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한국은행 총재 차례인가

“내 목장의 황소처럼 다루겠다.” 갈등의 발단은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였다. 존슨 대통령이 1964년 연두에 화두로 던졌다. 그리고 그해 가을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올랐다. 막대한 돈을 투입하는 정책이었다. 마틴 연준 의장이 금리 인상을 고집했다.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존슨 대통령과 반대로 갔다. 인플레이션을 막는 연준의 기본 책무였다. 그러자 존슨 대통령이 그의 목장으로 불러 ‘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틴은 금리를 인상했다. 연준 독립성을 지켜낸 역사가 됐다. ‘금리 인하’(政) 대 ‘금리 인상’(經). 비슷한 갈등이 미국 역사에는 많다. 현직 대통령과 연준 의장 간의 대립이다. 내용은 경기 부양과 인플레이션 억제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아서 번스 연준 의장을 압박했다.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인하하라고 했다. 여기서는 닉슨의 금리 인하 주장이 먹혔다. 카터가 임명한 폴 볼커 의장의 투쟁도 남아 있다. 기준금리를 20% 끌어 올려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엄청난 압박을 가했지만 소신을 지켰다.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가 남긴 단면들이다. 요즘도 본다. 트럼프의 파월 의장 망신 주기다. 너무 많아서 정리하기도 힘들다. 최근 외신에서 뽑으면 이런 말이 있다. “파월은 곧 물러나게 된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형편없다. 후임자는 3~4명으로 압축해 두고 있다.” 미국 정치 언어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정도면 세계 공통 언어다. 대놓고 ‘나가라’는 망신 주기다. 이번에도 원인은 대통령의 금리인하 압박이다. 트럼프는 2.5%포인트 인하 요구, 파월은 4.25~4.5% 유지다. 맞서는 파월 의장도 참 어지간하다. 우리에는 한국은행 총재가 그런 건가. 여당 이언주 의원의 논평이 상당히 이채롭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실명 공격했다. 그것도 최고위원회의에서 나온 공개·공식 비판이다. 한은 총재를 비난하면 안 될 거야 있겠나. 하지만 논평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아니다. ‘오지랖이 너무 넓다’로 주장을 열었다. “한은 총재가 할 말이 있으면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든가, 대통령실에 조용히 전달하면 되지 언론플레이 할 일은 아니다”, “자숙하고 본래 한은 역할에 충실하라”는 충고도 했다. 시간이 꽤 지난 발언도 문제 삼던데.... 그것보다는 최근 발언 몇 개가 직접적 도화선이 된 듯하다. 지난 23일 시중은행장 모임에서 말을 했다. “금리 인하 기조하에서 주택 시장 및 각 대출과 관련한 리스크가 다시 확대되지 않도록 은행권의 안정적인 가계부채 관리가 중요한 시기다.” 6월 가계 대출 잔액 증가액이 6조원에 육박한다. 사상 최대 영끌 광풍이 불었던 게 지난해 8월이다. 그때 증가폭이 9조7천억원이었다. 이걸 훤히 들여다보는 한국은행 총재다. ‘그러니 관리하라’는 거였다. 사흘 뒤, 이재명 정부 첫 부동산 대책이 나왔다. 여기서도 대출을 방어하는 게 핵심이었다. 이 총재 발언과 차이도, 문제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 며칠 앞서 다른 발언도 있었다. “민생지원금, 선택적 지원이 보편 지원보다 효율적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면서 나온 말이다. 민생지원금은 통화의 직접 증가다. 한국은행이 관심둬야 할 본연의 영역이다. 그걸 물으니 그렇게 답한 거다. 며칠 뒤 정부 추경안이 나왔다. ‘선택적 지원’을 골자로 편성됐다. 여기서도 ‘경고받을 말’은 안 보인다. 이언주 의원의 발언 이후 댓글을 봤다. ‘옮기기 민망한 표현’들이 부쩍 늘었다. 이 총재를 향한 부정적인 평가다. 결과적으로 ‘좌표 찍기’의 전형이 됐다. 그렇게 보면 ‘이재명 정책’은 통화 증가를 유인한다. 한국은행의 역할이 중요하다. 혹, 그래서 한은총재를 경고해둔 것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까지 암시하는 것일까. 한국은행은 원래 껄끄럽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지켜진다. 마틴 연준 의장이 남긴 말도 그런 거였다.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무르익었을 때 그릇을 치우는 것이다.” 主筆 김종구

[기고] 약물운전의 위험성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경찰관이자 어린 두 자녀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에게 교통사고는 준비되지 않은 ‘슬픈 이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주곤 한다. 요즘 뉴스를 통해 종종 보도되는 충격적인 사고 소식 중 술을 마신 운전자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소중한 목숨을 잃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하고 허무함과 깊은 탄식을 안기곤 한다. 이같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과 그 위험성에 대한 공감대는 이제 일정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술에 취해 운전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가 무엇일까. 음주 상태에서는 운동능력이 떨어져 조향·제동장치를 정확하게 조작할 수 없어 편리한 교통수단이 자칫 ‘살상무기’로 돌변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술이 아닌 의약품이라면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약물운전으로 인해 면허가 취소된 사례는 2022년 80건에서 2024년 164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도 3월 기준 잠정치 20건을 넘기는 추세로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8월 서울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을 비롯해 직접 처리한 사건 중 교통사고 충격으로 전복된 승용차 운전자가 마치 술에 취한 듯 대화할 수 없고 거동조차 어려우나 술 냄새가 나지 않았고 조사 결과 조울증 치료를 위해 진정 및 수면 효과가 있는 처방 약물인 ‘졸피신정’을 복용한 사실이 확인돼 형사처벌과 함께 운전면허를 취소시킨 사례가 있었다. 약물운전의 위험성은 점차 현실이 된 듯하다. 이렇듯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한 약물 외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약물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피해 또한 음주운전과 같거나 그 이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를 예방하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우선 도로교통법 제45조(과로한 때 등의 운전금지)에서 약물운전을 금지하고 있으며 약물운전 의심자가 검사에 불응하면 처벌(5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할 수 있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이 내년 4월2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경찰에서도 예방을 위한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타액을 통한 신속 검사 키트를 보급하는 등 단속을 병행해 약물로 인해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하면 강력하게 처벌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에서도 정상적인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하면 강력한 복약지도가 이뤄져야 하며 국민 또한 처방받은 약물이 운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면 운전을 금지하고 주변에서도 이를 만류해야 한다. 술과 금지된 약물은 물론이고 처방받은 약물로 인한 운전 행위가 자신뿐만아니라 다른 무고한 사람에게 ‘슬픈 이별’을 초래하지 않도록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천자춘추] 기축통화 패권과 관세전쟁

기축통화의 기원을 경기FTA통상진흥센터의 시각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듯 국가들도 경제적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외화를 비축하는데 이를 ‘외환보유고’라 한다. 이 중 미국 달러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970년 기준으로 세계 외환보유고의 약 80%가 달러였고 2020년에도 여전히 약 60%에 달한다. 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통화는 그 비중이 5%에도 못 미친다. 이는 달러가 국제 금융질서를 주도하는 기축통화로 여전히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십년간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국가들이 등장하고 있다. 독일, 일본, 중국, 브릭스(BRICS) 등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미국 중심의 통화질서에 균열을 내며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을 촉발하는 배경이 됐다. 독일의 마르크화: 냉전 시기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창설하고 독일을 핵심 국가로 삼아 지원하며 마르크화가 유럽의 중심화로 떠오르게 했다. 일본의 엔화: 아시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됐고 중국과 소련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의 재건을 돕게되며 엔화는 아시아 대표 통화가 됐다. 미국의 응징: 독일과 일본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으나 달러에 도전하자 미국은 강하게 대응했다. 1985년 9월 미국은 독일·일본·프랑스·영국과 함께 ‘플라자 합의’를 체결하며 엔화와 마르크화의 강제 절상을 유도했고 이로 인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들고 독일은 유로화로 통합되며 개별 통화로서의 위상은 사라졌다. 중국의 위안화: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위안화가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다. 1편에서 언급한 ‘페트로 달러 체제’ 아래 원유는 달러로 거래되며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보장했지만 바이든 정부에서는 중국이 원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하며 ‘페트로 위안’ 체제를 시도하고 있다. 이는 페트로 달러 체제의 붕괴를 암시했고 미국과 중국의 통화 패권전쟁은 본격화되며 관세전쟁으로 확산됐다. 또 미국과 사우디는 오일 협력국에서 에너지 패권 경쟁국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고 사우디는 이란과의 핵무장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관심도 아시아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의 근저에 달러 패권이 있다면 우리는 이 충돌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브릭스(BRICS): 2023년 8월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은 “달러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한 불만이 현실로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달러의 역할 변화에도 주목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미국은 관세전쟁을 멈출 의향이 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가 스티브 배넌은 2017년 시진핑 주석이 글로벌 패권국 도약을 선언한 직후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는 날, 게임은 끝나는 것”이라며 중국의 도전을 경고한 바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최근 방한 중 “트럼프 정부가 끝나더라도 미국의 관세정책은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미국은 전 세계에 묻고 있다. “패권전쟁에 동참할 것인가,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인가.” 우리는 관세전쟁의 끝에서 ‘환율전쟁’이라는 대혼란을 맞이할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대한민국에는 실용주의를 내건 정부가 들어섰고 지방자치의 리더십을 자처하는 경기도가 중심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현실에 작게나마 기대를 걸어본다.

[문화산책] ‘오즈의 마법사’에서 마주한 AI

1900년 출판된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인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이 어린이를 위해 쓴 소설로 출판 직후 큰 성공을 거뒀다. 이 책은 아이들이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을 찾도록 이끌었고 더불어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착한 마녀 글린다 등 기억에 남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당시 전 연령대 미국인들의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바움은 총 14권의 오즈 시리즈를 더 집필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 역시 1939년 제작돼 대중과 비평가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1914년 바움은 자신의 오즈 시리즈를 영화화하기 위해 ‘오즈영화제작회사(The Oz Film Manufacturing Company)’를 설립했다. 그 직후 영화사는 3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첫 작품은 ‘The Patchwork Girl of Oz’였고 ‘The Magic Cloak of Oz’는 두 번째 작품, ‘His Majesty, the Scarecrow of Oz’는 세 번째 작품이었다. 영화사 설립 목적은 폭력적인 서부영화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가족 친화적인 영화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영화사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Dramatic Feature Films라는 이름으로 재기를 시도했으나 이마저 실패한 후 결국 Metro Pictures에 흡수됐다가 현재는 Metro-Goldwyn-Mayer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오즈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바움이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허수아비(scarecrow)였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는 ‘His Majesty, the Scarecrow of Oz’를 가장 좋아했고 이 영화의 성공을 확신하기도 했다. 한편 오즈의 마법사가 집필되던 1900년대는 기존 체제와 단절하려는 진보주의가 결국 농경사회의 윤리를 기반으로 태동하게 된 소위 딜레마적인 시대였다. 이런 경향은 무지개 너머 오즈의 마법사가 사는 마을을 통해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농촌의 윤리가 현대적인 오즈의 마을에 전승돼 그 딜레마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바움은 이러한 설정을 캐릭터에게도 마찬가지로 투사했다.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지만 이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만 해석하려는 태도를 고수하고, 허수아비는 자신에게 뇌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실은 가장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양철 나무꾼은 심장이 없다고 하지만 누구보다도 감정에 충실하며 겁쟁이 사자 역시 용기가 없다고 하지만 위기 상황이면 항상 용기를 내어 행동한다. 착한 마녀 글린다 역시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지 않는 자로서 블랙박스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그렇게 오즈의 마법사는 미국 사회와 역사를 모두 관통해 시대를 보듬는 이야기로 거듭난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 포함돼 있는 결핍과 딜레마라는 인간성의 문법은 AI의 특성과 미묘하게 연결된다. 그 시작은 ‘허수아비’에게서 출발한다. 결정적으로 허수아비는 뇌가 없음에도 결국 가장 현명한 조언자로 인정받는다. 거기에 더해 도로시는 메타인지의 가능성을, 양철 나무꾼은 기계화된 감정의 문제를, 겁쟁이 사자는 자율적 판단 윤리를, 착한 마녀 글린다는 딥러닝 구조의 블랙박스 특성을 답습한다. 사실 AI의 초기 연구는 1940년대에 이른바 ‘전자뇌’를 구축하려는 시도에서 시작했다. 그 시도의 실패 이후 기어이 찾아낸 딥러닝 대형 언어모델(LLMs)은 뇌 없이 작동하는 블랙박스 모듈로 완전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주변의 지식, 감정, 판단, 책임을 끊임없이 보완해 나가는 오즈의 캐릭터들, 그중에서도 특히 허수아비와 같이 작동한다. AI라는 개념조차 희박할 때 허수아비의 딜레마는 우리에게 뜻밖에 AI의 특성과 알고리즘의 은유를 예언처럼 그렇게 마주하게 한다.

[기고] 폭삭 속앗수다, 아주 수고했어요

몇 달 전 종영한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제주말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어떤 이는 사기라도 당한 것처럼 생각하다가 ‘무척 수고 많았다’라는 뜻을 알고는 실없이 웃기도 한다. 폭싹이 ‘아주 많다’는 뜻은 이미 알고 있으니 ‘속앗다’의 우리말 뿌리를 찾아보자. 먼저 ‘속’에 대해 알아보자. ①‘속’은 ‘겉과 속’과 같이 쓴다. 둘러싸여 있어 알 수 없는 안쪽 부분이 ‘속’이다. 사람으로 둘러 싸인 것은 ‘몸 속’, ‘마음 속’, ‘머릿속’ 등으로 쓰인다. 그래서 ‘속보였다’, ‘속닥속닥’과 같이 쓰여 왔다. 여기서는 ‘몸속’만을 생각해 보자. ②‘몸속’은 뱃속을 말하기도 한다. 뱃속에는 창자가 있다. ‘속이 더부룩하다’, ‘속창아리 없는’ 등과 같이 쓴다. ③감추고 있던 마음의 속내를 들키면 ‘속보였다’, ‘속 뺏겼다’라 한다. ④식물을 심어놓고 너무 배게 자라면 ‘솎아준다’. 속에 숨은 작은 녀석들을 찾아내어 ᄀᆞᆺ는(뽑아내거나 잘라내는) 것을 ‘속갓다’고 말하던 것이 ‘솎았다’가 됐다. ⑤몸속이나 뱃속에 있는 창자는 ‘애’로도 쓴다. 홍어의 내장을 탕으로 끓인 것을 ‘홍어애탕’으로 부른다. 속창자까지 힘을 쓰면 ‘애쓴다’, 속창자가 닳아질 정도로 힘쓰면 ‘애닳다’, 속창자가 타오를 정도로 힘쓰면 ‘애타다’, 속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힘쓰면 ‘애끊는다’, 속창자가 끓어오를 듯 답답하면 ‘애끓는다’고 한다. 애간장에서의 ‘간’이 넓혀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엔 ‘앗’이다. ①남의 것을 빼앗거나 가로채는 것을 ‘앗다’라고 한다. ②‘품’을 빼앗은 대신에 돈이나 먹거리를 주던 것이 ‘품앗이’이다. 주인집 아기를 품에 안고 봐주거나, 장작을 팬 뒤 장작단을 품에 안아 날라 주거나, 곡식을 거두고 그 단을 품에 안아 나르는 등의 일들은 품을 쓴다. 이렇게 자신의 품을 팔아 먹거리나 돈을 삯으로 살아가는 것을 ‘품팔이’라 한다. 우리 고유의 무술 택견에서는 자신의 품을 넓히며 밟아가는 것을 ‘품밟기’라 한다. ‘속을 앗는’, ‘속앗다’에서는 몸속의 창자까지 힘쓰도록 일을 시킨다. 품속이나 마음속을 빼앗게 된다. ①사람의 마음을 속이는 ‘속았다’는 마음이나 머릿속을 빼앗는 ‘속앗다’가 달라진 말이다. ②드라마 제목처럼 둘 다 ‘속았다’로 써도 되겠지만 몸속을 빼앗는 일은 서로 구분하기 위해서도 ‘속앗다’로 썼으면 좋겠다. 이번엔 ‘수고하다’에 대해 알아보자. ‘수고’가 우리말을 한자로 옮겨 적은 것으로 생각해보자. ‘수’를 높다는 뜻(수수, 세수, 수더분하다, 수수하다, 독수리 등)으로, ‘고’를 고기나 뼈를 곱게 고아내어 푹 삶아서 풀어지는 것(고다, 고요하다, 고즈넉하다, 고두밥, 고드름, 고운 옷 등)으로 생각한다면 ‘수고하다’는 “몸속이 많이(높게) 고아질 정도로 힘들게 일하다”는 뜻이다. ‘속앗다’, ‘애썼다’, ‘수고했다’는 말들은 제주말이 옛 우리말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예다. 턱걸이를 하면서 ‘배치기’로 속 힘을 쓰고, 팔씨름을 하면서 배에서 나오는 뱃심과 뱃짱을 부린다면 이제 제주말에 옛말이 많이 남아있는 역사도 찾아가도록 하자.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만평] 동기는 사랑이다...?!

[사설] 초 강력 규제, ‘경기 지역 풍선 효과’ 우려도

이구동성으로 ‘초강력 대출 규제’라고 평한다. 그만큼 내용이 강력하다. 주택담보대출이 6억원을 넘지 못한다. 소득이나 주택 가격에 상관 없는 한도다. 액수로 정한 대출 규제는 전례가 없다. 또 대출로 집을 사면 6개월 내 전입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서울지역 아파트 값은 119% 올랐다. 28번의 부동산 대책이 있었지만 실패했다. 이번 대출 규제의 강도를 설명하는 비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 규제 28번을 모두 합친 것만큼 강력할 것이다.’ 이번 처방을 부른 것은 주담대의 폭발적 증가다. 26일 기준 전체 금융권 가계 대출 잔액이 5천8천억원 증가했다. 월말 증가폭은 6조원대 후반 수준으로 예상된다. 사상 최대 영끌 광풍이 불었던 지난해 8월 증가폭이 9조7천억원이었다. 그 후 10개월 만의 최대 폭이다. 여기에 정부가 20조2천억원의 추경을 상정했다. 언제든 주택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유동성’이다. 이를 감안한 이재명 정부의 선제 조치다. 시장의 반응이 확연하다. 하지만 우려도 나온다. 시장 여건이 바뀌지 않았다. 경기 회복을 위한 금리 인하 기대가 여전하다. 주택 공급 부족 전망도 그대로다. 강력한 대출 규제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의 근거다.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것이 ‘풍선 효과’다. 아파트 가격이 낮은 지역으로의 시장 이동이다. 강남권과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의 이른바 ‘불장’은 주춤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 지역으로의 소비 이동이 빠르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당장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이나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가 주목된다. 여기에 우리 관심 지역인 경기도가 추가된다. 서울보다 낮기는 해도 최근 집값이 꿈틀대는 지역이 여럿이다. 성남 분당구는 정비사업이 추진 중인 서현·수내동이 올랐다. 과천시는 원문·중앙동, 하남시는 창우·학암동, 안양 동안구는 평촌·관양동이 상승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5년 6월 4주 아파트가격 동향’에서 수치로 확인된 지역이다. 수치로 잡히지 않는 ‘이상 조짐’ 지역도 여러 곳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부동산 대책은 취임 40일 만에 나왔다. 이재명 정부의 그것은 취임 24일 만에 나왔다. 내용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역설적으로 보면 부동산 시장의 이상 조짐이 그만큼 심각하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풍선 효과 우려를 언급했다. “풍선 효과가 혹여 나타나더라도 추가 보완 조치를 할 것이다.” 매주 회의를 통해 점검하겠다고 했다. 그 점검의 핵심에 ‘경기도 풍선 효과’가 있어야 할 것이다.

[사설] 최저임금 책정, 노사는 합리적 접점 모색해야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논의가 금년에도 법정 시한을 넘겼다. 관계법령에 의해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심의 요청을 받은 뒤 90일 이내 결정해야 하며, 그 시한이 어제였다. 그러나 지난 26일 제7차 전원회의가 개최됐지만 노사 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크므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다음 회의를 오는 7월1일 개최하기로 했다. 최저임금제도가 1988년 시행된 후로 법정 심의 시한이 지켜진 것은 단 아홉 차례에 불과할 정도로 최저임금 결정은 노사 간 이해가 첨예한 사안이다. 지난해도 최저임금은 법정 시한을 15일 넘겨 결정됐기 때문에 금년에도 노사 간 조정이 안 되면 결국 공익위원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7월 중순경 결정하게 될 것 같다. 이후 고시와 이의 제기를 거쳐 노동부 장관이 8월5일까지 최저임금을 확정할 예정이다. 올해도 그동안 7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노사 간 공방은 치열했다. 지난 제7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위원은 올해 최저임금(1만30원)보다 14.3% 높은 1만1천460원을 제시한 반면 사용자위원은 0.4%만 올리는 1만70원을 제안했다. 따라서 노사 간 최저임금 격차는 1천390원으로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상태다. 사용자 측은 금년도 경제성장률이 0%대인 것을 감안해야 함은 물론 경기부진으로 인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인건비 인상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최저임금 인상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미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60%에 육박해 있을 뿐만 아니라 숙박·음식업 등 일부 업종에서는 최저임금 미만율이 33.9%에 달할 정도로 현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1~6% 인상만으로도 폐업을 고려하겠다는 비율이 10%에 달하는 기업의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편 노동자 측은 2024년과 2025년 최저임금이 모두 물가 상승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정해짐으로써 노동자들의 생활이 상당히 열악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생계비는 7.5% 상승했지만, 최저임금 인상률은 2.5%에 그쳤고 산입범위 확대의 영향으로 실질 인상 효과도 제한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계는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지난 토요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 최저임금 인상을 강력히 요구했다. 최저임금 결정은 이해가 첨예한 사안이므로 일방의 입장을 밀기보다 상생 가능한 차원에서 합리적 결정을 해야 한다. 실용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새 정부의 노동정책이 최저임금 결정에 접목되기를 기대한다.

[지지대] 피자와 햄버거로 읽는 세상

미국 국방부인 펜타곤에 피자 주문이 평소보다 폭증했다. 미군의 비상대기 심야활동이 자연스럽게 피자로 이어지는 현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누리꾼이 간파한 미국의 이란 공습이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보다 빨랐다고 외신이 전했다. 우리는 야근할 때 치킨을 시키지만 미국인들은 피자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펜타곤 피자지수’의 역설이다. 패스트푸드 주문 패턴을 통해 위기 상황을 감지한다. 펜타곤 피자지수 사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3년 미국의 그레나다 침공 전날 밤에도 나왔다. 이후 1989년 파나마 침공과 1990년 걸프전을 앞두고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특히 걸프전을 앞두고는 CIA가 하룻밤에 피자 21박스를 주문한 직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발발했다. 영국에선 햄버거가 경제 상황을 가늠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특정 햄버거 브랜드인 빅맥지수가 그렇다. 지구촌 맥도널드 햄버거 가격을 미국 달러로 환산해 비교, 실질 구매력과 환율의 과대·과소 평가 여부를 파악한다. 이 지수는 ‘어느 나라 화폐가 실제보다 싸거나 비싼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예를 들어 1월31일 기준 한국의 빅맥 지수는 3.99달러로 미국(5.79달러)보다 29.8% 낮아 원화가 달러 대비 저평가 상태임을 보여줬다. 한국은 이 지수를 통해 수십년간 저평가된 통화국으로 분류돼 왔다. 피자와 햄버거라는 패스트푸드를 활용한 분석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화한다. ‘피자 주문이 많다’는 말은 긴장도의 은유적 표현이고 ‘햄버거가 싸다’는 말은 화폐 가치의 문제다. 이 같은 상징화를 통해 복잡한 정치·경제 현상을 직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적용되고 있다. 빅맥지수로 본 원화의 만성적 저평가는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제 위축이다. 정부청사 인근 배달음식 주문량이나 24시간 편의점 매출 등은 우리만의 사회적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에 숨겨진 신호를 해석하는 건 복잡한 현대 사회를 읽는 또다른 방정식이다.

[천자춘추] AI, 스포츠 필드의 게임체인저

게임체인저(Game Changer)는 게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또는 사건, 인물을 뜻하는 단어다. 인공지능(AI)은 스포츠 전반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으면서 스포츠 분야의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초기 단순한 자동화 기술에서 오늘날에는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는 형태의 AI로 발전하면서 경기 분석부터 훈련과 전략 수립 그리고 팬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스포츠의 모든 장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AI는 인간의 영역보다 더 세밀하게 선수 개개인의 움직임, 속도, 힘, 정확성 등을 정밀하게 분석한다. 기존의 감각에 의존하던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 구축을 가능하게 한다. AI 기반 선수 분석 시스템은 선수의 강점과 약점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스포츠 현장에서는 이미 코칭 전략 수립에 AI가 활용되고 있다. 비디오 분석과 실시간 데이터 해석 기술은 경기 중 상황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경기 결과 예측과 전략 조정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특히 심판 판정에서 AI의 역할은 오심을 줄이고 공정성을 높이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선수 스카우트와 유망주 발굴에서도 AI의 힘은 강력하다. 신체능력, 경기 데이터, 성장 곡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를 예측하고 추천할 수 있다. 이는 엘리트 스포츠뿐만 아니라 유소년 육성과 아마추어 스포츠 시스템에도 큰 전환점을 제공하고 있다. AI는 팬 서비스 분야에서도 강력한 도구로 활용된다. 팬의 관심사와 행동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경기 정보, 하이라이트 영상, 뉴스 등을 제공하고 경기 중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몰입감을 높여주고 있다. 기존에는 없었던 신선한 관전 경험을 제공하면서 스포츠 소비 형태의 변화와 함께 스포츠산업에서 새로운 시장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처럼 AI는 스포츠 분야 곳곳에 자리 잡으며 공정성에 대한 원칙적 부분을 다루는 것부터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나아가 팬 경험까지 혁신하며 스포츠마케팅 영역까지 장악하고 있다. AI 같은 기술적 변화가 스포츠 생태계 전반에 긍정적인 보조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열린 자세로 그에 맞는 제도적 준비와 윤리적 기준 마련도 병행해야 한다. AI를 활용한 변화의 주도권을 통해 K-스포츠 시대를 열어 대한민국 스포츠의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해 볼 시점이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