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물의 힘으로 탄소를 지우다

올여름 전국 평균 기온은 25.6도로 평년보다 1.9도 상승했다. 이러한 기후변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올여름이 앞으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여름일지 모른다”는 자조적인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2016~2020년 지구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약 1.1도 상승했으며 이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산불과 해수면 상승, 가뭄과 홍수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렇듯 기후변화는 이제 우리 세대가 직면한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수도 보급률은 1993년 81.1%에서 2021년에는 99.4%로 크게 증가해 이제는 거의 모든 가정에 수돗물이 공급되고 있다. 보급률이 높아짐에 따라 물 관리 정책도 공급에서 품질 중심으로 전환됐고 이에 따라 K-water는 2012년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춰 수질 관리를 강화해 왔다. 또 2022년에는 모든 광역정수장이 ISO 22000(식품안전관리 시스템) 인증을 받아 깨끗하고 안전한 물 공급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 등 극심한 날씨 변화 속에서 많은 전기를 사용하는 정수장은 단순히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는 물을 어떤 에너지로 생산하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탄소중립은 이제 우리 세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의무이자 사명이다. K-water는 2020년 공기업 최초로 기후위기 경영을 선언하고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수립해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앞장서고 있다. K-water 한강유역본부는 모든 광역정수장을 탄소중립 정수장으로 전환하기 위해 태양광, 수열과 소수력 발전 설비를 도입해 탄소중립률을 높이고 있으며 그중 시흥정수장은 2021년부터 탄소중립을 실현해 대표적인 탄소중립 정수장으로 자리 잡았다. 시흥정수장에서 생산하는 전기량은 평균 1일 5.1㎿h로 이는 매년 소나무 약 3만그루(축구장 88개 면적)를 심는 것과 동일한 탄소저감 효과를 지닌다. 시흥정수장은 1천714㎾의 태양광 설비와 4천18㎾h의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갖추고 낮 시간에 생산된 태양광 전기를 ESS에 충전해 밤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울러 시흥정수장은 탄소중립 정수장에 그치지 않고 자체 신기술을 개발·적용해 동력설비를 무동력 설비로, 저효율 설비를 고효율 설비로 전환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연간 전력 사용량의 17%를 절감했다. 또 2024년 4월 입주한 관리동에는 건물 일체형 태양광(BIPV) 모듈을 설치하고 물의 온도 차를 활용한 수열에너지 냉난방 시스템을 도입해 제로에너지 1등급 건축물로 완성했다. 이처럼 시흥정수장은 탄소중립(Net-Zero)을 넘어 탄소네거티브(Carbon-Negative)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 가고 있다. 이러한 K-water의 노력은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한 사례로 깨끗하고 안전한 물 공급과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 사용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K-water는 앞으로도 국민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산책] 블랙마리아 그리고 영화

‘패디 웨건’이라고 알려진 범죄자 수송차 이름의 유래는 1830년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용어는 대체로, 악의 없이, 아일랜드인과의 연관성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북미 도시 지역에는 아일랜드계 경찰관이 많았는데 마침 ‘패디’라는 용어가 아일랜드어로 패드레이그(영어로는 패트릭)의 줄임말이어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과 당시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이 대부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어서 그렇다는 설도 있다. 미 동부 해안의 보스턴 항만 지역에는 많은 수의 아일랜드계 경찰과 더불어 음주 사건이나 폭행 사건에 연루된 많은 수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있었는데 그들이 연행될 때 아일랜드계 경찰이 운전하고 아일랜드계 범죄자들이 수송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그렇게 불리게 됐다는 설도 있다. 패트롤을 줄여 붙인 말이 패티 왜건이었는데, 당시 아일랜드계인들의 영향으로 패티를 패디로 바꿔 불렀다는 설도 있다. 재미있는 건 패디 웨건이 생뚱맞게 ‘블랙 마리아’라고도 불린다는 사실이다. 1830년대 경찰차가 운용되기 시작했을 때 보스턴 경찰관들이 한 흑인 여성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던 것을 기리기 위해 ‘마리아 리’라는 당사자의 이름을 따 ‘블랙 마리아’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리아 리는 그 지역에서 선원들을 위한 하숙집을 운영하던 흑인 여성으로 큰 키와 장정 못지않은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그중 하숙집에서 소란을 피우던 세 명의 난폭한 선원을 마리아 혼자서 경찰서로 연행해 갔다는 일화가 가장 유명한데 이는 실제 신문기사 자료로도 남아 있어 신빙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그밖에 정의로운 이런 이미지와 달리 뉴욕주 버펄로강, 이리 운하 지역에 위치한 더그스 다이브의 난폭한 손님이었던 건장한 체격의 골칫거리 흑인 여성을 강제 연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는 설도 있고 북미지역의 주요 경마 경주에서 우승한 말의 이름이 블랙 마리아인데 때마침 경찰 수송 차량이 역마차의 기능을 차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말의 이름을 따왔다는 설도 있다. 한편 비슷한 시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몬태나주 캐스케이드에는 우편물 강도들에 맞서 맹활약하던 인물이 있었다. 그 사람은 역마차를 이용해 가장 험난한 지형과 악천후 속에서도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초고강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수배를 피해 떠도는 각종 범법자들로부터 우편물을 지켜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늑대, 곰, 퓨마 같은 치명적인 야생동물로부터도 자신과 우편물을 지켜내야 했다. 성공적인 임무 수행은 결국 미국 우편 공사로부터 스타 루트(역마차를 이용한 우편물배달 서비스)의 임대계약을 따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메리 필즈였으며 마찬가지로 덩치가 매우 크고 힘이 센 흑인 여성이었다. 유사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보며 ‘역마차 메리’ 또는 ‘블랙 메리’라고 불렀다. 1892년. 뉴저지주 웨스트오렌지에 있는 토머스 에디슨의 연구소 소속 연구원인 윌리엄 케네디 로리 딕슨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건축 공간을 설계한다. 그가 설계한 이 공간은 실제 움직임을 시간으로 제약하고 현대 시각이미지 생산의 새로운 개념과 경험 창출에 기여했다. 이곳은 향후 세계 최초의 영화 스튜디오로 더 잘 알려진다. 혁신적인 이 공간의 이름도 ‘블랙 마리아’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흑인 여성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검은색과 폐쇄적인 공간 그리고 육체적, 시간적, 시각적 통제만이 남은 범죄 수송차의 기술적 구조와 형태가 외관상 매우 닮아서다. 그 이름이 영화와 만난 지 130여년이 지난 지금, 손바닥만큼 작아진 스마트폰 화면에 들어간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블랙 마리아에 탑승한 범죄자의 느낌을 육체적, 시간적, 시각적으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경기만평] 네버엔딩 VS 네버다이...

[사설] ‘말’로 흥한 이재명‚ ‘말’ 때문에 벼랑으로 몰리다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 대표는 2016년 중앙에 등장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국정농단 정국이 낳은 스타였다. 그의 무기는 누구도 접한 적 없는 ‘말’솜씨였다. 모두가 쭈뼛거릴 때 경계를 뛰어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간이 부은 박근혜가 대놓고 불법을 감행했다”, “박근혜를 구속 처벌해야 한다”. 분노한 여론이 그를 찾았다. ‘이재명 사이다’라는 닉네임도 붙여줬다. 그의 ‘말’은 현안 때마다 위력을 발휘했다. 정국을 뒤집었고, 위기를 돌파했다. 위기를 자초했던 ‘설화’ 논란도 있었다. 대선 정국에서는 ‘형수 막말’ 논란이 그를 괴롭혔다. 경기지사 때는 ‘국짐당’이라는 공개 발언으로 국감장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당 대표 취임 이후에도 몇 번 고비가 있었다. 공천 파동이 한창일 때 했던 ‘0점 의원’ 발언 등이 그랬다. 그럼에도 그의 정치에서 ‘말’은 여전히 무기다.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촌철살인의 묘를 구사하고 과감한 공격으로 상대 기를 꺾어 버린다. 지지층에는 대체 불가 카타르시스다. 이 대표가 지금 최대 정치 위기를 맞았다.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최악의 결과를 받았다. 1심 재판부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에서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정치적 치명타다. 의원직을 상실하고 차기 대선 출마 자격도 잃는다. 민주당은 대선 때 보전받았던 434억원을 반납해야 한다. 선고 하루 뒤 대정부 장외집회에 등장했다. “펄펄하게 살아서 인사드린다”고 했다. 많은 지지자들이 빗속에 환호로 답했다. 그답다. 그런데 이런 그의 ‘말’이 판결에서는 유죄의 증명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형사부가 재판했고 선고 직후 ‘재판부 설명자료’를 공식적으로 냈다. 사건의 핵심 쟁점과 재판부 판단 등을 자세히 담았다. 그 속에 등장하는 ‘징역형 선고’의 근거가 모두 이 대표의 ‘말’이다. 제1공소사실은 김문기 관련인데, “김문기를 모른다”는 이 대표 말이 출발이다. 제2공소사실은 백현동 관련인데, 역시 “국토부가 협박을 해서”라는 이 대표 말에서 비롯되고 있다. 이 외에도 이 대표가 했던 ‘말’이 가득하다.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 ‘조작한 거죠’라는 발언 등을 인용했다. ‘김문기 몰랐다’는 건 무죄인데, ‘골프도 안 친 것처럼 해석된’ 이 발언들 때문에 유죄라고 했다. 백현동 관련 부분도 패널까지 준비한 명쾌한 ‘협박 발언’이 유죄가 됐다. ‘고의가 인정되는 명확한 발언’이라고 했다. 이런 판단은 이 대표 측의 향후 항소심 전략에도 부담이다. 1심과 달라지기에는 ‘이재명 말’들이 너무나 명료하기 때문이다. 모욕과 과장이 판치는 작금의 정치 언어. 이런 ‘정치 언어’에 내려진 무거운 처단형이다. ‘이재명 유죄’ 이상의 의미도 있어 보인다.

[사설] 국회는 반도체 특별법 제정해 경쟁력 제고해야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국내외 경제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법 등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경제정책을 되돌리겠다고 하면서 연일 세계 경제환경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인 반도체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주가가 역대 최저인 4만원대로 급락했는가 하면 3분기 실적이 저조해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으나, 국내 반도체 산업은 경쟁력 약화로 인해 이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히 요망된다. 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11일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반도체 특별법’(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핵심 조항은 반도체 분야 연구개발(R&D) 근로자를 ‘주 52시간 근로’의 예외로 인정하는 것과 보조금 직접 지원이다. 그러나 이들 조항은 여야 간 쟁점이 돼 합의를 못하고 있다. 여당은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의 연구센터는 주 7일 24시간 가동되고 있으며, 엔비디아도 새벽근무와 주 7일 근무에 제약없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며 오는 28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야당에 제안했다. 특히 국내 R&D인재들이 주 52시간으로 못 박혀 있는 근무시간 제약으로 더 많이 일한 만큼 더 많은 벌 수 있는 해외로 이직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어 인재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안 통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반도체의 위기가 주 52시간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냐.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반박하고 있다. 주 52시간 규제를 반도체 산업에만 예외를 둘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도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여당이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에 대해 협의는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산업은 국가 전략산업이므로 단순히 기업 간 경쟁이 아닌 국가 간 경쟁으로 재편돼야 한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은 국가의 운명을 건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여야 정치인들도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사항이므로 여야 간 조속 협의해 반도체 특별법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반도체 산업이 가장 많이 포진하고 있는 경기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여야와 이념을 초월해 반도체 산업의 위기를 직시, 반도체 특별법이 국회에서 조속히 입법화되도록 최선을 다해 줄 것을 요망한다.

[말글 풍경] 공공언어의 중요성, 미디어의 책임감

공공언어란 좁은 의미에서 공공기관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로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모든 언어로 확장된다. 공공 부문의 문어(文語·글말)로는 정부 문서, 민원서류 양식, 보도자료, 법령, 판결문, 게시문, 안내문, 설명문, 홍보문 등이, 구어(口語·입말)로는 정책 브리핑, 대국민 담화, 전화 안내 등이 해당된다. 민간 쪽의 글말은 신문, 인터넷 등의 기사문, 은행·보험·증권 등의 약관, 해설서, 사용 설명서, 홍보 포스터, 광고문, 거리 간판, 현수막, 공연물 대본, 자막 등이, 입말에는 방송언어, 약관이나 사용 설명 안내, 공연물의 대사 등이 속한다. 공공언어를 향한 국민의 불만은 대개 다음과 같은 사항으로 요약된다. ①낯선 한자어 등 어려운 단어 ②외국어 및 외래어 ③복잡하고 길어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④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표현 ⑤맞춤법 등 어문규범에 맞지 않은 표기 ⑥기타(순우리말, 전문용어, 신조어 등).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유도(誘導)하다’, ‘이송(移送)하다’, ‘제고(提高)’, ‘착수(着手)’ 등의 용어는 ‘이끌다’, ‘보내다’, ‘높이기’, ‘시작’ 등 더욱 알기 쉬운 우리말로 순화할 수 있다. ‘제고(提高)를 위해’는 ‘높이기 위해’, ‘사양(仕樣) 조건을 나열하고’는 ‘품목 조건을 나열하고’, ‘디스크 팽윤(膨潤)의 경우’는 ‘디스크가 부을 경우’, ‘물건을 편취(騙取)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물건을 빼앗은 혐의를 받고 있다’로 고칠 수 있다. 잘 정비된 사례도 있다. ‘금번(今番)’은 ‘이번’, ‘금주(今週)’는 ‘이번 주’로 많이 개선됐고 ‘지참(持參)하고’를 ‘가지고’, ‘은닉(隱匿)한’을 ‘감춘’, ‘면탈(免脫)’을 ‘회피’ 등으로 바꾼 경우도 적지 않다. ‘당(當)해’가 ‘그 해’로 ‘감소(減少)되다’ 대신에 ‘줄다’, ‘소폭(小幅)’이 ‘조금’으로 정착돼 가는 분위기도 고무적이다. 그러나 ‘저작(咀嚼)·연하(嚥下) 용이(容易)’ 대신 ‘씹거나 삼키는 데 쉬움’, ‘가일층(加一層)’ 대신 ‘한층 더’ 등의 표현을 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불우(不遇) 이웃’ 대신 ‘어려운 이웃’, ‘편부(偏父)·편모(偏母)’를 ‘한부모’ 등으로 개선 의 필요성을 권고하는데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외국어 및 외래어로는 ‘문화바우처’(→문화복지상품권), ‘테마’(→주제), ‘슬로건’(→표어 또는 구호), ‘시너지 효과’(→상승효과), ‘글로벌’(→국제), ‘인프라 구축’(→기반시설 구축), ‘컨설팅’(→상담), ‘클러스터’(→연합), ‘코스’(→경로), ‘패턴’(→유형), ‘이슈’(→쟁점), ‘리플릿’(→광고 또는 쪽지·광고지), ‘인센티브’(→성과급), ‘이벤트’(→행사), ‘퍼포먼스’(→공연), ‘컨설팅’(→자문 혹은 상담) 등으로 확실한 개선이 필요하다. 국어문화원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공공언어가 어려웠던 경험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72%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어려운 순서로는 정책 용어⸱민원서류⸱안내문⸱법령⸱약관⸱계약서 등이 차지했는데 특히 갑을, 피고인, 피의자, 여신거래 등의 단어가 어렵거나 부정적 느낌을 준다고 답했다. 스트리머, 힐링, 욜로 등 신조어 또한 개선이 필요한 대목으로 지적됐으며 LTV, DTI 등 영어 약자로 표기되는 단어도 거북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참고로 LTV(Loan to Value)는 주택담보대출비율, DTI(Debt to Income)는 총부채상환비율을 뜻한다. 공공언어를 쉽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개선해야 할 필요성과 그 효과는 자명하다. 첫째, 정확한 정보 제공이 가능해진다. 둘째, 지역⸱세대⸱계층 간 정보 습득의 차이를 방지할 수 있다. 셋째, 행정 업무 처리 시간 감소 등 정부 업무의 효율성 향상이 기대된다. 넷째, 공공기관이 언어 사용의 모범을 보이는 홍보 효과 및 정부 업무의 투명성이 향상된다는 이점이 있다. 마지막이 대단히 중요한데, 국민들로 하여금 어려운 용어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 언어는 가장 중요한 공공언어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대상이기에 그렇다.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의식을 가질 일이다.

[지지대] 증시 이민 ‘서학개미’

주식시장에서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을 ‘개미’라고 표현한다. 개미는 한 개인으로 볼때는 미약하지만, 뭉치면 큰 힘이 된다. ‘동학개미운동’이 대표적이다. 동학개미운동은 2020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주식 시장에 등장한 신조어다. 코로나19로 증시 폭락이 거듭되는 가운데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에 맞서 국내 주식을 대거 사들인 상황을 1894년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에 빗댄 표현이다. 실제 2020년 3월 들어 3월20일까지 외국인들은 10조원어치의 한국 주식을 매도한 반면 국내 개인 투자자들은 9조원 가까이 사들였다. 이 동학개미들이 국내 증시를 외면하고 있다. ‘한국 증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동학개미들이 미국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로 변신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과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한 미국 증시의 상승 탄력이 한국 증시를 앞섰기 때문이다. 서학개미의 미국 주식 보유액이 최근 1천억달러(약 140조원)를 넘어섰다. 보유액이 불과 10개월 사이 50%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 증시에 몰리는 이유는 수익률이 좋기 때문이다. 올 들어 나스닥과 S&P500지수는 각각 28.5%, 25.6% 급등했다. 올해 국내 개미의 수익률이 31% 감소한 것과 대조적이다. 올 하반기 코스피지수는 주요 20개국(G20) 중 최저 수준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쏠림이 더 심화될 것이라 한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되면서 기업 규제 완화와 감세 조치 등을 예고해 분위기가 좋다. 반면 관세 등 무역장벽 강화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엔 부담으로 작용해 ‘증시 이민’이 가속화할 수 있다. 우리 증시는 실적 대비 지나치게 저평가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는 사태를 방관하기보다 증시 부양책을 내놔야 한다. 기업들도 배당금 확대, 자사주 매입 등 주주친화적으로 변해야 한다. 저평가된 증시가 헤지펀드의 멋잇감이 되게 해선 안 된다.

[아침을 열면서] 밥상머리교육, 식탁에서 배우는 예의범절

‘조립식 가족’이라는 제목의 드라마를 우연히 봤다. 드라마 속에는 다양하게 모인 구성원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식사하는 장면과 도시락이 자주 등장한다. 엄마도 아닌 아빠가 손수 밥을 하고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집밥과 도시락으로 정성 들여 키운 아이들이 바르게 잘 커 나가 따뜻함을 느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단순히 음식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소통과 사회성을 위해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은 많은 연구와 전통적인 가치에서 강조되고 있다. 밥상머리교육은 작은 예절 교육장이면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행복감을 충전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1인 가구 증가와 개인화된 식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가족이 함께 밥상에 둘러앉는 풍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3.4%를 차지하며 이는 2040년까지 40%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한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에 비해 혼자 식사하는 사람들은 우울증 유병률이 1.6~2배 높다고 한다. 특히 함께하는 식사는 유대감을 강화하고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돼 청소년의 경우 학업 성취와 정신건강, 노인에게는 영양 불균형 해소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줄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밥상머리교육에서 더불어 사는 삶의 지혜와 인내, 배려 등의 사회성을 배웠다. 식탁에서 예의범절을 배우고 편안한 대화를 통해 우울증을 예방하는 것은 좋지만 전통적으로 모여 살 수도 없는 일이고, 개인화된 생활방식 속에서의 연결 지점은 없을까. 두 개념은 상반되지만 현대와 전통은 연결 가능하리라 본다. 1인 가구의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는 시대에 밥상머리교육의 전통적 역할을 이어가는 방법을 고민할 일이다. 1809년 쓰인 규합총서에는 사대부에게 가르치는 식사 예절이 있다. 식사 한 끼가 내게 오기까지의 수고와 고마움을 느끼며 식사하라는 내용이며 식시오관(食時五觀)은 지금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상을 차린 정성을 헤아리고 그것이 어디서 왔는가를 생각한다(計功多少 量彼來處·계공다소 양피내처). 둘째, 자신의 덕행을 살펴 보아 밥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를 생각한다(忖己德行 全缺應供·촌기덕행 전결응공). 셋째, 과식을 피하고 탐욕을 절제한다(防心離過 貪等爲宗·방심이과 탐등위종). 넷째, 음식을 좋은 약으로 생각하고 부족한 듯이 먹는다(正思良藥 爲療形枯·정사양약 위료형고). 다섯째, 일을 이루고 음식을 받아야 함을 생각한다(爲成道業 應受此食·위성도업 응수차식)이다. 이러한 생각은 혼자 식사하는 상황에서도 의미가 있다. 음식을 먹기 전에 내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고 감사함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혼밥이라도 정갈하게 식탁을 차리고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며 그 시간에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습관을 들여본다. 혼자 있을 때 형성된 감사와 배려의 태도는 타인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될 것이다. 온라인 시대이니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친구와 영상통화를 통해 식사를 함께하는 새로운 형태의 밥상머리도 가능할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가까운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하며 소규모 모임으로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도 좋다. 밥상머리교육은 단순한 훈계가 아니라 용서와 격려, 화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자리다. 혼자든 여럿이든 마음과 정성을 담은 식사 시간이야말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첫걸음이다. 음식에 담긴 고마움을 느끼고 그 시간 속에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은 시대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가치로 남을 것이다.

[천자춘추] 끄트머리에서 찾은 실마리

지난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출근길 마주치던 학생들의 가방도 한결 가벼워 보인다. 지난 12년간 한길만 보고 달려왔을 학생들에게 수능은 어떤 의미일까. 수능은 그들에게 오랜 여정의 끝자락, 즉 끄트머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수능은 끝처럼 보이지만 사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이다. 인생의 수많은 변곡점 중 하나를 지나며 그들은 어떤 선택을 할지. 실타래를 풀려면 끄트머리부터 찾아야 하듯이 앞으로의 미래를 이끌어갈 그들의 선택과 도전을 응원해 본다. 비단 도전에 대한 응원이 필요한 건 수험생만은 아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고물가, 고금리 등으로 경기 침체라는 실타래에 엉켜 오랜 시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제적 끄트머리에서 그들은 어떤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정부에서는 경제적 취약계층 지원을 위해 50조원+α 규모의 시장안전 조치와 민관 협력을 통해 소상공인 이자 환급, 원스톱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를 통한 대출금리 인하 지원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22년 출범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새출발기금은 코로나로 피해를 겪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채무 조정으로 빚 상환 부담을 덜어준다. 금융비용이 높은 이에게는 금리를 낮춰 주고 재산보다 채무가 많아 채무 상환이 어려운 이에게는 최대 80%까지 원금을 감면하고 분할 상환도 가능하다. 지난 10월 말 기준으로 새출발기금 채무 조정을 신청한 대출자 수는 9만3천명에 이르고 신청 채무액은 15조원 규모다. 많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채무 조정과 상담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왔다. 아직 신청 기간이 2026년 12월 말까지 남아 있고 지원 규모도 40조원이기 때문에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끄트머리는 ‘끝자리’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새로운 실마리’라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많은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경제적 끄트머리를 막다른 길이라 느낄 수 있지만 그 끝에서 새로운 실마리를 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은 걸음을 가볍게 하고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캠코는 새출발기금을 통해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등 뒤의 바람이 돼 경제적 끄트머리에서 새출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재도전의 길에 함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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