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우군에 포위된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은) 기업이 곧 나라”라고 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을 위해 뭘 하나 한 것은 없다. “(4대 개혁입법에 대해)천천히 가자”고 했다. 이런데도 강경개혁파의 국회 농성 시위가 위세를 떨쳤다. 강경개혁파, 즉 매파는 경제따윈 거의 안중에 없다.

민생이 어렵다. 제일은행 등 주요기업의 IMF 급매물이 외국자본의 좋은 먹이가 돼 간다. 이래도 그들은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어차피 그러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살기좋은 새로운 세상을 위해 개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자나 깨나 개혁타령이다. 개혁이라는 좋은 단어를 식상케 만들었다. 이들이 추구하는 개혁은 혁명적 수준이다. ‘국민참여연대’ ‘참여정치연구회’ ‘노사모그룹’ 등으로 분류된다.

“대통령 한 명만 바뀌면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 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주축 세력들이 모두 정치 일선에 나서기로 했다”고 했다. 친노그룹의 한 재야 거물이 그랬다. 여권의 4·2 전당대회 전초전이 이렇게 돌아간다. 매파들은 예컨대 당내 ‘안개모’(안정적개혁모임)같은 건 이단의 반동분자로 보고 있다.

‘세상이 바뀔 줄 알았는 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얘기가 무엇을 함축한 것인 지는 알쏭달쏭 하지만 그렇다. 노 대통령인들 달랐겠느냐는 것이다. 그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했고, 당선되고 나선 결심을 굳히고, 취임하고 나선 실험도 해 봤다. 지난 2년의 국정 갈등이 이에 연유한다. 사람따라 코드란 것을 형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기업 정서로 한동안은 기업인을 죄인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좀 변했다. (그 자신도 “재야시절의 노무현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와대 밖에서 본 세상과 청와대 안에서 본 세상과의 시각 차이를 그는 발견하게 됐다. 2005년은 집권 3년차다. 대립각을 낮춘 뉴 데탕트, 경제 전념의 실용주의 노선 구상은 새로운 전환점이다.

그런데 이게 순탄치 않을 조짐이다. 그를 둘러싼 매파의 온건노선에 대한 강한 비판은 기실 대통령을 겨냥하는 화살이다. 전부(全部)가 아니면 전무(全無)를 고집하는 이른바 개혁지상주의 집단은 노 대통령을 가리켜 언젠가는 ‘변절자’라고 말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협상을 거부, 쟁취만을 추구하는 매파는 부단한 긴장관계를 투쟁의 본질로 삼는다. 이들의 눈엔 대통령의 긴장 완화가 배신으로 비칠 수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는 특유의 지지층에 힘입어 당선됐고, 당선되고 나서도 대통령은 여의도 광장에서 “한 번 더 밀어 달라”고 했을 만큼 부동의 지지층을 기반으로 해 왔다. 이러한 기반이 무서운 부메랑이 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 한 현상이다. 정치에는 정말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숙적도 없다는 게 이래서 틀린 말이 아닌 지 알 수 없다.

요컨대 선택은 대통령의 몫이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대통령은 이미 우군인 매파들에게 포위돼 있다는 사실이다. 긴장 완화의 실용주의 노선으로 진군해도 그렇고, 긴장 촉구의 개혁주의 노선으로 회군해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매파의 반발에 포위되고 후자는 매파의 입김에 포위된다.

중요한 것은 집권 3년차라는 대목이다. 국정에 더 이상의 실험을 용납할 여유가 없다. 또 정권의 힘이 정점에 오르는 시기다. 노 대통령의 최종 평가가 올해의 향배에 따라 사실상 판가름 난다. 어차피 여당과 원내 판도는 재·보선 결과가 말해준다. 어쩌면 정치권의 재편이 전혀 예상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은 참으로 고민스런 시점에 서 있다. 정치적 동지를 무던히 챙기는 것은 정치인 ‘노무현’의 강점이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에게는 동지보단 국민을 챙겨야 할 책임이 더 막중하다. “기업이 곧 나라다”라고 했던 게 말에 그친 것을 올핸 실감나게 구현할 줄 알아야 한다. 중첩된 규제를 풀어 기업 환경의 활성화를 이룩해야 민생경제가 산다. 국민사회의 대다수는 4대 개혁입법 따위엔 관심이 없다.

긴장 완화의 실용주의 진군이냐, 긴장 촉구의 개혁주의 회군이냐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절충형 모색이냐)는 것은 대통령의 결심에 달렸다. 올 국정 운영의 연두 기자회견을 주목하고자 하는 이유가 이에 있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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