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통신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가간 교류가 확산되고 사람과 문화 등의 빈번한 이동이 생활화된 이른바 지구촌시대를 맞이하면서 범죄 또한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횡행하고 있다. 그리하여 외국의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현지 교정시설에서 복역하고 있는 한국인들이 늘고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 외국인들에 대한 국내 교정시설 수용인원도 점증, 어느덧 1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자국이 아닌 외국의 교정시설에 구금된 수형자들에게는 자유 박탈이라는 형벌 본래 굴레와 더불어 언어, 문화, 생활양식의 차이, 가족 및 지인의 접견 곤란 등 이중적인 고통들이 수반될 수밖에 없고 이들을 수용·처우하는 각국의 교정당국 또한 효율적인 관리대책을 수립·시행해 나가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수형자들에 대한 수용관리상 난제(難題)를 해결하고 동시에 처우에 적합한 환경을 배려해 사회 복귀를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이 형사정책적 관점에서 모색되면서 ‘국제수형자 이송제도’가 비롯됐다.
우리나라도 국제 수형자 이송제도 시행을 위해 지난 2003년 12월31일 ‘국제수형자 이송법’(법률 제 7033호)을 제정한 바 있으며 유럽평의회의 ‘수형자의 이송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Transfer of Sentenced Persons)에 가입해 이 협약이 지난 2005년 11월1일부터 발효함으로써 외국과의 수형자 국제이송을 시행하게 됐다.
그런데 몇 달 전 미국에서 국내로 이송돼 복역 중인 한국인 수형자가 미국과는 다른 국내의 행형제도로 복역기간이 부가(附加)돼 그 억울함을 호소한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끈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지난 1993년 미국에서 마약유포 혐의로 19년 7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아 현지 교정시설에서 복역하면서 모범적인 행장(行狀)을 인정받았고 모범 수형자들을 대상으로 매년 형기를 단축해주는 ‘선시제도’ 혜택을 받아 이송 전 거의 2년에 이르는 형기를 미리 삭감받아 놓았었다.
그러나 선시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국내 법령 탓에 오랜 기간의 수형생활 동안 땀 흘려 취득한 ‘미래의 자유’가 졸지에 물거품이 돼버린 상황이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선시제도란 법관에 의해 선고된 형기를 수형자가 교도소 내 선행·작업성적·교정 프로그램 참여 정도, 또는 특별한 공적 등에 따라 일정한 점수를 취득해 자신의 형기를 스스로 단축시켜 나갈 수 있음을 법령으로 정한 제도다. 이 경우 단축되는 일수는 수형자가 스스로의 노력으로 획득한 법적 권리로 인정받아 ‘형기 자기단축제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제도는 지난 1817년 미국 뉴욕주에서 뉴 게이트(Newgate) 교도소의 과밀한 수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시보상법(Good Time Law)을 제정한 데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후 수정·보완을 거쳐 현재 선진국에서 수형자에 대한 유용한 사회복귀 프로그램으로 확산돼 오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방 이후 미군정 시절인 지난 1948년 3월31일 남조선과도정부 법령 제172호로 ‘우량수형자 석방령’이 공포되면서 즉시 선시제도가 시행돼 왔으나 아쉽게도 지난 1953년 신형법 제정시 그 부칙에 의해 폐지돼 이제는 행형사의 구석진 행간에서 빛 바랜 흔적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돌이켜 보면 해방 이후 일제 강점기의 조선감옥령을 의용하고 조선총독부의 행형조직을 그대로 인수해 운영할 수 밖에 없었던 그 혼란의 와중에서도 교육행형의 이념에 바탕한 선진적인 교정제도를 행형 현장에 접목·시행할 줄 알았던 그 대견함이란 행형사적 관점에서는 물론 오늘의 교정행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실로 크다.
어쨌든 국가간 수형자 이송이 글로벌시대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해 향후 더욱 빈번해 질 것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할 터인 바, 이송된 수형자에게 ‘형의 가중적 부담’을 안게 하는 요인들은 가급적 배제될 수 있도록 형벌 집행을 위한 국가간의 법적·행형제도적 차이점들을 보다 면밀히 비교·검토해 조화롭고 슬기로운 방안의 도출을 위해 고민해 볼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형벌이란 반칙행위에 대한 당연한 응보인 동시에 내일의 굿타임(Good Time)을 약속하는 훈육과 갱생의 과정임을 인식할 때 더욱 그러하다.
이 태 희 서울지방교정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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