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새로운 실크로드’ 를 꿈꾸며

얼마 전에 방송 촬영을 위해 실크로드와 차마고도가 교차하는 중국의 칭장고원(靑藏高原)을 방문하였다. 촬영 중에 티베트족, 회족, 토족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비록 소수 민족으로 중국에서 살고 있지만 이전에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무역과 물류의 주인공들이었다. 실크로드 또는 비단길(紗綢之路)이란 명칭은 독일의 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이 이전의 주요 무역품이 비단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실크로드라고 부르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실크로드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지나 터키의 이스탄불과 로마까지 연결되는 약 1만 2천Km의 구간으로 동서간의 문화통로이자 교역로이기도 하였다. 이 길은 단순히 비단, 소금 등의 물자만 왕래한 것이 아니라 동서양의 종교, 문화, 경제가 교류한 최초의 길이었다. 실크로드가 처음 시작된 것은 중국의 전한(前漢)시기였으나 교역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당나라 시기(618 907)였고, 징기스칸의 원나라시기까지 이어졌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중앙 아시아와 서아시아 여러 나라와 끊임없이 교류하였고, 당시 우리도 삼국시기와 통일신라 시기에 이 실크로드를 따라 문화와 경제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이전의 실크로드를 살펴보면 매우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실크로드를 중국의 시안에서 서쪽만 바라보았지 사실 그 동쪽으로도 계속 연결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 동쪽으로는 베이징과 항저우, 그리고 서해를 넘어 경기도와 한반도까지 이어지고 있다. 당시 혜초가 현재 경기도의 유일한 항구이며, 중국 무역의 전초기지인 평택에서 배를 타고 서해를 건너 실크로드를 따라 지나갔다는 사실이 바로 실크로드가 한반도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 중국은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개념을 제기하면서 육상과 해상의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개념은 중국이 더 이상 저임금과 값싼 제품에 의존한 세계 시장에 대한 수출의 한계를 느끼고 이전의 실크로드를 중국의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단순한 수출이 아닌 새로운 시장과 소비를 만들어가는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2%의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성장의 동력은 꺼져가고 젊은이들은 취업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의 구조개혁의 목소리와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 찾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젊은 세대들에겐 언젠가부터 ‘N포 세대’라는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인간관계, 심지어는 꿈, 희망 그리고 모든 삶의 가치를 포기한 20대와 30대를 대표하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젊은 세대가 잃어버린 꿈과 희망을 어떻게 찾아 줄 것인가? 여러 가지 노력들이 있겠으나 최근 주장되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실크로드에 접목시키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 방안은 14억의 중국과 12억의 인도,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실크로드의 길을 우리가 보다 주도적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실크로드의 가는 곳마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들이 열정적으로 일하고 훨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박기철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평택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4·13총선을 돌아보며

드디어 지리했던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총선의 결과는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만족스럽거나 불만스러울 수 있다. 선거 결과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든지 아니면 불안한 미래를 보았든지와는 별개로 이런 판단의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선거결과에 대한 긍정 또는 부정적 해석의 토대는 아마도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자의 당선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과연 필자를 포함하여 유권자는 후보자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지지보다 지역사회 발전, 더 나아가 대한민국 사회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정당과 후보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투표를 했을까? 필자가 ‘시대정신의 사회성과 개인성’이라는 제하의 지난 칼럼에서 얘기했듯이,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보편정신의 융합이야말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지향해야할 시대정신이라고 전제한다면, 우리는 금번 총선에서 누구를, 어떤 이유에서 선택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소시민으로서 우리는 제공받는 제한적인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은 본인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나 후보자를 유권자가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타당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해야만 한다.그렇다면 과연 금번 선거에서 각 정당이나 후보자는 우리(소시민)에게 그러한 정보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는가? 이런 측면에서 후보자는 유세나 공약발표 시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점은 없었는가? 여당후보이기 때문에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얘기하지 못했고, 야당후보이기 때문에 무조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지는 않았는가? 한국사회의 정치(가)는 정책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보다는 여·야 또는 진보·보수라는 진영논리를 판단의 우선순위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여기서 일부 지자체장 또는 정치가들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정당 간 정책연합, 소위 대연정이 한국사회의 정치에 시사하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의 정당들은 진보(사민당, 녹색당 등)와 보수(기민당, 자민당 등)의 정책적 색깔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위기 상황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이념적 논쟁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자기 정당의 이념적 노선을 포기하고 상대당에 협조한다.또한 집권당(현재 메르켈 정부인 기민당)은 상대당(사민당이나 녹색당)의 정책을 최대한 수용·활용하고 상대당에 협력을 요청한다. 그리고 상대당은 이에 적극 협조한다. 이것이 진정한 정책연합 아닌가! 우리처럼 정당간 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결정권을 일부 양보하는 정책연합과는 차원이 다르다. 부럽다! 다시 413총선으로 돌아가 보자. 이번 선거유세에서 진보와 보수, 여야를 떠나 각 정당들이 상대당의 공적을 치하하고 상대 후보자의 훌륭한 점을 칭찬하는 모습을 기대했다면, 이는 그저 정치의 생리를 이해 못하는 숙맥의 순진한 바람인가? 독일의 사민당 집권 시 수상을 지냈던 슈뢰더의 선택, “나는 사민당을 구하기보다는 독일사회를 구하기 위해 우리 정당의 지지층을 배반하는 정책을 던졌다”라는 그의 회고가 가슴을 때린다. 한국 정치에도 정당의 흑백논리적 이념논쟁이 아닌 사회발전과 사회통합의 가치를 우선으로 제시하는, 슈뢰더와 같은 정치인이 나와주길 기대해본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꿈 전도사

위 제목의 글은 어느언론사에서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사람은 꿈을 꾸는만큼 꿈꾸는대로 된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스티브 맥퀸 주연의 빠삐용이다. 빠삐용은 프랑스 말로 나비라는 뜻인데, 주인공 앙리 샤리에르스티브 맥퀸는 자신의 입장에서 볼 때 억울한 죄를 둘러싸고 절해고도에 수감된다. 몇 번 탈출을 시도하고 형벌이 더하여지고 형기가 길어진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겼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물에 뜰 것을 만들어 저녁에 그것을 바다에 던지고 뛰어들어가 그것을 타고 해류를 이용하여 죽음의 감옥에서 탈옥한다는 이야기다. 수감 중 어느 날 꿈속에서 스티브 맥퀸이 사막을 걸어 헤매고 있는데 판사들이 일렬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때 스티브 맥퀸은 큰소리로 외친다. “나는 죄가 없다. I’m innocent!” 이 고함이 공명되어 사막에 흩어졌다. 적막한 침묵이 무겁게 이어졌다. 침묵을 깨뜨리면서 판사가 준엄하게 말한다. “당신은 시간을 허송한 죄로 기소되었다.” 스티브 맥퀸은 침묵에 잠겨 있다가 슬프고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독백한다. “그래, 나는 죄인이다. So, I’m guilty!” 무엇이 스티브 맥퀸으로 하여금 시간을 허송하게 하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꿈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의 기억은 지금까지 뇌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어느 면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죄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기울이는 관심과 배려의 질에서 시간 낭비라는 죄를 저지르기 일쑤이다. 우리 자녀들에게 시간을 쏟고 사랑과 정성을 쏟은 만큼 자녀들은 성장한다. 학원비와 과외비만 주면서 공부만 잘하라고 윽박지르지 않았는지, 자녀와 대화하며 자녀가 공부할 때 옆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으로 다가간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생각해 볼 때이다.가난해도 어느 방이나 마루 공간에 책상과 공간을 만들어 주고 수시로 들여다보며 사랑을 나타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두 번째로, 학부모, 당신에게 물을 수 있는 과오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연이 안 되고 조연이나 엑스트라로 머물러 있는 죄이다. 우리 학부모들은 큰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자녀들에게 보통 이렇게 이야기한다. “아들아, 딸아, 내가 너희들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것은 너희들의 교육비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기 위함이 아니겠니? 너희는 나의 희망이고 꿈이다.나는 너희들을 위해 백화점 옷 한 번 사본 일이 없고, 맛있는 고급요리를 마음 편히 먹어본 적도 없다. 그러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 아니겠니? 너희들이 잘돼서 꿈을 이루어야 할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이다. 듣기에는 이해가 가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소원한다고 하여 자녀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가? 꿈을 이루어 주는가? 자녀들이 어떻게 부모의 원대로만 되는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가 꿈을 이루려면 부모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가야 한다.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해서 뒷방으로 조연처럼 물러나 앉아서는 안 된다. 죽을 때까지 무엇인가 목표를 세우고 이루어나가야 한다. 그럴 때 자녀들이 그것을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만일 당신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시간과 자녀들이 꿈을 이루도록 배려하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허송세월한 후 조연으로 주저앉아 인생을 끝내려고 한다면 빠삐용의 스티브 맥퀸처럼 “I’m guilty. 나는 죄인이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들의 모든 초점이 자녀에게만 맞추어져 있고, 자녀의 성공을 위해 본인의 행복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 아이와는 별개로 부모도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스스로도 행복해야 한다. 지금 부모가 비전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아이가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아이가 꿈을 꾸며 성공하게 된다.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 주지 말고,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 줘라.”라는 생텍쥐페리Saint - Eyupery의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송하성경기대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장

[경기시론] 나의 위치

내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30년이 훌쩍 넘었다. 얼마 전부터 엘리베이터를 타면 ‘삐’ 소리를 내면서 문이 닫히질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든지 고장인가 생각하기 마련이다. 덜컥 겁을 집어먹고 잠시 동안 내려야 하나 마나 머뭇거리게 된다. ‘내릴까’ 하고 몸을 움직이는 순간 스르르 문이 닫히고 제대로 운행을 한다. 얼마 지나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책 꾸러미를 바닥에 놓은 상태였다. 엘리베이터가 또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지 않았다. 내려야하나 하고 책 꾸러미를 미는 순간 문이 닫히고 작동을 했다. ‘아!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가 오래되고 낡아 한쪽으로 쏠리면 문이 닫히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아무도 없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코너에 기대어 서봤다. 역시 ‘삐’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지 않았다. 이리저리 움직여 보니 문이 닫히며 정상운행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를 타는 법이다. 빈 공간에서 나의 위치가 엘리베이터를 움직이게도 하고 멈추게도 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몇 년 전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는 멤버들의 자리배치를 게임성적에 따라 재배치하는 내용으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성적에 따라 자리를 재배치 받은 멤버들은 다음 녹화를 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가장 끝자리에 서게 된 메인 MC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이건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낯선 상황에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멤버들을 위해 확성기를 준비한다. 다양한 방식으로 불편함을 충분히 처리하는 센스를 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누명을 덧씌우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무리들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선거철에는 소위 ‘카더라 통신’이 난무한다. 그 무리들이 얼마만큼의 이익을 얻을 진 모르지만, 음해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인격적인 살인을 경험하는 것과 진배없을 정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시간이 지나면 같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모씨가 모처에서 무슨 말을 했었는지 전해주기도 한다. 심지어 증거를 확보해 주는 분. 항의하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연락해 주는 분, 사태 수습에 동참해 주는 분, 당신의 일처럼 고통을 함께 나누어 주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분들이 생긴다. “당신이 결백함을 내가 다 안다”라고 말해 주는 분들이 여기저기에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신념이 옳았음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고 올곧은 친구들 과 진실한 사람들을 얻는다. 정의로운 사람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말 한 마디가 자신이 쌓아왔던 인간관계와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재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선심성 공약이 남발하고 입에 담지 못할 막말들이 난무하는 선거판을 보면서 낡은 엘리베이터에서의 무게중심,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출중한 능력을 보인 메인MC, 누명과 음해의 시간과의 싸움을 생각게 한다.나는 어디에 서서 균형을 잡을 것인지, 자리 탓을 하기보다는 어떻게 능력을 키울 것인지, 권력자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면서 남을 못살게 굴지는 않았는지, 현재 나의 위치는 어디이고 어떨까를 곰곰이 집어볼 때이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장

[경기시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

어느덧 3월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봄이 되면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줄어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정부의 인플루엔자 표본감시 결과를 보면, 2월 초 유행의 정점을 이룬 후 점차 감소해 가던 주별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이 3월 중순에 이르러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인플루엔자 유행은 최근 어느 해보다 심한 양상을 보였다. 유행의 크기는 최근 몇 절기와 유사했지만,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올해 유행을 주도한 바이러스는 A/H1N1pdm 바이러스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일으킨 그 바이러스이다. 사실 2009년 이후 이 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의 크기가 점차 작아져서 힘을 잃어 가는 줄 알았는데 올해 다시 큰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어 있다. 백신의 효과를 더욱 향상시키고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간혹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미 정복된 바이러스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사람이 정복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어떤 전염성 질환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전파를 차단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중재방안이 있어야 하고 둘째, 충분한 민감도와 특이도를 가진 진단수단이 있어야 하며, 셋째, 병원체의 생활사에 인간이 필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전염병에는 두창, 폴리오, 홍역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인플루엔자는 이런 조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서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상황까지 왔을까?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이후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개발과 지원이 늘고 신종인플루엔자 범 부처 사업단과 같은 조직이 생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성인만을 기준으로 봐도 매년 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유발시키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 매년 천 억원 이상의 질병부담을 유발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여러 호흡기 병원체 중에서 가장 큰 질병부담을 가진 바이러스이다. 쉽게 일어나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매년 계절적인 유행과 10~40년마다 반복되는 대유행을 일으킨다. 또한 계속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인류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알려진 AH5N1 바이러스의 경우, 1997년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치명률은 50% 이상이다. 이 바이러스는 아직 사람 간에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작은 부분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사람 간에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는 점이 이미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끊임없이 변이가 발생하고 호흡기를 통해 사람 간에 전파가 가능하며 중증 환자를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성을 감안하면, 대응체계가 조금만 소홀해 져도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은 자명하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많이 준비된 듯하지만 여전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이 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조금은 더 겸손한 자세로 멀리 바라보며 대응해 가야 하지 않을까? 최원석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감염내과

[경기시론] 대학의 변화·혁신은 선택 아닌 필수다

출산율의 저하로 2018년부터는 대학입학정원보다 고교졸업생수가 더 적어진다고 한다. 더욱이 경기 침체로 청년실업률은 역대 최고인 12.5%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대학교육과 산업수요 간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산업수요 맞춤형 대학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의 변화,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알파고의 충격으로 인한 부분도 있지만, 이미 인공지능을 포함한 정보통신기술이 기존산업과 융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인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은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와 ICBM(사물인터넷, 클라우드컴퓨팅, 빅데이터) 등이다. 전문가들은 제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의 대변동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창의적인 전문인력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아직까지 대학의 전공은 기존 산업에 맞추어져 있으며, 창의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은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사회변화, 산업변화 추이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충분히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적성과 흥미, 자신의 능력, 그리고 희망과 가치를 잘 파악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 인식은 사회변화 추세를 반영한 새로운 진로 판단과 개척 그리고 진로개발역량 자체를 높이려는 노력과 맞물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생애에 걸친 끊임없는 학습, 그리고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통해 자신의 창의적인 전문역량을 높여야 한다. 필자는 대학에 몸담고 있기에 이러한 개개인의 노력과 정부의 노력을 지원하고 촉진하며, 대학 자체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왔다. 먼저, 대학은 사회변화, 산업변화에 대한 유연한 적응, 대응을 위해 기존 학과체제를 보다 넓은 학부체제로 바꾸고, 이중전공, 복수전공, 융합전공 체제로 학사구조를 크게 바꾸어야 한다. 둘째, 대학은 제4차 산업혁명을 비롯한 사회변화 추세를 정확하게 분석, 진단하여 기존의 학과 전공 체제를 새롭게 혁신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와 사물인터넷 등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전공 개설과 함께, 기존 학과전공에 대한 분석을 통해 부분적인 개편 노력을 진행해야 한다. 셋째, 학생들이 대학교육을 통해 실질적으로 창의적인 전문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대학의 교수학습 방법을 토론실험 중심, 창의성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장점을 찾아 성공경험과 자존감을 쌓고, 이를 통해 미래를 개척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대학의 교양교육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100대기업이 요구하는 주요 핵심역량은 전문성과 함께 도전정신, 창의성, 주인의식, 도덕성, 팀워크(협력) 등이었다. 이러한 역량은 전공학습만으로 길러지지 않으며, 교양교육 혁신을 통해 충분히 길러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은 대학 구성원 모두의 문제의식과 혁신 노력이다. 교수진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들의 그러한 노력이 모든 변화 혁신의 첫걸음이자 핵심 동력이다. 위기가 맞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과 대학에게는 새로운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님을 비롯한 국민여러분이 대학의 이러한 노력을 지켜보고 믿어주시기를 당부드린다.대학은 학생들의 소중한 시간과 노력, 비용, 그리고 삶의 가치를 잘 알고 있고 더 나아가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대학은 이미 이러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노력할 것이다. 이정열 중부대학교 부총장

[경기시론] 차이나 블랙홀에 흡수되는 한국인재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지하철을 탔다. 교통지옥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퇴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복잡함 속에서도 스마트 폰에 눈을 고정하고 열심히 보고 있다. 이들이 보고 즐기는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우리가 매일 TV를 통해보는 익숙한 프로그램들이다. 중국의 연예프로는 출연자만 중국인이지 제목도 우리와 거의 유사하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들이 한국에서 직수입을 하거나 혹은 모방해서 만든 것으로 중국의 스마트 폰과 이들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은 수년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 손에는 아이폰, 화웨이, 샤오미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극소수의 사람이 삼성폰을 들고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보았더니 오래된 기종에 그리고 이미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한때 중국 시장에서 최고로 여겨졌던 삼성한국 제품들이 불과 수년만에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주력 산업 전반에 걸쳐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5대 주력 산업인 반도체, 석유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 산업에서 이미 조선은 중국의 거대한 파도에 매몰되었으며, 반도체도 곳곳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자동차 역시 중국에서 생활해보면 빠른 속도로 위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에 유출되는 한국의 인재들이 모든 영역에서 속출하고 있다. 항공업계의 인력도 심각한 상황으로 중국 광저우를 방문했을 때 한국 국내 항공의 조종사가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국의 인재들이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이유는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30년간 외화를 축적했고, 이를 이용해 해외인재를 흡수하여 산업구조를 한 단계 더 도약하려고 계획하고 있으며 여기에 바로 한국의 인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딱 맞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많은 경우 한국의 인재들에게 파격적인 조건, 즉 ‘1. 3. 9’를 제시하는데, ‘3년을 보장하며 1년에 한국 임금의 9배를 주겠다는 것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조건을 과감하게 제시하는 중국의 제안에 한국의 인재들이 중국으로 흡수되고 있다. 두 번째로 더 큰 이유는 한국, 우리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무역협회의 자료를 빌리면 안정적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여기에 더하여 높은 업무강도와 열악한 연봉, 경직된 기업문화 등이 인재유출의 이유로 조사되고 있다. 이러한 근무환경에서 인재들에게 무조건적인 애국심이나 애사심만을 강조한다고 이들을 붙잡을 수는 없다. 기업들이 눈앞의 이익과 단기간의 경제적 효율만을 추구하는 한 우리의 인재유출을 막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기업은 인재의 유출을 탓하거나 비난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의 국민과 인재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애국심과 애사심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들을 주인으로 섬기고 인재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박기철 한중교육문화연구소장

[경기시론] 시대정신의 사회성과 개인성

최근 학문적 논의나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화두 중 하나는 소위 ‘시대정신’일 것이다. 시대정신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보편적 정신세계와 한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전의 결합된 형태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정신이 얼마나 사회적 또는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대정신이 사회 또는 공동체에 무게를 두면 개인은 이에 피동적으로 동참하게 되지만 그 정신은 강한 사회통합의 요소로서 작동하게 된다. 반면 시대정신에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가 강조되면 사회는 다양성과 역동성이 강하지만 대신 공동체적 가치나 사회통합적 성격은 약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시대정신의 사회성과 개인성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한국사회의 사회발전단계를 그려볼 수 있다. 사회발전단계는 대부분의 사회에서 유사하게 나타나는 바, 한국사회의 사회발전단계 역시 경제적 단계, 정치적 단계 그리고 문화적 단계 등으로 구분하여 특징지을 수 있다. 우선 경제적 단계로서, 한국사회는 80년대 중반까지 경제발전이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였고 여기서 중요한 가치는 효율성·효과성·경제성·합리성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정치적 단계로서는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민주화와 평등, 인권 등이 사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단계와 정치적 단계에서의 개발논리와 정치발전논리는 사회주도적인 시대정신의 성격이 강했다. 그럼 현재 한국사회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의 방향은 무엇인가? 왜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고도 더 불안하고 오히려 사회통합이 깨지고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세 번째 사회발전 단계로서 ‘문화’에 대해 고민해야만 한다. 문화적 단계에서 시대정신은 거시적·사회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보다는 미시적·개인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 개인적 가치가 강조되는 문화적 단계에서 사회통합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동의와 자발적 참여에 의해서 가능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 또는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개인적 공감과 이를 통한 개인적 감동의 창출이다.문화적 단계의 사회에서 경제적 또는 정치적 성과는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감동을 줄 때 대중적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들의 정치의식이 부족해서 80년대와 같은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불가능한가? 아니다! 사회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감동적 요소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의 사회참여는 예전처럼 사회발전을 위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감동과 동의를 통해서 만들어진다. 한국사회의 새로운 시대정신의 정립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경제적정치적 논리가 아니다. 이미 문화적 단계에 도달한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시대정신은 개인적 가치에 기반한 감동과 스토리이다. 이 시대의 사회통합 역시 개인적 감동이 수반된 합의를 통해서 가능하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11살 소년

‘자전거 탄 소년’은 2011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이 행복이 아닌 분노와 고통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아버지에게 버려진 11살 소년 ‘시릴’과 그의 어린 시절의 따뜻함과 그리움의 상징인 자전거, 끝없는 사랑으로 시릴을 구원하는 ‘사만다’라는 여인이 나온다. 아버지는 어릴 적에 시릴을 버렸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가장 소중한 자전거를 팔아버리며 소년에게 절망과 좌절을 겪게 한다. 소년은 문제아들과 어울리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사만다라는 구원과 희망을 통해 자전거를 되찾고 일탈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난 1월 매스컴을 탄 김포의 A군은 영화 속의 시릴과 같은 11살 소년이다. 소년은 평소에 가정폭력으로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다. 소년에게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어머니가 존재했다. 아버지에게 매 맞는 모습으로 비쳐진 어머니의 모습은 소년에게 더 이상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 됐다.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이야기했지만 사만다와 같은 구원의 손길은 없었다.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장면을 목격하고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흉기로 아버지를 찌르는 일을 저질렀다. 가정폭력이 존속살인으로 이어지게 된 순간이다. 영화 속의 11살 소년은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김포에서의 11살 소년에게는 폭력으로부터 자신과 가정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이 없었다. 자전거 탄 소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가 있는지 보여주는 영화이다. 김포에서 발생한 존속 살인사건 또한 사회적 관심과 사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가슴 아픈 현실이다. 김기영 감독은 이 영화는 버려진 아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어떻게 한 여인이 버려진 아이를 사랑으로 구하고 동심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살해한 11살짜리 소년에게도 사만다와 같은 도움을 주는 매개체가 있었더라면 존속살인이라는 끔찍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정폭력은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2015년 한국가정법률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미만 부부의 폭력 발생률은 45.5%나 된다. 여성가족부는 2014년 8월부터 ‘보라데이’를 선정했는데 보라데이의 ‘보라’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주변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시선으로 ‘함께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매달 8일을 가정폭력 예방의 날로 지정하여 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여성가족부에서 제공하는 「꽃으로도 풀잎으로도 때리지 마라」라는 교재에서는 가정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10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연구소에서 발간한 교재에도 가정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지침이 안내돼 있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한 자녀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공격성을 띨 수밖에 없다.가정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가 다른 범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번 사건도 피해자였던 소년이 한 순간에 가공할 흉악범이 된 것이다. 경찰청도 2015년을 ‘피해자 보호 원년의 해’로 정해 범죄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범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예방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경기시론] 노예근성에서 탈출하자

부시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에 간 일이 기억난다. 2006년 10월 26일이었다. 미국 공화당에 돈을 많이 기부한 후원 모임인 이글스 창립 30주년 모임이 있었다.이날 부시 대통령은 “이글스 모임의 30주년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라고 하면서 이라크 문제를 언급했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각 나라와 그 나라 대통령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 이라크에 세 번째로 군대를 많이 파병한 우리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부시의 연설이 끝나고 주위가 어수선해진 가운데 댄스파티에 들어가기 전에 꼭 할 말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연설을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올라가 있었다. 내 차례가 됐다. “나는 한국에서 온 경기대학교 교수입니다.” 좌중은 ‘별 볼 일 없는 녀석이 하나 왔구먼’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어서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하여 LL.M 학위를 받은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좌중은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최근에 종교인들과 같이 평양에 간 일이 있습니다. 버스에 나누어 타고 평양 시내를 들어가면서 북한 안내원과 같이 한국의 오래된 가요 ‘두만강’을 불렀습니다.노래를 부르면서 ‘왜 지구라는 행성 가운데 우리 한국만이 분단되어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에 비통했습니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 같은 피, 같은 민족임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 후 호텔에 들어가 TV를 보게 됐습니다. 화면에서는 예쁜 10대 소녀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니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왜 보름달이 서쪽에 지지 못하고 하늘에 걸려 있는가? 이는 김정일 장군님이 혁명 과업을 수행하시는데 차마 어둡게 할 수 없어서 지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진정으로 울고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이 조금씩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되물었다. “당신들 대부분이 크리스천이 아닙니까? 성경 출애굽기에 대해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모세가 출애굽 하던 때 장정 60만 명 등 총 200만 명의 백성이 쉬고 자고 하면서 가도 두 달 이내에 도착한다는 물리적인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실제 얼마나 걸렸습니까?”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1년, 2년도 아니고 40년이나 걸렸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청중은 더욱 조용해졌다. “노예근성(Slave mentality) 때문에 그렇습니다. 뼈, 살, DNA까지 노예가 되어 버린 그래서 노예근성으로 굳어진, 아니 노예 자체가 되어 버린 이 사람들을 사막과 광야에서 늙어 죽게 하고 뱀에 물려 죽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대, 그 2세들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나는 진정 한반도의 통일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미 김정일과 김일성으로 사고가 굳어진 북한 사람들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노예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이 점에서 우리 대한민국도 힘쓸 테니 미국도 인내심을 가지고 북한 백성들이 노예근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응은 뜨거웠다. 나는 내가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노예근성이란 무엇일까. 창의성이 없는 상태이다. 열망하는 목표, 꿈이 없는 것을 말한다. 노예근성의 탈피 없이는 꿈을 꿀 수도, 꿈이 자랄 수도, 꿈이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이것을 깨뜨려야 꿈을 실현하는 첫 단계에 진입하는 것이다. 송하성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대학원장

[경기시론] 기후변화의 시대, 감염질환의 역습

올 겨울은 지구촌 온난화로 인해 그리 춥지 않을 겨울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었고 실제로도 이전보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그러나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1월 중순부터 갑작스럽게 한파가 몰려왔다.잔뜩 추워진 날씨는 지구촌이 겪는 기후변화와 온난화가 거짓말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기상학자들은 이 한파도 지구촌의 온난화로 인한 엘리뇨 현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참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어떤 문제가 야기될지 예측하기도 어려운 시대인 듯하다. 지카바이러스가 연일 언론의 건강 관련 이슈를 독점하고 있다. 지카바이러스는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의 지카숲에 사는 원숭이에서 처음 분리된 바이러스이다. 이전에는 사람에게 발열을 동반한 가벼운 열성 질환을 주로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이 증가하고 유행지역에서 소두증 발생이 함께 증가하면서 소두증과 지카바이러스 감염증과의 관련성이 제기되었다. 또한 길랑-바레 증후군과 같은 중증 신경학적 질환의 발생 증가도 지카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점차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었다. 급기야 2016년 2월 5일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적인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리 주목을 받지 못할 수준이던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이 갑자기 확산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다양한 원인이 가능성으로 제기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기후변화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지카바이러스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이짚트숲모기의 증식이 훨씬 많아졌고 이로 인해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발생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안전할까? 다행스럽게도 아직 우리나라에 지카바이러스 감염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매개체인 이집트숲모기는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에 서식하는 흰줄숲모기도 지카바이러스의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이 이미 알려져 있다. 제한적인 사례이지만 성관계, 수혈 등을 통해 사람 간에 전파가 가능하다는 점도 우리나라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뎅기열도 기후변화와 함께 국내 발생 위험이 증가하고 있는 감염질환이다. 뎅기바이러스는 지카바이러스와 함께 플라비바이러스에 속하는 것으로 역시 흰줄숲모기에 의해 매개될 수 있다. 뎅기열의 경우 소두증 등과의 관련성이 제기된 적은 없지만 지카바이러스 감염증에 비해 질환 자체의 중증도는 훨씬 높다. 뎅기열 역시 최근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환자 발생 보고가 많이 늘어나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뎅기열도 아직 국내 발생이 없지만 일본에서는 환자 발생 보고가 이미 있으며,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시기에 뎅기열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하다. 감염질환은 다른 어떤 질환보다도 기후변화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감염질환은 계절에 따라 발생양상이 달라진다. 같은 질환이라 하더라도 지역의 기후에 따라 발생 양상이 다르다. 매개체를 통해 전파되는 질환의 경우 기후변화로 인해 매개체의 서식환경이 달라지면 발생양상이나 규모도 달라지게 된다. 기후변화의 시대, 감염질환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양상의 감염질환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철저한 대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이다. 최원석 고려대학교 감염내과 조교수

[경기시론] 발달장애인 지원 위한 전문양성 필요

지난 2014년 4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된 후 2015년 11월부터 이 법이 시행되고 있다.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등 인지적 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스스로를 보호하기 어렵기 때문에 학대나 성폭력, 인신매매 등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식당, 병원 등 일상적인 시설을 이용할 때에도 차별을 당하기도 한다. 발달장애인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발달장애인의 건강하고 안전한 생활을 지원하기 위하여 정밀진단비 지원,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및 행동발달증진센터 운영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발달장애를 가진 성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하여 주간활동, 평생교육, 여가문화체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중증의 발달장애인도 체계적으로 직업훈련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중증발달장애인직업훈련기관을 설치, 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규정되지 않았지만 소득보장, 주거생활 지원에 관한 근거도 제시하고 있다.마지막으로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발달장애인의 특성과 요구에 맞게 제공하기 위하여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를 중심으로 모든 발달장애인을 위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법 시행으로 장애인복지시설 또는 특수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기존의 발달장애인 서비스가 보다 새로운 유형으로 다양한 기관에서 확대, 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부터 17개 시도지역에 지역발달장애인지원센터가 설치되고, 거점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 발달장애인평생교육시설 등과 같은 특정 분야의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기관도 각 지역에서 설립될 것이다.새로운 기관이 늘어나는 것만큼, 이와 같은 기관에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특수교사 등 발달장애 관련 전문가에 대한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달장애인법은 새로운 복지 산업 및 신규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서비스의 양적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서비스가 발달장애인의 삶에서 의미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자질과 역량을 갖춘 우수한 발달장애인 서비스 제공인력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현재 특수교육과 또는 사회복지학과 설치 대학에서 이와 같은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그러나 모든 장애유형을 포괄하면서 학령기에만 국한된 장애학생의 지원을 담당하는 특수교사를 양성하는 교육, 그리고 장애인뿐만 아니라, 아동, 노인, 여성 등 다양한 유형의 복지서비스 계층을 체계적으로 지원, 조정하는 사회복지사를 양성하는 교육만으로는 발달장애인에게 필요로 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위과정은 물론, 기존 지원 인력의 전문성과 역량을 제고해 체계적인 교육 및 훈련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삶이 보다 행복하고 윤택해지길 기원한다. 이정열 중부대학교 부총장

[경기시론] 나비효과로 본 한중관계의 실체

‘나비효과(butterfly effect)’란 지구상 어디에선가 일어난 조그만 사건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커다란 폭풍이 초래된다는 것인데, 최근에는 SNS를 바탕으로 지구촌 한 구석에서 발생한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으로 실제로 그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얼마전 한국의 한 TV 프로그램에서 각국의 연예인들이 자국의 국기를 흔드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중 한국의 연예기획사에 속해있는 타이완 출신의 저쯔위(周子瑜)라는 16살 나이의 어린 연예인이 한국의 태극기와 타이완의 국기인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를 귀여운 모습으로 흔들었다. 그러나 단순한 오락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중국과 타이완, 그리고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정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이 어린 소녀는 갑자기 ‘타이완 독립분자’로 낙인찍혔고 이에 놀란 한국 연예기획사는 이 소녀를 마치 IS의 포로가 끌려나오듯이 초췌한 표정으로 사과를 시켰다. 이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쯔위 사건’이라는 명칭이 붙어 거센 태풍으로 변화되어 타이완의 총통선거판을 뒤흔들었다. 한국 연예기획사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와 중국의 압박에 분노한 타이완의 134만명의 젊은층들이 투표장에 몰려가 민진당의 총통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기존의 국민당 정권에서 8년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출신의 당선인은 “한 국가의 국민이 국기를 흔드는 것은 모두가 존중해야 할 정당한 권리이다, 누구도 국민이 자신의 국기를 흔드는 것을 억압할 수 없다”라고 분노를 터트렸고,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압박은 양안관계(중국과 대만)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긴장국면에 접어들었다. 반면 중국공산당과 중국 정부는 ‘중국은 하나다’라고 연일 거센 압력을 쏟아내고, 중국 방송사는 ‘쯔위’가 나온 장면을 광고로 대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발생한 ‘쯔위 사건’ 뿐만 아니라 북한의 수소폭탄 실험 후 미묘한 변화가 일고 있는 한중관계에 대해 정확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최고의 친밀감을 자랑하고 있고, 일부 언론들은 마치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 편에 설 것처럼 보도해왔다. 실제로 한국과 중국은 수년간 미뤄오던 ‘한중 FTA’를 체결하였고 북한에 대해 공동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처럼 믿어왔고 중국이 북한 핵문제와 남북한 통일에 있어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장밋빛 기대를 해왔다. 그러나 ‘쯔위사건’에서 보듯이 중국의 여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한국의 ‘한류’와 ‘한국 제품’들을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도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의 불안정 요소임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에 대한 실제적 제재에는 반대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만만하거나 호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중국은 강대국으로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한반도 정책을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중관계에서 보다 정확한 정책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우리의 관점이 아닌 중국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역학구조를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기철 한중교육문화연구소장·평택대학교 교수

[경기시론] 소통하고 응답하라

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집회가 열리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모임이다.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뀌어 기네스북에 오른 메아리다.일본 정부를 향한 피해 할머니들의 사과와 배상요구에 20여 년 이상이나 일본은 물론, 우리 정부도 묵묵부답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와 일본을 향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항의의 구슬픈 울부짖음이다. 침잠하던 정부는 지난 12월 갑작스레 한일 외교 장관이 만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합의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일본이 위안부 보상으로 10억 엔을 출연하고, 사죄를 표명하긴 했으나 이는 법적 책임이 없어 고노담화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더욱이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았다. 영화 ‘밀양’에서 남편을 잃은 피아노 선생 전도연은 자신의 아들마저 납치, 살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는다. 괴로움에 떨던 그녀는 종교에 몰입하며 생의 의미를 되찾는다. 절절한 기도 끝에 범인을 용서하려 마음먹고 교도소를 찾았지만 범인의 대답이 뜻밖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이미 용서하셨습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범인의 대답에 그녀는 분노한다. “어떻게 내가 당신을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마음이 이와 같을 것이다. 이번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문제가 있지만 필자는 절차적 정당성 미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들은 수요 집회에서, 이번 한일 위안부 합의 전에 정부로부터 어떠한 의견을 묻는 절차도 없었다고 밝혔다. 뒤늦게 외교부 차관이 할머니들을 찾았지만 이미 합의가 이뤄진 후였다. 할머니들이 합의가 졸속으로 처리되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일본군의 야만적인 행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위안부 할머니들이다. 위안부 사안으로 한일 외교장관이 합의를 하기로 했다면, 우리 정부는 가장 먼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을 들었어야 했다.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 청취 절차도 거치지 않았으면서, 협상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할 바가 무엇이고 어떤 협상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의 결과였다고 자평하고 있다.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매듭지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정말 그럴까?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국익을 위해 또 다른 모욕과 굴욕을 안긴 것은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작은 국익에 급급한 나머지 소통과 절차의 중요성을 망각한 것은 아닐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함을 이번 기회에 배워야 한다.‘국익’이라는 명분 아래 대의를 저버리며 민족적 자존심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와 국민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에 응답할 줄 아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전대양 가톨릭관동대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경기시론] 알라딘 램프를 문질러라

알라딘의 램프에는 거인 지니가 살고 있다. 거인 지니는 평소에는 늘 램프 속에 들어가 있다. 램프 속에 갇혀 있을 때 지니는 아무런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램프를 문질러 지니가 한번 나오기만 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굉장한 존재가 된다. 우리는 알라딘과 요술 램프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나먼 중동의 전설쯤으로 이해한다. 과연 전설에 지나지 않을까? 우리 자녀들을 도와줄 지니는 없을까? 아니다. 있다. 알라딘은 우리 또는 우리 자녀들 자신이고, 램프는 바로 우리 두뇌다. 우리 두뇌 속에는 지니가 살고 있다. 무엇이든 생각하는 대로 이뤄주는 지니가 존재한다. 지니는 바로 생체시계SCN ; supra-chiasmatic nucleus다. 이것이 바로 우리 두뇌 속에 숨어 있는 거인 ‘지니’이자 생체시계가 인식하는 허먼큘러스homunculus다. 허먼큘러스란 라틴어로 ‘little man’이란 뜻이다. 엄지 인간이라고 번역한다. 허먼큘러스를 보면 손이 두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인간의 역사는 두 손에서 비롯된 셈이나 다름없다. 인류가 직립하면서 앞발은 마침내 땅을 딛는 역할에서 해방돼 마침내 도구를 쓰는 용도로 변화한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됐고, 두뇌의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 엄지 인간 허먼큘러스는 우리 두뇌 속에 숨어 있다. 영영 숨어 있을 수 있지만 누군가 그를 불러내면 그는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뒤흔든다. 그러려면 램프를 문질러야 한다. 우라늄 광석을 생각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 돌은 천 년, 만년, 억년이 가도록 이대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불을 지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같은 대도시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원자폭탄이 되는 것이다. 우라늄은 300만 배 정도 되는 양의 석탄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품고 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과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 약 20만 명이 사망했으며, 수십만 명이 부상을 입어 평생 고통에 시달렸다. 사람으로 치면, 두뇌 시냅스가 잘 연결되었을 때 1,000,000,000,000,000의 22000제곱의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우라늄이 원자탄이 되어 폭발하는 에너지와 사람이 천재가 되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이 비슷한 것이다. 꿈을 품고, 이 꿈에 열정을 가하면 마침내 인간도 원자폭탄처럼 폭발할 수 있다. 7 그러면 이렇게 에너지를 폭발하게 하려면 알라딘의 램프를 문질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꿈의 씨앗을 갖고 시간을 아껴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큰 꿈을 심고 시간을 허송하지 않게 이끌어야 한다. 자녀들에게 시간을 쏟고 사랑과 정성을 쏟은 만큼 자녀들은 성장한다. 아이와는 별개로 부모도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스스로도 행복해야 한다. 지금 부모가 비전을 가지고 스스로 행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아이가 행복을 느끼고, 행복한 아이가 꿈을 꾸며 성공하게 된다. 자녀로 하여금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먼저 넓은 바다에 대한 동경심, 꿈부터 키워 줘라.”라는 생텍쥐페리Saint - Eyupery의 말이 생각난다. 송하성 경기대학교 교수·한국공공정책학회 회장

[경기시론] 정부의 금연정책 ‘작심삼회’도 쉽지 않다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으레 새로운 결심을 한 가지씩 하기 마련이다. 그 중에서도 빠지지 않는 것이 금연 결심이다. 2015년에는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사람들이 금연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했던가. 도전에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어느 때보다 많았던 듯하다. 2015년 1월 정부는 담뱃값을 2배 가까이 올렸다. 정부는 강력한 금연정책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사실상 세금을 더 걷기 위한 정책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한국납세자연맹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5년 한 해 담배 판매량은 약 33억 3000만 갑으로 2014년에 비해 23% 줄어들었다. 남성 흡연율은 35%로 2014년이 비해 5.8% 감소했다. 수치만 보면 흡연율을 감소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가 예측한 담배 판매량이나 흡연율 하락치와 비교하면 분명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금연의 효과는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세수 증가는 꽤나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정부는 2015년 담배를 통해 약 11조 원 이상의 세수를 거둬들여 2014년에 비해 4조 3천여 억 원이 증가했다. 이는 정부의 예상보다 1.5배 더 많은 금액이다. 정부가 가격 인상정책만 시행했던 것은 아니다. 금연을 독려하기 위한 공익광고와 금연치료 프로그램도 병행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효과는 그리 크게 나타나지 않은 듯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금연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16만 여명 약 11만 명은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그리고 중도포기한 사람의 대다수는 1회 혹은 2회 진료 상담만 받았다. 작심삼회(作心三回)도 어려웠던 것이다. 3명 중 2명이 실패하는 것이라면, 성공한 사람들이 대견할지언정 실패한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2016년 정부는 흡연율을 끌어내리기 위한 정책의 하나로 금연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실시하는 금연프로그램에 3회 이상 방문하면 본인부담금을 전액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금연치료에 소요되는 본인부담금의 비율도 낮추겠다고 한다. 금연을 유도하기 위해 분명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지원만으로 흡연율을 얼마나 더 하락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2015년 금연정책의 결과는 비용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게다가 각종 금연사업에 배정된 2016년 예산은 2015년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연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의심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담배가 가져오는 폐해는 명확하다. 폐암, 구강암, 인두암, 후두암 등을 비롯해 많은 암이 흡연에 의해 유발된다. 심근경색이나 뇌경색, 뇌출혈과 같은 혈관 질환도 흡연으로 인해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신생아돌연사증후군, 신생아호흡장애증후군, 저체중아 출산 등도 흡연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다, 만성폐쇄성폐질환과 같은 폐질환은 흡연이 절대적인 위험인자이며 금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치료이다. 폐렴이나 인플루엔자(독감)와 같은 감염질환의 경우도 흡연을 하게 되면 감염 위험이 증가하고 합병증 발생 위험도 증가한다. 담배의 폐해를 생각한다면 금연 정책을 강하게 가져가야 할 이유는 너무나 명확하다. 하지만 그 정책의 방향이 금연을 명목으로 한 세수 확보여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 눈에 보여주기 식의 정책이어서도 안 된다.현재 상태로는 작심삼회(作心三回)에 성공한 사람을 늘리는 것도 쉽지 않다. 금연과 건강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 최원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경기시론] 트렌드와 지속가능

우리나라 산업의 발달과정을 보면 70년대에는 석유, 화학, 조선, 제철 공업이, 80년대에는 자동차, 정밀기계공업이, 90년대에는 컴퓨터, 반도체 및 정보통신 산업이 주류를 이루었다. 2000년 이후에는 인터넷 기반의 게임, 문화콘텐츠 등의 다양한 ICT 산업이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적 환경의 변화와 문명이 발전하면서 시대의 문화와 정서가 반영된 트렌드(trend)가 변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선망의 대상이었던 코닥의 몰락을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회사는 역설적이게도 코닥 자신이었다. 이미 1975년 CCD 방식의 디지털 카메라를 개발해 놓고도 자사의 필름 판매 수익을 위해 디지털카메라 시장의 확대를 간과했다. 또한, 시장 점유율 40%로 휴대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의 도래를 예측하지 못해 삼성과 애플에 밀려났다. 반면, 휴대폰에 모바일 기능을 결합하고 디자인을 중시한 애플의 성공은 경영방식에서 하이브리드, 집중, 유연성을 강조하면서 시장의 트렌드를 잘 읽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구글, 페이스북 그리고 우리나라의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도 트렌드를 파악한 결과 매출을 늘리고 사업규모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렇듯 사회와 시대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조직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며 향후의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한류의 바람에 힘입어 문화콘텐츠, 게임, 미디어 산업 등이 트렌드에 의지하여 우리나라의 특화 산업으로, 대학에서는 특성화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트렌드는 항상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는 위험부담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변화에 즉각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지는 예측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아이돌과 걸 그룹을 배출하고 커피만을 판매할 수 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과거는 10년 주기의 산업변화가 있었지만 현대에는 3~4년 주기 아니 그 보다 더 짧은 시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트렌드에 의지한 교육과 산업을 찾는 동시에 지속가능(sustainability)한 산업이나 교육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나라 중고생들이 세계 올림피아드 대회에 출전하여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결과를 종종 보지만 이웃나라 일본이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동안 우리는 노벨 평화상을 제외한 다른 분야의 수상자는 없는 실정이다. 노벨상이 없는 이유는 우리의 교육이 선행학습과 심화학습만을 여러 세대에 걸쳐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기초과학의 기반위에 바벨탑을 쌓기 위해 세대를 이어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슈퍼스타는 하늘의 별이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지속가능한 교육과 산업의 토양에서 자라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은 트렌드 살리는 교육과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하는 교육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 혼재하여야 할 것이며, 국가 또한 시대를 대변하는 트렌드 산업의 발굴과 지속가능한 기초과학이나 기간산업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정열 중부대학교 부총장

[경기시론] 혈맹에서 계륵으로 전락한 北中 관계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의 자금성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계란 모양의 아주 특이한 구조물을 보게 되는데 바로 중국 공연 예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대극원(國家大劇院)이다. 이곳은 중국 권력의 심장부인 중난하이(中南海)에서도 매우 가깝고 여기서의 공연은 상당히 비중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북한의 김정은이 가장 아낀다는 북한식 소녀시대인 모란봉 악단이 이곳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되었다가 갑자기 취소되는 해프닝이 발생했다. 원래 모란봉 악단의 중국 공연과 관련하여 한반도를 둘러싼 남북한과 중국, 나아가 동북아 전체의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었다. 최근 수년간 한국과 중국이 역대 최고의 관계를 유지한 반면, 순망치한과 혈맹을 강조했던 북한은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국가주석인 시진핑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고 북중간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지속되어왔다. 그래서 이번 모란봉 악단의 공연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북중관계가 재정립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행사를 3시간 앞둔 시점에 돌연 모란봉 악단이 짐을 싸고 북한으로 가버렸고 공연을 보러갔던 관객들은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과 역시 북한은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행사 당일까지만 해도 중국의 언론과 매체에서는 북한의 공연에 대해 환영하는 기사를 게재했으나 그 다음날 부터는 언론에서 북한의 중국 공연에 대해 모두 삭제되거나 일체 언급하지 않는 보도 통제에 들어갔다. 모란봉 악단의 갑작스러운 공연취소에 대해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의 중국 정부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책임지는 대국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 노력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에 와있는 동안 김정은이 기습적으로 북한의 수소폭탄 보유 선언을 하였다. 이에 당황한 중국 정부는 공연의 내용에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삭제하라고 요구하였고 중국 정부의 관람의 격을 대폭 낮추어 버렸다. 중국은 만약 시진핑 주석이 관람을 했을 경우 중국이 마치 북한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발끈한 북한의 김정은이 모란봉 악단을 북한으로 철수 시켜버린 것이다. 현재 중국 지도부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을 매우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지만 북한의 핵개발과 황당한 일련의 행위들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을 더욱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군사적 혈맹을 자랑하던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이제는 버릴수도 가질수도 없는 계륵의 관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 될수록 중국의 고민은 점차 깊어 질 수밖에 없다. 박기철 한중교육문화연구소 소장

[경기시론] 시위대의 복면을 벗기려면…

해와 바람이 길을 가는 사내의 외투를 벗기기로 내기를 했다. 바람은 사내의 외투를 벗기기 위해 강풍으로 맞섰다. 사내는 추워하며 외투를 꼭꼭 감쌌다. “어라?” 바람은 더 세게 불어보았지만 그럴수록 사내는 몸을 더욱 꽁꽁 여몄다. 바람이 지쳐 포기하자 이번엔 해가 나섰다. 해는 따뜻한 볕을 내리쬐었고 주변은 훈기로 가득 찼다. 그러자 사내는 더위를 못 이겨 스스로 외투를 벗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우화 내용이다. 바람과 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람은 외투를 벗기기 위해 강압적이고 위협적이며 직접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하지만 해는 사내가 스스로 외투를 벗게끔 만들었다. 바람은 실패했지만 해는 성공했다. 억압적인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옛 사람들의 지혜다. 지난 11월 14일, 서울에서 벌어진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서는 시위대의 폭력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2차 총궐기 집회신청에 대해 시위가 불법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것과 공공질서 유지를 이유로 불허했다. 시위를 둘러싸고 갈등이 점점 심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법원은 헌법상 집회의 자유와 주최 측의 평화시위 약속을 이유로 집회금지 처분은 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집회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집회를 앞두고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시위는 평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집회 참가자들이 폴리스라인을 준수했고 경찰도 질서유지에 방점을 두었다. 주장의 선명성을 위해 과격시위를 자행했던 기존의 방식이 아닌, 평화시위로의 진전이었다. 평화시위가 가능했던 것은 주최 측이 끊임없이 평화시위를 할 것을 공언했고, 경찰이 이를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경찰은 물대포나 차벽을 사용하지 않았고, 시위대에선 각목이나 쇠파이프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쇠파이프도 물대포도 없었던 집회에 이전보다 더 늘어난 것은 복면이었다. 이는 최근 발의된 복면금지법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복면금지법은 복면을 쓴 시위대가 폭력적으로 행동할 것을 우려하여 복면착용을 금지한 법안이지만, 이는 지난 2003년 헌법재판소가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결정한 것과 명백히 배치되는 법안이다. 인류는 태초부터 수렵, 어로, 채취로 생활하면서 무리를 지었다. 무리가 커지면서 집단을 형성하자 이전보다 더 많은 식량이 필요했다. 더 크고 힘센 동물들을 사냥하여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사냥하고자 하는 동물들보다 대개는 더 느리고 약했다. 선조들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지혜였다. 얼굴을 갖가지 안료로 덧칠하고 강한 동물의 뿔이나 이빨로 몸을 장식했다. 우리 선조들은 탈을 쓰고 더 강한 것에 도전하고 또 풍자했다. 복면금지법을 발의하여 시위대의 복면을 벗기려는 방식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 무작정 칼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방법과 같다. 나그네가 으스스한 삭풍에 외투를 더욱 더 꽁꽁 여몄듯이, 복면금지법은 더 많은 복면시위대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뜻한 해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지혜를 배워야 한다. 힘없는 민중들이 더 강한 자에 도전하고 풍자할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복면은 없어지지 않을까. 전대양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한국범죄심리학회 회장

[경기시론] 독서로 좌뇌를 발전시켜야

사람은 두 개의 뇌를 가지고 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났을 때는 우뇌 지배적이다. 어릴 때는 우뇌 지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기에 아이들은 어른들과 다르게 패턴을 인식한다. 아이들은 최초의 학습 단계에서 모양과 냄새 그리고 소리 등에 반응한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좌뇌 기능으로 옮겨간다. 우뇌는 본능, 직관, 통찰력, 은유, 상상의 샘이다. 우뇌는 감각적이고 감정과 관련이 있다. 우뇌는 모든 것을 세부까지 한꺼번에 받아들인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반면 좌뇌는 판단력, 논리, 추상력, 비판력의 샘이다. 사람들은 보통 두 개의 뇌 중에 어느 한 부분만 의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가능한 한 한쪽 뇌만 사용하려는 작용을 멈추고 두 개의 뇌를 조화롭게 사용하는 법을 훈련하면 좋다. 그런데 한국인에게는 좌뇌 학습이 더 필요하다. 한국인은 우뇌형이어서 왼쪽 눈을 주로 쓴다. 버스를 타도 왼쪽을 선호한다. 한국인의 원초적인 심성은 무속적인데 그것은 우뇌에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신명 나게 놀고 춤추며 굿을 하는 오랜 문화적인 습성은 한국인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심성이다.일을 대충하고 어림잡아 감으로 하는 것, 따지기 싫어 그냥 넘어가고, 빠른 눈치와 역동성, 직관을 중시하는 것, 신들린 무당처럼 며칠 동안 밤낮을 춤추고 노래해도 피곤한 줄 모르는 신바람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우뇌의 역할에 속하는 부분이다.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우뇌가 발달된 민족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 정주영의 현대건설 신화나 대우 김우중의 밀어붙이기 도전의식 같은 것이 우뇌형에서 나오는 특징들이다. 분명하게 따져 보고 분석한 후에 합리적이면 시행하는 서구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도저히 이해 못 하는 일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이룬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면에 대충대충하다 보니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 부실공사와 문제점이 드러난다. 여기에 우뇌형의 장점과 단점이 함께 들어 있다. 우뇌가 강한 민족은 우리하고 비슷할까? 그렇다. 이탈리아가 그렇고 중국이 그렇다. 몽골도 그렇다. 일어날 때는 벌떼같이, 마른 초원의 불길처럼 무섭게 일어나지만 쓰러질 때는 어이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끓기는 빨리 끓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금세 식어버린다. 그러니 선전 선동가가 나서면 그냥 다 넘어가 버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 좌뇌 편향으로 바꿔야 할까? 아니다. 너무 좌뇌 편향적이면 일본, 독일처럼 일사불란한 전체주의 국가가 되기 쉽다. 기초는 튼튼하지만 재미나게 살지 못한다. 인간성이 말살되고 사람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기회가 있다. 우뇌가 강한 우리 민족이 좌뇌를 조금만 더 개발 하면 세계 최고의 국민이 될 수 있다. 우뇌 중심으로 좌뇌를 계발하면 창의력이 매우 뛰어나게 된다. 한국인들 중에서 이따금 세계적인 수준의 인물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한국인들이 좌뇌 사고법을 조금만 더 익히면 대단한 힘을 뿜어낼 수 있다. 우뇌를 기반으로 한 좌뇌 사고법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다. 독서가 가장 큰 효과를 낸다. 무슨 책을 읽든 일단 좌뇌와 우뇌가 고루 계발된다. 그런 중에도 좀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책을 조금 더 읽어야 한다.송하성 경기대 서비스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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