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셰르파 vs AI안전연구소

‘셰르파(Sherpa)’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히말라야산맥, 특히 네팔 북동부와 에베레스트산 남쪽 솔루쿰부 지역에 거주하는 티베트 계열의 부족을 가리킨다. 셰르파는 고산지역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산맥에 널려 있는 숱한 위험과 장애물에 친숙하며 등산 실력 역시 출중하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을 비롯한 히말라야산맥을 오르려는 등정대에 셰르파는 매우 중요한 가이드다. 셰르파는 언뜻 ‘짐꾼’처럼 보인다. 맞는 말이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무거운 짐을 지어 나르는 짐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험한 등정 과정에서 앞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고 장차 어떤 위험이 닥칠지 셰르파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에 셰르파는 등정대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 그래서 셰르파에 대한 신뢰 그리고 그의 구체적인 안내 없이는 그 어느 등정대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이르기 힘들다. 등정대가 드디어 산 꼭대기에 이르러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며 찍은 기념사진 속에서 동행한 셰르파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셰르파는 등정대의 짐꾼이자 길잡이이지만 등정대의 주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셰르파는 다양하고 많은 등정대를 꾸준히 돕는다. 50세의 셰르파 카미 리타는 부친의 뒤를 따라 셰르파의 길로 나선 1994년 이래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다양한 등정대를 안내해 에베레스트산 꼭대기에 29번이나 올려 놓았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정복한 성공 이야기 가운데 셰르파의 이름과 얼굴은 언제나 중요 관심 대상이 아니다. 지난달 27일 우리나라 최초로 ‘AI안전연구소(AI Safety Institute·AISI)’가 판교 글로벌 R&D센터에 문을 열었다. 현재 국회에서 급물살을 타며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AI기본법’에도 명시된 조직이다 보니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 기대와 우려가 겹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업의 입장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규제’라는 단어와 동일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 AI안전연구소가 앞으로 AI 기업에 대해 일종의 규제 기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법하다.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내세운 표현이 바로 ‘셰르파’다. AI안전연구소를 뜻하는 AISI는 전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공통 명칭이다. 다들 ‘에이시’라고 읽는다. AISI에서 알파벳 ‘S’는 안전(Safety)에 해당하지만 이는 셰르파로 대체될 수 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정대인 우리나라 AI 기업에 AI안전연구소가 셰르파와 같은 존재로 다가가는 것은 연구소가 제시한 비전이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만나게 되는 다양한 위험과 장애물을 예측하고 발견해 제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안전한 등정길을 만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AI안전연구소의 역할이다. 이날 개소식에서는 우리나라 AI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5개 조직과 단체가 앞으로 AI 안전에 관해 원팀(One Team)이 되고자 ‘AI 안전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식도 함께 진행했다. 향후 AI 안전 컨소시엄을 통해 AI 안전을 함께 도모할 조직과 단체를 추가로 더 모은 후 컨소시엄 발족식 및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다. 선진국마다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바라보며 나름대로 국가 전략을 세우고 AI 산업 발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다만 AI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를 국가 단위로 불식하기 위해 작년 11월 영국이 AI안전연구소를 최초로 세운 이래 미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에 이어 우리나라도 이번에 여섯 번째로 설립했다. 우리나라 AI 기업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설 수 있도록 AI안전연구소가 국제 협력 활동은 물론이고 ‘셰르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경우 AI 국가경쟁력 3위(G3)라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슈&경제] 1기 신도시 재건축 제대로 순항할까

드디어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가 발표됐다. 분당 세 곳 1만1천가구, 일산 세 곳 8천900가구, 평촌 세 곳 5천500가구, 중동 두 곳 6천가구, 산본 두 곳 4천600가구로 총 13개 구역에 3만6천가구가 선도지구로 선정됐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는 해당 신도시에서 가장 먼저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로 야구 경기에 빗대면 가장 먼저 출전하는 1번 타자에 해당한다. 1번 타자가 출루에 성공하면 그 팀의 승리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기에 중요하고 재능이 있는 타자를 선정한다.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에서 1번 타자가 되기 위해 많은 단지가 수개월 동안 치열한 경쟁을 했다. 필자도 올여름 분당에 있는 모 단지에 초대받아 찬조연설을 하러 갔는데 여름휴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체육관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도지구 선정 기준은 ▲주민 동의 60점 ▲주차대수 10점 ▲도시 기능 활성화 10점 ▲통합 정비 참여 10점 ▲사업 실현 가능성 10점 ▲기부채납 가산점 6점으로 평가를 했는데 선도지구 지정을 위해 대부분의 단지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을 것으로 보여 결국 기부채납 점수에서 당락이 결정된 것 같다. 점수로 공정하게 평가했다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아쉬운 점은 남는다. 재건축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사업성으로 결국 일반분양을 많이 뽑고 일반분양가를 높이 책정해 추가 분담금을 최대한 낮춰야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어 순항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용적률을 최대한 높게 받을 수 있도록 준 주거지역으로 종 상향이 용이하고 높은 분양가에도 일반분양이 성공할 수 있는 역세권 인기 단지가 선정되는 것이 1기 신도시 재건축 전체의 성공을 위해서는 중요했는데 선도지구 선정 단지를 보면 일부를 제외하고는 역세권이 아니고 지역 안배를 고려하지 않고 특정 구역에만 몰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공정하게 처리해 잡음을 없애는 것이 더 중요했다면 세부 점수표를 함께 공개해 탈락한 단지들이 수긍하도록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선도지구가 선정됐으면 이제 본격 추진해야 하는데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정부가 제시한 2027년 착공, 2030년 완공 목표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이 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불가능하다. 2027년 착공에 들어가려면 지금 이주를 시작해야 한다. 설사 2027년 착공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3만6천가구의 이주 수요가 나오면 주변 집값 전셋값 폭등은 불 보듯 뻔하다. 조합 설립, 시공사 선정, 건축심의, 사업시행계획 인가, 조합원 분양 신청, 관리처분계획 인가 과정을 거쳐야 이주하고 철거를 할 수 있는데 아직 조합 설립도 하지 않았다. 통상적으로 조합 설립을 하는 데만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구체적인 사업비와 추가 분담금이 나와 재건축 조합과 사업 시행에 대한 동의까지 받았다면 모를까 선도지구 지정만을 위한 동의만 받은 상태여서 막상 본 게임에 들어가면 원하는 동의를 받기 쉽지 않다. 추진위에서는 2억~3억원 추가 분담금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5억원 이상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이마저 지금 진행해야 그렇지 10년 이상의 사업 기간 물가 상승을 고려하면 10억원이 넘는 추가 분담금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소송에 걸리지 않고 재건축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해도 1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노후 계획도시 특별법에 따라 진행이 된다고 하지만 지켜야 할 절차가 있고 특별법이 학교 문제 사전 해소, 부동산원 분담금 산출 지원, 전자 동의 방식 도입 등 행정 지원과 12조원 규모의 미래도시 펀드 자금 조달 등 금융 지원, 협력체 구성, 찾아가는 설명회 등 협력형 정비 정도의 지원만으로 획기적으로 사업 기간을 단축하기는 어렵다. 재건축 정비사업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분쟁이 생기는 것은 돈 문제다. 추가 분담금과 사업비를 두고 조합 내부의 갈등, 조합과 시공사의 갈등, 기부채납을 두고 지자체와의 갈등은 정비사업의 단골 메뉴다. 지금은 마치 다 해줄 것 같은 지자체도 기부채납 문제는 양보하기 어렵다. 선도지구 지정을 하면서 기부채납을 많이 하겠다는 단지에 점수를 더 줬는데 기부채납을 적게 받겠다면 탈락한 단지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1기 신도시 재건축 사업은 이제 첫걸음마를 뗐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재건축도 여러 어려운 단계를 밟아야 한다. 자녀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할 목표라면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겠는가. 선도지구 선정이 된 후 일부 단지는 5천만원에서 2억원까지 호가가 올랐다고 하는데 험난한 긴 여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냉정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기만평] 제발 쫌...

[사설] ‘트럼프 관세’가 직격할 반도체·자동차... 경기도민 잠 안오는 데 정치는 쌈박질

국민의힘은 이렇게 밝혔다. “사회간접자본(SOC) 등 각종 예산을 삭감한 것은 내년도 경제 성장률 제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렇게 밝혔다. “세계적 경제 위기의 영향을 받았던 이전과 달리 외부 충격 하나 없는 1%대 저성장이 문제다.” 예산안 심사 파행을 두고 벌이는 ‘네 탓’ 타령이다. 정부가 677조4천억원의 예산안을 제출했다. 야당이 4조1천억원을 감액해 단독 통과시켰다. 여당은 다수당 폭거라며 정면 대치 중이다. 이렇게 한가한 시간이 없음은 물론이다. 국내 각종 경제 지표가 최악이다. 한국은행의 예상 경제성장률은 내년에 1.9%다. 올해 2.2%보다 크게 후퇴했다. 2026년에는 1.8%로 더 나빠질 것으로 봤다. 2년 연속 저성장은 예가 없다. 위기를 부채질하는 눈앞의 변수도 등장했다. 관세 폭탄을 호언한 ‘트럼프 관세 리스크’다. 직격 당하게 될 품목이 자동차와 반도체다. 신용평가사 S&P가 지난달 30일 트럼프 수입 관세가 자동차 업계에 미칠 보고서를 내놨다. 캐나다와 멕시코의 25% 관세에는 현대·기아차가 관리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보편 관세 20%가 한국에 적용할 경우는 다르다. 총 영업 이익이 19%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이 위협이 직격할 곳은 경기도다. 현대차·기아차 모두 경기도가 본산이다. 화성시 남양연구소는 한국 자동차 산업의 중추다. 부품 생산 업체들도 경기도에 많이 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이 직격할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 분명하고 그 타격 지역은 경기도가 분명하다. 경기도 산업의 중추, 반도체도 큰일이다. 우리에게는 지난 2015~2016년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반도체 불황이 지자체에 준 타격이다. 수원시가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법인지방소득세가 1천755억원에서 826억원이나 줄었다. 화성시도 1천646억원에서 715억원, 용인시도 856억원에서 366억원 줄었다. 삼성전자의 하청 기업은 현재 2천515개다. 이들로 옮겨 붙을 불황 파동은 더 크다. 트럼프발 반도체 위기가 경기도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가 낼 대책도 필요하다. 지자체 노력도 요구된다. 하지만 이게 근본적 대책은 될 수 없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나서 줘야 한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미국으로 달려갔다. 트럼프를 만나 무역적자 문제 등을 논의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저러고 있다. 예산안 삭감 탓하고, 경제 위기 초래 탓한다. 그러면서 무서운 말도 내뱉는다. ‘나라 망하면 당신들 책임이다.’ ‘정쟁’이란 단어조차 아깝지 않나. 이건 차라리 쌈박질 아닌가. 사전(辭典)은 쌈박질의 정의를 ‘싸움하는 일을 낮잡아 이름’이라고 했다. 경기도 산업을 걱정하는 도민 눈에 비친 모습이 딱 그렇다.

[사설] 인천 강화 경제자유구역 ‘시동’... 국가 성장동력의 문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 출범했다. 이후 지역 경제는 물론 국가 성장동력을 이끄는 발전을 이뤄 왔다. 송도, 청라, 영종 3곳 국제도시를 돌이켜 보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전국에 수많은 경제자유구역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따라올 만한 곳이 없다. 노무현 정부의 돋보이는 유산 중 하나다. 그런 인천경제자유구역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기업을 유치하려 해도 내줄 땅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땅이 미개발 상태인 다른 경제자유구역과 크게 대비된다. 이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스스로 영토 확장에 나섰다. 바다 건너 강화도에 새로운 터전을 잡으려는 것이다. 인천경제청이 강화 남단으로의 구역 확대에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해 7월 시작한 개발계획 수립 연구용역도 마무리했다. 인천 강화군 화도·길상·양도면 일원 20.26㎢(610만평)가 대상이다. 경제자유구역 총량제를 감안, 1단계 10.03㎢(303만평), 2단계 10.23㎢(307만평)으로 나눠 추진한다. 인천경제청은 조만간 산업통상자원부에 경제자유구역 지정 자문회의를 요청할 예정이다.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위한 첫 단계 행정절차다. 이 회의에서 나오는 의견들을 보완해 이달 중 산업부에 강화 남단 경제자유구역 지정을 신청한다. 인천경제청은 농림축산식품부 설득이 이번 지정의 중요한 관문으로 보고 있다. 1단계 구역의 87%가 농업진흥구역(절대농지)으로 묶여 있다. 앞서 농림부는 농지 감소에 대한 대처 방안을 요구했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스마트팜 조성 등 농촌지역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다. 1단계 구역의 지정을 받으면 그린바이오와 화훼 등 스마트 농업 분야를 중점 육성한다는 내용의 개발계획이다. 또 인공지능(AI) 기반 지능형 물류 체계를 꾸리고 역사문화 관광지구, K-컬처 클러스터, 해양정원 등을 조성한다. 산업부에 뚜렷한 투자유치계획을 내놓아야 하는 것도 숙제다. 2018년 산업부는 무분별한 지정을 막기 위해 경제자유구역 최대 지정 면적을 360㎢로 줄여 놓았다. 이에 인천경제청은 이미 이곳 투자 의향 기업들을 물색, 접촉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의 터널에 들어섰다는 경고가 나오는 요즘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같은 저성장, 역성장을 따라갈 수는 없다. 성장 없이는 지속가능 발전을 바랄 수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의 확장은 국가 성장동력의 문제다. 경제자유구역 총량제는 지정을 받고도 감당 못하는 곳에 적용할 일이다. 지역균형, 수도권 억제 등은 정치 논리다. 수요 공급의 시장 원리를 따라야 할 경제자유구역 확장이다.

[지지대] 인간관계의 소중한 가치

세 번의 스무살을 살아오면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기자라는 직업으로 35년을 살아오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왔다. 하루하루의 삶은 만남의 연속이었고 그 가치를 최고로 여기고 살아왔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속내를 알 수 없으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을 대하면서 나도 모르게 사람 속을 보는 눈이 생겼다. 첫인상과 몇 차례의 만남 속에 그 사람을 파악한 것이지 마음까지 완전히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남에 있어 섣불리 상대를 예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무턱대고 좋은 사람 같다고 해서 상대를 믿는 것도 안 되고 인상이 좋지 않다고 해서 경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거친 세상을 살면서 사람을 사귐에 있어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살아왔다. 하나는 ‘신(信)’이고, 다른 하나는 ‘배신(背信)’이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처럼 아름답고 좋은 것은 없기에 신뢰를 최우선으로 인간관계를 맺어 왔다. 반대로 배신은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믿었던 사람이 그 믿음의 의리를 저버리는 것이기에 가장 싫어한다. 살다 보면 전혀 뜻하지 않게 좋은 사람(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좋은 사람으로 여겨진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사람의 심성은 제 각각이고, 좋은 사람이라도 처해진 환경이 그 마음을 변하게 만든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배신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고 정(情)이 자신의 이익보다 후순위라 해도 사람 사는 사회는 서로 간의 신뢰가 우선시돼야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때 아닌 ‘情타령’을 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세태가 변해도 그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산임을 잊지 말자.

[천자춘추]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대학생을 대상으로 강의 중에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인 자유와 평등에 대해 질문했다. ‘자유와 평등’ 중 본인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70% 정도의 학생이 자유를 선택했다. 자유를 선택한 학생들에게 ‘보수와 진보’ 중 본인은 어느 쪽이냐고 다시 한번 물었더니 진보 쪽이 70% 정도 됐다. 우리는 보통 보수의 가치로 자유를, 진보의 가치로 평등을 우선시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그런 기준이 없는 건지 굳이 깊이 생각을 안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들어가 평등에 관해 말해 보면 무조건 같아야 한다는 것이 평등의 진리가 아니고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하는 것이 평등의 큰 원칙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특례시’가 있다. 인구 100만이 넘은 도시인 수원, 용인, 고양, 창원이 있고 내년이면 화성도 특례시가 된다. 중앙집권적인 우리나라는 중앙정부가 있고 그 아래에 지방자치단체라는 이상한 이름의 조직이 있다. 중앙과 지방이라는 이분적 명칭도 그렇고 분명 행정행위를 하는 곳인데도 단체라는 이상한 명칭을 사용한다. 중앙정부의 대응으로 한발 양보해 지방정부 또는 지방자치정부라 하면 될 것을 지방자치단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부터 우리 중앙이 아닌 영원히 곁가지인 지방인가 하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그 지방자치단체의 명칭도 광역단체는 특별시, 광역시, 도, 특별자치도 등이 있고 기초단체에는 시, 군, 구가 있다. 그중 기초단체 가운데 특례시란 명칭을 부여받은 도시가 곧 5개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전에는 인구가 100만이 넘으면 광역시가 됐는데 수도권에 인구가 모이다 보니 창원을 제외하고 광역시의 기준이 거의 경기도로 몰려 있어 특례시라는 형태의 새로운 행정조직 명칭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특례시가 어중간한 위치에 있다 보니 영어의 표현인 ‘스페셜시티’가 아닌 그냥 ‘노멀시티’가 돼버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현실이다. 중앙정부가 특례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 준비 중이라 다행이라 생각되지만 이름뿐인 법률이 아닌 다른 건 다르게 인정해 주는 실질적인 법률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특례시는 무엇을 크게 요구하지 않는다. 지방소멸이라는 어려운 시대에 규모가 작은 시·군들의 파이를 요구하지도 않고 인구 규모만 따지면 최대 100배의 차이가 나는 시·군과 여건이 다른데 같은 적용을 받는 것에 대해 다른 것은 다르게 해 달라는 최소한의 요구를 할 뿐이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려면 최소한 내가 낸 세금만큼의 복지와 혜택은 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 단지 큰 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는 것 또한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 ‘같은 건 같게, 다른 건 다르게’ 인정해 주는 좋은 법안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인천시론] 사라져 가는 김장

김장철이 거의 끝났다. 김장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에 ‘침장고(沈藏庫)’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는 궁궐에서 야채를 공급하고 김장을 담가 관리하던 기관이면서 그 야채와 김치를 보관하던 창고의 이름이기도 했다. ‘김장’은 바로 이 ‘침장’이 바뀌어 생긴 말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沈’은 ‘침채(沈菜)’의 ‘沈’과 같아 김치를 나타낸다. 또 ‘藏’은 어떤 물건을 갈무리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침장’은 ‘담근 김치를 잘 갈무리한다’는 뜻으로 김장과 같은 말이 된다. 이로써 김장이 늦어도 조선 초기에 시작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장은 사실 이보다 훨씬 오래전에 시작됐을 것이다. 지금처럼 배추김치를 담가 저장하는 것이 아닐 뿐이지 짠지나 동치미 같은 저장음식들을 겨우내 먹으려면 저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장은 많은 배추를 절이고, 여러 양념을 섞어 버무려 소를 만들고, 소를 넣은 배추들을 독에 담아야 하는 힘들고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너무 추워지기 전, 하루 이틀 정도의 짧은 기간에 끝마쳐야 했기에 사람이 많이 필요했다. 이를 해결한 방법이 ‘김장 품앗이’였다. 친척이나 이웃들이 모두 나서 넓은 장소에서 한꺼번에 김장을 한 뒤에 나눠 가져가는 방식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이 품앗이는 김장이라는 큰일을 수월하게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이웃 사이에 정(情)을 나누고 일체감을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와 같은 김장의 가치는 지난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공인을 받게 됐다. 당시 유네스코는 “한국인의 일상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은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연대감과 정체성·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라고 평가했다. 한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나 경도잡지(京都雜志) 같은 옛 자료를 보면 김장에 많은 재료들이 들어갔던 것을 알 수 있는데 김장김치에 소로 들어가는 재료는 지역에 따라 많이 달랐다. 이를테면 경기도에서는 새우젓을 많이 쓰고 강원도는 오징어나 생태 등을 많이 쓰며 전라도에서는 멸치젓을 많이 쓰는 식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 따라 김장김치의 맛이 상당히 달랐다. 하지만 이제는 핵가족화로 한 집에 식구들이 많지 않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져 이웃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줄어들면서 김장을 하는 가정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대신 공장에서 똑같이 만든 김치가 일회용 포장 형식으로 전국 어디서든 팔린다. 이대로라면 김치 맛의 지역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연대감과 정체성·소속감을 증대시킨 매개체’로서의 김장 자체가 옛이야기가 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사회가 절대 잃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을 넋 놓고 잃어 가는 것은 아닐까.

[기고] 농림어업 조사, 우리의 삶과 미래를 바꾸는 작은 참여

매일 아침 공기가 신선해지는지, 식탁에 오른 쌀·채소와 생선이 어떻게 우리에게 도달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매일 누리는 이 모든 것은 농업, 임업, 어업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의 혜택과 우리의 생활기반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지는 세심한 계획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농림어업 조사’가 있다. 이 조사는 대한민국 농어업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농업정책부터 환경보호, 농어촌 발전까지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바로 이 조사에서 시작된다. 농림어업 조사의 시작은 1960년대, 농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농업 통계조사로 시작했다. 이후 임업과 어업까지 넓혀 오늘날의 농림어업 조사로 발전해 왔다.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더 세밀하고 정교한 자료 수집이 가능해졌다. 드론과 위성 이미지를 활용한 농경지 분석,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어업 활동 파악 등 첨단 기술이 동원되면서 통계의 신뢰도가 크게 개선됐다. 농산물 생산량이나 어업 자원 현황, 산림면적 등 조사에서 얻어진 자료는 관련 농림어업 정책을 수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기초자료다. 예를 들어 농촌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정책이나 기후 변화에 따른 농작물 변화 계획도 이 자료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농림어업 조사를 통해 산림 훼손이나 해양자원 고갈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또 농어촌지역의 경제 활동과 생활 여건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지역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다.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 수립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농림어업 조사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농림어업 조사는 국민의 참여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조사 대상자가 제공하는 정보는 우리 농림어업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 필수적이다. ‘2024년 농림어업 조사’가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17일까지 14일간 농림어업을 직접 경영하는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된다. 조사원이 방문하거나 전화, 온라인으로 조사를 요청할 경우 적극 응해 주시길 바란다. 특히 제공된 정보는 통계법에 따라 철저히 보호되며 조사 목적 외에는 절대 사용되지 않는다. 국민이 제공한 소중한 정보는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안전하게 관리될 것이다. 이제 국민의 참여로 우리의 삶과 미래를 바꿔 보자. 농림어업 조사는 국가와 국민 모두를 위한 길잡이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국민의 관심과 협조가 농어업의 밝은 내일을 여는 열쇠다. 함께 만들어가는 풍요로운 농림어업의 미래를 위해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린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시론] 다문화사회에서의 사회통합 방향

국제이주기구(IOM)는 이민자의 통합에 대해 “이민자와 이민자가 거주하는 사회 간에 서로 적응하는 쌍방향 과정을 통해 그 공동체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생활 속으로 통합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카슬과 밀러는 이민자를 주류 사회로 편입시키는 모형을 크게 차별적 배제 모형, 동화 모형, 통합 모형, 다문화 모형으로 구분했다. 첫째, 차별적 배제 모형은 우리 사회가 원하지 않는 이민자의 정주를 막고 국민과의 차별적 대우를 유지하며 문화적 단일성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둘째, 동화 모형은 이민자가 출신국의 주류사회로 동화하는 것을 전제로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대다수 국가는 귀화 또는 영주 허가 요건 중의 하나로 주류 사회의 언어, 문화 등에 대한 이해 정도를 평가하고 있는데 이는 동화 모형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다문화 모형은 원주민, 소수민족, 이민자 집단의 언어, 문화 등의 정체성을 보전하면서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캐나다와 호주는 영국 출신의 소수의 이민자가 주류 사회를 형성한 후 원주민 및 소수민족과의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언어 및 문화의 보전을 장려하는 다문화주의를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합 모형은 이민자가 주류 사회와 상호 조정을 거치면서 주류 사회로 점진적으로 흡수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문화적 통합 측면에서 우리나라, 유럽연합(EU ) 등의 선진국이 통합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라는 저서에서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과 문화에 대한 관용과 포용력이 있는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패권을 차지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새로운 문화와 가치에 눈과 귀를 닫고 우물 안의 개구리로 배타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국가와 사회는 국제사회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간 정부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민자를 유치하는 데 관심을 집중한 반면 우리 사회와 이민자 간의 통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원하는 이민자가 우리 사회에 정주할 수 있는 거주환경과 사회문화적 환경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이민자와 그 후손들은 우리 사회에 정착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정착하더라도 통합되기 힘들 것이다. 또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전문 인력, 숙련기능공, 투자자, 창업자 등을 유치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실에서 이민자들이 우리나라를 선택할 유인이 줄어든다. 따라서 반드시 이민자통합지수 같은 평가기준을 정교하게 만들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합정책을 정기적으로 평가해 잘못되거나 미흡한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이민자에게만 우리 사회와 문화를 존중하도록 일방적으로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이민자의 다른 문화와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출 경우 민주주의와 다양한 창의적 사고에 기반을 둔 사회로 발전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서도 폭넓은 지지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핵심적 가치를 수용하지 않고 분리되려는 개인의 이민을 억제하는 한편 국내에서 그러한 집단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일부 특정 국가 밀집거주지역이 주변화 내지 소외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이에는 많은 민간단체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고 정부도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이민자의 정착 지원과 통합에 대해 지역주민에 대한 행정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민자가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자녀 교육, 의료, 금융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경제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한국 언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이 중에서도 이민 배경을 가진 아동을 미래의 소중한 자원으로 여겨 교육, 직업훈련 등에 있어 국민과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한 대로 우리나라에서 출생하지 않고 중도에 입국한 아동을 위해 초기 한국 언어를 집중 교육하는 특별학급이나 지원센터의 설치를 확대해야 한다. 또 방과 후 보충학습 확대, 다양한 가격대의 국제학교와 대안학교 설립, 숙련기능공이 되길 원하는 학생에 대한 직업훈련과 인턴제 제공 등을 통해 다채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아동의 이민 배경으로 인한 정체성, 고립감 등의 심리적 문제도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에서 인력을 유치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국내에 거주하는 결혼이민자, 정주를 허용한 외국인의 가족, 외국 국적 동포, 유학생 등을 우선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 언어와 사회의 이해에 관한 교육프로그램도 이민자가 종사하는 직업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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