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를 위하여

세계적으로 40대에 꿈을 이룬 사람은 매우 많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할 때 41세였다. 퀴리부인은 43세에 라듐을 발견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쓰기 시작한 때 45세였다. 간디가 비폭력 투쟁을 전개할 때 45세였다. 워싱턴이 미국독립을 이룩했을 때 49세였다. 히틀러는 44세에 독일 총통이 되었다. 존 F 케네디는 42세에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41세에 집권했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1993년 집권당시 46세였다. 제3의 길을 제시하며 세계의 이목을 한 몸에 받은 토니 블레어(46) 영국 총리, 공수부대 중령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45), ‘대만독립’을 기치로 내걸며 총통선거에 당선된 천수이볜, KBG 첩보원 출신으로 대권을 거머쥔 블라디미르 푸틴(47) 러시아 대통령 등이 모두 40대들이다. 권력과 금력 쟁취자가 성공한 사람은 반드시 아니지만 이제는 한국의 40대가 일어서야 한다. 지금 한국의 40대는 721만3000명 정도로 전체인구 중 16%를 차지한다. 이들은 6·25 전쟁의 폐허에서 그들 부모세대가 희망의 씨앗처럼 잉태해 출산한 자녀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3부제 수업을 받고 자랐다. 가장 혹독한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을 치렀다. IMF 체제를 가장 참담하게 경험했고 아직도 IMF체제 후유증에 허덕이는 세대다.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애써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세대다. 한국의 40대는 그 숱한 생존경쟁의 정글을 헤치며 살아와 건강을 유지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40대를 위하여 50, 60대는 조금씩 양보하고, 20, 30대는 협력해 주어야 한다. 누구나 40대를 맞이한다. 40대가 좌절하면 이사회의 중추가 마비된다. 40대가 능동적이어야 가정도 국가도 건강해진다. /淸河

촌지와 교사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남의 집으로 보내면서 ‘입 하나 던다’고 하였다. 한 집안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 이 말은 가족과는 좀 다르지만 식구라면 대개 가족이었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밥 먹는 입’이다. ‘식구가 여섯이다’라고 하면 집안에 밥 먹는 입이 여섯이라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이긴 하였지만 예전에는 모처럼 집에 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 보냈다. 정 줄 것이 없으면 보리 한 됫박이라도 싸서 보냈다. 이 보리 한 됫박이 바로 ‘촌지(寸志)’다. 촌지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그런 것이다. 서로 부담없이 나누는 인정이 촌지다. 학부모가 자녀의 선생님을 찾아갈 때 양말 두어 켤레, 고기 한 두근 사가지고 가는 것이 촌지다. 미처 그런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봉투에 소주 한병 값이나 넣어서 놓고 나오는 것이 촌지다. 교사는 사양해도 좋겠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두어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촌지가 요즘은 ‘선물’도 아니고 ‘뇌물’로 인식이 변했다. 촌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보리 한 됫박이 값비싼 고급물건으로, 소주 한병 값이 심상치 않은 액수로 바뀐 것이다. ‘촌지를 주고 받았다는 오해를 살까 봐 학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면 겁이 난다’는 교사들이 뜻밖에도 많이 있다. 지난 해 ‘스승의 날’, 교실에 놔두고 간 상품권 1장을 학부모가 누군지 몰라 돌려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교사를 본 일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 사양할 것 같아 몰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놓고간 상품권이 바로 촌지의 미덕이다. /淸河

벤처기업

금세기의 국가경쟁력은 첨단기술이다. 예컨대 의사나 회계사가 많다고 해서 잘사는 나라가 될수 없다. 사회기여도가 대체적으로 국내에 한하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은 제반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국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가 이젠 첨단 과학기술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저비용 경쟁의 경제구조로는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같은 후발국들이 값싼 노동력을 무기삼아 무섭게 추월해오고 있다. 중국인의 생산성은 우리에 비해 50%밖에 안되지만 임금이 10∼20%로 워낙싸 저비용 경쟁에선 게임이 안된다. 이의 돌파구가 과학기술의 개발이다. IMF경제위기도 근원적으로 보면 기술경쟁의 빈곤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있다. 상당수의 첨단기술중심 벤처기업이 성공하면서 몇년만에 수십억, 수백억원을 번 부자 엔지니어들이 생겼다. 이바람에 월급쟁이 기술자들이 벤처기업 창업을 위해 사표를 내던지자 이직을 못하게 하는 어느 재벌기업의 소송제기가 있었다. 재벌 및 대기업에서는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부여, 이들을 붙잡아두기에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은 코스닥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아 벤처스타들이 뜨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4천934개 벤처기업가운데 미국기준의 자격이 있는 곳은 17%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가 나왔다. 이에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탈출을 비롯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 다만 정부의 벤처산업 시책에 재점검이 불가피한 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아직 본궤도에 오르진 못했어도 싹이 있는 벤처는 키우되 거품은 걷어내야 할때가 됐다. /白山

移木之信

정부의 ‘범국민준법운동’과 관련하여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가 생각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부국강병책의 법을 제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 않으므로 공포(公布)를 미루고 한가지 시험을 해봤다. 높이가 30자나 되는 거목을 남문에 세워놓고 이를 북문에 옮기는자에겐 상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여놨다. 아무도 옮기는 사람이 없어 상금을 50금으로 높였다. 그래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이 조정의 말을 그토록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지나 어느 한사람이 속는 셈치고 나무를 옮겨놓자 효공은 약속한 50금을 선뜻 내주었다. 백성들 모두가 진즉 자신이 옮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법을 공포하여 백성들이 따르도록 했다는 이 얘기는 사기(史記) 상군전(商君傳)에 나온다. 사회기강확립을 위해 범국민적 준법의식이 있어야 하는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왜 준법의식이 해이해졌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법은 지킬수록 손해’라는 관념이 팽대해진 불행한 현상이 생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총칼로 합헌정부를 뒤엎은 군부세력이 있었다. 그들이 집권하고 나서는 준법을 외쳐댔지만 헌법을 파괴한 원죄를 모면할수 없어 국민들 귀엔 공허한 소리로만 들렸다. 사회의 준법의식이 해이해진데는 이런 원인(遠因)의 배경이 있다. ‘국민의 정부’들어서도 국회는 국회법위반을 밥먹듯이 해대고 대통령은 선거법 불복종 선언을 했다. 법의 권위를 실추시킨것은 국민들이기 보단 언제나 집권층인 것이다. 범국민적 준법정신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집권층부터 먼저 법을 무섭게 알고 지키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하다./ 白山

386세대

60년대에 출생한 80학번의 30대들, 통칭 386세대들이다. 패기만만한 좋은 시절의 인생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촉망받는 젊은 이들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도 386세대 바람이 일었고 상당한 수가 국회의원이 됐다. 사람도 사람 나름이고 거명되는 386세대도 많아서인지 몰라도 그중엔 젊은이답지 않은 젊은이가 간혹 발견된다. 나이가 젊다해서 젊은이라기 보단 생각이 젊어야 한다. 여당영입 케이스였던 젊은세대 가운데 더러는 모임때마다 실세들과 눈도장 찍기에 바쁜 모습을 보인다더니, 며칠전 중앙일간지에 실린 한장의 사진이 아직도 심심찮은 술자리 안주감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청와대에 초청받은 당선자중 386세대의 H씨가 난데없이 대통령앞에 넙쭉 업드려 큰절을 하고 악수하려던 대통령은 멋쩍게 내려다 보는 모습이었다. ‘과공은 비례’란 말이 있다 사석 같으면 큰절하는게 오히려 당연하겠지만 공식행사 자리에서 남다른 과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예의일수가 없다. 어느 술자리 손님은 “구시대 사람 빰치는 돌출행동”이라면서 “그래가지고 무슨 새 정치바람을 일으키겠느냐”며 혀를 찼다. “패기와 예의도 구별 못하는 ○○”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었다. 물론 386세대가 다 그렇거나 젊은 당선자들이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실망시키는 것은 유감이다. 공자는 말하기를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했다. 젊은이가 젊은이다운 생각을 갖지 못하면 되레 백발청춘보다 못한 애늙은이일 수 밖에 없다. 젊은이다운 생각은 왕성한 실험정신과 도전의식, 지칠줄 모르는 부단한 의욕을 말한다. /白山

몰래 뽕

마약사범들은 노출을 피하기 위해 은어를 사용한다. 대마초는 ‘떨’, 필로폰은 ‘술’로 통하며, 마약 공급자는 ‘상선(上線)’, 소비자는 ‘하선(下線)’이라고 한다. 상선은 다시 수십㎏대 생산·밀수업자인 ‘공장’부터 아랫급 도매상인 ‘공장선’, 수백g대 중간선인 ‘공장아랫선’으로 나뉜다. 그런데 하선은 대개 상선을 모를 뿐더러, 한번 상선을 놓치면 다시는 마약을 공급받지 못하므로 자신이 검거돼도 철저히 입을 다문다. 이들의 최하위선에 투약자에게 직접 마약을 대주는 ‘고사바리’가 있는데 중독자인 이들은 대개 처음엔 자신의 마약 구입 비용을 마련하려고 거래에 나선다. 고사바리는 최대 수백명의 소비자에게 ‘물건’을 공급하고 나중에 돈을 챙긴다. 처음엔 ‘살 빼는 약’ ‘정신집중에 특효’ ‘최고의 정력제’ 등 온갖 감언이설을 곁들여 공짜로 사용하게 한 뒤, 일단 ‘맛을 본’ 사람들이 “약 좀 달라”고 매달리는 순간부터 냉정하게 돈을 요구한다. 주로 여성, 특히 가정주부들을 상대로 술이나 음료수에 몰래 타 빠져들게 하는데, 이것이 ‘몰래 뽕’이다. 원만치 못한 부부생활을 하거나 자녀들이 이 일 저 일로 속을 썩히는 주부들,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여성들에게 ‘살 빼는 데 좋다’거나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 말에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고사바리들은 아내, 남편, 애인, 친구 등을 가리지 않고 주변인물들을 계속 유인하여 중독자 한명이 수십명의 추가 투약자를 만들고, 이들이 또 수십명씩 끌어 들이는 ‘피라미드식’경로를 거치면서, 한번 발을 들여 놓은 사람은 헤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단 1초의 호기심이 일생을 망치는게 마약이다. 특히 여성들은 ‘몰래 뽕’의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 한다. /淸河

어느 聖者

"기독교가 아니라고 해서 멸시하거나 충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19일 오후 1시15분 서울 저동 영락교회 사택에서 98세를 일기로 별세한 한경직 목사가 1984년 10월 한국 개신교 100주년사업협의회 총재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1902년 평남 평원군 공덕면에서 출생한 한경직 목사는 평양숭실전문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졸업한 이후 1945년 서울 영락교회를 창립, 1973년까지 담임하면서 한국의 대표적 교회로 성장시켰다. 한 목사는 일생동안 ‘교회사랑, 민족사랑, 하나님사랑’을 내세우며 한국 교회와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 기독교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체의 큰 존경을 받았다. 특히 한 목사는 소천하는 날까지 통장·집·재산이 없는 ‘삼무(三無)의 삶’을 살면서 온 몸으로 하나님 사랑을 실천, 살아 있는 성자로 추앙받았다. 한국전쟁 당시 ‘선명회’를 조직해 전쟁고아·장애자들을 보살폈으며 교육에 정성을 쏟아 대광중·고, 서울여대 등 여러 기독교학교를 세웠다. 1973년 이후 남한산성의 6평 남짓한 방에 머물며 사랑, 진실의 실체를 보여준 한 목사는 1992년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린턴 상을 수상한 후 상금 1백만달러를 통일과 북한 선교 헌금으로 쾌척했다. “인간의 삶에는 믿음·소망·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세계평화는 원수를 용서하시는 종교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독일처럼 남북한도 멀지 않아 통일될 것입니다.” ‘일부 대도시 교회 목사의 호화스러운 생활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는데 한 목사는 “백두산의 튼튼한 소나무로 북녘 고향 땅에 교회지어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었다. 24일 남양주 진건면 사능리 영락동산에 안장되는 성자의 생애가 실로 성스럽다. /淸河

달걀

40대 이상 사람들이 간직한 추억거리 가운데 달걀이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달걀로 만든 반찬이 밥상에 오르는 날은 한달에 몇날 정도였다. 그날은 무슨 좋은 날이거나 귀한 손님이 오신 날이었다. 예전에는 소풍가는 날 아니면 운동회날에야 삶은 달걀 몇 개를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가 도시락 밥을 달걀프라이가 덮은 날은 점심시간이 더욱 기다려졌다. 달걀을 낳아주는 씨암탉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었고 사위가 와야 씨암탉을 잡아 대접했다. 아버지의 따뜻한 밥 속에 어머니가 넣어둔 날달걀은 그날 먹어보지 않아도 맛을 알 수 있었다. 밥의 온기에 흰자는 슬쩍 데워지고 간장만으로 즐길 수 있는 비릿하면서도 풍부한 맛은 아이들의 밥맛을 더욱 돋워줬다. 깨어질세라 하나 둘 모아 둔 달걀은 시장에 내다 팔아 살림살이에 보탰고, 달걀꾸러미는 학교 선생님에게 드리는 최대의 선물이었다. 그렇게 소중한 달걀이 지금은 너무 많이 생산돼 값이 폭락했는데도 사가는 사람들이 적어 거리에서 판촉활동을 벌이는 세상이 되었다. 양계농가의 안정적인 소득보장을 위해서 돈도 안받고 달걀을 나눠주는 진풍경도 가끔 눈에 띄는데 현재 우리나라엔 5천2백여만 마리의 산란계가 있다고 한다. 시장개방에 따라 들여오는 수입달걀 숫자까지 합치면 달걀 생산량이 짐작된다. 사정이 이러하니 양계를 하는 농민들은 생산비도 못건진다. 국방부와 각 공공단체에서 달걀소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농약걱정없고 영양이 풍부한 달걀을 하루에 1개씩만 먹으면 달걀값은 금세 회복된다고 한다. 각 가정마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밥상에 달걀로 만든 반찬을 올려 놓았으면 좋겠다. /淸河

三災이변

태백산맥을 백두대간이라고 한다. 지형적으로 한반도의 등뼈라 할수있다. 평균고도 1000m에 길이는 600㎞ 가량된다. 소백산맥 차령산맥 광주(廣洲)산맥이 여기서 뻗어져 나갔다. 가평군 북면에 있는 해발 1천267m의 명지산은 광주산맥의 최고봉이며 북악산 관악산등은 광주산맥의 명산이다. 얼마전 백두대간이 불타 민둥산이 돼버린 항공촬영 사진을 보면 볼수록 속이 상한다. 삼척, 강릉, 고성등지서 5만여㏊가 불탔다. 생태계 복원에 30∼40년이 걸린다고 한다. 비라도 흠뻑 내렸으면 좋으련만 봄비마저 인색하다. 봄가뭄이 벌써 두어달째 든다. 서울· 경기· 강원지역에 지난 2월19일 내린 건조주의보가 60일째 계속돼 최장기 주의보로 기록되고 있다. 국내 주요댐 저수량도 50%를 밑돈다는 소식이다. 모내기철을 약 한달 앞두어 물걱정이 되지만 당장 밭작물이 가뭄을 타고있다. 난데없는 구제역까지 퍼져 시름을 더해준다. 파주서 시작돼 충남·북까지 퍼지다가 주춤한것은 불행중 다행이나 아직 마음 놓기는 이르다. 축산농가의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곡우(穀雨)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고 했는데 내일(20일)이 바로 곡우다. 곡우는 봄비가 내려 오곡백과를 기름지게 한다는 날인데도 좀처럼 비다운 비는 내릴 것 같지않다. 이 좋은 새봄에 걸맞지 않게 산불, 가뭄, 구제역등 삼재(수재·화재·풍재)아닌 삼재 이변에 시달리고 있다. 날이 가물면 사람들의 마음도 가물어져 삭막해지기가 쉽다. 우리모두 심신을 가다듬어 마음 속으로나마 비를 염원하는 기우제를 지내자. /白山

국회의원

부산출신 민권변호사 노무현의원(민주당)은 지역감정의 벽에 도전하는 고독한 정치인이다. 1988년 초선시절 5공청문회에서 예리하고 조리있는 신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90년 3당합당땐 통합여당행을 거부, 당시 야당인 민주당에 들어갔다. 이번 16대 총선에서는 재작년 보궐선거로 당선한 서울 종로선거구를 버리고 굳이 15대 총선의 낙선고배를 안겨준 부산지역을 선택했다. 결과는 또 낙선,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 PC통신에 “우짜면 존노!사람이 아깝다!”는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패배직후 ‘노무현은 부산을 사랑합니다’라는 대형 간판을 용달차에 싣고 선거구를 누볐다. 좌절을 거부하는 그는 부산의 미래의 희망일 것이다. 국회의원은 정치적으로는 국민의 대표성을 갖지만 선거구로는 시민의 대표성을 갖는다. 4·13총선 결과를 보고 더러 ‘아까운 사람이 떨어졌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중앙 정치무대의 인재를 키울줄 모른다’는 말도있다. 새 사람도 좋지만 지역사회가 기왕 키운 사람을 좀더 키워 크게 부릴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아까운데 정당 때문에 떨어진 이가 있으면 반대로 사람은 검증되지 않았으나 정당 때문에 된 이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4년은 길고도 짧다. 정치신인들에게 4년은 유권자들에 대한 실험기간이다. 정당의 단순한 정치적 거수기가 아닌지, 지역사회를 위한 시민의 대표성 이행을 잘하는지, 장래성이 있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아깝게 탈락한 이들 또한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역경속을 오뚝이처럼 일어서 헤쳐가는 노무현의원 같은 이도 있다. /白山

6·25전쟁

‘훈장을 찾아드립니다.’ 6·25전쟁 50주년기념 YTN 연중 특별기획 프로그램이다. 벌써 100회쯤 방영됐다. 그 당시 계급인 하사(상병) 이등중사(병장)등으로 보도되는 고인들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대 초반 출생들이다. 살아있으면 지금쯤 70, 80대가 됐겠지만 30, 20대, 더러는 10대의 나이에 전사한 것이다. 입대 당시의 주소지도 전국 각지여서 지금처럼 지역차별같은 것도 볼수가 없다. ‘훈장을 찾아드립니다’는 전사한 고인에게 훈장이 추서됐으나 연고자를 찾지못해 그대로 보존된 훈장을 전수할 유족을 찾는 뜻깊은 프로그램이다. 전쟁의 상흔은 반세기가 지나도 이처럼 깊다. 같은 분단국으로 흔히 독일을 예로 들지만 우리는 독일과 다르다. 동서독간에는 전쟁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려 3년여에 걸친 동존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렀다. 언제 또 저들이 전쟁을 도발할지 모를 우려를 떨칠수 없는 것이다. 남북문제는 이처럼 동서독과는 다른 불신의 골이 깊이 깔려있다. 남북관계개선은 불신제거가 요체이지만 말로만은 역시 믿을수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이같은 근원적 시각속에서 접근해야 한다.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고 현재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지만 과거없는 미래 또한 있을수 없다. 정상회담추진은 더 두고 보아야 한다. 정상회담 말이 나오기가 바쁘게 한반도에 벌써 평화가 정착된 것처럼 오도해보이는 정부발표나 언론보도는 재고돼야 한다. 회담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있다. 안보의식이 해이해지지 않을까 심히 두렵다. /白山

성범죄자 공개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를 상대로 한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1996년 미국의 ‘메건법’에 의해 시작됐다. 1994년 미국의 뉴저지주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이웃에 살고 있는 성범죄 전과자의 집에 모르고 놀러갔다가 무참히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당시 7세의 소녀 메건 캥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 메건법이다. 메건의 부모는 만일 이웃사람이 성범죄 전과자라는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그러한 비극이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성범죄 전과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입법운동을 한 것이다.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그들을 미리 알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과 신상이 공개될 수 있다는 두려움때문에 성범죄를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는 바람직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7월 1일부터 원조교제 등 미성년자에 대한 성범죄자의 신상이 공개된다. ‘청소년성보호법’이 발효되면 청소년 성범죄자의 구체적인 직장명과 생년월일, 주소 등 신상이 관보와 시·도 및 시·군·구 게시판, 청소년보호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개된다.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방법’ 시안을 보면 신상공개는 기본적으로 이름, 나이, 직업과 함께 범죄사실이 포함되고, 동명이인을 구별하기 위해 직장명도 공개된다고 한다. 아무리 범죄자라고 할지라도 부당한 인권 침해를 당해서는 안되며 범죄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신상공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상적인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더 잔인한 제2의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도 죄질 나름이다. 미성년자 성폭행과 원조교제를 누가 용서할 수 있는가. /淸河

험난한 길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위해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날은 1970년 3월 19일 이었다. 1차 회담 준비를 위해 가진 4차례의 실무회담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의제’보다 회담장소였다. 동독측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을 방문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독측은 회담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의식, 거부했다. 결국 동독측이 제3의 장소로 제안한 동독 접경지역 에어푸르트로 결정됐다. 1차 회담에서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국제법상 동등한 동서독 관계수립, 유엔 동시가입 등 7개항의 기본입장을 제시했고, 서독측은 양국간 선린관계 제도화 등 6개항을 제시했다. 1차 회담은 서로의 입장을 듣는 선에서 끝났다. 2차 회담은 두달 후 서독지역 카셀에서 개최됐다. 1차처럼 하루 일정으로 양국 입장을 주고 받았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을뿐 아니라 회담계속을 약속하는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정상회담 자체가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양측은 데탕트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실무자급 대화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1970년 8월 3차회담에서 상호 불가침과 현상 인정에 대한 조약을, 1971년 4차 회담에서는 서독·서베를린간 통행협정을 체결했다. 1972년 11월 마침내 양측이 상호 협박과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양측간 국경을 준수하며 서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기본조약’에 서명했다. 그런데 한국은 오는 6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너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10월 통일까지 20년동안 9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한국은 험난한 길인줄도 모르고 1차 회담으로 통일을 이룰 것 같이 흥분해 있다. 제발 침착했으면 좋겠다. /淸河

투표는 합시다

제16대 총선이 치러지는 13일, 오늘은 전국이 흐린 가운데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가는 포근한 날씨라고 기상청이 밝혔다. 바람이 불고 쌀쌀했던 날씨가 20도 안팎으로 따뜻하게 풀렸다. 때마침 진달래 개나리 철쭉 목련 등 봄꽃이 한창 피어나서 그야말로 호시절인데 걱정거리가 있다. 상당수 유권자들이 참정권 행사를 포기하고 봄나들이를 즐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양평, 가평, 대성리 등지의 민박시설의 경우 대부분 예약률이 50%를 넘었고 골프장은 2,3주 전에 이미 100%예약 됐다고 한다. 항공권과 열차표 예약률도 웬만한 연휴의 상황을 방불케해 전좌석이 매진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16대 총선 투표율은 ‘사상 최악’이 될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12대 총선 투표율은 84.6%였고 13대 75.8%, 14대 71.9%, 15대 63.9%로 줄곧 내리막을 기록했는데 16대는 60%선 이하로 떨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찍을 사람도 없고 믿을 만한 정당도 없어서 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가 당선돼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있다.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과 후보자의 납세·병역·전과 공개 등으로 어느 선거보다 투표율이 높을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이유는 4·13 총선이 선거 사상 최악의 저질이며 특별한 쟁점이 없고 후보들 대부분의 과열·혼탁 열기로 염증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권을 하면 나중에 정치를 잘못해도 질책할 자격이 없어진다. 내가 찍은 한표의 위력과 그 힘이 주는 쾌감을 왜 포기하려는가. 산으로 들로 강으로 봄을 만나러 가더라도 아침 일찍이 투표는 하고 가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며 도리이다. /淸河

신북풍

1987년 12월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둔 그해 11월29일 KAL858기 폭파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17일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두어달 남짓 앞둔 그해 10월6일 총리급간첩 이선실을 중심으로 하는 남조선 노동당사건이 있었다. 1996년 4월11일 제15대 총선을 불과 일주일 남긴 4일 북한군이 돌연 비무장지대 규정 준수를 거부하며 수차에 걸쳐 비무장 지대에 무장병력을 투입했다. 현직 대통령이 선출된 97년 12월18일의 제15대 대통령선거를 약 4개월 앞둔 그해 8월15일에는 오익제 전 천도교 교령의 월북사건이 있었다. 이에 당시 야당총재였던 김대중씨는 ‘어떻게 선거때마다 이상하게 북풍이 분다’며 북풍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오익제씨는 측근으로 알려졌던 터라 그의 월북은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밖의 북풍사건은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에게 시국 불안을 조성 안정선호를 유도케 하므로인해 여당엔 유리한 반면 야당은 불리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세풍(稅風) 병풍(兵風)등은 다 북풍에서 비롯된 조어가 됐을만큼 북풍이란 말은 유명해졌다. 세월이 바뀌어 여당총재가 된 김대중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합의서 발표로 신북풍을 일으켰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신북풍을 ‘총선용’이라며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총선용이 아닌 역사의 전환점이 되는 결실이 있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결과는 더 두고 지켜볼 일이다. 그나저나 정부의 회담관련 홍수발표를 저들이 보면서 행여 ‘남조선 선거는 우리손에 달렸다’식의 잘못된 오만을 갖지 않을는지 모르겠다. /白山

흙비

편서풍을 타고 날아드는 황사현상은 봄철의 불청객이다 황사의 진원지인 중국에서는 예부터 ‘황진만장’(黃塵萬丈) 이라고 했다. 미세한 황토입자가 먼지로 변해 만장이나 쌓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도 삼국사기나 조선실록 가운데 ‘흙비’ 란 기록이 나오것을 보면 조상들도 황사현상으로 애를 먹었던 것 같다. 이동성 고기압이 동쪽으로 이동할때 주로 나타나는 황사현상은 화북 몽골 등 내륙지방의 황토먼지를 바람에 실어 날려 보내곤 한다. 한반도를 지나 북태평양까지 날아간다. 날으는 높이도 4000m나 돼 황사현상이 심하면 시계가 흐려져 항공교통이 통제되기도한다. 봄에 많이 생기는 이유는 동아시아의 봄이 이상건조 현상을 일으킬 만큼 매말라 황토가 쉽게 날릴수 있기 때문이다. 황사현상이 기관지나 눈의 질병을 유발하는 것은 상식화된 가운데 벼멸구같은 병해충도 날아온다는 설이 있었다. 최근에는 축산업에 일대 타격을 주고있는 구제역도 병균이 황사를 타고 왔을 것이라고 당국의 말이 있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구제역같은 병균은 황사속에 섞였다해도 벌레나 벌레알과는 달리 태양광선에 노출돼 살균된다는 학설이 더 유력하다. 황사현상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내년부터 조성된다는 보도 (본지 11일자 7면)가 나와 주목을 끈다. 산림청이 중국당국과 함께 우란부허 사막등에 방풍림 설치를 위한 한·중 임업협력회의를 오는 7월에 갖는다는 것이다. 드넓은 내륙에 무슨수로 방풍림을 조성한다는 것인지 잘 알수 없으나 시도해보는 노력은 가상할만 하다. 올 황사현상은 유별나게 잦고 농도가 짙어 말 그대로 ‘흙비’를 방불케 한다. /白山

산불

지난 주 강원도 영동에서 산불이 일어나 이틀동안 계속돼 임야 천 수백헥타르를 태우고 강릉에서는 산간의 가옥에까지 불이 붙어 집 여러채를 태운가운데 3명의 사상자까지 냈다. 산불의 기세는 정말 무섭다. 한번 불붙은 산불은 뜨거운 열기바람이 삽시간에 주변의 초근목피를 건조시키면서 불바다로 만든다. 산불은 또 바람이 불면 더욱 거세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산불 자체가 산간의 기압골에 변화를 가져와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불똥이 20∼30m까지 튀는 바람에 계곡에서 계곡으로 건너 마구 번진다. 산불진화를 잘못하다가는 불에 갇히거나 열기와 연기에 질식, 자칫 인명을 잃기 쉽다. 중국의 삼국지에 흔히 나오는 것이 화공이다. 제갈량이 남만을 칠때 화공법을 썼다. 아비규환속에 수많은 인명이 불타죽는 것을 보고 “내가 제명에 못살 것이다”라며 자책했다. 제갈량은 그후 얼마 못가서 중원 원정길에 나섰다가 폐결핵이 도져 객사했다. 그건 그렇고, 김성훈농림부장관의 대국민담화가 가관이다. 법정 최고형을 구형한다지만 산불낸 사람이 잡힌적이 없다. 산불대책을 소홀히 한 자치단체장을 문책한다는 것이 말인즉슨 맞지만 그에 겁먹을 단체장은 없다. 관선단체장때보다 민선단체장 들어 산불이 더 잦은게 임기를 믿고 겁먹지 않기 때문이다. 무슨 전시용 반짝시책 따위만 신경쓰지 산불같은 것은 건성이다. 정부는 산불진화에 관련한 특수장비, 전문지원대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도내도 올들어 30여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지금은 아프리카 밀림처럼 바람으로 나뭇가지가 마찰을 일으켜 불이나는 예는 없다. 결국 사람이 불을 낸다. 입산자의 사소한 부주의가 큰 산불을 내는 것이다. 입산자를 단속해야 한다. /白山

저질 쇼

지난 3월 31일 일부 장·차관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파주산 육류 시식회’가 여의도 국회안 ‘의원동산’에서 있었다. 지금 전국적으로 축산농가를 긴장시키고 있는 구제역에 대한 일반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헌신적(?)인 행사였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환경부장관을 비롯, 농림부·축산업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이날 시식회에서 먹은 돼지고기·쇠고기는 당연히 구제역이 발생한 파주산 고기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참석자들이 실제로 먹은 고기는 파주산이 아니고 농림부 산하기관인 한냉·양돈협회가 제공한 고기라는 것이다. 시식회에서 상당수 참석자가 안먹으려고 하자 주최측이 ‘이건 파주산이 아니라 한냉에서 사온 고기라 안전하다’고 말하자 50㎏을 구워 먹고, 남은 20㎏은 참석자들이 싸갔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저질 쇼가 탄로나자 국회농림해양수산위원장측은 행사준비를 맡았던 한냉·양돈협회가 31일부터 파주의 질병 발생 반경 20㎞ 이내의 육류 반출이 일절 금지되자 다른 곳에서 고기를 가져온 것으로 안다고 변명했다. 농림부측도 이 때문에 행사 이름을 ‘우리 축산물 시식회’로 바꿨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림부 한 관계자는 당시 행사에 사용된 고기는 모두 한냉에서 갖고 온 것이라고 밝혔다.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고기가 인체에 전혀 해로움이 없다는 것은 이미 확실히 밝혀졌다. 차라리 ‘파주산 육류 시식회’를 열지나 말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다. 한복 입고 누드 쇼를 했다고 우기는 것 같은 정말 치사한 쇼가 아닐 수 없다. 당국의 매사가 이러하니 정부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시식회의 음식도 가짜가 있으니 정말 믿지 못할 세상이다. /淸河

궁중사극

KBS-TV 사극 드라마 ‘용의 눈물’과 ‘왕과 비’가 끝나고 ‘태조 왕건’ 방영이 시작됐다.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용의 눈물’과 ‘왕과 비’는 시청자들의 인기와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용의 눈물’과 ‘왕과 비’ 등 궁중사극은 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사실고증이 잘 안되고 정치사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등 문제거리가 많았다. 궁중의 과부인 대비들은 소복을 입고 여생을 보내게 마련인데 ‘왕과 비’에서 덕종비 인수대비(소혜왕후)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계속나왔다. 대비가 마구 걸어서 궐정을 왕래하거나 왕의 집무실에 멋대로 나타나서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사실이 아니다. 궁중의 왕족이나 비빈들은 몇 발짝을 움직이려 해도 연(輦)이나 가마와 같은 것을 탔었다. 조선시대에는 신하들이 왕을 접견할 때는 항상 부복(俯伏)의 자세로 대화를 하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임금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는데, 사극에서는 신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마주 앉아 왕을 노려보면서 큰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실록은 승리자의 기록인데 궁중사극이 실록을 위주로 제작되고 있는 데도 문제가 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남긴 자료들을 근거로 한다면, 패한 자, 또는 민초들의 삶을 그리기가 어렵다. 잘못된 궁중사극은 국민의 역사의식을 그르칠 수 있고, 역사와 현실정치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해칠 수 있다. 극작가들은 물론 역사학자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극본자체가 문학적 창작에 속하기 때문에 픽션이 허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물을 다룰 때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특히 지나치게 시청률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부양하는데 힘써야 한다. TV 방송국이 궁중사극을 제작할 때는 지나치게 시청자의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淸河

誤報를 바랐던 특종…

지난 3월 27일 7시쯤이었을까. 본사 편집국장에게 농림부 고위관리의 간곡한 전화가 걸려왔다. 본지가 단독 입수한 파주지역의 가축괴질에 관련한 전화였다. 구제역이란 말은 빼달라는 것이었다. 1보는 이미 괴질로 나갔기 때문에 이날 제작하는 속보는 의사구제역으로 나가려던 참이었다. 국장은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차마 의사구제역으로 못박지 않고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괴질’로 속보를 내보냈다. 사실은 은폐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확실한 역학조사가 나올때까지 구제역이란 말을 빼달라는 농림부측 생각이나 의심되는 사실을 숨길수 없다고 보면서 농림부측의 의중을 살린 본사 생각이나 다 국익을 고려한 것이다. 경기일보의 보도는 물론 근래 드문 특종이다. 그러나 제발 오보이기를 바라는 마음 없지 않았다. 지난 2일이었다. 마침내 가축검역기관에 의해 구제역으로 공식확인됐다. 그순간, 특종이 확인된 기쁨보다는 축산업 기반이 뻥 뚫리는 아픔이 크게 클로스업됐다. 대형교통사고로 사망자와 중상자가 속출한 가운데 마감시간에 쫓기는 취재기자가 중환자실 문턱에서 몇명이 더 숨질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몰매맞을 일이다. 하지만 기자가 그 일을 서슴지 않는 것은 숨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정확한 실상을 보도하기 위한 고충인 것이다. 신문을 만들다 보면 이런 어려움이 있다. 구제역은 불행히도 국지적 문제가 아닌 전국적 현상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축산업의 기반보호를 위한 범국민적 노력이 요구된다. 당국의 대책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국내 소비가 늘어야 한다. 구제역은 인체와 무관, 무해하다는 국제사회에 공인된 관계당국의 말을 믿어야 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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