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를 청소하는 날 김미희(화성 팔탄초등5) 4월 22일 물의 날이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학교 앞 냇가로 청소를 하러갔다. 모두 질서정연하게 갔다. 길가의 새싹들이 나오려고 하는 모습을 보니 귀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은 빈 들녘인 논에는 모를 심기 위해 논바닥을 태운 검은 재가 있었다. 얼마 후면 모를 심어 푸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피어난 민들레와 냉이 꽃은 자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날아가는 나비를 따라 서서히 뛰기 시작했다. 선생님께서 뛰어 가라고 해서 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와 보는 들이 좋아서 뛰었다. 선생님께서는 다친다고 뛰지 말라 하였다. 뛸래요 하고 웃으며 뿌리며 앞서거니 뒷 서거니 달려나갔다. 냇가에 도착하니 기분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기대했던 만큼의 섭섭함이 있었다. 깨끗한 줄 알았던 냇가가 쓰레기장 같이 쓰레기가 많았다. 또 음식 쓰레기의 썩은 냄새도 진동을 했다. 그때 비로소 ‘아! 우리 사람들이 냇가를 잘 보호하지 못하고 있구나!”하고 느끼게 되었다. 냇가를 다 둘러보았다. 우리가 냇가를 청소해야 하는 설명을 듣고 자루와 집게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모두 더 많이 주우려고 뛰어다니고 찜이라 불리는 놀이도 하면서 청소를 하였다. 자루를 갖고 있는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주운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였다. 또 서로 같이 주우려한 것을 “내가 먼저 주었어.”“아니야, 내가 먼저 주었어.”하며 열심히 청소하였다. 손에 지저분한 것을 묻히기 싫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기섭이는 커다란 카패트를 주워 오면서 끙끙대었다. 모든 어린이가 쫓아가서 같이 잡아 당겨 끌고 와서 면사무소에서 나온 쓰레기차에 실었다. 훈준이는 물 속에 있는 쓰레기를 주우려다 빠지기도 하였다. 빨리 다니는 다리로 바꾸었다 생각하고 나도 열심히 움직였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이라 많이 움직이다보니 등과 옷, 몸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지친 친구들은 한 두 명씩 주저앉고 있었다. 휴식 시간이다 잠깜만 쉬었다 하자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냇가 위에 있던 약수터로 올라가서 물 한 모금씩 먹었다. 몸 속이 시원해졌다. 약수터 옆 의자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혔다. 잠시 후에 보이는 쓰레기는 모두 다 주었다. 열심히 해서 쓰레기 담는 자루를 가득 채웠다. 청소를 다하니 선생님께서 “더운데 고생했구나”칭찬을 해주셨다. 또 우리가 청소를 한 후 냇가를 보니 너무나도 깨끗해 보였다. 냇가를 깨끗하게 한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학교로 돌아오면서 몇번을 뒤돌아보았다.
오솔길 송현용<동수원초등1> 작년에 시골 할머니댁은 오솔길이 있었다. 오솔길은 아주 좁았다. 하지만 사람이 걸을 수는 있었다. 오솔길을 지나면 할머니댁 고추밭이 있었다. 오솔길은 조심해서 걸아야 한다. 왜냐하면 길이 좁기 때문이다. 올해는 가 보니 오솔길이 없어졌고 차길이 생겨서 오솔길을 못보고 왔다. 참 서운했다.
경복궁 최수경<성남 분당초등3> 우리는 가을 소풍으로 박물관이 있는 경복궁에 가게 되었다. 경복궁에 가지 전에 운동장에 반별로 모였다. 그리고는 버스에 탔다. 아저씨께서 음악을 틀어 주셨다. 그리고 나는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해보고, 또 해보았다. 첫번째로 생각한 것은 박물관에 무엇들이, 아니 새로운 것이 있는지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궁금해 많이 생각을 해서 너무 알고 싶었다. 박물관에 도착해서 아이들과 함께 민속 박물관에 도착해서 아이들과 함께 민속 박물관으로 들어 가는데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두근 뛰고 마음이 서둘러 졌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니 옛날의 문화들이 한 눈에 쫙 깔렸다. 나룻배, 농기구 등이 있었다. 그리고 옆통로로 들어가면 제2전시실이 나온다. 2전시실에는 은장도, 노리개, 그리고 베틀로 옷감을 짜는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교과서에 있는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신분에 따라 입는 옷. 그런 것들을 보았다 그 뒤에는 선생님과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다. 김밥을 꺼내고, 그리고 과자, 음료수를 꺼내 점심을 같이 나눠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조끼리 모여서 다니라고 선생님께서 3곳만 가서 조사해 오라고 하셨다. 5조는 3명 3명씩 짝을 지어서 다녔다. 그런데 여자가 어디로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여자를 겨우 찾았다. 3곳을 다 보고 나서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버스에 타는데 내 짝이 딴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태원이와 앉게 되었다. 가면서 애들한테 과자를 달라고 해서 먹었다. 경복궁에서 궁금증도 해결하고, 새로 본 것도 많아서 좋았고, 친구와 사이좋게 했던 것이 좋았다.
놀이터 신경선<수원 효성초등2> 우리 아파트에는 놀이터가 많습니다. 놀이터에 가면 여러가지 놀이기구가 있습니다. 시소, 철봉, 그네, 미끄럼틀, 뱅뱅이 모두 재미있는 놀이기구입니다. 놀이터에 오면 친구들과 여러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어린아기들은 잘 걷지도 못하고 뒤뚱거리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싱글벙글 웃습니다. 친 구들은 모래로 소꿉놀이도 하고 두꺼비집짓기 놀이도 하고 얼음땡 놀이도 합니다. 나는 그네를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네를 타면서 하늘을 보면 가슴이 상쾌해 집니다. 친구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도 합니다. 나는 친구들과 놀이터 밖에서 롤러브레이드를 잘탑니다. 재미있게 놀고 나서 모래를 털고 집으로 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께 꾸중을 듣기 때문이다. 모래를 털고 손발을 씻는 것이 귀찮지만 나는 놀이터가 참 좋습니다.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수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일잔치를 하고 놀때는 더욱 좋습니다. 왜냐하면 친구들도 많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놀이터에는 농구대도 있습니다. 오빠들은 농구를 땀이 나도록 많이 하고 갑니다. 우리 오빠도 친구들과 많이 하고 일요일에는 아빠와 같이 놀이터에 가서 농구를 합니다. 나는 농구를 잘 못하여서 옆에서 누가 더 많이 넣는지 세어 봅니다. 농구를 다하고 나면 아빠는 나와 같이 시소도 타고 그네도 밀어주십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빠가 바쁘셔서 같이 놀이터에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혼자 놀이터에 가서 그네를 탔습니다. 아빠가 하시는 일이 다 끝나면 아빠와 놀이터에 가서 재미있게 놀 것입니다.
국가에서 처음엔 떠들썩하게 지정만 해놓고 정작 보존·관리는 부실한 문화재정책때문에 연천군 전곡리 178 일대 23만여평의 구석기 유적지가 훼손위기에 처했다. 기원전 50만∼30만년전의 유적지로 인정받아 1979년 사적 제268호로 지정된 전곡리 유적지는 지금도 세계 학계의 지대한 주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1978년 세상에 처음 알려진 이후 1996년까지 주먹돌도끼, 돌찍개, 돌글개, 고인돌 등 구석기 유물이 1만여점이나 출토된 그야말로 선사시대 유적의 보고(寶庫)다. 하지만 20여년째 방치돼 지금은 유적지에 잡초만 무성하고 1천여평의 유적지 발굴현장에도 울타리와 현황판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유적 관리인이나 안내인도 없다. 유적지에는 벽돌공장터와 폐가옥들이 흉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연천군에는 신석기시대에서 금석병용(金石倂用)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고인돌(支石墓)도 30여기가 있지만 문화재로 지정, 관리중인 곳은 3기뿐이다. 나머지들은 가정집이나 학교앞 도로 등에 방치돼 있거나 땅에 묻혀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사정은 상지석리·하지석리 등 지명에까지 오를 정도로 고인돌이 많은 파주시의 경우도 비슷하다. 교하·월롱면 등지에 3천여년 전 청동기시대 지석묘 50여기가 있는데도 유적으로 지정된 것은 14기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렇게 문화유적지가 폐허화돼 가고 있는 이유는 사적 지정 이후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았고 지방자치단체는 예산 등을 이유로 관리나 보존에 적극적이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천군의 경우 자체예산으로 유적지내 사유지 12만평에 대한 매입을 추진했지만 1만2천평만 사들였고 지난해 4단계 종합정비 기본계획을 마련했지만 시행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고인돌 보존을 위해 연천군은 내년 중 지석묘 공원조성 방안을 검토중이고 파주시는 고인돌 주변 개발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보존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 보전은 해당 지자체보다 정부 또는 경기도 차원이나 민관 합동 방식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보여진다. 한탄강·임진강을 끼고 있는 연천군과 파주시 일대의 선사유적지가 더 이상 폐허화되지 않도록 보전·관리대책이 빨리 마련돼 체계적인 보전·발굴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전염병 홍역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이천초등교 학생들이 처음 앓기 시작한 홍역이 인근 한내·신하·마장초등교 학생들에게 번져 20일간 환자가 160명으로 늘었고, 800여명이 고열증세를 보이고 있다. 역시 이천보다 이틀뒤 고교생에 발병한 이웃 여주군에서도 환자가 갈수록 늘어 초교생과 고교생 등 90여명이 앓고 있으며, 그밖에 광주(29명) 안산(50명) 등으로 계속 번지고 있다. 학생 141명이 집단감염된 이천초등교에 뒤늦게 휴업령이 내려진 가운데 이천·여주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이 창궐하는 홍역위협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방역당국과 교육당국은 홍역환자가 처음 발생한 것이 지난달 13일이었음에도 이토록 많은 학생들이 홍역바이러스에 감염될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법정 2군 전염병인 홍역이 발열 두통 기침 등 감기증세와 비슷해 구별이 어렵다고는 하나 4∼5년 주기로 크게 발병하고 작년에 보고된 도내 환자가 1명이었으나 올해는 9월말까지 277명으로 크게 늘어난 사실을 주목하고 주의했더라면 이런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홍역바이러스의 잠복기간이 7∼10일임을 감안할때 발병 즉시 방역조치를 취했어도 늦을 터인데 보건당국이 발병 1주후에나 역학조사에 들어갔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교육청당국이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학교에 휴업령을 늦게마나 내린 것은 2차감염을 막기 위해 필요한 대응이다. 주민과 학부모 역시 여기에 적극 협조하여 홍역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일부 철없는 초교생들이 홍역에 걸리면 등교하지 말라니까 일부러 환자에 접근해 감염이 확산됐다는 보건소 관계자의 말은 기가 찰 일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학교 교육과 보건당국의 예방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선 학교는 전염병 예방교육을 철저히 해야할 것이며 보건당국 역시 방역정책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전염병은 이상적인 기후변화와 인적·물적 교류 확대 등으로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등 전천후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방역당국과 각 지자체들의 철저한 위생관리 감독이 이뤄져야 하며 일선 학교의 위생교육도 강화되어야 한다. 아울러 각 개인도 위생문제를 철저히 점검하고 주의해야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즐겨 음미하는 차(茶)는 2∼3세기에 이미 있었다고 전해온다. 3세기 경에는 다서(茶書) 도 나왔다. 차 문화의 고전이요 경전으로 유럽에도 잘 알려진 ‘다경(茶經)의 저자 중국의 육우(陸羽)는 8세기 당대의 문인으로서 출생이 전설적이다. 어느날 아침 노승이 기러기 떼지어 울어대는 소리를 듣고 물가에 가본즉 그 날개 밑에 갓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바로 육우였다고 한다. 절에서 자란 육우는 뒷날 유명한 서도가 안진경(顔眞卿)을 비롯한 여러 대관들의 보살핌을 받아 차 나무가 많은 산 기슭에 거처를 정하여 은거했다. 유가(儒家) 사상에 심취한 그는 문장에 뜻을 두고 저술에 전념했는데 그의 이름을 오늘까지 빛낸 ‘다경’이 이때 씌어졌다. 육우는 동궁부(東宮府)의 관직에 임명됐으나 취임하지 않고 좋은 차를 찾아 각지를 편력, 왕에게 바치는 공차(貢茶)의 산지로 이름난 호주(湖州)에 거처를 정하였다. 육우는 좋은 차를 찾아 이곳 저곳의 산과 계곡을 돌아 다녔는데 그러한 그를 사람들은 산인(山人)이라고 불렀다. 육우가 지은 ‘다경’에서 이르기를 “차(茶)는 넓은 것에는 마땅하지 않다”는 말이 있다. ‘넓은 것’이란 사람 수가 많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차는 혼자 마시면 탈속(脫俗)하고 두 사람이면 좋고, 3,4인이면 즐겁다고(1인 神, 2인 勝, 3,4인 趣 )하였다. 5인을 넘으면 속되고 잡스럽다고 한다. 선비의 문방(文房)에서, 혹은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에서 차를 달이는 옛 그림들이 보여주듯이 선(禪)의 세계의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차의 경지라고 하겠다. 가을이 점점 깊어가는 요즘 단풍이나 낙엽이 보이는 호젓한 창변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며 계절이야기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여럿이라 하더라도 보기에 좋다. /淸河
최근 서점가와 독자들 사이에 도서정가제 의무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치열하다. 논쟁의 발단은 문화관광부에서 도서 할인판매에 대한 과태료 부과를 골자로 한 입법예고를 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인터넷으로 도서 할인판매를 하는 온라인 서점과 독자들이 반발하자 출판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출판인 회의가 출판사들의 인터넷 서점에 대한 도서공급을 중단하는 사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가 파괴되면 출판의 다양성이 위협받을 뿐만 아니라 이는 결국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상업적인 책들만이 범람해 양서들이 출판되기 힘들며 따라서 문화인프라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도서정가제 파괴는 할인경쟁을 유발, 출혈경쟁으로 이어져 출판산업의 붕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편 온라인 서점들은 도서정가제란 출판산업의 예외성을 인정한 일종의 보호장치로 생산자가 생산품의 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유일한 사례로서 시장경쟁을 악화시켜 오히려 출판시장의 질적 발전을 막음으로 고객중심의 가격체계와 서비스를 위해서는 도서정가제가 폐지되어야 된다는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도서시장을 왜곡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건전한 출판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라도 가격경쟁체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이다. 최근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도서 할인판매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이를 독자들이 반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해 전체 도서시장의 1.9%를 차지하고 있던 인터넷 서점이 올해 6%까지 고속성장하고 있어 도서 할인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가 크다. 이미 외국에서는 인터넷 서점이 도서시장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앞으로 온라인 서점은 정보화 추세와 더불어 더욱 성장할 기세이다. 책은 문화상품이기 때문에 무한경쟁의 시장에 내놓아서는 안된다. 그러나 문화상품이라는 이유만 가지고 시장논리를 무시하고 치외법권과 같이 예외적으로 보호만 받고 있다면 이것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장의 기능을 무시한다면 경쟁력을 잃어 결국 스스로 퇴보의 무덤을 팔 수 있다. 책은 결국 독자들의 선택에 의하여 주어짐을 출판업계는 알아야 한다.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도서정가제만이 능사가 아님을 재삼 인식하기 바란다.
헌혈 혈액 및 수입 혈액의 안전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대한적십자사가 법정 전염병인 말라리아균에 감염된 헌혈 혈액을 검사없이 전국 병원에 공급, 수혈된 환자들이 이로인해 숨진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적십자사가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적십자사가 지난 97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공급한 말라리아균에 오염된 헌혈 혈액을 수혈받아 사망한 환자가 29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중 12명은 수혈후 7일이내에 사망했다. 참으로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적십자사는 이 기간중 말라리아 감염 위험지역인 경기북부와 강원도 지역에서 22만명으로부터 헌혈 받은 혈액을 항체검사없이 전국병원에 공급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헌혈 혈액을 관리하는 적십자사가 말라리아 오염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단지 2주간 보관하는 과정을 거쳤을 뿐 과학적인 검증도 하지 않은 채 일선 병원에 공급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수혈을 받아야할 만큼 위급한 환자들이 그동안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균을 자신도 모른 채 주입받을 처지에 있었음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십자사가 당연히 항체검사나 역학조사의 대상이 된 혈액에 대해 안전성이 최종 확인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유통시킨 것은 헌혈 혈액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보건당국은 무얼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관리가 엉성한 것은 수입 혈액도 마찬가지다. 1997년부터 올 8월까지 혈액 수입회사가 자체검사 결과 안전하다고 판정을 내린 혈액에 대해 적십자사가 다시 검사한 결과 에이즈·B형 간염 등 55건의 오염사례가 발견돼 수입회사 자체검사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적십자사는 수입 혈액의 1%만 샘플 조사할 뿐 나머지 99%는 수입 회사의 자체검사에 그치고 있어 안전성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은 수입 혈액이 유통되고 있는 상태다. 수술환자나 위급환자에게 필수적인 혈액이 어찌된 까닭으로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지 의료소비자인 환자는 물론 의료기관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보건당국은 이제 적십자사의 헌혈 혈액 관리체계를 보완 강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수입 혈액에 대한 검사 또한 수입회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기관이 전량검사토록 하는 등 혈액 수급체계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조선조 제22대 제왕 정조(正祖)대왕(1752∼1800년)은 한 인간으로서 지녔던 지극한 효성, 통치가로서의 탁월한 정치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했던 뛰어난 학문정신으로 지금도 추앙을 받고 있다. 역대 왕중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남긴 이는 정조대왕이 유일하다. 홍재전서에 담긴 정조대왕의 지적수준은 당대 어느 학자도 뛰어넘을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다. 정조대왕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으며 치열한 당쟁의 와중에서 일신의 목숨마저 보전하기 어려운 때를 보내야 했다. 당쟁의 희생자로 소년시절은 다른 제왕들에게서는 볼수 없는 비운과 위험의 연속이었다. 즉위하기 전까지 암살을 피하기 위해 새벽닭이 울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정조대왕은 이러한 역경을 특유의 호학정신으로 극복했다. 세손으로 있을 때부터 정색당(貞색堂)이라는 서고(書庫)를 지어 도서수집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과거 明나라에서 기증한 중국 서적을 모았으며, 수시로 입연사절(入燕使節)을 통하여 새로운 서적을 구입하기도 했다. 전적(典籍)이 늘어나자 다시 서고(西庫)와 열고관(閱古館)을 두어 국내본과 중국본을 나누어 보관했고 중국본의 전적이 늘어나자 개유와(皆有窩)라는 서고를 별도로 증축하기도 했다. 즉위 첫해인 1760년 규장각(奎章閣)을 설립한 일은 정조대왕이 학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수 있다. 세종대왕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정조대왕이 좀더 장수했더라면 아마 우리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서거 200주기를 맞아 문(文) 사(史) 철(哲)의 대가였던 정조대왕을 기리는 각종 행사는 그래서 더욱 뜻이 깊다. /淸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