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최악의 조합, 반독점자본 운동 없는 사회적경제

지역사회 안팎에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관계자와 얘길 나눌 때마다 느끼는 걱정이 있다.

 

이는 이들 중 상당수가 국내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고 또 늘 항상 중소영세 사업자들의 생계기반을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 또는 거대자본에 대해 매우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엮일 수 있는지, 또는 어떻게 하면 대기업의 재정지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영세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하단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과 같은 사회적경제조직이 독점자본으로서의 대기업을 잘 활용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경영을 유도해 이를 통해 대기업의 기술 및 조직운영 노하우를 얻어내거나 아니면 보다 공격적으로 대기업을 ‘시장(Market)’으로 대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협동조합이 독점자본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고 해서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대기업의 전략적 활용을 명분으로 독점자본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의 결여를 정당화하는 것에 있다.

 

‘사회적경제’를 앞으로의 대안으로 치켜세우고 있는, 정태인 씨 등과 같은 우리나라 연구자(?) 또는 지식인들의 관련 논의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모범사례 지역으로 이탈리아 동북부에 위치한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을 곧잘 언급한다.

 

이탈리아에 4만 3천여개의 협동조합이 있는데, 이 가운데 1만 5천여개가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에 있고 또 이 지역의 주요 도시인 볼로냐의 경우는 전체 시민의 3분의 2가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돼 있는 조합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논자들의 ‘사회적경제’ 모범사례 지역에 대한 언급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에밀리아 로마냐 지역 ‘사회적경제’의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이 ‘독점대자본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항운동’에 있음을 강조하는,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논자는 지극히 드물다.

 

주지하다시피,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산자본이나 유통자본이건 금융자본이건 이탈리아의 소자본은 이러한 정치적 제약조건에 막혀 ‘공간적’ 측면에서 하나의 독점적인 대자본으로 성장하기 어려웠다. 해서, 이들은 자연스럽게 중소규모 사업체 간의 지역연계를 우선시하게 되었고 또 공동소유 형태의 기업체제를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에밀리야 로마냐 지역은 이탈리아 공산당이 주로 활동했던 거점으로 독점자본에 대한 지역 대중의 비판적 인식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강했다. 이러한 반독점자본의 지역 정서는 자연스럽게 협동조합이라는 과도기적 대안과 정합적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를 하나의 큰 국민국가에서 도시국가로 해체할 수 없다면, ‘사회적경제’의 조건은 바로 ‘독점대자본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항운동’에서 찾아야 한다. 이 운동이 조직화되고 일상화될 때 연대, 호혜, 공유를 기본원리로 하는 탄탄한 연계체계가 구축될 수 있다.

 

반독점자본 운동 없는 ‘사회적경제’. 모순이 정점에 달한 이 낡고 썩은 자본주의의 연명에 기여하는 반동적 구호일 뿐만 아니라, 협동조합들의 생명력 그 자체를 자기 스스로 위협하는 최악의 조합이다.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사회적경제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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