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에 얽혀 있는 여러 형태의 집요한 음모와 그 불순한 측면을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유익하다. 자본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의 치명적인 편견을 상대화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된다.
허나,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본질, 즉 자본주의가 갖는 ‘폭력적’ 본질은, 최근 언론들이 ‘은행 지배’ 등의 용어로 설명하는 그런 시스템에 관한 표면적인 이해가 아니라 다음과 같은 역사적이고도 심층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 역사와 심층에는 최근 언론의 기획 다큐멘터리가 다루지 못 하고 있는, 자본주의 보다 ‘근본적인’ 음모와 모순, 그리고 폭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역사를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 편만 드는 보수적인 주류경제학자들이나 기득권층은 틈만 나면 자본주의가 이솝우화 ‘개미와 베짱이’ 교훈처럼 부지런히 일하고 절약한 사람은 자본자가 되고 게으르고 낭비만 일삼는 사람이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구축되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초기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에 선을 보이게 된 이유를 생산자들 간의 순수 ‘경쟁’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가 가장 먼저 성립된 영국의 역사를 보면, 중세 말기에 농노 신분에서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된 소규모 농업생산자들 간의 경쟁은 분명 존재했고 이로 인한 계급분해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계층이 이들 소규모 농업생산자들의 유일한 생산수단인 토지를 ‘폭력적으로’ 수탈해 이들을 하루아침에 무산계급으로 전락시킨 것이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형성되는 데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 영국사에서 이른바 ‘인클로저’ 운동으로 불리는 조치가 바로 그런 토지수탈의 전형이다.
둘째, 자본주의가 시장경제 내 수요와 공급의 양적 불균형을 ‘어떻게’ 해소해왔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즉 자본주의가 경제학 교과서의 설명과 같이 과연 그 수급 격차를 ‘평화롭게’ 조정해왔는지 하는 문제다.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 운운하며 강조했듯이, ‘가격’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하면, 진정 상품의 수요와 공급 간의 불균형이 해소될 수 있을까?
노동시장을 보자. 노동력 상품의 가격은 임금이다. 우리 노동시장에서 임금은 경기에 매우 탄력적으로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 노동력 상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 간의 미스매칭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닌가? 과잉생산 국면은 어떻게 조정되어 왔는가? 경제적 약자는 피눈물 흘리게 하고 경제적 강자는 덩치를 불리게 하는 ‘공황’을 통해서만 비로소 과잉생산 같은 시장경제의 수급 불균형을 일시적으로 밖에 해소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의 본질은 이렇듯 보다 심층적이고, 역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체화한 역사는 ‘묵직한’ 이론이 되며 확고한 신념이 된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런 심층적인 이해 없이는, 이기적인 규제주의자나 기회주의적인 시민사회론자만 양산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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