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천원의 행복

껌 한 통, 시금치 반 단, 붕어빵 두 개, 공깃밥 한 그릇.... 딱 1천원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거침 없는 물가 오름세에 뭐 이 정도면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을까. 1천원의 무게를 달아보자. 1천원짜리 지폐로는 한 장이겠지만 10원짜리 동전으로는 100개, 100원짜리 동전으로는 10개, 500원짜리 동전으로 2개다. 10원짜리 동전 100개를 바지 주머니에 넣으면 제법 무겁다. 100원짜리 동전 10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요즘 대학가를 중심으로 행복한 반전이 일고 있다. 단돈 1천원에 아침밥을 해결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새학기를 맞은 대학 구내식당 앞에는 아침마다 긴 줄이 늘어선다. 아르바이트로 어렵게 용돈을 마련해야 하는 대학생들에게 편의점 도시락보다 싼 1천원짜리 식사는 단비보다 더 반갑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이 추진 중인 1천원의 아침밥 사업에는 전국 대학 41곳이 참여하고 있다. 신청 인원도 늘고 있다. 당국은 추가 예산을 확보해 지원 인원을 68만명으로 확대했다. 1천원의 행복은 대학가에서 사회 곳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통시장의 1천원짜리 국수가 그렇다. 어르신 대상의 1천원짜리 택시도 그렇겠다. 일부 지역에선 학생들을 대상으로 1천원짜리 통학버스도 운행 중이다. 아직은 일부에 국한됐지만 공연계로도 퍼지고 있다. 수도권의 한 대형 공연장은 관람료 1천원으로 2만2천여명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관람객이 1만명가량 늘었다고 한다. 장르는 국악, 클래식, 무용 등 다양하다. 지금까지 무려 36만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한다. 단돈 1천원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구나”라는 공감대가 선순환될 수 있어서다. 값은 1천원이지만 만족은 1만원인 포만감만이 천정부지(天井不知)의 고물가 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

[지지대] 전기차

요즘 전기차가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정부에서도 보조금 지급과 충전시설 설치를 권장하며 전기차 시장은 급성장세다. 최초의 전기차는 뜻밖에도 150년 전인 1873년 미국에서 개발됐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기술적인 문제와 상품성 등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에 밀리면서 전기차는 오랜 기간 빛을 보지 못했다. 1990년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배출하는 공해 문제 등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등장했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기술개발을 통해 친환경 자동차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전기차의 경우도 기술 발전에 따라 1990년대 몇 번의 상용화 시도가 있었으나 내연기관 자동차가 주를 이뤘던 자동차 시장과 전기차 상용화를 환영할 리 없는 다국적 정유업계의 벽에 막혀 상용화가 늦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2000년대 들어 다국적 기업 테슬라가 전기차를 출시해 전 세계적으로 성공했다. 현대·기아차도 전기차 시장에 뛰어 들어 이제 국내에서도 전기차를 흔히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경기도내 전기차 등록 현황은 7만7천648대로 집계됐다. 2018년 6천383대에서 2019년 1만1천750대로 급증하더니 2020년 2만477대, 2021년 3만9천958대로 증가했다. 친환경 자동차인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은 환영하고 권장할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차 충전시설 주변 화재 예방 시설 설치 등 안전 규정은 친환경 자동차 시장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차 진입이 불가능한 노후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우후죽순’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이 설치되고 있지만 안전에 대한 설명은 없다. 단지 현행법상 설치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강조된다. 대형 사고 뒤를 보면 공통적으로 사고 예방 규정 미비 및 위반과 관리기관의 방관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전기차 화재 문제도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예방 규정 강화 및 시설 보완이 시급하다.

[지지대] 미코노미 단상

지난해 이맘때였다. 러시아산 대게가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반값 대게가 국내 수산시장을 휩쓸었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도시를 봉쇄하던 시점이었다. 상당수 소비자가 대게 파티를 즐겼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져서다. 러시아 대게를 먹으면 그 돈이 우크라이나 전쟁자금으로 들어간다는 논리였다. 미코노미(Meconomy)의 발현이었다. 미코노미는 내가 주체가 되는 경제활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등장 시기는 2010년이다. 나를 뜻하는 ‘Me’와 경제를 뜻하는 ‘economy’의 합성어였다. 초창기에는 소득수준을 생각하지 않고 값비싼 명품이나 수입차를 사들이는 게 전형인 것처럼 인식됐다. 이런 콘셉트가 펑펑 쓰기보다 ‘나에게 가치 있는 소비에 지갑을 연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대게 불매 사태가 대표적이다. ‘의미 없는 소비는 아무리 값이 싸도 하지 않는다’는 움직임이었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 교수가 그의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후 모바일 등 뉴미디어 플랫폼 등 네트워크 환경으로 확산됐다. 개인이 정보의 제작, 가공 및 유통 등을 전담하는 프로슈머(Prosumer) 개념도 이때 나왔다. 그래서 미코노미의 시점은 거시경제가 아닌 미시경제를 지향한다. 최근 미코노미의 영향을 받은 소비 패턴이 속속 나오고 있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프리미엄 과일 소비 증가가 그렇다. 설향 딸기와 눈꽃 딸기의 매출이 각각 25%, 9% 늘었다. 레드키위(213%), 애플수박(39%), 애플망고(12%) 등도 증가하고 있다. 돈의 흐름이 경제의 기본 줄기다. 미코노미를 계기로 개인 소비가 확산된다면 경제도 회복되지 않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때로는 막연한 바람이 현실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지대] 예금보호한도 상향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의 돈줄 역할을 해오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최근 파산했다. SVB는 자산 277조원 규모의 미국 16위 은행이다. SVB의 파산은 이 회사가 망할 거라는 소식이 들리자 불안한 예금자들이 휴대폰 앱을 이용해 하루 만에 50조원 넘는 돈을 빼갔기 때문이다. SVB는 순식간에 지급 불능 상태에 빠져 파산하게 됐다. 미국은 1인당 25만달러(약 3억3천만원)까지 예금을 보호해준다. SVB엔 스타트업 기관 등 고액 예금자가 많아 약 90%에 달하는 예금이 보호범위 밖에 있었다. 미국 정부는 논란이 있음에도 ‘예금 전액보호’라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전격 시행했다. SVB 파산 사태에 우리 금융권과 경제계가 술렁였다. 고금리로 인한 가계부채 리스크와 부동산 급락, 경상수지 악화 등 경제가 불안한 상황에서 터진 악재라 걱정이 컸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2의 리먼 사태 경고등’, ‘전 세계 스타트업 줄파산 위기’ 등의 전망을 내놨다. 다행히 미 당국의 긴급조치로 불안 확산을 잠재웠다.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의 예금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예금자보호한도’는 금융사가 영업정지나 파산 등으로 예금자에게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예금보험공사가 금융사 대신 지급해주는 최대 한도다. 한국의 예금자보호한도는 1인당 5천만원이다. 2001년 1월 이후 22년 넘게 그대로다. 예금자보호법에는 ‘보험금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보호되는 예금 등의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동안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2001년 대비 3배, 예금 규모는 4배 넘게 증가했다. 경제 규모로 봐도 그렇고,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의 예금자보호한도가 너무 낮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는 10만달러(1억3천만원)~11만달러(1억4천300만원)다. 평생 모은 예금에 노후를 의지하는 은퇴자들이 낮은 예금보호한도 때문에 5천만원 미만으로 쪼개 여러 은행에 예치하고 있다. 이런 불편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할 필요가 있다. 국회엔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예금자보호 안전망을 확충·보완해야 한다.

[지지대] 윤달 ‘화장 전쟁’

윤달(閏月)은 음력에서 계절과 어긋나는 오차를 막기 위해 끼워 넣은 달이다. 음력은 한 달을 29일과 30일을 번갈아 사용하는데 이를 1년 열두달로 환산하면 354일이 된다. 365일을 기준으로 하는 태양력과 11일의 차이가 난다. 이 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윤달을 둔다. 윤달은 덤으로 생겼다 해서 ‘공달’ ‘썩은 달’ ‘손 없는 달’이라 한다. 윤달에는 (귀)신들이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해도 부정을 타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때문에 윤달에 무덤을 파 이장하거나 노인들의 수의(壽衣)를 장만하는 풍습이 전해온다. 이사도 보통 달에는 날짜를 보지만, 윤달에는 가리지 않는다. ‘동국세시기’에도 ‘윤달은 택일(擇日)이 필요없어 결혼하기에 좋고, 수의 만드는 데 좋으며 모든 일을 꺼리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윤달(3월22일~4월19일)이 다가오고 있다. 2020년 4월 이후 3년 만이다. 윤달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곳은 화장장이다. 조상의 묘를 개장(改葬)해 화장한 뒤 봉안당(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자연장으로 옮기기 위해 ‘화장(火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화장 수요가 급증해 전국 각지의 윤달 화장시설 예약이 거의 완료됐다. 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연간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평균 5만2천19건이다. 윤달이 있는 윤년은 평균 9만1천895건으로, 평년보다 70%가량 많다. 특히 윤년 윤달의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1년 전체의 40%가량을 차지한다. 2년 넘게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장 유골 화장이 거의 없었던데다 올해는 윤달에 청명(4월5일), 한식(4월6일)을 끼고 있어 예년보다 화장 수요가 훨씬 많다. 화장 급증은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묘문화가 바뀌고, 산소를 관리하기 힘들어서다. MZ세대 후손 대에선 묘지 중심 추모문화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사·성묘·벌초에 대한 부담을 남기지 않고 죽겠다는 한국식 ‘웰다잉’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지지대] 맹꽁이 울음소리

수컷 한 마리가 “맹” 하고 운다. 뒤이어 “꽁” 하는 의성어가 따라온다. 꼭 한 녀석이 내는 소리 같다. 그런데 곰곰이 들어보면 따로따로다. 왜 그럴까. 암컷을 향해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란다. 맹꽁이 얘기다. 이름도 울음소리에서 유래됐다. 개구리목 맹꽁잇과 양서류 족속이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식물 II급이다. 통통한 몸집에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발에는 물갈퀴가 없다. 몸 길이는 4~5㎝ 남짓이다. 누런 몸에 푸른빛 혹은 검은빛 무늬가 있다. 산란기에 울음소리를 내는 울음주머니가 늘어져 있는 쪽이 수컷이다. 맹꽁이 울음소리로 인해 사업 자체가 중단될 위기에 놓인 곳이 있다. 인덕원~동탄 복선전철 9공구 터널이 그곳이다. 수원시 영통구 영흥공원을 관통하는 구간이다. 국가철도공단은 2026년까지 과천~수원~화성(총연장 38.9㎞)을 연결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공사 예정 구간이 지하여서 자재 투입과 환기 기능을 위해 수직구가 건설돼야 한다. 바로 해당 수직구 착공 지점 인근에서 맹꽁이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주민 제보가 접수됐다. 지난해 11월이었다. 영흥공원 민간특례사업자는 애초 이곳에 살던 맹꽁이를 장안구 만석공원으로 옮겼다. 2020년이었다. 하지만 늦가을부터 동면에 들어가는 특성으로 녀석들은 아직 영흥공원에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앞서 수원시는 지난해 7월부터 환경조사를 거쳐 맹꽁이 유생 163개체를 발견했다. 환경당국은 지난해 12월 ‘공사 시작 전 적정한 시기에 맞춰 재조사하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환경단체도 환경당국의 제대로 된 재조사 이행 여부를 확인할 방침이다. 앞선 조사 결과가 미흡하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이주 계획도 나와야 한다. 맹꽁이는 뜬금없는 울음소리를 내지만 우리와 공존해야 하는 생태계의 일원이다. 환경은 후손들에게 빌린 소중한 자산이어서 더욱 그렇다.

[지지대] 신의 한 수... 신의 꼼수?

“국회의원 이재명 체포동의안이 접수되었습니다.” 지난달 24일 오후 2시15분. 정명호 국회 의사국장이 본회의에서 의원들에게 보고한다. 담담한 어투로 5초간 읽은 20자다. 검찰이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를 위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 8일 만이다. 대선이 끝난 지 1년여가 지났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이재명 사법리스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 대표와 측근 수사가 진행되면서 벌써 5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당도 비명계의 퇴진 압박이 거세지고 개딸(개혁의 딸) 등 강성 지지층과 대립하며 혼란스럽다. 최근엔 친문계 의원들도 사퇴 시기를 거론하며 직격한다. 민생은 어렵고 국민만 정치적 피로감에 지치고 힘들다. 이 때문일까? 여론도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다. KBS와 한국리서치의 지난 5~7일 여론조사 결과 ‘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가 53.8%로 ‘필요없다’(40.7%)보다 13.1%포인트 많다. 체포동의안 부결에 ‘잘못된 결정’이 과반(52.1%)이었고 ‘검찰의 정당한 범죄 수사’란 응답도 53.9%나 차지했다. 이처럼 흔들리는 이 대표의 리더십 위기 돌파로 민주당은 내년 총선 공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편파 공천’을 의식한 듯 비명계 의원을 다수 배치했지만 이 대표는 사퇴할 뜻도, 공천권 행사에서 물러날 뜻도 없어 보인다. 최악의 경우 당내에서 우려하는 ‘옥중공천’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대표의 좌장격인 정성호 의원은 대표 사퇴, 공천권 내려놓기 등의 결단 촉구에 대해 “국민들이나 정치인들이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예상치 못한 내용이어야 신의 한 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이 대표의 결단이 ‘신의 한 수’가 될지, ‘신의 꼼수’가 될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지지대] 허준 선생 묘소 정비

한반도는 중국의 동쪽이다. 예부터 동방(東邦)으로 불렸던 연유다. 대륙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중국을 능가하는 분야도 있었다. 의학도 그런 분야 중 하나다. 한의를 중국식인 ‘한의(漢醫)’가 아니라 ‘韓醫’를 주창하는 까닭이다. 그 중심에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있다. 책 제목의 ‘동의(東醫)’는 중국 동쪽의 의학, 즉 조선의 의학을 뜻한다. ‘보감(寶鑑)’은 ‘보배스러운 거울’이다. 지금도 중국 한의학계가 명저로 인정하고 있다. 조선 의학 전통을 계승해 의학의 표준을 세웠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선정됐다. 동의보감은 허준(許浚·1539~1615) 선생 주도로 만들어졌다. 편찬 시기는 1613년(광해군 5년)이었다. 조선은 물론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았던 역저(力著)다.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허준 선생의 묘소가 발견됐다. 서거 후 4세기가 훌쩍 지난 1991년 9월이었다. 민통선이어서 방문이 쉽지 않았다. 당시에는 봉분과 석물 등이 묘소임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묘비도 두 동강 났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행히 묘비에 허준 선생의 묘임을 알리는 표기가 남아 있어 판명할 수 있었다. 이후 경기도문화재로 지정됐다. 파주시가 허준 선생 묘소에 대한 정비에 나섰다.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용역의 주요 내용은 문화재 관련 자료 수집, 현황 및 실측조사, 문화재 보존·주변 정비·콘텐츠 활용계획 수립, 학술대회 개최를 통한 문화재 가치 제고 등이다. 시는 이를 통해 묘역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효과적인 보존 관리 및 활용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번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은 의미가 남다르다. 허준 선생의 묘소는 동의보감과 더불어 역사·문화적 품격을 높여줄 유적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직업계高 개명 바람

수원의 삼일고등학교는 개교 12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수원사람들에게는 ‘삼일상고’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903년 삼일학당으로 처음 문을 연 이 학교는 1946년 삼일중학교 승격 인가를 받은 뒤 1955년 삼일상업고등학교 설치 인가를 얻었다. 이후 1968년 삼일실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꿨다가, 1988년 삼일상고와 삼일공고로 다시 분리 인가를 받았다.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꾼 삼일상고는 올해 3월 삼일고로 개명했다. 삼일고는 지난 6일 교명 변경 선포식을 열고 새 출발을 알렸다. 김재철 교장은 “시대 흐름에 맞는 새 이름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학생·학부모·교사·동문 등의 요청과 합의로 학교 이름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인문계고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 특성화고 체제를 유지하며 급변하는 산업 흐름과 경향에 맞춰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다른 특성화고도 학교 이름 바꾸기에 나섰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3월 도내 5개 특성화고가 교명을 바꿨다. 삼일상고(새 교명 삼일고), 평촌공업고(평촌과학기술고), 경기세무고(적성융합고), 남양주공업고(남양주고), 성남금융고(분당아람고) 등이다. 그동안 특성화고에 농업·공업·상업 등 계열이 존재했는데 산업계 추세가 융합이 되면서 학교 운영도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1950년 6·25전쟁 이후 우리나라는 1980년대까지 국가 주도로 무너진 나라 경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상공업이 발전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공고’, ‘상고’가 잇따라 문을 열었고, 학과 운영도 공업과 상업 분야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1990~2000년대를 거쳐 201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구조가 첨단산업으로 빠르게 재편돼 융·복합 바람이 불고 산업 간 경계가 모호해졌다.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우선으로 학사를 운영하는 직업계고들은 변화하는 흐름을 수용해야 했다. ‘공고’, ‘상고’ 등과 같은 전통적인 직업계고 교명을 바꾸는 이유다. 최근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과 반려동물·보건 등과 같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인력수요가 늘자 옛 교명을 유지해온 학교들까지 개명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급변하는 산업구조에 맞춰 교명을 바꿨다면, 이제 학과 개편 등 교육과정 내실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지지대] 이주노동자의 돼지우리 삶

10년간 돼지우리에서 살다가 숨진 채 버려진 60대 태국인 근로자의 안타까운 사연이 공분을 사고 있다. 이 남성은 1천여마리의 돼지를 키우며 일만 하고 살았다. 돈사와 붙어 있는 가로 2m, 세로 3m쯤 되는 방은 악취가 심해 숨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곰팡이가 가득하고 난방시설도 없었다. 음식을 해먹기엔 너무 지저분한 부엌, 화장실이라곤 바닥에 구멍 하나 뚫린 게 전부였다. 그는 한국말을 잘 못했으며, 다른 태국인 근로자와도 거의 교류없이 홀로 지냈다.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가 난방시설도 없는 포천의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병을 앓다가 숨졌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할 경우, 농·축산업 외국인 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서류에 거주시설을 ‘주택’, ‘빌라’로 써놓고 여전히 비닐하우스 가건물에 거주한다. 현장점검 등 관리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농어촌뿐 아니라 산업현장 등에서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일이 안 된다.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이른바 ‘3D 업종’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한국 경제에서 이주노동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구인난 해결을 위해 2004년 고용허가제를 실시하면서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으로 오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 지난 1월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15만명에 이른다. 이 중 불법체류자는 41만명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11만명이 입국할 예정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차별적 시선은 여전하다.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언어 소통이 힘들고 체류 신분이 불안정하다는 점을 악용해 인권 침해나 폭행·임금체불 등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 한국인들도 해외 각지에서 외국인 노동자로서 서러움을 겪으며 일했다. 이를 잊고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하면 안 된다. ‘코리안 드림’을 품고 찾아온 이들에게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고, 미흡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해야 한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에 생산인구 감소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과제다. 그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이웃이나 다름없다.

[지지대] 시진핑의 ‘강군승전’

귀를 의심했다. 다시 들어봤다. 그래도 미심쩍긴 마찬가지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연설이 그랬다. 9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부대 대표단 회의에서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국가 실험실을 잘 건설·관리·운용해 자주·독창적 혁신을 강화하고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자립과 자강에 속도를 내야 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국방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이뤄 강한 군대 건설과 전쟁 승리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강군승전(强軍勝戰)’. 그가 되풀이했던 단어다. 군대를 강하게 육성해 전쟁에서 반드시 이기자는 뜻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군대가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와 전쟁을 벌이던 시절 워딩이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강조했다는 기록도 있다. 눈도 다시 떠야만 했다. 시 주석의 복장이 눈길을 끌어서다. 연설을 하는 동안 짙은 녹색의 인민복을 입었다. 인민해방군 군복 색깔과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똑같다. 역대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이 전인대에서 자주 입던 옷이다. 자신이 인민해방군 통수권자인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그는 이런 복장으로 “국방과학기술공업이 더욱더 ‘강군승전’에 기여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한 대규모 비축 시스템 구축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결국 군사 분야에서의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이뤄 첨단 무기를 자력 생산할 수 있는 군수산업의 자체 완결성 확보를 독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략자원의 통합, 전략 역량의 일체화한 운용 등을 통해 전력을 체계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가 연설하는 동안 장유샤 부주석, 허웨이둥 부주석, 리상푸 위원 등 중앙군사위원회 간부들이 도열한 점도 예사롭지 않다. 그들이 전쟁에서 꼭 이겨야만 하는 나라는 과연 어딜까. 시 주석의 발언을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가 궁금했다.

[지지대] 기업인의 책무와 용기

경기도체육회에는 54개 정회원 단체를 비롯해 69개 종목단체가 가입돼 있다. 이들 종목단체들은 회장단의 출연금 또는 종목에 따라 승단(승급)비, 회비, 선수등록비, 그리고 각종 보조금 등으로 운영된다. 과거 기업인 단체장이 체육계에 많았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사건 이후 참여가 현저히 줄었다. 체육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려다 본의 아니게 곤욕을 치르는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기업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 추구와 사업의 번창이다. 이런 가운데 자의든 타의든 체육계와 인연을 맺고 사재를 털어 종목단체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 아무런 반대급부도 없이 종목단체를 오랫동안 지원하고 있는 단체장들도 아직 많다. 연간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출연금을 지원하는 단체장도 여럿 있다. 이들 대부분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경기체육 발전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지원하는 이들은 존경 받아 마땅하다. 여러 이유로 기업인들이 체육계에 등을 돌리는 가운데 최근 한 종목 단체장을 맡은 기업인의 언행이 신선하다. 경기도조정협회장으로 선출된 안교재 ㈜유연에이에프 대표다. 지인의 권유로 생소한 단체를 맡은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노력하는 선수·지도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며 당선 다음 날 거액을 출연하고, 막바로 선수·지도자들과의 스킨십에 나섰다. 그는 제품 생산 없이도 연간 2천만달러를 수출하는 능력 있는 기업인이다. 그의 성공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업과는 전혀 무관한 체육 발전을 위해 팔을 걷은 용기를 논하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뜻깊은 일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모르거나 용기를 내지 못해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다.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와 진정한 용기가 있다면 쉽게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지지대] 정치권에 소환된 ‘엄석대’

한 소년이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을 왔다. 소년의 아버지는 좌천된 말단 공무원이었다. 소년의 눈에 비친 급장(반장)은 담임교사보다 훨씬 무서웠다. 담임교사도 반장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반장은 폭력과 회유를 적절하게 섞으면서 왕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소년은 이처럼 이상한 학급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항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그 뒤부터는 되레 반장의 권력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반장의 이름은 엄석대였다. 소년은 담임교사가 새로 부임하자 엄석대에게 등을 돌렸다. 비겁한 반전이었다. 이문열 작가의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얼개는 제법 서사적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자유당 말기인 1950년대 후반이었다. 작가는 당시의 권위주의적인 사회를 경상도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의 한 학급을 통해 빗대 우화로 엮어냈다. 느닷없이 엄석대가 여당 전당대회에 소환됐다.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이 설전을 벌이면서다. 이 전 대표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엄석대에 비유했다. 이 전 대표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는 책 이야기만 썼는데 홍 시장은 엄석대에게서 누군가를 연상했다”고 적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여당 전당대회 상황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비유하면서 윤 대통령을 비판하고 친(親)이준석계 후보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홍 시장이 “이문열 선생을 모독해도 분수가 있지, 어찌 우리 당 대통령을 무뢰배 엄석대에 비유하나. 착각에 휩싸인 어린애의 치기에는 대꾸 안 한다”라고 맞받았다. 문학은 가능한 장르 안에서 나름 예의를 갖춘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언제부턴가 이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먼저 예를 갖추고 문학을 소환하는 게 순리다. 정치에 문학이 언급되는 현실이 못마땅해서 터져 나오는 넋두리다.

[지지대] ‘마약 마케팅’ 금지

배우 유아인이 프로포폴 상습 투약 혐의에 이어 대마, 코카인, 케타민을 투약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그가 주연으로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종말의 바보’, 넷플릭스 영화 ‘승부’, ‘하이 파이브’ 등의 공개를 앞두고 타격을 입게 됐다. 함께 작업한 배우들은 허탈해하고 있다. 마약이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해 있다. 대도시 등 일부에서 유통되던 마약이 지방과 학생, 회사원, 주부, 군인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SNS를 통한 판매, 가상화폐 등을 통한 대금결제 등 마약 유통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급증했다. 마약 중독과 범죄가 크게 늘어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마약류 관련 범죄가 증가하면서 음식과 물건 앞에 ‘마약’을 붙이는 ‘마약 마케팅’이 논란이다. 마약 김밥·마약 떡볶이·마약 토스트에 마약 베개·마약 매트리스 등 ‘마약ㅇㅇ’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 중독될 만큼 맛있다거나 큰 만족감을 마약에 빗댄 것이다. 이에 대해 마약 표현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마약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진다며 규제에 나서고 있다.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국회에선 마약 등 유해 약물이 식품 이름이나 광고에 쓰이지 못하도록 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지난해 8월 발의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규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의회가 지난 2월21일 ‘경기도 마약류 용어 사용 문화 개선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 조례안은 마약류 용어 사용 개선에 대한 도지사 책무를 명시하고, 개선 계획 수립·시행에 대해 규정했다. 또 정책 집행 과정에서 마약류 용어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조치·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조례안은 이달 열리는 제367회 임시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마약’ 용어 규제에 반대 여론도 많다. 마약 범죄 근절에는 공감하지만, ‘마약’ 용어를 사용 못하게 한다고 효과가 있겠냐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에게 부담만 될 수 있다. 앞서 서울시의회가 비슷한 조례안을 발의했으나 무산됐다.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마약 용어 사용을 규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지대] ‘무제한 연임’ 조합장 선거

농협·수협·산림조합장 선거가 오는 8일 치러진다. 전국 1천347개 단위 조합이 4년 임기의 대표자를 새로 뽑는 ‘동시조합장선거’로 평균 2.3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경기·인천지역에선 203곳에서 실시된다. 조합이 자체 실시했던 조합장선거가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된 것은 2015년부터다. 조합마다 선출 시기가 다르고, 선거 때마다 금품수수·향응 등 불법사례가 많아 폐단을 줄이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했다. 선관위 위탁 이후 선거법 위반이 감소하고 선거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증대됐지만 아직도 위법 행위가 여전하다. 조합장으로 선출되면 억대 연봉에 별도로 업무추진비를 쓸 수 있다. 규모가 큰 조합은 운전기사와 차량도 제공한다. 직원 채용부터 인사, 예산 집행, 사업 추진 등 조합 경영에서 거의 전권을 휘두른다. 더 매력적인 건, ‘무제한 연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은밀한 금품 제공 등 각종 불법 행위가 판을 치는 이유다. 농협의 경우 상임조합장은 연임이 2회(총 3선)로 제한되지만 자산이 2천500억원 이상인 조합은 연임 제한이 없는 비상임조합장이어서 장기 집권이 가능하다. 현재 4선 이상 농협조합장은 전국에서 101명에 이른다. 서울의 한 지역농협은 10선 조합장이 40년 넘게 재임하고 있다. 대전 한 농협의 9선 조합장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면 10선이다. 충북과 충남의 농협에도 9선 조합장이 있다. 현재 조합장선거제도는 현직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선거운동 기간이 13일에 불과하고, 토론회나 연설회도 없다. 선거운동원이나 선거사무소 없이 후보 본인만 운동이 가능하다. 현직 외에는 얼굴을 알릴 방법이 마땅찮다. 장기 집권에 따른 부작용을 없애고, 현직에게 유리한 선거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상임조합장, 시장·군수, 시·도지사도 임기에 제한을 두고 있는데 비상임조합장만 예외 규정을 두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번 당선된 후 무제한으로 하게 되면 권력이 집중되고, 조합이 사유화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개선해야 마땅하다.

[지지대] 반딧불이의 영토, 초막골생태공원

흔한 지명이 있다. 초막골이 딱 그렇다. 경기도내에만 네 곳이다. 안성시 일죽면에도, 광주시 도척면에도, 화성시 목동에도, 그리고 군포시 수리동에도 있다. 한자로 표기하면 ‘草幕’이다. 볏짚으로 이은 막사라는 뜻이다. 군포시 수리동의 초막골은 수리산 자락에 있다. 그 웅장한 산봉우리가 울타리처럼 감싸 안은 모양새다. 땅거미가 지면 어둠도 발품을 멈추고 쉬어 가는 곳이다. 그때 놀라운 광경이 연출된다. 이방인을 설레게 하는 불꽃의 향연이 펼쳐져서다. 축제의 배우는 반딧불이다. 근사하다. 이곳에 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지난 2016년 7월이었다. 행정지명으로 초막골길 216번지 일원이고, 면적은 56만1천500㎡ 정도다. 도심 속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수리산의 물길과 바람길이 연결되고 수리산도립공원, 철쭉공원 등과 생태네트워크를 이룬다. 생태공원은 자연을 보호·유지하면서 자연학습 및 관찰 등을 즐길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이다. 해당 생태공원이 문을 연 지 5년 만에 반딧불이가 출현했다. 늦반딧불이 족속이다. 시는 서식환경 관리와 함께 개체수 증가를 위한 복원사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수리산자연학교 등에 의해 애반디 및 늦반디가 각각 20여마리씩 관찰됐다. 시는 애벌레를 포함한 개체수가 이보다 100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는 수리산자연학교 등 시민단체와 반딧불이 보전 및 복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반딧불이 생육환경을 위해 반디 출현 지역에 산책로 조명을 부분 소등하고 자원봉사자 60여명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반딧불이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에는 애반디 유충 2천마리를 방사했다. 반딧불이를 초막골 생태공원 깃대종(Flagship Species)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초막골생태공원이 반딧불이의 영토가 될 날도 머지않았다.

[지지대] 반도체 특화단지, 수도권 역차별 없어야

정부가 실시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 반도체 분야’ 공모에 경기도와 인천이 참여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른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 3개 분야로 공모를 진행한다. 특화단지로 지정되면 인허가 신속 처리, 용수·전력 등 핵심 기반 시설 구축 및 연구개발(R&D) 지원, 세액 공제와 부담금 감면 등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공모 결과는 올해 상반기께 발표될 예정이다. 이번 공모에 경기도는 고양, 남양주, 화성, 용인, 이천, 평택, 안성 등 7개 시가 신청했다. 평택시는 삼성전자가 위치한 고덕국제화지구 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고 용인시는 SK하이닉스가 입주할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플랫폼시티 등을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이천시와 화성시도 각각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거점으로 관내 반도체 기업들을 활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계획이며 안성시와 남양주시, 고양시는 기존 산업단지와 계획 중인 산업단지를 특화단지로 지정해 반도체산업을 육성하고자 한다. 인천시는 국제공항과 인천항, 수도권 첨단 산업벨트를 갖춘 반도체 산업 육성의 최적지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도권 역차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공모에 경기도와 인천뿐만 아니라 광주·전남, 대전, 부산, 경북 등도 참여했는데 정부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반도체 분야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간부는 “연구원들이 서울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경기도 지역도 연구 인력이 선호하지 않아 구인난을 겪는데 지방에 특화단지가 조성되면 막막할 것 같다”고 토로한다.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정부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국내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분야에 균형발전 논리를 앞세우면 타 국가에 뒤처질 뿐이다.

[지지대] 3•1독립운동, 그리고 엄항섭 선생

한 장년이 고국 땅을 밟았다. 조국을 떠난 지 30여년 만이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1진이 환국했던 1945년 11월3일이었다. 백범 김구 주석의 비서 자격으로였다. 귀국 후 4개월 한국소년군 총본부 이사장에 추대된다. 1년 뒤에는 비상국민회의 선전위원회 위원장으로도 선출된다. 남북 협상 정국에선 한국독립당 대표단의 일원으로 김구 주석을 따라 북한을 방문한다. 그러다 6·25전쟁 발발 이후 납북됐다. 1956년 북한에서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에 강제로 가입해 상임위원 겸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북한에 억류된 인사 가운데 제일 젊었다. 이후 김일성 체제를 거세게 비판하면서 단식투쟁을 벌이다 1958년 9월10일 타계했다. 여주 출신 일파 엄항섭(一波 嚴恒燮) 선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다. 금사면 주록리가 고향이다. 선생은 어떻게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을까. 고려대 전신인 보성법률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항저우(杭州) 즈장(之江)대를 졸업한다. 이후 상하이에서 언론활동을 하다 1929년 재중국 한인청년동맹 중앙위원이 된다. 이후 상하이 프랑스 조계국에서 근무하다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들어갔다. 그 시절 김구 주석의 ‘백범일지’를 등사기로 일일이 인쇄했다. 주석직을 수행하던 백범 선생을 보좌하면서 그의 최측근이 된다. 김구 주석이 있는 곳에는 늘 그가 있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이나 활동 등을 미국 교포들에게 알리는 일도 선생의 몫이었다. 재원 마련도 그랬다. 선생은 납북됐지만 북한에 억류됐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을 인정받은 건 1989년이었다. 선생이 서거한 지 꼭 29년 만이었다.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됐다. 그가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하기로 결정했던 계기는 3·1독립운동이었다. 104년 전 오늘이었다. 선생의 나이 불과 21세였다.

[지지대] ‘정치 현수막’ 공해

요즘 도심은 현수막들로 너저분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교차로에는 더 많다. 지정된 현수막 게시대가 아닌, 나무나 가로등 지주 등에 무분별하게 걸어 놨다. 현수막 때문에 가게 간판이나 교통 이정표가 안보이는 경우가 많다. 횡단보도 신호등의 시야를 가려 보행자와 차량 등의 안전사고도 우려된다. 거리를 점령한 ‘정치 현수막’ 얘기다. 우후죽순 내걸린 정치 현수막은 정당 명의도 있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당원협의회장 이름이 적힌 것도 있다. 내용은 정책 홍보보다 상대 정당을 비방·폄훼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불체포특권 폐지, 민주당은 빼고?’ ‘50억 클럽 즉각 특검’ ‘난방비 폭탄 책임져라’ 등 마치 정치구호 경연장 같다. 시민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장사도 안 되는데 현수막이 간판을 가려 화가 난다”는 상인, “현수막 내용이 저질스러워 아이들 보기 부끄럽다”는 학부모, “정치후원금 거둬 쓰레기 같은 현수막을 내거는 데 써야 하냐”는 시민 등 유권자의 시선은 싸늘하다. 시야를 가려 시민안전을 위협하고, 도시 미관을 해쳐 흉물스럽고, 상대를 욕하는 내용으로 불쾌하고, 거기에 폐현수막 문제 등 환경오염까지.... 민생은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으며 ‘그들만의 정치’에 빠져 있는 정치인에 대해 비난을 넘어 혐오를 부추긴다.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로 운전자 피해와 등하굣길 학생 사고가 많다. 지난 13일 인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던 한 여대생이 정당 현수막 끈에 목이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현수막 끈이 성인 목 높이로 낮게 설치돼 있었는데, 야간이어서 끈을 미처 보지 못한 것이다. 선거철도 아닌데 정치 현수막이 많은 것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지자체의 별도 허가나 신고 없이 15일간 게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난립한 정치 현수막 민원이 지방자치단체로 쏟아지고 있다. 지자체에선 정치권의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를 자제하고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에 꼭 현수막으로 정당 홍보를 해야 하는가. 정책을 알리고 정당을 홍보하기보다 정치를 기피하게 하는 ‘혐오 현수막’인데 말이다. 

[지지대] 자살과 번개탄 금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하는 부문이 있다. 2003년부터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바로 ‘자살률’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2021년 기준 인구 10만명당 26.0명이다. OECD 표준인구 기준으로 산출해도 23.6명으로 평균치(11.1명)의 2배 이상이다. 매년 1만3천여명이 세상을 등진다. 통계청이 집계한 자살 사망 수단을 보면 가스중독이 15.1%에 이른다. 가스중독 사망자는 2021년 2천22명으로, 이 가운데 번개탄을 피워 숨진 사람은 1천763명(87.2%)이다. 10여년 전보다 3배가량 증가했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자살방지 대책의 하나로 산화형 착화제가 사용된 번개탄 생산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제5차 자살예방 기본계획안(2023~2027년)을 통해 자살률을 30% 줄이고 OECD 자살률 1등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현재 번개탄은 ‘자살 위해(危害) 물건’으로 분류, 자살 유발 등을 목적으로 유통하면 처벌된다. 자살을 위한 물건 관리를 강화하면 일부 예방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그래서 번개탄의 생산 금지를 고안해 낸 것인데, 이를 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온라인과 SNS에는 ‘한강 투신자가 많으니 한강 다리를 없애야 한다’ ‘철로 투신자가 많은데 철로도 다 폐쇄해야 한다’ ‘고층 아파트도 다 허물어야 한다’는 등의 조소와 냉소가 가득하다. 현실성 없는 황당한 대책이라며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아냥거린다. ‘번개탄 생산 금지’ 방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하자 복지부는 “유해물질이 들어간 제품 생산만 금지하는 것으로, 인체 유해성이 낮은 친환경 번개탄을 보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도 근본대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살 수단이 되는 물건을 생산 금지하면 번개탄을 이용한 자살자는 줄어들지 몰라도 전체 자살자가 줄어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 문제는 개인 문제라기보다 사회적 문제다. 생명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공동체의 책임이 크다. 극단적 선택을 할 만큼 고통스러운 국민의 삶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엔 여야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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