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청소년 활동과 빨간약

청소년기는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성장기다. 이 시기에는 의사결정 능력이 향상되며 자아가 형성되고 가치관이 정립되는 다양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또 또래 집단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 사회적, 심리적 발달에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한편 청소년기는 청소년들이 속한 주변 환경 여건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성인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시기에서 나타나는 불균형적인 모습, 청소년기에서 받을 수 있는 작은 영향 등 다양한 요소가 청소년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청소년기본법에 따르면 청소년 활동은 ‘청소년의 균형 있는 성장을 위해 필요한 활동과 이러한 활동을 소재로 하는 수련활동, 교류활동, 문화활동 등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다. 즉, 청소년들이 균형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 활동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그들의 자아를 주체적으로 형성해 나가야 한다. 요즘 사회적 이슈와 안전, 저출생, 예산 등의 이유로 청소년 활동이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마약, 도박, 폭력 등 각종 청소년 문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고 있지만 청소년 활동 축소로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는 중요한 시기에 놓인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청소년 활동을 제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활동 경험의 기회를 제공해 ‘청소년 문제 최소화’ 등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청소년들에게는 명칭이 생소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피부에 상처가 났을 때 만병통치약처럼 바르던 약이 있었다. 이는 붉은 갈색을 띤 살균 소독제인 머큐로크롬을 통칭한 ‘빨간약’이다. 처음에 발랐을 때 다소 따끔한 빨간약을 통해 우리는 상처가 생겼을 때 덧나지 않도록 이를 소독하고 치료했다. 현재 위축돼 있는 청소년 활동이 활발해진다면 이는 타 분야에의 예산 문제를 낳을 수도 있으며 당장의 이슈 해결을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 즉, 청소년 활동의 확대는 우리 사회를 당장은 ‘빨간약’을 발랐을 때와 같이 따끔하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궁극적으로 청소년들이 기대하는 다양한 경험을 충족시키고 청소년들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모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가 줄어드는 ‘소독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즉, 청소년 활동의 부활 및 확대는 청소년을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소독하고 치료하는 빨간약이 될 것이다.

[이슈&경제] 트럼프의 부활, 우리의 대응은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고 했던 국내외 언론들의 예상과는 달리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승리했다. 트럼프는 화려한 부활과 함께 다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됐다. 흔히 ‘구관(舊官)이 명관(名官)’이라고 한다. 이 말은 어떤 직책에 있든 예전의 인물이 현재의 인물보다 상대적으로 나을 때 쓰는 속담이다. 곧 들어서게 될 트럼프의 새 정부는 중간에 바이든 정부를 거치긴 했지만 어찌됐든 트럼프 2기로 명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트럼프는 ‘구관’이다. 이렇게 트럼프 2기를 그래도 익숙한 구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여러 전문가가 저마다 미 대선 결과에 따른 우리나라의 이해득실을 다르게 계산하고 있지만 트럼프 2기에 대한 우려는 공통분모다.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된 이후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크게 요동친 것만 봐도 짐작된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 같다. 2기 트럼프 정부가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지난 1기와 큰 차이가 없다. 이런 점에서는 구관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1기 때보다 더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펼칠 것이고 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에게 큰 불확실성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8대 무역 적자국(2023년 말 기준)이며 올 상반기에는 역대 최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2기 트럼프 정부가 미국의 무역적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에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실제로 트럼프 1기에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계속 감소했다가 집권 말기에야 회복됐다. 트럼프 2기의 통상 무역 정책을 면밀히 살피며 대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산업 중 하나는 주력산업인 반도체다. 한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국 중 하나이며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15% 이상을 차지한다. 경기도에서의 산업적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바이든 정부는 현재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반도체법(Chips Act)’을 통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보호하고 해외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면서 반도체에 대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주력했다. 트럼프는 이 법에 따른 미국 투자 보조금을 축소하고 새로운 협상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아 미국 투자를 계획 중인 국내 기업들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중국 제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도 예상돼 중국 모바일 제품 등에 들어가는 우리의 반도체 수출 물량도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다만 중국의 영향력 감소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해 볼 수는 있다. 다음은 자동차다. 자동차는 우리 수출의 약 17%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 중 약 47%가 대미 수출이다. 우리 자동차 산업에 있어 미국 시장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특히 전기차 분야 대미 수출은 2020년 이후 연평균 약 88% 증가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IRA로 잘 알려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전기차 등 친환경 차에 대한 보조금 혜택, 세액 공제 등을 제공했으나 탄소중립에 반대 입장을 밝혀 온 트럼프는 미국 내 매장량이 상당한 석유, 가스 등의 화석연료를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기차 분야에 대한 투자 위축과 이에 따른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2기의 보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추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이에 따른 어려움도 계속될 것이다. 보호무역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보다 강도 높은 기술혁신으로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노력을 지속해 현재의 어려움을 성장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세상읽기] 팝업스토어, 즐거움 뒤에 소비자 피해는?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팝업스토어는 새롭고 즐거운 여가 공간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팝업 소식을 접하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체험하고, 주변 핫플레이스까지 확장시켜 즐거움을 찾는다. 제한된 기간에만 문을 열고 닫는 팝업스토어는 이들에게 새로운 브랜드를 접하는 정보의 공간이자 친구, 연인들과 함께 자투리 시간을 보내고 SNS에 사진을 올려 다수의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새로운 소비의 놀이터다. 한국에서 팝업스토어가 눈에 띄게 등장한 것은 2010년대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고,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반짝 등장했다 사라지는 팝업스토어는 1~6개월 혹은 1~2주의 짧은 기간에만 운영되기 때문에 그 희소성 가치는 커진다. 때로는 오픈런하고, 반차를 내고, 줄을 서고, 진입하기 힘든 곳일수록 더 큰 관심을 받고, 인테리어를 감상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찍고, 제품을 체험하는 등 소비자들은 잠시나마 환상을 맛보며 경험의 최대치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에 브랜드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한 공간으로 명실공히 현대 소비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듯 신기루와 같은 팝업스토에서 소비자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연다. 소비자는 공정한 거래를 하고 있을까. 팝업스토어는 기존의 오프라인 상점과 같이 상설매장 판매 형식이 아니다. 2024년 한국소비자원이 올해 1분기 팝업스토어 관련 소비자상담 불만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상품 교환, 환불 불가, 품질 하자, 애프터서비스(AS) 불만, 계약 불이행 등과 같은 소비자 피해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인기 한정판 굿즈를 구매한 후 제품의 하자로 인한 교환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매장 내에 교환·환불 규정 안내가 없거나 판매 직원이 이를 구두로 설명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또 수입 상품의 한글 표시가 없거나(어린이제품법), 식품·용기에 식품용 정보표기 사항이 없는 경우(식품표시광고법)도 있다. 아이돌과의 영상통화에 수십만원을 지불한 한 소비자는 현장에서 돌연 취소되는 계약불이행을 경험했지만 이를 보상받기는 쉽지 않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화 등의 판매를 업으로 하는 자가 방문을 하는 방법으로 3개월 미만의 영업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권유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소비자는 14일 이내에 그 계약에 관한 청약 철회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정보 처리자는 개인정보의 수집 목적, 보유 기간 등을 소비자에게 고지하고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되면 파기해야 한다. 이러한 부분들은 소비자에게 잘 고지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가 반품한 제품 훼손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제품 개봉 과정을 촬영하도록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는데 이는 모두 약관상 소비자에게 불리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팝업스토어에서 행해지는 거래조건이 소비자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거래조건의 개선, 제품표시정보에 대한 강화, 개인정보 수집이나 초상권 사용 동의 등의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특별한 재미와 경험을 선사하는 이벤트성의 팝업스토어가 젊은 소비자층에게 핫한 소비 공간이지만 공정한 거래를 위한 법적 근거가 존재함을 소비자들이 스스로 인식하고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사전에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기만평] 부쩍 바빠지신 분…

[사설] ‘움직이면 죽는다’-비명계 짓누르는 이재명 공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특별한 변화는 없다. 16일에는 대정부 장외집회에 참석했고 연설했다. 민주당 최고위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18일에는 ‘길위에 김대중’ 시사회에도 참석했다. 민주당은 단일대오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비명·반명계를 향한 강도 높은 경고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최민희 의원의 16일 발언이다. “움직이면 죽는다. 제가 당원과 함께 죽일 것이다.” 당은 ‘소신대로 발언할 수 있다’며 두둔한다. 민주당의 현재 모습이다. 비명계의 움직임 보도가 억지스럽다. 주목받는 비명계 모임으로 초일회가 있다. 수도권 전직 의원 등이 주축된 모임이다. 12월 특강 강사로 김부겸 전 총리가 초청됐다고 밝혔다. 이 대표의 선거법 1심 공판이 나온 직후 발표다. 김 전 총리는 이른바 ‘3김·3총’의 한 사람이다. 언론은 ‘포스트 이재명’과 연결지어 해석했다. 하지만 이 특강은 사전에 예정된 일정이다. ‘김부겸-김동연-김경수’로 이어지는 수순이 있었다. 김 전 총리도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김동연 경기지사다. ‘3김·3총’ 가운데 유일한 현역이다. 총선 이후 친문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교류를 이어왔다. 이재명 25만원법 반대 등 소신도 피력해 왔다. 15일 판결 이후 가장 큰 주목을 끌었다. 이런 그의 첫 일성은 ‘재판부에 대한 유감 표명’이다. 또 다른 비명계 주자 박용진 의원의 정치 재개 소식도 들린다. 내년 1월부터 정치 포럼을 발족한다고 전해졌다. 이 역시 개인적 정치 일정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비명의 내부까지 조용한 것은 아니다. 경기도 일부에서 판결에 즈음한 성명서 발표 움직임이 있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직격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함께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인천에서도 원외를 중심으로 하는 술렁거림이 감지된다. 역시 동력을 받지 못해 수면 밑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비명계 한 인사는 이를 ‘이재명 공포’로 설명했다. ‘모두가 이재명 대표 체제를 무서워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럴 만한 반전 역사가 있다. 2023년 9월21일 체포동의안 투표가 있었다. 국회에서 이뤄진 이재명 대표 구속 표결이다. 찬성 149표, 반대 136표로 가결됐다. 민주당의 이탈표가 최소 39표였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그 후 ‘반란표 39’로 추정된 의원들이 공천 학살을 당했다. 그중 상당수가 지금 비명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때 이 대표가 ‘이재명은 죽지 않는다’고 했고, 최 의원은 ‘움직이면 죽이겠다’고 했다.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발언이다. 물론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사설] ‘그냥 쉬는’ 청년 42만 시대... 인천 남동구의 알찬 지원 돋보인다

‘그냥 쉬는’ 청년이 계속 늘고 있다. 구직 활동도 취업 준비도 포기한 구직단념 청년이다. 구직을 위한 교육, 훈련 등도 거부한다.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다. 2019년 처음으로 30만명을 넘어선 이후 줄곧 증가세다. 지난달 고용통계에서 41만8천명으로 또 늘었다. 청년도전지원사업은 ‘그냥 쉬는’ 청년들을 위한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지자체들의 신청을 받아 지원하는 공모사업이다. 최근 6개월 동안 취업하지 못했거나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은 청년들이 대상이다. 구직 의욕을 고취하고 노동시장으로 이끌어내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참여 청년들에게는 참여수당 외에 이수·취업 인센티브도 준다. 지자체에도 사업 운영비와 인센티브를 지원한다. 취업 실패, 경력단절, 자신감 부족 등으로 의욕을 잃은 청년들이다. 맞춤형 상담이나 생활관리, 동기 부여, 자신감 회복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인천에서도 6개 지자체가 참여해 있다. 인천시와 남동·부평·계양·중·동구 등이다. 남동구 외에는 모두 외부 기관에 위탁해 운영한다. 인천 남동구가 ‘그냥 쉬는’ 청년 지원 사업에서 돋보이는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지난 9월 시작한 ‘2024 남동구 청년도전지원사업’이다. 참여 청년 72명 중 67명(93%)이 과정을 완전히 마쳤다. 남동구는 그간 72명의 구직 단념 청년들에게 최대 25주 200시간의 맞춤형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남동구는 이 사업에서 지역 자원도 적절히 활용했다. 지역 내 남동국가산업단지다. 이곳 기업 5곳을 직접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구직 단념 청년들이 이들 기업의 현장 재직자들을 만나는 장을 마련했다. 해당 업종과 다양한 직무 등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남동구는 인천에서는 유일하게 이 사업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았다. 직접 운영과 체계적 관리로 프로그램 이수율을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최종 수료생 67명 중 19명이 취업과 창업에 성공했다. 10명은 국민취업제도 등에 참여해 직업교육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한다. 남동구는 앞으로도 사후관리를 이어갈 예정이다. 국민취업제도나 고용24 홈페이지를 통한 구직 등록, 고용서비스 안내 등이다. ‘그냥 쉬는’ 청년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무직 상태나 경제적 자립의 좌절은 사회적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여기서 청년도전지원사업의 확대 필요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희망을 접은 청년들을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들 청년에게는 끝까지 이수하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인천 남동구의 적극적인 청년 지원 사업이 돋보이는 이유다.

[지지대] 소방관

2001년 3월4일, 서울 홍제동의 다세대주택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났다. 집주인의 아들이 술에 취한 상태로 어머니와 다투고 홧김에 불을 지른 것이다. 화재는 골목길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소방차와 구조대원들의 접근이 어려웠다. 소방관들은 긴 소방호스를 끌고 뛰어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단계에 주민 7명을 무사히 대피시켰지만, “아들이 집 안에 있다”는 한 어머니의 말에 건물로 들어갔다. 그런데 노후한 건물이 무너져 구조대원 10명이 매몰됐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다른 구조대원과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 200여명이 구조 작업을 벌였다. 안타깝게도 6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홍제동 화재 참사’를 바탕으로 영화 ‘소방관’이 제작돼 12월4일 개봉된다. 살리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가 마지막 현장인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한 목표하에 활동하는 상황을 리얼하게 담았다. 소방관의 일은 용기와 헌신이 필요하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타인의 목숨을 지켜내는 일은 숭고하다. 지난 17일 안산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소방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줬다. 오전 3시 6층짜리 모텔 상가 화재로 대형참사가 날 뻔했는데 현장 소방관 팀장의 기지로 전원 구조됐다. 당시 이 건물 5~6층 모텔에는 숙박객이 수십명 묵고 있었다. 화재 신고를 받은 소방 지휘부는 대형 인명피해 가능성에 대응2단계를 발령해 인력 233명, 장비 82대를 투입했다. 투숙객들은 창문 밖으로 “살려 달라”고 외쳤으나 강한 열기에 접근이 어려웠다. 이때 안산소방서 119구조대 박홍규(소방위) 3팀장이 손도끼로 복도 창을 깨 열기와 연기를 빼며 진입하라고 지시했다. 대원들은 10번 이상 건물을 오르내리며 49명을 구조했다. 공무원 중 가장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 소방관이다. 남들이 살기 위해 뛰쳐나오는 불길 속으로 거침없이 들어간다. 수백도의 뜨거운 열기와 연기가 가득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거나 화재를 진압하다 목숨을 잃는 이들도 많다. 지난 10년간 화재 현장에서 숨진 소방관이 4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소방관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경제적·사회적·정신적 보답과 예우가 있어야 한다. 소방관이 존경받는 나라를 보고 싶다.

[인천시론] 독도

지난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독도수호대’라는 민간단체가 2000년 지정해 기념하게 된 날이다. 이날이 ‘독도의 날’이 된 것은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0년 10월25일 고종이 ‘칙령 제 41호’를 공포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혔기 때문이다. 이 칙령은 “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은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 나온 석도가 바로 독도다. 독도는 그 이전까지 우리 정부에게서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름도 분명치 않았다. ‘석도(石島)’는 ‘돌섬’이라는 뜻이니, 독도가 온통 돌로 된 섬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석도’는 대한제국 정부가 이때 새로 지어 붙인 이름일 뿐이며,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이 섬을 ‘독섬’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때 울릉도 주민들의 대다수가 전라도 출신이었는데, 전라도 사투리로는 ‘돌(石)’을 ‘독’이라 했기 때문이다. 울릉도에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된 것은 ‘공도(空島) 정책’과 관련이 있다. 섬을 비워 놓는 이 정책은 신라시대부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도 극성을 부린 왜구(倭寇)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들은 섬마다 돌아다니며 약탈을 하고, 우리 백성들을 마구 잡아갔다. 그런데도 국가가 이를 막을 능력이 안 되니 아예 섬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섬을 비우자 일본인들이 대신 섬에 들어와 소중한 자원을 마구 가져가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결국 공도 정책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1880년대에 들어서면 울릉도에도 육지 주민들을 이주시킨다. 이 중 80% 정도가 전라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조사돼 있다. ‘獨島(독도)’라는 지금의 이름이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06년 3월28일,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낸 보고서에서다. 심 군수는 그 전날 만난 일본의 독도 조사단을 통해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키려 함을 알았다. 이에 우리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보내면서 ‘獨島’라는 이름을 처음 쓴다. 그는 서울 사람이었지만 군수였으니 주민들이 말하는 ‘독섬’의 뜻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학(漢學)을 많이 공부했을 그로서는 독도가 먼바다에 외롭게(獨) 서 있는 상황을 생각하고 ‘獨島’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石島’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보다 한결 문학적인 표현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연을 거쳐 독도는 ‘돌섬’에서 ‘외로운 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독도는 그만큼 더욱 많은 관심과 연구와 활용이 필요한 섬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고 있는가. 꽤 오래전에 한 신문에서 본 한일 독도 회담 기사가 기억에 무겁게 남아 있다. 일본이 ‘남의 땅’인 독도의 해저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 상황까지도 소상하게 파악한 내용을 포함해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을 정리해 나온 것을 본 기자가 그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우리의 자료를 보며 정말 착잡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우리는 거기서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까. 이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만 부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경기시론]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정치’

딸을 찾아 달라며 25년 동안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걸고 다니는 등 ‘딸 찾기’에 모든 것을 바쳤던 송길용씨가 지난 10월 평택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뉴스는 참으로 가슴을 찡하게 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숨지던 날도 현수막을 걸기 위해 1t 트럭을 타고 나갔다가 지나가던 덤프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여고 2학년인 어느 날 학교에 간다며 나간 딸이 25년째 돌아오지 않고 있는데 아버지 송씨는 그로부터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전국에 전단 돌리기, 현수막 걸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25년 동안 뿌린 전단이 1천만장, 현수막이 1만장으로 재산도 다 날려 단칸방에 기초수급자로 전락했는가 하면 화병을 앓던 부인마저 사별해야 했다. TV 등 언론매체에 등장해 눈물로 딸을 찾아 달라며 호소했고 경찰도 발 벗고 나섰지만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리고 그 역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생전에 TV에 출연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눈물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송씨뿐이겠는가. 어떤 사람은 2020년 딸을 성폭행하는 현장에서 범인을 잡았으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아버지는 너무 분해 국민 청원을 제기했다. 28만여명이 그의 청원에 참여했는데도 정부 답변은 사법부에 관여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렇게 다섯 번이나 청원을 했으나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2만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눈물은 또 어떠한가. 정치권이 정쟁으로 세월을 다 보내는 동안 전국 여기저기에서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다행히 국회가 뒤늦게 전세사기 특별법을 통과시켰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의 눈물을 생각하는 데 너무 소홀하다. 6·25전쟁 당시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중 생존해 있는 분이 500여명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아오지탄광 등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누구는 탈북에 성공도 했지만 아직도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렇게 생존해 있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 들어갔다. 당장 중환자를 업고 병원을 찾았으나 의료대란으로 의사가 없어 뺑뺑이를 돌다 지쳐 버린 가족의 눈물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느님’이라는 성경 표현이 있지만 세상의 정치도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아닐까. 인도 독립의 아버지 간디도 ‘정치란 백성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이라 했다. 정쟁으로 날이 밝고, 정쟁으로 해가 지는 우리 정치인들 가슴에 심어 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국민을 생각하며....

[천자춘추] ‘짜가’가 판친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도무지 구분이 안 간다. 짝퉁 가방, 짝퉁 시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유명 브랜드 상품을 복제해 판매하면서 시장을 교란하고 구매자를 기만하는 상품 위조 범죄자들이 문제인 줄 알았더니 이제는 물건을 넘어 사람을 복제해 돈벌이에, 범죄에 이용하고 있다. 딥페이크 이야기다. 수업 중인 교사를 촬영해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든 후 선생 능욕, 도촬 등으로 해시태그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한 고등학생, 여학생의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 후 단체 채팅방에 공유한 대학생들, 여군을 군수품으로 칭하며 딥페이크 사진을 유포하고 능욕 메시지를 보낸 현역 군인들까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심각한 딥페이크 범죄들이 보도되고 있다. 날로 더해가는 딥페이크의 심각성에 우리 사회가 철퇴를 들었다. 지난 9월에는 성적 허위 영상물을 편집, 반포할 경우 법정형이 5년에서 7년으로 강화됐으며 지난 14일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위장 수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처벌 및 규제를 강화해 딥페이크를 예방하겠다는 의지에 적극 동의하지만 법적 처벌 강화만으로 딥페이크 범죄가 근절될 수 있을까 고심하게 된다. 법적 처벌은 사후 대책이다. 딥페이크 범죄가 발견되면 강화된 법으로 처벌 가능하다. 그러나 발견되기 전까지는 전문가의 기술적 검증이 없으면 찾기 어렵고 이마저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인지해야 검증작업에 착수할 수 있다. 상당수의 피해자들은 본인이 피해자인지도 모른 채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게다가 기술의 발전으로 전문가가 아니어도 손쉽게 딥페이크가 가능하게 됐다. 딥페이크 합성물이 실제인지 가짜인지 밝혀내는 것은 전문가만이 할 수 있지만 이를 만드는 것은 비전문가도 가능하다. 게다가 일반인은 이것이 진짜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다. 누구나 범죄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처럼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사회, 기술이 인간을 속이는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바로 기술에는 없으나 인간에게만 있는 ‘양심’으로 가능하다. 무엇이 떳떳하고 무엇이 떳떳하지 않은가. 일상적으로 매 순간 나와 우리를 지키는 힘은 제도가 아닌 개인의 양심, 건강한 가치관에서 발현할 수 있다. 딥페이크 예방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개인이 스스로 제대로 판단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CSE,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은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만이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과 이해,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술과 태도 등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여 가르치는 교육이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작금의 성문화를 바로잡고 일상적으로 개인이 건강한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전인적·포괄적 성교육을 실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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