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05년 만의 귀환

“수암, 그는 나의 사촌이다. 나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그와 놀았다. 나와 수암은 재미있고 신비한 일을 좋아했다. 풍뎅이를 잡으면 넓고 반들반들한 돌 위에 거꾸로 뉘어 오랫동안 날개를 치며 춤추게 만들었다.” 장편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청년 시절 그 격동의 세월을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낯설겠지만 이 작품의 저자는 이미륵이다. 물론 필명이고 본명은 이의경(1899~1950)으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다. 소설의 주인공은 저자 자신이다. 어려선 한학을 배웠고 어른이 된 후 중국과 유럽에 대한 꿈을 키워 가다 성장을 위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이의경 지사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온다. 조국을 떠난 지 105년 만이다. 국가보훈부는 이 지사의 유해가 16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고 17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고 밝혔다. 그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 중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일제의 수배를 피해 압록강을 건너 중국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일을 도왔다. 1920년 프랑스를 거쳐 독일로 간 뒤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의학, 뮌헨대에서 철학 및 동물학 등을 전공했다. 1927년 뮌헨대 재학 중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피압박 민족 결의대회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해 ‘한국의 문제’라는 소책자 초안을 작성하고 결의문을 독일어 등으로 번역해 세계에 독립 의지를 알렸다. 이 지사의 저서가 발간된 시점은 1946년이다. 출판 후 독일 교과서에 실렸다. 유럽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1950년 3월20일 위암으로 별세해 독일 바이에른주 그래펠핑 신묘지에 안장됐다. 국외 안장 독립유공자 유해 봉환은 1946년 백범 김구 선생이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를 모셔 온 게 처음이었다. 이 지사의 봉환은 149번째다. 가슴이 뭉클하다.

[천자춘추] 진료비 확인 제도

최근 행정안전부 집계에 따르면 10월 말 기준으로 총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대인 19.82%, 1천15만명에 달했다. 60대 김현철(가명)씨는 젊었을 때 체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님에도 밤새워 일해도 거뜬하게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많이 사용한 근육과 관절에 의료적 손길이 필요하게 됐다. 나이가 들며 병원을 자주 찾게 되니 팍팍한 살림에 의료비 지출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진료비가 적정한지 궁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심사평가원에서 운영하는 서비스 중 내가 낸 진료비가 적정한지 확인할 수 있는 ‘요양급여 대상여부 확인(진료비 확인)’제도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요양급여 대상여부 확인제도는 국민이 병·의원에서 진료를 받고 지불한 비용 중 전액본인부담금과 비급여로 부담한 진료비가 법령에서 정한 기준에 맞게 부담됐는지 확인해 더 많이 낸 비용이 있다면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권리구제제도다. 확인 신청은 심사평가원 누리집과 모바일로 작성된 확인요청서 및 진료비 계산서(영수증) 등 필요한 서류를 첨부해 제출하면 된다. 신청 자격은 진료받은 사람과 가족, 법정대리인 등에게 주어진다. 확인신청이 접수되면 심사평가원은 병·의원에 비급여 관련 진료기록부, 검사결과지 등 자료를 요청해 급여 대상 여부를 확인한다. 심사 후 결정된 결과에 대해서는 요청자와 병·의원에 안내한다. 확인 결과가 진료비 환불로 결정되면 병·의원에서 자체적으로 환불하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급 금액에서 공제 처리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해 확인 요청자에게 환불금을 지급한다. 확인 결과가 환불로 결정될 수도 있지만 정당하게 부담한 것으로 결정될 수도 있다. 확인 결과에 대해서는 이의신청 절차를 밟을 수 있으며 확인 요청자와 병·의원 모두 신청 가능하다. 아울러 심사평가원 누리집에서는 진료비의 환불 가능성을 사전에 점검해 볼 수 있는 ‘진료비 사전 확인’ 서비스도 참고용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한 진료비 확인 제도는 국민에게 의료정보에 대한 소비자의 알 권리 및 의료 권익을 보호하며 병·의원에는 자발적인 비급여 행태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앞으로 내가 낸 진료비가 적정한지 궁금하다면 진료비 확인 제도를 활용해 보기 바란다.

[세상읽기] ‘유보통합’ 미래를 위한 핵심 정책

교육부와 복지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유보통합’은 유아교육(유치원)과 보육(어린이집)을 하나의 체계로 합쳐 모든 아이가 질 높은 교육과 보육을 공평하게 받을 수 있는 양질의 아이 돌봄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이다. 이는 육아 부담에 의한 저출산 문제 해결 대책뿐만 아니라 존속 가능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교육정책의 변화를 의미한다.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각각 다른 법적 근거와 관리 체계에 따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부모들은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두고도 법령, 교육과정, 시설 기준에서 혼란을 겪게 되는데 유보통합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모든 영유아가 안정적인 교육환경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이 있다. 유보통합교육기관 체제를 통해 아이가 일관성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양육 환경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도는 현실적인 양육의 어려움으로 출산을 기피하려는 부모들에게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유보통합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들이 많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서로 다른 운영 체계와 기준을 조정해 재정과 관리 주체를 일원화하고 필요한 재원 충당 계획 및 집행, 그리고 돌봄에 필요한 통합교육기관의 정의와 구성, 필요 교원의 체계와 교육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조적 구체성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 유보통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실제 업무 이관과 현장 적용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예산과 인력 배치를 포함한 계획에는 교육 및 보육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지원책도 요구된다. 특히 유보통합 과정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법적·제도적 차이로 인해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 유치원은 교육기본법에 따라 정식 교육기관으로 간주해 교육부의 관리를 받는 반면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에 따라 보육 기관으로 분류돼 보건복지부의 관리를 받아 왔다. 이에 따라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 간의 자격 기준, 교육철학, 임금 및 처우 체계에 차이가 존재하며 통합 과정에서 의견차로 인한 불만이나 이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유보통합의 속도 조절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교육, 복지부는 충분히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유지해 온 현재의 유아교육, 보육 체계라는 거대한 사회는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급하게 추진한다면 이해관계가 다른 현장에서는 혼란을 초래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불신을 유발할 수 있다. 사회적 공감대 확보를 위한 신중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유보통합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교육·보육 서비스 통합을 위한 다양한 논의와 함께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 교사들의 자격과 처우를 존중하면서도 일관된 기준을 마련하는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며 국가 차원에서의 장기적 재정 확보와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보통합은 저출산 문제 해결을 넘어 우리 사회의 모든 아이가 포용적 출발선에서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사회적 투자다.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세계에 우뚝 선 미래 지향적 공동체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경기만평] 협박인가.. 협상인가...?

[사설] 삼성·현대 다 있는 화성시, 과학특별시를 목표하다

화성시 남양읍에 현대차 연구소가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자동차 연구소다. 우정읍에는 기아 전기차 전용 공장이 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29년 만에 짓는 국내 공장이다. 정부가 화성시에 자동차 클러스터를 약속했다. 반월동에는 삼성전자 화성 캠퍼스가 있다. 4만1천명이 메모리, 파운드리 산업을 책임지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우리 산업의 양대 축이다. 이 두 산업의 연구 또는 생산이 화성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 이런 지자체는 없다. 혁신 산업 융합에 대한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내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200~300개다. 이 융합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레벨 3 이상 자율주행차는 2천개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수많은 반도체와 자동차 제조사들이 뒤를 받치고 있다. 현재 등록된 화성지역 기업만 2만7천607개다. 화성시의 부(富)는 이미 경쟁 지자체가 없다. 지역내총생산 전국 1위, 재정자립도 전국 1위다. 2025년 1월이면 특례시가 된다. 그 목표를 내놨다. ‘과학기술인재특별시로 가겠다.’ 정명근 화성시장이 8일 발표한 미래 비전이다. 첨단 과학기술의 핵심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4대 과학기술원 융합거점 구축, 과학고·마이스터고 설립, AI미래도시 교육 확대를 3대 정책으로 내놨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K-미래차밸리 조성 계획도 있다. 앞서의 여건을 기본으로 그려낸 청사진이다. 화성시가 해야 할 한국 산업의 책임이기도 하다. 적절하다. 100만 특례시가 세울 법한 웅대한 목표다. 물론 쉽게 이뤄질 건 아니다. 과학특별시라는 걸 우리는 본 적 없다. 단순한 기업 집중과는 다른 개념이다. 수치상 생산성과도 구분되는 개념이다. 100만 인구만으로는 더 설명이 안 된다. 고급 두뇌 인재들로 채워진 도시를 말한다. 비슷한 모습이 판교에 있다. 기술 집약형 기업들이 총망라돼 있다. 간단한 생활과학에서 첨단 우주 과학까지 광범위하다. 대한민국 최고 두뇌들로 거리가 넘쳐난다. 생산은 물론 소비의 주체도 대부분 이들이다. 이런 도시의 완성된 모습을 만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급 두뇌에 대한 접근성이 필요하다. 교통, 교육, 주거, 여가 등이 모두 필요 조건이다. 지금은 기업 출퇴근 교통정체가 만성이다. 넓혀 줘야 한다. 지금은 학교, 학원이 부족해 전입을 꺼린다. 맞춰 줘야 한다. 지금은 수준 이하 도심 환경이 불만이다. 개선해 줘야 한다. 도로 행정, 교육 행정, 도시 행정의 영역이다. 전부 화성시 행정이 풀어 가야 한다. 당장 시작해야 할 일들도 곳곳에 있다. 화성특례시의 과학특별시 꿈을 응원한다. 옳고, 적절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다. 이에 따른 세세한 밑그림이 나오면 더 좋겠다.

[사설] 인천시 재정사업 ‘낙제점’... 외부 평가의뢰는 잘했다

인천시의 재정사업이 4개 중 1개꼴로 낙제점을 받았다. 외부 전문기관의 성과평가 결과다. 시민 세금을 들이는 각 부서의 사업들이 너무 엉성해서 소기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이런 사업들은 시간을 지체할수록 예산만 낭비할 것이 걱정이다. 인천시는 지난 3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 ‘2024년 인천시 주요 재정사업 성과 평가’를 맡겼다. 5억원 이상 투자사업과 1억원 이상 대행사업, 1천만원 이상 행사성 사업 등이다. 전체 사업비가 1천847억원 규모다. 6개월간의 평가 결과가 최근 나왔다. 평가를 의뢰한 사업 221개 중 56개(26.5%)가 ‘미흡’ 이하의 낙제점을 받았다. ‘매우 미흡’을 받은 사업도 28개나 됐다. 지난해부터 추진한 인천시 신청사 건립 사업(58억여원)도 ‘매우 미흡’을 받았다. 사업을 추진하면서 최초계획서와 예산요구서만 마련하고 연도별 사업계획서도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초계획서도 구체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는 등 부실했다. 루원복합청사 건립 지원 사업(174억원)도 예산 집행률이 저조하고 중간점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계양권역 버스 공영차고지 조성 사업(83억원)과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도로개설사업도 ‘매우 미흡’이었다. 중봉대로~봉수대로 도로 개설공사나 검단15호공원 조성 사업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신용보증재단의 특례보증 사업인 일자리창출, 청년창업일자리, 골목상권 활성화, 소상공인 지원 등도 낙제점을 받았다. 예산 집행률이 저조하고 계획 대비 성과가 부진해서다. 인천시는 이번 성과 평가를 내년 예산 편성에 반영한다. ‘매우 미흡’의 5개 사업(사업비 16억9천만원)은 아예 내년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 검단산업단지 디자인 에코거리 조성사업, 정부혁신박람회 참가, 지하도 상가 활성화 행사 등이다. 도시재생대학 운영 사업이나 시민공원 사진가 품평회 및 사진전 개최, 예술교육 아카데미 운영 사업 등도 예산 전액 삭감이다. 사업 이름만 봐도 과연 꼭 필요한 재정사업들인가 싶다. 이번 평가는 인천시가 처음으로 시도한 외부 평가다. 그간에는 자체적으로 평가해 왔다. 따라서 평가 대상에 올린 사업도, 사업비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의 평가 결과는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인천시의 전체 재정사업들을 외부 전문평가에 맡긴다면 어떤 점수가 나올까. 원점에서부터 재평가해 사업들의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시급해 보인다. 한 가지 고무적인 측면도 있다. 그간 자화자찬식의 사업 평가를 객관적 외부 평가에 맡긴 점이다. 시민 세금을 제 주머닛돈처럼 여기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다.

[지지대] 인류무형유산 ‘한국의 장(醬)’

시골풍경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장독대다. 집집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담아 놓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인 모습이 정겹다. 한국의 장(醬)은 밥, 김치와 함께 한국 음식문화의 핵심이다. 한국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장은 그 자체로 별미이자 최고의 조미료다. 가정마다 장맛이나 만드는 방식이 달라 한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기도 하다. 장은 가을에 수확한 콩으로 동짓달 말에 메주를 쑤고, 메주에 발효균을 피워 천일염으로 간을 한 물을 넣어 발효시키는 과정으로 만든다. 메주가 소금물과 만나 우려낸 것은 간장이 되고, 건져낸 메주는 된장이 된다. 발효가 미생물의 성장과 변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장소·시간·방법에 따라 장맛이 미묘하게 달라진다. 장 담그기는 고대부터 전승돼온 전통 음식문화 중 하나로,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재료를 준비해 장을 만드는 전반적인 과정을 아우른다. 장을 만들어 먹은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장 보관 창고인 장고(醬庫)를 두고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관리할 정도로 장을 중시했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의 장은 독특하다는 평가다.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중국, 일본과는 제조법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다음 해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기다림과 정성으로 빚는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최근 평가기구 측으로부터 ‘등재’ 판단을 받았다. 이번에 최종 결정되면 한국의 23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이다. 그런데 요즘은 장독 하나 있는 집을 찾기 힘들다. 집마다 각자의 장을 담그는 문화가 사라졌다. 가정에서 장을 담그다가 공장 제조 장류를 사 먹는 시대가 됐고, 이제는 떡볶이 소스 등 간편 제품을 소비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아 장류 소비량이 크게 감소했다. 장 담그기 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건 기쁜 일인데, 전통 장 문화가 사라져 가 안타깝다.

[문화산책] 애기봉전망대에서 스타벅스를!

10월 마지막 날, ‘스타벅스, 11월 김포 애기봉전망대 입점’이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는 순간 ‘애기봉’과 ‘스타벅스’의 이질감에 살짝 당혹스러웠던 것도 잠시 ‘애기봉에서 스타벅스라니’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애기봉이 어떤 곳인가. 북한 개풍면 해물선전마을과의 거리가 불과 1.4㎞로 남한에서 가장 가깝게 북한을 볼 수 있는 곳, 게다가 일반 안보관광지에서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으로 재탄생했다고 해도 여전히 해병대의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런 곳에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커피 전문점이 입점한다니 꽤 놀라운 소식이다. 인천 교동도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접경지역에는 북한을 조망할 수 있는 꽤 많은 안보관광지가 있다. 교동도의 망향대, 인천 강화의 평화전망대, 파주 오두산전망대와 도라산전망대, 연천의 상승전망대, 태풍전망대, 열쇠전망대, 철원 통일 전망대와 소이산전망대, 양구 을지전망대, 화천 백암산 케이블카전망대,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들 중 일부는 군부대 내 시설로 우리나라의 분단 현실을 더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고 어떤 곳은 이미 관광지화돼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됐다(특히 철원평야와 김일성고지 등 이색적인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이산전망대는 노동당사 등 근대문화재 답사를 묶어 여행하기에 좋아 꼭 한번 가볼 것을 추천한다). 애기봉전망대는 이런 안보관광지 중에서도 북한을 가장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과거 애기봉전망대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상에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점등식을 하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 뉴스에서 본 애기봉전망대는 낡고 조금은 무서운 안보관광지였는데 한참 후 애기봉전망대를 갔을 때 조강과 북한의 전경이 너무 아름다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아마 애기봉이 보유한 아름다움을 느낀 게 나뿐은 아니었는지 2021년 애기봉전망대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다양한 문화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본떠 만든 생태탐방로를 통해 아름다운 조강과 북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올 8월부터는 매주 마지막 주 토요일 조강의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며 문화체험을 즐길 수 있는 야간개장 프로그램을 특화해 운영 중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평범한 일상 중에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빛과 음악 소리들을 북한의 주민들도 보고 들을 수 있을까. 조심스레 그들에게도 일상의 소소하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전해지기를 소망해본다. 몇 해전 인기를 끈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선 우연한 계기에 정을 쌓고 헤어진 남북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남으로 돌아온 여주인공은 자주 북한이 보이는 산에 올라 한참 북쪽을 바라보다 오고, 북쪽의 사람들은 가깝지만 닿을 수 없는 남쪽을 그리워하고. 애기봉을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그 드라마 속 상황들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애기봉이나 문수산 정상에선 서울의 북한산보다 개성의 송악산이 더 가깝게 느껴지니까. 애기봉에 들어서는 스타벅스는 10석 내외의 작은 규모라고 한다. 그러나 어쩜 전 세계 약 3만5천개의 점포 중 스토리텔링에 있어서는 가장 특별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스타벅스 기념품과 이벤트도 기획된다고 하니 스타벅스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애기봉 평화생태공원을 찾았으면 좋겠다. 남북의 갈등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이때 그 누구도 서로의 평범한 일상이 깨지는 걸 원하지 않고 있음을 되새기며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다시 한번 다짐하는 장소가 되기를 기원한다.

[인천시론] 떠도는 ‘제물포 혼’

엊그제 주말, 모처럼 재즈 뮤지컬을 관람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예술공간 ‘트라이보울’ 무대에 올려진 ‘제물포 블루스’는 온통 제물포로 도배질 된 듯했다. 공연 안내 팸플릿에 ‘1926년 제물포에서 울려 퍼진 재즈의 선율로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다’고 적혀 있었다. 300석 관람석을 가득 메운 공연장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보는 듯 옛 TV 브라운관 4대와 색소폰, 기타, 드럼 같은 악기류, 1920년대 인력거를 조합한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TV에선 3D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뮤지컬 주제곡을 들려주며 관객들에게 1920년대 제물포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 장치였다. 공연장 또한 온통 제물포로 가득했다.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재즈 기타리스트 주인공은 미국 뉴욕에서 만난 흑인 재즈 색소포니스트와 함께 뿌리를 찾아 고향 제물포로 돌아온다. 이들은 제물포구락부에서 재즈공연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선다. 낮엔 이국적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이자 밤엔 독립운동의 비밀기지로 변하는 제물포항(인천항) 일대에서 음악과 사랑, 자유를 향한 이야기다. 제물포의 중화요리점(공화춘) 주방장, 대불호텔의 러시아인 바리스타, 용동권번에서 일하는 3명의 기생, 제물포구락부 주인이자 마술사,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혼혈 여성 재즈가수들이 은밀히 독립운동을 한다. 일본 헌병 나카무라가 이들을 추적한다. 등장인물들이 코믹스러운 연기와 대사를 선보이자 관람객들이 박장대소했다. 무대 뒤쪽 6명의 재즈 뮤지션들은 ‘제물포 아리랑’ 등을 즉석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일본 헌병을 따돌리고 독립자금을 성공적으로 전달한 마지막 장면에 이어 색소폰 드럼 기타 베이스 연주가 각각 이뤄지자 공연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멋진 피날레였다. 제물포에 흠뻑 젖어 들게 만든 수작이었다. 작품 제작을 총괄한 예술감독은 인천에서 600년간 살아온 집안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뉴욕 아리랑’, 로드 뮤지컬 ‘예그리나(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제물포 야상곡’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10년 넘게 제물포와 씨름하고 있다. MZ세대인 예술감독에게 제물포를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미국 보스턴음악대학에 유학할 때 시내를 둘러보면서 독립선언 광장, 독립전쟁 기념탑 등 미국 최초 역사 흔적이 서린 16곳 유적지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제물포구락부, 월미도 조탕 등 근대역사를 간직한 ‘코리안 퍼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나서 제물포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제물포 사랑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인천시의 역점 사업인 ‘제물포 르네상스’에선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인천항 8부두 내 시민 개방구역의 옛 창고를 개축한 상상플랫폼은 정체불명의 관광시설로 둔갑되고 있다. 최근 시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1, 8부두는 항만재개발 형식으로 진행돼 역사 흔적을 찾는 노력은 온데간데없다. 국내 최대 근대건축자산들이 동시대 정신과 호흡을 함께 못한 채 썩고 있어 안타깝다.

[경기시론]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한반도의 미래

지난 5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 만날 태세이고, 거기다 우리에게 방위비 부담을 엄청나게 지우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것만 보면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크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 같다. 다만 중요한 것은 변하는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일 것이다. 이미 세계는 미국 주도의 패권 체제가 다극 패권으로 전환되는 격변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미국은 여전히 제일의 패권국가이긴 하나 노쇠해 가고 있고 주위에 만만치 않은 세력들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미중 패권 대결에 이어 최근에 세계 패권의 한 축으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미국 중심의 G7 국가들보다 중국과 러시아 중심의 브릭스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브릭스는 정치적으로는 러시아가 주도하고 있는데 처음 5개국에서 시작해 20개국을 넘어 조만간 30여개국으로까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과 G7 국가들은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의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 G7 국가들은 이러한 러시아의 부상을 반길 리 만무하다. 우크라이나전쟁은 이러한 변화 흐름에서 발생한 사태라 할 것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를 프록시로 러시아와 패권 대결을 하는 전쟁을 하고 있지만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미국은 어떤 형태로든 러시아와 타협하고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군 파병 관련 이슈가 크게 문제되고 있으나 이는 미국과 러시아의 물밑 대화 및 합동 통제 속에 있기에 그리 염려할 건 아니라고 본다. 한편 미국은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를 대적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중국이라는 강력한 패권 경쟁 국가를 상대해 왔다. 더군다나 브릭스가 커져 브릭스 내 중국의 경제적 패권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미국으로서는 중국 위안화의 부상에 대응해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러시아와 협력해야 하는 지점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브릭스 내 중국의 세력 확대를 막고자 여러 국가의 브릭스 가입을 잠시 중단시키고 있으며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에 손들어 주기까지 하고 있다. 이는 실제 미중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북한조차 러시아의 도움으로 브릭스 파트너 국가가 되고 나중에 정식으로 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북한 경제는 러시아의 다양한 지원과 브릭스 내 경제 교류로 완전히 살아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김정은으로 하여금 적대적 두 개 국가론을 주장하게 한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對)동아시아 지역 전략은 남북한이 하나의 국가이길 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러시아나 미국의 입장은 한반도를 동북아 세력 질서의 균형 유지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경제적 활력처나 회랑으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볼 때 대륙세력인 러시아가 해양세력인 미국과 손잡고 연결하면서 서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 데 한반도보다 더 좋은 지정학적 입지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서 북러가 손잡은 상태에서 미러가 손잡고, 다시 북미가 하나 되는 북미종전선언 추진 같은 시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 하나인 남한으로서도 다소 진통과 혼란이 있겠지만 결국엔 미국-러시아-북한과 하나 되는 결속체 속에 들어가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 모드에 돌입하고 대중흥의 역사를 펼치는 장이 만들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이런 가운데 경기 북부는 대발전의 기회의 땅이자 남북통일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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