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기도 관련 법안들이 진짜 민생법안이다

국회가 모처럼 민의에 부합하는 목소리를 냈다. 민생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정쟁의 대상이 아닌 민생법안들이 대상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법안들은 대체로 가늠된다. 악덕 부모의 재산 상속을 막는 ‘구하라법’, 의사 파업 공백을 메울 간호사법, 범죄 피해자 유족에 대한 구조금 지급법 등이다. 이밖에도 ‘K칩스법’, ‘예금자보호법’,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법관 증원을 위한 관련법, 육아휴직 기간 연장을 위한 법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나같이 생계, 산업, 개혁에 일정이 촉박하다. 반도체 설비 투자를 위한 공제율 조정이 시급하고, 금융사고 때 예금액 대신 지급은 적용 시한이 끝나간다. 한빛 원전, 한울 원전, 고리 원전이 중단될 수도 있다. 판사 출산 휴가에 없어진 재판부도 있다. 그 성격상 여야 간 정쟁의 소지가 없다. 대체로 처리에 대한 방향도 일치한다. 속도감 있게 처리될 것으로 기대한다. 여기서 우리가 강조하고 주문하려는 것이 있다. 경기도와 관련된 법안들이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경기도 법안들이 많다. 수도권정비계획법 일부 개정안(안태준 의원), 반도체 생태계를 위한 법안(송석준), 경기분도와 관련된 법안(정성호 등), 군공항 이전 및 국제공항 설치와 관련된 법안(백혜련) 등이다. 수도권 산업을 위한 법이고, 반도체 산업을 위한 법이고, 경기도 발전을 위한 법이고, 경기 남부 국제 경쟁력을 위한 법이다. 총선에서 여야 구분 없이 법안 통과를 약속한 사안들이다. 당리당략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의견 충돌이 있다면 그건 지역적 이해관계다. 수정법 개정은 비수도권의 견제를 받고 있다. 경기분도 추진은 정치적 이해관계가 갈린다. 공항 관련 법안은 지역과 지역이 충돌한다. 정쟁이 아니라 지역 간 대화와 토론이 필요한 의제들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오랜 처리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수정법, 군공항법은 그간 발의와 폐기를 거듭했다. 4년의 국회 임기가 결코 넉넉하지 않다. 이 점 때문에 조속히 토론과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민생의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있다. 그 수도권의 절반이 경기도에 있다. 1천400만 경기도민에게 필요한 법안이다. 이 법안이야말로 가장 폭넓게 적용될 민생법안이다. 수정법을 고쳐야 한국 경제가 살고, 반도체 생태계를 개선해야 한국 경제가 산다. 경기도에서 출발한 경기도 관련법이 그래서 다 중요하다. 모처럼 국회 본연의 역할을 해보겠다는 여야 합의체다. 경기도 법안의 중요성을 인식해 집어들기 바란다.

[사설] 폭염에도 일하는 건설노동자, ‘작업중지권’ 법제화해야

체감온도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낸 ‘국민안전관리 일일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일 발생한 온열질환자 수만 86명이다. 5월20일부터 이날까지 누적된 온열질환자는 1천907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는 18명에 이른다. 가축과 양식 피해도 상당하다. 고온다습한 찜통더위에 야외 근로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에는 부산의 공사 현장에서 60대 인부가 작업 중 열사병 증상으로 쓰러져 숨졌다. 고용노동부가 ‘폭염 대비 근로자 건강보호 대책’을 내놨으나 야외 근로자들은 대책이 현장에서 겉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1도를 넘으면 각 사업장은 물·그늘·휴식을 제공해야 하고, 33도(주의단계)가 넘으면 매시간 10분씩 휴식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35도(경고단계) 이상에선 매시간 15분씩 휴식에 무더위 시간대(오후 2시~5시)에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하지만 건설노동자의 80%가 무더위 시간대에도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노조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폭염특보가 발령될 때 매시간 규칙적인 휴식을 취하는 건설노동자는 18.5%에 불과했다. 정부의 폭염 대비 안전조치가 ‘권고’에 그치다보니 근로자들은 폭염 속에서도 쉬지 못 하는 실정이다. 심상치 않은 폭염에 노동부는 7일 ‘폭염 대비 전국 기관장 산업안전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산재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노동부는 냉감물품 꾸러미인 쿨키트, 그늘막, 이동식 에어컨 등 구매 지원에 예산 20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또 체감온도에 따른 작업중지, 휴게시간 보장 등이 지켜질 수 있게 현장점검에 나선다. 온열질환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에게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기존 대책을 다시 강조했을 뿐 새로울 것이 없다는 비판이다. 쿨키트 구매 예산 지원이 지금 상황에서 대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동계는 지금 같은 폭염이 계속된다면 정부가 공공 발주 건설공사에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민간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선제적 작업중지’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업주가 정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를 위반해도 곧바로 처벌되지 않는다. 강제성 없는 권고는 현장에서 거의 무용지물이다. 경기 불황으로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자 스스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재난 수준의 폭염에 작업중지권 법제화 등 더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삶과 종교] 평범함이 만드는 기적

프랑스 파리 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거듭하는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의 소식은 연일 거듭되는 폭염으로 몸과 마음도 지치는 이 여름을 지나는 우리 국민에게 좋은 청량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해 감동을 전해주는 모든 선수에게 찬사를 보낸다. 필자의 청소년 시절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높은 스포츠 종목은 누가 뭐래도 당연히 농구였다. 국내 농구 리그는 물론이고 미국 NBA 리그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농구와 농구 스타들은 늘 중요한 놀이와 이야기 주제였다. 또 그 시절 필자 또래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만화는 ‘슬램덩크’였다. 풋내기 고등학생 주인공의 농구와 인생 성장기를 그린 이 만화는 당시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고 지금까지도 애독되고 회자되는 명작이다. 그 당시 어떤 인기 가수의 노래 제목이 ‘덩크슛’일 정도로 농구를 좋아하던 또래 친구들에게 덩크슛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이 만화의 마지막 슛은 모두의 기대와 달리 멋진 슬램덩크가 아닌 아주 평범한(?) 중거리 야투로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평범한 슛 하나를 위해 주인공은 정말 많은 훈련과 연습을 거듭하고 견디며 실전에서 성공시킨다. 그리고 한 단계 성장한 주인공의 모습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다양한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는 인간의 상식으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기에 기적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이에게는 믿음의 주제가 이 기적만을 바라는 것에 있다. 그런 신앙은 결국 보이는 기적이 없으면 신앙도 끝나고 마는 문제가 있다. 마치 농구 경기에서 매번 멋진 덩크슛만 바라는 마음과도 같다. 이런 상황을 두고 예수께서도 “너희는 표징이나 기이한 일들을 보지 않고는 결코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복음 4:48·새 번역)라며 탄식하듯 말씀하셨다. 바울 사도는 당시 있었던 고대 올림픽 경기 종목들과 선수들의 삶을 비유로 들며 믿는 이들이 달려가야 할 방향과 태도(삶의 절제)들을 이야기했다(고린도전서 9장 24절 이하).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님을 믿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랑하고 섬기며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정말 평범함 속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수많은 절제와 노력과 참된 믿음이 그 그리스도인의 평범함 또는 생활 표준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로마서 12:17·새 번역) 사도 바울이 남긴 그리스도인의 ‘생활 대헌장’인 로마서 12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살아야 할 덕목들을 말하며 모든 선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상식이고 평범함이라고 말한다. 1.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소서. 2.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며 갈 길을 잃은 무리를 잘 인도하게 하소서. 필자가 즐겨 애창하는 찬송가 212장의 1, 2절 가사다. 이 가사처럼 예수를 믿어 신앙으로 말미암아 내 안의 죄성이 치유되며 내 이웃과 공동체를 감화시키며 치유하는 평범함의 기적이 우리 현장에서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천자춘추] 지구 보호막 두 얼굴 ‘오존’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최고’, ‘장기화’라는 단어가 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아침 기온이 24~29도로 평년보다 2~5도 높고 낮 기온은 30~36도로 평년보다 1~3도 높아지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이와 함께 오존 농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존 하면 성층권의 오존층을 떠올린다. 성층권의 오존층은 피부암과 백내장을 유발하는 태양의 자외선이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물질이라고 알고 있다. 반면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지표면 근처의 오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이 강한 햇볕과 반응해 발생하는 오존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햇볕이 강하고 무더운 여름에 주로 발생하는 오존은 산화력이 강해 호흡기와 눈에 자극을 주고, 심한 경우 폐 기능에도 문제를 일으키며 농작물 수확량도 감소시키는 유해한 오염물질이다. 2023년 국민환경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자의 62%가 대기질에 대해 불만족한다고 답변했으며 2023년 오존 연평균 농도는 전국 33ppb, 경기도 31ppb로 2020년 대비 각각 3ppb 증가했다. 주의보 발령일수 또한 전국 62일, 경기도 37일로 각각 16일, 10일 증가한 상황은 오존 농도 저감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오존은 고농도로 발생하더라도 색과 냄새가 없어 대응에 어려움이 있지만 경기도는 도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사전 대책으로 오존 발생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휘발성유기화합물 관리를 위해 자동차 배출가스 단속과 유기용제 저장·사용 및 소각시설을 점검해 도심 내 오염물질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사후 대책으로는 오존 농도가 높아지는 4월부터 10월까지 정확한 측정과 예측을 통해 오존 경보제를 운영하며 도로 살수차를 운행해 도로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높여 오존 발생 상황을 만들지 않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오존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저감 대책을 행정기관에서 마련하고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스스로 대기오염 정보에 관심을 갖고 고농도 오존 예·경보 발령 시 불필요한 자동차 운행을 줄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실외 활동 및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는 등의 행동 요령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농도 오존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숙지하고 실천해 건강을 지키는 데 도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

[지지대] 양궁 여섯 번째 금메달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종목에서 1점을 맞혀 주목받은 아프리카 차드의 마다예 선수. 그의 도전은 비단 성적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보호장비도 없이 대회에 참가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같은 그의 모습에 감동을 받은 양궁 장비 제조 기업인 파이빅스 백종대 대표는 마다예 선수에게 활과 보호장비를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더 나아가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지속적인 지원을 약속하며 화제가 되고 있다. 마다예가 1점을 쏜 양궁 과녁은 수원 기업인 파이빅스가 생산한 제품이다. 마다예의 파리 올림픽 참가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그는 올림픽이라는 무대에서 비록 1점을 쏘았지만 그의 도전정신과 스포츠에 대한 순수한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양궁 선수 출신인 백종대 대표는 부상으로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포기해야 했다. 백 대표는 좌절했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마다예의 이야기에 감명받아 후원을 결정했다. “마다예 선수의 도전 정신은 우리 회사의 가치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백 대표의 말처럼 파이빅스는 이번 후원을 통해 도전과 혁신을 지향하는 기업 이미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다예의 도전과 이를 후원하는 파이빅스의 결단은 우리 사회에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성적에만 치중하지 않고 도전과 노력을 존중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하며 마다예와 선행으로 여섯 번째 금메달을 따낸 파이빅스의 앞날에 큰 응원을 보낸다.

[기고] 최고의 사치, 관람자의 몫

지금 수원시립미술관에서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프랑스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의 대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가 열리고 있다. 드브레는 아름다운 성과 루아르강이 흐르는 프랑스 투르의 자연을 사랑했다. 차에 캔버스와 유화도구를 항상 싣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새로운 풍경과 빛을 발견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다. 특히 미국을 여행하며 만난 색면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의 영향으로 드브레의 작업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색채와 자유로운 행위적 표현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알로이스 리글은 1902년 발표한 ‘네덜란드 집단초상화’라는 저작물에서 “예술은 감상자의 지각적, 감정적 개입 없이는 불완전하다”고 언급했다. 리글이 ‘관찰자의 참여’라고 말한 이 관점은 이후 에른스트 크리스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연구에서 더욱 발전됐다. 그들은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므로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특히 곰브리치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예술과 환영’에서 ‘관람자의 몫’을 매우 중요하게 다뤘다. ‘관람자의 몫’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학자가 있다.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이자 뇌과학과 미술의 연계점을 연구한 저술가인 전 컬럼비아대 교수 에릭 캔들이다. 캔들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과 감상자의 작품에 대한 반응의 메커니즘을 뇌과학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입수한 시각정보를 뇌에 기억시키면서 일련의 처리 과정을 거친다. 시각정보가 충분치 않더라도 뇌는 자체적으로 재구성해 지각하고 기억한다. 또 우리의 뇌는 기억을 위한 시각정보의 재구성 과정에서 기존에 저장돼 있는 정보들, 개인적 경험들 그리고 감정과 연계시키고 범주화시킨다. 캔들은 형태가 해체돼 모호하기 그지없는 추상회화를 볼 때에도 감상자는 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를 설명한다. 이처럼 감상자의 역할이 주체가 되는 관점에서라면 추상미술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어려운 일은 나의 기억과 나의 생애 경험과 나의 내면의 감정을 무심한 작품의 표면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신적, 지적, 정서적 여유를 가지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작품이 주는 개념과 맥락, 그리고 세밀한 감정을 감상자 스스로 연주하고 감동할 수 있는 ‘상위 수준의 해석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작가의 고뇌와 고민이 담긴 작품은 거기에 그대로 있을 뿐이고 작품의 해석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몫’이야말로 최고의 지적 사치이자 어떤 약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도파민이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표현한 화면이 추상적일수록 감상자의 역할은 비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몰입의 공간을 제공하는 드브레의 작품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사설] 초변화 대전환시대, 정치만 현실 외면 뒤로 가고 있다

세계는 지금 초변화 시대다. 최근의 변화는 크기·범위·속도 면에서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넓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저성장의 뉴노멀을 중심으로 한 세계 경제환경 변화, 광속의 기술 변화, 세대 변화, 자본주의와 정부 정책의 변화, 기업경영 철학의 변화, 기후 변화 등 전 분야에 걸친 변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격변의 초변화 대전환 시대에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선 제로베이스에서의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초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고 대전환 방향을 가늠할 수 없기에 기업 간, 국가 간 협력과 상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영섭 서울대 특임교수(전 중소기업청장)가 강연과 글을 통해 강조하는 얘기다. 국내 기업들은 이 격변기에 기술, 협업, 상생으로 ‘빅 체인지(Big Change)’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국가 전략과 정책이 미흡하다. 정치는 심각하다. 혁신은커녕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격변기를 헤쳐나가려면 신뢰와 상생이 필수인데 거꾸로 가고 있다. 22대 국회가 출범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여야는 진흙탕 싸움만 하고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안은 단 한 건도 없다. 지금까지 발의된 법안은 총 2천607건, 이 중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은 ‘채상병 특검법’, ‘방송 4법’, ‘민생회복지원금법’, ‘노란봉투법’ 등 7건(0.27%)이다. 그나마 야당 단독으로 통과시킨 것이어서 여야 간 정쟁 소지가 크다. 대부분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가 확실해 보인다. 대통령과 국회, 여당과 야당의 대립으로 정치가 멈춰섰다. 정치 실종으로 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거대 야당의 법안 단독 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국회 재표결 후 폐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 민심을 대변하겠다며 자기네끼리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윤 대통령은 ‘여야 합의가 없었다’며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소모전이 반복되면서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K칩스법’으로 불리는 반도체법 등 국가 성장동력 관련법은 정쟁에 발이 묶여 기업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 후 여야 합의로 처리된 민생·경제법안이 0건이라니 국민들의 정치혐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특권만 누리고 국민에게 고통과 절망만 안기는 국회에 대해 비판이 거세다. 빅체인지 시대에 정치인들만 딴 세상 사람같다. 여야는 정쟁의 악순환을 끊고 희망을 주는 상생의 정치를 펼쳐야 한다. 무(無)쟁점 민생·경제법안이라도 서둘러 처리하길 바란다.

[사설] 갈등 휘말린 송도 지역난방 확충… 타당성 검증이 먼저다

이 폭염 속에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더 뜨겁다. 열병합발전소 신설에 대한 주민 반발이 주민 간 갈등까지 낳고 있다. 열병합발전소는 전력과 지역난방 열을 생산·공급한다. 한 지역의 최우선 인프라다. 이를 맡고 있는 인천종합에너지 측은 5년 이후부터는 송도에 열에너지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추가 신설에 착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민들 생각은 다르다. 부족하지도 않으며 대기오염물질 배출의 열병합발전소 신설은 안 된다는 것이다. 인천종합에너지는 2029년 준공을 목표로 열병합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송도 6만여㎡(2만평)에 열 297G㎈, 전기 500㎿ 규모의 발전소를 짓는 사업이다. 송도에는 아파트 등 모두 10만4천가구가 들어설 계획이다. 여기에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바이오 분야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지정받았다. 계속해서 지역난방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천종합에너지 측에 따르면 지난해 송도의 지역난방 수요는 446G㎈/h였다. 그러나 2029년에는 967G㎈/h, 2036년에는 1천110G㎈/h 등으로 늘어난다. 현재 공급량인 510G㎈/h에 이미 허가받은 용량을 더하면 853G㎈/h 규모다. 이를 감안해도 2029년부터는 열에너지 부족을 겪는다는 것이다.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걱정하는 주민 설득이 최우선 과제다. 열병합발전소는 1천G㎈/h 생산 기준, 질소산화물(NOx) 배출농도가 5.4ppm, 배출량이 43㎏ 규모다. 발전소를 짓지 않고 첨두부하보일러(PLB)를 설치한다 해도 배출농도와 배출량은 더욱 늘어난다. 송도주민단체 등은 송도는 열에너지가 절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미 853G㎈/h를 확보하고 있는데 굳이 추가 설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차례 주민설명회는 반대 목소리가 강해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일부 주민들은 추가적인 주민설명회조차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이다. 발전소 신설을 전제로 하는 주민협의체 구성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다. 주민들 간 갈등 조짐도 나타난다. 인천종합에너지의 수건을 받은 주민을 비판하는 글이 지역 커뮤니티에 올랐다. 발전소 대신 첨두부하보일러를 설치할 위치를 놓고도 논란을 벌인다. 주민 반대를 이기는 장사는 없다는 시대다. 한 전문가의 훈수가 있었다. 반대가 심한 사업은 주민 수요가 없다는 뜻이니, 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그러나 열에너지 확보는 송도의 지속가능을 좌우하는 필수 인프라다. 우선 송도의 장래 열에너지 수요량에 대한 엄밀한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주민들도 확실한 근거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김종구 칼럼] 25만원과 사회주의

레몽 아롱(Raymond Aron·佛)은 자유주의자다. 중도 우파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싸웠다. 대한민국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 6·25에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유럽 사회에 남침설을 정설로 세운 것도 그다. 청년들에게 국민연금 재앙이 온다. 청년들도 완벽하게 눈치챘다. 2030의 75.6%가 ‘안 믿는다’고 했다. 연금 속 노후는 저들의 노후가 아니다. 앞세대 먹여 살릴 태생적 짐이다. 세대 간 연대에 동의하지 않는다. 뒷세대가 앞 세대를 부양한다니. 앞세대의 뒷세대 착취로 보고 있다. 누리고 뽑아 먹고 간 세대다. 소득 대비 9% 보험료율이 26년째다. 단 1%포인트도 올리지 않고 뽑아만 먹었다. 그 구멍을 청년들에 넘겼다. 잔혹한 연금 시간표는 이미 나와 있다. 약탈 수준의 보험료율이 계산돼 있다. 2061년에 35.6%에 간다. 100만원 월급이면 35만6천원을 뗀다. 2078년이면 43.2%까지 간다. 100만원 월급에서 43만2천원 뗀다. ‘64년생 용띠’에도 10대는 있었다. ‘서기 2024년’이 까마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 60세가 순식간에 왔다. ‘2000년생 용띠’도 벌써 20대다. ‘서기 2060년’이 까마득해 보인다. 하지만 이 60세도 금방 온다. 미래세대라고 돌릴 것도 없다. 이미 사회의 어엿한 주체다. 공적 부담의 고통을 겪고 있다. 취업 1년차 ‘95년 돼지띠 청년’이다. 1년 넘게 월급 명세서를 받고 있다. 받을 때마다 허망함에 빠진다. 지급 총액 400만원이다. 입금된 돈 315만원이다. 공제된 돈이 85만원이다. 국고로 직행하는 소득세가 30만원이다. 국민건강보험료 15만여원, 국민연금 20만여원.... 월급의 20%가 넘는다. 떡값 달엔 30%도 넘는다. 그가 말한다. ‘이건 사회주의야.’ 틀린 소리 아니다. 공적 영역 100%는 공산주의다. 그 아래 넓은 영역이 사회주의다. 사회 초년생 월급인데 20~30%를 떼고, 그중 60%가 국가세금이고, 나머지도 사회보장성 공제다. 넉넉히 사회주의다. 국가 부채가 계속 는다. 2023년에 총부채 6천조원을 넘었다. 지금도 늘고 있다. 표 떨어질까 봐 부채로 쌓아뒀다. 곧 공포의 연금 시대까지 겹친다. 월급 절반을 떼 가는 세상이 온다. 정치가 초대한 사회주의다. 2010년 무상 복지가 그 신호탄이었다. 보편적 복지의 탈을 쓴 정치 구호였다. 명백한 사회주의적 발상이었다. 이후 수많은 공약이 행정을 접수했다. 현금성 복지의 퍼주기가 급증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과정에 국민 뜻이 있다. 선거마다 유권자가 선택했다. 2010년 이후 ‘퍼주기 공약’은 패배한 적이 없다. 이제 좌우 없이 쏟아 내고 있다. 그 15년 사이 사회주의가 도둑처럼 스며들었다. 이제 ‘전 국민 25만원’이다. 민주당이 총선에 던진 공약이다. 역시 압승으로 유권자가 동의했다고 본다. 민주당이 1호 당론으로 정했다. 민생회복지원금이라고 명명했다. 들어갈 돈만 대략 13조원이다. 비슷한 이름의 지원 선례는 있다. 2020년 재난지원금, 2021년 상생지원금. 하지만 내용은 달랐다. 세계 공통의 근거가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과 경제 회복이다. 이건 다르다. 비상도 아닌데 현금 뿌리겠다는 것이다. ‘부자감세’가 명분으로 등장했다. ‘초부자 감세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생명력 질긴 마르크스 지침이다. -부자(富者)는 타도해야 할 계급, 부(富)는 몰수해야 할 생산수단-. ‘25만원’을 그렇게 풀어간다. 여론은 이번에도 환영한다. ‘25만원 언제 나오느냐’며 고대한다. 또 하나의 청년 빚더미다. ‘2015년생 양띠’는 연금만 35% 내야 한다. 이들 월급에서 60%를 뺏는 건 계산서에 나와 있다. 완벽한 사회주의 세상이다. 이 정치인들은 이걸 아나 모르나. 레몽 아롱이 답한다. ‘모순 투성이인 사회주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40년 전 그의 정의가 2024년 대한민국에 답을 주고 있다.

[함께하는 인천] 디아스포라 원점-제물포항

재외동포청 인천 유치로 떠들썩하던 게 1년여 전이다. 그런데 재외동포청 개청 1년을 즈음해 뜬금없이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제물포항과 연결됐던 월미도에서 송도국제도시로 이전하려는 논의가 있어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협소한 기존 박물관을 증축하는 방안과 별도로 ‘글로벌 톱 텐 시티’ 건설의 일환으로 이민사박물관과 재외동포청을 합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민사박물관 이전 대상지 중 하나로 송도국제도시 내 인천도시역사관이 거론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은 재외동포청 유치 성공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인천의 강력한 경쟁 상대였던 서울, 제주를 누를 수 있었던 건 한국인의 해외 진출 서막을 연 역사적 장소성을 간직한 제물포항(인천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미주 이민 100년을 맞아 개관한 한국이민사박물관 수장고엔 제물포항을 거쳐 해외로 나간 선조들의 이민사 자료가 수두룩하다. 전시 공간이 다소 비좁기는 하지만 1~4 전시실에는 미국 선교사이자 고종 황제 주치의였던 알렌(H.N.Allen)이 국내 첫 공식 이민 사업의 총책임자로 활동한 사실과 더불어 인천에서 시작된 이민사를 알려주는 각종 전시물을 선보이고 있다. 제물포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한 102명의 이주 개척사와 이후 미국 전역에 뿌리내린 한인들의 발자취, 구한말 만주와 연해주로의 이주, 1905~20년대 멕시코와 쿠바 등 중남미 진출. 1960년대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파견, 해외 입양 역사 등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제물포항 주변엔 구한말 종교시설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산업시설, 근대건축물이 국내에서 가장 많다. 답동성당, 성공회 내동교회, 대불호텔, 홍예문, 인천세관, 제물포구락부, 일진전기(옛 도쿄시바우라제작소) 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김구 선생이 수감 생활하며 노역했던 인천감리서 터와 인천항 1부두 석축은 귀중한 역사 공간이다. 인하공업전문대에 있는 대한민국 수준원점(해발고도 근원)처럼 제물포항은 ‘디아스포라 원점’과 다름없다. 하와이 이민에 앞서 민영익을 정사로 한 11명의 국내 첫 미국 견학 공식사절단 ‘보빙사’가 1883년 8월15일 제물포에서 떠났다. 김옥균, 이준, 나석주, 김마리아 같은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해외 망명이나 국내 잠입 때도 제물포항을 거쳤다. 이런 역사적 흔적과 기억을 간직한 제물포항을 버리고 바다를 메운 송도국제도시로 이민사박물관을 이전하려는 발상은 행정편의적이고 주객전도로 비친다. 이민사박물관 바로 옆 옛 월미공원사업소와 군부대 이전 자리에 박물관을 얼마든지 증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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