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인천문화예술40년사’ 출판기념식에서

계엄령을 선포했고 포고령에 담긴 문구는 살벌했다. 집회를 열 수 없다는데 출판기념식은 가능할까 싶었다. 공들여 편찬한 책자 탄생을 자축하는 자리조차 뜻한 바대로 가질 수 없다니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엄 진행 과정을 시민들과 국회가 제압했고 출판기념식은 열렸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힘을 불어넣기라도 한듯 한자리에 모인 인천문화예술가들은 담담하고 의연했다. 인천문화예술 40년을 정리하겠다는 기획은 대담했다. 40년 역사를 기록하려고 맘먹은 지 3년이 지나 책자가 나왔다. 100명 남짓 모였지만 규모 이상으로 영예로운 기념식이었다. 인천직할시 출범 이후부터 40년, 반세기 가까운 기간과 방대한 영역을 망라하려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록에 참여한 필진만 56명이고 인천사 전문가 10명이 감수했다. 편찬 기준을 논의하는 데만도 10여명 위원이 힘을 모았다. 자문에 참여한 문화예술가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훌쩍 넘을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유례없는 인천 역사에 남을 큰 사업이었다. 나는 인천 청소년 문화예술활동 40년 역사를 썼다. 관련 기록이 충분하지 않았고 증언해 줄 인사도 많지 않았다. 자료를 뒤지고 옛 활동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배운 게 많았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온 이들의 족적이 다시 보였다. 80년대 청소년들은 군사문화 틈새에서 진통을 겪으며 성장했다. 글을 쓰면서 참고 삼아 뒤적였던 계엄이라는 단어를 40년이 지나 접하게 된 상황을 훗날 어떻게 기록할까 상상했다. 초현실, 비현실, 어떤 표현으로도 기록하기 어려운 타임슬립 같았다. 다만, 청소년들이 펼치는 문화예술 활동에 계엄은 풍자 대상이 되리라 확신했다. 청소년들 시민의식은 급속하게 진화했다. 국회 앞에 모여든 학생들은 콘서트 야광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오늘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를 즐기고 있다는 상징이다. 출판기념식에서 인천문화예술에 대한 희망을 글로 남기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무거운 시기였고 엄숙하게 쓰려니 잔치 분위기가 신경 쓰였다. 문화예술은 시대와 불화하는 게 숙명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비장한 시국이므로 이후 40년 인천예술이 가야 할 방향을 결의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바깥은 여전히 혼란한 정국이고 요동치는 세상에 문화예술이 서야 할 자리는 다시금 선명해야 했다. 축하 잔치는 어엿한 호텔연회장이었지만 나는 폐허 위를 살고 있었다. ‘나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시국선언문이 드러낸 삶에서 비켜 서 있을 수 없었다. 폐허라는 은유가 국회에 진입한 군홧발을 지켜봐야 하는 직설이 돼버린 역사가 몸을 관통한 통증은 극심하다. 기나긴 40년, 지난 세월 중에 이토록 참담한 장면이 몇이나 있었을까. 청소년들이 외치는 탄핵 요구 함성을 들으며 성직자들이 질타한 “어찌 사람이 이 모양인가”를 넘어설 문화예술을 생각했다. 나는 잔치 자리에 앉아 판을 갈아엎을 고민에 몰두하고 있는 이몽룡을 떠올린다. 계엄 난리 중일지라도 잔치는 흥겨워야 하고 축제는 열려야 한다. 경종을 울리는 건 언제나 예술의 몫이다. 거나한 자리 한편에 앉아 ‘금준미주 천인혈’을 쓰는 시인이 있어 좌중은 술렁대며 변혁 예고음을 감지한다. 문화예술 40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하필 시대착오 사또 패악질 와중이었다. 이 모양인 사람과 시대에 일침을 가한 시인처럼 나도 쓰련다. 거리는 민주주의 축제로 들끓고 시대는 오늘을 빛나는 역사로 기억하리라. 지난 40년 인천에서 꿈틀대던 문화예술 활동이 오늘을 만들었다. 미래 역시 청소년 문화예술활동으로 찬란할 것이다. 40년은 그들 것이므로.

[김종구 칼럼] 이 와중에 ‘윤석열은 우리가 잡겠다’는 검경 싸움

휴대전화 확보는 모든 수사의 기본이다. 휴대전화를 숨기는 건 피의자의 기본이다. 그만큼 휴대전화의 증거능력이 절대적이다. 김용현 전 국방장관의 수사는 더욱 그렇다. 12월3일 밤 모든 게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휴대전화를 두 기관이 나눠(?) 가졌다. 검찰 특수본이 8일 새벽 한 대를 압수했다. 김 전 장관을 긴급체포하면서다. 경찰 특수단은 8일 오전 다른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김 전 장관 집, 사무실 압수수색을 통해서다. 메신저 등 대화 확인을 위해 포렌식이 필요하다. 검찰 특수본과 경찰 특수단이 따로 한다. 정보 등을 공유할 계획은 전혀 없어 보인다. 기자들의 취재가 양쪽을 동시에 향한다. ‘어느 쪽 휴대전화에서 증거가 잡힐까’. 이게 무슨 컴퓨터 수사 게임도 아니고. 검경의 포렌식 경진대회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전복하려 했던 내란 수사다. 현직 대통령을 입건한 전대미문의 수사다. 이런 수사에서 벌어지는 증거 쟁탈전이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12월3일 밤까지 윤석열은 인사권자였다. 검찰총장도 임명했고 경찰청장도 임명했다. 부장검사 인사, 총경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랬던 인사권자가 권력을 잃었다. 임기마저 남의 손에 맡겨 놓은 처지가 됐다. 내란이라는 어마무시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그 수사권을 두고 검찰과 경찰이 맞붙었다. ‘성역 없는 관련자 엄벌’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그 대상은 ‘윤석열’이고, 그 엄벌은 ‘구속’이다. 결국 ‘우리가 윤석열 잡겠다’는 싸움이다. "윤통도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거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올린 글이다. 문맥으로 봐 한동훈 저격용 같다. 검경을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건 그렇게 볼 사안도 아니다. 국가원수의 내란 혐의를 파헤치는 일이다. 경우에 따라 대통령을 소환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 구속이라는 상황도 상정돼 있다. 이런 수사에 ‘휴대전화 쟁탈전’이 말이 되나. 국방장관 신병 달라, 못 준다고 싸울 건가. 장군(將軍) 먼저 체포해 가기 경쟁이라도 할 건가. 수사가 복잡하지 않다. 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범죄 모의를 파악할 대상과 절차가 간단하다. 선포 이후의 활동도 두 세 시간이었다. 국회와 선관위 등에서만 상황이 있었다. 명령 흐름 단계가 비교적 간단하다. 대통령 윤석열, 국방장관 김용현, 계엄사령관 박안수, 특수전사령관 곽종근,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방첩사령관 여인형이 수사 대상이다. 행안부 장관, 경찰청장, 서울경찰청장도 대상이다. 언론에는 이미 많이 나왔다. 법률 검토도 어렵지 않아 보인다. 우선 계엄 선포의 위법성은 수없이 제시됐다. 헌법 77조에 그 내용과 정도가 잘 적혀 있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그날 밤 우리나라에는 어떤 비상사태도 없었다. 계엄이 국가에 끼친 내우외환의 예는 널려 있다. 쏟아지는 외신(外信) 보도가 그 단면이다. ‘대만에 더 뒤처질 위기’(블룸버그), 투자 리스크 증폭(모건스탠리)…. 환율 폭등과 주식 폭락도 증거다. 벽(壁) 없이 갈 수사다. 어쩌면 수사 속도가 정치 속도를 따라 잡을 수도 있다. 대통령 소환이 모두의 짐작보다 빠를 수도 있다. 이걸 검경 수사권 논쟁이 막고 있다고 보지 않나. 검찰은 경찰의 사건 관련성을 얘기한다. 특수본 본부장이 “이 사건에서 가장 관련자가 많은 데가 경찰”이라고 했다. 실제로 위법성이 확실한 국회 통제에 경찰이 투입됐다. 경찰도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그렇다고 검찰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법무장관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많다. 검찰 출신 대통령에 대한 정서적 불신도 있다. 검경 누구든, 서로 내칠 입장이 아니다. 12·3 계엄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됐다. 거기엔 대통령의 탐욕이 있었다. 계엄 수사권 충돌도 그런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여기엔 검찰과 경찰의 기관 탐욕이 있다.

[경기만평] 희미해져가는 약발…

[사설] 경찰이 국회 불법 점거했는데, 그 수사를 경찰이 하나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등 혐의로 입건했다.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박세현 본부장은 8일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발이나 고소가 되면 절차상으로 피의자로 입건되는 것이 맞다. 박 본부장은 구체적으로는 직권남용과 내란죄 두 혐의를 수사한다고 덧붙였다. 또 사건의 사실 관계를 설명했는데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라고 했다. 주목해 볼 것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체포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시30분 검찰에 출석했다. 내란 등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았고 6시간여 만에 긴급체포됐다. 김 전 장관이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도 압수됐다. 김 전 장관은 12·3 계엄령 선포를 대통령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계엄군 출동 등 구체적인 지휘도 대통령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수사가 의외로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수사는 복잡하지 않다. 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 등 일부의 결정이다. 범죄의 모의를 파악할 대상이나 절차가 많지 않다. 계엄 선포 이후의 활동도 두 세 시간에 불과하다. 국회와 선관위 등에서만 상황이 있었다. 명령 흐름 단계가 비교적 간단하다. 내우외환은 증시·환율 혼란, 국격 추락 관련 외신 등으로 설명할 것이다. 별도의 수사 파트로 정리되고 있을 것 같다. 여기에 국민적 요구까지 팽배하다. 곧 대통령으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바람직스럽지 않은 장면이 목격된다. 검경 수사권 마찰 조짐이다. 계엄 관련 수사는 현재 검찰 특수본과 경찰 국수본이 하고 있다. 당연히 정리 또는 통합이 논의될 수 있다. 아마 검찰이 경찰에 관련 제안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찰이 거절했다고 전해졌다. 경찰은 8일에도 “검찰과 합동수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경찰이 제안하면 언제든 같이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보기에 좋지 않다. 검찰에서 경찰 수사의 부적절성이 흘러 나온다. 박 본부장도 “이 사건에서 가장 관련자가 많은 데가 경찰”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계엄 상황의 핵심 조직은 군과 경찰이다. 위법성이 많았던 국회 통제도 경찰과 군이 담당했다. 수사에서 핵심이 될 대상이 이 부분이다. 경찰도 알고 있을 것이다. 국수본도 지난 6일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목현태 국회경비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또 다른 마찰은 수사 범위를 둘러싼 해석이다. 경찰은 내란죄가 경찰의 수사 범위라고 주장한다. 검찰은 당연히 검사가 수사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현재 성역 없는 수사 의지에는 두 기관 간 차이가 없다. 다만 이처럼 겹치는 이중 수사가 가져올 뜻하지 않은 왜곡을 우리는 우려한다. 사건은 하나고, 진실도 하나다. 이런 수사를 끝까지 각자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계엄이 남긴 또 하나의 황당함이 될 수도 있다. 국민 눈높이에서 판단하라. 그러면 정리된 답이 보일 것이다.

[사설] 정국 수습의 책임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이 발의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7일 개회된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자동 폐기됐다. 국민의힘은 당론으로 탄핵소추안 반대를 결정해 국회 표결에 불참함으로써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일단 면하게 됐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책임은 탄핵밖에 없다면서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또 야당은 오는 11일 임시국회를 소집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발의하겠다고 말하고 있어 정국의 혼란은 지속될 것 같다. 이번 국민의힘이 탄핵을 반대한 이유는 우선 윤 대통령이 지난 토요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동시에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은 “저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의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담화에서 말한 것이 표결 불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생각된다. 대통령 담화에서와 같이 이제 정국의 방향은 국민의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에 어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긴급 담화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임기 동안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으므로 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국민 다수의 판단”이라고 말하면서 당정 주도로 탄핵 정국을 수습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한덕수 총리도 어제 오후 국무위원 간담회를 통해 현 상황에 대한 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국민의힘은 혼란스러운 정국 수습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이 임기 문제를 비롯해 정국안정 방안을 국민의힘에 일임했으니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한 대표의 말과 같이 대통령의 정상적인 직무수행이 어려우므로 질서 있는 조기 퇴진 방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개헌안 발의 등을 통해 임기 단축을 포함한 조기 퇴진의 로드맵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개정돼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높으므로 야당과 협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포함한 개헌안을 마련해 국회에서 발의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경제, 국방안보, 외교 등 모든 분야가 혼란스럽다. 민생은 더욱 어렵다. 민주당 등 야당도 탄핵만 외치지 말고 조속히 새해 예산안을 국민의힘과 협의, 통과시켜 새해 예산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지지대] 저조한 식량자급률

통계는 명쾌하다. 단순히 숫자의 나열로만 보면 큰코다친다. 의외로 많은 과제와 숙제를 담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이 2022년 기준으로 20%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통계청의 분석 결과다. 식량자급률도 같은 해 기준 49%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곡물자급률은 사료용 곡물까지 포함하는 만큼 식량자급률보다 훨씬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우리나라 농토에서 생산되는 곡물로는 식량을 자급자족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전쟁 등 유사시에는 대책이 없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곡물자급률은 1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평균 곡물자급률은 19.5%로 10여년 전보다 10%포인트 이상 감소했다. 특히 밀과 옥수수의 자급률은 0%대다. 콩도 한 자릿수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밀은 라면과 국수, 빵, 과자 등에 들어간다. 옥수수는 사료 원료여서 축산물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저조한 식량자급률로 먹거리 물가가 내년에는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식품 원재료 등을 외국에 의존하는 만큼 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으로 원재료 수입가격이 오르면 식품물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환율 문제를 들여다보자. 원-달러 환율은 9월에는 달러당 1천300원대 초반이었지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선에 1천400원을 뚫은 이후 1천400원대로 굳어지고 있다. 더구나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원화 약세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도 당국의 혜안이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우리는 IMF 한파와 금융위기 등을 모두 이겨낸 민족이다. 현재의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숙제다.

[아침을 열면서] 역사 현장에서 찾아낸 희망

흥미로운 대상이나 새로운 걸 보면 탐색 및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 기질적 특성에 더해 어려서부터 일상에서의 지적 탐구나 문화예술 향유 체험을 함께해주신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어딜 가든 방문지에 있는 문화유산이나 역사 공간을 살펴보게 된다. 최근 방문지 중 한 곳인 안동에서는 공식 일정 전후로 여러 곳을 둘러봤다. 그중 예끼마을과 임청각은 처음 간 곳이다. 업무차 한국국학진흥원을 여러 번 다녀왔음에도 그 바로 앞에 예끼마을은 이번에야 알게 됐다. 마을 곳곳에 벽화와 트릭아트 그림이 그려져 있고 옛 지명을 따온 선성현문화단지 안에 동헌이나 객사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살던 곳이 수몰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조성된 곳이라는 사연은 역사관을 통해 알 수 있다. 안동호 위에 부교로 만들어진 선성수상길이 유명해서 걸어 봤다. 부교의 중간쯤에 책걸상과 풍금 조형물 등 수몰 지구 내에 있던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해 둔 쉼터가 있다. 한때 수많은 아이가 뛰어다니던 곳에 조용히 출렁이는 물소리만 들리니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국가 발전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조상 대대로 살던 터전을 내놓고 하루아침에 사방으로 흩어져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갈 때마다 들를 기회가 없던 임청각도 이번에는 다녀왔다. 국권이 일제에 의해 찬탈된 후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의 집이다. 온 일가와 전 재산을 국가와 민족을 위해 내놓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숭고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문지인 제주도에는 ‘너븐숭이 4·3 기념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숙소 근처에 있어 우연히 들르게 됐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4·3 관련 다른 기념관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보를 찾아 보니 제주도 내에 4·3 유적지가 600여곳에 달하고 관련 기념관도 다섯 곳이나 됐다. 북촌리 너븐숭이 일대가 현기영 작가의 작품, ‘순이 삼촌(군경에 의한 양민 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자가 평생 그 트라우마로 고통받다가 결국 세상을 등진다는 내용)’의 무대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념관의 공간 구성이나 전시 콘텐츠는 동영상 및 사진과 글로 정보를 나열하는 방식이었기에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제주 4·3은 서로 다른 이념에 의해 같은 민족끼리 죽고 죽이는 비극을 넘어 국가폭력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이 얼마나 잔인했고 무도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북촌도 마을 전체가 소각됐고 군의 총에 의해 죽은 희생자의 수가 수백명에 달했다. 희생된 아이들의 애기무덤들을 보면서 가슴에 미어졌는데 가장 많이 죽은 연령대가 유아부터 10대 이하 아이들과 60대 이상의 노약자라는 기념관 관계자의 설명을 듣는 순간 숨이 막혔다. ‘군에 들어와서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으니 경험 삼아 죽여 보자’는 이유로 방어권을 갖지 못한 양민들이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 끊임없이 울리는 총성 속에 차례차례 끌려가 죽고 그 모습을 봐야 했다니. 상상하기조차 힘든 비극의 현장이었다. 이런 비극은 되풀이되면 안 되는데 국가 권력에 의해 국민이 희생되거나 힘들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슬퍼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을 내놓은 백성과 국민 또한 우리 역사 내내 존재했고 현재까지도 흘러넘치고 있으니 희망을 보게 되는 요즘이기도 하다. 민주공화국의 국민으로서 주권을 지키고 정당하게 행사하려는 의지를 잃지 말아야겠다.

[천자춘추]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

격동의 2024년도 끝나가고,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경기도의회에서는 내년도 예산심사가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상임위원회 심사는 끝났고, 예결위 심의가 한창이다. 경기도는 세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서도 지난해보다 7.2%가 증가한 38조 7천81억 원의 예산안을 편성해 의회에 제출했다. 중앙정부가 긴축 기조를 유지한 가운데 경기도라도 확장 재정을 통해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재정건전성의 우려도 있지만 비상경제 상황인 것을 감안해야 한다. 수술이 당장 급한 응급환자를 앞두고 치료비 걱정을 늘어놓지는 않는 법이다. 지금 곳곳에서 경제위기 징후가 봇물 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자영업자의 폐업은 사상 최대를 기록 중이고, 금융권마다 연체율이 치솟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의 등장과 산업구조의 변화로 대기업도 무풍지대는 아니다. 성장동력이 멈추고, 대규모 구조조정 소식이 곳곳에서 들리면서 IMF의 망령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여기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계엄령 선포는 지금의 경제위기에 휘발유를 끼얹은 격이 되었다. 내란을 획책하여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대한민국경제를 나락으로 밀어 넣은 윤석열을 반드시 권좌에서 끌어내려야 한다. 절체절명의 경제위기 앞에 경기도의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엄중한 정세를 잘 관리하면서 민생을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마중물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여·야가 두 쌍의 수레바퀴처럼 어우러져, 달그락거리는 가락에 맞춰 절망의 터널을 빠져나와 수레 위에 희망의 씨앗을 가득 싣고 오직 도민의 민생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행백리자 반어구십(行百里者 半於九十), 백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리를 절반으로 삼는다는 말이 있다. 높은 산을 만드는 데 한 숟가락 정도의 흙이 부족하여 산을 만드는 공이 흩어지는 법이다. 2024년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무너진 민주주의와 민생경제를 복원하기 위해 한 방울 남은 힘까지 쏟아부어야 할 때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