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도자왕국의 꿈

우리 도자기에는 깊은 맛이 있고 그윽한 사람의 체취가 느껴진다. 특히 활달하고 분방한 분청자기가 그러하다. 반면 중국도자기에서는 빡빡한 기계의 냄새가 묻어난다.

오래전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의 한국도자기 전시를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갔던 일이 기억난다. 당시 그 박물관 관장은 한국 도자기의 오묘한 매력에 심취해서, 어떻게 하면 한국도자기의 멋과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새로운 전시방법을 이끌어냈다. 도자기 원래의 색을 내기 위해 햇빛조명을 진열장 안으로 끌어 들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지금 경기도내 3개 도시에서 ‘세계도자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어 도자기 천년왕국의 아련한 꿈이 되살아나고 있다. 광주는 왕실에 기물을 납품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되어 있던 유서깊은 고장이고, 이천 여주는 또 다른 본거지이다. 여주 중암리나 용인 서리에서 청자와 함께 고려초기에 이미 백자가 생산되었고, 광주, 이천지역에는 백자나 분청가마터가 밤하늘의 별처럼 촘촘히 박혀 있다. 가히 도자왕국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도자기의 맛은 과연 어떤 것일까.

차디찬 유리질 표면의 도자기에 무슨 맛이 있겠는가 하고 일반인들은 관심조차 갖지 않을게다. 전통백자의 흰색이 요즘 값나가는 일제 노리다케 찻잔의 투명한 빛보다 탁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백자명품중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조선중기 금사리가마에서 생산된 우유빛 백자의 그윽한 맛을 설명하기에 어설픈 설명은 오히려 방해가 된다. 사람손으로 만들어졌지만 가식적인 인공미보다 하늘이 내린 자연미를 추구한 것이 우리의 도자미학이다.

작년 가을 도자비엔날레 관계자와 함께 시카고공예박람회(SOFA)를 참관했다. 호수에 면한 대형행사장에 미국의 도자예술계를 망라하는 작가, 미술인, 화상 등이 총집결하였고, 명성에 걸맞게 훌륭한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뿐만 아니라 유럽문화에 대해 콤플렉스가 깊은 미국인들이 도자예술 자체를 즐기고, 생활용기로 애호하고, 도자행사를 통해 사교적 만족을 얻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비긴다면 오늘의 우리는 값싼 일회용품이나 합성수지제품의 홍수 속에서 내일을 포기하고 문화를 멀리하는 뜨내기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는 천년도자왕국의 훌륭한 유산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요근래 가장 성공한 TV기획물 중에서 ‘세계속의 우리 도자기’를 다룬 프로가 있었다.

몇 년에 걸친 준비기간과 고증, 그리고 넘치는 기획력을 보여준 수작이었다. 뿐만 아니라 비록 화면으로나마 그 옛날 세계를 누볐던 도자무역을 통해 국민들의 꿈과 자존심을 마음껏 살려준 한편의 드라마였다. 거기서 보았듯이, 우리 민족이 살 길은 세계로의 진출이요 도전이다. 그래서 해상왕 장보고가 새롭게 조명되고, 무역을 통해 부와 권력을 축적한 고려태조 왕건가(家)의 저력이 실감난다.

지금은 꺼져버린 천년왕국의 명성을 이어나갈 돌파구가 도자분야에서 앞으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옛날 도자의 명성에 필적할 새 시대의 명품이 과연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반도체칩일까, 핸드폰 세트일까 아니면 또다른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중국 도자기를 통해서 서양세계는 또다른 문화충격을 받았고, 엄청나게 새로운 변신을 시도했다. 그것이 미국 시카고의 SOFA로 구체화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일회성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속에 도자가 다시금 뿌리내리게 할 결정타는 없는가. 예술과 생활의 경계 속에서 고민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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