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심리부검

어느 날 불쑥 누군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2시간46분마다 경기도민 1명이 그렇게 세상을 떴다(경기일보 6일자 1면). 통계청의 최근 분석 결과다. 남겨진 유족은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길게는 강산이 한 번 바뀌는 시간 동안 지속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잔뜩 쌓인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새 살은 돋아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 같다는 희망도 요원하다. 이럴 때 유족의 진술과 고인이 남긴 기록을 살펴 고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친 다양한 요인을 살피고 구체적인 원인을 찾아내면 어떨까. 이른바 심리부검이다. 건강한 애도를 시작할 수도 있다. 사실 국내에선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다. 외신에 따르면 핀란드에선 심리부검을 통해 인구 10만명당 극단선택률을 1990년 30.2명에서 2011년 16.4명으로 45.7% 줄였다. 국내에선 2009년 한국자살예방협회가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유족 면담을 시작으로 2014년 복지부의 중앙심리부검사업단을 거쳐 현재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담당하고 있다. 심리부검은 만 19세 이상 성인으로 경찰 조사에서 극단선택 사망으로 확정된 고인의 만 19세 이상 유족이 대상이다. 배우자나 부모 등 가족 혹은 연인, 친구 등 사망 직전 6개월간 근황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의 신청으로 최대 2명(직계 1명 이상 포함)에게 이뤄진다. 1회 면담이 진행되고 유족의 심리 상태와 치유 목적을 위해 사별한 지 3개월 이상~3년 이내인 때 면담을 권장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선 심리부검이 극단선택 사망자의 1.3%에 그치고 있다.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는 건 개인의 문제도, 유족의 잘못도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우리 모두 함께 해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족이 심리부검에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 지원체계도 더 마련해야 한다. 사회가 건강한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다.

[지지대] 신생아 특공

집 장만하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정부에선 국가유공자, 장애인, 신혼부부, 다자녀 가구, 노부모 부양자 등 정책적 배려가 필요한 사회계층의 주택 마련을 위해 ‘주택청약 특별공급’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일반공급과의 청약 경쟁 없이 별도로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다자녀 가구의 경우 3명 이상 자녀를 둔 무주택가구 구성원이어야 특별공급(특공)을 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다자녀 기준이 완화돼 2자녀도 특공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공공뿐 아니라 민간분양도 가능하며, 오는 10월께 시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출생아 수가 사상 처음으로 20만명대로 내려앉아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했다. 인구 감소는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의 출산율 하락 속도는 너무 빠르다. 2021년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81명이었다. 세계 평균(2.32명)의 3분의 1, 유럽(1.48명)과 북미(1.64명)의 절반 수준이다. 지금 추세라면 올해 연간 출산율이 0.6명대로 하락할 수 있다. 정부가 2006년부터 16년간 280조원을 저출생 대책에 쏟아부었지만 달라진 게 없다. 정부가 이번엔 ‘신생아 특공’ 카드를 꺼냈다. 내년 3월부터 신생아 출산 가구를 위한 주택 특별공급과 우선공급이 도입된다. 결혼가구는 물론 비혼가구도 대상에 포함된다. 신혼 부부 중심의 주거 지원을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낳은 가구를 중심으로 새로 짰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신생아 특공은 처음으로 ‘출산’에 초점이 맞춰진 주거 지원 방식이다. 출산 가구가 주택을 구입할 때 초저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신생아 특례 대출’도 내년 1월 선보인다. 유럽 국가들의 비혼 출산 비중이 30~50%인 반면 우리나라는 2% 수준이다. 신생아 특공은 세계 최저 출생률을 기록한 다급한 상황에서 이뤄진 방향 전환이다. 인구절벽의 대안으로 저출산을 바꿔 보려는 고육책이지만, 결혼하지 않은 남녀가 아이를 낳는 비혼 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지지대] 맨발 걷기 열풍

어싱(Earthing)은 지구에 우리 몸을 연결하는 것이다. 맨발 걷기가 어싱의 대표적인 활동이다. 맨발로 땅을 밟으며 원래 인간 본연의 상태로 돌아가면 지구 표면에 존재하는 에너지가 몸속으로 전달돼 건강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우리의 발은 한쪽에만 26개의 뼈, 33개의 관절, 100개가 넘는 인대와 근육, 신경이 균형을 이뤄 ‘제2의 심장’이라고 한다. 맨발로 걸어 발의 지압점과 감각신경을 적당히 자극하면 장기 주변의 혈류량이 증가하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부족한 장기 기능이 개선될 수 있다고 한다. 암·당뇨·고혈압 같은 각종 질환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다이어트나 우울증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최근 맨발 걷기 열풍이 거세다. 너도 나도 신발을 벗어던지고 맨발로 흙을 밟고 있다. 맨발로 자연을 느끼며 운동하는 어싱족(族)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맨발걷기가 나를 살렸다’, ‘맨발걷기의 첫걸음’, ‘맨발걷기의 기적’ 등의 책도 인기다. 온라인에는 ‘병원이 포기한 말기암 환자가 맨발로 걷고 나서 완치됐다’는 등의 글이 넘친다. 맨발 걷기 열풍에 지난달 ‘오감만足 2023 문경새재 맨발페스티벌’에는 3천명이 모였다. 각 지자체에선 앞다퉈 도심 공원이나 산책로에 황톳길 등 맨발 걷기 길 조성에 나서고 있다. 용인시는 마북동 법화산에 맨발 걷기 산책로를 만들어 최근 개방했다. 하남시도 풍산근린3호공원에 황토 산책길, 미사 강변 둑길에 모래 맨발 길을 만들었다. 구리시는 한강시민공원 내 백합나무길 180m 구간에 황토와 고운 모래를 채웠다. 성남시, 광명시, 안산시 등도 맨발 산책로에 적극적이다. 시·군의회에선 맨발 걷기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화성시의회가 처음으로 맨발 걷기 활성화 조례를 통과시킨 데 이어 용인·파주·수원시의회 등도 제정했거나 추진 중이다. 경기도의회도 조례안 제정 절차를 밟고 있다. 맨발 걷기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지만, 만병통치라고 맹신하면 안 된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체크하고, 체력 수준에 맞는 안전한 장소와 적당한 걷기 시간을 정해야 한다.

[지지대] “제국익문사를 아십니까”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를 담았다. 이 작품에는 설희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한다. 극중 배역은 대한제국 비밀정보기관 요원으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임무다.  이 부분은 픽션이지만 중요한 팩트를 엿볼 수 있다. 그가 소속된 비밀정보기관의 명칭은 제국익문사(帝國益聞社)다. 고종이 설립했다. 근대 국가로 우뚝 서기 위한 의지가 오롯이 담겼다. 10여년 뒤인 1920년 대한민국 상하이 임시정부의 지방선전부(地方宣傳部)로 이어진다. 정부 고관과 서울 주재 외국 공관원 동정, 국사범과 외국인 간첩행위 탐지 등이 주요 미션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매일 사보를 발간해 백성들이 보도록 하고 국가의 중요한 서적도 인쇄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다. 요원은 61명이었고 수장은 독리(督理)라고 불렀다.  요원들은 고종에게 정보를 보고할 때 화학비사법(化學秘寫法)을 활용했다. 과일즙이나 화학용액 등을 이용해 투명하게 글씨를 쓴 뒤 읽을 때는 열이나 또 다른 화학용액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비밀보고체계 덕분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감시 속에서도 정보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한일병합 직후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운동 비자금 조달 등을 담당했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이후 독립운동과 항일의병투쟁으로 계승됐다.   제국익문사 요원들은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러시아 또는 멀리 유럽으로까지 파견돼 활동했다. 고종은 이를 위해 황실 재정을 활용하는 등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췄다. 실제 황실의 재정수입은 제국익문사 창립 시기 이후 7년여 만에 180배나 증가했다는 기록도 있다. 고종의 국가 운영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뿌리가 제국익문사였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않았을까. 121년 전 창립된 비밀정보기관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지대] 가을 전어를 응원하며

‘전어’의 계절이 돌아왔다. 가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표 수산물, ‘가을 전어’.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아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철 전어의 맛은 일품이다. 가을 전어는 다른 계절의 전어에 비해 지방이 3배가량 많다고 한다. 지방이 많이 함유돼 있으니 유달리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나는 것. 전어는 맛만 좋은 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단백질과 지방, 필수아미노산, 칼슘 및 여러 무기질이 풍부해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데 좋고 타우린이 풍부해 간 건강에도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어뿐만 아니라 가을이 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대하’도 가을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비싼 가격이 유일한 단점인 ‘가을 꽃게’도 올해는 어획량이 많아 지난해보다 저렴하게 맛볼 수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전어와 대하, 꽃게 등 가을 성수기를 맞아 함박웃음이 가득해야 할 수산업계는 최근 긴장감이 가득하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가 소비자들의 수산물 외면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행히 지역 곳곳에서 열리는 수산물 축제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정부도 수산업계 지원에 발 벗고 나선다. 올해 예비비 800억원을 편성해 지원하는데 먼저 400억원을 투입해 설, 추석 등 특별한 기간에만 시행했던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를 연말까지 상시 개최한다. 또 360억원을 들여 38개 온·오프라인 유통업체와 연계한 할인 행사를 매달 개최하며 40억원을 투입해 전통시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로페이 모바일상품권도 확대 발행한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이 실제 수산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원전 오염수에 대한 국민의 불안과 우려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문제야 어찌됐든 일단 우리나라 수산업계가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길 응원해 본다.

[지지대] 심상찮은 근원물가 오름세

농산물이나 석유류값.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물가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들이다. 꼭 그렇진 않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그렇다. 고전 경제학 이론으로 20세기 초반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주창했다. 이와 대비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오르는 물가를 근원물가(根源物價)라고 부른다. 물가의 절대값으로, 상승률도 통상적으로 1% 수준에 머무는 등 완만하다. 주변 환경에 민감하지 않은 물품들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물론 경제학적 분류다. 요즘 근원물가 오름세가 심상찮다. 장기적인 물가의 기저 흐름이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와서다. 소비자물가지수 총지수도 떨어지고 있지만 외식물가 상승세도 누적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근원물가 상승률은 외환·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1%를 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세가 한풀 꺾인 2021년 말부터 전년 동월과 비교해 상승폭을 키우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부터가 그랬다. 전년 동월 대비 3.0%까지 올랐다. 이후 1년 만인 올해 1월에는 5.0%로 정점을 찍었다. 상승폭은 줄고 있지만 속도가 더딘 탓에 지난 3월(4.8%)에는 2년여 만에 소비자물가 총지수(4.2%)를 추월했다. 고공행진의 주된 이유로는 외식물가가 주도하는 높은 서비스 물가다. 문제는 근원물가 상승폭이 최근 조금 줄었지만 서비스 소비가 늘고 있어 앞으로 상승률이 더 낮아질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근원물가 오름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까지 동원해 전방위적 물가 관리에 나서고 있는 것도 높은 근원물가 때문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역대급 세수 펑크 우려 속에 추진 중인 정부의 감세 카드가 자칫 고물가에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정책 기저에 깔려 있다. 추석을 앞두고 당국이 더욱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지지대] 벌레의 습격

‘미국흰불나방’이 창궐해 골칫거리다. 이 곤충의 유충(애벌레)은 몸길이 3~5㎝가량으로 머리와 꼬리는 지네와 비슷하고 몸통은 송충이를 닮았다. 온몸이 털투성이여서 천적인 새들도 먹지 않는다. 미국흰불나방은 연 2회 발생하는데 유충은 5~6월, 8~10월에 출몰한다. 한번에 500~600개씩 알을 낳아 번식력이 엄청나다. 유충은 벚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등 활엽수 200여종에 해를 입힌다. 섭식량이 대단해 줄기만 남기고 잎을 모두 먹어 치우고, 마지막엔 나무를 고사시킨다. 요즘 미국흰불나방 유충이 가로수와 조경수, 농경지 과수목에 피해를 주고 있다. 길거리, 주택가, 공원을 가리지 않고 드글거린다. 찜통 더위 속에 비가 자주 내려 습한 날씨가 유충 번식에 좋은 여건이어서 급격히 늘었다. 벌레가 쏟아져 우산을 쓰는 시민도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산림병해충 발생 예보를 ‘관심’에서 ‘경계’ 단계로 상향했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생태계도 변화해 각종 곤충 집단이 활개를 치고있다. ‘벌레의 습격’에 인간 삶의 질이 떨어지고, 수목과 농작물 피해가 극심하다. 올해 국내에서 처음 확인된 ‘외래종 흰개미’는 마른나무를 닥치는대로 갉아먹어 ‘목조건물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서울과 경기 남부에선 ‘동양하루살이’ 수만 마리가 기승을 부렸다. 날개를 펴면 5㎝나 되고, 병을 옮기진 않지만 사체가 쌓이면 악취가 난다. 최근 2~3년 사이 개체 수가 급증한 ‘미국선녀벌레’와 ‘매미나방’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미국선녀벌레는 인삼이나 과수나무 등의 줄기와 잎에 달라붙어 즙을 빨아먹은 뒤 끈적한 물질을 배출해 해를 입힌다. 매미나방도 애벌레가 수종을 가리지 않고 잎을 갉아먹는다. 일명 ‘러브버그’로 불리는 털파리 떼도 인체에 무해한 익충으로 알려졌지만 날파리 비슷한 생김새로 혐오감을 준다. 벌레들의 습격은 더 잦아질 것이라 한다. 기후변화로 아열대에 서식하는 곤충들이 침입하고 있다. 농민의 생계부터 도심 거주자의 일상을 파괴하고, 질병 확산을 초래하는 위협이다.

[지지대] 청년 백수 126만

일을 안 해서 손(手)이 하얗기(白) 때문에 백수(白手)라고 한단다. 백(白)자가 ‘아무것도 없다’는 뜻도 있는데, 일이 없어 손에 가진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백수는 근로능력이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 졸업을 했지만 미취업 상태인 ‘청년 백수’가 126만명에 이른다는 집계다. 최종 졸업자 10명 중 3, 4명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 아예 구직활동을 단념하고 ‘그냥 쉰다’는 청년도 32만명 정도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인구 841만6천명 가운데 졸업자는 452만1천명이고, 126만1천명이 미취업 상태였다. 이 중 대졸 이상이 67만8천명(53.8%)으로 절반이 넘었다. 첫 취업에 평균 10.4개월이 걸렸고, 2년 이상은 59만1천명(15.3%)이다. 3년 이상 걸린 경우도 32만4천명(8.4%)에 달했다. 오랜 시간과 돈을 들여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위한 공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취업에 성공했다 해도 끝이 아니다. 5월 청년 취업자 400만5천명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취업자가 전체의 26%인 104만3천명에 이른다. 단기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들의 미취업 기간이 길어져 무직 상태가 장기화되는 것은 큰 문제다. 더 우려스러운 건 갈수록 채용문이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크루트가 최근 727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채용계획을 확정한 대기업은 지난해보다 1.6%포인트 줄었고 중견기업과 중소기업도 각각 9.6%포인트, 9.1%포인트 하락했다. 경기 침체와 실적 악화 영향으로 채용을 늘리지 못하는 것이다.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줄면 취업 준비 기간도 늘고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들이 증가하게 된다. 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기업이 고용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젊은층이 경제의 주축으로 설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청년 눈높이에 맞는 양질의 일자리가 최고의 청년 정책이다.

[지지대] 쿨 비즈 논쟁

쿨 비즈(Cool Biz). 시원하다는 형용사 ‘쿨(Cool)’에 비즈니스(Business)의 약식 표현인 ‘비즈(Biz)’가 합쳐졌다. 여름에 가벼운 옷차림과 넥타이 미착용으로 에어컨 사용을 줄이자는 캠페인의 명칭이다. 환경부가 여름철 간편한 옷차림으로 에너지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고 제안했다. 2009년이었다. 같은 해 일부 변호사 등 법조계가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의 반응은 냉정했다. 법정의 권위가 우선이라는 취지였다. 국내에서의 간편 복장 논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에선 법정 내 정장 관행이 엄격하다. 법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는 관념이 강해서다. 넥타이는 물론 짙은 색깔의 양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영국은 판사와 변호사가 법복을 입고 가발까지 착용한다. 일본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 주도로 쿨 비즈가 도입됐다. 변호사들이 노타이 차림으로 변론하는 등 쿨 비즈 복장이 일반화됐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전력난 해소를 위해 이 캠페인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대다수 직장인이 쿨 비즈 도입에 긍정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직장인 88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중 9명꼴로 쿨 비즈 도입에 동의했다. ‘매우 긍정’(44.0%)과 ‘대체로 긍정’(45.3%) 등이 대부분이었다. 쿨 비즈 도입에 긍정적인 이유는 근무환경과 업무편의 개선이 97.6%로 가장 많았다. 더위와 장마로 지친 체력에 도움이 된다(54.8%)거나 평균 냉방 온도를 낮추는 등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32.7%)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여름 끝자락에 나온 간편 복장 얘기지만 울림은 제법 묵직하다. 말로만 외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찾아보자. 그게 진정한 실용주의다.

[지지대] 명동 가는 유커, 인천에 머물렀으면

인천에 또다시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몰려온다고 한다. 인천관광공사가 중국 유더(優德)그룹의 포상관광을 유치, 오는 2026년까지 임직원 4만여명이 인천을 찾을 전망이다. 당장 다음 달 중 유더그룹의 임원진 시찰단이 두 차례 인천을 찾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 상반기 1만명이 항공기와 카페리 등을 통해 6박7일 일정으로 인천을 방문한다. 이는 지난 2017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로 중국의 한한령(한류 제한령)이 본격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유커 유치다. 인천의 많은 유커 방문은 인천시민으로서 매우 기쁜 일이다. 이들이 인천에서 먹고 자고 하는 만큼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을 마냥 좋아할 순 없다. 이들 유커가 인천에 머물며 쓰는 돈보다 서울로 이동해 쓰는 돈이 훨씬 많은 탓이다. 인천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서울행은 오랫동안 이어진 일이다. 인천에 왔지만 정작 버스에 나눠 타고 서울 명동에 있는 시내면세점은 물론 각종 가게를 오가며 쇼핑하고, 다시 인천에 와서 잠만 자는 모습. 솔직히 배가 아프다. 마냥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인천도 준비를 해야 한다. 주요한 관광지를 개발해 외국인 관광객들이 인천에서 즐긴 뒤 돈을 쓸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시내면세점 등 쇼핑센터는 물론 인천의 특징을 가진 각종 먹거리가 가득한 상권 개발 등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인천의 상권은 뿔뿔이 흩어져 있고, 사실 별다른 특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하루이틀 사이에 이뤄질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갈 만한 상권을 개발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이 없다면 인천은 언제까지나 서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해 서울만 배를 불릴 것이 아니라 인천이 배가 부를 그날이 왔으면 한다.

[지지대] 가을장마

대륙으로 올라간 장마전선이 시베리아 고기압과 부딪친다. 이후 방향을 돌려 한반도로 내려온다. 이때 비를 동반한다. 꼭 이맘때다. 어김없다. 가을장마라고 불리는 기온 현상이다. 북녘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와 남녘의 더운 공기의 랑데부가 만들어 낸 기운은 유별나다. 하루이틀 비를 뿌린다. 강우량이나 강우일수 등은 초여름 장마전선이 북상할 때보다는 물론 적고 불규칙하다. 하지만 결실기에 접어든 농작물에는 좋지 않은 비다. 9월로 접어들면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은 꼬리를 내린다. 그러면서 찬 기운의 고기압이 확산된다. 이후 다시 북상한다. 속도도 제법 빨라진다. 가끔 일본열도를 스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동해 물결은 더욱 거칠어진다. 이 시대 동북아시아의 심술궂은 기상 삼국지다. ‘고려사’에는 1026년(현종 17년) 가을장마로 민가 80여호가 떠내려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녀석은 수확철을 앞둔 들녘에는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과일의 당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찰진 맛을 내려는 벼 낱알의 숨통도 조인다. 하늘만 올려다봐야 하는 농민들에겐 야속하기 짝이 없는 불청객이다. 기상당국이 가을장마의 방문을 알렸다. 제11호 태풍 ‘하이쿠이’에 실려서다. 이 태풍의 명칭은 중국이 태풍위원회에 제출한 이름으로 말미잘을 뜻한다. 28일 괌 북북서쪽 570㎞ 해상에서 발생했다. 중심 기압은 998hPa(헥토파스칼), 최대 풍속은 초속 18m(시속 65㎞) 등이다. 시속 14㎞로 서북서진 중으로 9월2일 오전 9시께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150㎞ 해상까지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뒤끝이 깊다. 봇짐을 다 챙기고도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않을 심상이다. 그래도 떠날 때는 가까워졌다. 그게 자연의 섭리다. 피해가 없도록 슬기롭게 대처하자.

[지지대] 홍범도 흉상 철거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이다.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나 포수 생활을 하다 구한말 의병에 참여했다. 호랑이가 아닌 왜놈을 잡겠다며 동료 포수들과 함께 의병대를 구성했다. 홍 장군은 1920년 간도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월강추격대와 독립투쟁 최초의 전면전을 벌여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거뒀다. 그는 1937년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해 말년엔 극장 수위 등으로 일하다 1943년 순국했다. 홍범도 장군은 보수·진보 정권을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가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최고 지도자로 꼽으며 추앙해온 독립전쟁 영웅이다. 박정희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90년 한국-소련이 수교했을 때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홍 장군 유해의 국내 봉환을 시도했으나 북한이 평양 안치를 주장해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2021년 8월15일 카자흐스탄 정부로부터 홍 장군 유해를 봉환받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했다.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도 수여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에는 1천800t급 해군 잠수함 이름을 ‘홍범도함’으로 정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은 현재 서울의 국방부 청사, 전쟁기념관, 육군사관학교 등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국방부가 난데없이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전력 등을 이유로 육사와 국방부의 흉상을 철거·이전한다고 밝혔다. 홍 장군이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지만, 당시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공산주의·사회주의를 받아들인 독립운동가가 상당수 있었다. 광복과 분단 이전인 1943년 숨진 홍 장군을 두고 국방부가 ‘공산주의 전력’ 운운하는 건 황당하다. 여권에서까지 비판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럴 거면 박정희 대통령이 홍범도 장군에게 추서한 건국훈장을 폐지하라”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항일 독립전쟁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씌워 퇴출시키려는 것은 너무 오버하는 것”이라 했다. 독립운동마저 이념 갈등 소재로 끌어들이는 반역사적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지지대] 의무경찰 부활

‘나 태어나 이 강산에 의경이 되어/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24개월/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데모막다 돌 맞아서 병가가면 그만이지/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방석복에 실려간 ×같은 군대 생활’ 의무경찰이 훈련 때 부르던 ‘짜박가(歌)’다. ‘늙은 군인의 노래’를 개사한 사제군가다. 짜박은 경찰을 얕잡아 부르는 ‘짜바리’와 일이 크게 복잡해지거나 잘못됐다는 속어인 ‘박터진다’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가사는 지역이나 부대마다 조금씩 다르다. 방석복(防石服) 대신 기동복이라고도 했고, 복무기간이 줄면서 24개월을 1년 반이라 했다. 의무경찰은 경찰청에 소속된 준군사조직이다. 1982년 전투경찰대 설치법 개정으로 기존 전투경찰이 작전전경과 의무경찰로 분리되며 탄생했다. 2013년 전경이 폐지되면서 수행하던 임무는 의경에게 넘어왔다. 의경은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후 방범순찰이나 집회관리 등 임무에 따라 경찰병력으로 복무했다. 이들은 ‘전환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했다. 의경은 도입 당시만 해도 규모가 막대했다. 가장 많았던 때 3만5천명에 달했다. 전경 1만5천명까지 합하면 경찰조직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수립된 전·의경 감축과 경찰관기동대 창설에 따라 꾸준히 감소, 마지막 기수가 전역한 올해 5월 완전 폐지됐다. 의무경찰제가 다시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무차별 흉기 난동 등으로 불안한 치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의경 재도입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까지 약 8천명을 순차적으로 채용 계획이라고 한다. 위헌·인권침해 논란과 병력 감소 등 문제가 많아 폐지한 제도를 몇개월 만에 되살리겠다는 것은 졸속이고 실효성도 의문이다. 직업 경찰로 훈련받지 않은 의경이 흉기 난동 등 강력범죄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렵다. 특히 출산율 저하로 병력이 급감하고 있다. 지난해 국군 정원은 50만명이었으나 연말 48만명에 그쳤다. 의무경찰제 재도입은 방위력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치안불안 해법을 의경 부활에서 찾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지지대] 인도 무인우주선의 달 착륙

인구가 14억2천862만여명으로 중국을 제쳤다. 핵무기 보유국이다. 빈곤과 문맹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지구촌에서 상비군이 세 번째로 많다.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면 이건 어떨까. 다양한 언어를 사용한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사는 다문화사회다. 종교와 사상, 영화, 요리 등의 문화가 발전해 있다. 4대 문명 발상지다. 현대 고등 수학의 원조국이다. 노란색 카레라이스를 자주 먹는다. 인도를 가리키는 키워드는 이 밖에도 수두룩하다. 땅 덩어리는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넓다. 이 나라를 찾아 망망대해를 항해하다 신대륙이 발견됐다. 그래서 카리브해 연안 섬들을 서인도제도라고 부른다. 북미 대륙 원주민들을 이 나라 사람들로 착각해 인디언이라고 불렀다. 영어로는 이 나라를 인디아라고 부른다. 그런 나라가 일을 냈다. 무인 달 탐사선이 23일 오후 6시4분께(현지시간) 달의 남극 착륙에 성공해서다. ‘찬드라얀 3호’다. 달 착륙으로는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에 이어 네 번째다. 달의 남극으로는 세계 최초다. 찬드라얀은 산스크리트어로 ‘달의 차량’이라는 뜻이다. 달의 남극은 다량의 물이 얼음 상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커 인류의 심(深)우주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주목받고 있다. 물이 있다면 식수와 산소는 물론 로켓 연료로 쓸 수 있는 수소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다. 화성과 태양계 외행성 유인 탐사 난도가 크게 낮아질 수 있다. 찬드라얀 3호는 얼음과 여타 요소들이 있는지에 대한 확인을 위해 달 남극 표면을 화학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 나라에 대해 어느 정도로 알고 있었을까. 막연하게 쌀밥에 얹어 먹는 카레의 나라로만 알고 있는 건 아닐까. 강대국의 기준은 아직도 명쾌하다. 인구와 핵무기 등이 그것이다. 강대국에 또 한 나라가 추가됐다. 이제부터 이 나라도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한다.

[지지대] 말발과 검찰수사

“투표 거부로 이재명 대표를 지키고 민주당을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투표 시작하면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빠져나오면 되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지난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친명계 원외모임 ‘더민주전국혁신회의’에 참석해 ‘투표 보이콧’ 카드를 내놨다. 정기국회 중에 검찰의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와 불가피한 표결을 전제로 며칠간 열심히 생각해 봤다며 내놓은 비책이 겨우 투표 거부권 행사다. 참석자들은 환호하며 열렬한 지지와 응원을 보냈다. 그가 바라던 그림 아니었을까.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의 발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가히 메가톤급 충격이다. 민 의원은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강행 처리를 위한 ‘꼼수 탈당’ 논란의 주인공이다. 결국 1년 만에 복당, 당 안팎에서 비판 여론도 맞았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놓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그리고 당내 비명·친명 간에 온도차가 뚜렷하다. 플랜A·B를 고려한 여러 경우의 수를 내놓으며 셈법에 분주하다. 지난 2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결과 여파 탓이다. 당시 표결은 찬성 139, 반대 138. 간신히 부결됐다. 결과는 예상됐지만 사실상 판정패였다. 그때의 불안감에 당내 이탈표를 사전에 막겠다고 우기는 것 아닐까. 민 의원의 발언이 강성 지지자에게 자신을 각인하려는 영웅심리이길 바란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17일 검찰 출석에 앞서 강변한다. “그깟 소환조사 열 번 아니라 백 번이라도 당당하게 받겠습니다.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제 발로 출석해 심사받겠습니다”. 한 기자가 이재명 대표에게 “9월에 영장 청구되면 체포동의안 가결을 요청하실 계획 없으세요”라고 묻자 “여당과 검찰이 정치공작을 하고 있다. 국가권력을 악용해 정치에 국가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피의자가 검찰 출석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이다. 다수당 대표이니 가능하다. 체포동의안 포기하겠다던 이 대표는 뭐가 그리 복잡한지, 회기든 비회기든 진실 앞에 당당하면 문제될 게 있나. 용단을 가장한 꼼수라면 구차하다. 말발로 검찰 수사를 비켜갈 수 없다.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지지대] 붉은귀거북 유감

키우기가 귀찮아서 그런다? 때로는 방생이라는 종교적인 허울을 앞세워 뭉개기도 한다. 반려동물 유기에 대한 궁색한 핑계들이다. 개나 고양이는 거둬 주는 기관이나 시설 등이라도 있다. 문제는 외국에서 애완용으로 들여온 동물들이다. 생명력도 강한 데다, 천적마저 없어 토종 생태계를 파괴한다. 붉은귀거북이 대표적이다. 몸의 길이는 15~30㎝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크다. 수명은 20~30년 이지만 몇몇 개체는 40년 이상 산다. 최대 1.5m까지 성장한다. 먹이는 식물이나 작은 벌레 등이다. 눈 뒷부분에 빨간색 줄이 선명해 붙여진 명칭이 낯설다. 남생이 등 토종 거북들을 밀어내고 생태계를 엉망으로 만든다. 환경당국이 2001년 12월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급기야 2020년 3월 생태계 교란 생물로도 지정됐다. 이 녀석이 처음 이 땅을 밟은 건 1970년 후반이었다. 1990년대는 일부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버리거나 종교단체가 방생하면서다. 도심 공원이나 개울, 하천 등지로 서식지도 확대됐다. 수생 식물, 작은 물고기, 개구리 등 토종 생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었다. 붉은귀거북이 도심 속 생태계까지 위협(경기일보 21일자 6면)하고 있다. 안산 화랑유원지와 호수공원 등지의 저수지에서 둥지 수십곳이 발견됐다. 둥지에선 적게는 10여개, 많게는 30여개의 알도 발견됐다. 수원특례시도 지난 2020년부터 매년 5~10월 만석공원 저수지에서 포획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20년 40마리, 2021년 63마리, 지난해 60마리 등을 포획했다. 올해는 지난 5월부터 잡은 개체수가 벌써 50마리다. 고양특례시도 지난달 호수공원 일원에서 10마리를 잡았다. 토종 생태계가 보존돼야 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그렇지 않고선 우리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어서다. 그 울림은 묵직하고, 거룩하다.

[지지대] 2명도 다둥이

지난 4일 의왕시에 거주하는 부부가 9번째 자녀를 얻었다. 산모 강모씨(44)는 3.15㎏의 건강한 남아 축복이(태명)를 출산했다. 2남 6녀를 둔 강씨 부부는 이제 딸딸딸딸딸아들딸아들아들 순서로 3남 6녀를 두게 됐다. 이들 부부는 자녀 셋을 낳아 기르자는 가족계획을 세웠다. 2006년 첫 딸을 출산, 3년 터울로 둘째 딸을 낳았다. 세 번째 출산에선 세쌍둥이 딸이 태어났다. 이후에도 아들 2명과 딸 1명을 더 낳아 다둥이 가족이 됐다. 이번에 막둥이 아들까지 낳아 자녀 9명의 대가족을 이뤘다.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빅 뉴스다. 아이 1명만 낳아도 애국자 소리를 듣는 시대다. 9명을 둔 부부는 아이 키우기가 힘들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면 이쁘고, 기쁨도 주겠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다자녀 혜택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제 자녀 2명도 다둥이가 된다. 아이 하나라도 더 낳게 하려는 절박함에서다. 관계 부처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국토교통부는 공공분양주택 다자녀 특별공급(특공) 기준을 올해 말까지 2자녀로 바꾸고, 민영주택의 특공 기준 완화도 검토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는 3자녀 가구에만 제공하던 자동차 취득세 면제·감면 혜택을 2자녀 가구에 제공할 수 있게 지방세특례제한법을 정비할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 문화시설의 다자녀 할인 혜택 기준을 2자녀로 통일한다. 교육부는 초등돌봄교실 지원 대상에 다자녀 가구를 포함한다. 지자체들도 다자녀 혜택 확대에 힘을 보탠다. 셋째 자녀부터 지원하던 초·중·고 교육비를 2자녀 가구, 혹은 첫째 자녀부터 지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경기도내 31개 시·군에서 관련 조례 개정으로 다자녀 기준을 2자녀로 변경한 지자체는 현재 17곳이다. 다른 지자체도 변경 예정이다. 다만 다자녀 기준 완화가 재정 지출과 맞물려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에선 고민이 크다. 다둥이 기준 완화는 고육지책이지만 유의미한 정책이다. 실제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게 정책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지지대] 이걸요? 제가요? 왜요?

부모님 소원대로 9급 공무원이 돼 그럭저럭 살고 있는 평범한 MZ세대 직장인. 출근, 퇴근, 출근, 퇴근,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일상 속에서 일상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 2030 MZ세대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딱 1인분만 할게요’의 작가 이서기씨 얘기다. 이 책의 주인공 이름도 이서기다. 9급 공무원으로 18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이 돈으로는 스벅 커피를 매일 사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자주 맛집을 다니는 건 꿈도 못 꾼다. ‘딱 1인분만 할게요’는 답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고, 뭘해도 잘 안돼 답답한 MZ세대의 생생한 현실을 보여준다. MZ세대가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원하는지 속마음을 알 수 있다. 한때 공무원은 인기 직종이었다. 일을 못하고, 안해도 잘리지 않고 정년이 보장돼 ‘철밥통’이라 했다. 공무원들은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헌법 제7조 1항에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명문화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무원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봉사와 희생, 사명감, 책임 등이다. 하지만 MZ세대가 대세인 요즘 공무원 사회는 달라졌다. 그야말로 1인분만 하려 한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같은 ‘3요’ 태도를 보이는 젊은이도 많다. 부서간 협업이 필요한 일에도 나서지 않아 기성세대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 한 설문조사 결과, MZ세대 5~9급 공무원 120명 가운데 83.3%는 ‘민간기업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편익을 지향하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희생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도 43%에 달했다. MZ 공무원들의 이같은 인식은 공직사회 근간과 기강이 흔들린다는 신호다. 세계 잼버리대회 파행과 호우 대처 실패 등으로 공무원들의 무능과 무책임이 도마에 올랐다. 국가위기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책임과 의무를 망각한 것은 심각하다. 무조건 희생을 강요해도 안되지만, 공직 소명의식이 붕괴되면 안된다. MZ세대가 사명감을 갖게 하려면 처우 개선과 함께 공직사회 개혁이 필요하다.

[지지대] 이끼의 경고

작고 부드럽다. 짧게는 1㎝, 길게는 10㎝에 이른다. 축축하고 그늘진 곳에 엉켜 집단으로 자란다. 꽃이나 씨앗은 물론 없다. 서양 격언에도 곧잘 인용된다. 구르는 돌에는 이 식물이 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고개를 주억거릴 독자들이 있겠다. 이끼의 이력서다. 지구에 1만2천여종이 서식 중이다. 우주 공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도 강하다. 혹독한 환경에 적응하며 4억년을 생존해 왔다. 이런 가운데 이끼가 지구 온난화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랄프 레스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교수팀이 티베트 고원 등에 사는 이끼인 타카키아의 DNA를 분석한 결과다. 외신은 유전적으로 매우 빠른 진화 특성을 갖췄지만 현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을 만큼 빠르게 진화하지는 못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티베트 고원 얼음 절벽에서 3억9천만년이나 살아왔다. 연구팀은 티베트 고원의 타카키아 서식지를 10년 동안 18차례 방문해 샘플을 수집하고 서식지를 조사했다. DNA 염기서열도 분석했고 기후변화가 타카키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해 살아남았지만 현재의 온난화를 고려하면 앞으로 100년 이상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티베트 고원의 개체수는 매년 1.6%씩 감소했다. 서식지도 빠르게 줄어 금세기 말에는 서식지가 세계적으로 1천~1천500㎢밖에 남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인류는 늘 진화의 정점에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 공룡도 왔다가 멸종된 것처럼 인류도 사라질 수 있다. 이끼는 4억년 이상을 공룡의 등장과 멸종, 인류의 등장 등을 지켜봤다. 우리가 이들로부터 회복력과 멸종 등에 대해 뭔가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이끼가 인류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다.

[지지대] 주장의 품격

지난 12일(현지시간), 한국 축구의 레전드 길을 걷고 있는 손흥민 선수가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명문 팀 토트넘 홋스퍼의 새로운 주장으로 선임됐다. 런던을 연고로 하고 있는 토트넘이 141년 만에 맞이한 비(非)유럽인 주장이다. 그리고 다음 날 토트넘의 2023-2024 리그 개막전이 벌어진 영국 런던 브렌트퍼드 커뮤니티 스타디움에서 손흥민 선수는 ‘캡틴(captain)’이라고 선명하게 쓰여진 완장을 차고 브렌트퍼드와의 경기에 임했다. 주장 손흥민은 경기 시작 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결의를 다졌다. 그리고 팀의 승리를 위해 공격 선봉에 나섰다. 캡틴은 선수들과 코치진의 가교이면서 팀의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다. 그래서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모범이 되는 고참 선수가 주로 맡는 게 전통이다. 이미 주장 완장을 차기 전의 손흥민 선수는 자신보다는 팀을 위해 헌신하고, 팀원들과 각각의 세리머니를 하는 등 소통의 구심점 역할을 한 지 오래다. 그래서 새로운 선수가 영입되면 가장 먼저 친해지는 선수로 유명했다. 그리고 포체티노 전 감독부터 최근에 부임한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까지 모든 감독들이 사랑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해리 케인이 떠난 뒤 토트넘의 주장 자리는 어쩌면 손흥민 선수가 ‘찜’했는지도 모르겠다. 브렌트퍼드와의 개막전은 아쉽게 비기긴 했지만 레스터시티에서 영입된 토트넘의 새로운 미드필더 제임스 메디슨은 경기가 끝난 뒤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경기가 끝난 뒤 원정 온 홈팬들 앞까지 가서 인사를 하자고 주장 손흥민이 제안했다는 것. ‘팬이 있어야 팀이 있다’는 프로 세계의 아주 당연한 이치를 주장 손흥민이 새삼 깨우쳐 준 것이다. 이것이 손흥민 선수가 축구 선수로서 존경 받는 이유가 아닐까. 당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각 주장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고,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품격을 잃은 주장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 그 당연한 이치를 되새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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