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순박하다. 민초들이 이러하다. 세금 낼 것 다 내고 적십자 회비도 내면서 이웃돕기 성금을 또 낸다. 풍수해가 나거나 폭설 피해가 덮치면 또 성금을 낸다. 용천역 폭발사고 같은 북녘 참사에도 성금을 내는 어진 민초들이다. 그런 일에 쓰라고 내는 것이 세금이고 적십자 회비다. 그런데도 모금을 하면 차마 외면할 줄을 모른다. 올 세밑 구세군 자선냄비 역시 온정이 넘쳤다. 약 25억5천만원이 쌓여 지난해 보다 8%를 웃돈 것은 더욱 괄목할만 하다. 이 경기 불황에 아우성이 높다. 그래도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하는 티없는 마음씨가 이처럼 큰 강을 이루었다.
세상은 각박하지마는 않은 것 같다. ‘얼굴없는 천사’라는 제목으로 익명의 독지가들이 이 신문 저 신문에 보도됐다. 전국 곳곳의 자선냄비에 크고 작은 뭉칫돈이 입맞춤 했다. 안양역 광장의 자선냄비에서도 현찰을 100만원씩 담은 흰봉투 10개가 나왔다. 자선냄비만이 아니다. 전주에서는 쇼핑백에 담긴 현금과 돼지저금통을 동사무소에 건네고, 서울에선 100만원짜리 수표 10장을 아름다운재단에 내고 말없이 사라진 이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누구냐고 묻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신문에 안 난 이같은 숨은 이들이 아마 또 있을 것이다. ‘얼굴없는 천사’는 비단 거액 기부자들만은 아니다. 동전 몇 개를 냈어도 생색낼 줄 모르는 사람은 모두가 ‘얼굴없는 천사’들이다.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찾아가 라면상자 같은 것을 쌓아놓고 그 앞에서 사진 찍길 좋아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사진 찍으려고 기부하는 사람들이다. 선거직 출마 예정자에 대한 단속이 있다보니 이나마 생색내기 기부도 발길이 끊겼다. 기업체의 기부행위도 있다. 경영이 어려운 판에 참 고마운 일이지만 기부한만큼 세금 혜택이 돌아간다.
‘얼굴없는 천사’들은 사진이나 세금과는 거리가 멀다. 거리가 멀다기 보다는 전혀 아무 관계가 없다. 남을 돕는다는 것, 그것은 마음의 여유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하지 못하는 게 베풂이다. 자신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것, 이것이 열린 가슴을 지닌 자선이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지난번 자선냄비에 동전 한 닢을 넣지 않았다. 부끄럽다면 부끄럽지만 변명이 있을 수 없다. 이래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렇다고 ‘얼굴있는 얌체’도 못 된다. 사회복지시설 관계자들을 만나면 으레 선심수표를 떼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곧 쌀 한가마 보내주겠다”고 한다. 심지어는 “어디 어디를 통해 쌀을 보냈는 데 받았느냐”고도 한다. 선심은 말 뿐이지 부도수표다. 행세깨나 한다는 사람 중에 이런 위인이 많다. 그것도 꼭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골라가며 해 댄다. 곁에서 듣는 사람들은 쌀을 보내겠다면 나중에 말대로 보낸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아무개가 쌀을 준다고 해 놓고 안 주었다고 광고할 수도 없는 일이다. 영락없이 받은 모양새가 되고 만다. 이도 한 번이 아니고 말 뿐인 선심수표가 겹치면 그 사람은 꽤나 도움을 주는 것으로 듣는 이들에겐 인식된다. 세상에는 이런 별난 얌체들이 또 있다. 정말로 도와주는 독지가는 남 모르게 도와주곤 한다.
하늘이 맑아 아무리 햇빛이 고루 비춰도 응달은 있다. 하물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요즘같은 불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은 어려워 남의 도움을 받을 지라도, 장차는 남을 넉넉히 도와줄 수 있는 미래가 없다 할 수는 없다. 이것이 사람의 삶, 곧 인생이다.
합당한 얘기가 될진 모르겠으나 예를 들어본다. 유방을 도와 항우를 멸한 대장군 한신은 젊었을 적에 빨래품 파는 아낙네들로부터 한동안 밥을 얻어 끼니를 때웠다. 공자가 뜻을 이루지 못해 천하주유를 하다가 정나라에 갔을 때다. 사람들이 “용모는 요임금을 닮았지만 몰골은 초상집 개와 같다”고 했다. 공자는 웃으며 “용모는 맞지 않지만 몰골이 초상집 개라 함은 맞다”고 했다.
지구의 축을 뒤틀며 일으킨 미증유의 지진 해일로 동남아시아 여러나라 해변이 쑥대밭이 되면서 수만명이 숨졌다. 죽은 사람에겐 애도를 표할 일이지만 산 사람은 어려운 가운데나마 그래도 산다. 바닷물 지옥이 된 폐허에도 희망은 핀다.
사람인자(字) ‘人’은 서로 기댄 형상이다. 어려울 때나 어렵지 않을 때나 서로가 더불어 사는 게 사람살이다. ‘얼굴없는 천사’들이 ‘얼굴있는 얌체’가 있으므로 하여 그래서 마음속에 더욱 크게 돋보인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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