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이 시대에 안중근의사를 생각하며

어제 3월 26일은 안중근의사가 순국한 지 96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서울 남산 안 의사 기념관에서 추념식이 있었다. 그 식에 참가하며 나라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 보았다. 추념식은 여러 인사들의 그만그만한 추념사보다는 안숙선 명창의 ‘안중근열사가’가 깊은 감명을 주었다. 추념식에는 일본에서 안 의사를 숭모하는 사람들도 다수 참석하였다. 이 시대에 안 의사를 생각하는 것은 지금 우리 시대가 100여 년 전 열강의 침탈 시기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가정에서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은 군사나 정치뿐만 아니라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경제적·문화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어 한층 복잡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통일이라는 큰 목표 아래 아시아 동북 지역에 대한 역사 재인식이 필요한데 중국의 동북 공정정책에 따라 상대적으로 우리의 역사가 자꾸 지워지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래 중국 내 한국의 과거사 유적이며 일제시대 의병이나 의사들의 활약상을 기린 기념물들이 중국 안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작년 8월 그 곳을 방문했을 때 조선 동포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용정의 윤동주 시비나 일송정 시비의 글씨가 돌에 갈려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더불어 중국정부는 외국인의 동상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어서 그간 안중근 의사의 동상도 세우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만 그곳 박영달 씨를 중심으로 한 조선동포들이 차선책으로 하얼빈에서 90여㎞ 떨어진 모얼산 앞 원보산능원 안 개인 땅에 안중근의 흉상을 모셔 놓았다. 특히 작년 8월에는 하얼빈에서 남북한 학자들이 다국어정보처리 세미나를 한 터여서 북의 대표들도 모얼산 참배에는 같이 참석한 바 있었다. 안중근 의사를 참배하는 데는 남북한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금년 1월 16일에 하얼빈 시내 개인 터에 안의사의 동상을 세우게 되어 하얼빈 지역 조선족 15만의 숙원 사업 하나를 이루게 되었다. 이 시대에 안 의사를 생각하는 것은 막연히 중국의 동북공정에 항의하는 것 이외에 우리의 역사를 복원해 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안 의사가 마음에 와 닿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많은 침탈을 받아서인지 역사를 기억함에 사건과 왕조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도 인물을 통해 역사를 복원하는 방법에 유의할 때라 여겨진다. 그러나 아직은 텔레비전 드라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안 의사에 대하여도 앞으로는 일본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당시의 우리나라 역사의 관점에서 그 전말을 연구할 필요를 느낀다. 안 의사는 1909년 하얼빈 역두에서 이등박문을 저격하고 여순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교수형을 당해 공동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안중근어록을 음미해 보면 이 말들이 허구라는 걸 알 수 있다. 즉 안중근은 당시 대한의군 참모중장이었으므로 의사가 아닌 장군이며, 거사는 대한의 독립전쟁이나 하르빈전투로 바뀌어야 하고, 이등박문 저격은 이등박문사살처단으로, 여순재판은 불법재판으로, 사형언도는 일제의 살해지시로, 교수형은 살인행위로, 매장은 암매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안 장군은 사형집행 직전 10일 동안 ‘동양평화론’을 집필 중이었으나 급작한 집행으로 다 마치지 못했다. 안 장군은 첫째, 동북아 공동안보체제 형성과 국제평화군 창설 둘째.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과 공동화폐 발행 사업 추진을 주장했다. 오늘 우리 아시아가 추진하려는 사업을 이미 주창하신 바 있다. 중국의 대권주의와 일본의 군국화가 진행되는 이때 안 장군의 서거 96주년을 맞아 다시 그가 부르짖은 동북아를 중심한 ‘동양평화론’을 되새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기시론/철도 민영화 재고해야

필자가 대학교에 다니던 80년대 후반만 해도 기차는 추억 만들기의 단골메뉴였다. 부산행 밤샘 기차, 춘천행 기차 등은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꼭 한 번은 타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낭만의 대상이던 철도가 이제는 유전사업비리, 파업 등으로 만인의 지탄을 받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필자는 민영화가 핵심원인이라고 진단한다. 과거 철도청은 KT&G의 전신인 전매청과 함께 대표적인 정부부처형 공기업이었다. 그러다가 전매청이 먼저 한국담배인삼공사를 거쳐 오늘날 해외자본의 인수위기에 직면한 주식회사 형태로 완전민영화 되었고, 철도청도 05년부터 한국철도공사로 변화되어 전매청과 같은 민영화 단계를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기업의 민영화란 해당기업에서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기업성, 즉 수익성을 강화한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투자액을 줄이고 대신 민간인들의 투자를 받아들인다. 물론 투자액에 상응하여 민간부문의 경영참여 지분도 커진다. 그러면 왜 민영화가 유전사업투자와 철도파업 같은 문제들을 초래하는가. 바로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한 경영진의 노력 때문이다. 공기업은 민영화되면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경영진은 수입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좀 더 상세히 보자. 유전사업 비리의 핵심인 김세호 전 철도청장의 임기는 03년 2월부터 04년 8월까지다. 이 시기는 이전부터 제기되어온 철도청 민영화 논의가 거의 민영화로 가닥을 잡은 시점이다. 평생 공무원으로 근무해 차관급인 철도청장까지 오른 사람이 왜 철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유전사업과 북한 건자재 채취사업에 무모하게 뛰어들었을까. 아마도 돈 좀 벌어서 새로 출범하는 철도공사의 재무상태를 개선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철도청의 부채비율은 03년 19%에서 04년 78%로 급증한다. 부채는 4조5천억원에서 4조8천억원으로 약간 증가했을 뿐이지만, 자본은 24조2천억원에서 6조 2천억원으로 급감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민영화 준비조치를 취한 결과 자본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부채비율이 감소해도 시원찮을 판에 몇 배나 증가했으니 기관장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문제는 공사로 전환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번 파업에서 노조가 내건 요구사항들 중에는 장애인과 노인에 대한 요금할인 축소 철폐, 적자노선 폐지 철폐, 비정규직 및 계약직 차별 철폐, 신규인력 3,200명 충원 등이 있다. 이 사항들을 보면 공사로 전환된 이후 철도공사가 경영수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소위 ‘돈이 안 되는’ 혹은 ‘돈 버는데 저해가 되는’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히 제거해 왔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정부는 왜 철도사업을 민영화하려고 하는가.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은 그것이 시대 추세이기 때문이다. 민영화 모델을 세계에 수출한 영국에서도 철도가 민영화되었고,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서도 민영화하면 생산성이 제고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영국은 해마다 몇 건씩 철도사고를 경험하고 있다. 민영화 이후 모두 300명 가량이 철도사고로 사망했다. 99년에는 패딩턴 역 부근에서 열차가 충돌하여 한 번에 31명이나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사고원인은 다소 황당했다. 선로 신호등 램프가 고장 났는데 해당 철도회사가 돈을 아끼려고 고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철도 민영화의 현실이다. 돈 몇 푼 아끼려다 아침에 출근하던 무고한 시민들을 다치고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조건 민영화를 하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될 분야가 있다는 말이다. 한 번의 사고로 인명이 대량으로 손실되거나 피해액이 엄청나 민영화로 확보한 절약분을 모두 날려버릴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서는 민영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철도가 바로 그런 분야다. 다소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하 태 수 경기대 교수

경기시론/교회의 노인대학 설치의 필요성

최근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노인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지역사회 노인들에게 교육욕구 및 여가욕구를 충족시키고 건강증진과 노인생활의 만족에 기여할 수 있는 노인대학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시설자원, 재정자원, 인력자원, 조직자원 등과 같은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교회가 노인대학을 설치·운영한다면 지역사회의 많은 노인들에게 교육과 여가를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선교 100년의 역사 속에서 양적으로 상당한 성장을 이룩했지만 아직도 전체 교회의 6.6%만이 노인대학을 설치·운영하고 있어서 노인대학에 참여는 상당히 부족한 실정이다. 앞으로 교회는 노인대학을 포함하여 지역사회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회복지사업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만 치우쳐왔다는 부정적인 양상에서 벗어나 이웃의 문제, 소외계층의 문제, 노인문제, 아동보육 등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측면에서 지역사회 노인들을 위해 노인대학을 설치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인적자원, 재정자원, 조직자원 등을 교회의 성장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노인대학의 설치·운영에 투자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지역사회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그 외에도 지역사회의 많은 노인들에게 평생교육과 여가선용의 기회를 제공하고 건강증진과 생활만족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회에 노인대학을 설치·운영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설치하는 노인대학은 사회봉사부와 같은 조직을 활용하여 운영하도록 해야 하며, 노인대학의 운영은 사회교육이나 노인복지 등과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노인대학의 운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프로그램별로 전문 강사를 외부에서 초빙하거나 교회 내의 전문적인 인력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또한 교회의 노인대학들 간의 연합체를 구성하여 상호간에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며, 운영자에 대한 정기적인 연수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노인대학은 교회에 출석하는 노인들을 우선적으로 하되,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지역사회의 노인들 중에서 교육욕구와 여가욕구가 절실하면서 거동이 비교적 자유로운 노인들을 포함하여 운영해야 한다. 지역사회 저소득층 노인들에 대해서는 교통편의와 무료 급식 등을 제공해야 하며, 노인대학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 무료 급식을 포함하여 무료 진료, 무료 이·미용서비스 등 노인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노인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교회의 재정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도록 해야 하며, 노인대학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물론 운영비의 일부분을 충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저소득층 노인을 제외한 수강생들이 약간의 회비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시설자원을 활용하여 강의공간을 마련하도록 하며, 인력자원을 활용하여 프로그램과 관련된 교회내의 전문가를 강사로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그밖에도 지역사회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확보·동원하여 노인대학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교회는 양적인 성장과 동시에 기본적인 사명인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의미에서도 노인대학을 포함한 사회복지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지역사회의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함은 물론 국가의 사회복지 발전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학교 인문사회과학대학장

경기시론/아동 성범죄 중형(重刑)이 마땅

범죄 가운데서도 가장 지탄받아야 할 범죄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삼는 범죄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숙한 데다 아무런 자체 방어 능력을 갖지 못한 미성년자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아동 범죄에 대해서는 엄한 벌을 내리는 게 통례로 돼 있다.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아동 성범죄를 바라보는 어른들의 마음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런 부끄러운 사회가 되었는지 마음이 심히 무겁다. 특히 어린이들의 저 해맑은 눈빛을 생각하면 더더욱 얼굴을 들 수 없다. 이러고도 감히 어른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는가 싶다. 아동 성범죄는 그 당사자에게 크나 큰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물론 그 한 순간으로만 그치지 않고 일생 동안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살게 하는 형벌이다. 또한 그 가족에게는 지울 수 없는 멍에와 함께 가정의 평화를 깨는 결과까지 낳는다. 그럼에도 우리 법은 이런 범죄자에 대해 비교적 관대해 왔다. 얼마 전에 있은 초등학생 성폭력 살해 사건의 범인만 해도 지난 해 어린이 성추행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전력의 소유자였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법이 무른 것도 무른 것이지만, 범죄의 사전 예방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음을 보여준 좋은 예다. 오죽했으면 ‘법이 소녀를 죽였다’ 는 언론 보도가 다 나왔을까. 아동 성범죄자에게는 중형이 마땅하다. 이는 재범 위험성이 매우 높고, 사회 경각심 차원에서도 그렇다. 다행히 이번에 법무부가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 의사를 밝히는 등 중형의 의지를 보인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또한 친고죄 폐지, 합의를 통한 집행유예 판결 금지, 최소한의 형을 정하는 양형기준 제정 추진 의지도 크게 환영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그 어떤 경우에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을 따끔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동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 공개는 물론 전자팔찌 착용, 외출제한 등 강력한 제재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형벌을 엄하게 한다고 해서 아동 성범죄가 근절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그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 틀림없다. 어린이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선해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다. 그리고 사회는 어린이를 건강하고 밝게 육성시켜야 할 의무를 지녔다. ‘우리 사회의 어린이는 모두 내 자식’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고 본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저 아이들의 눈빛 하나하나는 바로 이 나라의 앞날이나 다름없다. 그런 어린이들을 선도하기는 커녕 성의 희생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차제에 어린이 성교육과 아울러 예방교육, 대처법도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가르쳐야 하리라고 본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크다. 유아의 경우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이를 아는 예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자면 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유아원이나 유치원, 학원도 이에 대한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살기 좋은 사회의 정의는 경제 성장에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아동성범죄는 그 무엇에 앞서 팔을 걷어 붙이고 나서야 하겠다. ‘반짝 대책’보다는 항구적인 범사회적 운동과 함께 강력한 대책이 제일이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세종의 정치를 생각하며

지난 해 10월과 금년 1월 한국학중앙연구소가 주관한 세종실록을 읽는 강좌가 있었다. 두 차례 참석하며 세종실록에 접해보았다. 세종 큰임금은 워낙 하신 일이 많아 두루 이야기할 수 없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공무원의 근무 자세와 임명에 대해서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세종 시대에는 유난히도 조선 역사상 각 부문에서 인재가 많았다. 음악의 박연, 과학의 이천과 장영실, 집현전의 성삼문을 비롯한 여러 학자들, 사군육진 건설에 이바지한 최윤덕, 김종서 장군 등 말할 수 없다. 그럼 역사상 그 시대에만 많은 인재가 태어났다는 것일까. 확률적으로 보아 그럴수는 없는 일이고 세종이 인재를 잘 발굴하여 적절히 썼다고 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종시대라 하여 순탄히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허조(許稠)는 어디까지나 정통 유교논리에 따라 양반과 백성을 차별했고, 고약해(高若海)는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반대의견을 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허조가 개혁에 반대를 하면 강희맹이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황희가 이를 종합하는 스타일로 정책이 토론되고 결정되어 갔다. 세종은 이런 대화의 시스템을 알고 반대하는 허조나 고약해를 심히 질책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회의에 참석시켰다. 반대 의견을 경청하려는 것이었다. 한국학중앙연구소원 박현모교수의 허조에 대한 평을 참고하면 황희가 여러 인재를 추천해 올리면 이조판서인 허조가 그 인물의 적합성 여부를 깐깐히 가려냈다. 그리고 ‘일 만들기 좋아하는’ 안숭선 등이 여러 정책 제안을 해 놓으면 그 제안을 허조가 스크린 했다. 세종은 허조의 모습을 보고 ‘허조는 고집불통이야’하면서도 늘 끝까지 그의 의견을 경청했다. 그러나 허조는 수차례 아뢰고 난 후에는 “이 정도면 중용을 이룰 수 있겠습니다”하고는 승복했다. 그는 바른 행정가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리고 인사정책에서는 한 번 적임자라고 뽑아 쓰면 그 자리에 일을 맡기고 또한 오랫동안 일하게 하였다. 한 예로 김종서는 파저강 토벌 이후 여진족의 보복 등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세종 15년 12월 김종서를 함길도 감사로 보낸다. 그는 전권을 갖고 그 곳의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세종17년 10월 모친상으로 도성으로 왔는데 세종은 승정원에 “고향에 다녀온 후 100일 후에는 고기를 먹도록 권하고 돌아와 임소에 가게 하라”고 명한다. 신하들은 기왕 변방을 벗어나 도성에 왔으면 상을 치를 때까지 몇 달 아니면 1년이고 쉬었다 가려는 게 당시의 풍조였는데 세종은 장군이니 기력 회복용으로 고기를 먹게 하고 속히 함길도로 돌아가라고 명한다. 어찌 보면 야박해 보이나 철저한 행정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한 예로는 수령육기제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는 관리가 한 고을에 가면 6년을 근무하게 되는 제도였다. 많은 관리는 가능하면 지방보다 중앙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세종 22년에 회의를 하였는데 고약해는 ‘소신’이라고 해야 할 말을 ‘소인’이라고까지 하면서 세종에게 3년으로 하자고 제안한다. 세종이 듣지 않자 신하는 세 번 간하여 듣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이라고까지 저항하며 의견을 편다. 결국 고약해는 정책대안이라기보다 자기 일신상의 편의를 위해 그리 해두는 것이라는 증거가 다른 곳에서 나타나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초기에는 한 고을에서 6년을 일하며 매년 감사와 평가를 받는 제도가 있었다. 수령으로서 자질이 있는 사람은 고을을 바꿔가며 수령으로 마치는 사람도 많았던 것을 보면 공무원의 전문직화가 이루어져 있었다고 하겠다. 오늘날에는 편의에 따라 때로 타이틀을 따기 위해 공무를 맡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을 비교케 하는 대목이다. 토론과 여론조사를 중시하고 인재를 뽑았으면 끝까지 믿고 또 그만한 공무자세를 강조한 세종시대의 정치가 새삼 생각나는 시대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기시론/법인(法人)의 사회적 책임?

법에서 행위능력이 있는 행위주체는 자연인과 법인 둘로 나뉜다. 자연인은 사람 개개인을 말하고, 법인이란 여러사람이나 일정재산을 모아서 만든 조직이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시켜 하나의 인격을 취득한 것을 말한다. 법인은 다시 영리성을 기준으로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으로 나뉜다. 영리법인의 대표적인 것이 주식회사이고, 비영리법인의 대표적인 것이 학교법인이다. 오늘날에는 법인이 흔하지만, 법인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19세기 초 만해도 유럽의 왕들은 국제무역, 운하나 도로, 건설 등 공익적 목적을 위해 극히 예외적으로만 특별법을 제정하여 법인을 인가하였다. 큰 자본이 소요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유한책임과 조세감면이라는 특혜를 주어 대규모 자본을 동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언론이나 방송을 보면 종종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거론한다. 기업은 본래적 책임을 수행하면서도, 덤으로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법인 발생의 역사적 맥락을 오해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법인은 본래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별도로 가지고 있지 않다. 본래적 책임이 곧 사회적 책임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기업들에게 문화 같은 경제외적 분야에서의 공헌 같은 사회적 책임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기업은 본래목적인 경제활동을 잘하면 사회적 책임도 다하는 것이다. 기업 경영자들 중에 경영과정에서 죄를 짓거나 비행을 저지르고 이것을 속죄하기 위해서 막대한 액수의 사재를 출연하여 사회에 공헌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것이다. 법인경영에서 잘못을 저질렀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손해액을 변상한 다음 경영에서 물러나면 된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사재를 털어서 사회에 공헌한다고 하는데, 그 사재는 과연 정당하게 축적되었을까? 만일 법인경영 과정에서 부정을 저질러 축적한 재산이라면, 그것은 해당법인으로 귀속되어야지 사회일반으로 지출되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이런 와중에서 해당 부정경영자가 사회에 무슨 큰 기여라도 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더더욱 옳지 않다. 한편, 사립학교 경영자들은 사유재산권 이론을 내세워 개방형이사의 도입을 규정한 개정 사립학교법에 반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법인에 대한 오해에 기인한다. 일단 사재를 가지고 학교라는 공익적 목적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하여 국가의 인가를 받았으면, 그 재산은 사재(私財)가 아니라 이미 공재(公財)이다.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려면 학교라는 비영리법인을 설립하지 말았어야 한다. 공익적 목적을 위해 재산을 쓰겠다고 출연하고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는 것은 극심한 자기모순 아닌가? 국가도 법인이 공익적 목적을 수행하니까 세금도 면제해주고 각종 혜택을 주는 것이다. 사유재산처럼 운영하려면, 먼저 국가와 법률이 제공하는 각종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 떳떳한 태도일 것이다. 법인이란 국가가 일정한 공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자연인이 아닌 행위주체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의 목적달성 행위를 돕기 위해 유한책임이나 조세감면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법률적 사회목적 달성 수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인의 자유 및 권리는 국가와 법률에 의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와 법률은 법인의 모태이다. 그러므로 법인경영자들이 기업의 자유와 사유재산권을 내세워 국가와 법률에 도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역으로 사회가 법인들에게 본래 기능을 넘어서는 과도한 사회적 공헌을 기대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 태 수 경기대 교수

경기시론/노인교육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

노인교육은 노인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역할과 문화를 습득하고 개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며, 자기발전을 위한 기초교육이나 새로운 직업을 갖기 위한 능력을 습득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아직도 노인들의 욕구에 비하여 노인교육기관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재정 지원이 적어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조달하기가 어렵다. 그와 더불어 대부분의 노인교육기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재학 인원이 비교적 적고 교육내용이 주로 교양강좌보다는 취미나 오락 중심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인교육기관이 지역별로 적절히 안배되어 있지 못하여 교육기회가 불평등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노인교육기관들이 지역사회의 각종 기관 및 단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또한 노인교육기관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인교육기관 간의 교류와 협력체제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노인들에게 건강하고 보람 있는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노인교육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한다. 노인교육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노인교육기관의 수를 확충시켜 지역사회의 많은 노인들에게 교육의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노인복지회관을 시·군·구에 1개소 이상 설치하여 노인대학을 운영해야 하며, 동사무소의 주민자치센터, 종교단체, 대학의 평생교육원 등에서도 노인교실을 설치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로 노인교육기관에 대한 재정적·행정적·교육적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노인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서 교육에 필요한 공간과 교육기재를 확보해야 하며, 노인교육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지도와 감독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유대관계를 통해서 노인교육기관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모집하고 전문강사를 확보하며,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지역사회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셋째로 노인교육에 적합한 교육목표가 설정되어야 하며, 교육목표에 따라 노인들에게 적절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보급되어야 하고, 프로그램의 내용과 교육방법이 체계화·전문화되어야 한다. 또한 노인교육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해야 하며, 노인교육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통하여 노인교육의 전문적인 기반을 조성하고, 노인교육기관의 운영자에 대한 정기적인 교육을 통하여 운영의 전문성을 기해야 한다. 넷째로 노인교육기관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인교육기관연합회(가칭)가 결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노인교육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며, 노인교육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기관 상호간의 교류를 통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하며, 노인교육기관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노인교육이 노후생활의 만족과 지역사회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재보다 더 많은 노인교육기관이 설립되어야 하며, 지역사회의 다양한 단체와 기관들이 노인교육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재정적 지원을 해야 한다. 또한 지역적으로 불평등하게 설립되어 있는 노인교육기관을 적절히 안배하여 교육, 여가, 건강, 취미생활, 사회참여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욕구를 가진 지역사회 노인들이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더욱 길어진 노년기 동안 건강하고 만족스런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미래를 생각하는 의식

앞으로 10년 후 뭘 먹고 살지 하는 말이 요즘 심심치 않게 나온다. 경제계에서 걱정하는 소리지만 정부는 물론 개인도 그런데 관심을 갖기 시작한지 오래다. 앞으로는 형식에 더해 내용으로 우리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오기를 바랄 것이다.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의 한 특징은 앞으로 10년 후 먹고 살 길을 걱정하면 밤잠이 안 온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이제는 미래를 이야기하는 게 일상화 되어 있다. 개인의 미래 생활인 보험이나 연금이 정부의 핫 이슈인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10여년 전 한 국회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다 당시 앞으로 우리나라가 먹고 살 분야가 뭣인가 하는 화제에 이르렀다. 나는 옆 일본이 앞서 가면 우리가 쫓아가고 중국이 쫓아온다고 인식하며 새로운 기술을 창출해 갈 것이고 다시 위기를 당하면 중동으로, 아프리카로, 시베리아로 뛰쳐 나가 일한 민족이어서 비슷한 경제 수준은 계속 누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대안은 아니지만 경제도 크게 보아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인다고 보면 우리 국민의 진취적 성격을 믿고 싶은 것이다. IMF 환란 위기 때 금 모으기를 보이고 월드컵 응원시 700만이 거리로 나오고 지금은 아이 적게 낳기, 대학교 가기, 이혼율, 여성의 사회진출 속도 등에서도 세계의 선두를 달리지 않으면 못 견디는 민족이다. 그런 적극성과 열정이라면 위기가 올 때 더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좀 여유가 있다 싶을 때 자기 관리에 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아파트로만 무작정 몰리는 요즘의 현상이 그런 한 예라 하겠다. 앞으로 2만∼3만 달러에 이르려면 사회적으로 좀 더 긍정적인 방향과 목표를 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이익 이외에 인생의 이익인 행복지수를 높이는 목표가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현상에 하나는 이제 상품을 파는 행위도 문화적인 개념이 강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한 상품이 여러 나라에서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시대라 총 원가의 50%가 그 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으면 그 나라 이름을 쓰지 못하게 하는 규정도 나오고 있어 ‘00제제’보다는 ‘Produced by’를 선호하는 흐름도 보인다. 거기에 더해 선진국은 속 품질이 워낙 차이가 없다보니 ‘Designed in’이라는 디자인을 강조하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애플사의 미디어 재생기인 iPod에는 ‘designed in the U.S.A, built in China’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다시 네트워크 산업이 보편화하면서 인도가 세계고객 콜 센터의 기지가 되다보니 ‘Service in’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상품제조국 대신에 ‘일본문화’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다. 우리는 이런 와중에 ‘한류’라는 브랜드를 키워가고 있지만 한류는 무엇으로 상징될 수 있을까. 한국의 힘(에너지) 아니면 한국적 조화일까? 20여년 전 일본에서 개방화가 이루어지면 초기 개방 또는 세계화는 무엇을 뜻하느냐 하니까 한 평론가는 개방이 이루어져 태국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고 호주 상품을 사고, 피지 여행을 하고 동유럽 영화를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화란 시민이 작은 세계와 만나는 과정에서 온 국민의 작은 계획들이 실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합쳐지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국가에서 한 프로젝트로 IT며 생명공학에 자본을 쏟아 부을 수는 있으니 그걸 실현해 가는 주체인 국민이 먼저 세계화에 대한 인식을 각인할 때 그런 사업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란 기업에게는 글로벌 경영을 뜻하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영화 하나 음식 하나의 작은 기회로 다가오는 것으로, 우리도 세계 여러 곳에서 직업을 얻고 봉사를 하는 자기 완성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기시론/정부, 소탐대실의 우(愚) 범하지 말아야

멀리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부터 가까이는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부터 우리나라는 세계화의 영향 아래 사회전반에 걸쳐 시장논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식 개혁을 겪고 있다. 이전에는 사회를 운영하는 주 기제가 정부였는데 이제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전에는 정부가 시민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이것에 근거하여 사회를 운영하였다면, 이제는 시민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보니 소위 돈벌이가 안 되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비단 경제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장논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던 문화·예술 영역에서도 돈벌이가 안 되는 예술성 작품들이 상업성이 강한 작품들에 밀려나고 있고, 심지어 정부행정에서조차 시장논리를 도입하여 낭비요소들을 제거하자는 작은정부론이 주된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정부행정에서만큼은 이러한 시대추세가 재고되어야 한다. 작은정부론자들은 세계화 시대에 김영삼 정부가 박정희식 개발독재 모델을 신속하게 청산하지 못해 경제위기가 닥쳤다고 진단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오히려 반대로 김영삼 정부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던 정부주도 경제성장의 역사적 경로를 무시한 채 작은정부론 시각에 따라 행정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외환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군사정부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해 규제완화·정부의 능률성 향상 등을 내세우며 5개년 개발계획을 폐지하였고 경제규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하여 재경원으로 축소시켰다. 그 결과 정부는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재벌소속 종금사들의 무분별한 외화차입과 해외투자를 감시하고 규제할 능력을 상실했었던 것이다. 정부는 단기보다는 장기적 미래를 예측할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정부는 기업이 생존할 수 없는 시장실패 영역에서 존재의의를 찾는 독점조직이다. 시장에서는 한 기업이 망하면 다른 기업 제품을 살 수 있지만, 공적 영역에서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실패하면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다. 이런 특성 때문에 정부는 능률성보다는 효과성(실패 없는 목표달성)을 더 중시해야 하고, 효과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외성(redundancy)을 구비해야 한다. 즉 국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는 그리고 실패할 경우 국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정부기능일수록, 단기적으로는 예산이 더 들더라도 2중 3중으로 안전장치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김영삼 정부가 행정개혁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예산을 절약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대로 늘려 잡아도 1조원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공채발행 등으로 조성되어 민간부문 구조조정에 투입된 150조원의 공적자금 중 60조원 정도가 회수불능이라 정부의 부채로 처리된다고 한다. 정부가 이것을 상환하기 위해서는 결국 국민들이 상당기간 동안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려 깊지 못한 정부의 결정 때문에 국민들이 장기적인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단기적 시각에서 예산 몇 푼 아끼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가 아니다. 돈이 더 들더라도 안전위주의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다는, 소 잃기 전에 외양간만 고치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 /하 태 수 경기대 교수

경기시론/노인취업의 필요성과 활성화 방안

최근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더불어 노인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노인문제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노인들이 빈곤, 질병, 고독, 역할상실 등과 같은 노인문제에서 벗어나 그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건강하고 보람 있게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노인복지제도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제도와 노인수발보장제도 등을 포함한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제도와 수준이 아직도 미흡한 실정이기 때문에 노인들이 그들의 욕구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인취업을 통해서 노인들이 노후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하고 건강을 유지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욕구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노인취업은 노인의 소득을 증진시켜 노후생활의 심각한 문제인 빈곤을 해결할 수 있게 하며,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소득이 부족하여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노인들이 고독과 소외감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노인취업은 또한 노인들이 더욱 길어진 노년기 동안 자신들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 사회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게 되면서 건강을 유지하고 노후생활의 만족을 느낄 수 있게 하며, 가족과 사회의 부양부담을 경감시킴은 물론 국가의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노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점점 심각해지는 노인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노인취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정부와 민간이 노인집단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고령자의 고용을 촉진하는 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이러한 선진국의 고용정책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노인취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년퇴직 후에 65세까지 계속고용제도를 도입하여 고령자의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활용하도록 하며, 공공기업과 민간기업이 60세 이상 고령자를 6% 이상 의무적으로 고용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둘째, 노인취업직종을 개발하고 정부기관과 공공기업에서 노인에게 적합한 직종(수위, 청소원, 판매원, 검침원, 수금원, 창고관리 등)을 선정하여 노인을 우선적으로 취업시킨다. 셋째, 노인취업알선기관을 전국적으로 확충하며, 취업전문인력을 배치하고 취업직종을 다양화하며, 지역사회 유관기관 및 사업체와의 유기적인 연계를 강화한다. 넷째, 노인창업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창업자금융자제도를 신설하고 노인직업훈련원을 설립한다. 다섯째, 노인복지공장을 설립하고 65세 이상 노인을 채용하여 운영한다. 이것은 국가와 민간이 설치·운영의 주체가 될 수 있으며, 민간이 설치하는 경우에는 노인복지공장 설치에 필요한 기금을 융자해주도록 하고 각종 세제감면을 제공해야 한다. 앞으로 고령사회를 맞이하여 노인취업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 및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의 개발과 지원을 통하여 더욱 길어진 노년기 동안 노인들이 취업을 통하여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유익하게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국군포로 송환 서둘러야

또 한해를 맞았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세월의 무상함이다. 아니 인간의 비정한 ‘망각병’ 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까지를 싸잡아 기억의 저편 골짜기에 내다버리는 짓이 곧 그것이다. 이는 결코 현명한 일일 수 없다. 6·25 전쟁은 두 번 다시 기억하기조차 싫은 아픔이긴 하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엄연한 역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이 피붙이간의 전쟁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가급적이면 들추지 않으려고 해왔다. 더더욱 최근 들어서는 ‘이상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6·25를 들먹이거나 그날의 아픔을 이야기라도 하면 마치 민족의 화해를 깨거나 통일을 방해하기라도 하는 듯한 질시의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역사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가끔씩 상처난 부위를 밖으로 드러내어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상처의 후유증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국군포로다. 6·25전쟁 중 북한 인민군과 중국군에 붙잡혀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546명인 것으로 추정되었다. 546명! 요즘의 명수(名數)로는 그리 대단한 숫자가 아닐지 몰라도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외면해 버릴 숫자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 나라가 풍전등화였을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운 이 땅의 군인들이다. 어쩌다 포로의 신세가 되었다고는 하나 그 누구보다도 용감하였고 시대정신에 비겁하지 않은 우리들의 자랑스런 군인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포로가 된 이후 낯선 북한땅에서 최하위 계층으로 분류되어 갖은 학대와 노역을 감수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주로 광산이나 통제대상 공장, 집단농장 등에서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인간 이하의 삶을 영위해야만 했다. 그들 중에는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지만 가족까지 성분 불량자 최하급으로 분류돼 진학이나 사회진출 기회가 제한됐고, 일부는 국군포로라는 이유로 이혼 당하는 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50년이 넘었다. 50년이라면 반세기에 해당하는 긴 세월이다.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를 생각하는 일은 얼굴부터 화끈해진다. 과연 우리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두려움마저 인다. 오늘의 우리들 삶은 순전히 그들의 목숨으로 지켜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안락한 사회에서 발뻗고 잠자고, 좋은 음식 먹고,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 덕분이다. 그들이 몸 아끼지 않고 요령 피우지 않고 우직하게 싸워줬기에 그 대가로 얻은 전리품이다. 그런 우리가 그 세월을 잊고 우리만 잘 살면 되는 것인가. 대국을 자처하는 한 나라는 자기나라 군인의 시신을 찾기 위해 정부가 나서고 그렇게해서 머리카락 하나라도 찾았다 하면 그 나라 국기를 덮어 정중히 모셔가는 것을 여러차례나 보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국가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우린 새삼 깨달았다. 국가의 존재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것이 국가인 것이다. 국군포로 송환은 이제 더 늦출 수 없는 긴급한 과제가 되었다.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고 해서, 북한 사회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쉬쉬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당당히 테이블에 올려 송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북한 당국도 더 이상 국군포로 문제를 기피하거나 ‘북한에는 단 1명의 국군포로가 없다’는 식의 억지주장을 펴지 말고 민족적 인륜적 차원에서 앞장서 해결해야 마땅하다. 그것만이 진정한 남북관계 개선이며 민족 화해라고 할 것이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월드컵 열정

마침내 독일 월드컵 대회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지난 10일 G조에 들어간 이래 지금은 스포츠 뉴스에서 월드컵팀의 동향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목마르게 기다리던 조 추첨 결과 1954년 이래 총 7번의 대진 중 제일 수월하다고 여기는 눈치다. 조 추첨 이전에는 스위스가 뽑혔으면 좋겠다고 기다리고 있다가 정작 스위스가 뽑히니까 스위스를 얕잡아 볼 수 없다고 움츠리기 시작한다. 조심하는 건 좋은 일이다. 축구는 과거의 전적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팀워크로 싸우는 것이니까.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우리 팀은 미군비행기를 얻어 타고 64시간을 날아가 시합에 임했으나 헝가리와는 9:0, 터키와는 7:0으로 졌다. 축구선수가 아니라 난민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의 한국팀은 지금의 한국인과 다른 나라의 사람이었나. 세월이 흘러 우리는 4강이라는 조직적 시스템을 갖춘 팀으로 성장했다. 시스템적 내공의 힘을 비축하게 된 것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가 되어 갈수록 축구에 대한 열광은 점점 더해가는 느낌이다. 본디 올림픽이나 월드컵도 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로 중계됨으로써 세계화를 이룬 것이므로 우선은 텔레비전에 그 공이 있겠다. 다음으로는 그 규칙의 단순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16개의 규칙밖에 없다고 하지만 실은 단 하나의 조건이다. 발로만 차라는 것이다. 그밖에 사람을 차거나 볼이 밖에 나갔으면 상대에게 건네주고 공보다 먼저 사람이 나가지 말라는 등 너무나 상식적인 규칙밖에 없다. 야구나 아메리칸 풋볼에서처럼 피처 벅이니 쿼터백 반칙이니 하여 일반 관중은 얼른 알아차리지 못하게 정한 규칙은 없다. 원초적으로 발로 차서 상대방 골에 공을 넣는 단순하고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열정적인 경기인 셈이다. 운동경기는 역도며 달리기, 수영 등 혼자서 기록과 싸우는 경기로부터 권투 탁구 테니스 등 대결하고 이 대결은 몸이 부딪치며 겨루는 농구 등으로 발전한다. 이 모든 경기의 최종에 축구가 있다. 22명이 90분간 계속 움직이며 볼 하나를 향해 움직여 나간다. 인구가 많아 금메달을 많이 뽑아내는 중국이 아직 축구에 약한 이유는 축구가 바로 높은 수준의 시스템적 사고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축구는 그 나라 사회의 시스템이나 조직의 통합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월드컵은 평화시대에 다른 나라 혹은 다른 팀과 다른 사회와 힘을 겨루는 수단이 되고 있다. 축구를 통해 그 나라는 국민의 열정을 모아가는 학습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축구 강국인 영국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국내프로가 우선적이고 대표들의 훈련은 2차 목표가 된다. 축구 규모가 작은 나라, 가령 1998년의 크로아티아나 2002년의 한국은 미리부터 준비하고 정신력을 강화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기도 한다. 축구가 기술 이외에 정신의 산물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상품은 자기 형편에 맞게 좋거나 싼 것을 고를 수 있고 권투나 레슬링은 체급에 따라 나눌 수도 있지만 축구선수는 키가 크면 헤딩에 좋고 키가 작으면 드리블에 좋아 누구나 민주적으로 자기 장기를 발휘할 수 있다. 군사정권 시절에 대통령이 프로야구를 출범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스포츠로 돌려놓았다고 비판하는 문화연구가도 있지만 그 시간에 술집에서 2차, 3차 술을 마시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스포츠 관람은 무해무독하다. 보는 걸 즐겨도 좋고 열 번 지다가 한 번 이기면 이겨서 좋고 스포츠를 사랑해 직접 운동에 참가하면 자신과 국민이 튼튼해지니 좋다. 내년 월드컵에서는 8강 이상 올라가 우리가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기시론/과학, 반복가능성, 객관성, 열린사회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를 둘러싼 논란이 국내외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종국에는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학교의 자체조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동안 ‘재검증을 해야 한다’ ‘사이언스라는 학술지의 권위를 믿어야 한다’는 등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국 사이언스지도 ‘권위 있는 제3의 기관에 의한 검증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표현으로 재검증을 요구했다. 필자도 처음에는 ‘우리나라에서 언제 이런 기회를 잡는다고 이렇게 흔들어대나’하고 문제를 제기한 측을 마음속에서 탓하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자기들보다 앞서가는 우리나라의 기술개발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모종의 공작을 펴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동안 배웠던 것들에 비추어 숙고한 결과 재검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과학을 지지해주는 두 개의 기둥은 반복가능성(反復可能性)과 객관성(客觀性)이다. 먼저 반복가능성은 누구든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을 한다면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실험을 할 때 마다 상이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 이론은 법칙(law)이라고 말할 수 없다. 객관성은 타인들(客)이 보아도(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만 수긍이 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과학은 닫힌 독재사회에서보다 열린 민주화된 사회에서 발전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닫힌 사회에서는 권위 있는 학자가 제시한 이론을 재검증해 볼 엄두도 내기 어렵고, 실험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그것이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그 학자 뒤에 정부나 기타 강력한 세속적 권력이 도사리고 있다면 회의(懷疑)의 가능성은 그만큼 더 낮아진다. 반면에 열린사회에서는 아무리 권위 있는 학자가 제시한 이론이라고 할지라도 그것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재검증을 요구하거나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고, 이론 주창자는 자기 이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도전에 응해야만 한다. 응수를 회피하면 그의 이론은 그만큼 신뢰성을 상실하게 된다.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책에서 ‘객관성은 끊임없는 열린 토론을 통하여 형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연구자가 자기의 이론을 법칙으로 만들기 위한 욕심으로 방법론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현대 과학이 이용하는 정교한 방법론이 객관성의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길은 연구방법과 연구결과를 공개하고, 이에 대해 제기된 타인들의 반론을 재반박하는 것이다. 만일 연구자가 이런 반론에 대해 응수하지 않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권위를 내세워 대강 넘어가려 한다거나 이런저런 힘을 사용하여 반론을 억압한다면 그의 이론은 이미 과학적 법칙이 아니라 믿느냐 마느냐 선택의 대상인 종교나 신화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황우석 교수가 서울대학교의 자체조사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잘된 일이다. 그 자체조사가 연구과정에 대한 부분적인 조사가 아니라 연구전체에 대한 철저한 재검증이 되기를 바란다. 현재까지 전개된 상황을 보면 재검증을 거치지 않고는 줄기세포 관련 연구결과가 수용되기 힘들다. 만에 하나 재검증 결과 황우석 교수팀의 논문이 취소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사운(社運)을 걸면서까지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MBC의 취재정신은 확인했으므로 크게 실망할 필요는 없다. 한편 재검증을 거쳐 동일한 결론을 얻는다면 앞으로는 그 결과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연구결과의 신뢰도는 더욱 더 높아질 것이다. 이번 일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 태 수 경기대학교 교수

경기시론/한국 고령자 보건의료산업 현재와 미래

최근 노인인구가 급속히 증가함과 동시에 치매, 중풍 등과 같은 노인성질환을 가지고 있어서 장기간 전문적인 요양, 치료, 재활 등의 보건의료서비스가 제공될 필요가 있는 노인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부양부담을 경감시키고 노인성질환을 가진 노인들에게 전문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체계적인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이 필요하다.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이란 치매, 중풍 등과 같은 노인성질환으로 인하여 장기간 치료와 요양이 필요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의료보호, 요양보호, 건강관리, 재활서비스 등의 보건의료서비스는 물론 급식, 주거보호, 호스피스, 정서적 지지, 보건의료용품 제공 등과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으로는 노인요양시설, 노인전문요양시설, 노인전문병원, 노인치매병원, 가정간호사업, 고령자 보건의료용품사업 등이 있다. 고령자 보건의료용품사업은 크게 의료용품, 생활보조용품, 건강보조용품, 인지개선용품 등을 제공하는 것이며, 와상노인의 증가로 인하여 그 수요가 증가하면서 의료기기나 건강보조용품을 판매하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것은 현재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의 한 분야로서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인요양시설, 노인전문요양시설, 노인전문병원, 노인치매병원의 경우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요양, 치료 및 재활을 제공하며 시설, 인력 및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개선하여 입소율을 높이고 재정확보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가정간호사업은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의 수를 확대하며, 수가를 조정하고 보험적용횟수를 늘려 사업의 운영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또 이러한 시설과 기관들 사이의 유기적인 연계체계를 구축하여 노인성질환자들이 보건, 의료, 요양 및 복지를 포괄적이고 연속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은 앞으로 치매, 중풍 등 노인성질환자의 급속한 증가, 노인부양의식의 약화, 가족부양부담의 가중 등으로 그 수요가 크게 증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인요양시설, 노인전문요양시설, 노인전문병원, 노인치매병원의 경우 유료시설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여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노인성질환 등으로 장기요양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에게 요양, 치료, 재활, 생활편의 등을 제공하는 중심적인 시설이 될 것이다. 더불어 가정간호사업, 고령자 보건의료용품사업, 치매노인 그룹홈 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가정간호사업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이며, 노인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게 함은 물론 지역사회의 많은 노인성질환자들에게 포괄적인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발전하게 될 전망이다.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실천의지와 대폭적인 지원 및 민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앞으로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에 의료법인, 영리법인(회사), 사회복지법인,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여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법적·제도적·재정적 지원과 행정규제의 완화 및 민간의 자발적인 협조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편 고령자 보건의료산업은 인구의 고령화에 대비한 미래지향적인 사업으로서 더욱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하므로 이와 관련된 더욱 심층적인 연구와 노력 및 투자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져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TV 드라마 너무 많다

우리 나라 TV에는 드라마가 너무 많다. 한 방송사가 하루에 내보내는 드라마가 최소 세 편 이상이나 된다. 아침 일일드라마를 비롯 저녁 드라마는 기본이고 특정 요일 드라마에다가 특집 드라마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가히 ‘드라마 왕국’ 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문제는 드라마의 수도 수지만 개별성을 찾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드라마가 그 드라마다. 애정물은 약속이나 한 듯 삼각 관계가 아니면 불륜 일색이다. 사극물 역시 각 방송사의 것이 비슷하다. 여기에 질이나 높으면 그런 대로 괜찮겠는데 질까지 떨어진다. 가족이 함께 보기 민망한 장면은 물론 어린이가 볼까 두려운 장면과 대사가 예사로 나온다. 노소의 구분도 없고 남녀의 구별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다. 모두가 저 잘났다고 하는 볼썽사나운 드라마가 매일 안방을 휩쓸고 다닌다. 아침 드라마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대에 걸맞게 희망찬 드라마라야 한다. 그런데 아침 드라마 역시도 삼각 관계 일색이 아니면 불륜으로 얼룩진 이야기가 중심이다. 이는 하루를 희망차게 열어가야 할 시간대에 있는 시청자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지극히 불량한 짓이 아닐 수 없다. 저녁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이 시간대는 온 가족이 저녁상을 물리고 앉아 하루의 피로를 푸는 자리다. 그런 자리에 함께 보기 민망한 드라마라면 이는 적절한 드라마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드라마는 심야 시간대에 편성해야 마땅하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12월 1일부터 평일 낮 방송을 시작하여 이런 우려는 더욱 깊어졌다. “시청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며 공익성을 강조했지만 공개된 편성표에는 드라마 등 인기 프로그램의 재방송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방송위원회가 지상파 TV의 낮 방송을 허용한 뒤 케이블 업계 등이 “평일 낮 방송은 결국 재탕 삼탕 편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 그대로 적중한 꼴이다. 방송사가 드라마에 치중하는 것은 오로지 시청률 때문이다. 드라마는 그 어떤 프로보다도 재미란 면에서 앞줄에 놓인다. 시청자의 감정을 통째로 빼앗아 갈 수 있는 것이 드라마의 특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너도나도 드라마에 목을 맨다. 게다가 한심한 것은 다른 방송사의 드라마가 좀 인기 있다 싶으면 그와 유사한 드라마를 제작하여 경쟁에 나서는 것이다. 일부 장사꾼들의 하는 짓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드라마의 시청률이 일단 높다 하면 엿가락 늘리듯 늘리는 법도 방송사가 개발한 아이디어중의 하나다. 여기에 시청자의 의견까지 얹혀지다 보니 일찌감치 죽었어야 할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는 해프닝도 벌어진다. 방송은 그 무엇에 앞서 국민의 건강한 정신 문화를 생각해야 한다. 인기도 중요하고 시청률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기(公器)로서의 사명감이다. 건전한 사회규범을 선도하진 못할 망정 국민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이런 류의 상업성 프로에 방송사들이 혈안이 된 듯한 모습을 보는 일은 심히 불쾌하다. 차제에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드라마의 책임감과 함께 도덕성이라 하겠다. 제아무리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때리는 장면 같은 부도덕한 행위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튀는 것에도 높이가 있고 선이 있다는 것을 제작자는 알아야 한다. 드라마는 방송의 노른자위이다. 그런 만큼 책무도 크다. 날로 심화돼 가는 정신문화의 쇠락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둔다면 드라마야말로 오락성을 유지하되 건강하고 유익한 사회 건설에도 일익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마땅하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진실이야 국익이냐, 미디어 논쟁

황우석 교수의 난자기증 문제로 아직도 시끄럽다. 문제의 발단은 섀튼 교수의 문제제기 선언에서 출발한 국내외 반응 그리고 지난 22일 밤 방송된 MBC의 ‘PD수첩’이 그 불길의 근원지다. 가수 강원래씨와 네티즌, 장애인 등 200여명은 오후 5시30분쯤 방송사 앞에 모여 방영내용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한 네티즌 등 200여명은 26일 저녁 ‘황 교수의 복귀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벌였다. 이런 사태에 대한 반응으로 난자기증지원재단에 따르면 황교수의 24일 기자 회견 이후 시민들의 난자제공 신청이 26일 700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등에 따르면 프로그램 전후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12개기업 중 11개 기업이 광고를 중단하거나 다른 시간대로 옮기기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위원회(IRB)는 난자 수급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고 정부도 오는 29일 국가생명윤리위원회를 열어 보완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방송보도에 대한 판단 기준은 ‘진실은 어떤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진실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보도한 사실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렇다면 이번의 방송 보도가 진실이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 한두 가지 질문을 해보자. 여성의 난자 ‘채취’(혈액 등 필요 성분만을 뽑아내는 것)에 대해 ‘적출’(장기 등 조직을 꺼내는 것)이라고 했고, 간단한 ‘시술’ 행위를 무거운 느낌의 ‘수술’이라고, 난자 채취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극단적인 케이스를 골라 부각시켰다. 그 전날에도 극단적인 장면만을 거두절미하고 골라 영화 예고편처럼 안내 방송했다. ‘반황우석’ 게임을 한판 벌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에도 어느 방송에선가 미국 교포에게 골수를 이식해준 젊은이를 찾아가 아프다느니 어떻다느니 마치 후유증이 있는 것처럼 보도한 일이 있지 않았던가. 진정으로 윤리 문제를 거론한다면 문화방송이 동시에 지켜야 했을 윤리가 있을 것이었다. 어떻게 황 교수가 기획하고 있는 기자 회견 이전에 방송을 하는 것이냐이다. 방송사 측은 그간 언론들이 황 교수의 업적을 너무 과대 전달해 왔다는 방증의 결과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런 일을 해온 당사자들이 자신들이라 생각한다면 좀 더 신중하게 보도했어야 했을 것이다. 기준이 없던 시기에 일어난 자발적 지원을 그 이전에 마련한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 마치 전쟁 때 일어난 인권 침해를 지금의 잣대로 재단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다른 일은 국내 문제지만 이번 일은 국제문제며 인간 생명에 관계된 일이다. 이 전에 난자제공에 150만원의 보상을 하면 죄악이고 앞으로는 외국처럼 500만원을 주어도 탈이 없다는 것인가. 기준이 마련되기 전에 일어난 일은 모두 불법이고 비윤리적인가? 언제나 새로운 이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은 그 기준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 수많은 불법 낙태들이 이 시간에도 수없이 이루어지는데. 중국은 조류 인플루엔자며 송화강 오염을 너무 늦게 보도하고 숨겨 문제고, 일본은 국익에 관계된 일이라며 너무 보도하지 못해 문제고, 우리는 너무 부정확하게 서둘러 보도해 탈이다. 사실을 보도하는 건 필요하지만 그건 객관적으로 공정해야 한다. 언론보도가 지켜야 할 형평(fairness)이란 질과 양에서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경기시론/민방위 교육훈련 점검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시대 분단국으로 남아있고, 지정학적으로는 강대국으로 둘러 싸여 상시 안보위기를 겪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미국 9·11 테러, 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일본의 독도 침탈 시도,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시도, 부산 APEC 회의 개최 등으로 안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더욱 더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안보불안을 해소시키고 유사시 대비능력을 제고시키기 위하여 이전과는 달리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이런 방향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존에 이런 기능을 하던 민방위 훈련을 점검하는 것이라고 사료된다. 민방위기본법은 “민방위라 함은 적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할 재난으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정부의 지도하에 주민이 수행하여야 할 방공, 응급적인 방재·구조·복구 및 군사작전상 필요한 노력지원 등 일체의 자위적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고, 정부는 이를 위해 1년에 8시간씩 대상자들을 소집하여 교육훈련을 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훈련 행정체계를 보면 행정자치부 산하 외청(外廳)인 소방방재청은 4년 단위로 지방행정기관에 “교육시간의 4분의 1은 소양교육으로, 4분의 3은 실기교육으로 충당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있다. 실기교육으로 예시한 것은 풍수해대비·산업재해대비·대테러·화생방교육·심폐소생술 등이다. 그리고 이 지침에 따라 광역자치단체장 또는 기초자치단체장은 민방위에 관한 전문적인 학식과 기능 또는 경험이 있다고 인정하여 임명 또는 위촉하는 자·민방위 담당공무원·해당민방위대장 등을 교관으로 임명하여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수원시의 일선행정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는 민방위 교육은 민방위기본법 및 행자부 지침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필자는 이번 달 초 수원시 민방위교육장에서 오전 9시부터 12시 50분까지 훈련교육을 받았는데 총 4시간 교육 중 약 40분 정도만 화생방 교육이 실시되었고, 나머지는 동북아정세·환경보호·화성복원사업설명 등으로 채워졌다. 동북아정세에 대한 강의는 언론보도나 상식수준이어서 교육생들의 주목을 끌기에는 역부족이었고, 화성에 대한 설명도 수원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큰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못되었다. 더구나 환경보호와 화성복원사업에 대한 내용은 민방위와는 거의 관련이 없었다. 또한 관할 구청을 통해 배부된 교육훈련소집통지서 뒷면에는 소집된 대원들에게 식비와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되어 있는데 교육 후에는 해당비용의 지급이 없었고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관련법령 및 중앙행정기관의 지침과 이렇게 차이가 나는 교육이 시행되었는지 일개 시민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담당자들의 안일한 업무처리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담당자들의 입장에서는 적당한 교관을 선정하는 것이 어렵고 관련 예산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그런 문제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에 불안감이 고조된 사회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민방위 교육은 부실해서는 안 된다. 일반지방행정기관에 교육훈련을 위임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면 소방방재청이 자체 지방조직을 통해서 직접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보고, 만일 그것이 정 불가능하다면 수임 지방행정기관에 대한 사전·사후 업무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기관은 시민들에게 조금이라도 회계상의 의구심을 남겨서도 안 된다. 민생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시민들은 한 시간이 귀하고 아까울 것이다. 이왕 소집했으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제대로 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하 태 수 경기대학교 교수

경기시론/주민자치센터와 노인복지 프로그램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정부가 효율적인 지방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작은 정부를 구현하기 위해 1999년부터 읍·면·동사무소의 기능을 전환하여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센터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인식이 낮아 지역주민의 참여가 저조한 편이며, 이용계층 중에서 주부가 차지하는 비율이 과반수 이상으로 참여계층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 프로그램도 취미활동과 사회교육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장애인이나 저소득층과 같은 사회적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주민자치센터는 앞으로 이러한 많은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문화여가와 사회복지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시설로 발전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홍보와 주민참여전략, 수준 높은 프로그램의 실시, 사회복지 전문인력의 투입, 자원봉사자의 적극적인 활용 등과 같은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주민자치센터가 이와 같은 다각적인 노력과 접근방법을 통하여 지역주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복지와 관련된 방향으로 기능을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주민자치센터는 공간, 시설, 설비, 전담인력 등에서 노인복지회관보다는 열악하지만 경로당보다는 나은 수준이기 때문에 노인복지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충분히 실시할 수 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실시할 수 있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은 보건의료, 사회교육, 문화여가, 복지후생, 주간보호, 공동작업장, 자조집단, 경로당과의 연계활동 등이 있다. 보건의료 프로그램은 지역사회의 보건소나 병원과 협력하여 건강체조, 무료진료, 성인병검진, 건강강좌, 건강상담, 무료한방진료 등을 실시할 수 있다. 사회교육 프로그램에는 컴퓨터교실, 한글교실, 생활영어, 중국어회화, 교양강좌, 문화유적탐방 등이 있으며, 문화여가 프로그램으로는 소풍·관광, 민요교실, 서예교실, 스포츠댄스, 에어로빅, 게이트볼, 탁구교실, 풍물교실, 바둑교실, 영화감상, 음악감상, 종이접기 등이 있다. 복지후생 프로그램에는 중식제공, 경로잔치, 독거노인 도시락배달, 밑반찬제공, 이·미용서비스, 생신축하모임, 취업알선, 방문세탁, 결연후원, 가옥수리, 노인상담, 가정봉사원서비스 등이 있다. 이러한 노인복지 프로그램들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경로당, 노인복지회관, 사회복지관 등과 같은 사회복지시설들과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수립하여 협력해 나가야 한다. 그와 더불어 주민자치센터가 지역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키고 지역사회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전담인력으로서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를 활용해야 한다. 특히 사회복지사는 다른 전문인력과는 달리 지역사회의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일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의 자원을 동원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주민자치센터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주민자치센터는 문화여가, 사회복지 및 생활편의를 제공하는 주민자치활동의 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노인복지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최소단위 종합복지시설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홍보전략, 주민참여의 촉진, 예산확보, 시설과 설비의 확충, 다양한 프로그램의 실시, 자원봉사자의 적극적인 활용, 사회복지 전문인력의 투입 등과 같은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근 홍 협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조혼(早婚)과 조기출산 바람직

만혼(晩婚)과 저출산이 유행처럼 돼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일찍 결혼하는 20대가 늘고 있다는 소식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특히 ‘결혼은 곧 인기 하락’의 법칙이 작용했던 연예계 쪽에서 이런 소식이 들리는 것은 사회파급 효과로서도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젊은이들의 결혼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문제로까지 거론될 만큼 초미의 관심 사항이 되었다. 이유는 단 한가지다. 너무도 빨리 찾아온 고령화 사회에다 저출산의 기현상으로 인구가 급속히 감소함으로써 이대로 가다가는 아시아의 소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결혼은 자연스런 인간의 삶의 한 과정이다. 또한 어찌 보면 의무 사항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이미 가정과 후손에 대한 책임도 부여 받았다고 봐야 옳다. 나 혼자만 잘 살다 가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아닐 수 없다. 모르긴 하지만 신은 그런 목적으로 한 사람의 귀한 생명을 세상에 내보내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 특히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데는 시대적 배경이 한몫을 했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여성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다 보니 결혼의 중요성이 희박해진 게 그 원인으로 꼽힌다. 출산에 대한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개인적 가치에 대한 추구도 빼놓을 수 없다고 봐진다. 그간 가부장적 제도 아래서 여성이 결혼으로 인해 받은 고통과 불이익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는 소설이 나왔고, 영화화까지 됐겠는가. 이것은 우리 사회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한 예라고 봐야 옳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작년 우리 나라의 초혼 연령은 남녀가 각각 30.6세와 27.5세였던 것으로 나왔다. 이는 불과 10년 사이에 2.3세가 상승한 수치이다. 이러다 보니 출산 연령도 자연 떨어지게 돼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만혼 부부들 가운데는 아기를 안 낳으려는 부부들이 늘어난다는 데 있다. 아기 한 명을 키우는데 드는 경제적 비용과 시간적 부담이 날로 높아지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출산에 따른 부담을 이제는 사회가 어느 정도 떠맡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특히 직장 여성이 출산할 경우 심적·경제적 부담을 줄여주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겠다. 출산 휴가는 물론 임금과 승진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줄 안다. 또한 복지후생 차원의 양육비 지급과 같은 지속적 지원도 강구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직장 여성에 대한 처우가 많이 개선되고 출산에 따른 불이익도 해소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이 이루어져서 가정과 일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만 지금의 저출산을 막을 수 있다. 또 차제에 ‘결혼은 구속’ 이라는 공식도 깨졌으면 한다. 그래야만 조기결혼이 이루어지고 젊은 엄마들에 의한 출산율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조혼은 늙은 사회를 젊은 사회로 바꾸는 일대 개혁이다. 아울러 출산장려 역시 국가의 힘을 키우는 일대 산업이다. 이 사회적 운동에 연예계쪽 젊은이들이 과감히 뛰어들었다는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지금부터는 이 새로운 유형의 바람이 우리 사회 곳곳에 휘몰아쳤으면 한다. 그래서 젊은 부부의 탄생이 늘어나고 신생아의 고고한 울음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는 기쁨에 찬 사회가 됐으면 한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커뮤니케이션 지수의 수준을 높여야

사회변화가 워낙 빠르다보니 각 부문에서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지금은 CQ시대라는 것이다. 30~40년 전 우리 시대는 IQ시대였다. 아직도 그렇지만 잘 외우는 머리를 가진 사람이 우수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제도들이 남아 있다. 사법고시며 수많은 시험들이 그런 유산이다. 미국에서처럼 일정한 자격을 거친 뒤 그 사람의 평판이 사회에서 걸러지며 판사로 임용되는 제도와 다른 것이다. 10~20여 년 전부터는 EQ라는 말이 도래했다. 감성이 사회 문화의 중심이 되어 있다. 정치도 보통 사람의 정서에 호소하고 광고며 영화, 드라마들이 감성 자극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의 영화나 영국의 소설도 우주전쟁이며 환타지풍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며 상징의 세계에서는 자칫 실상은 보이지 않고 허상만 보일 위험이 있다. 정작 앞으로의 시대는 어떠해야 할까.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 되는 CQ(Communication Quotient) 시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커뮤니케이션의 양은 늘었는데 쓸만한 내용은 없다는 게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를 계층별로 가르기도 하고 그 틈 사이로 경계인이 나타나기도 한다. 자칫 우리 사회가 감당할 양 이상의 정보들이 흘러넘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아무리 좋은 이상과 제도도 그 사회 구성원이 받아 들일만큼만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언론사 주재원으로 일본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당시는 우리 사회가 일본에서 여러 정보를 구하던 때이다. 새로운 잡지 창간소식이며 문화행사, 판매기법, 광고 기법 등 배울 게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새로운 자료를 구해 본사에 보내더라도 별 반응이 없었다. 문제는 담당자가 그 내용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현장에 가서 보고 새 정보의 가치를 이해했지만 본사의 담당자가 어떻게 그 자료의 가치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새 자료를 구하는 것보다 그 자료의 가치를 본사 담당자에게 설명하는 게 더 어려운 일임을 체험하게 되었다. 담당자가 납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자료도 무용지물에 그치고 만다. 요즘같이 여행이 자유롭거나 이메일 혹은 동영상 메시지가 있었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 됐을 지도 몰랐지만. 요즘 우리사회가 혼란해 보이는 것도 정부정책의 의도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일어나는 혼란이 아닐까.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나아가 정부와 국민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갭이 있는 게 사실이다. 가정 안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젊은이들은 소리말이 아닌 글말 문자 메시지를 더 즐긴다. 글말도 이모티콘을 사용한다. ‘안녕하세요’가 ‘꾸벅’이 되더니 이제는 ‘^*^’이나 ‘^-^’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아이큐며 이큐의 혼재 속에 이제부터는 커뮤니케이션의 지수(CQ)를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소통의 기초는 상대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류가 동남아에 흐르고 있지만 너무 일방적이다 보니 일본에서는 ‘혐한류’가, 중국에서는 ‘항한류’가 일고 있다. 모든 전문가는 상대방의 문화를 같이 받아들이고 아우르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통일문제를 둘러싼 강모 교수의 발언을 놓고도 언론은 언론자유며 사상·학문의 자유를 논하는 게 아니라 이념 갈등을 부추긴다. 이런 혼란이 자유로 보였는지 ‘국경없는 기자회’에서는 금년 우리나라를 아시아에서 제일 높이 일본보다 3단계 우위인 34위에 놓았다. 혼란할 정도로 자유롭다는 뜻인가? 사회적으로 대화의 필요성을 인식해 ‘끝장 토론’이라는 희귀한 방식도 만들어내는 나라다. 객관적 기초 위에 상대와의 차이를 찾아내는 알맹이 있는 커뮤니케이션 풍토로 커뮤니케이션 지수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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