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대통령 윤석열의 남은 길, 통합 위한 밀알

현실 정치에서 저만치 떨어져 지낸다. 정치도 여론도 그를 잊어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12월3일 밤은 충격이었다.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대통령 윤석열’.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중단하고 일어섰다. 급한 마음에 국회로 차를 몰았다.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있었다. 다시 용산으로 차를 돌렸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다시 돌려 왔지만 역시 조용했다. 그렇게 대통령실 앞을 세 번 오갔다. 그가 말했다. “큰일났다. 통합해야 한다.” 다들 그랬다. 처음에는 공포였다. ‘계엄 선포’, ‘계엄군 통제’, ‘영장 없이 체포’, ‘위반 시 처단’…. 기자들에게는 ‘언론 출판 계엄군 통제’까지. 3시간만에 국회가 계엄 해제 결의를 했다. 계엄군이 고개를 숙이며 돌아갔다. 시민들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심장 박동을 두드리던 공포는 누그러졌다. 대신 그 빈자리에 분노가 채워졌다.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분노였다. 밝아 온 12월4일 구호는 이미 정해졌다. ‘윤석열 탄핵’, ‘윤석열 처벌’. 이때까지는 ‘안쓰러운 이해’도 있었다. 비상 계엄 선포의 이유를 두둔하는 논리였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왔다. 김민전 최고위원이 ‘야권의 무도함을 알리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울먹였다. 인요한 최고위원은 ‘야당이 대통령과 대통령 가족에게 몰아붙인 점을 기억하자’고 했다. ‘정치가 아닌 의사로서의 소견’이라고 했다. 20% 미만 지지층의 측은지심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나’는 동정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러나 이런 배려도 한순간 사그라들었다. ‘국회 무력화 기도’다. 계엄군의 첫 번째 작전은 국회 점거였다. 계엄하에서도 국회 탄압은 안 된다. 이 자체가 계엄법 위반 행위다. 여기서 더 나간 주장도 나왔다. 중요 정치인에 대한 체포 시도 주장이다. 그 속에 놀라운 대상도 포함돼 있었다. 정부와 한 몸인 여당의 한동훈 대표다. ‘무도한 야당의 횡포’가 계엄의 사유라고 했다. 그런데 같은 여당의 대표를 체포하려 했다. 말이 되나. 체포 지시가 있었네 없었네 말은 많다. 하지만 한 대표를 체포하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한 대표도 윤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 돌아온 답은 ‘그랬다면 계엄군이 포고령 위반 때문에 그랬을 것’이었다. 국민의힘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윤 대통령을 옹호하는 정치 목소리는 사라졌다. 조기 퇴진을 위한 로드맵이 공식 화두가 됐다. 7일 국회가 탄핵을 의결했다. 불발됐지만 또 한다고 한다. 탄핵 또 탄핵…. 정권은 이미 무력화됐다. 그날, 모두가 봤다. 국민이 둘로 갈라졌다. 국회에 온 국민은 탄핵 찬성을 외쳤다. 광화문에 온 국민은 탄핵 반대를 외쳤다. 탄핵 좌절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이 있었다. 탄핵을 항의하며 몸에 불 붙인 국민이 있었다. ‘12·3 계엄’이 잘못됐음은 모두가 안다. 위법성과 무모함을 토론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국민은 둘로 갈라졌다. 이 이유를 설명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계엄 정국이 다른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대선(大選)의 셈법이다. ‘탄핵 찬성’. ‘이제 대통령은 이재명이다’는 목소리가 있다. ‘탄핵 반대’. ‘죽어도 이재명에겐 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있다. 계엄 정국에 더해진 대선 전초전. 경험 못한 분열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서두(序頭)의 화자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다. 의원, 장관, 지사, 당 대표를 했던 그다. 무력하게 헤맸다는 3일 밤 광화문 거리다. 그의 우려가 사흘 만에 현실이 되고 있다. ‘국민 분열이 걱정이다. 통합해야 한다.’ 숱하게 들었던 ‘통합’. 지금처럼 무거웠던 적이 없다. 윤 대통령은 임기를 정치권에 맡겼다.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그에게도 마지막 명령권은 있다. 이 혼란을 초래한 계엄에 속죄할 명령, 그 자신을 향한 명령이다. ‘국민 통합의 밀알이 되겠습니다.’ 그 내용·방식은 정해져 있다. 국민도 알고, 대통령도 안다. 그걸 그가 하면 된다.

[경기만평] 제 2의 런종섭이 될 뻔...?

[사설] 유정복 시장, 침묵했다고 계엄 동조는 아닐 것이다

계엄 반대 깃발을 신속히 든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직후 입장을 공개했다. ‘계엄에 반대한다, 철회돼야 한다, 시민의 일상을 지키겠다’로 요약된다. 다음 날 시청에서 브리핑을 통해 두 번째 입장도 냈다. ‘민주주의 본령을 거스르는 행위’라며 계엄 반대를 재확인했다. 그런데 전날 없던 주장이 새롭게 추가됐다. ‘이재명 방탄 국회가 비상계엄 촉발’이었다는 해석이다. 이래저래 방송에는 그의 이름이 계속 등장했다. 김동연 도지사 입장은 4일 오전 1시를 전후해 나왔다. ‘단연코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다음 날 그만의 특별한 대처가 나왔다. 외국 정상과 주지사, 국제기구 수장과 주한대사, 외국의 투자 기업에 긴급서한을 보냈다. 한국 정치에 이상 없음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캐나다 총리, 중국 부총리,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이클레이 세계 사무총장 등 각국의 2천500여명이 수신자다. 정치가 혼란스러운 계엄 정국 속에서 눈에 띈 특별한 대처였다. 오 시장의 대처는 신속했다. 그리고 묘하게 바꿔 나갔다. 김 지사는 국제적 감각을 보여줬다. 경제부총리의 각국 인적 자산을 보여줬다. 자연스레 비교된 게 유정복 인천시장이다. 유 시장의 ‘계엄 입장’은 시간이 걸렸다. 비상계엄령 선포가 있었던 3일 밤 아무 입장도 안 냈다. 4일 오전 대통령의 계엄령 해제 선포까지도 침묵했다. 첫 반응은 4일 오전 10시38분에 나왔다. 내용은 ‘국정 혼란과 국민 불신 가져온 계엄 매우 유감’이었다. 정치권, 특히 인천지역 정가가 맹비난하고 나섰다. 인천시의회 민주당 의원 9명이 성명을 발표했다. ‘계엄에 동조한 유정복 시장을 규탄한다’는 내용이다. 시민의 ‘시장’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시종’을 자처했다며 공격했다. 이들의 비난은 비단 늦은 입장 발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계엄이) 야당의 폭거에 대한 조치”라고 말했다며 이를 망언으로 규정했다. 유 시장의 사과가 없을 경우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사실 이 발언은 오 시장이 먼저 거론했다. ‘이재명 방탄 국회가 촉발했다’고 단정했다. 표현이나 내용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당연히 이 분석은 어불성설이다. 야당에 의한 의회 파행은 온 국민이 목격자다. 정부 기관에 대한 탄핵 남발, 초유의 삭감 예산안 강행 처리 등을 보고 있다. 그렇더라도 그 동등한 대처 방안에 비상계엄이 놓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균형감을 잃은 선택이었다. 이에 대한 비난은 두 시장 모두 받아야 맞다. 다만, 계엄 반대 표명의 순서로 옳고 그름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계엄 선포 직후 유 시장은 집무실에 있었다고 한다. 11시쯤 들어와 간부들과 조치도 논의했다고 한다. 시장 직무 수행에 오류는 보이지 않는다. 계엄 자체에 대한 반대도 분명히 하고 있다. ‘국민의 동의 받지 못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입장 발표가 늦었거나 안 했다는 이유로 계엄 동조 세력으로 낙인 찍는 건 다시 생각할 일이다. ‘12·3 계엄’은 구중궁궐 속 대통령이 혼자 벌인 일이지 않나.

[사설] 안산 국가산단 불황이 심상치 않다

안산국가산업단지는 우리 제조업의 말초신경이다. 국가 경제 흐름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이곳의 경제 지표가 안 좋게 집계되고 있다. 가동률은 떨어지고, 생산도 감소하고, 수출 건수도 급감하고 있다. 고용 수준은 공단 역사상 최저치로 나타났다. 2024년 3분기 실적에서 나타난 현실이다. 안산지역 전체에 주는 우려가 크다. 대한민국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과연 대책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있기는 한 것인가. 안산상공회의소가 ‘최근 안산지역 경제동향(2024년 3분기 기준)’을 발표했다. 가동률은 전 분기 대비 3.4%포인트 감소한 79.8%로 조사됐다. 전국 평균 가동률 82.6%보다도 낮다. 가동업체는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했다. 하지만 가동의 효율성을 가리키는 모든 지표가 걱정스럽다. 생산액은 전분기 대비 6.5%나 감소했다. 전년도 동기와 대비해도 2.9% 줄어든 수치다. 가동업체가 늘었음에도 기업활동의 전반적 활력이 위축됐음을 말한다. 이런 공단의 현실은 수출 감소로 연결되고 있다. 9월 안산지역의 수출입 통관 현황이 있다. 수출은 1만6천316건에 5억3천1백만 달러다. 수출 금액 기준으로는 전월 대비 4.0% 줄었다. 1년 전과 대비해도 2.6% 줄었다. 9월 안산지역 무역수지는 1억4천만달러다. 전월 대비 5.3% 감소했다. 전년 동기 대비로 보면 3.5% 증가했지만 최근 하락세가 확연하다. 국가 수출은 증가하고 있다는데 안산 국가산단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지역에 미치는 가장 예민한 수치는 고용 현황이다. 기업 활동은 물론이고 지역 생산성과도 직결된다. 3분기 고용 수준이 14만7천877명이다. 전 분기 대비 0.7%, 전년 동기 대비 2.0% 감소했다. 국가산단의 불황이 고용 악화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걱정하는 트리플 불황 조짐이다. 가동률, 생산액, 고용인원이 모두 감소하는 현상이다. 산단으로서는 가장 우려하는 위기 경보에 해당한다. 체계적 분석과 현실적 대책이 요구된다.

[지지대] ‘기다림의 미학’ 장 담그기 문화

그랬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다. 놀라울 정도였다. 그 완결은 혀끝에서 막을 내렸다. 장(醬) 담그기 얘기다. 따로 길일도 택해야 한다. 햇살이 내려앉는 양지에서 작업도 해야 한다. 일각이라도 허비하면 허사다. 우리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대부분 그렇다. 이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 위원회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가 공동체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 연대를 촉진한다고도 분석했다. 공동의 행위를 통해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 등을 조성한다고 평가했다. 장은 오랫동안 우리의 밥상을 책임져온 기본양념이다. 발효나 숙성 방식, 용도 등에 따라 다양한 장이 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장 담그기는 이처럼 다양한 재료를 버무려 만들어지고 관리·이용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 신념, 기술 등도 아우른다. 콩을 발효해 먹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선 장을 담글 때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친다. 중국과 일본과는 제조법에서도 차이가 난다.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인 문화다. 우리나라 장 담그기는 그래서 기다림의 미학이 오롯이 녹아 있다. 콩을 삶은 뒤 으깨 일정한 크기로 뭉쳐 메주를 만들고, 이를 볏짚으로 묶어 적당한 온도에서 발효하고 건조하는 데만 해도 최소 3개월 이상 걸려서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어수선한 정국에 맞이하는 근사한 소식이다.

[시베리아·실크로드, 지구 반바퀴] 오디세이 시베리아

오전 9시 우수리스크 마르코폴로 여관을 씩씩하게 출발한다. 7월9일 아침 기온 15도, 낮 기온은 25도 이내로 매우 쾌적하다. 시베리아는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잔다. 오늘 목적지는 하바롭스크. 680㎞를 가야 한다.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다. 실제로 오늘이 시베리아 대평원 자동차여행의 첫날이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자 멀리 아무르강 하류 우수리강이 보인다. ■ 헤이그 밀사 ‘이상설 선생’ 유허비 우수리강에 헤이그 밀사 정사인 이상설 선생 유허비가 있다. 이 선생은 1917년 우수리스크에서 사망했는데 “조국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유해를 화장 후 우수리강에 뿌렸다. 광복회가 우수리강에 이 선생 유허비를 세웠다. 이 선생은 신식 서양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독학으로 수학, 화학, 법학을 공부했고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했다고 한다. 탁월한 언어 실력으로 헤이그에서 열리는 1907년 ‘만국평화회의’ 대표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수학책을 직접 지어 조선인 학생에게 ‘수리 과목’을 가르쳤다. 근대 ‘한국 수학의 아버지’로 불리고 20대 나이에 성균관 대사성을 거친 천재 학자임을 알게 됐다.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 역대 대사성 명단과 함께 선생의 기록이 있다고 한다. “유유히 흐르는 아무르강에서 맴도는 고혼(孤魂)이시여 이제는 평안하소서.” 멀리 고국에서 온 후생(後生) 인사드립니다. ■ 시베리아 대평원을 향하여 출발 원주민 언어로 시베리아는 ‘잠자는 땅’이란 뜻이다. ‘시베리아’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있다. 원시림, 광활함, 혹독한 추위, 자작나무 숲, 영화 닥터 지바고 설원 등 광활한 대자연 단어가 연상된다. 여행은 언제 가느냐가 중요하다. 겨울철과 여름철 대자연의 얼굴은 전혀 다르다. 현재의 시베리아는 초여름 연녹색의 향연이다. 위도가 높아 봄이 늦게 시작해서 그런지 나뭇잎 색깔이 연한 녹색을 띠고 있다. 차창 밖 줄지어 서있는 연녹색 산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하다. 도로 옆으로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림 사이사이에 작은 농가 몇 가구, 널따란 대초원, 커다란 필지의 농지가 나타난다. 우수리스크를 벗어나 두 시간이 지나니 인가도 거의 없다. 도로 옆으로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만났다 헤어졌다 계속 달려간다. 아마 바이칼호까지 약 3천700㎞를 철도와 나란히 서쪽으로 달려갈 것이다. ■ 위험한 시베리아 국도 모스크바로 향하는 시베리아 횡단 국도는 고속도로가 아니고 편도 1차선(왕복 2차선) 으로 협소한 길이다.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와 동쪽 태평양을 연결하는 국가의 중요한 간선도로임에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미흡함을 느낀다. 산업용 도로이기 때문에 관광객이나 승용차는 적고 대부분 화물차다. 겨울철 눈으로 파손된 도로는 제때 보수가 안 돼 곳곳에 포트홀이 매우 많고 자동차가 튀어 오르는 바운딩이 자주 있어 운전 여건 최악의 위험한 길이다. 조금만 전방 주의를 소홀히 하면 포트홀에 빠지고 차가 위아래로 요동친다. 앞쪽의 화물차들은 천천히 달리므로 화물차를 만날 때마다 추월해야 한다. 반대 차선에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면서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야 하므로 시속 150~160㎞의 위험한 급가속 운전을 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 재정이 어려워 도로 보수가 지체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를 검색해 보니 러시아 국방비가 전쟁 전 국내총생산(GDP)의 4.3%인데 지난해는 6.7%(한국은 2.9%)로 증가했다. 전비 조달을 위해 금년에 세금을 대폭 인상한다고 한다. 소득세율은 전쟁 전 13% 단일세율에서 금년부터 최고 22% 누진세율로 인상, 법인세율도 전쟁 전 20%에서 금년부터 25%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 평화스러운 숲속 길 드라이브 ‘카메이트’인 L실장은 여수에서 온 분이다. 향후 두 달 동안 좁은 차에서 함께 보내야 할 자동차 가족이다. 점심은 휴게소의 야외 식당에서 샤슬릭 꼬치구이를 먹기로 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우리를 유혹한 것이다. 샤슬릭 꼬치를 굽는 러시아 직원이 과거 마산에서 일했다고 하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우리는 계속 광활한 산림과 대평원을 지나간다. 언어와 단어로 광활한 대평원의 느낌을 전달할 수 없다. 현대인들은 속도의 경쟁에서 중압감을 받으며 살아간다. 빌 게이츠가 말한 ‘빛의 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뒤떨어지면 낙오자가 된다. 문명 세계의 속도, 빠름, 효율성, 날짜, 요일, 시간 관념을 이곳에서는 잠시라도 잊고 싶다. 무심히 창밖의 초원. 산림, 하늘만 쳐다볼 뿐이다. 하바롭스크까지 680㎞의 먼 거리를 달려 가면서 수시로 급변하는 다양한 얼굴의 시베리아를 마주한다. 어느 구역은 소나기가 계속 내리고, 어느 구역은 햇볕 쨍쨍한 파란 하늘이다. 어디는 흐리고, 어디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다. 동해안에서 서울까지 280여㎞ 짧은 거리를 차로 올 때도 날씨가 여러 번 변하는 것과 비교해 본다. 녹색의 대초원과 자작나무 숲속을 지나 석양 무렵에 목적지 하바롭스크 화려한 러시아정교회 첨탑을 마주한다. 첫날 680㎞를 무사히 달려왔다. 마침 시내에 고려인 식당이 있어 저녁식사는 한식으로 한다. 고객은 러시아인들이고 외국인은 우리 일행뿐이다. 검색해 보니 고려인 후손이 8천명 산다고 한다. 1991년 소련 해체 후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곳은 하바롭스크주의 주도이며 러시아 극동에서 가장 큰 도시다. 아무르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아무르강변의 호텔은 전망도 좋고 침대와 샤워 시설이 매우 깨끗하다. 샤워실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하루의 여독이 풀린다.

[문화산책]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열정을 뿜어냈던 오베르쉬르우아즈에 가면 그가 그렸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강산이 수차례 변해도 마을 곳곳에 자리한 성당과 저택, 심지어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밀밭까지 세대를 뛰어넘어 그 시절과 교감하는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흐를 자랑스러워하는 이 마을 주민들의 수많은 노력이 담겨 있다. 주요 장소마다 작품이 그려진 안내판을 비치해 고흐의 눈과 우리의 시각에 비친 풍경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고 고흐를 찾아다니는 순례자들을 위해 최대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근래에 전쟁과 각종 개발로 천지가 개벽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 일제강점기를 거쳐 폐허가 됐다가 복원으로 되살아난 고궁은 관람객들의 편의와 현실을 고려한 재창조에 가깝고 양반의 행차를 피해 다닌 피맛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땅에 귀를 기울이면 지하에 잠들어 있는 옛터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급격한 발전으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우리는 지나가 버린 옛것의 가치를 조금씩 갈구하고 있다. 낡은 기와집만 남아 있어 슬럼화되던 황리단길은 첨성대와 불국사보다 붐비는 경주 최고의 관광지가 됐으며 폐공장과 버려진 집은 독특한 공간을 지닌 카페로 사랑받고 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북촌과 서촌은 항시 외국인들로 붐벼 몸살을 앓는 중이다. 사라져 가는 옛 골목길을 재조명하고 젊은 세대의 감각에 맞게 카페와 상점이 잇따라 들어서며 활성화된다면 무엇보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사례를 제외하고 천편일률적인 구성, 건물주들의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이 겹쳐 그 열풍이 사그라든다면 거리는 이내 빈 간판만 덩그러니 남은 채 을씨년스러움만 풍기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오베르 마을의 고흐처럼 그곳이 지니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튼튼한 스토리텔링을 갖추지 못하고 유행만을 좇는다면 이내 인기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의 본질은 화려한 치장과 그럴듯한 외양이 아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시대를 관통하는 뼈대가 핵심이다. 경주의 황리단길이 날이 갈수록 사람들로 붐비는 이유는 담장 너머 신라 천년의 고분군이 이곳의 정체성을 확연히 증명하기 때문이고 수원화성의 행리단길이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정조 이래 굳건한 성곽이 예나 지금이나 자리를 지켜서다. 켜켜이 쌓이는 세월의 때만큼이나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어 있기에 이곳을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자아낸다. 4대 강 이후 남한강의 경관은 완전히 변했지만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공간은 여강 절벽을 굽어보는 자리에 들어선 여주 신륵사다. 절에서 강의 경관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이 공간에 들어선 다층전탑은 고려시대 이래로 이곳을 지나는 뱃사공의 안전한 항해를 기원했다. 강 건너에 호텔이 들어서고 강변의 모래밭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신륵사와 전탑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존재들 덕분에 나루터를 오가던 황토돛배가 여행객을 싣고 예전의 수려했던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흔들다리나 케이블카, 각종 위락시설로 치장해도 잠시 사람들의 흥미를 끌 뿐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린 케이스가 부지기수다. 우리는 그동안 본질을 유지하고 있는 가치는 애써 무시한 채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닐까.

[사설] 윤석열 계엄, 지지층 20%에 대한 도리도 아니었다

45년 만에 선포된 비상계엄이었다. 그 이유가 느닷없어 국민이 놀랐다. 우리 현대사에 기록된 비상계엄은 모두 12번이다. 여수 순천·제주 사건 계엄(1948년), 부마 항쟁 사건 계엄(1979년) 등은 치안공백이 이유였다. 4·19 계엄(1960년)은 혁명, 5·16 계엄(1961년)은 군사 정변이 이유였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계엄(1979년)은 국가 원수 유고가 이유였다. 이 중 어떤 것도 이번 계엄 사유와 겹치지 않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이상했다. 실패한 이번 계엄을 두고 두 가지 위법성 논란이 나온다. 기본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하나고, 절차를 위반했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정부 내에서 류혁 법무부 감찰관이 의견을 냈다. 위법한 계엄을 따를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위법성을 주장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계엄의 위법성 자체가 탄핵 사유다. 대통령실이 해명해야 하는 부분이다. 정치적 책임도 있다. 담화에서 계엄 사유가 열거됐다. 종북 반국가 세력, 국가 재정 농락, 국가기관 교란, 범죄 집단 국회 등이다. 거대 야당의 폭거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예산으로 정부 숨통을 조인 것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계엄 사유에 이르지는 못한다. 국회 대치는 정치력으로 푸는 것이다. 치안 범죄는 사법기관의 일상 업무다. 계엄이 아닌 긴급명령권, 긴급재정경제처분·명령권(제76조 1항)도 있었다. 과했음이 분명하다. 국가·국민에 미친 피해가 크다. 국가의 경제지표가 황망하게 추락했다. 담화 직후 환율은 1천440원대까지 치솟았다. 주식 선물·코인이 급락했다. 정규 시장이 시작된 4일 장에서도 충격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코리아 디스카운트 확대다. 세계 주요 외신이 한국 상황을 ‘사태’로 타전했다. 국가 신인도를 한 방에 떨어뜨렸다. 윤 대통령이 밝힌 이런저런 계엄 선포 사유, 그 모든 위기보다 이게 더 크다. 내우외환은 그가 불렀다. 국민적 분노가 높다. 계엄 선포 직후 수백명의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왔다. 대학 교수들, 변호사 단체, 노동 조합 등의 성명이 이어졌다. 계엄 해제 요구안 통과 이후에는 윤 대통령 책임으로 옮아갔다. 탄핵, 사임, 체포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권도 어디 한 곳 윤 대통령을 두둔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48시간 내 사임’을 통첩했다. 조국혁신당과 탄핵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책임자 문책을 말한다. 마지막 보루도 무너지고 있다. 20% 지지층의 분노와 실망이다. 그동안 안쓰럽기만 한 지지였다. 그래도 그들이 가졌던 건 기대다. 김 여사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고, 채 상병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고, 명태균 의혹을 풀어주길 바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했다. 급기야 상상도 못했던 상황까지 끌고 들어갔다. “시작했으면 성공이라도 하지”라는 탄식이 들린다. 얼마나 참담하면 이러겠나. 윤 대통령의 정치는 캄캄하다. 어떤 격변이 와도 이상할 게 없다. 어울리지 않는 주문이 있다. 김건희 여사와 연관된 모든 특검을 수용해라. 대통령 본인이 연계된 의혹을 낱낱이 고백해라. 언젠가 거쳐도 거쳐야 할 과정 아닌가. 현직 대통령 때 수용했다는 평이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나. 지금 대통령 실 밖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냉정히 보면 이럴 시간이 주어질지 여 부도 확실치 않다. 도대체 김건희 특검은 왜 그렇게 안 받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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