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문화의 힘이 나오는 바탕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가 출범했다. ‘진짜 대한민국’을 표방하며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K-컬처를 통한 신성장 에너지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당면한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소위 ‘잘사니즘’을 실현하기 위해 현 정부는 대선 시기에 세 가지 성장 에너지를 제시했다. 인공지능, 재생에너지, 그리고 K-컬처다. 문화가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중요한 영역이라는 인식 아래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이다. 문화의 힘을 이처럼 중요하게 인식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매출액은 153조원에 달한다. 문화 콘텐츠를 잘 만들어 세계시장을 점유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며 미래 먹거리를 생산하는 전략은 현 시대에 부합한다. 현대 산업은 제조업 기반 산업 시대에서 지식 기반 산업 시대로, 다시 인공지능·사물인터넷(IoT)·빅데이터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발전해 왔다. 지금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닌 창의성이다. 창의성의 힘으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이를 위해 창의적인 K-컬처 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타당한 성장 전략이다. 그러나 K-컬처는 문화산업 시스템 자체에 대한 투자와 육성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강력한 지원을 통해 창의적 시도와 도전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 있는 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일이 K-컬처 활성화의 전제이자 본질이다. K-컬처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힘은 기술이 아니라 창의적 서사와 보편적 공감대 형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시대적 아픔에 대한 공감과 성찰 없이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불가능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 격차에 대한 통찰과 풍자 없이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작품상 및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초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과 육성이 동반돼야 K-컬처가 세계 시장에서 이른바 ‘잭팟’을 터뜨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이는 현 정부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사실이다. 또 지역문화를 진흥하고 생활문화를 육성함으로써 국민들의 삶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다. ‘문화’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활양식이며 함께 공유하고 지켜 나가는 가치 체계다. 지난 정부 때 ‘지역문화진흥원’ 사업이 대폭 축소됐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문화를 창조하는 일이 중단되고 관료가 주도하는 분위기로 변해 버린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이를 빠르게 복구해 지역주민들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자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주도성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문화가 형성되고 창의적인 인물들이 많이 배출된다. 창의적인 인물이 많아야 K-컬처가 성공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K-컬처 성공의 두 번째 조건은 바로 지역문화 진흥과 생활문화 육성을 통해 ‘문화자치’ 시대를 여는 것이다. 기초예술에 대한 강력한 지원, 지역문화 진흥 및 생활문화 육성을 통해 문화자치 시대로 나아가는 변화야말로 K-컬처 성공의 전제이자 본질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재명 정부의 문화 정책이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세상읽기] 디지털 리터러시와 소비역량

10여년 전만 해도 우리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직접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줄을 서서 결제하는 풍경에 익숙했다. 이제 소비는 더 이상 그런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모바일 앱, 소셜 플랫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공지능 추천 시스템을 통해 소비가 이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격 비교만 잘한다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계된 디지털 소비 환경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지켜야 할 책임자가 되고 있다. 그래서 진짜 필요한 것은 소비자 역량이다. 수많은 디지털 정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상품의 성능, 가격, 환불 조건, 후기 등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디지털 콘텐츠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안전하게 내가 원하는 조건을 구매할 수 있고 결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피해를 당했을 때 문제를 적극 해결할 수 있는 권리와 책임에 대한 역량까지 모두 포괄하는 것이 바로 디지털 리터러시다. 디지털 리터러시와 정보 판단 능력이 부족한 소비자는 허위광고나 과장 마케팅에 쉽게 속거나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최근 ‘구독경제’가 소비생활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의 소유 중심, 일회성 소비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원하는 콘텐츠와 상품,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구독 서비스가 일상화됐다. OTT 등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음악 스트리밍, 전자책, 쇼핑 멤버십, 식료품, 학습 서비스 등 서비스 범위도 확장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은 평균 3.4개의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월평균 4만원, 연평균 5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한두 개의 소액 구독은 가벼워 보여도 구독 서비스 수가 늘어나면 관리와 지출에 대한 부담이 증가하는데 최근 조사에 따르면 71%에 달하는 소비자가 구독 서비스 관리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시스템에는 해지는 어렵고 유지되기 쉬운 구조가 숨어 있는데 이처럼 소비자의 행동을 교묘히 유도하는 ‘다크패턴 (Dark Pattern)’이라는 설계 전략이 있다. 다크패턴은 소비자가 불리한 선택을 하도록 의도적으로 설계된 UI(사용자 인터페이스)·UX(사용자 경험)를 말한다. 최근 구독경제 서비스에서 다크패턴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무료 체험을 미끼로 결제 정보를 미리 입력한 뒤 체험 종료 후 별도의 고지 없이 자동 유료 전환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해지하려 해도 버튼은 보이지 않고 웹사이트를 몇 번이나 클릭해야 겨우 연락처를 찾을 수 있거나 고객센터는 연결되지 않고 ‘다음 결제일 하루 전까지 해지 가능’이라는 말만 화면에 남기도 한다. 일부 서비스에서는 저렴한 요금제를 작은 글씨나 접힌 메뉴에 숨기고 가장 비싼 요금제를 화면 중앙에 노출해 소비자를 유인하기도 한다. 다크패턴은 소비자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유도하기도 하고 이러한 구조적 불합리함에 소비자들이 대응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해지 방법을 찾지 못하거나 약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며 귀찮음과 불안감에 해지를 포기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는데 이는 단순히 서비스의 불친절함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소비자 자신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디지털 소비 환경에서 소비자는 매우 적극적인 주체가 돼가고 있다. 자신과 관련된 데이터 활용에 대해 주체적인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마이데이터)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센터에 이의를 제기하고 공정거래위원회나 한국소비자원 등 관련 기관을 통해 구제를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 SNS, 쇼핑 앱 등이 끊임없이 ‘지금 사야 한다’는 충동을 자극하지만 소비자는 한발 물러서 그것이 진짜 필요한지, 나의 가치와 맞는지, 지속가능한 소비인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미래를 위해 필요한 소비자 역량이다. 소비는 단순한 구매 행위가 아니다. 소비는 삶의 방식이며, 사회에 대한 태도이며, 나의 가치관이 드러나는 선택이다. 그 선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읽는 눈, 권리를 지키는 힘, 가치를 판단하는 지석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소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소비자는 플랫폼 속의 타깃이 될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비가 아니라 더 똑똑하고 더 주체적인 소비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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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4.5일제 타임라인, 경기도·정부가 조금 다르다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주 5일 근무제였다. 노동집약형 산업화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생산성을 맞출 수 없다는 기업의 우려가 컸다. 흐름은 이미 주 5일제로 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인 2002년 7월 시중은행이 도입했다. 노무현 정부인 2003년 8월 근로기준법에 명시됐다. 2011년까지 차례대로 실시됐다. 시범 실시부터 전면 시행까지 9년이나 걸렸다. 노동 일수 변화라는 게 그렇다.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다. 십수 년이 흘렀고 이번에는 ‘주 4.5일 근무’다. 사회적 논의는 꽤 진행됐다. 여러 지자체에서 간헐적 시행도 있었다. 행정기관 또는 산하기관에 한정됐다. 이번에 제대로 된 실시가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19일 참여 업체의 협약식이 있었다. 민간 기업 67곳 등 68곳이다. 노동자 입장에서 환영은 당연하다. 자기 만족도 상승, 퇴사율 감소 등 효과도 기대된다. 관건은 임금 삭감 없고 생산성 저하 없이 시행할 수 있느냐다. 경기도는 이 구멍을 일단 재정으로 채우고 있다. 노동자 1명에게 11만~26만원씩 지원한다. 단축하는 시간에 따른 차이다. 이와 별개로 기업에 2천만원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근태 관리 시스템 구축 등의 명목이다. 눈에 띄는 건 시범실시다. 2027년까지 3년을 정했다. 운영을 통해 효율성, 보완점 등을 점검하기로 했다. 그 사이 참여 기업이 늘 수도, 줄 수도 있다. 유연성을 갖고 제도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자는 취지다. 많은 것을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입되는 재정이 감당 가능한지도 봐야 하고, 기업의 생산성 변화가 어떨지도 봐야 하고, 국제 경쟁력에 미칠 파장도 봐야 한다. 3년간의 시범 실시는 그래서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고용노동부가 같은 계획을 들고 나왔다. 국정기획위원회 보고에서 밝혔다. 주 52시간 법정 근로시간을 48시간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연장 근로 허용 시간도 단축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실근로시간 단축 지원법’ 제정 계획도 밝혔다. 입법 시한을 ‘올 하반기까지’라고 못 박았다. 공교롭게도 동시에 나온 경기도·노동부 발표다. 경기도는 ‘시범실시’, 고용노동부는 ‘전격 도입’이다. 충돌·흡수 우려가 있다. 또 하나, 현대차 노사 협상도 변수다. 20여년 전 ‘주 5일 근무제’의 기폭제는 현대차 노조였다. 2003년 8월 노사 타협이 물꼬를 텄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18일 임단협 상견례를 가졌다. 노조가 내놓은 의제에 ‘주 4.5일제 도입’이 있다. 타결 여부에 따라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거듭 밝히지만 ‘주 4.5일제’는 신중해야 한다. 준비하고 실험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기도가 마련한 절차가 적절해 보인다. 김동연 지사가 10일 이렇게 말했다. “경기도는 국정 성공의 견인차이자 테스트베드다.” ‘주 4.5일제 시범실시’가 그런 사업일 수 있다.

[사설] 다시 반지하 침수 걱정... 기후변화 시민안전망 짜야

본격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지난 주말 인천에도 174㎜의 폭우가 쏟아졌다. 곳곳에서 도로, 주택이 잠기고 토사 유출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예전의 장마와는 사뭇 다른 시대다. 한번 내렸다 하면 폭우, 호우다. 그간에 쌓아온 홍수 인프라가 감당해내지 못할 정도다. 3년 전 장마 때는 곳곳에서 반지하 주택들이 물에 잠겼다. 물이 차오르는데도 피하지 못해 인명피해까지 났다. 깜짝 놀란 정부·지자체들이 ‘반지하 퇴출’ 정책까지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가 일어났다.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 지하차도에 차들이 갇혀 14명이나 사망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참사라는 것이 문제다. 올해 인천의 6~8월 강수량은 평년(622.7~790.5㎜)보다 더 많을 확률이 40%라고 한다. 기상청 등이 최근 5년간 인천의 최대 강수량 등을 분석한 결과다. 그러나 반지하 주택에 대한 침수 대책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인천시는 2018년부터 반지하 주택에 대한 물막이판·역류방지밸브 설치 지원에 나섰다. 2017년 남동구 구월동의 반지하 주택 침수로 90대 노인이 사망하면서다. 그러나 지난 7년간 물막이판 설치 실적은 아직 9% 수준이다. 인천 전체 반지하 주택 2만4천207가구 중 2천193가구다. 실제 지난 주말 폭우 때도 미추홀구 주안동 일대 반지하 주택 골목의 경우 대부분 물막이판이 없었다고 한다. 역류방지밸브 설치도 4천879가구(20.1%)뿐이다. 침수 시 반지하 주민의 대피를 돕기 위한 개폐식 방범창도 993가구(4.1%)만 마쳤다. 반지하 퇴출을 위한 임대주택 이주 지원도 지지부진하다. 인천의 주거취약가구 1천803가구 중 실제 이주는 520가구(28.8%)에 그쳤다. 이주 임대주택이 기존 거주지와 멀거나 보증금·월세 부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택 침수로 인한 피해 보험금 지원도 매년 발생한다. 2022년 585건, 2023년 51건, 2024년 61건 등이다. 인천시는 보험금 지원 이외의 침수 피해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본다. 물론 개인 주택에 일률적으로 침수방지 시설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집주인들은 설치를 거부하기도 한다. 실내 공사이기도 하고 침수 우려 주택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한다. 지자체로서는 고령자, 장애인 등 안전취약계층을 우선해야 하는 사정도 있다. 그러나 이제 침수 사태 걱정은 발등에 불로 다가와 있다. 인천시와 지자체는 침수 우려 가구를 추가로 발굴하고 실시간 모니터링에 집중해야 한다. 기후변화 시대에 걸맞은 촘촘한 시민안전망이 시급하다.

[지지대] 문화 강국, 앞으로는?

케이팝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대중음악은 꽤 오래전 미국에 진출했다. 한국 대중음악 최초의 미국 진출작으로 알려진 옥두옥(본명 김문)의 ‘이스트 오브 메이크 빌리브’(1957년)다. 그는 1940년대 국내서 활발하게 활동하다 재미교포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가수 활동을 제안받고 현인의 대표곡 ‘고향만리’의 영어 버전을 취입했다. ‘대한민국=문화 강국’이 연일 국내외에서 오르내린다. 방탄소년단(BTS)의 귀환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세 번째 시즌 공개 예고, 한국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6관왕 등으로 또 한번 조명받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21일 한국을 ‘문화 강국(Cultural Powerhouse)’으로 소개하며 다시금 전 세계를 사로잡은 한류에 주목했다. 제목은 이렇다. “한국은 어떻게 문화 강국이 됐고, 앞으로는?” 새 정부는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하며 ‘문화 강국’ 도약을 선언했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18일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K-컬처 시장 300조원 시대, 문화 수출 50조원, 글로벌 소프트파워 빅5 등을 대통령 임기 내 달성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문화예술 정책이 관심을 받으면서 업계의 자부심도 어느 때보다 크다. 후순위로 밀려나기 일쑤였던 문화예술에 대한 대접이 이제는 좀 달라질까 기대하는 눈치다. 현장 문화예술인들의 비관론은 쉬이 가시지 않는다. 문화예술 정책이지만 경제 성장 정책인 듯 산업과 경제적 이익, 가시적인 성과의 구호가 여전히 더 눈에 띄어서다. 흔히 문화 강국으로 미국, 프랑스, 중국, 영국, 일본 등을 꼽는다. 막대한 기술과 경제력, 문화 콘텐츠 생산 및 유통 능력 등 문화 강국의 요인은 여러 갈래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오랫동안 일궈온 역사, 풍부한 문화 유산을 바탕으로 활발한 창작과 생태계가 오랜 시간, 차곡차곡 견고하게 조성됐다는 점이다. 문화 강국을 추진하는 정부가 유념해야 할 지점이다.

[기고] 무료 공연에 숨겨진 ‘기만상술’ 근절하자

유명인의 무료 공연을 빙자한 상조업체의 홍보가 도를 넘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소비자를 유인하는 상술이었지만 여전히 유명인의 무료 공연, 무료 강연을 빙자한 상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무료 공연이나 강연을 한다는 유명인 중에는 내로라하는 소위 셀럽인 유명 가수와 유명 강사가 등장한다. 상술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선 유명인의 ‘무료’ 공연 및 강연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광고하고 홍보한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니 진행 순서가 나와 있는데 입장하면 30분간 레크리에이션 후 1시간30분 동안 상조회사 홍보가 진행되고 그 후 유명인의 강의나 공연을 볼 수 있다. 대개 그렇듯이 그런 상술로 인한 피해자는 고령자가 대부분이다. 홍보하는 상조업체들은 대놓고 ○○세 이상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광고한다. 아무리 냉정한 사람이라도 자식보다 살가운 ‘친절’과 솔깃한 혜택을 통한 가입 ‘유혹’, 반복되는 회유와 강권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유명인의 공연, 강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해 주니 뭐라도 갚아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작동하기 마련이다. 현장에서의 가입 할인 혜택과 참석한 옆자리 사람들이 가입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판매원들의 애원어린 사정을 반복해 받으면 거의 다 넘어간다. 독한 마음으로 그 장소를 박차고 나오지 않는 한 바늘방석에서 2시간 이상을 버텨야 하니 참 고역일 것이다. 기만 상술에 동원되는 유명인 셀럽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그들은 자신이 상조업체의 홍보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또 순수하게 무료로 공연이나 강연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출연료를 받는다면 그 돈은 무료공연·강연으로 믿고 그 자리에 참석한 순진하고 선량한 고령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공연 강연을 기획하는지 확인해보고 소비자를 유인하는 상술에 이용되는 공연·강연이라면 단호하게 거절하길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 소비자는 홍보하는 상조업체가 아니라 유명인 자신을 보기 위해, 유명인을 신뢰하고 그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소비자가 피해를 입으면 유명인이 책임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선량한 소비자는 무료라는 기만적인 수법에 현혹돼 상조서비스 회원에 가입하는 것이고 유명인은 그런 상술에 동원된 주인공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다. 셀럽이라면 돈보다는 명예가 중요하지 않을까. 상술이 동반된 공연이라면 출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셀럽, 스스로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아울러 소비자정책을 담당하는 정부 및 지자체와 사법기관에서도 이런 기만상술이 근절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감시해야 하며 관공서의 공간이 기만상술 기업의 홍보장으로 대관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산책] 다크투어리즘에서 배우는 교훈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과 하마스,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 소식은 먼 중동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여파는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이 곧 인류의 역사라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역사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왜 그 아픈 역사를 반복하게 되는지에 대해 성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 명언은 우리가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우리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그 방법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다크투어리즘이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 재난, 대형 참사 등 아픈 역사의 현장을 관광의 대상으로 삼아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되새기고 배우는 관광 형태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반성하며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는 중요한 과정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크투어리즘 명소로는 유대인들이 학살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 조성된 평화기념공원, 전 세계가 놀란 9·11 테러가 발생한 옛 무역센터 자리에 세워진 그라운드제로가 있다. 우리나라에도 다크투어리즘 명소가 많이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했던 서대문형무소, 6·25전쟁 중 포로들이 수용됐던 거제포로수용소, 남북 간 극한의 대치 속 접경지역에서 발견된 땅굴과 판문점, 미군의 사격장이었던 화성 매향리에 조성된 평화생태공원 등이 대표적이다. 전쟁 외에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마련된 안산 단원고의 기억교실과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문이 자행된 남영동 대공분실을 보존한 민주화운동기념관, 광주의 전일빌딩도 다크투어리즘 자원이라 할 수 있다. 다크투어리즘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명확하다. 아픈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로 인한 상처와 피해는 오랜 시간 지속되며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에 철저한 예방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외 정세를 보면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잘 선택하고, 그들의 권한 남용을 감시하고 끊임없이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과 깨어 있는 국민들의 의식이 필요한 것 같다. 언젠가 전쟁을 겪은 세대가 한 발짝 물러서야 우리나라가 더 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전쟁세대는 생존을 위해 가족과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지만 이제는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겪었던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인간성을 말살하는 혹독한 전쟁을 경험하고도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이뤄낸 우리 윗세대의 경험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기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크투어리즘 명소들이 단순히 현장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담아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크투어리즘은 단순한 관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과거의 비극을 기억하고 그로부터 교훈을 얻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부디 아픈 역사가 이 땅에 반복되지 않기를,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게도 평화로운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경기시론]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 게토화 막아야

행정안전부는 기초지자체 중 외국인 주민이 1만명 이상이거나 총 주민인구 대비 외국인 주민 비율이 5% 이상이면 외국인주민 집중거주지역으로 지정한다. 2023년 기준 집중거주지역은 226개 기초지자체 중 127개(약 56%)에 있고 집중거주지역의 37.7%가 수도권에 있다. 특히 경기도 기초지자체 31개 중 77%(24개), 서울시 기초지자체 25개 중 72%(18개), 인천시 기초지자체 10개의 60%(6개)가 집중거주지역으로 수도권이 전국평균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민정책연구원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집중거주지역에서 외국인주민 유입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에서 공공질서와 안전 분야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지자체의 예산이 공공질서 분야에서 1%, 안전 분야에서 2.6% 증가했다. 이민자의 집단 거주가 범죄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증가가 취약하지만 집중거주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범죄에 대한 불안감과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수송 및 교통 분야의 예산이 4.5% 감소하고 문화 및 관광 분야의 예산은 42.5% 감소했다. 이는 지자체가 예산의 한계 등으로 인해 집중거주지역에서의 거주기반 개선보다는 공공질서와 안전 분야에 행정역량을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집중거주지역의 경우 이민자가 정보를 취득하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이민자의 수요를 반영한 상권 형성 등에도 기여한다. 반면 집중거주지역의 게토화는 이민자의 정착과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한국 언어, 문화 등을 학습할 기회를 줄여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지체시키며 그 지역 자체가 주류사회와 분리되거나 주변화될 우려가 있다. 주요 선진국의 게토지역에 대한 연구결과를 보면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Nabihah 등은 집중거주지역에서 주택의 게토화까지 진행된다면 오히려 스트레스 증가, 보건환경의 악화 등과 같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Hynsjo and Perdoni 등의 연구 결과는 미국에서 게토지역 낙인 효과로 인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기회가 감소함을 보여 준다. Koster and van Ommeren의 네덜란드 게토지역 연구 결과와 Andersson 등의 스웨덴 게토지역 연구 결과는 게토지역의 집값 하락으로 인해 상대적 매력도가 떨어지면서 주민 구성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Davezies 및 Garrouste 등은 프랑스에서 게토지역 낙인효과로 인해 부유한 가정은 공립학교 대신 사립학교 또는 다른 지역의 학교로 보내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한다. 법무부·통계청의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60.5%가 300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거주환경을 가진 지역에 집중 거주하거나 거주할 가능성이 높게 된다. 그렇다면 집중거주지역의 게토화를 방지하면서 지역균형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첫째, 게토화가 진행되는 지역일수록 공공형 재개발을 확대해 국민은 물론 정주자격을 갖춘 이민자를 위해 저렴한 공공형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의 보급을 확대하고 도로 정비, 교육, 직업훈련, 보건과 문화서비스 등의 공공 서비스를 제공해 거주환경을 개선해야 한다. 이러한 거주환경의 개선은 지역의 비교우위산업 육성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고 소비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지자체에서 마을 단위 사회통합 전담관을 둬 정기적으로 이민자의 고충을 상담하고 국민과 이민자 간의 교류 창구를 제공하며 중앙부처, 지자체, 대학, 산업계, 비영리기관 등 간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외국인을 고용하는 사용자는 그 외국인이 주말 등에 한국 언어, 사회 등에 관한 교육프로그램을 수강할 수 있도록 배려, 이민자가 국내 생활에 빨리 적응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 정부에서 지역특화비자 또는 광역비자 등을 통해 국내에 정주하는 이민자를 유치하고 정착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할 때 특정 지역이 게토화되지 않도록 필요한 예방대책과 사후관리 방안이 포함되기 바란다.

[천자춘추] 사방공사로 망가진 계곡

어릴 적 여름, 계곡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차가운 물살을 따라 송사리를 쫓고 돌 틈에 숨은 가재를 잡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흐르는 물소리와 햇살에 반짝이던 물방울, 아버지 손에 이끌려 갔던 천렵은 단순한 유년의 추억이 아니라 살아있는 자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 계곡은 콘크리트 바닥에 물이 조금 흐르는 ‘정비된 공간’일 뿐이다. 물이 고여 있지 않고, 돌부리도 없고, 물고기도 사라졌다. ‘계곡 정비’라는 이름 아래 전국의 산간 계곡이 굴착기로 파헤쳐지고 있다. 이른바 사방공사다.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해 설치된 사방댐은 계곡을 가로막고 바닥은 평평하게 정리된 후 콘크리트로 덮인다. 현장에서는 토사 유출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과정에서 돌과 흙, 뿌리와 생명, 물소리와 기억이 함께 제거된다. 그런데 잠깐, 묻고 싶다. 토사는 왜 내려오는가. 수천년간 멀쩡하던 계곡이 왜 갑자기 무너지는가. 해답은 계곡 아래가 아니라 상류에 있다. 도로가 생기고, 건물이 들어서고, 주차장이 만들어지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모두 아래로 쏟아져 내리게 된 것이다. 공학적으로는 이를 ‘유출계수 증가’라고 부른다. 같은 비가 내려도 예전보다 세 배 가까운 양이 계곡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토사를 막는답시고 계곡을 덮는 것은 결국 증상을 가리는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만 막는 방식은 예산 낭비이자 자연 파괴이며 무엇보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는 작은 물줄기, 즉 지류와 경사면에 ‘물모이’라는 작은 물웅덩이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계곡은 하나의 선(線)처럼 물이 집중돼 흐르지만 경사면 곳곳에 물모이가 생기면 그 물이 흡수되거나 증발돼 결국 계곡으로 내려오는 물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물모이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것이 수십 수백개로 늘어나면 계곡으로 유입되는 물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상류 지역에서 빗물이 급속히 내려오도록 만든 구조적 원인을 줄이기 위해 건물 옥상이나 주차장 등 불투수면을 만들 때는 적절히 설계된 빗물저금통(저류조)을 설치해야 한다. 빗물을 저장하고 천천히 흘려 보내면 하류 계곡의 유출량 증가와 토사 유실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 최근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우리는 자꾸 더 큰 장비, 더 단단한 구조물로 대응하려 한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것은 돌 하나, 흙 한 줌의 소중함을 아는 감각이다. 계곡은 물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지만 사람의 기억과 자연의 질서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장비가 들어간 계곡엔 더 이상 추억도, 생명도, 미래도 흐르지 않는다. 우리 후손에게 이런 풍경을 물려주지 않도록, 그 비용마저 떠넘기지 않도록 지금 우리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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