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식아동과 독거노인들에게 점심으로 제공된 도시락이 부실하고, 배달이 제대로 되지 않은 점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동일 가격으로 제공되는 대기업의 점심 식사 메뉴를 비교한 사진은 국민들에게 안타까움을 더해 주었다. 이번 일에 대해 관계자들은 도시락 용기와 배달료 등을 감안하면 타산을 맞추기가 어렵고, 당연히 질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을 하고 있다. 사실 도시락 제공 등과 같은 사회서비스는 국가의 일차적인 책임이지만, 책임의 범위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다르다. 자원봉사가 활발한 국가에서는 국가는 재정적 부담을, 전달체계는 수급자의 자존심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보편적이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극히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민의 의식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더욱이 사회서비스에 대한 각성도 신문 등 언론에서 보도되는 사건 등을 통해 이루어지다 보니,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보다는 여론에 노출된 대상에게 지원이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서비스의 범위도 문제가 된다. 도시락 제공은 그야말로 생존과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도움이지만, 이들 수급자 대부분이 결손 가정이나 최저 생활 보장 수급자들이기 때문에, 건전한 성장 발달에 영향을 주는 인성이나 사회성 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는 집단들이라는 점은 간과되었던 사안이다. 간혹 밥 한 그릇보다는 따뜻한 대화나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번 도시락 문제에 대책으로 새마을 부녀회나 담당 공무원이 뒤늦게 도시락 배달을 자청하고 있으나, 담당 공무원의 기본 업무 등을 감안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서 사회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 주민들의 자조적 사업이라는 점을 배워야 한다. 개인, 학교, 공공기관, 기업 등 모두가 관련이 되겠지만, 특히 어떤 형태로든 지역주민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는 지역사회의 기업들은 지역사회를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감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식하여야 한다. 이번 일이 일어나기 전, 지난 해 10월 전경련은 ‘지역사회 소외계층과 함께 하는 나눔 경영 확대’나 ‘기업임직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자원봉사 활동 강화’와 같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을 발표한 적이 있어, 선언 내용과 관련된 활동을 활발히 전개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문제는 양적 접근이 아니라 질적인 접근이다. 특히 인적, 물적 자원이 비교적 넉넉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평소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소외된 곳, 구석진 곳을 찾아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그리고 육체적 노동력의 제공이나 재정적 후원과 같은 단순한 형태의 도움에서 창의적이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또한 원초적인 생존권 보장보다는 건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의 상공회의소가 주축이 되어 학교와 기업을 자매결연시키거나, 단독 기업에서 직원들의 점심시간 동안 도시락을 배달하는데 참여시키거나, 직장인들이 학교의 결손 가정 아동들을 정기적으로 순번제로 방문하여 인생 상담이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진로지도를 하는 친구되기 운동과 같은 미국 기업의 사례는 도시락 파문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 순 철 협성대교수
오피니언
경기일보
2005-01-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