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光州), 부산, 경주, 전주 등 4개 도시는 각각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영상문화도시, 역사문화도시, 전통문화도시로 불리면서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이 나라 다른 많은 문화도시들의 대표주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이들 4개 도시를 ‘지역별 문화 성장 거점 도시’로 집중 육성하기 위해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벌어졌던 광주시의회와 경주시의회와의 다툼은 우리 지역문화 정책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지난해 9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자 뒤질세라 세계역사문화도시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발의되었다. 이에 대해 광주시의회가 국가 재정 부담에 따른 광주 관련 사업이 축소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고, 경주시의회 의원들이 광주시의회를 항의 방문하는 등 촌극이 벌어졌다. 광주시의회의 사과로 일단 봉합은 되었으나, 이 사건은 우리 지역문화 정책을 근본부터 다시 돌아볼 것을 웅변하고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지역문화 정책을 전개할 수 있었던 최초의 근거 법률은 1965년 제정된 지방문화사업조성법인데 이 법은 1994년 지방문화원진흥법으로 대체된다. 그 뒤 문화예술진흥법(72년), 경제사회발전5개년수정계획(83년), 지방문화중흥5개년계획(84년) 등에서 지역문화 정책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의지가 확인되고 있음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시설 확충을 위한 예산 지원 말고는 실질적인 지역문화 정책 대안은 없었다. 1995년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지역문화 정책은 비로소 관심을 끌게 되지만, 2001년 치른 ‘지역문화의 해’는 서울 중심의 시혜적 관점에서 지역문화 정책이 펼쳐져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자기반성의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에 참여정부의 문화관광부는 2004년을 지역문화 진흥의 원년으로 삼게 된다. 지난해 6월 국회에 발의되어 지금껏 논의 중인 지역문화진흥법과 함께 국가 단위에서 전개되는 지역문화 정책의 선봉장은 아무래도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다. 누구나 알고 있듯 이는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행정수도론(충청권), 물류수도론(부산권), 경제수도론(수도권)과 함께 한 두름으로 엮이어 정치적으로 제기된 문화수도론에서 출발하였다. 대규모 지역 건설 사업인 양 추진되는 모양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미 시작된 만큼 진심으로 성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역거점 문화도시가 왜 호남에만 둘, 영남에만 둘이어야 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많은 도시가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요즈음, 정책의 원칙과 철학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본법이라도 어서 만들어야 할 판이 아닌가. 그럼, 지방자치단체와 개개 문화예술 단체에 의해 펼쳐지는 지역문화 정책이나 운동은 어떤 모임일까. 지난해까지 우리나라 지역축제는 모두 1천176건인데 그 중 76%인 889건이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되던 1995년 이후에 새로 생긴 것이라 한다.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이나 대도시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많은 문화예술 단체들이 복권기금 등의 혜택으로 거의 의무적으로 너도나도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 바라지 않는 문화예술 행사까지 자꾸 맞이하게 되는 지역에서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고, 이제 그만 오라는 지경에 이른 지역도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지역문화 정책은 국가 차원에서는 문화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지자체 차원에서는 ‘그 밥에 그 나물’인 축제 중심으로 펼쳐졌다. 또 프로그램 차원에서는 수용자인 지역민의 관점이 무시된 채 공급자인 문화예술 단체, 특히 서울과 대도시의 관점으로 마치 폭포수처럼 내리쏟아졌을 뿐이다. 재원이나 인력의 지역 이전과 프로그램의 지역 순회가 지역문화 정책의 전부일 수 없다. 지역문화 정책은 처음부터 지역의 관점에서 설계되고, 지역의 관점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지역문화, 지원은 넘쳐도 진정한 정책은 없다. 박 상 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장
오피니언
박 상 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장
2007-09-1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