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노인의 사회참여와 자원봉사

최근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대부분의 노인들은 더욱 길어진 노년기 동안 경제문제, 건강문제, 심리문제, 역할상실 등으로 인하여 건강하고 보람있는 노후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들이 건강을 유지하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며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보람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인의 사회참여를 촉진시켜야 한다. 노인의 사회참여는 긍정적·규칙적인 생활태도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며, 노후생활의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노인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한다. 노인의 사회참여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특히 노후생활의 만족에 기여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분야로는 경제활동, 여가활동 및 자원봉사가 있다. 경제활동을 보면, 노인들이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상당히 낮으며, 종사자의 과반수 이상이 농업·어업·축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상용근로자보다는 임시근로자와 일용근로자가 많아 고용상태가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노인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노인고용을 법제화해야 하며, 노인에게 적합한 직종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노인취업알선기관의 활동을 촉진해야 한다. 또한 창업자금융자제도의 신설과 노인직업훈련원의 설립을 통하여 노인창업을 지원하며, 노인의 신체적·기능적·기술적 수준에 맞는 노인복지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 노인의 여가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 여가활동 프로그램을 취미활동, 건강활동, 교육활동 등을 기반으로 노인의 수준에 적합하게 개발하여 보급하며, 노인여가복지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적으로 적절히 안배해 보다 많은 노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편 노인의 사회참여 형태 중에서도 노인들이 풍부한 지식, 경험, 기술, 능력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자아를 실현하며, 소외감을 극복하고 건강을 유지함은 물론 노인생활의 안정감과 삶의 만족감을 갖도록 하는 가장 훌륭한 분야는 자원봉사일 것이다. 최근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인이 증가하고 있으며, 노인이 활용할 수 있는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있고, 노인의 건강수준이 점차 향상되고 있으며, 사회에 유익한 활동을 함으로써 삶의 보람을 찾으려는 노인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의 자원봉사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노인의 자원봉사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노인자원봉사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고 보다 많은 노인들이 자원봉사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노인자원봉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시켜야 한다. 또한 노인들이 흥미를 가지고 계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노인에게 적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보급하고, 노인의 자원봉사 관련 업무를 전국적으로 총괄하는 전담기구로서 가칭 ‘한국노인자원봉사단’을 설립하여 운영해야 한다. 그밖에도 노인이 안심하고 보람있게 자원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노인자원봉사자에 대한 보호·보상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이러한 노인의 자원봉사는 노인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도 유익한 활동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의 노인들이 동참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면서 과제이기 때문에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앞으로 인생의 황혼기가 아닌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더욱 길어진 노년기 동안 노인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회참여를 통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이 근 홍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이웃없는 사회

주 5일제가 실시되면서 각 동네의 휴일 거리 풍경은 볼썽사납게 변해버렸다. 여기저기 내다버린 쓰레기로 악취가 진동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엔 청소차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악취 나는 쓰레기를 집밖에 내놓다 보니 이런 볼썽사나운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쓰레기로 넘쳐나는 휴일의 거리 모습은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살고 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이웃이란 오래 전에 사라져버리고 없다. 동네는 있어도 이웃이 없는 서글픈 사회가 돼버렸다. 여기에다 주차 문제는 우리들의 이웃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너도나도 눈에 핏발을 세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 집앞 도로를 감시한다. 행여나 내 집 앞에 누가 차를 세우지나 않나 하고 사나운 눈초리로 보초를 서는 것이다. ‘여기다 차 세우면 빵꾸 낼껴!’ 같은 섬뜩한 글귀를 담벼락에서 봐야하는 것은 또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한마디로 부끄럽다. 정다워야 할 이웃이 어쩌다 이렇게 불편하고 부담스런 존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인도의 영적 지도자 스리오르빈도는 오래 전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하자며 이렇게 호소했다. ‘이상적인 도시는 먼저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건설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가슴을 향해 난 길, 그 길밖에는 이상적인 도시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깊이 음미해 볼 만한 말이다. 얼마 전 신문에는 혼자 살던 노인이 죽은 지 보름 만에 이웃에 의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또 그 며칠 전에는 한 어린이가 부모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아 온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 정신 상태마저 온전치 못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그 동안 이웃들은 전혀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기야 요즘처럼 문이란 문을 있는 대로 걸어 잠가 놓고, 그것도 모자라 눈이며 귀까지 닫고 살다 보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긴 하다. 그리고 설령 안다 하더라도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다. 우린 언제부턴가 내 남없이 그렇게 살아오고 있으니까. 이상적인 도시는 고사하고 얼굴이 찌푸려지지 않는 사회만이라도 건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사람은 싫든 좋든 간에 다른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하는 숙명을 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사람 사는 재미와 행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웃은 나와 가장 가까운 코앞의 또 다른 가족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웃 사촌이다. ‘먼 친척보다는 가까운 이웃이 낫다’ 는 속담도 그래서 나왔다. 이웃,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이웃을 되찾는 일은 행복을 되찾는 일이다. 정다운 이웃을 만드는 일은 곧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 된다. 거리에서 만나면 웃는 얼굴로 인사 나누고, 안부도 묻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좀 해가며 살자. 근심이나 걱정거리가 있으면 조금씩 쪼개어 나눠 가지기도 하자. 또 있다. 이왕이면 기분 좋을 얘기 한 도막씩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도 하자. 그렇게 오순도순 지내야 그게 이웃이다. 그렇게 해야 우리 사회가 사람 냄새 나는 인간 사회가 된다. 더 나아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나올 수 있다. 코 앞에 닥친 고령화 사회는 이웃에 대한 생각을 더욱 하게 한다. 외롭고 쓸쓸한 노인들에게 따뜻한 이웃을 선물하는 일, 이 또한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세계 기준이라는 것

전남 광주의 모대학에 있을 때였다. 지역 대학, 가령 목포의 대학 신문을 보면 목포에서, 광주의 도 회의에 가면 그런 기사가 동정란에 실리는 것을 보았다. 광주의 대학신문은 교수가 서울 회의에 가면 소개한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 신문은 교수가 외국 학회에 참석하면 동정란에 때로 실리기도 한다. 마치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제는 기준이다. 서울에 있지 않다고 대학이 이류인 것도 아니고 한국에 있다고 세계의 일류 기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여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영어와 중국어 특기 수업을 하고 있다. 이제는 시골 산 밑에서 음식점을 하든 학교를 하든 농원을 하든 그 기준은 서울이 아니고 ‘원칙’이고 경쟁대상은 ‘세계’다. 가령 경기지역 특히 수원은 물이 많아 수원인데 화성이나 용인 근처에 저수지들이 많다. 경치가 좋은 그 저수지는 누가 이용해야 할까. 밥집? 낚시? 수상스키? 모텔? 일반 시민의 하이킹 혹은 자전거 길? 어찌 되어 있을까? 1위는 음식점이요 2위는 모텔 그리고 사람은 저 밖으로 밀려 나 있다. 법이 그래서 모텔이나 음식점 허가를 안 내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법이라면 앞서 말한 세계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 맞지 않으면 그게 바로 후진국이다. 그런데 이런 후진국제도로 환경이 한 번 잘못되면 한 세대 두 세대를 지나야 고쳐진다. 즉 30년에서 100여년을 지나야 개선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중국 센양에 가서 군인 호텔에 묵은 일이 있다. 영하 27도 되는 아침에 추워서 방 창문을 보니 홑 창문이다. 아무리 난방을 틀어댄들 무엇하겠는가? 이 호텔을 지을 때는 설마 지금처럼 발전하는 중국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창문을 다 뜯어 고치든 호텔을 허물고 다시 짓든 앞으로 몇 십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우리가 요즘 세계기준(Global Standard)을 찾는 것은 한 번의 제도나 건축물이 몇 십년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도도 마찬가지다. 프로야구를 보면 피처 대신에 대타자를 쓰고 때로 대주자를 기용하기도 하고 피처도 선발, 중간 계투, 마무리, 마무리도 왼손잡이, 오른손잡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본다. 아무렴 한 나라를 다스려 가는 기술이 야구의 전략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정치인이나 공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시점에서 시야를 인간 보편성 혹은 세계 기준의 보편적 가치에 두어야 할 것이다. 대중들이 정치를 알기에는 그 내부가 투명화 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종국에는 이기지만 단기전에서는 패배하게 되어 있다. 조금 더 정치나 행정이 투명한 가운데 세계기준에서 경기도의 건설, 환경, 문화 사업들이 진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청계천 복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시민이 즐거워 하니 나라가 즐겁다. 앞으로는 길 옆의 상인들이 즐거워 할 것이다. 모두가 이익을 보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치의 기초가 아닐까. 수원 화성의 복원이 모두에게 즐거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교수

경기시론/경로당 운영의 활성화 방안

최근 노인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가족제도의 핵가족화, 고도의 산업화·도시화 및 노인부양의식의 약화로 노인들이 점차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있으며 사회경제적 지위와 역할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이 경제문제, 건강문제, 심리문제, 여가선용문제, 정신건강문제 등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노년기의 많은 시간을 고독감, 소외감 및 박탈감을 느끼면서 보내야 하는 노인들에게 여가선용은 심각한 문제가아닐 수 없다. 따라서 노인들에게 여가를 선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사회적 관계를 증진시켜 노인의 여가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여가시설인 경로당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경로당은 지역사회 노인들에게 친목도모, 취미생활, 오락, 건강과 체육활동, 교육 프로그램, 공동작업, 지역봉사활동 등을 제공하여 노인들이 건전하고 보람 있게 여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노인여가시설이다. 경로당은 2004년 말 현재 전국에 5만682개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경기도에는 16개 시·도 중에 가장 많은 7천183개소가 설치되어 있고, 점차적으로 그 수가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노인들의 사회참여와 여가선용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로당에서는 여가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시설·설비, 공간 및 프로그램조차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정부 지원금의 부족, 지역사회 자원활용의 결여, 운영책임자의 적극성 부족 등으로 인해 노인들의 여가선용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경우에도 여가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못해 화투, 장기, 바둑, TV시청, 라디오 청취, 지역봉사활동 등과 같이 단순한 것들만 실시하는 경로당이 많으며, 일부의 경로당만이 취미교실, 야유회, 건강체조, 게이트볼, 물리치료, 한글교실, 공동작업 등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경로당의 시설이 낙후되어 있고 경로당의 이용률이 낮고 운영책임자의 리더십이 부족하며, 정부보조금 지원이 적어 지역사회와의 유대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실정이다. 경로당이 지역사회의 대표적인 노인여가복지시설로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경로당의 기능을 새롭게 정립함은 물론 차별화된 혁신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노후화된 시설을 개·보수하고 필요한 설비와 공간을 확충해야 하며, 여가선용과 사회참여에 크게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지역특성에 맞게 개발하여 보급해야 한다. 또한 경로당이 지역사회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필요한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하며, 정부지원을 확대하여 효과적인 운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로당 기능의 재정립과 더불어 경로당 운영의 활성화를 위해 현재 노인복지회관과 사회복지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로당활성화사업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경로당활성화사업의 추진주체를 다양화하여 사업을 확대·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용노인의 욕구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경로당 운영책임자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실시함은 물론 사업에 적합한 사회복지사와 프로그램 강사를 양성하여 활용하고 그에 필요한 충분한 재원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경로당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은 그 외에도 경로당의 명칭을 ‘노인여가복지센터’(가칭)로 변경하여 경로당의 위상을 제고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설로 발전시켜야 하며, 경로당 10개 정도를 하나의 단위로 하여 ‘경로당지원센터’를 설립하고 사회복지사로 하여금 전문적인 지도와 서비스 제공을 하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지역적 특성에 적합하면서도 앞으로 경로당의 혁신적인 발전방향과 관련된 새로운 기본 매뉴얼의 개발을 통한 경로당의 모범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실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아침독서는 보약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술 소비량이 세계 4위로 나왔다. 러시아, 라트비아, 루마니아에 이어 네 번째다. 가히 술의 왕국이란 호칭을 들을 만도 하다. 우리 국민의 술사랑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아침 해장술’이란 말까지 지어냈겠는가.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음주를 권장한 게 우리 사회다. 그러나 이제는 술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 지나친 술은 몸을 해칠 뿐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하등 이로울 게 없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의 생산적 에너지와도 연관이 있다. 지난밤의 과음으로 인해 생산적·능률적인 아침이 되지 못하고 하루의 동력이 원활하게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해서 하는 말인데, 아침 해장술 대신 책읽기 운동을 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아침 책읽기 운동은 이미 각급 학교에서 실시하고 있고, 그 성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아침 책읽기 운동에서 정한 시간은 10분이다. 이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도 읽어낼 수 있는 시간이다. 더욱이 이 10분이란 시간은 지속적으로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얻는 시간이 된다. 아침 책읽기 운동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모두가 한다. 둘째는 매일 한다. 셋째는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넷째는 단지 읽기만 한다. 이 운동을 일으킨 나라는 가까운 일본이다. 1998년에 두 명의 교사로부터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1만여 학교로 확산되었다. 이에 우리 나라도 자극을 받아 아침독서추진본부가 생겼고 이 운동을 전국 학교로 펴나가고 있다. 이왕이면 이 운동을 학교뿐 아니라 일반 직장까지 확장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니,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정부 부처부터 시작해 보는 일은 얼마나 효과적이고 그 상징하는 바가 클까. 기업체 및 사회단체에서도 시도해볼 만하다. 정치하는 사람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씩 들고 들어가 10분 동안 조용히 독서를 한 뒤에 차분한 마음으로 일과를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마음의 양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감성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일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아침 독서는 하루의 삶을 책으로 연다는 의미도 갖는다. 책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신선할 수밖에 없다. 책이 길을 여는 데 잡다한 욕심의 부스러기들이 어떻게 감히 끼어 들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 혼탁한 정치도 지금보다는 훨씬 깨끗해질 것이다. 얼음장같은 싸늘한 분위기도 훨씬 따뜻해질 것이고, 톱날 같은 격앙된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을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걸핏하면 삿대질에 욕지거리가 오가는 보기 민망한 단상도 저 들녘의 곡식처럼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유치원생에서부터 돋보기 쓴 어르신 학생에 이르기까지 아침 10분 책읽기 습관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맑은 물로 정신을 깨운 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손에 드는 그 광경은 또 하나의 장엄한 ‘팔만대장경’일 수 있다. 비록 10분이지만 일주일이면 70분이 되고, 한 달이면 5시간이 되고, 1년이면 60시간이 된다. 중요한 것은 매일 하는 것이다. 나날이 허물어지고 와해돼 가는 가정과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데 독서를 동력의 지렛대로 삼을 필요가 있다. 책으로 아침을 시작하자. 내가 먼저 깨끗하고 행복해야만 사회도 맑게 흘러갈 수 있다. /윤수천 동화작가

경기시론/‘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하니까’

남북관계가 때로 경색되는 듯하지만 끊어질 듯 교류는 지속되어 가는 법이다. 필자는 지난 8월 초 하얼빈에서 북의 컴퓨터정보학자들과 세미나를 그리고 지난 주 금강산에서 방송관계자들과 토론회를 갖고 왔다. 북측 사람을 만나면 처음에는 어색해 말을 삼가지만 세미나가 끝나면 자연스레 식탁에 앉아 술도 마시며 사회와 세계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북쪽에서는 혹시 남쪽이 미국의 압제를 받는다고 여기겠지만 우리는 그보다도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어서 외국자본이 막 밀고 들어오지요. 가령 국제투기자본인 소버린이란 회사는 우리의 SK기업 사냥을 해서 8천억원 이상의 이익을 내고는 세금도 안내고 나가버렸죠.” “서양아들이 장난질 친 거 아닙니까?” “그런 면이 있지요.” “그런 사람들을 왜 받아들였습니까?” “가령 우리가 학교 가는데 때리는 선생이 있다고 학교에 안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 “매를 맞으면서도 학교에 가야 하듯 서양의 금융기법을 배워 GDP 만4천 달러를 만5천, 6천으로 올려야지요. 그게 싫다고 배척하면 만 2천, 만으로 떨어질 텐데요. 그런데 사실 이보다 무서운 건 중국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나타나듯 중국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없애려 하지 않습니까.” “중국은 무서운 나라지요. 타민족의 침략을 받으면서도 땅덩어리를 키워 왔거든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중국이 우리의 위협이 되고 있다는데 묵시적으로 합의를 이루는 느낌이 들었다. “제가 몇 년 전에 남쪽에서 트랙터, 즉 뜨락또르 공장에 산업시찰을 간 적이 있거든요. 부품의 국산화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더니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부품 산업이 잘 발달돼 있나요?” “부품은 중국이나 일본 가릴 것 없이 어느 나라 것이든 싼 걸 사오면 된다는 거죠.” 간접적으로 세계화 그리고 개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예를 들고 싶었다. 금강산에서는 방송 프로그램이 토론의 주제가 되다보니 북의 프로그램과 남의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시간에 서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조용필 콘서트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남측의 요란한 장비나 스피커, 눈부신 조명 등이 볼거리는 되겠지만 불분명한 가사며,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 노래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쪽에서 방송된 우리 프로그램은 어떻습니까?” 한 남측의 피디가 말했다. “조금 이념적인 것 같은데 다양성이 부족하지 않은가 싶습니다만…” 다양성이란 남에서는 일주일에 5개 채널에서 30여개의 드라마를 쏟아내고 일년에 70여 국산 영화에 수입영화까지 수백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양적 다양성을 들 수 있는데 자연히 수용자들이 교훈적인 것보다 재미있는 것을 고르게 되지 않겠느냐는 원론적인 설명을 했다. 혹시 우리 가수가 북에 가서 공연할 때도 그 가수가 북의 정서에 맞는 가수라기보다 한국에서 유명하니 당신들도 들어보시오, 하는 대남 과시용 행사가 아니었는지 의문을 갖게 했다. 윤도현이 북에 가서 ‘오 필승 코리아’라는 가사를 야외나 운동장이 아닌 무대 위에서 몇 번씩이나 반복하는 경우 그게 대중가요인지 응원 구호인지를 의심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조심스레 서로를 이해하는 대화들은 여러 난관 속에서도 이어질 것이라 여겨진다. 남과 북이 다시 하나가 되리라 서로 기대하고 있으니까. 다만 조금 더 상대의 정서를 이해하려는 배려가 따라야 할 것이다. 북이나 남이나 자존심이 상처받는 것은 참지 못하는 민족이 아닌가. /김 광 옥 수원대언론정보학과교수

경기시론/北, 국제사회 신뢰부터 회복해야

이번 주에 속개될 예정이었던 북한 핵문제를 풀기위한 6자회담이 지연되고 있다. 이러다가 북한이 핵실험과 같은 극단적 행동이라도 하고 미국이 이에 맞서 북한에 대해 군사행동을 감행하면 또 다시 한반도가 전쟁 위기를 맞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던가. 이미 우리는 11년 전 봄 한반도가 불바다가 될뻔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한반도 전체가 불바다가 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에 솥뚜껑이 아니라 부엌만 보아도 가슴이 철렁하는게 우리의 현실이다. 회담의 속개가 지연되는 가장 큰 표면적 이유는 북한의 핵 평화 이용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이 다른 입장을 취하기 때문이라 한다. 북한은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는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 아래서 모든 주권국가들에게 부여된 권리이며 북한 역시 이 보편적 권리를 당연히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북한이 과거에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 이 평화적 권리를 남용했었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전과자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나서서 북한에게도 주권국가로서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인정하지만 먼저 북한이 현재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중재안을 내놓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북한이 스스로 전과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닭이 먼저인가 닭의 알이 먼저인가라는 논쟁과 비슷하다. 중국의 수석대표인 우다위이 외교부 부부장이 급히 평양으로 날아갔으니까 좀 더 기다려 보아야겠지만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아직은 이르다. 결과를 낙관할 수 없는 것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표면적 이유 뒤에 보다 실질적 문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 숨어있는 그림이 바로 경수로이다. 북한의 신포지구에는 1994년에 타결된 제네바 합의에 따라서 2기의 경수로가 건설 중이었다. 약 40억 달러를 투입해서 2백만㎾ 짜리 경수로 원전 발전소 2개를 짓고 있다가 3년 전에 이른바 고농축우라늄 사건이 터지면서 건설이 중단되었고 계획 자체가 백지화된 바 있다. 북한은 이 경수로 발전소가 완공되어 전력을 생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국 정부가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2백만㎾ 전력을 합치면 모두 4백만㎾의 전력을 북한은 가지겠다는 주장인 셈이다. 북한이 실제로 1년 동안 생산하는 전력 전체와 맞먹는 규모이다. 물론 북한의 입장으로서는 전력도 갖게되고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도 확보하게 돼서 일거양득이 된다. 경수로를 통해 핵 무기를 만드는 것이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이용하다가도 언젠가는 군사목적으로 전용할 수도 있으니까 이거 삼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우선 비용이 엄청나다. 경수로 건설을 마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한다. 현 시세로 따져 3조에 가까운 돈이다. 2백만㎾ 전력 제공이 경수로 계획의 취소를 전제로 했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측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뢰문제이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북한 스스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하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경수로의 완공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다. 지금 북한이 해야할 일은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경수로 문제는 신뢰가 회복되면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모든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여 손상된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한 다음에는 핵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가 당연히 주어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북한이 합의한 대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행하고 한민족 전체의 공동 평화와 번영을 구현시켜야 한다. /정 종 욱 아주대 교수

경기시론/노인요양보험의 도입과 발전방향

최근 평균수명의 연장과 저출산 현상으로 전체 인구에서 노인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9.1%로서 448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2020년에는 15.7%로서 782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인인구의 증가와 더불어 신체적·정신적으로 허약한 후기 고령노인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은 대부분 치매·중풍 등의 노인성질환을 갖고 있어서 장기간 요양보호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장기간 요양보호가 필요한 노인이 급속히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가족 책임의식의 약화, 여성 사회활동의 증가, 가족 부양부담의 증대, 노인부양비용의 증가 등으로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요양보호 노인에게 보건·의료·요양·복지가 통합된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2005년 7월부터 2년 동안 두 차례의 시범사업을 거쳐 2007년 7월부터 노인요양보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노인요양보험은 신체적·지적·정신적인 질병으로 인해 의존상태에 있는 노인 또는 생활상의 장애를 지닌 노인에게 장기간(6월 이상)에 걸쳐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돕기 위해 보건·의료·요양·복지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험제도이다. 노인요양보험의 실시와 정착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노인요양시설과 전문인력을 대폭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현재의 노인요양시설로서는 급증하는 장기요양보호의 수요에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공공부문의 시설을 확충함과 동시에 민간부문에서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하여 대폭적인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전문요양시설, 방문개호, 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간호, 치매노인그룹홈 등과 같은 시설에 민간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행정적 규제의 완화와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기존의 각종 사회복지시설을 활용하여 이러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노인요양보호 전문인력은 장기요양보호 서비스의 질적 보장과 효과성을 좌우하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을 갖춘 수준 높은 인력의 조기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문인력 중에서도 특히 노인요양보험의 전 과정에 개입하여 대상자들에게 적절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중심적인 인력인 요양관리사와 방문개호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의 양성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요양관리사는 사회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과 같은 보건의료나 사회복지 분야의 자격을 가지고 5년 이상 실무경험이 있는 자를 대상으로 자격시험을 통하여 선발하고 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대학이나 기관을 지정하여 교육을 수료하게 한 후 국가자격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노인요양보험은 장기요양보호가 필요한 노인을 위한 사회적 보호체계로서 크게 발전하게 될 것이며, 노인복지의 증진에 기여하는 중요한 사회보험제도가 될 전망이다. 노인요양보험의 도입과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인요양시설과 전문인력의 확충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실천의지와 의료법인이나 영리법인 등을 포함한 민간의 다양한 주체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인요양보험이 실시되고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이것은 장기요양보호가 필요한 많은 노인들에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여 그들을 적절히 보호하게 될 것이며, 고령사회에 대비한 가장 훌륭한 사회복지제도가 될 것이다. /이 근 홍 협성대 사회복지학대학원장

경기시론/남북 작가모임, 문학적 접근부터

지난 7월 중순, 남북 작가들이 북한 땅에서 모임을 가진 것은 1945년 12월 13일의 조선문학가동맹 총회 이후 실로 60년만에 이룬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첫 만남에서 남북문학 교류를 위한 상설 기구로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한 것과 협회기관지 ‘통일 문학’을 발간하기로 한 것, ‘6·15통일문학상’을 제정할 것 등을 합의한 것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실망스런 부분도 없지 않았다. 순수 작가들의 회의에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민족자주, 반전평화 정신으로 창작에 매진할 것’ 등 다분히 정치성을 띈 문구를 공동선언문의 서두에 넣은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 이는 앞으로의 남북 작가들의 모임의 방향을 자칫 정치적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다. 실망스런 점은 또 있다. 오랜만에 마주한 남북 문학인 행사가 매우 경직됐고 부자유스러웠다는 점이다. 한 예로 남쪽 작가들이 북쪽 작가들과 함께 어울려 시정(市井) 주점을 찾아가 담소를 나누고 싶었어도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가정 방문 운운은 더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해서 일부 젊은 남쪽 작가들이 터놓고 불만을 토로했는가 하면, 어떤 작가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말로 그날의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물론 첫 숟갈부터 배부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단 60년의 단절세월이 한두 번의 만남으로 해서 말끔히 걷힐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순수문학인들의 만남이니 만큼 적어도 자유스런 분위기 아래서 기탄 없는 심정을 주고받는 자리 정도는 됐어야 하지 않았을까. 이산가족의 상봉 같은 극적인 만남의 현장이야 연출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일만은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구애받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문제는 지금부터라고 본다. 남북 작가들의 모임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문학적인 접근부터 하는 게 순리요 도리라고 본다. 자칫 이번 공동문 서두와 같이 정치성 구호가 문학 위에 놓이게 된다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학적 접근도 마찬가지다. 현재 남한의 문학과 북한의 문학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와 간격이 있다. 남한의 문학이 인간의 내면 의지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반면에 북한의 문학은 소위 ‘주체문학’으로서 체제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문학의 표현에 있어서도 남한 문학과는 그 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좁을뿐더러 많은 제약을 받는 게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고민은 또 있다. 반세기가 넘는 저 세월의 뒤안길에서 파생된 심각한 언어의 이질화 문제다. 언어의 이질화는 문학적 소통을 어렵게 할뿐 아니라 반쪽 민족어라는 오명을 벗을 길 없다. 따라서 이는 가장 시급히 서둘러야 할 작업으로 남북 작가뿐 아니라 국어학자까지 참여해야 마땅하다. 무릇 일은 쉬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성공률이 높다. 그러자면 우선 남북 작가들이 자유롭게 만나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뒤에 신뢰가 더 쌓이면 그때 가서 상호 방문을 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는 상반된 체제 안에서 살아온 두 사회를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며, 인간의 삶을 진실하게 기록하기 위한 가장 뜻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남북 작가의 교류는 이미 시작되었다. 너무 성급한 기대보다는 상식적인 것부터 차근 차근 챙기고 해결해 가는 진지한 노력이 요구된다. /윤 수 천 동화작가

경기시론/왜 스스로를 하향 평준화 시키는가

근간에 우리 사회에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전직 안기부 직원이 274개의 도청 테이프를 집안에 보관하고 있었다. 무슨 일기장이나 수금장부라도 되는 것으로 여긴 것일까. 공무원이 어쩔 수 없이 부당한 일을 했으면(자기 소신으로 내부고발 등을 통해 하지 않을 수 있을 때 선진국이 되겠지만) 즉각 소각해 버려도 시원치 않을 물건을 공갈용 수단으로 간직하고 있었으니 자기 역할에 대해 뭔가를 망각하고 있었나 보다. KBS 드라마 프로듀서는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날로 심해지는 며느리들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마침내 시어머니의 뺨까지 때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실제 그런 사례가 있어서 연출했다니 그런 논리라면 요즘 너무 더워서 밤에 잘 때 벗고 자는 사람이 많으니 방송에서도 벗고 자는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것인가. 공공방송 프로듀서라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이다. 마침내 MBC가 지난달 30일 ‘생방송 음악 캠프’에서 출연자의 성기를 4초간 내보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일차 책임이야 무대에 오른 펑크 록 밴드 럭스의 퍼포먼스 팀인 ‘카우치’의 신모, 오모 씨의 행위 탓이지만 그런 연예인이 이따금 실제공연에서 옷을 벗는 일이 있다는 사정을 알았을 텐데 이를 막지 못했다는 건 방송사나 출연자나 생방송 공연을 카페수준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요즘 정치가에서도 대변인의 ‘샐 위 댄스’며 ‘카바레’ 수준의 막말 싸움을 보면 정치를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음을 본다. 지역 정치와 국가 정치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양상의 원인은 일을 대하는 개인의 준거의식의 마비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프로듀서는 공공 정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타방송 프로그램과의 시청률 경쟁이나 스폰서의 눈치를 의식하고 있고 공무원은 국민보다 자기의 안위가 우선이다. 한마디로 스스로 자신과 자신의 사회의식을 하향평준화 시키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큰 문제는 이런 기관들이 국가의 정보를 독점 혹은 과점하고 있는 공공기구라는 점이다. 혹시 이름 없는 케이블이나 위성 채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어도 사회 이슈화 될 판에 버젓이 대형매체에서 벌어졌으니 뭐라 해야 할까. 공공매체를 사적 이득을 위해 사유화 한다는 건 공공정신의 위반임은 말할 나위 없다. 그밖에 SBS의 캐디 비하 드라마 대사 등의 현상은 왜 자주 일어날까? 지금은 우리 사회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휴대폰 보급은 90%, 자동차 생산 세계 5위, 집은 100%가 넘는데 자기 집과 대형 평수, 강남이나 분당 등에 모자라고, 직장은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고 편한 직장이 모자란다. 모든 게 겉으로 드러난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질적으로 높아져야 하는 시점에 있다. 그리고 이를 얻기 위해 참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욕지거리라도 내뱉고 획득을 위해서는 협상이며 혁신, 개혁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투쟁을 통해 얻으려 하는 것이다. 탄핵 이래 우리는 관습법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부터는 법률이 아니라 시민의 상식으로 규칙을 지키는 규범, 법이 아니라 국민의 전통이나 풍습이 갖고 있는 관습을 중요시해야 하는 선진국 형의 문턱에 와있는 것이다. 근간의 방송사고와 도청정보의 유출은 외적인 법보다 모두가 지켜야 할 강령(code), 사회 속에서의 내적 규범, 국민이 지켜야 할 조화의 관습이 새삼 강화되어야 함을 일깨워 준다. 시민 각자가 하나밖에 없는 자기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야 할 것이다. /김 광 옥 수원대 교수/ 법정대학장

경기시론/‘가쯔라-태프트’ 밀약의 교훈

100년 전 오늘(1905년 7월 29일) 우리 민족의 장래가 일본수상 가쯔라와 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의 비밀협정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되어버린 것이다. 그 결과가 그 해 11월 18일 을사늑약(乙巳勒約)으로 망국에 이르게 된다. 협약 내용은 첫째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하등의 침략적 의도를 품지 않고 미국의 지배를 승인할 것. 둘째 극동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미·영·일 3국은 실질적으로 동맹관계를 확립할 것. 셋째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한국은 일본이 지배할 것을 승인할 것. 1906년에 들어와서 러·일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가쯔라-태프트 비밀각서, 제2차 영·일동맹, 그리고 전쟁종료와 함께 러시아와 포츠머스 조약 등으로 일본은 한국에 있어서 특수권익을 열강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자, 한국을 보호국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 10월 28일 일본각의에서 한국에 대한 보호조약의 원인을 작성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추밀원 의장 이또 히로부미를 한국에 파견하였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한국정부의 각의에서 수상 한규설이 강경하게 반대하자 그를 일본 헌병들이 감금하고 일본이 매수한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건택, 농공상부대신 권중현 등 소위 을사 5적을 앞세워 11월 18일 새벽에 고종황제의 반대를 무시하고 조약을 발표하였다. 이렇게하여 1905 7월 29일 가쯔라-태프트 밀약에서 1905년 11월 18일 을사늑약에까지 이르면서 우리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된다. 일본은 조선에 대해 을사조약을 강요했으며 미국은 이를 적극 지지했다. 이 협정의 내용은 1924년까지 양국이 극비에 붙였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오늘의 상황이 지난 100년 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미·일 동맹은 강력한 밀월관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2004년 12월 발표한 ‘방위계획의 대강’과 2005년 2월 새로운 ‘미·일 안보협약’을 통해 중국과 북한을 안보에 대한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였다. 자신은 중동 문제에 몰두하고 동북아에서는 일본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보통 국가’가 되어 동북아의 맹주를 꿈꾸는 일본의 요구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1905년 합의한 밀약 이후 다시 한번 미·일 합작으로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가 시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여기에 6.15 공동선언 5주년을 맞으면서 남북이 공동으로 보국안민·척왜창의(輔國安民·斥倭彰義)를 위한 가쯔라-태프트밀약 100주년을 맞아 규탄운동을 남북의 좌·우의 민족진영이 함께 손을 잡고 선언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이자 만시지탄의 감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시아의 평화, 나아가서 지구촌 최대의 대륙 유라시아와 지구촌 최대의 바다 태평양의 힘으로 상징되는 세계평화의 초석이다. 남과 북 그리고 미, 일, 중, 러 등 고려반도 주변국들로 구성된 6자회담은 비록 ‘북핵’문제 때문에 마련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동아시아의 평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계평화’를 건설하기 위해서 협력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역학관계는 남과 북이 합의 협력하면 핵문제든, 동북아공동체건설문제 등 능히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는 더 이상 구한말의 불행한 상황이 재현되지 않기 위해서도 남북의 좌·우세력이 민족공조로 손을 잡는 것이 급선무인 것을 알아야 한다. 남북이 이러한 역사운동의 전개로 범민주진영의 단합과 민족재단결로 민족의 자주와 제국주의 반대, 자주독립정신을 고양시키며 외세반대의 정신을 함양해가야 한다. 그리하여 한반도의 전쟁반대와 협상을 통한 평화자주통일을 지향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한민족이 동북아 균형자, 중심국가가 되어 동아시아공동체건설을 표방해가도록 하자. / 노 태 구 경기대학교 교수

경기시론/행정품질관리

얼마 전 열린 우리당에서 행정구역 개편 안을 제시하였다. 광역자치단체를 없애고 기초자치단체를 통합하여 일 계층의 자치를 하겠다는 안이었다. 정치적 실세의 한 사람이라는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내년이 마지막 도지사 선거가 될 것이라는 말도 하였다. 도 무용론의 연장에 있는 발상이다. 시군은 주민에게 직접 전달되는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도청은 기초자치단체와 중앙정부의 사이에서 광역적 조정을 하는 기능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기능과 도가 생산하는 정책에 불만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그러나 현실이 어렵다고 모두가 죽자는 열반의 오류(Nirvada Fallacy)에 빠질 수는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행정의 품질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행정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건은 정책의 정당성과 적실성이다. 정당성은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느냐의 문제이다. 흔히들 공무원이 사용하는 언어와 논리가 시민사회의 그것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한다. 법이라는 제도적 굴레와 형식적인 논리에 빠져 시민사회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도청 공무원이 힘들다고 바쁘다고 하는 일들을 보면 스스로 일의 굴레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들 때가 있다. 사회의 모든 업보를 혼자 지고 있는 양 고민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잘 활용하면 쉽게 그리고 더 잘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학자들은 거버넌스를 구축하라고 한다. 네트워크 행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정부가 다양한 조직을 연계하는 단추를 잘 마련하고 단추를 누르는 행정을 하라는 것이다. 이 단추를 통해 정책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축이 행정이 되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관리를 한다면 u-network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중앙부처의 경우 위원회가 증가하는 현상을 보고 위험하다고 이야기 한다. 정치적 법적 책임이 없는 위원회가 관료조직을 대체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위원회가 적절한 자문을 하고 견제를 하는 기능을 한다면 순기능을 할 수도 있다. 교육학에 임지교육(臨地敎育)이라는 것이 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결과만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학생들과 같이 활동하는 교육방식이다.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고도 한다. 진부한 표현으로 현장행정을 하자는 것이다. 젝 웰치 회장은 이를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이라고 표현하였다. 조직이 외부와 접촉하는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백화점에 가서 주차를 하는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좋은 물건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육원에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주차장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나면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비서와 전화를 하면서 짜증나는 일이 있으면 사장의 친절은 전달되지 않는다. 조직의 접점에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현 정부가 주창하고 있는 혁신은 리더가 깃발 들고 나가는 것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 현장에 있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관은 지시하고 보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팀을 짜서 같이 움직여야 한다. 관료사회에서 흔히들 업무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받아도 의전에 실패한 공무원은 용서받지 못한다는 언명이 있다. 문제는 의전을 즐기는 상관이 있기 때문이다. 의전행정, 지시행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고 현장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우리의 지방행정은 중앙정부가 지시 공문을 보내면 그것을 집행하는 천수답 행정을 해 왔다. 중앙정부의 눈치만 보는 행정이다. 환경부에서 환경정책을 내려주면 그것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환경과장은 아파트에서 분리 배출된 쓰레기를 직접 뜯어보고 지역의 현안을 파악하는 능동성과 적극성이 요구된다. 모든 문제와 해답은 현장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에게 다가가는 한 단계 업 그레이드 되는 경기도정의 행정 품질 관리를 기대해 본다. / 이 원 희 한경대학교 교수

경기시론/부동산 문제 해결

우리나라 토지소유 현황에 대해 전수 조사해 지난 15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그 동안 토지가 불평등하게 소유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우려를 확인시켜주는 이상의 충격을 준다. 전 국토의 57%를 차지하는 사유지에 대해, 면적기준으로는 51.5%, 토지가액 기준으로는 37.8%를 총인구의 1%에 해당하는 48만7천명이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추 계산하였을 때 우리나라 전 국토의 4분의1 정도를 1% 인구가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총 인구를 기준으로 전체 사유지를 분배할 경우 1인당 평균 352평이 배분된다고 보면, 토지소유 구조가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어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왜곡 구조는 해가 갈수록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토지 소유에 대한 집착과 불평등 구조는 물론 대규모 토지가 요구되는 용도를 위해 미리 확보해 두거나 실수요자의 투자 등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 동안 막대한 토지개발 수요가 발생되던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부동산에 투자를 하기만 하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많은 사례들을 직접 보고 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동산 가수요를 만들어내고, 자본이 있는 일부 소수계층이 점유하여 공급을 통제하고, 그 결과 가격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확대 재생산되어, 이제 일부에서 부동산 거품붕괴를 우려할 정도의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정부에서도 이제 부동산에 대한 과열을 막고, 이를 정상화하기 위해 곧 부동산 종합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까지 모든 정권들이 부동산 과열 현상을 잡기 위한 각종의 정책을 도입하여 시행해 왔음에도 큰 성공을 보지 못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연 어떤 마법의 정책이 나올 것인가 모두가 궁금해 하고 있다. 부동산 실수요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국민들은 부동산 시장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안정적이고, 수용 가능할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공통적인 염원이다. 이미 축적된 자본을 동원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자의 관점과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수단과 방법의 범위 내에서만 부동산 투자이익을 지지할 수 있다는 실수요자 관점의 충돌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은, 토지는 자연적 소산이어서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 극히 제한된 자원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다른 경제적 자원에 대한 투자와는 구분되어 해석되어야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은 제한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효율성의 개념에는 제한된 토지 자원 위에서 함께 살아가는 국민 전체에게 도움이 되는 공익성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제한적 수단의 동원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는 국가는 더 이상 국가로서의 존립에 대한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통계적으로만 보면, 이미 2002년도에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주택 문제를 포함한 부동산 시장이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은,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제한된 자원의 특성을 갖고 있는 토지를 통해 쉽게 이익을 만들고자 하는 이상 열풍 때문이다. 이상 열풍이 지속되다 거품이 꺼질 경우 누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를 상상해볼 때 일반 국민들이 취해야 하는 입장은 자명해진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국민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토지 자원은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공적으로 유지, 활용되어야 할 자산인 것이다. / 고 순 철 협성대학교 교수

경기시론/이런 나라!

요즘 세상살이가 정말 어렵다. 나라 전체가 너무도 어지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일을 놓고 내 생각을 선뜻 말하기가 주저된다. 긍지로 삼았던 문화예술계에서 일한다는 사실도 부끄럽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너나없이 본분을 떠나 세속적 정치적 욕심을 채우려 난리들이기 때문이다. 인정과 이성이 넘치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장면 1; 조영남은 우리 모두가 아끼는 대중가수로 재주 또한 많은 사람이다. 그런 그가 세치 혀끝 실수로 곤욕을 치렀다. 그가 맞아 죽을 각오로 ‘친일(親日)을 하겠다!’ 했을 때, 국민들은 그를 때려 죽이려 하지 않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기야 하겠느냐여서였다. 그런 그가 일본 신사를 관광차 둘러본게 아니라, 정식 참배라도 한 것처럼 얼버무리자 국민들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말았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일본과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그의 ‘원론적 친일론’까지도 의심받아 전국민의 불화산같은 노여움을 사고 말았다. 노래도 잘하지만 입담도 좋아 명사회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그가 잘난(?) 입에서 뱉어낸 말 몇마디로 급전직하,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연예본업에 충실하지 않은 결과이다. 장면 2; 남북화해의 마당-평양축전, 2005-에서 현 정부의 문화계 고위공직자인 유홍준문화재청장이 북한 인민군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동기가 무엇이든간에 언론에 알려지자마자 엄청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당사자는 남북간에 생긴 틈에 화해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였다고 변명했지만, 아직도 북쪽을 붉은 색으로 느끼는 많은 ‘전쟁피해-국민’의 눈에는 마냥 헷갈리는 장면으로 비쳐졌다. 그는 대통령에게 정조대왕식의 정치를 권유하거나, 광화문 현판의 집자복원 시도 등으로 여론의 파고를 높이며 항상 시중여론의 중심에 서있었다. 우리 문화를 알리면서 여론몰이의 덕을 크게 입었던 그로서는 노래 때문에 여론의 치명타를 입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생각보다 말이 한참 앞서간 후유증이다. 장면 3;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조국땅을 뒤로 하면서 울부짖은 어느 미망인의 피맺힌 절규가 많은 국민들 가슴에 아프게 각인되어 있다. 전쟁직전 상황까지 갔던 서해교전에서 바로 북한군의 도발행위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해군중사 부인의 호소이었다. 조국을 위해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한 남편을 애도하는 것마저 차단되었다는 고백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녀는 단호하게 ‘세상에 무슨 이런 나라가 있나!’ 하면서 조국을 원망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이민을 떠나 버렸다. ‘남북화해와 협력’이라는 정치에 휘말려 개인의 생명과 권리가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지는 순간이다. 이래 가지고야 누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는가! 정치가 국민을 버리는 순간이다. 장면 4; 장면 3위로 겹쳐지는 아비규환의 장면은 소위 IT신세대가 병영에서 벌인 엄청난 살육사건이다. 어떤 이유가 그를 냉혹한 살인마로 몰았는지는 몰라도, 조국을 지키라고 내준 수류탄과 총으로 잠에 곯아 떨어진 동료와 상급자를 사냥감처런 마구 살육해도 좋단 말인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자기성찰이 없어서 생긴 일이어서 걱정스럽다.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는 ‘내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더 우선시되고, 도덕적 판단보다 ‘힘의 논리’가 더 앞서는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혼란마저 생긴다. ‘이런 나라’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지를 모르는 국민은 단 한사람도 없다. 다만 행동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 이 종 선 경기도박물관장

시 론/지방자치와 교육예산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 애착의 수준을 넘어 집착에 이르는 수준이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교육이 신분 상승의 기회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교육은 지방자치, 분권화의 시대에 전면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적 방향에 대해 원론적인 동의를 하면서도 구체적인 준비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교육자치를 하지 않아 교육행정에 대한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간접선거를 통해 교육감을 선출하기 때문에 주민에 대한 직접 책임이 약하다. 교육청을 통제하기 위한 교육위원회가 있는가 하면, 도 의회의 상임위원회로 교육위원회가 있어 2중적인 절차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교육관련 예산이 매우 기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고, 재정규율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다. 지난 6월 16일에는 도 교육청 추가경정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였는데 모든 문제점이 압축되어 있는 예산이었다. 2004년도 결산상 세계잉여금(歲計剩餘金)을 예상하고 미리 2005년 세입으로 2천40억원을 상정했는데 실제 결산의 결과 세계잉여금이 발생하지 않아 이를 삭감하는 조치가 있었다. 예산운영의 예측 능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2005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도청에서 교육세를 징수하여 교육청에 전출하겠다는 금액과 교육청에서 이 돈을 건네 받겠다고 책정한 금액이 달랐다. 결국 이번에 2천636억원을 삭감해야 했다. 예산을 연구한 이후로 주겠다는 자금과 받겠다는 자금을 달리하는 예산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본예산에서 잘못 책정된 세입 예산을 삭감하는 조정하면서도 세출을 구조 조정하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교육인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 6천312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한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승인을 할 뿐이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세 중 국세분의 결손액에 해당되는 632억원만 부담을 할 뿐이고 나머지는 자체 부담해야 한다. 결국 경기도가 세금으로 충당하든지 나중에 지방채 상환을 위해 또 지방채를 발행하는 악순환 고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이번에 민간투자유치의 새로운 기법으로 제시된 BTL 방식이 추경에 대폭 적용된다. 학교 신설이나 체육시설 등을 민간의 자본으로 먼저 건축하고, 완공 후에 20년에 걸쳐서 비용을 상환하여 주는 방식이다. 당초 163개 시설에 1조4천451억원의 채무부담행위를 하려고 했다. 도 의회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체육관 신설의 경우 당초 93개소에서 43개로 줄여서 1천 437억원의 채무부담행위를 줄이는 조정이 있긴 했으나 향후 재정의 재정 운영의 애로 요인이 될 것이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열의에 비해 교육행정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아직 중앙정부의 보호 속에 안주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지방자치단체에 교육에 대한 부담을 늘리는 방향을 설정하는 모순이 있기도 하다. 특히 급속한 인구 유입으로 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경기도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반면 종래 주택건설촉진법 등에 의해 시행하는 사업 중 300가구 규모 이상의 주택건설용 토지를 조성하는 경우 분양받은 자에게 부담하던 학교용지부담금이 위헌 판결을 받아서 이제 용지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이런 위기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효과가 의심스러운 일회성의 행사 경비를 조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과잉 의욕을 이용하여 방만한 세출 구조를 고수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교육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이 살기 위해서 적절한 재정의 확보와 건실한 예산 운영이 병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성을 묻기 위한 장치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 원 희 한경대 교수

경기시론/고령화 사회, 농촌이 대안

우리나라의 고령화 사회 진입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7%를 넘게 되면 노령화 사회로 분류되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7%를 넘어, 2004년에는 8.7%로 늘어났다. 또한 0~14세 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인 노령화 지수의 변화속도는 우리 사회의 저 출산 경향에 따라 더욱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1980년에 11.2%였던 노령화 지수는 1995년에 25.2%, 2005년에 47.4%이고, 2010년에는 66.8%, 2050년에는 무려 415.7%로 예측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노년층의 비율이 많아진다는 것은 경제활동인구(14~64세)의 노인부양비 부담이나 노인복지에 대한 국가의 부담이 높아져 자칫 국가 전체의 생산력이 저하될 수 있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오래 산다는 것은 행복하고 기분 좋은 일임에 틀림이 없다. 실제로 65세가 넘는 분들의 육체적인 건강이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정년 연령이 너무 이르지 않은가 할 정도로 왕성한 정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노인계층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자원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활발히 제기된다. 다른 한편으로, 노인들은 일상적으로 소일거리가 부족하고, 심리적으로 소외감이 많고, 소득이 일정치 않다는 문제점들이 제기되기도 한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일상생활에서의 노인문제의 현상적 모습이나, 이에 대한 대처 방안들은 개별 노인층의 상대적인 차이의 문제로 접근될 수도 있지만, 도시지역과 농촌지역이 처한 역설적인 상황은 지적되어야 한다. 2004년 현재 농촌의 65세 이상 노인비율은 15.6%로서, 도시의 6.7%보다 무려 2배나 더 높다. 해야 할 일이 많아, 힘들어서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는 것이 농촌 노인들이라면, 도시 노인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부족하여 반강제로 쉬는 셈이 되고 있다. 더욱이 농촌 노인들은 어느 면에서 국민 전체에 대한 의무감이나 봉사정신으로 일을 한다고 할 정도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먹을거리 생산과 관련된 생산 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생활환경의 질, 그리고 종사하는 일의 성격 등의 관계를 고려할 때, 노인복지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은 도시가 아니라 농촌에 두었어야 한다. 최근 농촌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농촌 자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고, 노인계층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고려되고 있다. 농촌의 일은 그 속성상 연중 자신의 숙련도 수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고, 그 대부분의 일거리가 주민들과 함께 이루어지고, 그 활동의 결과로 최소한의 소득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촌의 내생적 자원과 공익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노인들이 발굴, 가공, 활용할 수 있도록 농촌진흥청에서 금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농촌건강 장수마을 만들기 운동’은 노인들이 집합적으로 스스로의 삶의 모습을 재형성하는 모델 사업이란 점에서 기대가 크다. 각 지역사회가 처한 환경과 자원을 고려하여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자조적으로 실시하는 농촌건강 장수마을 만들기 사업은 마을 노인들이 함께 하는 집합적 활동이고, 노인들이 사업의 주체이자 객체가 되는 자조적 활동에 초점을 두고 있고, 자신들의 숙련도 수준에 맞는 활동을 자유롭게 선정할 수 있고, 마을 간 경쟁보다는 참여도와 만족도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과 차별성을 갖는다. 노후의 삶을 어떻게 대비하여야 할 것인가를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단 며칠이라도 농촌에서 체험활동을 해보자. / 고 순 철 협성대학교 교수

경기시론/해원상생과 남북통일

동·서양의 철학·사상의 지식으로 민족사상을 현대적으로 조명을 하며 민족의 통일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은 이는 바로 이 시대 한국인의 역사의식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외무차관이 “한국과는 미국이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북핵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고 주제넘은 망언을 하였다. 남·북이 동일한 민족임을 간과한 발언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람직한 민족공조로 평화통일을 이루어내기 위해 민족사상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한국의 해원상생(解寃相生)사상이 서양철학과도 다르고 동양철학을 두고도 중국의 오행상생과 차이가 있음을 알 필요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동양에 포함되어있고, 서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즈음하여 중국과 한국의 상생설을 비교하고, 나아가서 서양 최고의 자유주의 철학자인 칸트의 인권사상과 비교해 보면서 한국사상의 특징을 드러내는 것은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국의 종교사상을 비롯하여 전통사상은 한울님의 신관을 기초로 하여 정립된 것이다. 서구의 기독교 신관은 초월신관에, 동양의 유·불·선 등 종교철학은 범신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사상은 천도교(天道敎)와 같이 인내천(人乃天)적 범재신관(汎在神觀, Pan-en-theism)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헤드는 이를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라고도 한다. 천도교에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이나 동귀일체(同歸一體)라는 개념으로 해원상생을 설명하고 있다. 서구처럼 천(天)과 인(人)의 분리가 아닌 천인합일사상으로 후천(後天)시대를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새 시대가 자유·평등의 상보관계로 해원상생을 이루어 남북화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시대(先天)인 상극시대의 중국의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원리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음양오행설은 춘추전국시대에 한무제(漢武帝)를 중심으로 수직적이며 위계적 권력질서를 세워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 오행의 상극설과 상생설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의 해원상생의 진리는 민족의 전통사상인 수평적이며 인내천적 홍익(弘益)의 정치사상을 계승한 것이어서 칸트의 ‘목적의 왕국’ 사상과 비견될 수 있다. ‘목적의 왕국’에서는 자유와 평등이 일치를 이루면서 백성이 임금이 되며 임금이 곧 백성이 되는 ‘자유의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봉건사회에서는 노예나 농노로서 수단으로 전락했던 인민이 이제 신사회(후천)의 근대사회에서는 주인(목적)의 자리를 차지하여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국가를 향유하게 된다. 바로 한민족의 해원상생의 사상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상의 위대성을 중국과 서양의 종교·철학의 논리적 체계를 비교하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혹자는 중국의 주역도 한국의 천부경(天符經)의 삼재(三才)(天·地·人)사상에서 유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몽골에 의해 유럽이라는 것도 일찍이 러시아 대륙에 이어 평정이 되어 이미 동양의 정신문화가 서방에도 널리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종교, 사상, 철학의 뿌리는 단군(檀君)을 국조(國祖)로 하여 동조연손(同祖連孫)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원상생의 홍익사상이 국가와 시대에 따라 달리 표현되어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남·북은 모두 동일민족인 것을 유의하여 해원상생의 민족공조(한국민족주의)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목적의 왕국’으로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 일로매진(一路邁進)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노태구 경기대 교수

경기시론/정부 혁신의 길

행정학을 가르치는 전공으로 인해 공무원 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는 기회가 자주 있다. 이때 강의를 받는 공직자의 유형은 뚜렷하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강의이후에 시험이 없고 그냥 일정기간 이수만 하는 되는 경우로 이때 강사는 매우 힘들다. 당장 일이 많은데 승진을 위해 점수를 받기 위해 연수원에 오는 경우로 이왕 온 김에 휴식이나 하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럴 경우 강사의 쇼맨십이 요구된다. 반면 강의 이후에 시험이 있는 경우 분위기는 긴장감의 수준을 넘어서 험악하기까지 하다.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달라는 부탁이 거의 압력 수준에 가깝게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강사가 의도하려는 강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험이 차선책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강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시험문제로 잘 구성할 수 있다면 강의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학에서 평가 없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는 주장까지 있다. 이러한 논의를 우리의 정부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시작은 있는데 집행과 평가의 과정에 대해서는 무심한 경우가 많다. 예산을 배정받기 까지는 많은 로비를 하지만 막상 예산이 배정되고 나면 그 다음에 잘 집행하는 지 그리고 집행 결과 무엇이 변화 하였는 지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열심히 잘 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못한 사람에게 제재를 하는 노력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열심히 일을 할 요인이 줄어든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 혁신의 출발은 정부 내에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본청이 10조원, 교육청이 1조원의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나 예산 집행의 결과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한 평가는 부족하다. 이제 주요 사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체제가 도입되어야 한다. 흔히들 이것을 사업의 생애주기 관리(life cycle management)라고도 한다. 사업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사후관리가 체계적인 패키지로서 관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기도의 재정이 예전처럼 확대일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축소가 예상되는 만큼 더욱 재정평가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몇몇 공직자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여 결정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도 본청 산하기관에 대한 평가도 시급하다. 산하기관은 흔히들 도 본청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경직적인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이 보기에는 산하기관은 말 그대로 본청의 우산 아래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앙정부의 경우 산하기관은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낙하산 인사로 인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그러한 맥락에 있다. 이러한 운영에 반성을 하기 위해 기획예산처는 혁신 진단 지표를 작성하고 이에 근거하여 각 기관의 경영수준을 평가하고, 향후 그 수준을 고양하기 위한 체계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지난 5월 3일에 전체 산하기관 1백여 명의 사장이 모여 대통령이 주관하는 자리에서 향후 혁신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산하기관장으로 임명되면서 오랜 공직 생활을 하다가 말년에 좀 쉰다는 생각을 했거나 정치적인 후원자로서 활동하다가 이제 힘 좀 쓰려고 생각했던 CEO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일 토론회의 사회를 보면서 이제 정부 산하기관이 민간 기업 이상의 생산성을 제고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되는 기회가 되었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경기도정 혁신의 출발도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이를 적용하고 그리고 성과에 따라 인사에 반영을 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책평가와 인사정책이 묶여져서 통합평가체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시험이 너무 많아 시험 위주의 학습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시험이 없어 자신의 능력을 측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경기도정은 아직 대외 공신력 있는 시험을 치르지 못한 경우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기도정 혁신의 출발은 평가체제의 구축에 있다. 이를 통해 혁신이 스스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자가발전(自家發電) 시스템을 구축하여 혁신의 내재화를 이루어야 한다. / 이 원 희 한경대학교 교수

경기시론/교육에 대한 시각을 바꾸자

어느 은사님이 들려주었던 유학시절 이야기 한 토막이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왜 대학교육을 받는가하고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이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이런 답을 듣던 교수님이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 학생에게 주면서, 학생은 이제 없던 돈을 벌었는데, 이 과정에서 교육을 받았는가에 대해 재차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만일, 위의 질문에 대한 답이 맞는다면, 굳이 어렵게 대학을 다닐 필요 없이, 더 일찍 학교를 떠나 돈을 버는 길이 현명한 일이다. 만일 아니라면, 돈과 관련 없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할 것이고, 마땅히 그에 맞는 교수-학습행위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2008학년도 입시제도와 관련하여 유례없는 고교생들의 연속 자살과 촛불시위, 그리고 대학과 정부간 긴장을 가져오고 있다.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을 정책의 모르모토로 삼지 말아달라고 한다. 이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남이 공부하는 기회를 없애기 위해 사물함의 교과서나 참고서가 없어지고, 노트를 빌려 주려하지 않고, 친구를 사귀기가 어렵고, 학교와 학원이나 오고가는 기계나 다름없고, 한 번 시험을 잘못 보면 마치 인생의 끝인 것처럼 생각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대학마다 반영하는 교과가 다르니, 원하는 대학을 먼저 정해 그 과목만을 열심히 하라고 하지만, 국민공통 교육으로서의 고교 교육을 포기하는 조언이다. 대학에서는 입학생들의 학업능력에 편차가 심하고, 현재의 제도로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보완하는 대안에 대해 정부에서는 사교육의 과열과 사교육비 부담, 특정 지역의 주택가격 상승우려 등을 근거로 안 된다고 한다. 오죽하면 시위를 하겠는가 할 정도로 고교생들의 삶은 사실 누구나 연상할 수 있는 정상적인 교육행위와는 거리가 멀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는 대학에게는 그에 맞는 도구를 주어야 한다. 학생선발의 자율권을 많이 주었다고 하지만, 3불 정책을 지속하고, 내신과 수능 등급의 간격을 넓게 잡는 이상 실제 학교가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의 변화를 항상 사교육과 관련시키는 정부의 입장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더 많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자의 교육에 대한 투자격차가 있고, 그로 인한 형평성과 사회적 위화감, 그러한 결과가 대학진학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정부가 어떠한 대안을 마련한다 하더라도, 사교육 시장은 그에 맞게 발전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교육과 입시 제도를 말할 때 우리가 우선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교육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란 점이다. 교육 경쟁력은 교육의 질적 수월성 자체에서 나와야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교육정책의 초점은 국가간 경쟁력에 두어야 하고, 그 경쟁력은 국민공통 교육과정으로 운영되는 고교교육이 튼튼해야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고교 교육이 대학 진학교육으로 변질된 것을 되돌려 놓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하지 않는 학교생활 분위기를 조성해 투입해야 한다. 또한 교육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는 높은 쪽을 깎는 것이 아니라, 소외계층에 대해 직접적인 지원을 함으로써 격차를 줄이려는 정책으로 시각을 수정하여야 한다. 이제까지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 평준하게 만드는 하향 평준화의 교육 정책은 사라져야 한다. 대학 입시제도 역시 상향 평준화의 관점으로 보면, 기여입학제와 같은 극히 일부의 제한을 제외하고는 대학에 모든 선발권한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고 순 철 협성대 교수

경기시론/도자왕국의 꿈

우리 도자기에는 깊은 맛이 있고 그윽한 사람의 체취가 느껴진다. 특히 활달하고 분방한 분청자기가 그러하다. 반면 중국도자기에서는 빡빡한 기계의 냄새가 묻어난다. 오래전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한국도자기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갔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 그 박물관 관장은 한국 도자기의 오묘한 매력에 심취해서, 어떻게 하면 한국도자기의 멋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전시방법을 이끌어냈다. 도자기 원래의 색을 내기 위해 햇빛조명을 진열장 안으로 끌어 들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 경기도내 3개 도시에서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어 도자기 천년왕국의 아련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광주는 왕실에 기물을 납품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되어 있던 유서깊은 고장이고, 이천 여주는 또 다른 본거지이다. 여주 중암리나 용인 서리에서 청자와 함께 고려초기에 이미 백자가 생산되었고, 광주, 이천지역에는 백자나 분청가마터가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가히 도자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도자기의 맛은 과연 어떤 것일까. 차디찬 유리질 표면의 도자기에 무슨 맛이 있겠는가 하고 일반인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을게다. 전통백자의 흰색이 요즘 값나가는 일제 노리다케 찻잔의 투명한 빛보다 탁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백자명품중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조선중기 금사리가마에서 생산된 우유빛 백자의 그윽한 맛을 설명하기에 어설픈 설명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사람손으로 만들어졌지만 가식적인 인공미보다 하늘이 내린 자연미를 추구한 것이 우리의 도자미학이다. 작년 가을 도자비엔날레 관계자와 함께 시카고공예박람회(SOFA)를 참관했다. 호수에 면한 대형행사장에 미국의 도자예술계를 망라하는 작가, 미술인, 화상 등이 총집결하였고,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뿐만 아니라 유럽문화에 대해 콤플렉스가 깊은 미국인들이 도자예술 자체를 즐기고, 생활용기로 애호하고, 도자행사를 통해 사교적 만족을 얻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비긴다면 오늘의 우리는 값싼 일회용품이나 합성수지제품의 홍수 속에서 내일을 포기하고 문화를 멀리하는 뜨내기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 천년도자왕국의 훌륭한 유산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근래 가장 성공한 TV기획물 중에서 ‘세계속의 우리 도자기’를 다룬 프로가 있었다. 몇 년에 걸친 준비기간과 고증, 그리고 넘치는 기획력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화면으로나마 그 옛날 세계를 누볐던 도자무역을 통해 국민들의 꿈과 자존심을 마음껏 살려준 한편의 드라마였다. 거기서 보았듯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세계로의 진출이요 도전이다. 그래서 해상왕 장보고가 새롭게 조명되고, 무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축적한 고려태조 왕건가(家)의 저력이 실감난다. 지금은 꺼져버린 천년왕국의 명성을 이어나갈 돌파구가 도자분야에서 앞으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옛날 도자의 명성에 필적할 새 시대의 명품이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반도체칩일까, 핸드폰 세트일까 아니면 또다른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중국 도자기를 통해서 서양세계는 또다른 문화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것이 미국 시카고의 SOFA로 구체화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회성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 도자가 다시금 뿌리내리게 할 결정타는 없는가. 예술과 생활의 경계 속에서 고민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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