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일본 총리 스캔들과 관료들의 ‘손타쿠’ 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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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아베 신조 총리가 연루된 2개의 사학 스캔들이 뜨거운 정치ㆍ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2012년 12월 집권 이래 높은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강한 정치 리더십을 행사한 아베 총리가 곤경에 처하게 되고 지지율도 30%대로 떨어졌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정치적 입지 문제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일본 엘리트 관료들의 행태 변화가 아닌가 싶다. 전통적으로 국가를 이끌어왔다는 긍지가 매우 높은 일본 관료사회가 강력해진 정치권력 앞에서 스스로 알아서 기는 모습이 이번 스캔들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2개의 스캔들 가운데, 모리토모(森友) 학원 스캔들은 아베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와 가까운 사이인 사학재단 모리토모 학원이 소학교 건설 부지로 국유지를 감정가 9억 3천400만 엔보다 8억 엔이나 싼값으로 불하받는 과정에서 총리 부부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문제의 국유지에는 다량의 폐기물이 있었는데, 관리부서였던 오사카 항공국은 처리비를 5~6억 엔으로 견적했다. 그러나 일본 재무성은 부지 지하에도 쓰레기가 매설돼 있을 것이라는 점을 들어 폐기물 처리비를 8억 2천만 엔으로 올려 잡도록 하고, 동 폐기물 처리비용만큼 할인해주는 형식으로 1억 1천400만 엔에 매각했다.

 

국유지 헐값 매각이 공개되자, 모리모토 학원의 소학교 명예교장에 일시 취임했던 아키에 여사와 총리의 관여 여부가 일본 국회에서 정치 쟁점이 됐다. 이에 2017년 2월 아베 총리는 국회에서 “나와 아내가 관계되어 있다면, 총리직도 의원직도 다 사퇴하겠다”고 발언하며 관여를 부인했다.

그런데 총리의 진퇴발언 이후 재무성이 모리토모 학원과의 국유지 매매교섭 서류를 조직적으로 은폐, 파기, 개찬(문서를 악용하기 위해 고의로 고침)했다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국회에 제출된 자료들에 의하면 개찬은 결재문서 14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는데, 아키에 여사나 총리와 관계된 기술들이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서 개찬은 재무성 이재국을 중심으로 행해졌는데, 당시 이재국장이었던 사가와 전 국세청장은 국회 증언에서 아베 총리나 총리 부인의 지시는 없었다고 거듭 답변했다. 총리의 직접 지시 여부는 미궁에 빠질 공산이 크다. 한편 총리의 의향이 관계자들 사이에 인지되어 있었다는 정황에 비추어 국유지 염가매각이나 관련 문서의 사후 개찬은 관료들이 아베 총리의 의향을 ‘손타쿠’(忖度: 미루어 헤아리기, 나쁘게는 알아서 긴다는 의미)해 행한 것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스캔들은 수의사의 공급 과다로 대학의 수의학부 신설이 제한돼 있는데도, 사학재단 가케(加計) 학원이 이사장의 친구인 아베 총리의 특혜를 받아 수의학부 신설을 인가받았다는 의혹이다. 여기서도 총리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총리 보좌관으로부터 총리 의향을 전달받은 문부성 관료들이 ‘손타쿠’해 인가절차를 추진한 것은 확실하다.

 

정치권력도 견제하며 행정의 공평성과 공정성을 지켜왔다는 일본의 관료사회가 이번 스캔들로 크게 신뢰의 손상을 입게 됐다. 그 배경에는 아베 총리가 대중 지지를 바탕으로 정치주도 개혁을 주창하고 총리실이 행정 각부의 국장급 인사까지 깊이 관여해 관료들이 소신보다는 정치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려는 몸보신 성향이 작용했다며 필자의 일본인 지인은 탄식한다.

 

서형원 前 주크로아티아 대사·순천청암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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