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 ‘히트곡 제조기’ 팔순 앞두고 또 일냈다

옛 우리의 말들은 받침들이 없잖았습니까? 그래서 작사 인생 반세기만에 받침이 붙지 않은 노랫말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요. 그러면 노래를 부를 때도 (감정이) 꺾이지 않아 훨씬 부드럽고 (노랫말의) 의미도 제대로 선율을 통해 제대로 전달될 수 있지 않겠어요? 금융인 출신의 원로 가수 겸 작사가인 김선대씨(78양평군 강하면)가 팔순을 몇년 앞두고 일을 냈다. 그가 최근 노랫말을 지어 발표한 대중가요인 왜 가요는 왜 가요 왜 가 가지~마 왜 가/ 나 두고 왜 가~나~요로 시작된다. 사랑하는 연인의 애절한 심정을 전통가요 장르에 맞춰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알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한 이 노랫말은 신기하게도 모든 음절에 받침이 없다. 그는 한국전쟁에 공군으로 참전, 부상을 입은 뒤 종전 후 금융기관에 입사, 외환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퇴직했지만, 엄연히 한국가수협회에 등록된 가수이자 작사가다. 반세기 동안의 바쁜 직장생활에도 틈틈이 노래를 만들고, 월야성(月夜城)이란 예명으로 음반들도 취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1980년대 중반에는 가수 주현미의 파트너였던 김준규와 함께 우리 가요의 엑기스들만 골라 메들리로 부른 카세트 테이프 노래대잔치로 공전의 히트를 치기도 했다. 당시 그는 모 은행의 잘 나가는 지점장이었다. 그때는 전파사는 물론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도 제 노래가 흘러 나왔어요. 고속도로 휴게소 가판대들마다 노래대잔치가 담긴 짝퉁 테이프들이 즐비했던 시절이죠. 그가 만든 대중가요들은 줄잡아 160여곡에 이른다. 특히 첫사랑 때문에, 나는 어쩌란 말이냐, 사랑에 우는 바보, 사랑의 사슬, 어느날 갑자기 등 그가 노랫말을 만든 대중가요 11곡은 지금도 노래방기기 프로그램에 수록돼있다. 그는 왜 가요처럼 모든 음절들마다 받침이 없는 노래와 대조적으로 모든 받침들마다 받침이 있는 대중가요인 당신 생각뿐이란 곡도 발표했다. 어떤 일에 열중하다 보면 나이를 잊게 되지요. 그에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과잉진압” “적법연행” 환경노조 “책임자 처벌 마땅” 양평署 “불법 군청 난입시도”

양평경찰서가 때아닌 과잉진압 논란에 휩싸였다. 양평군청 앞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33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양평환경 노동조합(민노총 공공운수 양평환경분회) 소속 조합원 10여명은 21일 오후 양평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규탄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중징계 등을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희망을 만드는 법 공익인권변호사 모임 소속 서선영 변호사는 경찰이 지난 15일 양평군청 내에서 고용승계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던 조합원 등 100여명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미란다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채 조합원들을 폭력으로 진압하고, 수갑을 채워 연행하려 했다며 이는 법률적으로도 공권력을 남용한 명백한 과잉진압인 만큼 책임자들을 중징계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양평경찰서 측도 기자회견을 열고 양평환경 노동조합이 지난달 25~31일 4차례에 걸쳐 경찰에 집회신고도 내지 않고 불법으로 시위를 벌였고, 지난 15일에도 허가받은 집회 공간을 이탈해 불법으로 군청 진입을 시도했다며 군청 진입을 위해 심하게 몸싸움을 벌이던 중 경찰 방호선을 뚫고 청사 난입을 시도하던 조합원들을 연행하려 했으나 조합원들의 요구로 이 가운데 2명만 연행한 뒤 석방했다고 반박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국악은 단순한 소리 아닌 우리 恨과 애잔함 결정체”

얼마 전 살 집을 지으려고 땅을 알아 보러 내려왔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시를 쓰시는 여성께서 꿀에 꽂감을 넣은 차(茶)를 내어주시는데 그 맛을 아직까지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평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됐지요. 안숙선 명창(63여)이 지난 15일 양평군 양평읍 양근리 양평군민회관에서 열린 제127회 창조아카데미에서 양평을 찾은 까닭에 대해 이처럼 설명했다. 국악분야에서 국보급인 안 명창은 그렇게 알게 된 최경학 시인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읊은 작품 노을을 수제자인 천주미 고수(鼓手)의 장단에 맞춰 판소리 형식으로 낭랑하게 들려줬다. 아라리 아라리 아리리요/ 아라리 아라리 아라리요/ 붉은 눈시울로 굽어 보는. 그의 목소리는 창공을 가르는 보라매가 되어 힘차게 솟구치는가 하면, 들녘을 질주하는 표범처럼 표효하기도 했으며, 골짜기를 흘러 내리는 물살처럼 고즈녁하게 속삭이기도 했다. (최 시인의 시를) 아직 다 외우지 못해 죄송하다며 시작된 무대였지만, 안 명창의 애절하고도 안타까운 목소리에 500여명의 관중석 곳곳에서 얼쑤하는 추임새가 터져 나왔다. 안 명창은 관중석에 앉아있던 최 시인을 무대로 불러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공연 중간, 국악에 입문한 과정 등에 대해 판소리 인간문화재인 외삼촌, 태평무 인간문화재인 이모 등으로 어려서부터 국악에 눈을 뜨게 됐다며 국악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한과 우리 산하의 애잔함 등이 녹여져 있는 모든 소리들의 어울림으로, 판소리를 하려면 온 몸의 기(氣)를 참기름 짜듯 혼신의 힘을 다해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명창은 1시간 동안의 짧은 공연에 아쉬워하는 관중들에게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흥보가를 들려주고 무대를 떠났다.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 등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인 안 명창은 지난 1999년 수궁가, 지난 2000년 적벽가, 지난 2001년 심청가, 지난 2003년 흥보가, 지난 2005년 적벽가 등 판소리 다섯마당을 완창했으며 국내는 물론 아시아, 북남미, 유럽 등 주요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한국의 소리를 전파하고 있다. 양평=허행윤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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