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의 참뜻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중략) 누가 누굴 욕하는거야.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 너나 할것 없이 세상속에 속물들이야. (중략)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후략)/ 테크노 가수 이정현씨가 부른 ‘바꿔’란 노래가 총선을 틈타 더러 후보들의 로고송으로 애용되는 것 같다. 정치권에 식상하거나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 또 젊은층의 유권자들을 노리는 듯 하다. 하지만 뭘 바꾼다는 말인가. 바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바꾸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바꿔야 할 것도 있지만 안바꿔야 할 것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다만 무조건 바꾸고보자는 것은 파괴적 사고방식으로 지극히 위험하다. 무책임하기도 하다. 바꿔야 할 것은 바꿔도 생각해가며 바꿔야 한다. 무턱대고 바꾼다고 다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 ‘바꿔’를 작사 작곡한 최준영씨는 어느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가사가 내포한 바꿔의 참뜻은 자신의 변화를 강조한 것’이라고. 그런데도 ‘바꿔’를 애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마 그 반대인 듯 싶다. 자신의 변화보다는 타인의 변화를 더 강요하고 있는 양상이다. 남을 바꾸기 이전에 자신부터 먼저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신은 바꾸지 않으면서 남에게만 바꾸자는 것은 가사가 말한대로 거짓이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야. (중략) 누가 누굴 욕하는거야.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 너나 할것 없이 세상속에 속물들이야. (중략) 거짓은 다 바꿔 바꿔 바꿔 (후략)/ /白山

수원중부署 ‘예식장’

경찰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 원래 봉사니 친절이니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알았던 경찰이 어느사이 ‘봉사경찰’이란 말이 생기고 ‘대민친절’을 강조하는 경찰상이 됐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없는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괄목할만한 변화다. 과거에 경찰의 이미지가 안좋았던 것은 일제경찰의 영향이 무관하지 않다. 아이들이 울땐 “순사온다”고 하면 뚝 그치곤 했을만큼 악명높았던 것이 일제경찰이었다. 그 이전에는 “호랑이 온다”고 하여 아이들 울음을 그치게 했던 것이 ‘순사’로 바뀌었으니 일제경찰은 호랑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다. 반세기도 더 넘는 예전 얘기다. 지금은 경찰행정도 조장행정화하여 적극적 개념으로 바뀌면서 여러가지 특수시책이 나와 눈길을 끈다. 이런가운데 수원중부경찰서(서장 박점수총경)가 강당을 무료예식장으로 개방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개방하는 것이지만 생활이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이용할만 하다. 우선 서장이 주례를 맡아준다하니 주례걱정없고 서원들이 빈 자리를 채워주다보니 하객걱정을 덜수가 있다. 무엇보다 전업예식장과는 달리 결혼날짜를 마음대로 잡을수 있고 또 시간에 쫓기다시피 해가며 예식을 치르지 않으므로 더 경건한 분위기를 가질수가 있다. 경찰은 시민생활을 밤낮없이 지켜주는 불침번이다. 시민생활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려는 다각적 노력은 평가할만하다. 수원중부경찰서 무료예식장은 민경친선의 뜻깊은 광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결혼은 인생의 새출발이다. 뜻깊은 광장에서 좋은 신혼부부의 출발이 많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白山

돈 받는 봉사

1995년 6·27 지방선거 이후 4차례의 전국 선거를 거치는 동안 ‘돈 안드는 공명선거’의 핵심제도 가운데 하나로 칭송받던 선거자원봉사제가 정착되기도 전에 역사의 유물로 사라지려나 보다. 무보수·자발적 참여의 자원봉사자는 드물고 돈맥을 따라 움직이는 ‘해바라기성 봉사자’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 봉사정신에 입각한 ‘무료’ 자원봉사제가 미국·영국 등에서 오랜 각고의 노력끝에 정착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출마 후보자들이 자원봉사자에게 음성적으로 대가를 지불해야만 겨우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실정이다. 순수한 자발성에 의존하는 시민단체 봉사자도 돈을 따라 움직인다는 분위기라니 더욱 어둡다. 이번 4·13 총선에서는 유달리 선거브로커들이 극성을 부린다고 한다. 심지어 선거가 끝난 뒤 돈을 주기로 약속한 ‘고액 외상봉사자’도 있어 자원봉사자를 쓰기가 겁난다고 후보자들은 고백하고 있다. 무료로 일해 주는 순수한 자원봉사자 급감현상은 공명선거를 위한 주감시자 역할을 담당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에 더욱 큰 타격을 준다. 낙선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총선연대에 한때 100여명까지 몰렸던 자원봉사자가 지금은 30명 정도만 남아 있는 딱한 실정이다. 이같은 현상은 날로 더해 가는 극심한 정치혐오주의 때문인 것 같다. 재산세도, 소득세도 한푼 내지 않았거나 병역을 기피한 자격미달 후보들은 신경쓸 일도 없지만 공명선거를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에서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가는 현실은 돈이 좋기는 하지만 서글프다. 수고비를 받는 ‘봉사자’, 그것도 ‘자원봉사자’라니 기형어라고 하지만 말이 되지 않는다. /淸河

얼마 전 수원시가 부르기 쉽고 듣기 좋은 새 도로명 2천131개를 발표했다. 새로 지정된 도로명 가운데 수원의 정취가 느껴지는 까치말길, 산드레미길, 퉁수바위길, 솜말길, 청풍길, 활터재길 등 960개소는 자연지명을 살렸고, 지지대(길) 행궁뒷길, 화령전길, 만석길, 노송길, 칠보효자길 등 226개소는 정조대왕의 발자취와 ‘화성’이 있는 수원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했다. 도청앞길, 매교장터길, 거북시장길, 곡선초등길 등 학교와 시장, 공원, 종교시설 등 공공시설의 이름을 딴 곳도 391개소가 있고, 교동은행나무길, 대추원길, 밤밭길 등 동·식물의 이름을 따거나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도로명을 골고루 부여했다. 우리의 ‘길’은 크게 나누어 세가지 뜻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길과 방도를 나타내는 길, 그리고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길은 구상적 실체로서 본래는 단순히 본행을 위한 육상교통의 수단으로서의 길만을 가리켰다. 이런 뜻으로 길을 정의한다면, 사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갈 수 있게 된, 거의 일정한 너비로 땅 위에 뻗은 공간적 선형(線形)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말에서는 그 길의 양태나 규모에 따라서 오솔길·고샅길·산길·들길·자갈길·진창길·소로길·한길·지름길 등과 같이 ‘길’위에 어떤 관형어를 얹어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새주소 부여사업으로 수원시가 2년간 심혈을 기울여 새로 지정한 산드레미길 등 길 이름은 4월30일까지 주민의 의견을 수렴, 이의가 있을 경우에는 그 내용을 검토·심의하여 개명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라고 한다. 수원시가 마련한 새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수원 어느 곳이든지 그야말로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淸河

일가

시골 마을이 으레 집성촌(集姓村)이었던 시절이다. ‘한지붕 밑에 팔촌난다’는 말처럼 동네 사람이 거의 일가친척이었다. 육촌, 팔촌은 말할 것 없고 더 이상되는 촌수도 형님 아우, 아제 조카 하며 지냈다. 동네에서 뿐만이 아니다. 지금같은 교통편이 없었던 때여서 백리길도 마다 않고 걸어 일가집을 왕래하곤 했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하여 엎어지면 코닿는 곳에 일가가 살아도 왕래가 뜸하다. 아니, 한해가야 한번 볼까? 몇해가도 만나보지 못한 친척들이 많을 것이다. 안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다. 못살던 때도 친척간에 인정을 내며 살았는데 전보다 잘 산다면서 친척간의 인정은 더 메마르기만 하다. 예전은 농경사회중심으로 생활이 단순했기 때문에 겨울철 농한기 같은 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다. ‘저마다 바쁘다’고 곧잘 말한다. ‘먹고 살기가 바쁘다’는 것이다. 시간에 쫓기며 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인정의 결핍을 합리화 시켜줄 수 있는 구실은 못된다. 찾아가지 못하면 전화 한통화로 물을 수 있는 안부마저 외면, 무심하게 지내기가 예사다. 그저 내집하나 아무 탈없이 지내면 그만이라는 정신적 폐쇄공간속에 일가가 멀어져가는 세태가 됐다. 이러다가는 사촌, 육촌이 길에서 스쳐도 못알아보는 세상이 되지 않겠나 싶다. 과연 사람이 산다할 수 있을는지. 새봄에 집안 어른들에게 안부전화라도 열어 겨우내 어떻게 지냈는지 여쭈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찾아가면 더욱 좋겠지만…. 문명이 발달하면 왜 인성을 잃어가는 것인지 누가 한번 연구해 볼만한 과제일 것 같다. /백산

食補

도라지는 거담진해에 좋다. 미나리는 청혈작용을 하며 파는 칼슘, 무는 비타민이 많다. 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고 된장은 항암효과가 있다. 같은 콩이지만 두부나 콩나물은 또다른 영양소를 지닌다. 참깨, 마늘 등은 성인병 예방에 좋다. 우리의 전래 먹거리는 이처럼 약재효과가 있다. 예를들자면 여기에 다 적을 수 없을만큼 많다. 쑥갓 하나만 더 들겠다. 쑥갓은 비타민 A가 듬뿍 들어 세균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발육에 도움을 준다. 피부의 각질경화도 막아준다. 이런 효능을 가진 비타민 A는 다른 식품, 즉 버터에도 들긴 들어있다. 그러나 효과는 자연식품(쑥갓)이 가공식품(버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높다. 서양의 음식문화는 굽고, 중국은 볶는 것이 주종을 이룬다. 우리의 음식문화는 무치는 것이 많고 국이 특징이다. 많은 자연식품을 무쳐먹는 것은 식품이 지닌 약효적 영양소를 파괴하지 않으므로 100% 흡수한다. 국을 끓인다 해도 굽고 볶는 것보단 훨씬 덜 파괴된다. 우리 조상들이 일상경험으로 축적한 음식문화는 이처럼 위대하다. 육식보다 채식을 많이 했으면서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데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설명은 못했으면서도 가장 과학적인 음식문화를 물려준 것이다. 춘곤증이 있기 쉬운 계절이다. 어린이고 어른이고 밥맛을 잃기가 쉽다. 이런때일수록이 잘 먹어야 잃은 식욕을 되찾는다. 봄나물같은 자연식품을 즐겨먹는 것은 더욱 좋다. 보약도 밥을 잘 먹고나서 보약이다. 아무리 좋은 보약도 보약만 먹고는 살아갈 수 없다. 서울대 명예교수인 홍문화 약학박사는 “백가지 보약이 있다해도 식보(食補)를 당할 수 없다”며 밥 잘먹는 것이 가장 큰 보약임을 강조한다. /백산

담배

WHO(세계보건기구)가 담배규제에 나섰다. 오는 5월 각국 대표단이 참가한 가운데 담배통제협약문안을 작성하는 1차 회의에 이어 2003년까지 정식협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WHO는 담배가 인체에 미치는 해독의 심각성이 단순한 권고만으로는 시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이같은 강제규제 추진을 벌이는 것이다. 이로인해 세계 각국의 담배제조업체가 크게 긴장하고 있다. 여기에 최대 담배 생산업체인 미국의 필립 모리사 같은 회사는 흡연보상위기에 몰려 담배사업의 파산신청을 검토중이다. 미국 5대 담배회사가 소송이 계류된 흡연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판결 규모는 무려 5천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에 앞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94년 담배를 마약류로 분류하는 법을 만들어 담배광고 및 판촉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클린턴은 백악관에서의 흡연을 전면 금지시킨데 이어 담배 세금을 크게 올리는 의료계획법을 만들기도 했다. 또 같은 해 미 국방부는 4월 8일을 기해 국내외 모든 군사기지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하는 금연령을 내렸다. 장병의 직접 금연이 아닌 영내 금연으로 담배를 끊게하므로써 건강을 도모하고 근무시간의 낭비절감같은 부수효과를 가져왔다. 담배를 끊는 사병은 외출·외박을 더 내보낸다. 이는 미국이 아닌 우리 국방부가 최근 장병의 금연유도를 위해 시달한 ‘금연운동 활성화지침’이다. 부대마다 흡연·금연구역을 두어 엄격히 관리하면서 금연사병은 외출·외박 특혜로 금연 파급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군장병 흡연율은 72%로 일반인의 68%보다 높은 것이 입대해서 담배를 배우는 젊은이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끽연권보다 혐연권이 우선시 되는 것이 나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백산

무기력한 인간사회

기원 전 14세기경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모세(MOSE)는 사람이 만약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을 때는 그 생명으로써 갚게 하고, 눈을 상하게 했을 때는 눈으로써 갚게 하고, 이를 다치게 했을 때는 이로써 갚게 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Jesus)는 그렇게 한다면 원한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고 생각했다. 복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살인자에 대한 사형은 법이 대신 복수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예수는 이 또한 시인하지 않았다. 예수는 모든 것을 자비로써 해결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한 말을 너희들은 들었노라. 하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노라. 악한 자에게 맞서지 말라. 사람이 만약 너의 오른 뺨을 치거든 왼쪽을 내 놓아라. 너를 소송하여 하의를 뺏으려 하는 자 있거든 상의도 내어주어라….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책망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이는 하늘에 계신 너희들의 아버지의 자식이 되고자 함이로다. 하늘의 아버지는 그 햇빛을 악한 자의 위에도 선한 자의 위에도 비춰주며, 비를 올바른 자에게도 올바르지 못한 자에게도 내리도록 하시도다.” 예수의 이러한 박애정신을 실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예수도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 이렇게 가르친 것은 하나의 이상의 지표를 내세운 것이다. 사람은 이 예수의 ‘자비’를 온전히 실행은 못할 망정, 접근하려는 노력은 해야겠다. 그러나 자고 나면 인심이 달라지고 마치 카인(cain)의 후예들처럼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살인행위를 저지르는 요즘 사회에서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쪽 뺨을 치면 왼쪽을 내놓으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실행하기란 참으로 벅차다. 오늘날은 인간사회가 너무 무기력하다. /淸河

자유 희망사항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1882∼1945)는 젊어서 정계에 입문했는데, 불행하게도 소아마비에 걸렸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다시 일어나 제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엄습한 일대 경제 공황 속에서 대통령에 뽑혔다. 루스벨트는 대담하게 사회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한 뉴딜정책을 써 파탄지경의 경제를 바로 잡는 데 성공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미국의 여론을 통일하여 연합국측에 가담케 하고 ‘민주주의 병기장’으로서 대량의 무기를 공급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 의한 선전포고와 함께 자신도 참전하여 독일과 일본의 군주주의를 꺾는 데 압도적인 역할을 했다. 루스벨트는 승리를 눈 앞에 두고 과로로 쓰러졌지만 현대사의 눈부신 주역으로 칭송을 받는다. 루스벨트는 정치가로서의 많은 능력과 재질을 갖추었는데 특히 변론이 능변이었다고 한다. TV가 없었던 당시 루스벨트는 ‘노변담화(爐邊談話)’라는 타이틀로 라디오를 통하여 대중과 접촉했다. 타이틀 그대로 난롯가에서 허물없이 정담을 나누듯 대중에게 이야기한 그의 ‘노변담화’는 국민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한국의 이른바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히틀러식으로 선동하고 절규하고 지역감정에 불이나 지르는 것 과는 달랐을 것이다. 루스벨트는 1941년 1월 6일 조회 연설에서 ‘4가지 자유’라는 유명한 발언을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전체주의적 파시즘국가들과 대립하는 자유세게의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말한 것으로 ‘언론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가난에서 벗어날 자유’, ‘공포에서 벗어날 자유’였다. 오늘날의 한국도 아직 이 네가지 자유에서 모두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더도 말고 한가지만 추가할 게 있다. 국민들이 ‘저질·불법 국회의원선거에서 벗어날 자유’이다. /淸河

비례대표

요즘 4·13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인선중인 비례대표, 소위 전국구의원 후보자 명단을 보면 비례대표제 무용론이 또 다시 불끈 솟구친다. 지역구 의원에 대한 전문성 보완이나 유권자 사표 방지 등 본래의 취지는 이미 강 건너 갔고 이익·관변단체장들을 위한 자리 나눠주기용에서부터 낙천자 반발 무마용이 되었다. 각당 총재의 충성파에 대한 선심용과 정치자금 모금용에 이르기까지 원칙이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 거의 확정적인 전국구 후보들의 행적을 보면 그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아왔던 사람들도 많다. 이익·관변단체장들을 끌어 들여 그들 단체의 표를 모아보려는 속셈이 훤히 보인다. ‘재정기여도’라는 명분으로 전국구를 전국구(錢國區)로 전락시킬 조짐 또한 여기 저기서 드러난다. 열악한 재정상태를 메우기 위해서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회의원인데 벼락부자 아니면 돈 힘 믿고 세상을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금배지를 함부로 내주려한다면 크게 잘못될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렇게 걱정스럽고 어수선한 비례대표 후보선정 시한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자민련 명예총재가 얼마 전 비례대표 순번 7번을 자청했다고 한다. 자민련은 아마 5번까지를 당선 안정권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잘못되면 명예총재가 국회에 진출하지 못할 불상사가 생기는 모험이다. 5번안에 들어갈 사람은 넘치는데 5번 이상은 아무도 받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7번을 자청한 이유라고 한다. 워낙 정치고수라서 진심인지 선거전략인지는 며칠 더 두고 보면 알겠지만 만일 다른 당 총재나 대표도 안정권 밖의 비례대표 순번을 자청한다면 욕은 조금 덜 먹을 것 같다 /청하

1912년 4월 영국의 4만6천t짜리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를 뉴펀들랜드 남방 북대서양상에서 침몰, 2천2백여 승선인원중 1천5백여명을 익사케한 것은 타이타닉호와 충돌한 거대한 유빙의 빙산이었다. 지난 20세기에 해수면이 높아졌다고 보는 과학자들은 세계 곳곳의 빙산이 녹아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특히 남·북극의 해빙이 가속화하고 있어 해수면은 훨씬 빠르게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인구 1만1천여명의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가 바닷물에 잠겨간다는 보도가 얼마전에 있었다. 해발 4.5m인 투발루는 바닷물이 3.2m까지 치솟아 6시간동안 물에 잠긴적이 있고 인근 무인도 두곳은 지난해 아주 바닷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또 세계적인 환경단체로 꼽히는 미국의 월드위치는 지구상의 얼음이 급격히 줄어듦으로 인해 심각해진 환경위기를 경고한 것으로 보도됐다. 북극해의 유빙이 6%줄었고 두께도 3.1m에서 1.8m로 얇아졌으며 남극대륙 역시 거대한 빙붕이 속속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음은 바다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사라져가고 있다. 고산지대의 네팔에서는 빙하가 급속히 녹는바람에 홍수까지 났으며, 미국 로키산맥의 빙하 또한 해빙현상을 보인다. 빙하는 이밖에도 많이 녹아 2050년이면 25%가 없어지고 2100년에는 알래스카와 히말라야를 제외한 빙하는 모두 사라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로 지표온도가 높아져 태양열 일부를 적정선에 유지시키는 얼음이 녹는바람에 지구의 온난화가 더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대기오염은 이처럼 빙산과 빙하를 파괴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대기오염 뿐만 아니라 폐수오염으로 먹는 물까지 망치는 판이다. 지하수도 점점 고갈되는 실정이다. 물의 소중함을 한층 더 강도높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다. /백산

대만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조(淸朝)를 무너뜨린 손문은 이듬해 중화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공화정체를 선언, 대총통에 취임했으나 이내 군벌인 원세개가 자리를 이어받았다. 스스로 제위에 오른 원세개의 독재, 제3혁명에 의한 퇴위등 우여곡절끝에 국민당 중심의 국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1919년 10월이다. 손문의 민족, 민권, 민생의 삼민주의를 표방한 국민당은 이때부터 집권당이었다. 손문에 사사하여 국민당혁명군 총사령이던 장개석은 1928년 북벌군을 지휘, 그해에 국민당정부 주석이 됐다. 중·일전쟁땐 모택동과 국공합작, 항일전을 벌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에 있을때는 장개석 국민당주석의 적잖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제2차대전후 장개석은 중화민국 총통에 취임했으나 모택동에게 밀려 1949년 대만으로 옮겼다. 1975년 장개석 사후 그의 아들 장경국이 총통이 됐고 이등휘가 그 뒤를 이어받았다. 이번 대만의 정권교체는 대만에서만 50년만일뿐 대륙시절까지 합치면 1919년 국민당 창당이후 실로 81년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잃은 것이다. 대만의 변화는 본토사람의 득세다.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당선자 역시 1951년 대만에서 출생한 토박이다. 장개석과 함께 대륙에서 건너간 사람들은 이미 죽었거나 노쇄했고 그 자녀들 역시 대부분이 대만에서 낳고 자라 대만사람이 다 됐다. 17세기말 복건성과 광동성에서 한인(漢人)들이 이주, 원주민인 고사족(高砂族)을 누르면서 청나라 영토가 된 대만은 1895년 일본의 영유가 됐다가 1945년 2차대전후 중국으로 되돌려졌다. 파란 많은 36㎢의 섬, 대만의 장래가 궁금하다. /백산

글씨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당(唐)나라가 관리를 뽑는 전형방법으로 이 네가지를 기준한데서 유래한다. 용모, 말씨, 문필, 판단력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이 네가지 기준은 근대사회까지 품격의 척도로 전래되어 좀 괜찮은 사람을 말할때 ‘신언서판이 반듯한 사람’이라고 했다. 세번째인 문필은 글과 글씨를 말한다. 필치와 필체로 글(필치)도 좋아야 하지만 글씨(필체)를 잘 써야 했던 것이다. 세계에서 동양 삼국의 한문권 문화에서만 쓰이는 붓글씨가 쇠퇴한 것은 펜촉이 나오고 부터였다. 잉크에 묻혀가면서 글씨를 쓰는 펜이 또 자취를 감춘 것은 60년대 후반 볼펜이 등장하고 나서였다. 그러나 볼펜시대에 들어서도 글씨는 역시 잘 써야 했다. 글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했다. 달필(達筆)은 어디를 가나 대접을 받았다. 한동안 타자기가 많이 쓰였다. 타자기시대에도 중요시 되던 글씨가 컴퓨터시대에 들어서서는 거의 외면돼가고 있다. 손으로 글씨를 쓰기보다는 컴퓨터를 더 많이 사용한다. 사무를 보면서 글씨를 쓰는 예는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인지 N세대의 한문실력은 부모이름도 못쓸 만큼 엉망이고 어쩌다 쓴다해도 쓰는 것이 아니고 그리다시피하는 것을 많이 본다. 요즘엔 초·중고등학생들 가운데서도 한글마저 글씨가 엉망인 학생이 많다고 한다. 컴퓨터 바람에 글씨쯤 잘 못쓰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져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풍조가 과연 괜찮은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컴퓨터 입력을 통한 글(글씨)보다는 육필 글씨가 더 정감을 준다. 컴퓨터의 편익도 좋지만 인간미를 기계에 아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글씨쓰는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백산

초대권

각종 공연장에 무료입장할 수 있는 초대권은 당초 객석을 채우기 위한 고육책으로 시작됐다. 출연자가 자기 PR을 위해 무더기로 입장권을 사서 친지나 제자들에게 뿌리는 사례도 적지는 않았고 반대로 출연자의 가족이 출연자의 인기도를 높여줄 목적으로 다량의 입장권을 구입, 초대권 형식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초대권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공짜 심리와 특권의식의 발로가 됐다. 지금도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이나 인기 오페라·뮤지컬 공연이 있을 때면 국회의원 비서관이나 정부 부처 직원들이 초대권을 보내라고 공연 주최측에 전화를 건다고 한다. 티켓 값을 줄테니 ‘초대’ 도장이 찍힌 입장권을 달라는 요구도 한다는 것이다. 초대권 소지자는 특권층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프랑스·일본·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홍보를 위한 프리뷰 공연에서 평론가·언론·후원기업에 초대권 몇장 보내는 것으로 그친다. 일본에서는 현장에 올 수 있는지 확인해 최종적으로 초대자 명단을 작성, 초대권을 발송해 사석(死席)을 예방한다. 지정석이 있는 초대권을 받고도 입장하지 않아 객석의 이곳저곳이 비어있는 우리의 공연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공연기획자 재팬아트의 경우 2천석 규모의 공연에서 4%(20장)정도를 홍보용 초대권으로 제공하고 출연 성악가들에게는 1장의 초대권을 준다. 3년째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뮤지컬 ‘노틀담의 곱추’를 공연중인 파리 팔레 드 콩그레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초대권 청탁이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공짜 티켓을 요구한다구요? 그건 조직폭력배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조직폭력배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초대권 갖고는 입장하지 않는 공연장 문화가 빨리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청하

봄비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이수복(李壽福) 시인의 ‘봄비’라는 詩다. 산과 들을 적시는 봄비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봄엔 풀리게/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풀리게 하옵소서./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초록의 눈물, 그리고 땅속의/벌레들 마저 눈뜨게 하옵소서./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새 소리, 물 소리에/귀는 열리게 나팔꽃인양,/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불붙게 하옵소서” 연천 태생의 박희진(朴喜璡) 시인의 ‘새봄의 기도’라는 詩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리던 봄비가 16일 전국적으로 내렸다. 잠시 내린 이 봄비로 지난 2월 19일부터 한달가량 전국에 내려졌던 건조주의보가 경기도와 서울, 강원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제됐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도와 인천에 적게 내려서인가, 도무지 봄비가 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정치꾼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연이 오염되었는가, ‘봄은 찾아 왔는데 봄이 정녕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李白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수복의 ‘봄비’같은 봄비가 온누리에, 그리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속에 종일 내려 박희진의 ‘새봄의 기도’처럼 나뭇가지마다 초록눈물이 맺혔으면 좋겠다. /청하

국회의원 신기루

고등학교 진학도 뒤로 한 채 연기학원에 다녀 청소년 드라마에 몇번 출연했던 한 10대가 상습적인 본드흡입자가 돼 경찰에 구속됐다. 드라마 출연이 좌절되고 결국 퇴출당하자 마약·본드에 손을 댄 것이다. 열 아홉살 때 주연급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던 한 여배우는 데뷔후 연기력 부족 등의 지적을 받고 물러난 뒤 강남의 한 술집 룸 살롱 ‘마담’이 되었다. 한때 10대들의 우상이었던 모 가수는 대마초 흡입으로 몇차례 구속되곤 하더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나이트클럽과 미장원에서 일하는 왕년의 인기 댄스그룹 멤버들도 있다. 10대들 중심의 편향된 대중문화가 연예계를 휩쓸면서 ‘스타 열병’에 시달리는 수 많은 N세대들이 이렇게 절망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한해 2천명이 넘는 신인가수들이 음반을 내지만 살아 남는 사람은 1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힘겹게 스타가 돼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가수의 경우 음반 50만장 이상을 팔아도 홍보·의상비용 등을 빼고 나면 용돈 정도만 남는다. CF나 이벤트 행사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입을 매니저나 제작사에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인과 매니저가 맺는 계약서를 ‘현대판 노예문서’라고 부른다. 5장의 앨범을 40만장 이상씩 팔며 활동중인 인기 댄스그룹 멤버 K씨의 경우도 번지르르한 외제 승용차 한대가 재산의 전부다. N세대들이 스타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겉만 보고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가 이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마치 요즘 4·13총선을 앞둔 정치판과 같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군상들을 보면 ‘스타 신기루’에 정신이 빠져 전후 좌우를 제대로 못가리는 N세대들 같아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국회의원 신기루’가 ‘스타 신기루’보다 더 허황되고 마약적인 것 같다. /청하

바오로 2세

바티칸시국(市國)이 독립한 것은 1929년이다. 교황 비오11세가 이탈리아 정부와 맺은 라테라노조약에 의해 로마 서쪽에 있는 지금의 바티칸 땅을 매입했다. 면적은 44만㎡에 인구는 1천200여명으로 독자적인 화폐와 우표를 발행한다. 초미니국가지만 세계적인 강국이다. 세계인구의 7분의1에 해당하는 카톨릭교도의 본산으로 60여개국에 대사 및 공사를 교환하고 있다. 바티간의 수장(首長)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그리스도의 대리자다.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가 팔레스티나 포교활동에 이어 로마의 사교로서 사교좌(司敎座)를 로마에 정하고 포교하다 순교한 이후, 로마의 사교는 베드로의 후계자로 공인받게 된 것이 로마 교황의 기원이다. 지금의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67대 교황이다. 바오로 2세가 지난 12일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서 가진 사순절 미사에서 카톨릭이 지난 2000년간 저지른 죄를 고해하고 용서를 구하는 특별미사를 집전했다. 진리추구를 빙자한 중세기의 종교재판(마녀재판), 십자군전쟁을 비롯 타종교 및 유태인 박해, 여성억압, 인종차별 등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외신은 ‘교황은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문을 읽었다’고 전했다. “교회의 체면을 손상시켜온 이런 행동과 악이 저질러지는데 대해 우리 각자가 맡았던 역할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또 “그동안 카톨릭이 당해온 박해에 대해서도 가해자들을 용서할 준비가 돼있다”며 참회와 관용의 모습을 함께 보였다. 하느님에 대한 고해와 인류에 대한 참회의 교황 고백문은 역사적 평가가 가능하다. 새천년을 맞아 새롭게 출발하는 카톨릭의 용기가 무척 신선해 보이는 것은 용서를 구할 종교가 비단 카톨릭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산

老人

날씨가 풀려 봄철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바깥 나들이가 많아졌다. 겨우내 방구석에 갇혔던 아이들도 개구쟁이 놀음이 시작돼 골목길이 시끌시끌하다. 주부들은 전같으면 하루에 한번 갔던 시장나들이가 두세번으로 늘었다. 이런 가운데 노인들의 나들이 또한 늘었으나 수원시내엔 기껏 공원밖에 갈곳이 없다. 팔달산공원, 장안공원같은 곳에 많이 몰려들고 있다. 대부분은 구면들의 만남이다. ‘근데, 아무개는 왜 안보이느냐?’는 궁금증 끝에 서로 수소문한 결과는 ‘그 영감탱이 지난 겨울에 세상 떴데…’하는 뉴스로 한참동안 말이 오간다. 노인들에게는 누군가 친면있는 노인이 죽었다는 것은 곧 충격이다. ‘잔잡으면 흥이 나고 꽃보면 우음(웃음)난다/뉘라서 날 늙었다하는고/귀밑에 흰 백발인들 내 어이 하리오…’ 윤선도의 것으로 기억되는 고시조 ‘백발가’의 한대목이다. 노인이라고 하여 인간의 감정이 조금도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에서 소외되는 노인이 가정생활에서까지 소외되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아픔이다. 노인들에게는 비록 현실적응의 기능은 없지만 오랜 연륜의 혜지가 있다. 인생의 경륜이 있다. 집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때마다 노인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노인에게 인정감을 주는 좋은 현상이지만 실제로 도움이 된다. 온 가족이 노인을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존경심으로 받드는 가정에는 불화가 없다. 집안에 평화가 감돈다. 노년에 무슨 일이든 일거리가 있는 것은 노인들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백산

신데렐라

링컨은 8세때 어머니를 여의고 목수 일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곳저곳을 옮기며 살았다. 가난하여 학교라곤 초등학교 1학년 문턱밖에 가보지 못한 어린 링컨에게 공부를 가르쳐 27세에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도록 뒷바라지 한 것은 어질고 착한 새어머니였다. 링컨은 후일 “나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미합중국이고 사람으로 만든 것은 어머니였다”고 술회했다. 그의 노예해방은 새어머니의 고운 심성에 영향을 받은 박애정신의 결단이었다. 링컨 어머니같은 계모가 있는가 하면 신데렐라 어머니같은 계모가 있다. 일반적으로 계모를 못된 사람으로 묘사한 것은 동서양의 고전이 거의 같다. 우리의 전래동화 ‘콩쥐팥쥐’와 비슷한 ‘신데렐라’는 구전(口傳)된 유럽의 동화를 17세기 프랑스의 샤를로 펠로가 글로 엮은 것이다. 계모와 계모가 데리고온 딸들에게 학대를 받는 예쁘고 착한 신데렐라가 죽은 어머니 영혼의 도움을 받아 궁중파티에 참석하면서 신었던 유리구두를 잃은 것이 인연이 되어 왕자와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무명에서 일약 유명해지는 것을 신데렐라라고 비유하는 것이 이에 연유한다. 어린이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사랑의 가족뮤지컬 ‘신데렐라’(제작 극단예일·연출 이광열)가 본사와 경기농협지역본부주최, 경기도 교육청등 후원으로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12일 사이 네차례 공연에서 현란한 무대의 노래와 안무의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모녀·모자 관객들의 정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사랑의 가족뮤지컬 ‘신데렐라’는 오늘 오전 11시, 오후 2시, 5시에 세차례 공연된다. /백산

본래의 수원

2백여년 전 옛 수원의 원래 읍치(邑治)는 현재의 화성군 태안읍에 있었다. 조선조 제22대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부 지금의 태안읍 안녕리에 있는 화산으로 천장하면서 오늘날의 팔달산 밑으로 읍치를 옮긴 것이다. 정조는 수원 새 읍치의 터를 팔달산 밑으로 정하면서 수원부 주민들의 이주비용으로 균역청(均役廳)의 金 10만냥을 하사했는데 구 읍치에 있던 민가의 철거 및 신읍치로의 이주는 현륭원(융능)이 천봉되던 정조13년 1789년 8월부터 시작돼 10월 천장일 이전에 완료하였다. 삼국시대 이래 화산 수원읍성 아래 자리잡아 살던 안녕리 주민들을 수원 팔달산 아래 유천마을(현재의 세류동)로 이주시킨 것이다. 정조는 수원읍치를 옮기면서 수원부에 갇혀 있던 모든 죄수들을 사면, 석방하였으며 신읍에 거주할 농민들에게는 향후 10년간 稅를 면제해 주도록 했다. 정조는 이어 1794년 정월 영중추부사 채제공(蔡濟恭)을 성역(城役)의 총리대신으로 임명하여 같은 해 2월 28일 정식으로 성역을 착공했다. 1794년 착공한 화성은 1796년 9월 완공됐다. 화성성역과 더불어 성안 팔달산 아래에는 행궁과 관아를 설치했는데 이때 건립된 행궁이 지금 복원중인 화성행궁이다. 요즘 4·13 총선을 앞두고 오산시·화성군을 한데 묶어 인구 1백만명이상의 수원광역시를 만들자는 방안이 수원시의회를 중심으로 추진되자 수원시 장안·팔달·권선 3개지역구의 각당 후보들이 앞다퉈 이 문제를 선거공약으로 준비중이라고 한다. 화성군과 오산시가 이에 동의할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과거의 수원 읍치로 수원읍성과 융능·건능, 용주사가 있는 태안읍은 수원시 행정구역에 편입됐으면 좋겠다. /청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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