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팬들 울린 2부 리그 강등... 주인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FC가 끝내 팬들을 울렸다. 올해 K리그1 최하위로 추락, K리그2로 강등됐다. 2003년 원조 ‘시민구단’ 창단 이후 21년 만이다. 근래 한때는 2년 연속 파이널A(1~6위)에 올라 팬들의 환호도 받았다. 그러나 긴 세월 해마다 ‘꼴찌 탈출’에 허덕여 왔다. 그래서 별명마저 ‘생존왕’, ‘잔류왕’이었다. 결국 ‘시민구단’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속을 들여다보면 인천시 예산으로 꾸려 가는 ‘지자체 구단’이었다. 부족한 재정에 시장논리가 지배하는 우수 선수 영입이 어려웠다. 인천시는 해마다 100억원 이상을 쏟아붓지만 다른 구단 연봉 총액의 절반 수준이다. 구단 경영도 전문성과는 멀었다. 성적이 저조하면 경기력을 높일 방안을 찾아내야 하지만 아니었다. 2018년과 2020년, 인천유나이티드가 최하위로 추락했을 당시 비상대책위는 꾸려졌다. 하지만 뚜렷한 경영 혁신이나 경기력 향상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상 지자체 구단이다 보니 대표이사는 물론 이사진 대부분이 축구 비전문가로 꾸려졌다. 이사진 17명 중 3명을 제외하면 전·현직 공무원이나 후원사 관계자, 기업인 등이다. 경영층 외 구단 프런트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진단이다. 올해의 경우 재정난을 이유로 핵심 전력 선수들을 방출했다. 그러고도 대체 선수 영입을 소홀히 했다. ‘국제대회 경험 있는 선수들로 한 시즌 더 가도 된다’며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7월 성적 부진 책임을 지고 감독이 중도 사퇴했다. 그때도 새 감독 선임이 늦어져 위기 수습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지역 기업들의 외면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인천유나이티드의 총 수입금이 258억원이다. 이 중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의 지원이 155억원(60%)을 차지한다. 기업 후원은 14억원(5.5%) 수준이다. 이도 인천 시금고를 맡고 있는 신한은행이나 포스코이앤씨, 인천항만공사 등의 단발성 후원이 대부분이다. 인천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 94곳 중 인천도시가스 1곳만이 후원사에 이름을 올렸다. 4년 전 37억원이던 기업 후원이 올해는 14억원대로 떨어져 있다. 최대한 빨리 1부 리그로 생환하는 것이 인천유나이티드의 지상과제다. 먼저 강등된 팀들을 살펴봐도 매우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경영진과 선수단의 대대적 쇄신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쇄신 작업은 분명한 목표를 가져야 한다. 바로 주인의식의 재무장이다. 남의 일처럼 하는 구단 경영, 경기 운영으로는 자생력을 기대할 수 없다. 주인 및 책임의식이 분명한 시민구단, 그러려면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지지대] 마지막 선물과 확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개전 1천일을 맞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도대체 전쟁의 명분이 뭐지’라는 의구심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북한군이 파병돼 확전의 초석을 다지더니 이제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이 제공한 장거리 전술 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로 결국 러시아 본토 타격을 감행, 러–우 전쟁은 확전일로에 접어들게 됐다.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러시아는 즉각 핵무기 사용 조건을 완화해 우크라이나도 핵공격 대상으로 포함하는 ‘핵카드’로 맞불을 놨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가 발사한 여섯 발의 미사일 중 자국의 방공시스템이 다섯 발을 격추했고 나머지 한 발에도 손상을 입혔다고 밝혔다. 그런데 공격의 성패를 떠나 이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한 첫 사례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퇴임 전 우크라이나에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마지막 선물이 확전과 핵무기 사용까지 가능한 3차 대전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한 셈이 됐다. 본토 타격으로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러시아가 자국 영토에 대한 나토 회원국의 미사일 공격은 나토의 직접 개입이라고 주장했던 만큼 에이태큼스 발사로 우크라이나 사태는 더욱 격화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신속한 종전’을 공언했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는 내년 1월까지 러–우 전쟁은 더욱 가열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압박하는 휴전 협상에 대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 유리한 ‘고지 점령’이 절실함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대량살상무기로 보복 공격을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이미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경고했다. 우리가 러–우 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할 명백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삶, 오디세이] 노년의 아름다움

지금 대한민국은 노인 천만의 시대, 초고령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노인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하는 젊은 세대의 짐도 점점 더 커지지만 사실 노인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어른들의 삶의 자세는 더 중요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노년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겪어보면 안다’는 김홍신 작가의 글이다. ‘굶어보면 안다. 밥이 하늘인걸/목마름에 지쳐보면 안다. 물이 생명인걸/일이 없어 놀아보면 안다. 일터가 낙원인걸/아파보면 안다. 건강이 엄청 큰 재산인걸/잃은 뒤에 안다. 그것이 참 소중한걸/이별하면 안다. 그이가 천사인걸/지나보면 안다. 고통이 추억인걸/불행해지면 안다. 아주 적은 게 행복인걸/죽음이 닥치면 안다. 내가 세상의 주인인걸.’ 젊을 땐 몰랐는데 나이 들어 노년이 돼 보면 인생이 얼마나 축복인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아름다운 것처럼 인생도 어린아이의 시절도, 푸른 청년의 시절도, 빛나는 중년의 시절도, 황금빛 노년의 시간은 모두 다 아름답고 풍요롭다. 생각해 보면 봄만 좋고 여름은 나쁜 것이 아니다. 여름만 좋고 가을은 나쁜 것이 아니다. 가을만 좋고 겨울은 나쁜 것이 아니다. 봄은 봄이라서 좋고, 여름은 여름이라서 좋고, 가을은 가을이라서 좋고,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다. 물론 봄에는 봄의 어려움과 극복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와 코감기와 꽃샘추위를 극복해야 봄의 따뜻한 바람과 예쁜 꽃을 맞이할 수 있다. 여름에는 여름에 극복해야 할 열대야 무더위와 장마와 홍수와 태풍이 있다. 가을에는 가을에 극복해야 할 가을걷이의 분주함과 겨울을 준비하는 수고가 있다. 겨울에는 겨울에 극복해야 할 추위, 눈길의 미끄러움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극복해야 할 문제와 환경을 주셨다. 그리고 그 너머에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주신다. 구약성경의 시편 71편 9절에는 이런 기도가 있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인생은 누구에게나 늙고 약해질 때가 있다. 그때 늙고 약한 나를 붙잡아 줄 손길이 필요하다. 노년이 되면 자신을 지탱하고 방어할 힘이 약해진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이 아프다. 그때 노인을 도울 분이 있어야 한다. 나이보다 젊게 사는 사람들이 자신을 과신하며 내뱉는 말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인데 92세 어르신 목사님께서 농담 삼아 말씀하시기를 ‘그 말은 거짓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안 아픈 곳이 없다’고 하셔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이 개운하고 힘이 생기는 것도 젊었을 때인가 보다. 그래서 기도하는 노년이 돼야 한다. 시편의 기도가 ‘늙은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은 한 번도 버리지 않으셨고, 떠나지 않으셨다. 다만 젊을 때 바쁘다는 핑계로, 세상에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나를 떠나지 마소서’라는 기도는 자기 고백과 결심이다. 세상의 일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노년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조금씩 닫고 하나님께로 문을 활짝 열어 가시길 바란다.

[김종구 칼럼] ‘3호선 연장’ 날아갔고 핑계만 남았다

전해진 13일 상황은 이랬다. -도청사에서 시장군수협의회가 열린다. 후반기 의장 등 선출을 위한 자리다. 용인시 직원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경기도청 직원이 이걸 강제로 빼앗으려 한다. 두 공무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진다. 이를 본 용인시장이 항의한다. 빼앗겼던 피켓을 다시 찾아온다. 이후 김동연 도지사가 행사장에 들어선다. 이 시장이 김 지사에게 항의한다.- 도(道)와 시(市) 공무원 간의 몸싸움이었다. 도대체 어떤 피켓이었을까. 별 것 아니다. 시장 4명과 도지사가 활짝 웃고 있다. 광역철도망 추진을 위한 협약 사진이다. 언론에 나온 지도 오래인 이걸로 싸웠다. 바로 이상일 시장의 도지사 공격용이라서다. “협약 때 도민에게 한 시간씩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중앙부처에 건의도 앞장서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 순위에서 뒤로 밀었다”, “이제 4개 시장과의 미팅도 기피하고 있다”.... 경기남부광역철도망 구축 사업 얘기다. 김 지사가 어쨌길래. 도와 협약이 있었던 건 지난해 2월이다. 그 후 4개 시가 공동용역을 했다. 경기남부광역철도 노선을 도출했다. 서울종합운동장역에서 화성까지 50.7㎞다. 4량 정도의 전철로 운영하는 안이다. 예상 사업비는 5조2천70억원 정도다. 비용대비편익(B/C)이 1.2다. 사업성 있다는 값이다. 이걸 도에 올려 국토부 건의를 부탁했다. 그런데 경기도가 건의에서 후순위로 밀었다. 민선 8기에 가시화되기 어려워졌다. 정말 도는 성의가 없었을까. 이쯤에서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성남·용인·수원·화성시장이 서울에 갔다. 전철 연장의 키를 쥔 오세훈 시장이다. 자존심 버리고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거기에 김동연 지사는 없었다. 수도권 단체장끼리 면식이 많다. ‘시골 시장’들 가는 데 거들어 줬으면 좋았다.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김종구 칼럼: 김 지사는 거기 왜 안 갔나·2023년 5월4일). 이 시장의 원성이 근거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김 지사 무성의만 문제였을까. 꼭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경기남부광역철도 구상의 등장 배경이다. 2023년 2월 협약식의 행사명은 이런 거였다. ‘서울 3호선 연장·경기남부광역철도 추진 협약식’. 그 앞서 2022년 6월 시장선거의 공약엔 이런 게 있었다. ‘3호선 연장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렇다. 선거 당시 공약은 ‘3호선 연장’이었다. 이게 당선 뒤 조금씩 바뀌었다. 협약으로 남부광역철도가 끼어들더니 용역으로 3호선 연장이 사라졌다. 요상한 흐름 아닌가. 첫 공약은 3호선 연장이었다. 이게 물거품이 됐다. 두 번째 대안이 광역철도망 구축이었다. 이것도 요원해졌다. 그럼 책임에도 순서가 있다. 3호선 연장 불발 책임이 먼저다. 경기남부광역철 지연은 다음이다. 당연히 먼저 따질 건 3호선 연장 불발이다. ‘3호선 연장 공약이 불가능해졌습니다’라고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4명 시장 누구도 이런 실명을 안 한다. 대안이었던 광역교통망 문제만 강조한다. 이런다고 유권자의 기억도 없어지나. 시장들의 책임은 명확하다. ‘3호선 연장’은 끝난 얘기였다. 용역 결과 사업성 없었고, 기지창 부지 없었고, 서울시 계획 없었다. 민선 7기가 확인했고 손 털었다. 그걸 이 ‘시장’들이 다시 들고 나왔다. 희망 고문의 부활이었다. 우려는 맞았다. 3호선 공약은 사라졌다. 사과해야 한다. 무모한-유권자를 우롱한- 공약에 대해 사과 해야 한다. 그런데 안 한다. 지사와 싸우고, 장관과 사진 찍고, 성명서 뿌리고 있다. 핑계 자료 쌓아가는 중일까. ‘3호선 축 여론’은 냉정하다. 4년 허송에 또 2년을 속았다. 경기도 대안? 광역교통망 구축? 그런 거 모른다. 오로지 ‘3호선 연장’만 따질 것이다. ‘3호선 오나 안 오나, 못 지킬 약속 왜 했나’. 여기에 무슨 핑계가 통하겠나. 통렬한 사죄 말고는 답 안 보인다.

[함께하는 미래] 믿음과 행복을 전하는 말(馬) 이야기

사막의 낙타, 남미 고지대의 라마는 약 4천년 전부터 사막과 고산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사람의 이동을 활성화하고 인류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보급해 주던 동물이다. 이와 달리 대평원을 달리는 데는 말(馬)만한 동물이 없었다. 말은 5천5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가축화됐고 이후 4천200년 전 서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또다시 가축화돼 이동과 운송을 위해 인류와 길고 긴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최고속력 시속 60~70㎞, 하루 최대 이동거리 100㎞를 달리는 말이 인류사에 가져다 준 업적은 실로 눈부셨다. 특히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출발해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거대한 제국을 확장하는 원정에서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전투 도구였다. 이후 13세기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은 말을 이용해 유라시아 전역을 빠르게 정복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가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군사 전술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의 기병대, 고려의 기마무예, 조선의 파발제 같은 통신제도를 통한 말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19세기 유럽 이주민들이 북미에서 서부 개척지를 탐험하고 정착해 농장을 일구기까지 말은 미국의 개발과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말은 참호전 격전지에서 병참과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고 하니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불과 100년 전까지 이동과 수송, 전쟁과 교통에 기여한 말의 헌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일 말이 없었다면 인류 사회는 느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법하다. 왜 하필 말일까. 잘 달리는 동물에는 얼룩말이나 사슴도 있고 힘 좋은 동물에는 코끼리나 소를 따를 자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말이어야 했던 이유는 기동성과 지구력을 모두 갖춘 신체적 덕목이 선행됐겠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믿고 따르는 말 고유의 성격이 신뢰와 행복감을 전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말은 운송·통신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포츠, 레저, 관광 같은 새로운 일을 맡아 인간 사회에 남게 됐다. 특히 신체 균형을 바로잡고 마음 치유를 돕는 재활 승마는 자폐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말에게 의지해 더 나은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성취감과 도전정신을 북돋우고 심리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되찾게 한다. 자유롭고 강인한 말은 신뢰의 아이콘이 돼 인류의 새 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속담에 ‘안정적인 친구를 원한다면 말을 길러라’는 말이 있다. 말이 얼마나 헌신적인 믿음과 안정을 주는 동물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윈스턴 처칠은 “훌륭한 말을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 했다. 말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이 매우 큼을 의미한다. 경주마, 승용마, 조랑말, 은퇴마.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지금 하는 말의 역할이 쓸모없어진다 해도 미래의 말은 여전히 인류의 좋은 파트너로 새 역할을 찾아갈 것만 같다. 수천년간 쌓아온 깊은 역사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고마운 말이기에 우리 인류가 앞으로 말과 함께할 공존의 관계를 더 소중히 준비하고 가꿔 나갔으면 좋겠다.

[천자춘추] ‘누칼협’, 사직서 작성과 부당해고

‘누칼협’이란 표현이 최근 인터넷상에서 자주 등장한다. 이는 ‘누가 칼 들고 협박했냐’의 줄임말로 어떤 일을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상황에서 사용된다. 근로관계에서 누칼협이란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 있다. 바로 ‘사직서’ 제출 이후 부당해고를 주장하는 경우다. 최근 경기가 안 좋다는 게 상담에서 느껴진다. 해고와 관련한 상담이 부쩍 늘었다. 근로자 해고 관련 상담을 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회사의 권유로 사직서를 작성하게 됐는데 부당해고인가요’, ‘권고사직을 당했는데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가능한가요’ 등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직서 제출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면 부당해고가 성립하기 어렵다. 판례에서 사직서 제출은 강요·협박 등 특수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근로관계 종료 의사를 밝힌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판례는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사직의 의사가 없는 근로자로 하여금 어떨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하게 한 후 이를 수리하는 형식을 취하여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경우 해고에 해당하나, 그렇지 않은 경우 해고라고 볼 수 없다.’ 판례 문구를 쉽게 풀이하면 이렇다. ‘당신이 나간다고 했으니 회사가 자른 게 아니다. 다만 회사가 나갈 수밖에 없게끔 강요·협박 등을 한 경우에만 해고로 인정해 준다.’ 강요·협박이 없는 사직서 제출은 해고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의 경우 회사로부터 사직서를 요구받은 상황이라면 충분히 고민한 후에 행동해야 한다. 본인이 회사를 떠날 생각이 있는지, 이후 경제활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실업급여 수급 여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고려했을 때 회사를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함부로 사직서를 작성해선 안 된다. 만약 회사가 폭력·폭언 등을 통해 사직서 작성을 강요해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작성할 경우에는 회사로부터 부당한 행위를 당했다는 입증자료를 남겨야 한다. 사직서를 작성하기 전에 메시지, 메일 등 자료를 수집해 자신이 사직서 제출을 강요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녹취도 좋다. 다만 대화 당사자에 본인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 불법 녹취가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원치 않은 사직서 제출로 억울한 상황에 처하지 않길 바란다.

[경기만평] 한번 맛을 본 이상…

[사설] ‘정치 기소’ 무죄 논리에 ‘유용 1억’ 액수가 버겁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추가로 기소됐다. 경기지사 시절 법인카드 등을 유용했다는 혐의다. 당시 도지사 비서실장과 별정직 공무원도 함께 기소됐다. 같은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부인 김혜경씨는 기소유예 처분됐다. ‘죄는 있으나 기소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경기도 관용차를 사적으로 사용하고 법인카드 등 경기도 예산으로 샌드위치, 과일 및 식사 대금을 지출했다는 혐의다. 검찰이 공소장에 밝힌 범죄 액수는 모두 1억653만원이다. 이 대표는 여섯 번째 기소로 5개 재판을 받게 됐다. 이번 기소는 앞서 김혜경씨 유죄 선고 때 예견됐다. 벌금 150만원이 선고된 김씨의 혐의도 법인카드 관련이다. 대선 경선 출마 선언 직후 민주당 중진 의원 아내 3명과 식사했다. 식사대금 10만4천원을 법인카드로 결제한 혐의다. 유죄 판시 대목 중에 ‘피고인과 순차적이고 암묵적인 의사 결합’ 논리가 등장한다. 법인카드 유용에 대한 이재명 지사의 묵인 내지 동의를 추론케 하는 대목이었다. 법인카드 유용은 오랜 기간 법외 영역처럼 간주돼왔다. 기관 또는 기업의 내부 회계 문제라는 인식이 강해서였다. 그랬던 법인카드 유용이 고위 공직자의 명운을 흔들었던 최초 사례는 이모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다. 법인카드를 포함한 특정업무경비 부당 사용 논란이 불거졌다. 이 후보자는 결국 낙마했고 박근혜 정부에 상처를 남겼다. 이후 공공 영역에서의 법인카드 사용은 더 엄격해졌다. 지난해 인터넷진흥원 간부가 파면되기도 했다. 다만, 구체적 판결로 보면 여전히 엇갈리는 측면이 있다. ‘업무’의 성격과 범위에 대한 판단 때문이다. 가까운 예로 올해 인천지법에서 있었던 판결이 있다. 민간 회사에 다니던 직원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배임 액수는 71만여원이었다. 1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기소된 주유비, 식사비 등을 업무로 해석했다. 2심은 유죄를 선고했다. 같은 내용을 두고 ‘업무 외 사용’으로 봤다. 이 대표 측의 향후 주장도 결국 ‘업무’ 해석이 될 듯하다. 손쉬운 과정은 아니다. 검찰이 7월4일 출석을 통보했다. 이 대표는 8월18일 이후 출석하겠다고 했다. 9월 이후 통보했지만 역시 출석하지 않았다. 범죄 은폐로 해석될 법한 정황이다. 여기에 공소사실의 범죄 액수가 1억원 이상이다. 유사 사건에 비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판결이 살피는 것은 ‘주장’이 아니라 ‘행위’다. ‘정치 논리’가 아니라 ‘혐의 없음’을 입증해야 한다. 혐의가 간단한 사건이어서 무죄 투쟁이 더 버거운 경우가 왕왕 있다. 이게 그럴 수 있다.

[사설] 성인 실종 매년 7만명, 이들을 찾는 법은 왜 없나

매년 7만여명의 성인이 실종된다. 이 중 1천여명이 사고와 범죄에 노출돼 사망한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통계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4년간(2020~2023년) 18세 이상 성인 실종 신고는 누적 28만3천654건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실종 상태에서 자살, 교통사고, 범죄 노출 등으로 사망한 사람은 총 5천439명(1.9%)에 이른다. 경기지역에서도 지난 4년간 8만3천954건의 성인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18세 미만 아동은 성인과 비교해 실종자 신고 건수는 3분의 1, 실종 상태에서 사망한 경우는 31배가량 낮다. 성인 실종자 수가 훨씬 많지만 수사기관의 대응은 상당히 미흡하다. 단순 가출 등 개인 문제로 치부해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 경찰이 실종자 추적이나 수색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관련 법안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성인 실종의 경우 개인정보 침해 소지가 있어 신고가 들어와도 위치 추적 등 적극적인 초기 대응이 어렵다. 수색 근거가 없다 보니 골든타임을 놓쳐 불상사를 예방하지 못한다.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위치 추적 등 경찰이 적극적인 실종 수사를 벌일 수 있는 대상은 만 18세 미만 아동, 지적장애인, 치매환자로 한정돼 있다. 이들은 DNA 확보 및 비교가 수월해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다. 폐쇄회로(CC)TV 확인도 미성년자 실종의 경우 영장이 발부되지 않아도 영상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성인은 ‘실종아동 등 및 가출인 업무처리 규칙’에 따라 ‘가출인’으로 분류, 실종 신고가 접수돼도 특정 범죄 가능성이 없으면 경찰이 강제로 소재 파악을 할 수 없다. DNA 확보 및 비교가 어렵고, CCTV 확인도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경찰은 실종 신고 접수 시 대상자 안전 확보와 신속한 추적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종자 가족들도 같은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성인 실종의 법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지난 21대 국회에선 실종자를 수색할 때 강제 진입이나 CCTV 협조 요구를 명확히 규정한 ‘실종 성인의 소재 발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상임위 문턱도 못 넘고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 이달희 의원이 성인 실종자에 대한 체계적이고 신속한 수색을 위한 ‘성인 실종 수색 및 발견에 관한 법률안’을 또 발의했다. 성인 실종 법안 마련은 시급하고 절실하다. 실종자 가족은 생사조차 알 길 없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실종 신고의 상당수가 미제로 계속 쌓이고 있다.

[지지대] 저속노화 열풍

나이 드는 속도도 늦출 수 있을까. 학계는 음식을 통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뜨고 있는 ‘가지 닭가슴살 볶음’이 대표적이다. 누리꾼들은 한 술 더 뜬다. 중화요리에 가까운 맛을 느낄 수 있어 잡곡밥 등을 먹을 때 반찬으로 곁들여도 좋다고 소개한다. 노화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선 나이 듦을 촉진하는 음식 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설탕 같은 단순 당이나 흰 쌀밥과 빵 등으로 대표되는 정제 곡물, 붉은 고기와 동물성 단백질 등은 자제해야 한다는 제언도 그렇다. 튀김류, 버터, 마가린, 치즈 등도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에도 무게가 실린다. 그 대신 푸른 잎 채소와 통곡물, 콩류, 견과류, 베리류 등의 섭취를 권유한다. 맵고 짜고 얼큰한 맛을 즐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떨떠름한 메뉴들이다. 이처럼 밋밋한 건강식이 2030의 ‘힙’한 습관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유통시장을 강타(경기일보 18일자 8면)하고 있다. 마라탕이나 탕후루처럼 자극적인 음식에 관심을 두던 젊은 소비자들이 건강한 식습관으로 저속노화에 눈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MZ세대의 비정제 탄수화물, 식물성 지방, 식이섬유 등 저속노화 관련 식품 구매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저속노화는 세포 손상과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려는 건강 관리 방식으로 꾸준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 충분한 수면이 주요 요소다. 신품종 가루쌀도 주목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림축산식품부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된 신품종 가루쌀은 밀처럼 바로 빻아 가루로 만들 수 있어 편리하고 효율적인 재료로 꼽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도 소비 촉진을 위해 지난 6월부터 신메뉴 개발과 보급 확산 등에 나서고 있다. 노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예방적 건강관리’.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요긴한 팁으로 부상하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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