이에 존재하는 기압차에 따라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이니 지구에 오래 존재해온 대기의 순환이다. 그런 특성에 이름도 많고 역할도 많고 관련되는 비유며 함의도 넓은 게 바람이다. 이름도 미풍, 순풍, 돌풍, 솔바람, 산들바람, 명지바람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바람의 신, 바람의 딸, 바람의 계곡 등등 예술적 차용과 활용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이즈음의 바람을 두 팔 벌려 맞이하는 것은 기나긴 무더위를 물리치며 오기 때문이다. 점점 숨쉬기도 힘든 찜통 폭염을 떨쳐주는 특유의 처서바람이라 다른 때보다 대접을 더 받는 셈이다. 올해는 그토록 기다리던 처서도 며칠은 더 지나서야 선선해져 가을바람맞이 번개를 하고 넘었지만. 구월 아침을 설레게 하더니 바람이 무슨 말인지 천변에도 전하고 다닌다. 무성히 벋기만 하던 풀들도 조금씩 초록을 줄이며 마무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아직 덜 익은 사과들은 바람의 말을 귀담으며 더 달게 익을 테고 콩깍지 속의 콩알들은 튀어 나갈 태세로 단단해질 것이다. 그렇게 바람을 맞이하는 세상의 고샅마다 제 앞에 주어진 시간을 마저 익히는 가을의 마음으로 그윽이 깊어갈 것이다. 이런저런 전언을 둘러보며 맞으니 오늘의 바람이 더 맛있다.

[천자춘추] ‘얼운님’을 기다리는 마음

아이들이 예쁘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든 모양이다. 뭘 바라는 건 없다. 우리보다는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더 풍요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늘 미래의 아이만을 생각했다. 항상 어른은 아이의 후견이었고 아이는 어른의 희망이었다. 부끄럽지만 받을 땐 소중함을 잘 몰랐다. 어수룩한 깨달음조차 늘 뒷북이었다. 갈수록 어른이 없다. 어른을 찾는 애절함은 더 커지는데 정작 어른 싸움에 아이들 멍은 더 짙어만 간다. 전통의 배구 명가인 화성의 송산고 배구부만 해도 그렇다. 학교 측과 지도자 간에 각자의 주장이 있고, 시각차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해법이 ‘배구부 해체’라는 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른 싸움에 아이 등 터지는 꼴이다. 아이들의 꿈,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원천 박탈하는 이유가 ‘어른들’ 싸움이라니 당최 어른스럽지 않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도 어른을 기다린다 했다. 그는 “누군가와 전쟁하듯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보호에 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 본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대답은 달랐다. 같이 살자고 얘기하는데 함께 죽자고 싸움을 키우는 형국이다. 비록 서투른 직접화법이지만 안세영의 고언을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음 올림픽에서는 안세영이 감사와 보은의 마음이 분노보다 더 큰 힘이었다는 금메달 인터뷰에 나서길 기대한다. 어른의 본뜻은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어른은 ‘얼우다’에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사랑을 나누다’의 뜻으로 ‘얼운님’을 기다리는 황진이의 마음으로 쓰였다. 어른은 어우를 수 있는 사람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로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이겨야 한다. 진정 공멸의 길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얼운님’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을 정부도, 협회도, 체육회도 헤아리길 바란다. 어차피 같은 시대 지구의 한 모퉁이를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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