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위협은 끝나지 않는다

어느덧 3월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봄이 되면 인플루엔자(독감) 유행이 줄어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정부의 인플루엔자 표본감시 결과를 보면, 2월 초 유행의 정점을 이룬 후 점차 감소해 가던 주별 인플루엔자 의사환자 분율이 3월 중순에 이르러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인플루엔자 유행은 최근 어느 해보다 심한 양상을 보였다. 유행의 크기는 최근 몇 절기와 유사했지만, 중증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올해 유행을 주도한 바이러스는 A/H1N1pdm 바이러스로,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을 일으킨 그 바이러스이다.

사실 2009년 이후 이 바이러스에 의한 유행의 크기가 점차 작아져서 힘을 잃어 가는 줄 알았는데 올해 다시 큰 유행을 일으킨 것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백신과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어 있다. 백신의 효과를 더욱 향상시키고 항바이러스제에 대한 내성을 극복하기 위한 연구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간혹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미 정복된 바이러스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플루엔자는 사람이 정복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어떤 전염성 질환을 박멸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전파를 차단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중재방안이 있어야 하고 둘째, 충분한 민감도와 특이도를 가진 진단수단이 있어야 하며, 셋째, 병원체의 생활사에 인간이 필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부합되는 전염병에는 두창, 폴리오, 홍역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인플루엔자는 이런 조간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해서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상황까지 왔을까?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 이후 인플루엔자에 대한 연구개발과 지원이 늘고 신종인플루엔자 범 부처 사업단과 같은 조직이 생기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최근 연구 결과를 보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성인만을 기준으로 봐도 매년 천 명 이상의 사망자를 유발시키고 있고 사회경제적으로 매년 천 억원 이상의 질병부담을 유발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여러 호흡기 병원체 중에서 가장 큰 질병부담을 가진 바이러스이다. 쉽게 일어나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매년 계절적인 유행과 10~40년마다 반복되는 대유행을 일으킨다. 또한 계속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가 등장하여 인류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조류인플루엔자로 알려진 AH5N1 바이러스의 경우, 1997년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치명률은 50% 이상이다. 이 바이러스는 아직 사람 간에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작은 부분의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사람 간에 쉽게 전파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는 점이 이미 연구를 통해 증명됐다.

 

끊임없이 변이가 발생하고 호흡기를 통해 사람 간에 전파가 가능하며 중증 환자를 유발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성을 감안하면, 대응체계가 조금만 소홀해 져도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은 자명하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고, 많이 준비된 듯하지만 여전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은 이 바이러스 앞에 우리는 조금은 더 겸손한 자세로 멀리 바라보며 대응해 가야 하지 않을까?

 

최원석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감염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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