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싱크탱크(Think Tank). 사회 정책을 비롯해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문화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이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기관을 뜻한다. 대부분 비영리 조직이다. 소위 ‘두뇌집단’으로 불리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조사·분석 및 연구·개발을 한다. 인천에서는 인천연구원이 대표적인 싱크탱크로 꼽힌다. 초빙연구원을 포함해 50명이 넘는 연구인력이 도시사회, 경제환경, 교통물류, 도시공간 등 각 분야에서 연구를 하고 이는 인천시 정책의 근거자료 등으로 쓰인다. 이 밖에 인천시 산하 기관에도 각 사회복지는 물론이고 분야별 연구를 하면서 인천시의 정책을 만들고 있다. 과연 이들 연구기관이 진정한 인천의 싱크탱크의 역할을 하는지는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 이들이 하는 연구의 대부분은 인천시의 정책을 뒷받침할 근거자료를 만드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즉, 연구기관이 인천의 미래 발전을 위해 스스로 고민해서 이뤄진 연구가 아니라 인천시 공무원의 입맛에 맞는 연구인 셈이다. 이는 인천시가 이들 연구기관의 예산이나 관련 지도·점검 등의 권한을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있다.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관계인 탓에 인천시로부터 일방적인 연구 지시를 받는 연구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 인천시는 착수보고회에서는 정책의 기본 바탕을 정해 주고, 중간보고회를 통해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연구를 끌어가고, 최종보고회를 통해선 원하는 정책을 만들어낸다. 이 절차에서 공무원은 연구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제는 인천시가 연구기관 스스로 자율성을 갖고 인천의 진정한 싱크탱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계 정립부터 다시 해야 할 때다. 연구기관은 일 부려 먹는 하부 기관이 아니라 함께 고민하고 정책을 다듬어 가는 동반자임을 알아야 한다.

[천자춘추] 직업계고 경쟁력 강화 방안

경기도의 직업계고등학교는 지역사회와 산업의 필요를 충족하는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평택마이스터고, 수원하이텍고, 경기게임마이스터고 등 106개의 직업계고 중 일부를 제외하면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등록률이 90%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상황은 직업계고의 이미지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직업계고는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거나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학교로 인식돼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직업계고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가 필요하다. 졸업생 성공 사례와 다양한 취업 기회에 대한 정보 제공은 인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공유학교와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으며 이를 확대해 중학생과 학부모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경제적 지원과 우수한 취업처 확보는 직업계고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공공기관, 대기업 등 우수한 취업처 지원과 동일계 특별전형, 선취업 후진학 재직자전형 같은 대학 입학 혜택이 있지만 이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청과 단위학교는 학부모 설명회와 학생 대상 워크숍을 통해 이러한 혜택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과정 도입도 중요하다. 일부 직업계고는 인공지능(AI)과 첨단 기술 교육을 위한 학과 개편을 진행 중이며 이를 더욱 강화해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에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직업계고는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교사들의 신기술 연수는 학생 중심 교육을 위해 필수적이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해 교육 현장에서 새로운 내용을 적용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교사 역량을 높이고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게 만든다. 또 학교는 산업체와 협력해 현장 경험을 제공하고 기업 전문가 초청 강의 등을 통해 실무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예산 지원과 인력 보충으로 노후한 실습 환경을 개선하고 첨단 실습실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경기도 직업계고는 교육과정 개선, 교사 역량 강화, 지역사회 협력, 홍보 강화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선택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발전할 것이다.

[기고] ‘인천 섬의 생명수 지하수 고갈 대비해야’

우리나라는 유엔이 정한 물 부족 국가다.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의 현실은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다. 백령도는 어업과 함께 농업 의존도가 높은 섬이다. 논 548ha, 밭이 258ha로 이뤄진 백령도의 1년 벼 생산량은 6천t이 넘는다. 이 정도 규모의 논밭을 일구려면 많은 물이 필요할 거라는 건 상식이다. 백령도는 이 논밭을 일구기 위해 지하수를 사용하고 있다. 농업용 관정만 157개에 이른다. 식수 또한 지하 관정으로 퍼 올린 물을 사용하고 있다. 백령도는 지하수맥이 좋은 섬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십년간 지하수를 끌어올려 썼기 때문에 언제 고갈될지 늘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필자는 이 때문에 20여년 전부터 백령도의 물 부족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수년 전 군의원으로 의정활동 당시 저수지 개발을 농어촌공사에 건의했고 상수도사업본부엔 소규모 댐을 건설해 식수로 사용하자고 건의했다. 또 백령공항 준공 전에 해수담수화시설과 기수담수화시설을 만들어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하수 고갈에 대비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하나도 변한 게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관계당국의 움직임은커녕 ‘물을 아껴 씁시다’라는 스티커 하나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국제학술지 ‘네이처 워터’는 물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태양광발전으로 얻은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전력 인프라가 없는 지역에도 담수화 시스템을 공급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전력 효율이 우수하고 배터리가 필요 없어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에도 도입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구팀은 6개월 동안 뉴멕시코의 지하수 우물에서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했는데 여러 기상 조건에도 불구하고 태양광 패널에서 얻은 전기에너지 가운데 평균 94% 이상을 낭비 없이 활용했다. 그렇게 얻은 물이 하루 최대 5천ℓ에 이른다. 연구팀은 전력에 대한 접근성이 충분하지 않고 지하수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에 시사점을 남겼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물을 담수화하는 시스템은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므로 관계 당국에서는 이러한 사례도 주의 깊게 살펴보기 바란다. 물 자원은 유한하다. 더 늦기 전에 지하수 사용량을 최소화하고 대책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더욱이 인천-i바다패스 시행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 들면 물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역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물론 예산이 많이 들어가겠지만 자연의 재앙을 막기 위한 예산 확보 및 집행은 그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이다. 병도 예방했을 때보다 병이 발병했을 때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 재앙이 닥치고 나면 수십 배의 예산이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빨리 물 부족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리스크’, 새 안보팀이 대비해야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주도할 내각과 백악관의 윤곽이 구체화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고 극단적 견해를 가진 측근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지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이고 1기와도 다른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심각한 리스크는 관세 인상 위협이다. 이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 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회원국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국경에서 마약과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즉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찾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마약 억제와 이민자 차단 방안을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확전에서 휴전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싸운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반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전쟁이 아니면 참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압박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수복 목표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조건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대중 정책 역시 바이든 행정부와 다를 것이다. 시급한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변국들과 협력해 중국을 포위하기보다는 시진핑 주석과 담판을 통해 양보를 받아내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P)를 취임 후 폐기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리스크는 전 세계를 이미 강타하면서 경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정책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밀월에 아직도 도취해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의 전쟁 참여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한미일 협력 방안이 트럼프 시대에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정된 트럼프 행정부 2기 안보팀의 관심사는 방위비 분담, 북한 핵 협상,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지위 등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안보팀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잘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캠프데이비드 협상에 참석했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사퇴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내년 1월 퇴임하기 때문에 3국 정상들의 인적 유대도 사라졌다. 이달 예정된 전면 개각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안보팀이 발탁되기를 기대한다.

[삶, 오디세이] ‘꼬리표’ 농담처럼 사소화되는 편견과 차별

꼬리표란 단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 늘 따라다니는 떳떳하지 않은 평판이나 좋지 않은 평가’를 뜻한다. 그런데 누구나 이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음을 잘 알고는 있어도 자신이 누군가에게 무심코 던지는 말로 그 꼬리표를 붙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 일례로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단어를 한번 돌아보자. 이것의 사전적 의미는 각각 ‘동남아시아의 음역어’와 ‘한 사회 안에 여러 민족이나 여러 국가의 문화가 혼재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동남아’는 ‘아시아의 동남부’ 지역인 ‘동남아시아’를 한자로 간단히 나타낸 지리학 관련 용어이고 ‘다문화’란 한 사회의 문화적 변화 양상을 의미하는 사회문화학 관련 용어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의 학계가 아닌 일반 언중은 이 ‘동남아’와 ‘다문화’라는 용어를 그 본래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을까.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특정 언어·문화권의 사람들을 ‘동남아’나 ‘다문화’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이민자들의 출신 국가 중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동남아시아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자부하는 일부 한국인은 그 지역에서 온 이주민을 통틀어 ‘동남아’ 내지는 ‘다문화’라고 부르곤 한다. 이때의 ‘동남아’는 더 이상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동남부를 뜻하는 지리학 용어가 아니다. 그보다는 동남아시아 출신의 이주민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이들을 향한 편견이 내재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동남아’는 편견으로 점철된 꼬리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다문화’라는 용어는 또 어떠한가. 한국의 언중 사이에서 주고받는 ‘다문화’는 더 이상 학계에서 공유되는 사회문화학 용어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언중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한민족 순수 혈통’이라 할 수 없는 이주민을 구분하고자 하는 꼬리표로서의 기능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평범한 말로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붙이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그렇게 꼬리표가 붙은 대상자는 본인도 의도하지 않은 편견 속에 숨죽이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꼬리표에 짓밟히고 있는 셈인데, 평범한 말로 꼬리표를 붙인 당사자들에게 이러한 지적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무심코 그랬다거나 농담으로 한 소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생각 없는 말이나 농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하는 동시에 언어에 사고가 반영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말들 속에 편견이 내재해 있거나 그 속에서 잠재적인 편견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배우가 한 시상식에서 “편견은 차별을 낳고, 차별은 폭력으로 이어진다”고 한 적 있다. 무심코 던진 말에는 모종의 편견이 내재해 있을 수 있고 그래서 농담이라 항변하는 말들도 누군가에게는 꼬리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한번 붙은 꼬리표는 쉽게 떼기 어려우며 그 꼬리표로 차별받는 일상은 당사자에게 벗어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로 작용한다. 이렇게 농담처럼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사실은 편견 어린 차별이자 잠재적인 폭력임을 기억해야 한다.

[김종구 칼럼] 계엄 정당성에 의료 사태를 써 먹다니

탄광 정리를 결심하고 있던 대처 수상이다. 우려했던 강성 노조위원장이 선출됐다. 진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탄광이 파업할 때의 가장 큰 문제는 석탄 발전소다. 석탄 재고량을 충분히 확보하도록 동력자원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탄광 파업이 시작되면 시위대가 석탄 반출을 막을 것이다. 발전소로 수송이 가능한 위치에 석탄을 가져다 놓아야 했다. 기름, 원자력, 가스 발전소도 최대한 가동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준비한 대처의 승리로 끝났다. 대처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가 소신으로 꽉 찬 방향성이다. 강성 노조를 내부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이들을 눌러야 영국병을 치유한다고 했다. 이 판단에는 토론이 필요 없었다. 직(職)을 건 통치 판단이었다. 다른 하나는 준비된 추진력이다. 노조가 기마병 진압에 항의했다. 다음에는 탱크를 보내겠다고 답했다. 괜한 허풍이 아니었다. 발전소를 충분히 돌릴 석탄을 이미 쟁여 놨다. 노조가 꺼낼 무기를 미리 빼앗은 것이다. 1984년 영국 탄광 사태와 2024년 한국 의료 사태. 출발은 닮았다. 정부 의지가 분명했고, 여론 지지가 높았다. 2025년 의대생을 2천명 늘린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정부의 과업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압도적인 여론이 지지를 표했다. 의료개혁이 80%, 의대 증원이 70% 언저리였다. 의사들의 집단 행동을 보는 눈은 싸늘했다. 의료계 ‘험악한 입’도 고립을 자초했다. 금방이라도 성공할 것처럼 보였다. 그 여론이 변한다. 의료 파행 장기화에 대한 여론을 물었다. 정부·여당 책임 49%, 의료계 책임 35%다(엠브레인퍼블릭 조사·10월 말). 불과 4개월여만에 반전이다. 의료개혁 자체에 대한 지지가 바뀐 것 같지는 않고. 결국 사태 장기화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다. 전공의 집단 사퇴가 줄을 잇는다. 사실상의 진료 거부가 횡행한다. 의대생들은 계속해 수업을 거부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은 없다. ‘의료계 위법에 엄정 대응’이라던 대통령의 경고는 오간 데 없다. 그 사이 등골이 오싹할 통계들이 쏟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5월 통계도 그 중 하나다. 외래·입원 진료 환자가 209만명 줄었다. 전년 대비 -1.8%다. 진료 후 사망한 환자는 2천명 늘었다. +2.9%다. 의료 공백 결과가 아니라고 할 텐가. 그러면 우리 옆에서 벌어진 참상은 어찌 설명할 건가. 수원에 사는 16살 A군이 쓰러진 건 지난달 15일 0시다. 병원 4곳에서 받기를 거부했다. 6시간을 헤맨 끝에 수술에 들어갔다. 끝내 숨지고 말았다. ‘응급실 자리가 없다’ ‘수술 인력이 없다’…. 환자 가족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겠나. 생떼 같은 아들을 앞세운 어머니다. 그의 절규가 듣는 이의 억장을 무너뜨린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병원을 못 찾던 순간을 설명했다. “너무 너무 무서웠어요. 이러다 잘못되겠다. 결국은.” 진료 거부인가. 의사를 입건(立件) 조사해야 한다. 의료 공백인가. 주무 장관을 해임해야 한다. 탄광 노조가 석탄을 끊을 걸 알았다. 그래서 대처 수상은 석탄을 쟁여 놨다. 그래서 밀어붙였고 영국을 살렸다. 의료계 파업을 모두가 알았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정책 집행은 밀리고 환자는 죽어 나간다. 대책이 이 정도로 없을 수 있나. 그 없던 대책이 황당한 곳에서 튀어 나왔다. 3일 밤 새벽 계엄 포고문 1호다. ‘전공의들은 즉각 복귀하라’며 처단하겠다고 했다. 의료 개혁을 계엄 정당화에 써 먹겠다는 것이다.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아픈 국민을 위한 정부인가. 윤석열 정부의 파국, 그 끝에서 의료 정책 무능을 본다.

[경기만평]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사설] 병원 4곳이 거부한 16세 소년이 죽었다... 계속 환자 죽일거면 의료개혁 포기하라

모야모야병을 앓던 16세 환자가 숨졌다. 영정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아들이 웃고 있다. 어머니의 피를 토해내는 듯한 오열이 전해졌다. “남편이 저한테 그냥 보내 주자 했어요. 고생했으니까 보내 주자고. 우리가 너무 많이 잡았다고.” 이 아들의 안타까운 마지막 날이 보도됐다.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고통을 견디고 있었다. 코앞 대학병원을 두고 다른 지역을 찾아야 했다. 끝내 사망했다. 어머니는 “나는 아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며 절규했다. 환자가 쓰러진 것은 지난달 15일 0시30분이다. 수원시 우만동 집에 구급차가 긴급 출동했다. 70분 만에 수원시 권선구의 한 병원에 도착했다. 병원 측이 치료가 불가능하다며 전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받아 주는 병원이 없었다. 수원에 있는 대학병원은 전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용인에 있는 대학병원, 서울의 한 대학병원도 받지 못하겠다고 했다. 결국 15㎞ 떨어진 군포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신고 후 6시간이 지났고 결국 사망했다. 환자의 생명은 꺼져 가고 있었을 것이다. 가족에게는 피 마르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들을 거부한 병원들이 들었던 이유가 전해졌다. 서울의 대학병원은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다’고 했고, 용인의 대형병원은 ‘인력 문제로 답변에 시간 걸린다’고 했고, 수원의 대형병원은 그냥 ‘전원이 불가하다’고 했다. 또 다른 수원의 대형병원은 연락도 닿지 않았다. 이게 그날 0시부터 6시간 동안의 대한민국이다. 의사·병실 없어 환자가 숨져 간 나라였다. 진료 거부는 당연히 조사돼야 한다. 의료법에 ‘의료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 요청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그런데 이런 사법 기능이 작동하게 될지 의문이다. 18개월 영아가 손가락이 절단됐다. 부모가 부둥켜안고 사방을 뛰었다. 병원 15곳에서 수용을 거부했다. 이런데도 추상같은 의법 조치는 없다. 의사가 국가와 따로 논다. 공권력이 사라진 의료 통제 불능이다. 끝 모를 의료 사태다. 파국을 조정하려던 여·의·정 협의체도 좌초됐다. 쟁점은 2025년 의대 정원 문제였다. 수시 미충원 인원 100명 정도가 있다. 이걸 정시로 넘기지 말자고 요구했다. 예비 합격자 규모도 줄이자고 했다. 의대 정원을 ‘약간’ 줄이자는 요구다. 정부가 ‘수용 불가’를 고수하며 협의체가 해체됐다. 이러는 사이 환자들이 병원서 거부당하고 있다. 더러는 참담하게 죽어 가고 있다. 이쯤에서 묻게 된다. 환자 목숨 위에 의료개혁 있나. 윤석열 정부에는 30년짜리 치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길을 헤매는 환자에게는 30분이 지옥이다. 환자 희생 담보 잡는 개혁이라면 접는 게 옳다.

[사설] 빨라진 은퇴 시계... 정년연장 등 사회적 대타결 있어야

인천시민의 평균 은퇴 연령 48.3세. 보편적 통계 결과는 아니라 해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회의 생산적 구조가 크게 바뀐 모양이다. 그에 맞춰 우리 사회 구성원 삶의 양식도 많이 달라진 셈이다. 갈수록 은퇴 시계가 급하게 빨리 돌아간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 생산성까지 ‘불안’을 마주할 것이 문제다. 인천고령화사회대응센터가 최근 ‘은퇴와 노후 준비’ 조사를 했다. 인천의 ‘주된 일자리’에서 은퇴한 경험이 있는 인천시민 623명이 대상이다. ‘주된 일자리’는 가장 오랜 기간 숙련을 축적해 온 일자리를 말한다.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이기도 하다. 조사 결과 은퇴 평균 연령이 48.3세로 나왔다. 성별로는 남성이 52.1세, 여성이 45.9세였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47.4%로 가장 높았다. 나머지 40대 28.7%, 30대 이하 14.3%, 60대 9.6% 등의 순이다. 평균적으로 한 직장에서 14.4년 일하고 은퇴한 것으로 나왔다. 이들의 은퇴 이후 삶은 매우 불안정하다. 재취업에 성공해도 절반 가까이는 은퇴 전 ‘주된 일자리’의 경력을 살리지 못한다. ‘주된 일자리’ 경력과의 연관성이 5점 만점에 2.77점 정도다. 또 이전 직장과 같은 지위를 유지한 이들이 33%에 불과하다. 대부분 지위가 낮아지는 것이다. 생계유지 등을 위해 원래 직장보다 월급 등이 더 낮은 고용조건에서 일한다. 이는 다시 노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려 투잡까지 뛴다. 조기 은퇴는 1차적으로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현재 인천 60세 이상 어르신의 70%가 중위소득 50% 이하다. 인천 65세 이상 어르신의 월평균 연금(기초연금·국민연금 등) 수급액은 57만7천원이다. 최소 생활비 수준에도 못미치는 노인빈곤이다. 이 때문에 60세가 넘어서도 소득활동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인천만의 문제는 아니다. 올해부터 2차 베이비붐 세대(1964~74년생) 954만명이 법정 은퇴 연령에 들어선다. 1차 베이비붐 세대(705만명)보다 훨씬 많은 예비은퇴집단이다.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있지만 세대 간 갈등, 기업 과부담이 장벽이다. 이를 넘어서려면 연대와 포용의 자세가 요구된다. 그래야 경제사회 정책의 큰 틀 안에서 일괄타결이 가능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40대부터 노후준비 프로그램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기존의 조기 은퇴자들은 정년 연장 혜택의 영향권 밖에 있다. 이들에 대한 맞춤형 복지도 고민할 때다.

[지지대] ‘삼일천하’ 갑신정변

조선이 근대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10년의 세월’을 잃어 버렸다. 역사학계가 내린 명쾌한 정의다. 갑신정변 얘기다. 그 현장으로 되돌아 가보자. 서울 한복판에선 근대식 우편제도인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이 열렸다. 그때 우정총국 인근 민가에서 불길이 솟아 올랐다. 잔치가 열리던 마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른바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시작이었다. 1884년 12월4일이었다. 사태는 결국 피를 불렀다. 경우궁으로 피신한 고종을 찾아온 조영하와 민태호 등 대신 11명의 목도 잘렸다. 일본군 200여명을 등에 업은 개화파는 이튿날 곧장 내각 명단을 발표했다. 정변 사흘째 오전 고종은 혁신책을 내놨다. 거사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을 뒤집는 일이 발생했다. 일본군이 청나라 군대 1천500여명에게 밀려서다. ‘일본군 1명이면 청나라 군대 20명을 이길 수 있다’던 호언장담과는 달리 첫 싸움에서 병사 30여명이 전사했다. 갑신정변은 ‘위로부터의 변혁’이었기에 혁명이라 불리지 않는다. 김옥균은 박영효와 서재필, 서광범 등과 패주하는 일본군을 쫓아갔다. 군중의 분노는 심화됐다. 박영교와 홍영식이 백성들의 손에 살해됐다. 김옥균의 생가와 일본 공사관 등이 불에 탔다.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분명한 건 이 사태가 재정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종의 위임장을 소지한 김옥균이 시도한 일본에서의 국채 발행이 ‘위임장은 위조’라는 수구파의 모함으로 무산됐다.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8개월 전의 일이다. 견제 세력이 없어진 수구파는 독일인 고문 묄렌도르프의 권고대로 악화(惡貨)인 당오전을 찍어 냈다. 인플레에 찌든 민초의 마지막 고혈은 왕처럼 군림하던 위안스카이(袁世凱)의 위세를 업은 청상(淸商)에 의해 다시 짜였다. 특별한 자성과 노력이 없으면 잘못된 역사는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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