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저성장경제 국면이 지속되면서, 일국경제 전체뿐만 아니라 지역경제의 피폐화 양상도 현저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역밀착형 금융 또는 지역 영세중소기업 금융에 ‘관계지향형 금융’, 즉 금융기관이 기업과의 오랜 거래관계와 현장탐방 등을 통해 얻은 비재무적인 정보를 토대로 자금을 지원하는 대출기법을 적용하고자 하는 정책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의 경영에 있어서 관계지향형 금융은 매우 중요하고 또 유효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관계지향형 금융을 시장주의적 금융을 보완하는 대안적 금융 기법으로 이해하면서도 이 기법에 소요되는 개별 지역금융기관의 비용 문제를 간과하는 등 매우 단선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다.실제로 금융당국의 관계지향형 금융의 강화를 위한 정책을 보면, ‘공동책임’, ‘사회성’, ‘장기적 경영모델’을 지향해야 할 지역금융기관에 대해 오히려 ‘자기책임’, ‘수익성’, ‘단기적 경영모델’ 등을 강조하고 있어, 정작 관계지향형 금융 고유의 역할과 기능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모처럼 제시한 ‘대안적’ 금융 기법이 현장의 금융기관에서는 기존의 ‘시장주의적’ 금융의 연속선상에서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관계지향형 금융의 기능 강화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과제를 상호 연관시켜내는 정책 대응이 중요하다. 첫째, 관계지향형 금융을 지역금융기관의 개별적 노력만으로 강화하려는 것은 자금수요자에 관한 ‘연성정보’ 생산과 관리에 드는 비용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곤란한 것이어서, 지역금융 재생을 위한 법적, 제도적 조건의 정비 및 사회정책적 차원의 지원을 중층적으로 고려하여 관련 정책이 기획, 추진돼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관계지향형 금융과 관련된 지원책 구상과 관련해서는, 규제완화와 감독체제의 ‘일원화’가 아니라 중소영세 사업자와 지역금융기관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감독체제, 이른바 ‘이중 기준’을 구축해야 한다. 관계지향형 지역금융이 활성화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수익 극대화를 위한 금융자유화를 타국에 강요하면서도 국내에서는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구축해놓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은 국내 차원의 기준을 구축하려는 정책적 의지도 없이 대외적 차원에만 초점을 맞춰 미국형 금융시스템을 국내에 적용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정책은 지역경제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일국경제 전체의 발전 기반을 훼손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지역경제의 자립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 지원도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 방식을 채택할 경우, 지역사회에 대한 ‘헌신’을 지자체, 금융기관, 중소영세 사업자, 지역주민 등 지역경제의 여러 이해관계자들끼리 분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지자체가 설립한 저축금고와 신협이 치열한 업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EU의 ‘획일적인’ 은행정책에 대해서는 양자 공동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또 지역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하는 중소영세기업 대출의 리스크 비중을 줄일 것을 양자 공동으로 주장하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새마을금고, 신협과 같은 지역밀착형 금융기관의 관계지향형 금융 기능은 보다 강화돼야 한다.관계지향형 금융이 지역금융기관에 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이들이 직면해 있는 여러 현실적 문제를 고민하고 또 이를 정책과정에 반영하는 것은 매우 큰 의의를 갖는 작업이다. 양준호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피니언
양준호
2016-01-13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