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 폐지? 안된다. 왜? 인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18일부터 사형제폐지특별법안 심의에 착수했다. 오래 전 부터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논의는 계속돼 왔지만 정식 법안으로 상정돼 국회 심의를 받는 것은 처음이다. 사형제를 폐지하는 대신 수형자가 사망할 때 까지 가석방이나 감형 없이 계속 복역하는 종신형 제도를 도입하자는 게 법안의 주요 골자다. “국가 권력이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의 정신과 모순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다. 범죄 피해자가 느끼는 증오가 아무리 커도 오판으로 사형 당한 사람들의 억울함엔 절대 비할 수 없다. 피해자의 복수심을 대신 복수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의 주장이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4년 4개월 동안 사형수로 복역한 그로서는 당연히 할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소위 사상범, 양심수는 논하지 않겠다. 극악무도한 살인자만 얘기를 한다. 그렇다해도 피해자를 대신하여 국가가 복수? 당치 않다. 법이 응징하는 것이다. “사형제도가 수천년 동안 존속돼 왔지만 범죄는 갈수록 흉악해지고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응보형 개념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된다.”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의 말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형제를 폐지하면 범죄가 양순(?)해지고 감소한다는 게 아닌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범인이 사형을 당하지 않고 종신형으로 수감됐다면 평생 참회했을 것이다. 오히려 종신형이 더 큰 벌”이라고 말했다. 1982년 술에 취해 총기로 한마을 주민 56명을 살해했던 우순경 경우를 예로 들었지만 ‘앓느니 죽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식물인간상태(종신형)보다는 안락사(존엄사·사형)가 편타. 사형제도는 존치돼야 한다. 과거 ‘지존파’나 ‘막가파’는 물론 테러에 의해 한 번에 수백,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범죄자를 살려 둘 경우, 한 명의 목숨은 소중하고 피해자 수천명의 목숨은 그렇지 않다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어불성설이다. 다시 생각해 보자. 아무 원한도 없는 부녀자를, 결혼 하루 앞둔 신부를, 출산 앞둔 임신부를 죽이고 토막내는, 살아 있는 사람을 구덩이에 넣고 흙을 덮어 매장하는, 밀폐된 공간에 가둬 놓고 태워 죽이는, 늙은 부모를 자식들이 때려 죽이는 그런 인종을 법으로 살려 주자는 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소리다. 국책을 좌지우지하는 헌법재판소도 일찍이 사형제를 인정했다. 1996년 11월 사형을 규정한 형법 제41조와 제250조의 관련조항에 대해 ‘사형은 범죄에 대한 근원적인 응보방법이자 예방법’이라고 결정했다. 작년 9월엔 대법원이 신도 6명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영생교 신도 모씨를 “극악범죄자는 인격체로 볼 수 없다”고 사형제 필요성을 인정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03년과 2004년에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사형제 존치에 찬성하는 의견이 69.5%, 66.3%에 이르렀다. 살인 범죄자도 자신의 목숨은 귀하게 여긴다. 죽음 앞에서는 공포에 떤다. 사형제가 없으면 죽을 염려가 없으므로 살인행위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부터도 인간은 원래 그렇다. 사형제 존치는 인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인권은 인권을 존중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사형제 존치? 당연하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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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일보
2005-02-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