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진핑을 기다리는 美 농부들

중국의 한 청년 공무원이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중서부 아이오와의 한 농촌 마을이었다. 청년은 30대 초반이었다. 경제 개방이 막 발걸음을 떼던 1985년이었다. 초급 관리의 눈에 비친 미국의 농촌은 경외의 대상, 그 이상이었다. 허베이성 정딩현의 당서기였던 그는 농부들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농부들은 그런 그에게 자상하게 일러줬고, 식사로 돼지고기구이 요리도 대접했다. 농장 투어도 이어졌다. 식량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청년 관리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방안이 최대 과제였다. 마크 트웨인 소설의 배경이었던 미시시피강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 청년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가 됐다. 38년 만에 다시 아이오와를 찾아 그를 환대해줬던 농부들과 재회한다. 바로 오늘이다. 시진핑 주석 얘기다. 미국의 농부들이 수십 년 전 무명 관리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외신이 그렇게 전하고 있다. 이번 만남은 시 주석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하면서 이뤄졌다. 올해 팔순을 훌쩍 넘긴 아이오와주 머스카틴 농부 사라 랜드도 초대장을 받았다. 그는 시 주석과 38년 동안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랜드는 이처럼 길고 특별한 우정을 두고 “꽤 대단한 여정이었다. 시 주석이 왜 우리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아이오와주는 미국의 주요 대두(콩) 및 옥수수 생산지 중 하나로 미중 관계의 개선에 관심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중국은 15일 시 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300만t 이상의 대두를 구매하며 일종의 ‘화해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시 주석은 젊었을 때의 초심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을까.

[지지대] 짜증나는 ‘입씨름’

말을 바르고 신중하게 하지 않으면, 그 말 때문에 말시비, 말다툼, 입씨름, 아귀다툼 등이 벌어진다. 말로써 행해지는 시비나 싸움은 감정이 개입돼 격하고 야비하게 흘러간다. 이런 싸움이 개인 차원을 넘어 공인(公人)들 사이에서 벌어지면 실망스럽고 짜증 난다. 우리는 정치판에서 이런 사태를 자주 접했다. ‘입씨름’으로 불리는 설전(舌戰)은 승자가 없다. 서로 헐뜯는 거친 말싸움은 결국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간의 ‘입씨름’이 화제다. 송 전 대표가 먼저 던졌다. 그는 한 장관을 향해 ‘어린 놈’, ‘건방진 놈’이라는 막말을 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송 전 대표가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을 성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작정한 듯하다. 송 전 대표의 문제 발언은 지난 9일 서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나왔다. 그는 지지자들 앞에서 한 장관을 거론하며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 놈이 국회에 와서...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나.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원색 비난했다. 사석도 아니고, 자신의 출판기념회에 온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5선 의원과 여당 대표를 지낸 사람이 할 말인가 싶다. 송 전 대표의 막말이 발단이긴 했지만 한 장관의 대응도 실망스럽다. 검찰 사무를 총괄하는 법무장관이 정치색을 드러내고 민주당을 향해 공격성 발언을 계속해온 가운데 ‘추잡한 추문’, ‘정치를 후지게’라는 단어를 써가며 반박했다. 한 장관은 11일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 같은 사람들이 돈 봉투 수사나 과거 불법자금 처벌 말고도 입에 올리기 추잡한 추문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하며 국민들을 가르치려 든다”고 했다. “고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생각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간 후지게 만들었다”고도 했다. 말꼬리를 잡고 벌어지는 정치판의 ‘입씨름’에 국민들은 짜증을 넘어 혐오감을 느낀다. 영향력있는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일수록 발언을 신중하게, 언어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

[지지대] 날벼락 맞은 ‘종이빨대’

‘리앤비’는 종이빨대를 만드는 친환경 제품 스타트업이다. 화성시에 소재한 리앤비는 접착제를 사용하던 기존 공정에서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빨대를 생산하는 방법을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 한솔제지가 폴리에틸렌(PE) 코팅을 하지 않은 친환경 종이 원지를 공급했다. 이 회사는 스타벅스, 폴바셋, CU 등 국내 주요 업체와 계약을 맺고 종이빨대를 납품해 왔다. 올해 10월까지 종이빨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었다. 세븐일레븐, 메가커피 등의 업체와 수급 계약도 체결했다. 리앤비의 매출이 고공행진을 한 데는 자원재활용법 시행에 따라 카페 등에서 종이빨대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종이빨대는 국내 커피전문점·편의점에서 연간 100억개 이상 사용돼온 플라스틱빨대의 대체재다. 정부는 자원재활용법 개정과 함께 지난해 11월24일부터 음식점,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등에서 일회용 플라스틱빨대, 종이컵 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1년간 계도기간을 두고 과태료 부과를 유예하다 오는 24일부터 본격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환경부가 지난 7일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종이빨대 제조회사들은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계도기간 종료를 보름가량 앞두고 생산량을 늘려놨는데, 플라스틱빨대 사용 금지 단속이 무기한 유예된 것이다. 종이빨대 제조업체들은 손바닥 뒤집듯 바뀐 정책에 말을 잊고 있다. 업체 창고마다 종이빨대가 수천만개씩 쌓여 있다. 11월부터 생산량이 엄청 증가할 것에 대비해 설비를 확충하고 인력도 늘렸는데 황당하고 난감한 지경이다. 판로를 잃고 빚더미에 앉을 판이다. 도산 위기에 내몰린 중소기업들을 정부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 방침을 뒤집은 행태에 환경단체는 물론 일부 국민의 비판도 크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의견도 있다. 무책임하고 무지한 정책 뒤집기는 선거에 도움은커녕 역효과를 부를 것이다.

[지지대] 다크패턴 주의보

첫 화면에는 낮은 값이 제시된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이 숨겨진 가격이 추가된다. 결국 처음 값보다 비싼 가격이 청구된다. 속았다고 느꼈지만 결제는 진행된다.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겪는 피해 사례다.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스마트폰으로 쇼핑하는 시대에 씁쓸한 민낯이다. 다른 피해 사례도 있다. 무료 서비스가 유료로 전환되거나 월 구독료를 올리면서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계약이 자동 갱신되거나 대금이 자동 결제되는 경우가 그렇다. 소비자가 의도하지 않은 대답이나 선택을 하도록 속임수를 써서 질문하거나 주의 깊게 봐야만 정확히 알 수 있는 내용을 묻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다크패턴(Dark Pattern)’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사용자경험(User Experience·UX) 디자이너 해리 브릭널이 2010년 만든 신조어다. 국내에선 2020년대부터 사회 문제로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다크패턴 주의보가 내려졌다. 지난 4~8월 국내 38개 온라인 쇼핑몰의 76개 웹사이트·모바일앱 실태를 조사한 결과 429건의 다크패턴 사례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의 발표 자료다. 쇼핑몰당 평균 11.3건꼴이다. 대표적으로 ‘다른 소비자의 구매 알림’(71건), ‘감정적 언어 사용’(66건), ‘구매 시간 제한 알림’(57건) 등이 있다. 수법도 진화했다. 심리적으로 구매를 압박한다. 실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우려가 큰 사례는 188건에 이른다. 가격이 높은 상품이 미리 선택된 특정 옵션 사전 선택 37건, 구매 선택 단계에서 최소 또는 최대 구매 수량을 노출해 혼란을 주는 숨겨진 정보 34건 등이었다.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를 유인했지만 실제로는 해당 제품이 없는 유인 판매 2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소비자 기만 행위는 사기이고 범죄다. 공정한 쇼핑보장은 건강한 자본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우물 안 경기체육, 글로벌 인재 육성을

경기도가 지난 10월 제104회 전국체전에서 종합우승 2연패를 달성했다. 메달과 득점에서 모두 ‘영원한 맞수’ 서울시에 앞선 완승이었다. 그러나 경기도의 우승에도 대회 최우수선수는 강원도의 몫이었다. 수영에서 4관왕에 오른 황선우(강원도청)가 3년 연속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경기도는 고른 성적으로 정상을 지켜냈지만 대회 기간 내내 언론의 주목을 받은 선수는 역도 ‘포스트 장미란’ 박혜정(고양시청)뿐이었다. 많은 체육인들은 경기도가 전국체전 연패 달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스타 부재의 아쉬움을 꼽는다. 현재 경기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전문 선수가 있고 경기도청을 비롯한 30개 가까운 시·군에서 전국 최다의 직장운동부를 운영하고 있지만 상당수가 도민체전용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국가대표도 많지만 얼마 전 끝난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종목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국제 경쟁력 있는 선수가 소수에 불과하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 육성에는 영입비와 연봉 등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타 시·도의 경우 전략적으로 국제적인 선수를 육성하고 있다. 강원도청의 경우 수영, 광주광역시청은 육상 단거리, 서울시청은 펜싱, 부산시청 사격, 청주시청 양궁 등 각 기초·광역지자체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직장운동부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는 아쉽게도 고양시청 역도, 성남시청과 의정부시청 빙상 정도가 글로벌 인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수영 황선우를 비롯해 타 시·도에서 뛰고 있는 스타들 가운데 상당수가 경기도 출신이다. 이들은 세미 프로화된 스포츠계에서 자신의 몸값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는 팀을 찾아 떠난 것이다. 이제라도 10개팀을 운영하는 경기도청을 비롯해 한때 ‘스포츠 메카’로 불렸던 수원특례시와 용인특례시, 신흥 강호로 도약한 화성시 등이 글로벌 인재 육성에 나서야 한다. 단순히 고용 차원을 넘어선 선택과 집중의 직장운동부 육성이 필요하다.

[지지대] 어눌해진 시진핑의 말

눈에 띄게 어눌해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최근 말이 그렇다. 그의 중국어 표준말인 푸퉁화(普通話) 표현은 짧고 명료했었다. 이과 출신답게 말이다.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은 “세계경제 회복을 위해선 각국은 머리를 맞대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수입박람회에 보낸 서한을 통해서였다. 결기도 빠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7년 만에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를 만나서도 장황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외국인 투자장벽 제거를 강조했다. 그런데 최근 발언에선 이처럼 명쾌한 워딩이 쏙 빠졌다. 이유는 뭘까. 대답은 최근 제기된 대만 점령 시나리오에서 찾으면 된다. 압박부터 전면 침공 및 완전 점령까지의 과정이 연안섬 점령·봉쇄·폭격 등으로 압축됐다. 브랜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발제를 통해서였다. 외신은 브랜즈 교수가 쓴 ‘중국은 대만을 어떻게 점령할까’ 제하의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고 전하고 있다. 사실 중국은 대만의 내년 1월 총통선거 직후 군사력을 포함해 막강한 힘을 과시해 대만해협 위기가 고조될 개연성이 높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연일 ‘통일전쟁 리허설’로 평가되는 고강도 무력시위를 벌인 바 있다. 당시도 시 주석의 말은 두루뭉실했다. 그런 연유를 따져 보면 시 주석의 어눌한 표현은 의도적인 셈이다. 대만 점령을 앞두고 말을 아끼면서 전략적으로 나오는 모양새다. 시 주석이 대만과의 대결을 확대하기로 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하지만 전면 침공과 같은 충격적인 일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착각일 수도 있다. 시 주석의 눌변이 수상한 까닭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지지대] 빵 사무관, 커피 주무관

먹거리 물가가 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가 작년 같은 기간보다 5.1% 상승했다. 원유와 곡물 등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기상 이변에 따른 작황 부진이 주원인이다. 더 큰 문제는 밥상 물가 상승이 수년째 누적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서민 물가와 직결되는 가공식품의 담당 공무원을 지정하는 ‘전담 관리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각 부처 차관이 ‘물가안정책임관’ 역할을 하도록 했다. ‘빵 사무관’, ‘라면 사무관’, ‘커피 주무관’ 등이 생기는 것이다. 2012년 1월 이명박 정부가 전담 공무원을 지정한 ‘물가관리 책임실명제’와 닮은꼴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전담자를 지정해 집중 관리에 나선 품목은 가공식품과 원재료 7개다. 라면, 빵, 과자, 커피, 아이스크림, 설탕, 우유 등이다. 지난 2일 발표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3.8%로, 3개월 연속 3%대 오름세였다. 아이스크림은 15.2% 급등했고, 우유는 14.3% 올랐다. 과자는 10.6%, 커피는 9.9%, 빵은 5.5% 상승했다. 이에 농식품부는 주요 가공식품 물가를 관리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 품목 담당자들이 시장 동향을 수시로 점검토록 할 계획이다. 물가 상황이 너무 안 좋아 밀착 관리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은 업계를 압박해 인상을 억제한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초부터 쌀, 학원비, 공공요금 등 52개 생활필수품을 선정해 10일 주기로 가격 동향을 집중 관리했다. 이른바 ‘MB물가지수’ 관리였다. 하지만 3년여 지난 후 52개 품목의 가격은 평균 20.4% 상승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른 부작용과 통화정책 역주행이 차질을 불렀다. 윤석열 정부의 ‘MB식 물가관리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주요 품목 가격은 수입물가 변동과 세금 등이 훨씬 큰 변수로 작용한다며 인위적으로 가격을 누르면 부작용만 생길 것이라고 한다. 미봉책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지대] 빈대의 귀환

1937년 8월16일 부산 동구 수정동의 한 가정집에서 불이 났다. 방 안 빈대를 잡기 위해 휘발유를 뿌리고 모깃불을 피워둔 게 잘못 불이 붙은 것이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불길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마을 근처 20여채가 연소되고 15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1937년 8월18일 조선일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맞았다. 1921~1941년 빈대를 잡으려다 실제로 집을 태운 화재가 21건에 달했다는 보도가 남아 있다. 1970년 6월17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을 떠나 천안역에 멈춰 섰던 특급열차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4호차 20여개 자리에서 빈대가 나타난 것이다. 빈대를 본 승객들이 일시에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혼란이 빚어졌다. 열차 승무원들이 의자 시트를 벗겨보니 좌석마다 빈대가 붙어있어 100마리를 잡아냈고, 승객들의 몸에서도 30여 마리가 나왔다.(경향신문 1970년 6월17일)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빈대는 생활 속의 익숙한 존재였다. 청결 상태가 좋지 않은 환경에서 창궐해 이·벼룩과 함께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다. 흡혈 해충인 빈대는 한 번 흡혈하면 일주일 동안 혈액을 소화하며 10~15개의 알을 산란하고, 일생 동안 200~250개의 알을 산란한다. 20도 이상의 실내에선 먹이 없이도 120일 정도 생존한다. 때문에 빈대가 한번 나타나면 박멸이 쉽지 않다. 빈대는 새마을운동을 통한 주거환경 개선과 1970년대 맹독성 DDT 살충제 도입 등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아파트 중심으로 거주 양식이 바뀌고 공중위생 수준이 개선되면서 토종 빈대는 자취를 감췄다. 2023년, 빈대가 돌아왔다. 달갑지 않은 ‘귀환’이다. 대구의 한 대학 기숙사와 인천 찜질방에 출몰한 사실이 알려진 데 이어 서울 가정집에서도 발견됐다. 외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숙박시설 등에서 빈대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전국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빈대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고 선제적인 방제·방역을 해야 한다. 또 다시 ‘빈대와의 전쟁’이다.

[지지대] 페미사이드 단상

페미사이드(Femecide)라는 용어가 있다. 딱히 언제부터 썼는지는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그냥 흘러 넘기기엔 제법 묵직하다. 여성이란 뜻의 영어 단어 Female과 살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Homicide가 합쳐졌다. 직역하면 ‘여성 살해’다. 좀 더 깊게 들어가 보자. 넓게는 범행 동기나 가해자 등과 상관 없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혹은 여성이라는 점을 노리고 살해하는 행위다. 좁게는 여성에 대한 증오범죄도 이에 포함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여성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애·동거·혼인 상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페미사이드라고 정의하고 있다. 명백한 범죄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1차 여성대상범죄 국제재판에서 처음으로 언급됐다. 여성학자 다이애나 러셀이 주창했다. 1976년이었다. 페미사이드에 대해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공식화됐다. 그 이전부터 여성 살해는 빈발했다. 시계를 거꾸로 돌리면 남성우월 사회에서 그 범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페미사이드가 범죄로 인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끔찍하고 잔인한 인류의 민낯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페미사이드 관련 통계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적인 분류 기준을 적용하는 연구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도 파악됐다. 여러 국가 기관 및 다른 나라들과의 협력도 이뤄지고 있고, 향후 진전 과정도 공개할 예정이다. 유엔도 공식적으로 (범죄)통계의 국제표준을 승인했다. 이제는 통계청이 페미사이드 통계를 구체화해야 한다. 여성 혐오 살해를 이른 바 ‘묻지마 범죄’라는 개념 오도 용어로 가려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타인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행위는 분명 단죄해야 한다. ‘여성 살해’도 그렇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문명국이 아니다. 페미사이드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가 돼야 진정한 선진국이다.

[지지대] 수도권 생태교란종

단풍잎 형태를 갖췄다. 줄기에는 꺼끌꺼끌한 돌기가 촘촘히 달려 있다. 고향은 미국이다. 생명력이 강해 토종 식물 서식지를 황폐화시킨다. 대표적인 생태교란종 단풍잎돼지풀이다. 한강유역환경청이 지난해 9월부터 1년간 수도권 생태계교란 생물 분포를 조사했다. 생태교란종 가운데 단연 1위는 단풍잎돼지풀이었다. 조사 지역 4천606곳 중 1천498곳에서 발견됐다. 생태교란종은 지난 1998년 환경부가 황소개구리, 큰입배스, 파랑볼우럭을 지정한 뒤 현재 36종이 지정됐다. ▶또 다른 생태교란종 붉은귀거북은 반려동물로 한국에 수입된 뒤 국내 하천에 알을 깠다. 천연기념물인 남생이를 몰아내고 자리를 차지했다. 식용으로 도입된 황소개구리는 왕성한 식욕으로 토종 생물을 무차별 먹어 치우고 있다. 큰입배스 역시 농촌 저수지를 점령했다. 낚시꾼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선사하지만 토종 물고기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 생태교란종은 생태계의 무법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정치권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국민의힘이 선수를 쳤다. 김포시 등 서울 인접 경기도 지자체를 서울시로 편입하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한편에선 집값 상승 기대감 등 표심 공략에 무시할 수 없는 화두다. 벌써 여야 정치권은 물론 지역에서 논쟁은 시작됐다. 그러나 명심하자. 취지는 좋지만 표에만 몰입한 설익은 총선용 공약은 생태교란종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다. 결국 소모적인 정쟁에 따른 피해는 시민들의 몫이다. 생태교란종 때문에 토종 생물은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토종 생물을 보존할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

[지지대] “우리도 달에 간다”

경이로웠다. 시골 전파사 앞에서 흑백 TV를 통해 지켜본 달 착륙 장면이 그랬다.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 그때 달을 밟았던 우주인과 우주선의 이름을 그래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까닭이다. 1969년이었다. 당시 필자 또래 코흘리개들의 바람은 달에 우주선 보내기였다. 막연했던, 거의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우세했지만 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에 몰두하느라 달 탐사는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랬던 우리에게도 달 착륙이 구체화되고 있다. 앞으로 9년 후인 2032년 독자적으로 달 착륙선을 보낸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달 탐사 2단계(달 착륙선 개발) 사업’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주영창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주재로 최근 제12회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제3차 국가연구개발사업 예타 대상으로 선정된 이 사업을 심의·의결했다. 이 사업의 목표는 달 탐사를 목적으로 착륙 예상지 주변 장애물을 탐지해 회피하고, 정밀한 연착륙을 자율 수행하는 1.8t급 달 착륙선 독자 개발이다. 과기부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내년부터 2033년까지 10년간 5천303억4천만원을 투입한다. 당초 신청한 내년부터 9년간 6천184억4천600만원 대비 기간은 1년 늘고 예산은 881억600만원 줄었다. 지난 4월 국가전략기술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예타 통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받았다. 착륙선은 지난해 예타를 통과해 개발 중인 차세대 발사체를 통해 2032년 발사된다. 이번 사업을 통해 2028년 착륙선 설계를 완료하고 2031년 연착륙 임무를 수행하는 연착륙 검증선을 우선 차세대 발사체를 이용해 발사한다. 이후 2032년 달 표면 탐사 임무까지 수행하는 달 착륙선을 개발한다. 우리가 달을 밟는 나라가 되는 것도 머지않았다. 아폴로11호의 달 착륙 시 초등학생이 칠순을 넘긴 나이에 맞이할 근사한 미래다.

[지지대] 좀비기업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금융지원을 받아 간신히 파산을 면하고 있는 기업을 ‘좀비기업’이라 한다. 살아있는 시체를 뜻하는 ‘좀비’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시장원리에 따라 퇴출되는 게 맞지만 상당수 기업이 정부 또는 채권단의 지원을 받아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들 좀비기업은 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가야 할 지원금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 지난해 국내 기업 10곳 중 4곳 이상은 1년간 번 돈으로 대출이자도 감당 못하는 좀비기업으로 나타났다. 2009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다. 기업들의 부채 비율과 빚 의존도 역시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경기침체의 골이 깊은 데다 미국발 고금리가 장기화돼 아슬아슬한 기업들이 많아졌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022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인 ‘좀비기업’ 비중이 42.3%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은 비금융 영리법인기업 91만206곳이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로, 100% 미만은 기업이 한 해 동안 번 돈으로 대출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기업 부실은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외부감사 대상 기업 2만3천273곳 분석 결과 이자보상비율은 지난해 5.1배로 1년 전(7.35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줄었다는 뜻이다. 3년 연속 좀비기업은 1년 새 8.7% 늘었다. 문제는 좀비기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도기업도 크게 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어음부도액은 3조6천282억원으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빚더미 한계기업의 연쇄도산이 현실화되면 실물경기와 금융 시스템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부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기업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부실기업을 가려내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있다. 국회 파행으로 효력을 상실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도 재입법을 통해 부활시켜야 한다.

[지지대] 이태원 참사 1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기도할게요’, ‘부디 하늘에선 편하게 지내시길’,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이태원역 1번 출구를 나오면 수많은 쪽지가 붙어 있는 벽을 만나게 된다.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포스트잇이 놓인 작은 책상이 있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각자의 마음을 담아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를 남긴다. 영어, 일본어, 아랍어 등 외국어로 된 쪽지들도 많다. ‘○○아, 아빠가 많이 보고싶구나. 사랑해’라는 유가족의 글에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흘렀다. 지난해 10월29일 저녁 핼러윈 축제를 찾았던 159명이 국가의 무관심과 안전불감증에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압사를 당했다. 뻔히 예측되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정부와 지자체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왜 이런 참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지난 1년간 많은 이들이 묻고 또 물었다. 그러나 대통령실도, 행정안전부도, 경찰도, 구청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1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시간은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이 사망한 순간에 멈춰 있다. 유족들은 평범한 삶의 고리가 끊어진 채 해본 적 없는 ‘투쟁가’의 길로 들어섰다. 진상 규명도, 처벌도,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도 없는 가운데 치유와 회복은 멀기만 하다. 참사의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해밀톤호텔 옆 골목에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이 마련됐다. 골목 입구에는 ‘우리에겐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바닥에 새겨졌다. 이정민 유가족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이곳은 지난해 10월29일 밤 즐거운 일상을 보내다가 서울 한복판의 골목에서 하늘의 별이 된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곳이며, 앞으로 더 이상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안전을 다짐하기 위한 곳”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아직 미완성”이라고 했다. 희생자를 기억하고, 진상 규명을 하고, 재발방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지대] ‘2말3초’의 기억

‘2말3초’라는 표현을 기억한다면 베이비붐 세대다. 여대생들이 결혼 대상 남성을 찾는 시기가 2학년 말이나 3학년 초라는 뜻의 줄임말이다. 40여년 전 여성들의 결혼 연령은 23~24세였다. 출산 시기도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20대 후반이었다. 30대 중반이면 초등학교 학부모가 되는 게 일반적인 추세였다. 필자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랬다. 이 같은 기억을 뒤집는 우울한 통계가 나왔다. 경기도내 여성의 평균 출산연령이 10년 새 두 살 가까이 오르고 고령 산모 비중이 17%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는 분석이 그렇다.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경기도내 평균 출산연령은 33.7세로 전년 대비 0.2세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33.5세)보다도 0.2세 높다. 출생 순위별로는 첫째 33.0세, 둘째 34.4세, 셋째 35.9세 등이다.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중은 36.5%로 전년(35.5%)보다 1.0%포인트, 10년 전인 2012년(19.5%)보다 17.0%포인트 각각 늘었다. 출산율도 저조하다. 경기도가 작성한 ‘2023년 경기도 출산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출생아 수는 7만5천323명이고 합계출산율은 0.84명으로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시·군별 합계출산율은 연천(1.04명), 평택(1.03명), 과천(1.02명) 등의 순으로 높고 부천(0.70명), 구리(0.73명), 동두천(0.75명) 등의 순으로 낮다. 이 같은 행진은 올해 들어서도 계속된 것으로 집계됐다. 1분기 0.86명, 2분기 0.75명 등으로 각각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08명, 0.06명 감소해 올해 합계출산율은 전년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세월은 덧없이 흐른다. 이런 와중에 변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다. 결혼과 출산의 정착화다. 이 무한한 우주에서 인류의 생존 이유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김치라도 마음 편히

올해도 어김없이 찬 바람 부는 가을이 왔고, 어느덧 김장철이 다가오고 있다. 고물가 시대에 배추라고 가격이 안 오를 수 있을까. 배추는 물론 김장 재료들이 모두 올라 서민들의 시름이 깊어지는 가을이다. 최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를 보면 배추 소매가격은 한 포기에 평균 6천482원으로 9월(5천718원)보다 13.3% 올랐다. 장마와 폭염, 폭우 등으로 인한 작황 부진에 전반적으로 채소 가격의 오름세가 이어졌는데,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는 것이다. 배추뿐 아니라 김장 재료인 파, 생강 등의 가격도 올랐다. 대파는 1kg에 4천원가량으로, 이 역시 한 달 전(3천513원)보다 11.7% 올랐고 지난해(3천270원)에 비해서는 20% 비싸다. ‘김장 민심’ 달래기에 나선 정부도 비상이다. 정부는 배추 하루 방출물량을 두 배 늘리고 11월 김장 재료를 중심으로 할인행사를 진행하는 등 먹거리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대파, 생강 등 가격이 상승한 김장 채소에 대해서는 산지 농협의 납품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가격이 심상치 않은 소금도 김장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11월 집중적으로 할인 행사를 개최할 방침이다. 최근 사람들의 식습관도, 입맛도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밥상에 필수 반찬은 김치다. 그리고 초겨울 김장을 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다. 이번 겨울 김치만이라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길 바라본다.

[지지대] 겨울철새도 감소... 왜?

저어새, 호사비오리, 흑고니, 황새, 개리, 뜸부기, 재두루미, 붉은어깨도요, 흰뺨검둥오리, 넓적부리도요, 민물도요, 민물가마우지, 큰기러기, 쇠기러기.... 해마다 찬 바람이 불면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 명단이다. 녀석들은 여름철에는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주로 번식활동을 한다. 그러다 수은주가 뚝 떨어지면 한반도로 내려와 한겨울을 보낸다. 철새는 먹이가 풍부한 장소와 시기에 새끼를 낳아 기른다. 따뜻하고 먹이가 풍부한 장소에선 월동하기 마련이다. 수만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터득한 이 녀석들만의 생존방식이다. 철새들은 왜 이동할까. 기후보다는 먹이 부족 때문으로 풀이된다. 잡식성 새들이 대부분 그렇다. 먹이도 풍부하고 기후도 살기에 안성맞춤인 경우에는 아예 텃새로 주저앉는다. 청둥오리가 대표적이다. 한반도를 찾는 겨울철새들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올해 겨울철새 60만마리가 날아왔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4% 줄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최근 전국 주요 철새도래지 112곳에서 조사한 결과 겨울철새 105종 60만5천163마리가 관찰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조사 때 62만6천306마리와 비교하면 2만1천143마리로 3.4% 줄었다. 수치상으로는 감소율이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지만 생태학적으로는 심각하다. 오릿과 조류는 47만73마리로 전체 겨울철새의 77.7%를 차지했다. 오릿과 조류 중에서도 기러기류는 지난해보다 일찍 찾았다. 종별로는 큰기러기(20만2천40마리), 쇠기러기(18만2천747마리), 흰뺨검둥오리(3만3천637마리), 민물도요(2만2천398마리), 민물가마우지(2만1천399마리)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겨울철새 감소는 환경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뜻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징조다. 물질적으로 좀 풍부해졌다고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닌 까닭이다.

[지지대] 이건희의 ‘다 바꾸자’

1993년 6월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호텔에 삼성 임직원 200여명이 모였다.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이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였다.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된다”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다. 초일류기업을 향한 삼성 ‘신(新)경영’의 시작이고, ‘제2창업’ 선언이었다. 당시 삼성은 국내 1등이긴 했지만 해외시장에선 2류, 3류 취급을 받았다. 이날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삼성이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는 “삼성의 체질과 관행, 의식, 제도를 양(量) 위주에서 질(質) 위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품질로는 세계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진단한 것이다. 1995년 3월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선 15만대 500억원어치의 삼성 휴대폰을 쌓아 놓고 ‘화형식’을 가졌다. 설 선물로 임원들에게 휴대폰을 돌렸는데, 통화가 안 된다는 불만이 나왔고 이를 이 회장이 전해 들었다. 그는 “돈받고 불량품을 만들다니, 고객이 두렵지도 않나”라며 태워 버리라고 지시했다. 이건희 회장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한 결단이었다. 독창적인 발상으로 오너가 아니면 내릴 수 없는 결단으로 오늘의 삼성을 이끌었다. ‘신경영 선언’이 올해 30주년을 맞았다. ‘이건희의 신경영’으로 삼성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신화를 쓰며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의 변화는 다른 기업은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메이드 인 코리아’가 세계 1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 회장의 ‘다 바꾸자’는 변화와 혁신의 메시지는 지금도 유효하다. 삼성을 포함한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 상황은 신경영을 선언한 30년 전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이 회장이 ‘4류’라고 했던 구태한 정치도 나아진 게 없다. 저출산·고령화로 국가의 장래가 위태롭고, 이념 논쟁과 양극화로 갈등도 심각하다.

[지지대] 칭다오 ‘소변맥주’ 논란

중국 산둥반도 남단에 위치한 칭다오(靑島)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다. 독일인 선교사가 살해당한 사건을 빌미로 독일이 40년간 칭다오를 지배했다. 그 흔적으로 남은 것은 독일식 붉은 벽돌 건물과 맥주 제조 기술이다. 칭다오 맥주는 이곳의 맑고 풍부한 수자원과 세계 최고의 독일 맥주 양조법이 결합돼 1903년 탄생했다. 칭다오 맥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맥주다. 칭다오시는 1991년 8월 칭다오 국제맥주축제를 열기 시작했다. 축제는 유명해져 맥주 종주국인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 맞먹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칭다오 맥주의 인기가 대단하다. ‘양꼬치엔 칭다오’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친숙하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칭다오 맥주에 먹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칭다오 맥주 생산공장의 원료에 방뇨하는 영상이 폭로된 것이다. 지난 19일 중국 SNS 웨이보에 칭다오 3공장에서 헬멧을 쓰고 작업복을 입은 한 남성이 담을 넘어 맥주원료인 맥아 보관 장소에 들어가 소변을 보는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공개됐다. 이 영상 관련 해시태그는 20일 웨이보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고, 소비자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칭다오 맥주의 명성과 신뢰에 금이 갔다”며 진상 규명과 엄중 처벌을 요구했다. 공장 측은 “진상을 조사하고 있다”면서도 영상 조작 가능성을 열어뒀다. 현지 공안도 수사에 착수했다. 칭다오 맥주 한국 수입사는 입장문을 통해 “논란이 된 3공장은 중국 내수용 맥주만 생산한다”며 “국내 유통 맥주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찜찜해한다. 중국의 먹거리 위생은 이미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2021년 한 남성이 옷을 벗고 수조에 들어가 배추를 절이는 ‘알몸 김치’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켰다. 2020년 쓰촨의 유명 훠궈 음식점이 손님이 먹다 남긴 훠궈와 잔반을 모아 만든 일명 ‘구정물 식용유’를 추출해 재사용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다. 식품안전 관리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 정부는 중국산 먹거리 수입을 철저히 조사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인공눈물의 사회학

슬플 때면 눈가가 촉촉해진다. 감동을 받아도 그렇다. 눈물의 사회학이다. 액체지만 흔히 오줌이나 땀 같은 노폐물은 아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눈동자 앞의 이물질을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더 깊게 들어가 보자. 콧물이나 침처럼 외부에 노출됐고 습기가 있어 감염될 우려도 있다. 항생물질이 분비돼 세균과 바이러스를 차단한다. 온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한두 방울 흘리면 상대적으로 차가워 얼굴에 흘러내릴 때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감정이 벅차올라 많은 양이 흘러 나오면 따뜻하고 얼굴에 흘러내릴 때는 뜨겁게도 느껴진다. 가끔 마음은 움직이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이 괜히 공허해진다. 의학적으로는 안구건조증이라고 부르는데 눈물샘이 말라서란다. 눈물은 이때부터 노폐물 취급을 받는데 눈곱이 바로 그런 경우의 소산물이다. 그럴 때 찾는 게 인공눈물이다. 일반의약품으로 눈물과 비슷한 농도를 갖춘 점안액이다. 최근 국회에서 인공눈물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일반의약품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우려와 관련해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노인성 안구건조증 증상 완화 등에 쓰는 인공눈물에 건강보험 혜택은 계속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의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인공눈물에 건보급여가 계속 제공되느냐”는 질의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다. 인공눈물 성분 중 히알루론산나트륨 성분으로 된 점안제도 있다. 안구건조증 환자 등이 이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처방약으로 사용한다. 인공눈물처럼 일반의약품이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건보 적용 적정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공눈물에 건보 혜택이 축소돼 가격이 크게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기도 했다. 눈물도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씁쓸하다. 이런 공허함을 해결해주는 일반의약품도 있을까.

[지지대] 인천 공공의대가 꼭 필요한 이유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방역 전선의 최일선에 선 인천의료원. 그 인천의료원이 무너질 위기다. 코로나19가 끝나 지난 5월 감염병 전담병원에서 벗어났지만 이후 인천의료원을 떠난 일반 환자들이 각종 선입견 때문에 찾지 않으면서 환자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인천의료원의 병상가동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3.4%에서 현재 50%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로 인해 1개월에 23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천의료원이 2년3개월여간 코로나19 환자만을 다루다 보니 전문의 이탈이 심각하다. 신장내과를 비롯해 유방외과, 내분비외과 등은 전문의 부족으로 휴진 중이다. 지속적으로 채용 공고를 내고 있지만 인력 충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밖에 정형외과 등 다른 과목에서도 진료과에 의사 1명만 있는 등 전문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인력 부족은 또다시 환자들이 찾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는 것 때문에 전국이 뜨겁다. 하지만 인천은 이마저 반갑지 않다. 지방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인천은 지방이면서도 수도권에 묶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같은 정원 확대 혜택을 못 받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인천에는 인하대와 가천대에 의대가 있다. 정원은 각각 49명, 40명이다. 인천의 인구 1만명당 의대 정원은 0.3명으로 전국 평균(0.59명)보다 낮다. 이 때문에 인천지역에선 국립대인 인천대에 공공의대를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공공의대를 나온 의료인력이 인천의료원 등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일하고, 그 사이 인천의료원 등의 의료진 처우 개선이 이뤄지면 인천의 공공의료가 자리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기준 인천의 치료 가능 사망자는 51.5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적절한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생존했을 사망자다. 이젠 글로벌 도시답게 인천도 탄탄한 공공의료 시스템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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