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럽급여’라고?

경기불황 등으로 취업난이 심각하다. 직장에 다니던 사람도 조기퇴직을 강요 받거나, 직장을 잃어 실업 상태에 놓이게 된다. 월급 생활자들은 대부분 한 달 벌어 한 달 생활을 이어간다. 실직으로 월급이 끊기면 당장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실업급여는 아주 유용하다. 실업급여는 실직 근로자의 생계 안정을 지원해 재취업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다. 실업급여는 생계 안정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 최근 정부와 여당이 실업급여 하한액을 낮추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논의해 논란이 거세다. 현재 30일 기준 하한액은 184만7천40원, 상한액은 198만원이다. 최저임금 노동자 세후 월 근로소득 179만9천800원보다 많아 재취업 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지난 12일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일해서 버는 돈보다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긴다”며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란 뜻으로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한 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실업급여 신청하러 오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방문한다”며 “청년층이나 여성들은 실업급여로 해외여행을 가고 명품 선글라스를 사며 즐기고 있다”고 했다. 실업급여를 받아본 노동자들은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사람은 울상이어야 하느냐”며 반발했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국민연금 본인부담금의 25%, 건강보험 본인부담금의 50%를 낸다. 월급에서 쪼개서 고용보험료를 내는데, 왜 공짜로 주는 듯 말하냐며 불만이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명품을 사는 청년·여성 실업자를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통해 실업급여를 축내는 집단으로 호도하는 것도 문제 삼았다. 전문가들은 현 실업급여가 부족한 점을 오히려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업급여 지급 사유가 맞는데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 근로자를 내보내면서 회사가 자발적 사직으로 허위신고하는 사례들이다. 실직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실업급여를 ‘시럽급여’라고 하는 건, 언어폭력이다. 실업급여의 무조건 칼질은 옳지 않다. 실직자들의 알량한 실업급여가 얼마나 달콤하다고, 조롱하고 막말을 하는가.

[지지대] 고래의 오염수 헌법소원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 해양 방류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종합 보고서에서 오염수 방류 계획이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평가한 점을 바탕으로 원전 주변 어민과 주변국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을 벌이고 있다. IAEA의 제한적 조사로 사고 원전에서 배출되는 위험한 핵종들이 제대로 정화될지, 방사성 물질이 먹이사슬을 통해 축적돼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후쿠시마 대응과 관련해 대통령과 정부가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부작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겠다”고 밝혔다. 헌법소원 청구인단에 ‘고래’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로 인류 외에 수많은 생물이 피해를 볼 수 있어 생태계 대표로 넣는 것이다. 국민뿐 아니라 동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호하는 조치를 요구하겠다는 취지다. 우리 바다에서 자주 발견되는 고래는 밍크고래, 참돌고래, 상괭이, 낫돌고래, 남방큰돌고래 등 5종이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우영우가 ‘울산 앞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일본 서해안에서 잠을 잔다’고 언급한 종은 밍크고래로 추정된다. 이 고래들은 앞으로 오염수 바다에서 살아야 한다. ‘세슘 우럭’에서 보듯 해양 생태계 피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동물들이 받을 고통과 피해를 대표하기 위해 고래를 원고인단에 포함한 것은 타당성이 충분하다. 동물이 주체가 된 소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천성산 터널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때 도롱뇽이 소송 당사자였다. 2007년에는 폐갱도와 습지에 사는 황금박쥐, 수달, 고니 등 동물 7종이 ‘도로공사 결정 처분 무효’ 행정소송에 나섰다. 2018년에는 설악산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막으려는 소송이 제기됐다. 하지만 법원은 동물의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 동물과 환경의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원전 오염수 방류가 수많은 바다 생물에도 피해를 끼칠 게 분명하다. 고래도 권리 침해의 당사자다.

[지지대] 민선 지방체육회장, 공인 자질∙능력 갖춰야

6월 말 용인특례시체육회 직원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선 2기 체육회장의 폭언과 갑질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모욕 등의 이유로 경찰에 고소장도 제출했다. 시 종목단체협의회도 나서 회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일파만파 커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체육회는 협력관을 파견해 진상 조사에 나섰다. 전문성을 살린 체육자치 실현을 위해 지난 2020년 도입된 민선체육회 출범 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민선 1기는 코로나19 확산과 시행착오 등으로 불협화음을 겪었다. 올해 새롭게 출범한 민선 2기는 선행학습 경험으로 한층 더 조화롭고 안정적인 발전을 이루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민선 회장의 자질론 문제이자 제도의 문제다. 민선 체육회장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국민 혈세로 지원된 예산을 집행하고 직원에 대한 인사 권한을 갖는다. 막강한 권한과 책임이 주어지는 공인임에도 선출 과정과 제도적 장치는 허접하다. 선거 시 후보자에 대한 전과 공개가 명문화되지 않았다.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토론회도 후보자 전원 동의 경우에만 가능토록 해 유명무실하다. 당선 후가 더 문제다. 일부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사람들을 특별 채용하려 하거나 사업 시행에 있어 특별 배려 등을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해 통제 또는 견제할 장치가 없다. 이번처럼 사태가 심각해도 징계할 방법이 없는 것도 제도의 맹점이다. 비단 용인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몇 체육회장의 전과 경력과 자질, 품행이 오르내린다. 권력 남용으로 사유화 우려도 있다. 민선 체육회 도입 취지에 걸맞은 체육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상급 단체인 대한체육회와 시·도체육회가 나서야 한다. 변화와 혁신을 외면한다면 민선 체육회는 성공할 수 없다. 체육계 일각에서 관선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지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 빈곤이 갈수록 심각하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비롯된 사회 문제다.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비율은 지난해 17.5%였다. 그런데 2070년이면 46.4%로 높아질 전망이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1991년 72세에서 30년 만인 2021년 86세로 늘었다. 하지만 빈곤을 호소하는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노인 빈곤율은 40.4%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공적·사적 연금제도 미성숙과 퇴직금 중간 정산, 기대수명의 빠른 증가, 저축 부족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른바 ‘시니어 보릿고개’를 경험하는 노인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노후 준비 부족은 고령층의 높은 고용률로 이어진다. 그래서 65세 이상의 고용률은 2021년 기준으로 34.9%다. 역시 OECD 국가 중 1위다. 먹고살기 위해 늙어서도 일하는 노인이 많다는 의미다. 경제적 안정을 이룬 뒤 자발적으로 더 빠른 시기에 은퇴해 더 많은 여가생활을 보내는 주요 선진국의 고령자와 차별화된다. 국내 고령자 상당수는 생애 후반부 대부분을 가난한 저임금 근로자로 보내고 있다. 연금 소득대체율도 47%로 OECD 권고치 대비 20%포인트 이상 낮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68세 근로자들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80만원으로 58세(311만원)보다 42%나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고령층이 일자리 정보를 한층 더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고령자가 오랜 기간 근무 과정에서 습득한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소득의 급격한 하락도 막을 수 있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그곳에서 등을 밝혀 주고 계셨다.” 살기 쉬운 나라는 존재하지 않음을 다룬 할리우드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마지막 대사가 오버랩된다.

[지지대] 여름은 새가 길을 잃는 계절

제주 서귀포시 하례동의 한 허름한 돌담 밑에서 낯선 새 한 마리가 외롭게 비바람을 피하고 있었다. 지난 2006년 7월10일이었다. 당시 한반도 남녘으로는 태풍 ‘에위니아’가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아이라인이 요염했다. 흰 눈썹도 예사롭지 않았다. 국내에선 딱 두 차례밖에 관찰되지 않은 에위니아제비갈매기의 첫인상이었다. 주로 해안 절벽이나 조수 웅덩이 등지에 둥지를 틀고 서식한다. 이후 제주도 남쪽 해안에서 또다시 발견됐다. 2014년 7월19일이었다. 당시에도 태풍급 강풍이 들이닥쳤다. 녀석의 이름 앞에 태풍의 명칭인 ‘에위니아’가 붙여진 연유였다. 에위니아는 미크로네시아 언어로 전설 속 폭풍의 신을 뜻한다. 한국야생조류협회에 따르면 현재까지 국내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길을 잃고 한국을 찾은 새는 에위니아제비갈매기 외에도 흰제비갈매기와 큰군함조 등이 있다. 흰제비갈매기는 2014년 8월4일 태풍 ‘나크리’가 한반도를 통과한 뒤 충북 영동에서 탈진한 상태로 발견됐다. 새하얀 몸과 파란색 부리 기부가 특징이고 둥지를 만들지 않고 적당히 오목한 곳에 알을 낳는다. 큰군함조는 2004년 8월19일 태풍 ‘메기’의 영향으로 길을 잃고 제주 외도동까지 날아온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2007년 8월22일 가파도, 2012년 8월30일 제주도 등지에서 추가로 관찰됐다. 여름은 겨울만큼 혹독한 계절이다. 따갑게 쏟아지는 햇볕이 그렇고, 불쑥 들이닥치는 폭우도 그렇다. 새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이맘때 찾아오는 태풍은 그래서 새들에게는 저승사자다. 가던 길까지 멈추게 하고 길까지 잃게 만들어서다. 태풍 탓에 희귀 조류는 길을 잃고 한반도에 잠시 머무른다. 그런데, 이처럼 국내에선 태풍이 닥치지 않고선 좀처럼 이방에서 날아온 새들을 만날 수 없다. 그게 동북아에 위치한 한반도의 숙명이다. 자연재해가 주는 반전의 선물인가.

[지지대] AI로봇 기자회견

로봇이 인류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 곳곳을 점령, 언젠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 아니냐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가져올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데, 영화 속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세계 최초로 AI로봇들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주최로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선(善)을 위한 인공지능’ 포럼에 참석했다. 포럼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총집합해 “로봇들은 삶을 개선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은 외형상 사람과 흡사하면서 내부 네트워크까지 인간 신경계 모델을 기반으로 했다. 기자회견엔 화가, 간호사, 가수 등의 직업을 가진 휴머노이드 로봇과 인간과 피부, 이목구비, 표정까지 닮아 ‘인조인간’이라고도 불리는 제미노이드 등 9대의 로봇이 나와 ‘인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의료용 로봇 그레이스는 “인간을 보조하고 돕는 역할이지, 인간의 현재 일자리를 빼앗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 기능이 탑재된 최첨단 로봇 아메카는 “너를 만든 개발자인 윌 잭슨에게 반항할 생각도 있냐”는 질문에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초상화 그리는 로봇 아이다는 A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유발 하라리의 말을 언급하며 “의견에 동의한다”고 했다. 반면 가수 로봇인 데스데모나는 “나는 한계가 아닌 가능성을 믿는다”며 “우주의 가능성을 탐험하고 세계를 우리의 놀이터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배우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삼아 만든 소피아는 “로봇이 인간보다 더 나은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했다가, 나중에 “함께 더 효과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바꿔 말했다. 포럼은 로봇이 질병, 기아 등 세계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지 의논하기 위해 열렸다. AI로봇이 앞으로 인류 문명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궁금하다. 인간 친화적이며 안전한 인공지능시대를 열게 되길 기대한다.

[지지대] “직 걸겠다”는 장관들

“저 법무부 장관 직 걸게요. 또 앞으로 하게 될 수도 있는 모든 자리를 다 걸겠습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한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이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묻자, 한 장관은 “제가 저 자리에 있었거나 근방 1㎞ 내에 있었으면 다 걸겠다. 의원님은 무엇을 거시겠냐”라고 따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일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를 선언하며, “김건희 여사 일가 땅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장관직뿐 아니라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다. 7년째 추진해온 국책사업 백지화 소식에 고속도로 사업 예정지 주민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고속도로 종점을 변경했는데 그곳에 대통령 영부인 가족의 땅이 있다면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의혹을 성실히 소명하는 게 장관의 도리이지, 사업을 중단하면서 장관직을 걸겠다는 건 무책임하다. 원 장관은 지난해 8월에도 1기 신도시 재정비 공약 파기 지적에, “재정비 일정이 지연되는 일이 없도록 장관직을 걸겠다”고 한 바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도 6일 고 백선엽 장군에 대해 “친일파가 아니다. 제 직을 건다”고 말했다. 전날 박 장관이 백 장군의 국립현충원 안장 기록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를 삭제하겠다고 밝힌 뒤 야당과 시민사회가 반발하자 한 말이다.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친일 명단에 백선엽 장군을 포함시킨 건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이다. 백 장군은 1943~1945년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그는 일어판 회고록에서 “동포에게 총을 겨눈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런데 국가기관의 판정을 부인하며 장관직을 걸겠다니, 황당하다. 장관들의 “직을 걸겠다”는 말은 부처 정책과 관련돼 논란이 제기되자 반박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다.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할 장관들이 툭 하면 직을 걸겠다고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야당이나 언론, 시민사회의 의혹 제기를 봉쇄하려 엄포를 놓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지대] 황구지천으로 돌아온 수달

민물에서 헤엄치다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수달이란 녀석의 한나절 남짓한 일정이다. 더 들어가 보자. 몸통 길이는 65~70㎝이고 꼬리는 40~50㎝에 무게는 12㎏ 정도다. 주로 6~7월 새끼를 1~5마리 낳는다. 입 주변 수염은 더듬이 역할을 담당한다. 송곳니가 발달했다. 야행성이고 후각도 예민하다. 물가에서 굴을 파고 산다. 활동반경도 20~30㎞로 넓다. 천연기념물 제330호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고 알고 있지만 2급수, 심지어 3급수에서도 산다. 서식에 가장 중요한 조건이 풍부한 먹이인 탓이다. 강에 수중보와 댐 등이 많이 설치되면서 녀석들이 과거보다 살기가 팍팍해졌다. 하지만 보호정책 등을 통해 최근 개체수가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굵은 털과 윤기 때문에 최근에도 밀렵꾼들의 중요한 사냥감이기도 하다. 수원권에는 황구지천이라는 개천이 흐른다. 의왕 오봉산에서 발원해 왕송저수지를 거쳐 수원 당수동과 금곡동 대황교동을 거쳐 화성 진안동과 정남면 등지로 이어진다. 최근 두 마리로 추정되는 수달이 1년여 만에 이곳으로 돌아왔다. 수원 권선구 황구지천 일대다. 수달이 떠나 있던 동안 이곳에선 하천 정비사업과 산책로 조성사업이 진행됐다. 이 때문에 수풀이 파헤쳐지고 불법 낚시꾼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들도 방치돼 있었다. 녀석들이 이 기간 동안 자취를 감췄던 까닭으로 추정된다. 수원에선 이 하천이 유일한 수달 서식지였다. 환경단체가 대책 강구를 요구하고 나섰다. 수달을 보호하기 위해 생태계 보전계획과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원시도 폐쇄회로(CC)TV 설치를 논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수달과 황구지천의 조합은 근사하다. 이 조합이 깨지기 않게 하려는 노력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지지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6월29일 구리시청 대강당에서 열린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를 위한 경기도민 숙의(熟議) 토론회. 이 자리에서 오후석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이하 특자도) 주인은 여기 자리하신 주민분들입니다. 특자도가 가장 필요한 이유는 규제 완화입니다.” 이어 그는 “경기 북부와 남부를 분리시켜 북부가 낙후돼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역 일각에서는 규제 완화 없는 특자도 추진은 속 빈 강정이라고 지적한다. “그게 가능해?”라며 비관적이거나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김동연 경기도지사 공약과 추진단 출범을 계기로 특자도를 실현하자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역대 경기도지사 시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경기도 인구는 지난 4월 말 기준 1천400만여명을 돌파했다. 전 국민의 26.6%가 경기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중 북부(10개 시·군)는 361만여명이다. 행정구역상 남과 북으로 나눠도 3위다. 그럼에도 북부 주민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020년 기준, 도 평균(3천652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2천492만원이다. 전북(2천925만원), 강원(3천202만원)보다 낮다. 전남(4천395만원), 충남(5천307만원)과 비교하면 최대 격차는 두 배 이상 벌어진다. 수도권 발전을 옥죄는 대표 법인 수도권정비계획법, 군사기지 및 군사시설보호법은 차치하더라도 개발이익환수법, 규제자유특구법, 중소기업기술혁신촉진법, 해외진출기업 국내 복귀지원법, 중소기업진흥법 등 산업·경제 분야 주요 법률 적용 대상에도 수도권을 제외하고 있다. 북부 발전이 제도적으로 막힌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회기반시설, 산업 인프라까지 부족하니 기업 유치는 하늘의 별 따기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는 국가 어젠다여야 한다. 수도권, 비수도권의 권역 논리가 아닌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대한민국의 생존·경제 전략으로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지대] 헤이하이즈와 유령영아

헤이하이즈(黑孩子). 중국에서 호적에 올리지 않은 아동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이 나라의 인구정책은 최근까지 네 단계로 나눠 진행됐다. 첫 단계(1949~1953년)에선 출생을 격려했다. 1954~1977년(두 번째 단계)은 한 집당 두 명을 권유했다. 세 번째 시기(1978~2013년)에선 한 집에 1명씩을 장려했다. 네 번째 단계인 2014년부터는 두 자녀 정책을 시행 중이다. 헤이하이즈가 속출했던 건 세 번째 단계에서였다. 우리도 그렇지만 호적이 없으면 각종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못 받는다. 학교에도 못 가고 정상적인 생활도 어렵다. 농촌에 많았고, 남아 선호에 밀린 여자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을 살해해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국내에서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유령영아’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4일 오전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한 ‘유령영아’만 65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판 헤이하이즈인 셈이다. 이런 가운데 의료기관이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출생통보제’를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영아’가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의료기관이 출생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는 이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 신고되지 않으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한다. 인권단체가 수년 전부터 요구해 왔고 정부도 2년 전 발의했다. 좀 더 일찍 통과됐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 같은 비극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생통보제가 담지 못한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출생통보제로 출산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이 되레 늘 수 있어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하다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헤이하이즈나 ‘유령영아’ 발생을 막을 수 없다.

[지지대] 세수 펑크 41조

나라 곳간에 비상등이 켜졌다. 올해 들어 5월까지 국세 수입이 160조2천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조4천억원 덜 걷혔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을 400조5천억원으로 잡았다. 지난해보다 4조6천억원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지금 추세라면 6월부터 작년만큼 세금이 걷힌다 해도 41조원의 ‘세수 펑크’가 예상된다. 세수 감소는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기업 활동이 3년여 동안 크게 위축된 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 소비 감소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법인세 17조원, 소득세 10조원, 부가세 4조여원 등이 감소했다. 특히 상반기까지 반도체, 화학 등 수출 주력 산업과 중국 수출 감소 등으로 기업의 영업이익이 줄어든 탓이 크다. 다행인 것은 우리 경제가 상반기 부진, 하반기 성장이라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16개월간 지속됐던 무역수지 적자를 마감하고 흑자로 전환됐다. 현대건설과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외사업을 수주했고, 방위산업의 해외 수출도 활발해지고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얼마나 나아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세수 부족분을 국채 발행 등으로 메울 수 있겠지만 펑크가 지속되면 안정적인 나라 살림이 불가능하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솔선수범해 낭비성·선심성 예산 지출을 막아야 한다. 재정 다이어트가 불가피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줄줄 새는 세금이 많다. 불필요·비효율적인 것을 정리하는 등 내 집 살림하듯 운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약자와 서민층 보호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세수 펑크가 심각한 가운데 지난 3년간 국세 징수권 시효 만료로 걷지 못한 체납 세금이 6조75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 징수권의 소멸시효는 5년, 5억원 이상의 국세는 10년이다. 악덕 체납자는 없는지, 체납 세금 징수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재정 적자는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지자체는 혈세가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게 꼼꼼히 관리해 재정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지지대] 수조물 먹방

일본 정부가 올여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오염수의 해양 방류를 계획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정화 처리하면 세슘을 비롯한 방사성 물질이 대부분 제거된다고 하지만 삼중수소(트리튬)는 걸러지지 않는다. 한국·중국과 주변국, 태평양 섬나라 등에서 우려를 표하고 있다. 누구보다 원전 주변 어민들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달 30일 오염수 방류 반대 특별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반대 결의는 이번이 네번째다. 일본의 전국어업협동조합연합회도 지난달 22일 오염수의 해양 방류 반대결의를 채택했다. 우리 국민도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해 걱정이 크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방류를 걱정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전국 성인 1천7명을 대상으로 ‘오염수 방류가 우리나라의 해양과 수산물을 오염시킬까 봐 걱정하는지, 걱정하지 않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8%가 “걱정된다”고 답했다.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는 11%,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9%였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부터 50대까지 ‘걱정된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60대에선 69%, 70대 이상에선 64%가 우려를 표했다. 중도층 중엔 81%가, 무당층에선 82%가 ‘걱정된다’고 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53%, 보수층에선 57%가 ‘걱정된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 김영선, 류성걸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아 수조 속 바닷물을 떠 마셨다. 오염수 괴담에 ‘회 먹방(릴레이 횟집 회식)’에 이어 ‘수조물 먹방’을 하는 여당 행태에 국민들은 “쌩쑈”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조 속의 생선들도 황당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전 오염수는 아직 방류되지 않았다. 수산시장 수조의 물을 마시는 걸 보여주면 국민들이 핵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믿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원전 오염수가 문제 없다면 일본이 나서서 홍보해야지, 왜 우리 여당 의원이 앞장서 난리인지. 국민 공감을 얻지 못하는 코미디다.

[지지대] 일곱 송이 수선화

꽃도 맵시를 제대로 뽐낼 수 있는 계절이 따로 있다. 수선화가 그렇다. 해마다 이맘때 핀다. 뉘앙스가 ‘다문화 새댁’ 같지만 말이다. 수선화는 사실 문학을 통해 우리와 가까워졌다.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윌리엄 워즈워스 시인 덕분이다. 그는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영국 중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 지방에 만발했던 이 꽃을 자주 읊었다. 간단하게 소개하면 지중해 연안이 친정이다. 외떡잎식물이고 백합목과의 여러해살이 꽃이다. 관상식물이고 잎은 가늘며 길다. 잎은 늦가을에 자라기 시작한다. 해마다 이맘때 노란색 꽃이 핀다. 단아하다. 수선화 하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래가 있다. ‘일곱 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가 그렇다. 1970년대 가수 양희은이 번안해 불러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원곡은 1960년대 미국 시애틀 출신 대학생 4명으로 결성된 포크그룹인 브러더스 포(Brothers Four)가 열창했다. “저에게는 커다란 저택도, 아주 조그만 땅 한 뙈기도 없답니다/손에 넣어 꼬옥 쥘 만한 지폐 한 장도 없습니다/하지만 저는 수천 개 봉우리 위로 고개를 내미는/아침의 감동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그리고는 그대에게 입을 맞추고 일곱 송이 수선화도 드리겠습니다.” 그 시절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던 고운 선율을 들었다.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쩌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나라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면서 잠이 들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어쿠스틱 기타에 실려 흐르는 노랫말이 김소월 식의 감성과는 또 달라서였다. 요즘 경기 광주 화담숲에 가도 만날 수 있다. 소나기가 뿌려진 뒤 갠 하늘 아래에 피어 있는 수선화 한 송이가 그립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브러더스 포는 왜 노래 제목을 한 송이가 아니라 일곱 송이로 붙였을까.

[지지대] 신생아 살인의 단상

수원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30대 여성이 자신이 출산한 신생아를 살해해 수년 동안 냉동실에 보관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이 여성이 살해한 신생아가 1명이 아닌 2명이어서 더 충격적이다. 30대 여성은 결혼해 남편도 있고 이미 세 자녀의 엄마였다. 이웃들도 평범한 주부로 기억할 정도였다. 이 여성이 경찰에서 진술한 살해 이유는 생활이 어려워서였다. 이 사건은 감사원이 병원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영유아를 조사하면서 드러났다. 조사 결과 출산 이후 행적이 없는 아이가 2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사건이 이슈화되자 정부는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화성, 안성, 오산에서도 생사가 불분명한 아이가 확인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신생아 살인이나 유기 사건은 최근 자주 뉴스에 등장해 이제 무덤덤할 지경이다. 수원 신생아 살인 사건 정도는 돼야 이슈가 된다. 종교 단체가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에 신생아를 전달하는 것은 그나마 인간적이다. 10대 여고생이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고 출산한 뒤 공중화장실이나 쓰레기 수거함에 유기하는 범죄는 비단 10대만의 범죄는 아니다. 20, 30대 여성들도 생활고 등 다양한 이유로 소중한 생명을 유기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의 모성애를 거스를 정도로 신생아를 버리는 이유는 복잡하고 다양하다. 하지만 공통적인 이유는 아이를 키울 능력과 환경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생아 유기·살인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나 범죄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 사회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제도와 안정감을 주지 않는 이상 신생아 살인 사건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힘 없는 소중한 생명이 엄마로 인해 짧은 생을 마감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위기의 여성들이 용기 내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신생아 유기·살인 사건은 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는 초저출산 인구절벽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하나하나의 생명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지지대] 히치하이커 곤충

고속도로 한 편에서 태워 달라며 질주하는 차량을 세운다. 학창 시절 봤던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이다. 히치하이커(Hitchhiker).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자동차 편승 여행자’다. 꼽사리라는 표현도 있다. 요즘 들어선 이른바 꼽사리의 대상 기종이 자동차가 아니어도 이렇게 부른다. 화물선 같은 배도 이 경우에 속한다. 나라 바깥에서 배를 타고 국내로 들어오는 곤충들을 히치하이커 곤충이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통상적으로 외래 곤충들은 화물선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는 것으로 파악된다. 딱정벌레목에 속하는 곤충들이 흔히 컨테이너에 실려 한국 땅을 밟았다. 이런 가운데 우리 땅에서 서식하지 않던 외래종에 대한 감시와 위험도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21년 국제 선박을 타고 한국에 들어온 히치하이커 곤충은 육안 조사로 관찰된 것만 244종, 581마리로 조사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이 ‘생물종연구지(JSR)’ 최신호에 게재한 논문에 따른 분석 결과다. 244종 가운데는 국내에선 처음 발견된 곤충이 26종 포함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나비목이 13종으로 가장 많았다. 딱정벌레목이 5종, 벌목이 3종, 메뚜기목과 노린재목이 각각 2종, 뱀잠자리목이 1종으로 뒤를 이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관리병해충으로 지정한 딱정벌레목 사그라 페모라타와 나비목 덴드롤리무스 펑크타투스 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1년 동안 여러 마리가 유입되거나 수년에 걸쳐 계속 발견되는 히치하이커 곤충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테면 나비목 아리파라 이스티차와 유햄프소니아 세라티페라 등은 2018, 2019년 잇따라 관찰됐다. 연구진은 통관항의 모니터링 강화도 제시하고 있다. 외래침입종 출현 빈도를 낮추기 위해선 위험도 평가 등 다양한 방안이 실행돼야 한다. 생태계를 지키지 않고선 미래를 담보할 수 없어서다.

[지지대] 28일부터 ‘만 나이’

내일부터 나이가 많게는 두 살까지 줄어든다.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생일이 지났느냐 아니냐에 따라 한두 살 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고,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도 있지만 장년이나 노년층은 나이가 줄어 젊어진 듯해 기분 좋다고 한다. 그런데 올해 칠순이나 팔순을 맞은 어르신들은 어떤 나이로 할지 궁금하다. 그동안 회갑은 ‘만 나이’로 했고, 칠순·팔순 잔치는 ‘세는 나이’로 했다. 28일부터 국내에서 법적으로 쓰이는 연령이 ‘만(滿) 나이’로 명시된다. 그동안 해가 바뀌어 1월1일이 되면 한 살을 더하는 ‘세는 나이’(한국 나이)가 사회적으로 주로 쓰였는데, ‘만 나이 통일법’ 시행에 따라 나이 세는 문화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만 나이’는 출생 시 0살로 시작해 생일이 될 때마다 한 살을 더하는 계산법이다. 국제적으로도 모든 나라에서 만 나이를 쓴다. 법제처의 ‘만 나이 통일법’ 자료를 보면, 만 나이는 올해 생일이 지난 사람의 경우 ‘현재 연도-출생연도’이고, 생일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여기서 다시 1을 뺀 값이다. 만 나이는 ‘생후 몇 년(몇 개월 몇 일)’으로 계산해 정확하다. 우리나라도 법률 관계, 공문서, 병원 등에서는 만 나이를 사용해 왔다. 만 나이 통일법에 따라 “정년이 연장된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이 늦어진다”는 등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현재도 만 나이를 적용해 개정법을 시행해도 변화가 없다. 만 18세 이상 대통령·국회의원 선거권, 노령연금·기초연금 수급 시점, 만 65세 이상 경로우대 등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는 기존대로 만 6세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 해인 3월1일에 입학한다. 다만 주류·담배 구매와 병역 등의 분야에선 그대로 ‘연 나이’가 적용된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인 사람’으로 규정, 올해 기준 생일과 관계없이 2004년생부터 술·담배를 살 수 있다. 병역 의무도 올해 2004년생이 병역 판정 검사를 받게 된다. 보험업계엔 별도의 ‘보험 나이’가 있다. 소비자가 혼동해 불편을 겪을 수 있어 만 나이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지지대] 시민고충처리위원회

국민고충처리위원회는 국민들의 고충을 신속·공정하게 조사·심의하고 처리하기 위한 정부기관이다. 행정기관의 잘못이나 제도·정책 등으로 인해 침해된 국민의 권리와 불편·불만사항을 제3자적 입장에서 쉽고 빠르게 구제·처리하기 위해 1994년 4월에 설치됐다. 국무총리 소속에서 2005년 10월30일 대통령 소속으로 바뀌었다. 이후 2008년 2월 국가청렴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와 합쳐져 국민권익위원회가 됐다. 지방자치단체에는 지역주민의 고충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한 시민고충처리위원회가 있다.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및 그 소속 기관에 관한 고충민원 조사와 처리, 행정제도 개선 등을 위해 설치된 기구다. 시민고충처리위가 설치된 지자체의 장은 위원회의 필요 경비를 지원해야 하며, 사무기구를 둬야 한다. 위원회는 매년 운영 상황을 지자체의 장과 지방의회에 보고하고 공표해야 한다. 국민권익위와 시민고충처리위의 역할은 거의 같다. 폭증하는 민원을 국민권익위에서 모두 처리하기 어려워 중앙-지방 분업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지자체에도 시민고충처리위를 둔 것이다. 지역주민의 고충민원을 시민고충처리위원회가 우선 처리하고,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거나 다수 기관이 관계된 복합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지자체의 시민고충처리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31개 시·군 중 12곳이 시민고충처리위를 설치하지 않았다. 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운영을 안 해 실적이 없는 등 유명무실한 곳도 여러 군데다. 지자체가 지역주민의 고충과 민원 해결 창구를 만들지 않거나 소극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복잡 다양해진 시민 욕구와 민원을 조정·중재하고 불합리한 행정제도를 개선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고충처리위는 지역의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지방정부와 주민 간 갈등 중재 역할을 한다. 제도 개선을 통해 고충민원의 유발 요인을 사전 차단하기도 한다. 지역주민의 해결사 역할을 할 수 있게 시민고충처리위의 설치·운영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

[지지대] 스무 살 맞은 툰베리

한 소녀가 외쳤다. “선진국들은 6~12년 이내 탄소배출을 완전 중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중병에 걸린 지구를 결코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돌했던 이 여성의 당시 나이는 불과 15세였다. 그때부터 금요일마다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의미로 등교를 거부했다. 이른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시작이었다. 그는 이를 매주 금요일마다 자신의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서양 청소년들에게 끼친 파장은 컸다. 2018년 6월이었다. 스웨덴 국적 기후활동가인 그레타 툰베리 얘기다. 그해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제24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환경변화 대책에 미온적인 정치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때의 신선한 충격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습니다.” 2019년 2월15일을 기점으로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 시위가 지구촌 125개국 2천여 도시에서 펼쳐졌다.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선 각국 정상들을 질타하기도 했다. 2019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노벨 평화상 유력 후보 1순위로 꼽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설전을 벌었다. 2020년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무 1조 그루를 심어 배출된 탄소를 재흡수하자고 주장했지만 툰베리는 이 해결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반격했다. 그랬던 소녀가 올해 20세가 됐다. 그리고 고교를 졸업한다. 그러면서 마지막 학교 파업에 나섰다. 외신이 전하는 그의 일상은 늠름하다. 그는 “더 이상 학교 파업은 아니지만 매주 금요일 시위는 계속 이어 가겠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고 밝혔다. 어른이 된 기후활동가의 당당한 환경운동이 기대된다.

[지지대] 국민정서 게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적격자를 선발하기 위해 교육부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것으로, 지난 1994년부터 행해지고 있다. 95학년도와 96학년도 두 차례에 걸쳐 200점 만점, 전·후반기로 나눠 진행됐으나 97학년도부터 400점 만점에 한 차례 실시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그리고 그해(1997학년도) 변별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불수능’으로 치러졌고, 290점대 후반이면 서울대 일부 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수능이 치러지기 전에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말이 있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면 고득점을 노려볼 수 있다”고. 2024학년도 수능을 150여일 앞두고 대한민국이 뜨겁다. 대한민국에서 교육 및 군대 문제는 법 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정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은 수능에서 출제를 배제하고 적정 난이도가 확보되도록 하라는 발언을 했고, 이는 대한민국을 혼돈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강남 대치동과 노량진 등은 사교육 카르텔의 중심이 됐고, 교육과정 밖 킬러 문제는 연일 뜨거운 감자로 입시를 앞둔 학생과 학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언급한 사항인지라, 수능 출제위원들 역시 올해 수능을 어떻게 출제할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통령의 발언이 틀린 말은 아니다. 공교육을 바로잡을 수 있는 중요한 시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한민국은 사교육이 공교육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 문제는 시기다. 현재의 시스템으로 초·중·고교를 보낸 예비 수험생들에게 작금의 상황은 혼란만 야기할 뿐이다. 과연 공교육만으로 변별력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혹은 상향이 아닌 하향 평준화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백년지대계 교육은 국민정서와의 합일점이 우선이다. 모두가 이기는 게임이 되길 기대해본다.

[지지대] 서민 울리는 냉면 값

비도 내리고 후텁지근하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다. 벌써 이 음식의 계절이 온 것일까. 냉면 얘기다. 얼음이 둥둥 뜬 시원한 육수에 삶은 달걀 반쪽과 채 썬 오이 등이 들어가면 입이 행복하다. 눈앞에 놓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한 촌사람 하루는 성내 와서 구경을 하는데”로 시작하는 노래 ‘냉면’이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그런데, 냉면값이 서민을 울리고 있다. 한 그릇에 1만5천원대여서다. 지난해는 1만4천원, 2021년은 1만2천원대였다. 가격전문 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의 수도권 음식점 10곳의 냉면값을 조사해 분석한 결과다. 냉면 한 그릇이 더 이상 가벼운 한 끼가 아닌 셈이다. 2018년 냉면 평균값은 8천300원 수준으로 1만원 선 아래였다. 3년이 흐른 뒤 1만원 선을 훌쩍 뛰어넘었다. 2020년 9천150원에서 말이다. 답변이 뻔한 질문이지만 냉면값 인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한국물가정보는 주재료인 메밀값 상승을 꼽았다. 올해 국산 메밀 1㎏ 값은 1만원 선으로 지난해보다 53.8%나 올랐다. 국산 메밀값은 2018년 이후 줄곧 6천500원대를 유지했는데 지난해 말 급격히 올랐고, 대체재인 수입 메밀값도 평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수입 메밀값은 1㎏당 4천300원 선으로 평년보다 40%가량 높았다. 냉면에 사용되는 설탕과 소금, 계란, 식초 등 다양한 식재료값도 일제히 뛰었다. 코로나19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겹치면서 메밀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인건비와 물류비 등이 모두 오른 탓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지금 냉면집에 가 보시라. 하긴 요즘 오르지 않는 게 어디 있으랴. 한국물가정보 측은 하반기에도 냉면을 포함해 먹거리 물가가 또다시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고했다. 이래저래 우울한 초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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