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충성

과잉충성이란 말이 있었다. 자유당때 시작해서 군사정권시절에 많이 쓰였다. 주로 공직사회에서 성행했다. 정권이 의도하는 바를 알아 그에 영합하는 일종의 위법행위인 것이다. 선거나 고문에서 많이 행해졌다. 선거선심이란 것도 이때 생긴 것이다. 고의로 정전을 시켜놓고 촛불로 개표작업을 하는 올빼미개표, 손가락에 깍지를 끼어 야당후보표에 인주를 묻혀 무효로 만드는 피아노개표가 이 무렵에 있었다. 기권자를 투표한 것처럼 꾸며 여당후보의 몰표를 투표함 이송직전에 넣기도 했다. 고문도 그랬다. 민주화운동의 시국사범을 다루면서 혹독한 고문으로 엉뚱한 사람에게까지 혐의를 옭아매곤 하였다. 1987년 서울대생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과 관련,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2억4000만원, 손배승소 확정판결에 따라 국가가 청구한 구상금 소송이 승소했다. 국가가 박씨 유족들에게 지급하는 돈을 물어내야 할 사람들은 당시 치안본부장 K씨등 관련자 9명이다. K씨는 고문을 직접 지시하진 않았으나 고문경찰관을 도피시키는 등 직무유기등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전에는 과잉충성을 하면 위에서 기특하게 여겨 출세시켜주는 예가 많았다. 이심전심으로 통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민도가 깨어 이심전심의 과잉충성도 벼락출세도 용납지 않는 세상이 됐다. 재판중인 고문기술자 L씨도 자업자득이지만 그같은 과잉충성의 피해자인 셈이다. 정권은 유한하다. 공무원의 과잉충성은 자신도 망치고 자칫 잘못하면 가산도 탕진하는 패가망신의 길이다. 아직도 과잉충성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 공직자가 있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이다. /白山

선거비용 인터넷 공개 환영

중앙선관위가 오는 13일까지 제출하게 되어 있는 제16대 총선 출마자들의 선거비용 수입·지출보고를 중앙선관위 인터넷에 공개키로 했다고 한다. 지난 총선시 병역·납세·전과·재산공개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었던 선관위가 이번 선거 출마자들의 사후 평가에 있어 중요한 정보가 되는 선거비용을 공개키로 했다는 것은 비록 당연한 결정이지만 지극히 환영할만한 처사이다. 우리가 선관위의 인터넷 공개를 환영하는 것은 비록 당연한 사항이기는하나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측면이다. 선거비용 보고는 선거법 제132조에 의거 선거일후 30일까지 당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게 되어 있으며, 중앙선관위는 이를 일반에게 공고하여야 하며, 일반인들은 공고일로부터 3개월간 보고서의 사본을 열람하여 이의신청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선거비용에 관심있는 유권자는 당해 선관위에 가서 언제든지 사본을 열람할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이 선관위에 가는 것도 교통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방대한 자료를 검증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지금까지 선거전에 선거비용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유권자들이나 시민단체들도 대부분 실제로 선거비용 열람을 등한시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유권자에게 정보화시대를 맞아 서비스 제공이라는 차원에서 인터넷에 공개하므로 관심있는 유권자는 사무실 또는 안방에서 편안하게 선거비용이 성실하게 신고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제16대 선거 역시 역대 선거 못지않게 돈이 많이 든 선거로 알려지고 있다. 일부 후보자는 법정선거 비용의 10배 이상을 사용한 후보자도 있다고 한다. 유권자들은 선거비용을 많이 사용했다고 비판만 하지말고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를 꼼꼼이 챙겨 의심가는 항목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해야 한다. 선관위도 엄격한 선거비용 실사를 통하여 허위보고된 항목에 대해 끝까지 추적, 고발해야 된다. 이번 선관위가 실시하는 선거비용의 인터넷 공개가 깨끗한 선거풍토 형성에 있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검문경찰이 납치되다니…

요즘 경찰보기가 민망스럽다. 최근 부천과 부평에서 출동경찰관들이 현행범 및 피의자들로부터 폭행당하고 연행자들에게 계급장을 뜯기는가 하면 파출소 집기가 파손당하고, 고속도로 검문경찰관이 납치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공권력의 권위가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각종 범법자들이 경찰의 권위에 정면 도전하는 이같은 현상은 사회의 기강과 치안상태가 극도로 어지럽고 해이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민생치안의 일선 보루인 경찰의 근무체계가 얼마나 허술했으면 공권력이 이처럼 위협받는 사태가 발생했는가를 생각하면 국민들로서는 불안하기도 하다. 요즘 강력범들은 물론 일반 범법자들도 범행이 갈수록 흉포화하고 대담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비례해서 경찰의 대처능력도 크게 개선돼야만 민생치안을 유지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사건들 이전에도 공무집행중인 경찰관이 피습 폭행당하고 순찰차와 총기를 탈취당하는 등 공권력이 무력하게 유린되는 사건은 부지기수로 발생했다. 그럼에도 경찰관이 툭하면 납치되고 공격당하며 매맞는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근본대책을 세우기 보다는 그때 그때 미봉책으로 사건을 얼버무려 공권력을 우습게 보는 풍조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경찰관이 신고 받고 출동하거나 검문 검색에 나설 때는 어떤 상황이라도 대비할 태세를 갖추는 것은 치안유지자로서의 기본이다. 검문 검색과 출동초기에 범인검거를 위한 태세가 완벽했더라면 이들에게 납치되고 매맞는 등 공권력이 유린되는 창피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찰당국은 평소 범인검거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 개개인이 초동조치를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느냐는 것이다. 경찰관의 긴급상황 대처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평소 범인을 초동장악할 수 있는 무도훈련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가 턱없이 부족한 인력과 장비를 확충할 수 있는 예산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복무자세에 문제점이 없는지를 전반적으로 점검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통일문화대축제 개최 필요성

제2회 2000고양세계꽃박람회가 일산호수공원에서 12일동안 외국인 관람객 3만명을 포함해 80여만 관람객이 찾은 가운데 행사운영, 관람객유치, 화훼수출실적 등에서 성공적인 실적을 올리고 지난 7일 폐막됐다. 이처럼 고양시가 수도권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으로 화훼산업 활성화와 호수공원을 최대한 활용해 세계적인 행사를 훌륭히 치뤄내는 것을 보고 파주시도 이에 못지않은 세계적인 행사를 치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는 현재 파주시에서 갖고 있는 장단콩축제며 버섯축제, 율곡문화제 등이 그 가능성을 더욱 짙게 해준다. 더욱이 파주시에 판문점, 제3땅굴, 통일전망대, 통일공원, 임진각, 자유의 다리, 평화의 종 등 안보관광지가 지천에 산재해 있고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는등 남북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해빙기를 맞고 있는 터에 통일문화를 새롭게 이끌어 간다는 취지에서 ‘통일문화대축제’개최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통일문화대축제는 고양시 세계꽃박람회보다 오히려 전국적인 관심은 물론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해 국가차원의 행사로 이끌어 낼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통일문화대축제는 임진각과 통일동산, 통일공원, 통일촌, 문산 등에서 통일가요제,통일연극제, 통일마라톤, 세계 석학이 참여하는 통일세미나, 이북5도민과 실향민이 참여하는 민속놀이 경연대회, 백일장, 북한 공연단 및 예술교류, 공동학술세미나 개최 등 이벤트도 무궁무진하다. 현재 파주시의 입장은 여러가지로 어려운 여건에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행사를 통해 시민이 화합하고 세계적인 행사를 치뤄 시민들에게 긍지와 미래지향적인 이상을 심어줄 필요성을 생각해볼 때다. /파주고기석기자<제2사회부> koks@kgib.co.kr

여·야 소장파의 변화요구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초·재선 당선자들이 권위주의적 당내 지배구조에 이의를 들고 나선것은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1인 지배의 비민주적 하향식 당운영에 반발하는 것은 당내 민주화의 시도로 평가 된다. 개혁이 가장 안된곳이 정치권이며 민주화가 가장 안된데가 정당으로 비판 받아온 관행에 변화의 조짐으로 기대할만 하다. 민주당은 중진 권노갑 상임고문, 김옥두 사무총장이 지난 4일 소장파 당선자들과 만찬을 가졌으나 위압적인 자세로 오히려 불만을 샀다. 소장파 당선자들은 중진들이 ‘언행을 신중히 하라’며 마치 지시하는 투의 당부만 하고 5분도 안돼 자리를 뜬것은 대화의 뜻이 없는 구태적 발상이라고들 말한다. 이와같은 기류는 한나라당 또한 사정이 비슷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야의 당직 경선에 선수(選數) 파괴 바람이 인것도 공통점이다. 한나라당의 총재와 민주당의 최고위원 경선에 중진들을 제치고 나섰거나 나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당화된 당의 체질 개선을 들고 있다. 의정활동에서 자유투표제를 주장, 당론이라는 이름의 거수기 노릇을 거부하고 있는것 역시 주목된다. 자유투표제는 미국의회에선 보편화 됐다. 그들처럼 의안에 대한 의원들의 투표 내용을 선거구 유권권자들에게 공지함으로써 의정활동에 책임을 지는 새로운 기풍이 조성돼야 한다. 당론으로 위장된 당리당략을 파괴할줄 아는 새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은 당총재나 당에 책임을 지는것이 아니다. 뽑아준 유권자들에게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또한 당의 민주화다. 당의 민주화가 이루어질 공산은 크다. 무엇보다 시대적 요청의 흐름이 이러하다. 현실적으로 어느 당이든 단 한석의 의석이 아쉬운 절묘한 분포의 총선민의가 또 그러하다. 특히 민주당은 다음 제17대 총선에서는 지금의 총재인 김대중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 할수 없는 시기적 맞물림이 끼어있다. 이번 16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15대처럼 총재의 눈치를 굳이 살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것은 정치도 이젠 변화의 추세를 거역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야 모두 소장파의원들을 다스리는 총재나 중진들의 지배력은 경륜에 의한 설복이지 위압적인 분부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돼야 하는 것이다.

金주석참배 있나? 없나?

어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가진 남북4차접촉 실무절차합의서 마련을 위한 의견조율 16개 사항중 1∼2개 사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서 작성이 5차 접촉으로 넘어갔다. 비공개된 합의사항이 어떤 것이며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있다. 김일성 주석의 참배여부 문제다. 정부당국은 지난 3차 접촉에서 이에대한 일부의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했으나 여전히 첨예한 관심사다. 북측에서 참배를 요구하지 않으면 몰라도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5년 돌연히 일어난 북측 유고가 있기전에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 합의사유만으로도 저쪽에서는 참배요구의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좀 다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38선 일원의 인민군에게 총공격령을 내린 작전명령시달이 ‘내각수상겸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이름으로 된 사실을 지울수 없는 것이다. 이로인한 동족상잔의 참극은 새삼 말할 것이 없다. 더욱이 6월은 현충의 달이다. 남쪽에서는 현충의 달을 기리는 입장에서 정상이 평양에 간 것까지는 이해해도 김주석을 참배하는 것은 정서상 걸맞다 할수 없다. 전몰유족단체등의 심한 반발도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따지자면 한반도 냉전은 종식시킬 수 없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부에서는 정상회담에서 6·25문제도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처음부터 어려운 일부터 시작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는 남북관계개선이 성숙된 다음에 꺼내도 그리 늦진 않다. 또 민족화해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은 기대되는 역사적 대업이긴 하나 회담은 상대가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정서상의 장애로 인해 회담분위기를 미리 그릇치는 것이 과연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깊은 고려가 또한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에 조만간 확실한 내용을 밝힐 의무가 있다. 실무접촉에서 참배에 관한 논의요구는 없었다든지, 아니면 요구가 있어 어떻게 대처하여 합의수준은 어느정도라는 것을 알려 국민의 양해를 미리 구해야 한다. 아무말 없이 있다가 평양에 가서 불쑥 예상치 못한 참배를 하면 비록 통념적 의전절차라해도 미리 밝혀 양해될 수 있는 일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어버이날에 무궁화를

올 어버이날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카네이션 대신에 무궁화를 어버이들 가슴에 달아주자는 수원 영복여고 학생들의 나라꽃사랑 캠페인이 해마다 있었다. 벌써 10여년째다. 학생들은 이같은 캠페인을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수원시내 직장단체를 찾아다니며 벌여왔다. 카네이션 달아주기는 190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살던 한 처녀가 어머니추도회에서 한상자의 카네이션을 바친데서 비롯됐다. 안나 져비즈라는 이 처녀는 그후에도 어머니의 은공을 기리는 어머니날 제정을 주창, 자신이 지닌 유산을 다 쏟아부었다. 헌신적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윌슨대통령의 감복으로 매년 5월 두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공인된 것이 1914년이다. 이어 1934년에 아버지날이 정해졌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어머니날만 있었던 것을 아버지를 포함한 어버이날이 제정된 것은 1974년이다. 이를테면 아버지들은 어머니들 덕분에 덤으로 어버이날을 갖게 된 것이다. 훈화초, 근화(槿花)라고도 불리는 무궁화는 반만년동안 국내에 많이 자생해온 대표적인 꽃이다. 단군이 개국할때부터 목근화가 나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후에도 중국에서 우리나를 지칭할때는 근역(槿域),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지칭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다. 이처럼 유서깊은 무궁화가 드디어 국화로 지정된 것은 조선조말 개화기에 윤치호등의 발의로 애국가가 창작될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들어간데서 비롯됐다. 어버이날에 미국식의 카네이션보다는 국화꽃인 무궁화를 달아주자는 영복여고 학생들의 나라꽃사랑 캠페인은 의미가 깊다. 경로효친의 전래사상을 전래의 나라꽃으로 상징하는 것은 곧 우리의 혼을 지킨다 할 것이다. /白山

故 엄익준씨

죽음 앞에는 장사가 없다. 그러나 더러는 이에 초연한 삶이 있다. 이러한 당자가 개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러러 존경심을 갖게 된다. 하물며 국가대사에 관여하는 사람의 그같은 초인적 노력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고(故) 엄익준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이런 분이다.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도 이를 숨긴채 남북정상회담 관련의 중대사를 음지에서 도우며 진통제로 고통을 견뎠다. 사표를 낸 것은 회담성사가 확정된 뒤인 지난달 8일, 일이 잘된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마음놓고 물러난 것이다. 뒤늦게 현대 중앙병원에 입원했으나 3일 오후 3시15분께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과 비슷한 분으로 약10년전 배석대법관이 있었다. 그 역시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 미제사건을 줄이기 위해 밤새워 일을 더 열심히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작고하기 보름전 사표를 쓸때 비로소 알았다. ‘현직에서 죽으면 조직에 누를 끼친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표를 냈다. 배대법관 역시 그때의 나이가 고인과 같은 57세로 아까운 나이였다. 두분의 성품이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히 순국의 공직자 상이다. 간암말기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 괴롭힌다. 고인이 회담 성사를 위해 남모를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쓰리다. 평생이라 할 34년동안 몸담았던 국가정보원葬으로 지난 6일 삼성의료원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미망인 임미대자씨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퇴직금은 장학금으로 기증하고 조의금조차 정중히 사절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케 했다. 삼가 명복을 비옵나니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白山

학부모 연좌제 중단해야

일부 고등학교가 학생들의 흡연, 두발, 교복불량, 지각 등에 대한 생활지도를 이유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 들여 해당 학생과 함께 학교복도 청소 등을 50여차례나 시킨 일을 놓고 찬반 양론이 무성하다. ‘교실붕괴 만연을 바로 잡을 값진 일이며 자식의 비행 교정 효과가 크다’는 찬성론과 ‘수치심만 자극하는 일이지만 자식들 때문에 수모를 참는다’는 반대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학교측의 취지를 들어 보면 그럴 듯 하다.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학부모 봉사활동을 시행한 지난 3월 이후 흡연 학생수가 대폭 줄어 들었으며 학부모들이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가 자녀 일로 해서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것은 말이 봉사활동이지 실상은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일부에서 교단이 무너지고 교실이 붕괴되는 현상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과 그 학부모가 함께 하는 교내 봉사활동을 통해 학생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칙위반 학생-학부모 연좌제’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연좌제라는 어휘가 주는 성격을 고려할 때 사회적 통념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 연좌(緣坐)는 글자 그대로 ‘일가(一家)의 범죄로 인하여, 죄없이 처벌당하는 일’이다. 깊이 따진다면 교내에서의 학생 잘못이 과연 학부모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교사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가. 제자가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제자에게 내주며 ‘잘못 가르친 내 죄가 크다. 그 벌로 내 종아리를 때리라’고 한 고매한 스승의 책임론을 교직자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만일 학교에서 연좌제를 강행한다면 교사의 잘못은 교장이 책임져야 하는 등식이 나온다. 학생생활 지도는 학생상담 등을 통해 교내에서 해결하거나 교칙위반 내용을 학부모에게 통보하여 가정에서 선도토록 해야 한다. 가정과 연계하더라도 효율에 앞서 학부모들이 심적 부담을 갖거나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된다. 교칙을 어긴 학생을 교사는 학교에서, 학부모는 가정에서 선도해야 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교칙위반 학생-학부모 연좌제는 중단해야 된다.

公的자금운용 황당하다

정부의 공적자금운용이 무척 걱정스럽다. 당장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투입하고자 하는 소요액이 5조원인데 비해 확보된 자금은 불과 3조원이라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40조원의 추가공적자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정부의 방만한 공적자금운용 인식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기업부실 및 금융부실의 확대로 이미 투입된 64조원 말고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유만부동이지 얼마가 더 필요할 것인지 실로 답답하다. 그렇다고 이미 51조원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자산구조나 수입구조가 썩 좋아진 것도 아니다. 자금회수가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도 지극히 의문이다. 정부는 90%로 보고 있다. 책상머리 계산을 일단은 믿는다 해도 6조원 이상의 원금을 날릴 판이다. 여기에 또 해마다 수조원의 이자가 붙는다. 이를 국민의 세부담인 재정자금으로 감당하고 있다. 과다한 재정적자 가중을 우려치 않을수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성업공사와 예금보험공사의 공채발행을 통해 조달해왔던 것이 이젠 공적자금 마련에 초비상이 걸렸다. 비상수단으로 예금공사가 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한 형식으로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겠다는 것이 정부측 생각이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대대적인 채권발행도 금융시장에 부담만 줄뿐 전망이 투명하다 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변칙은 무리라고 보아 정공법으로 가야할 것으로 믿는다. 공적자금조성 및 투입에 국회의 심의를 받아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를 외면하면 국회가 요구해야 한다. 국민부담을 담보로 추경이나 당초 예산규모와 맞먹는 수조, 수십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정부부처가 혼자 떡 주무르듯 하는 것은 사리에 맞다 할 수 없다. 공적자금운용은 적정성과 효율성이 생명이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자금이 과연 이에 합당한지는 심히 의문이다. 금융개혁만해도 겉치레 실적에 급급하여 책임규명과 후속조치를 소홀히 해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거센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망할 기업은 망해야 경제가 제대로 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문학적 수치의 공적자금 투입에 등가성이 있어 정말 불가피했는지 냉정한 반성이 요구된다. 공적자금이 마치 공돈처럼 보편화된 인상을 주는 것은 황당하다. 다음 정부는 어떻게 되든 우선 써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공적자금운용백서 발표같은 것은 그같은 사례의 하나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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