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신정아와 변양균 사건,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우리는 날마다 사회적 드라마를 보면서 산다. 새 드라마를 보면서 지난 드라마는 잊는다. 한달반 동안 방영된 ‘아프가니스탄 인질 구하기’ 드라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뜨거웠으며, 네티즌 사이의 공방은 날마다 뉴스거리였다. 뉴스가 뉴스를 낳던 드라마가 인질 구출로 종영되고 국력의 막대한 손실을 입혔던 교회에게 보상권을 청구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어떤 결론이 났는지 필자는 그 이후 뉴스를 듣지 못했다. 이제 그 문제를 모두가 잊은 것처럼 보인다.
잊고 싶어 잊은 게 아니라 새로운,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신정아라는 신데렐라와 그녀를 도와준 키다리 아저씨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주연의 국내 연속극은 우리의 말초신경까지 자극하는, 그야말로 캐면 캘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갑남을녀나 장삼이사가 모이면 온통 그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더 얘깃거리가 된다.
그들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녀가 무슨 옷을 입고 무슨 가방을 메고 무슨 장신구를 달았는지까지 뉴스가 되고, 그 물품은 명품으로 알려진다. 모든 게 연기처럼 사라지는 자본주의가 망하지 않고 사람들이 견디며 사는 이유를 프랑스의 철학자 기 드보르(Guy Debord)는 “현대사회가 ‘스펙터클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삶의 현실은 사라지고 TV나 신문, 인터넷 등에 등장하는 기사가 만들어내는 스펙터클에 자신의 삶을 투사하면서 사는 게 우리네 일상생활이다. 지식인 중의 지식인인 대학 총장, 대한민국 돈을 좌지우지 하는 권력을 가진 고위관리, 아름답고 격조 있는 작품과 함께 사는 예술인, 그리고 많은 신도들이 다니는 큰 절의 큰스님도 별 수 없이 다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까발리는 드라마를 사람들은 보고 즐기며 욕하면서 부러워한다.
백남준의 말대로 예술은 고등 사기다. 그렇다고 삶까지도 그래야 하는가? 누가 가짜와 진짜 예술가를 구분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랑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가? 돈에 눈이 멀고 사랑에 귀가 먹고 오직 부와 명예를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사기 치면서 사는 게 우리 인생인가?
어쩌다 우리가 이런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됐는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인생이 아니라 지식이다. 지식과 삶의 분리가 문제의 근원이다. 옛날 사람들은 내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사서삼경을 읽었다. 공부의 목적이 내 심성을 닦는 것이었다. 과거 급제를 통한 입신양명은 그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좋은 직업과 예쁜 아내, 또는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잘 먹고 즐기기 위해 공부한다.
학문의 이같은 도구화로부터 발생한 게 인문학 위기다. 인문학이란 무엇을 위한 수단으로 학문을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과학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무의미하다.
우리는 잃어버린 인간 삶의 의미를 되찾기 위해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 이같은 취지로 교육인적자원부는 올해부터 매년 한글날을 즈음해 인문주간을 선포하고 학술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올해는 서울대에서 8~9 양일간 ‘융합의 인문학, 창조의 인문학’을 주제로 학술제가 열린다. 인문학을 구하는 일조차도 스펙터클을 만들어 ‘쇼’를 해야 하는 게 서글프지만 더 늦기 전에 인문학을 구해야 한다. 인문학을 구하는 일이란 바로 인간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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