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당신의 ‘갓생’은 괜찮나요?

언제부턴가 자주 듣게 된 단어 하나가 있다. ‘갓생’, 신을 뜻하는 GOD과 살다를 뜻하는 생(生)을 합한 신조어다. 무엇이 맞다고 정의하긴 어렵겠지만 신처럼 완벽한 삶을 살아내는 것을 갓생이라 부른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갓생러라 일컫기도 한다. 코로나19 즈음부터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한 이 단어,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세상 속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고개를 돌린 것이 원인 아닐까 추측한다. 그런데 가끔 갓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생긴다. 갓생을 살겠다며 2030 젊은층이 잠을 줄이기 시작한다. ‘죽으면 평생 잘 수 있는데’라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 자신의 갓생살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일찍 일어나 남들보다 먼저 하루를 시작하고, 중간중간 필요한 것들을 공부하며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는 삶. 완벽하게 보이기에 이런 갓생은 가끔 지키지 못했을 때 죄책감이나 초조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다 얼마 전 SNS에서 평소 좋아하는 ‘토심이’ 만화를 보던 중 이런 글을 발견했다. ‘갓생, 그거 꼭 살아야 하는 걸까.’ 마침 서른의 마지막은 갓생이어야 하는 것 아닐까 고민하던 필자에게 꽤 큰 울림을 줬다. ‘그래, 맞아. 그거 꼭 살아야 하는 걸까. 내가 행복하면 그게 갓생 아니야’라고 말이다. 지금 인생을 꽤 열심히,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 또한 갓생이 아닐까. 처음 사는 인생인데, 뭘 또 꼭 잘하기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그래서 묻고 싶다. 당신의 갓생은 괜찮으시냐고.

[천자춘추] 우리동네 기후연구소

기후 위기가 더 이상 막연한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연일 이어지는 급변하는 날씨는 우리의 일상과 삶의 방식까지 바꿔 이에 대한 인식과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기후교육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기상청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기후교육을 확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3년부터 고등학교 ‘기후 변화와 환경생태’ 교과서 개발을 시작했고 지난해 대전시교육청에서 인정 교과서로 선정됐다. 기후 변화에 대한 미래세대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기상청의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진짜 첫걸음은 기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함께 ‘실천’이 있어야 시작된다. 아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변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예컨대 일회용품 줄이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 누구나 들어봤을 탄소중립 실천 내용은 ‘실천’이란 허들을 넘었을 때 의미가 있다. 이에 기상청은 시민들의 주체적 실천을 이끌고자 지역별로 지역 특색을 반영한 기후교육을 개발·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국 곳곳의 학교, 지자체, 지역단체와의 소통·협력에 힘쓰고 있다. 수도권기상청이 서울 은평구, 경기 수원시 등의 지자체와 함께 운영 중인 기후교육 사업 ‘우리동네 기후연구소’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시민들이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자신이 사는 동네의 기온을 직접 관측하고 기후행동 실천을 인증하면 수도권기상청이 찾아가 해당 지역의 기후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후 변화와 기후전망을 설명하고 탄소중립 실천의 중요성을 알리는 프로그램이다. 기상청의 참여로 교육의 신뢰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실천 행동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왜 특정 행동이 필요한지, 그 행동이 나의 삶과 지역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이해할 때 작은 실천은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교육의 진정한 목표는 ‘행동의 변화’다. 기상청은 앞으로도 과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실천 중심의 기후교육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모두가 각자의 삶과 지역에서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그 시작과 끝에 늘 기상청이 함께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메타버스·AI 결합 ‘차세대 인터페이스’

애플은 6월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리퀴드 글라스(Liquid Glass)’라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기존 스마트폰 화면이 하나의 판 위에 정보를 보여줬다면 이제는 여러 겹의 투명한 유리창이 겹치듯 정보를 전달한다. 사진첩을 보다가 알림이 떠도 알림창이 반투명하게 처리돼 뒤의 사진을 계속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발표 직후 인공지능(AI) 경쟁에서 뒤처진 애플이 한가하게 예쁜 디자인에나 신경 쓴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이 기술의 함의를 놓치고 있다. 애플의 증강현실 기기인 비전 프로(Vision Pro)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 투명 인터페이스는 단순히 화면을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큰 화제를 모은 스타트업 ‘클루리’의 데모 영상에도 이 투명 인터페이스가 등장한다. 영상 속에서 연애 경험이 없는 학생은 데이트 상대 앞에 앉아 눈앞의 투명한 정보창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AI 연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클루리의 창업자 로이 리는 도발적인 인물이다. 그는 AI를 이용해 빅테크 기업들의 면접을 통과하는 과정을 공개했다가 컬럼비아대에서 퇴학당했지만 이후 오히려 수천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하며 ‘모든 것을 커닝하라’는 슬로건을 내건 회사를 차렸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모든 정보를 AI가 가지고 있는데 굳이 그것을 암기하고 평가하는 방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인류는 AI라는 ‘치트키’의 도움을 받아 일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고 이 치트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기술이 주변 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와 디지털 정보가 겹치는 중첩형 투명 인터페이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현실 세계 위에 디지털 정보를 덧입히는 방식은 이미 자동차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낯설지 않은 기술이다. 하지만 이 콘셉트가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는 투명 디스플레이 위에 펼쳐지는 것이 단순한 영상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맥락을 파악해 전달되는 AI 정보, 즉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지능(Ambient AI)’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철학자 마크 와이저는 “가장 심오한 기술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지는 기술”이라고 했다. 이 개념에 맞춰 애플의 투명 인터페이스, 그리고 메타와 구글이 선보이는 스마트 글라스는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를 지우며 ‘보이지 않는 지능’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6년 증강현실이 “10년 후의 기술”이라고 예측했다. 그 10년이 돼가는 지금, 인공지능과 결합한 증강현실은 단순히 스크린을 눈앞으로 옮기는 것을 넘어 세상 전체를 화면으로 바꿔 가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작은 스마트폰의 화면에서 벗어나 시야 위에 중첩되는 현실 세계의 정보를 실시간 맞춤형으로 볼 수 있다. 풍속과 심박수 등을 고려한 최고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달리기를 할 수 있고 안경 위에 뜬 AI의 실시간 가이드에 따라 기계를 조작하고 복잡한 외과수술을 할 수도 있다. 용도 폐기된 것 같았던 메타버스가 AI와 결합되면서 모바일폰을 대체할 차세대 인터페이스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 더하기] 역사를 잊은 민족의 결말, 그 문턱에서

지금도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는 2023년 고등학교 11학년 세계사 교과서를 개정하며 학생들에게 한국의 역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정된 교과서에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재건’ 사례 등을 새로 포함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교육과정에는 중국, 일본, 인도 등 동아시아 주요국은 포함돼 있었지만 한국은 빠져 있었다. 전후 초토화된 한국이 불과 수십년 만에 민주주의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사례를 자신들이 설계할 미래 희망의 모델로 삼고 있다. 반가운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실려 있다고 한다. “1950년 한국은 전쟁으로 국토의 80%가 파괴됐지만 수십년 후 아시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나라가 됐다.” 전시의 포화 속에서도 한국의 사례를 가르치며 미래를 준비하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작 우리 현실의 모습은 어떤가. 2025년은 6·25전쟁 발발 75주년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6·25는 점점 ‘시험에 나오는 연도나 지명’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해 국가보훈부의 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국민의 81.4%가 ‘6·25를 잘 알고 있다’고 응답했지만 20대 이하에서는 그 비율이 22.7%에 불과했다. 전쟁의 상처와 교훈은 세대의 변화와 함께 빠르게 잊히고 있다. 6·25는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었다. 광복 후 미소 냉전이 격화되며 한반도는 이념의 대리전장이 됐고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의 남침으로 민족이 총을 겨눈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 기간 우리 군인과 경찰 15만명이 전사했고 250만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고 한다. 유엔군 참전 16개국 가운데 약 4만명의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미국 병사만 해도 3만7천여명에 이른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평균 나이는 19세였다고 한다. 이는 한반도의 전쟁이 단순한 내전이 아니라 냉전의 최전선이자 국제사회가 함께 치른 전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평화를 누리는 우리는, 정작 그 역사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억되지 않는 전쟁은 반복될 수 있다. 기념일만으로는 부족하다. 살아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전쟁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라나는 세대가 반드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의 기억을 단지 고통으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국가의 위기 속에서 전 세계가 함께 지킨 자유의 기록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1위 자리를 내어주며 국가경쟁력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국민 모두의 힘을 결집해 ‘한강의 기적’을 다시 한번 이뤄내는 것이다. 국가의 존립과 다른 나라도 도울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되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억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해줘야 한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기고] 대왕님표 여주쌀, 미국에서도 통할까

국내 쌀 소비가 줄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 속에서도 ‘대왕님표 여주쌀’은 새로운 길을 개척 중이다. 단순한 내수 판매를 넘어 해외 수출형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왕님표 여주쌀은 2025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 조사에서 농산물 브랜드 부문 1위에 올랐다. 그리고 미국 뉴욕·뉴저지 지역 한인마트에 정식 입점하며 첫 수출 물량 3t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여주쌀 미국 수출량의 10%에 해당하는 규모로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K-푸드 확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라면, 떡볶이, 냉동김밥 등 한국 가공식품의 인기가 높아지며 자연스럽게 한국산 식재료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고 있다. 한국 쌀은 특히 찰기 있고 쫀득한 식감으로 김밥, 덮밥, 비빔밥 등 한식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실제로 미국 내 냉동김밥 판매 호조에 따라 쌀가공식품 수출도 20%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여주쌀의 미국 진출은 단순한 수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내수 침체에서 벗어난 지속가능한 농업 해법으로 ‘수출형 프리미엄 농업’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실험 중이기 때문이다. 여주쌀이 가진 경쟁력은 단단하다. 첫째, 여주는 풍부한 일조량과 깨끗한 수자원, 규산·유기물이 풍부한 토질 등 벼농사에 최적화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췄다. 둘째, 여주시는 독자적 품종 ‘진상미’를 개발하고 재배를 독점해 고유성을 확보했다. 이 품종은 찰기와 감칠맛이 뛰어나 프리미엄 소비층에 적합하다. 셋째, 여주시농업기술센터는 DNA 종자검정, 성분분석, 미질분석 등 과학적 품질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식미치 75점 이상, 단백질 6% 이하라는 고품질 기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브랜드 시스템도 강점이다. 여주시농산업공동브랜드활성화센터는 품질 인증, 공동마케팅, 유통망 관리, 관광 자원 연계까지 통합적으로 브랜드를 운영한다. 이 같은 브랜드 역량 덕분에 K-BPI 1위라는 신뢰를 얻었고 해외 수출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시장에서 확실한 프리미엄 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있다. 미국 시장은 여전히 롱그레인 쌀이 주류이며 한국 쌀에 대한 인지도는 한인 커뮤니티와 K-푸드 팬층에 한정돼 있다. 이를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단순히 ‘한국산 쌀’이라는 설명을 넘어 ‘왜 이 쌀이 특별하고 건강한가’에 대한 문화적·품질적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조선시대 왕에게 올리던 쌀’이라는 정체성은 미국 소비자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고급 브랜드 자산이다. 쌀 소비가 줄어드는 시대에도 농업은 성장할 수 있다. 핵심은 ‘프리미엄화→브랜드화→수출산업화’라는 선순환 구조를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느냐다. 대왕님표 여주쌀은 이 길을 선도하며 한국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K-푸드가 세계로 뻗어가는 지금 여주쌀의 도전은 한국 쌀, 나아가 한국 농업 전체의 미래를 여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매에 장사없다...

[사설] 건국국채는 6·25 폐허 극복하자는 애국이었다

‘금 모으기’는 IMF 위기에서 나라를 구했다. 전 국민이 힘을 모았던 28여년 전 역사다. 이보다 절절한 나라 구하기가 75년 전에 있었다. 1949~6·25전쟁 시기의 건국국채다. 빈손 건국과 전쟁 폐허의 시기였다. 세입 부족, 재정 적자로 나라가 어려웠다. 1949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채법이 제정됐다. 최빈국 국채는 필연적으로 불안했다. 그랬던 건국국채를 매입하는 심리는 애국심이었다. 내 돈을 기꺼이 국가 발전에 넣겠다는 사명감이었다. 6월 25일을 앞두고 경기일보가 건국국채 얘기를 전했다. 30년 전 작고한 장래복씨의 역사다. 경기도를 근거로 활동했던 사업가다. 제재소, 건설, 화물업을 했다. 1972년 경기도화물자동차운송사업조합 이사장도 역임했다. 그가 남긴 유품이 전해 온다. 오천원·이천원·일천원·일백환짜리 국채다. 발행일 ‘단기 4281년’, 발행 책임자 ‘재무부장관’. 만기는 5년이다. 장씨는 이 국채를 환가하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 갈피에 소중히 남겨 뒀다. 그의 딸 장성숙씨(중소기업융합경기연합회 고문)가 본보에 그 사연을 전했다. “아버지는 늘 애국 정신을 가지고 살라고 가르치셨다.” 부친이 건국국채를 사들인 이유를 짐작했다. “6·25전쟁 직후 사들인 건국국채도 애국심이셨던 것 같다.” 폐허의 나라를 재건하려고 발행한 국채였다. 그 취지에 기꺼이 함께한 애국심이었다. 어찌 장씨만의 역사였겠는가. 해방공간, 6·25전쟁을 겪은 수많은 국민이 그렇게 참여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확인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성장했다. 국부가 몰라 보게 커졌다. 국채의 규모, 성격, 한계가 딴 세상 얘기다.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이 30조5천억원이다. 이 중에 19조8천억원을 국채로 조달한다. 하반기에도 추가 국채 발행이 예상된다. 국채 발행 한도가 197조6천억원에서 229조8천억원으로 확대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73조9천억원에서 110조4천억원으로 불어난다. 총 국가 채무도 1천300조6천억원으로 늘어난다. 국채의 많고 적음은 기준이 아니다. 통화 규모 증대는 경제 성장의 기본 요소다. 경기부양의 기능도 갖고 있다. 다만 커진 국채 규모의 적정선을 걱정하는 소리는 있다. 국채로 형성한 통화의 사용처도 중요하다. 현금 지원, 부채 탕감 등에는 이견이 있다. 국채가 늘어도 감당 가능한 조건은 있다. 인구 규모가 크고, 기축통화국이거나 신용등급이 높으면 괜찮다. 우리는 아니다. 그래서 편하게만 지켜볼 수 없다. 75년 전 건국국채는 나라 살리는 애국심이었는데 2025년 국채는 풍요 속 적정성을 따져야 하는 과제다. 6·25전쟁 75주년에 새겨 볼 만한 고민이다.

[사설] 철도 노선도 못 정한 인천 계양TV... 어어하다 베드타운 될라

인천 계양구에 조성 중인 계양테크노밸리(계양TV)는 수도권 3기 신도시다. 자족기능을 갖춘 첨단산업복합지구가 콘셉트다. 일자리와 주거, 녹지가 융합된 첨단자족도시다. 경기 판교 신도시나 서울 마곡지구가 모델인 셈이다.그러나 본격 입주가 머지 않았는데도 첨단산업 유치는 걸음도 떼지 못했다. 기업 유치에 가장 중요한 철도 등 교통 인프라 확충부터 멈춰 있다. 인천시가 최근 계양TV 투자유치 활성화 3종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투자유치 전담 태스크포스(TF), 세제 감면 확대, 기업고충처리센터 운영 등이다. 그러나 핵심이 빠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역교통망 확충과 첨단산업단지 지정 문제다. 계양TV 광역교통망은 부천 대장지구의 철도망인 대장홍대선의 연장이다. 이 연장선이 계양TV를 통과한 뒤 공항철도·인천지하철 1호선 환승역인 계양역과 연결하는 방안이다. 첨단 기업 유치를 위해서는 철도 교통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계양구가 이 같은 노선 계획을 반대하고 있다. 계양역이 아닌 박촌역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선을 정하지 못한 채 지금껏 논의 단계에 발 묶여 있다. 계양구는 계양 구도심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따라 박촌역 연결을 주장한다. 반면 계양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은 도시첨단산업역 신설과 계양역 연결을 주장한다. 여기에 계양TV의 첨단산업단지 지정도 여전히 미완성이다. 첨단산단 지정은 기업 유치와 그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계양TV는 처음 전체 75만7천457㎡(22만9천532평) 규모의 첨단산단을 계획했다. 그러나 현재 중앙정부로부터 승인받은 면적은 34만7천㎡(46%)에 불과하다. 절반이 넘는 산업부지가 아직도 첨단산단으로 지정받지 못한 상태다. 계양TV 사업 초기에는 인천시에 입주의향서를 낸 기업들도 있었다. ㈜케이티(KT), 씨제이㈜(CJ), ㈜엘지유플러스(LG U+) 등 여섯 곳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 때문에 수년이 지나도록 계약까지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인천시의회 등에서는 인천시의 소극적 대처를 지적한다. 여태껏 대장홍대선 연장 노선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어떤 기업이 들어오겠느냐는 것이다. 첨단산업복합지구의 완성은 한 지역을 크게 바꿔 놓는다. 서울 마곡지구는 LG사이언스파크로 인해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뤘다. 계양TV와 같이 출발한 부천 대장지구에도 굵직한 기업 유치 뉴스가 잇따른다. SK그룹과 대한항공 등이다. 그런데 계양TV는 철도 노선 하나 정하지 못해 우왕좌왕이라니. 이러다 또 하나 베드타운만 보탤 것이 걱정이다.

[지지대] 불운의 타이틀을 차지할 다음 지자체는?

“지역의 이름은 그 지역의 얼굴과도 같다. 하지만 큰 사고가 발생하면 익숙하게 붙는 지역명은 안성 하면 ‘배’ 대신 ‘교량 붕괴 사고’를, 포천 하면 ‘막걸리’보다 ‘전투기 오폭 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이는 해당 지역 주민에게 경제적, 사회적으로 또 다른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지난 3월 후배 기자가 쓴 기사 내용 중 일부다. 지난해 6월24일, 화성시 서신면의 리튬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참사는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로 명명됐다. 기자가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한국 산업현장의 구조적 안전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 대형 참사가 발생한 지 정확히 1년이 된 날이다. 이날 사고 현장 앞에서 열린 ‘화성 아리셀 공장화재 사고 1주기 현장 추모 위령제’가 열리며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희생자들은 일부 한국인을 포함한 하청·파견업체 소속 외국인 이주 노동자가 다수였다. 사고 3개월 뒤 회사 대표와 대표의 아들인 총괄본부장이 구속 기소됐지만 이후 올해 2월 해당 대표는 수원지법에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보석을 신청, 현재 석방된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유족 측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를 구성, 회사 대표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강력히 처벌되도록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유족 측의 한 맺힌 투쟁과 절규가 이어지는 상황에도 전국 곳곳에서는 수없이 터져 나오는 각종 사고에 희생자들의 수는 늘고 있다. 이란-이스라엘과 같이 전쟁이 발발한 것도,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가 덮친 것도 아니다. 늘 일하던 곳에서 작업자들이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다. 경기도내 지자체가 31곳이다.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 없이 사고 발생 후 쏟아내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대처는 죽음의 행렬을 부추길 것이고 먼 훗날 도내 31개 지자체의 명칭 뒤에 죽음의 재난을 의미하는 단어가 하나씩 붙을까 걱정이다.

[강성곤의 말글풍경] TV 오락프로그램의 ‘호칭 인플레’

방송사에서 예능 프로그램은 큰 수익원이다. 광고나 협찬이 거의 집중된다. 차치하고 예능이란 이름이 맞나. 공자는 정명순행(正名順行)이라 했다. 실제에 부합하는 이름이라야 매사가 합리적으로 진행된다는 뜻.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해야 걸맞다. 예능과 오락은 엄연히 다르다. 예능은 재주와 기능의 영역이며 음악·미술·연극·영화 따위의 예술과 관련된 능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 분야를 제외한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오락 프로그램이다. 오락은 쉬는 시간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분을 즐겁게 하는 일이란 의미다. 독일말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운터할퉁(Unterhaltung·오락)은 반드시 대화와 환담을 전제한다. 그러니까 공연이나 퍼포먼스 위주는 예능 프로그램, 토크와 재담 따위의 구성은 오락 프로그램으로 바루어야 제대로 된 이름이다.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호칭은 무엇이 문제인가. 언제부턴가 연예인들이 우르르 나와서는 “아무개가 아무개보다 형. 네가 그러니까 동생. 인제 보니 누나네. 앞으로 오빠라고 불러. 언니였어요? 몰랐어요”라며 키득대는 모습을 본다. 몹시 잔망스럽고 보기 불편하다. “나이가 자기보다 곱절이 되면 아버지처럼 대하고, 열 살 이상 위면 형으로 대하며, 다섯 살 정도 차이면 웬만큼 공경하는 게 좋다.” 조선시대 학자 이율곡의 말이다. 적어도 열 살 차이는 나야 형∙동생 관계이니 요즘에 적용하면 초등학생에게 대학생은 물론 형이지만 중학생과 고등학생은 친구뻘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현실과의 괴리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서너 살, 아니면 대여섯살 차이를 갖고 서열화∙위계화하는 모양새는 외려 퇴행적이다. 나이가 좀 위랍시고 상대에게 들입다 “야, 너” 반말을 하고 그 반대면 이내 ‘형님, 누나, 오빠, 언니’ 하는 모양새가 오히려 비례(非禮) 아닐까. 웬만한 나이 차이에서는 서로 높임법을 쓰고 적당한 거리를 두다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예사말을 쓰던 이전 세대의 모습이 차라리 낫다. 3~4세 안팎은 서로 아무개씨 하는 적당히 낙낙하고 느슨한 관계가 바람직하다. 존댓말도 아니고 반말도 아닌 예사말의 존재감을 망각하는 부박함이 안타깝다. 지칭(指稱)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진행자∙출연자들이 나이∙지위가 위인 사람들을 언급하며 형님∙누님에서부터 대표님∙사장님∙선생님∙대선배님 운운하며 극존칭을 쏟아낼 때 시청자는 당혹스럽다. 또 아무리 나이가 어리고 신인급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함부로 하대(下待)하는 따위도 생각 없기는 마찬가지다. 방송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시청자가 중심이며 주인이다. 연예인 특유의 라포(Rapport·친근감)를 앞세워 얼토당토않은 극존칭을 쓴다거나 역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의 구현을 방송 프로그램이 가장 자주, 크게 방해하고 있는 셈이다. 차제에 연예인 관련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오빠’를 다뤄보자. 오빠는 이제 ‘손위 남자 형제를 부르는 친족어’로서의 기능보다 연인이나 젊은 부부 사이에서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호칭으로 더 친숙하다. 명절 때 ‘오빠’를 부르면 친오빠와 남편이 동시에 돌아본다는 아내들의 경험담이 익숙한 현실이다. ‘오파(opa)’는 놀랍게도 글로벌적(?)이다. 독일어∙네덜란드어∙인도네시아어에서는 ‘할아버지’의 애칭 혹은 노인을 뜻하고 스페인어로는 ‘바보·멍청이’, 또는 ‘안녕‘이라는 인사말로 쓰인다. 우즈베크어는 ‘누이·형’을 아우른다. 그리고 베트남어는 희한하게도 우리처럼 그대로 ‘오빠’의 의미다. 케이팝 팬들의 ‘오빠, 오빠’ 아우성은 그래서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오빠에는 그런데 음습한 면도 있다. “아저씨가 뭐야. 오빠라고 불러, 오빠 믿지?” 이런 경우는 젠더(gender)의 위계를 교묘히 악용하는 사례 아닌가. 그 사람 자신을 뜻하는 ‘자기(自己)·자기야’가 차라리 상대를 직접 부르지 않고 간접 소환하는, 괜찮은 완곡어법이라는 생각이다. ‘자기’를 과감히 재소환하고 ‘오빠’는 다시 친족에게만 쓰는 건 어떨지. 물론 케이팝 팬의 ‘오빠’는 그 자체로 단단한 성채이니 손댈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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