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신협 제19대 이사장에 박세웅 현 이사장 당선

의왕신협 제19대 이사장에 박세웅 현 이사장(60)이 당선됐다. 31일 의왕신협에 따르면 박 이사장은 지난 30일 치러진 의왕신협 제19대 임원선거에서 2천63표 중 1천619표를 얻어 이사장에 재선됐다. 박 이사장은 인하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의왕신협에서 근무를 시작해 실무책임자와 상임이사를 거쳐 제18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신협중앙회 동반성장발전위원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19년 금융의 날 서민금융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박세웅 이사장은 “테마여행 확대 등 조합원의 복지증진, 문화센터를 통한 문화혜택 확대, 사회공헌활동 다각화 등에 힘쓰겠다”며 “정도경영과 윤리·책임경영으로 조합원이 행복한 신협을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부이사장 선거에서는 1천404표를 얻은 맹봉선 의왕신협 이사(57)가 당선의 영광을 차지했다. 의왕 부곡초교와 안양중·안양공고를 졸업한 맹 당선인은 의왕신협 이사와 부곡장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맹 당선인은 “무보수 명예직인 부이사장으로서 신협과 조합원 간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고, 경영 성과 극대화를 위한 조력자 역할에 힘쓰며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의왕신협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는 2023년도 사업실적 및 결산 승인의 건 등 7개의 안건이 상정돼 원안 통과됐다. 올해로 51주년을 맞이하는 의왕신협은 현재 본점을 포함한 4개의 금융점포와 2개의 자동화지점을 운영 중이며 더불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서민금융기관인 신협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또한 지난 2022년 8월 신축 회관을 건립해 문화센터를 개점, 조합원 문화생활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어부바상품권과 전통시장 활성화사업·테마여행·온세상나눔캠페인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야구선수 꿈 좌절, 제2 인생 시작.... 남인천중고등학교 졸업생 오국철씨

“어딜 가나 따라붙는 학력 꼬리표, 이젠 당당해요.” 초등학교 4학년, 야구선수를 꿈꾸며 어린 나이에도 온몸을 불살라 운동에 매진한 오국철씨(42)는 중학교도 인천에서는 알아주는 야구 명문으로 진학했다. 동급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벽같은 이른 기상시간을 시작으로,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하체훈련을 비롯해 모든 생활이 어린 오씨에게는 괴로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멋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선 모습을 상상하며 오씨는 어린 나이에도 포기하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훈련 도중 양팔에 부상을 입어 운동할 수 없게 되자 오씨는 팀에서 뒷전으로 밀려났다. 감독을 비롯한 그 누구도 오씨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학업도 포기한 채 운동에만 전념했던 오씨는 학업에서도 뒤쳐졌고, 결국 모든 꿈을 포기한 채 중학교 3학년 때 자퇴했다. 이 때부터 신문배달일을 시작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든 오씨는 20대 시절을 모두 일만 하며 보냈다. 시간이 지나 번듯한 직장도 가졌지만, 오씨에게 진급은 꿈만 같은 멀기만 한 일이 됐다. 중학교 자퇴라는 꼬리가 그를 붙잡아선데, 이에 신물이 난 오씨는 복합기회사, 자동차 부품대리점, 화학공장에서 지게차기사 등 여러 곳을 돌며 꿈을 쫓았지만 진급에 성공한 적은 없다. 오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녔다”라며 “마음 한켠에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은 물론, 학업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응어리졌다”고 회상했다. 늦었지만 꿈을 찾아 헤매던 오씨에게 작은어머니의 한 마디가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남인천중고등학교 입학 제안이었다. 짧은 학력에 한이 맺힌 오씨는 늦은 나이에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만학도들을 보고 입학을 결심했다. 이전까지 고등학교 학위를 받을 방법이 검정고시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는 이곳에서 희망을 얻어 2021년 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했다. 당시 그의 나이 39세였다. 생계는 이어가야겠기에 오씨는 새벽 운송업을 유지하며 수업을 들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 점심식사를 마치고 퇴근해 오후 4시 수업을 참가했다. 성실한 노력 끝에 학급위원직을 맡기도 했다. 중간 중간 힘들어 지치고 부모님이 불신하는 상황도 생겼지만 동급생들이 보낸 응원에 힘입어 오씨는 결국 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올해 졸업한다. 그동안 맘고생 하며 다 큰 아들 뒷바라지에 힘쓴 어머니 집을 지어주고 싶다는 꿈이 생긴 오씨는 청운대학교 건축공학과 진학을 결정했다. 오씨는 “배움에 대한 기쁨을 일깨워준 남인천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께 우선 감사하다”며 “꿈은 언제든 꿀 수 있고, 누구나 꿀 수 있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미추홀구 남인천중고등학교는 1984년 개교해 만학도들을 대상으로 정규교육과정을 제공하는 인천 유일의 학교다. 남인천중고등학교는 기존 정규교육과정을 받지 못한 만학도들에게 학업 기회를 부여하고자 주간반과 야간반을 별도로 개설, 운영하며 31일 43회 졸업식을 진행했다. 이날 중학생 212명, 고등학교 227명이 졸업했고 학생들 평균연령은 각각 66세와 65세다.

버스킹 그룹 ‘토야프렌즈’ 조기열씨 “즐겁고 행복한 공연 나눔 이어갈 것”

“긴 시간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나눔까지 함께하고 있어 정말 좋고 뜻깊습니다.” 2005년부터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통기타그룹 ‘토야프렌즈’ 멤버 조기열씨(59)가 지난달 30일 경기일보와 만나 이야기한 그간의 소회다. 토야프렌즈는 조씨를 비롯해 수원지역에서 통기타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찬수씨,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임은미씨 등으로 구성된 3인조 공연 그룹이다. 경기도 소속 공무원인 조씨가 2005년 세계 도자비엔날레 행사 지원차 한국도자재단으로 파견 근무를 나갔을 당시 재단의 마스코트 ‘토야’의 이름을 따 결성했다. 당시 토야프렌즈는 각종 공연을 진행하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재단을 홍보하고자 만들어졌지만 2009년 경기도에서 진행됐던 소아암 환자 모금 공연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나눔의 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해 기부금 관리, 전달 기관이 필요해지면서 경기 사랑의열매와도 인연을 맺게 됐다. 그로부터 3년간 공연 수입을 기부하던 토야프렌즈는 2012년 경기 사랑의열매와 ‘사랑의열매 모으기 100회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사랑의열매 모금함을 두고 관람객에게 사랑의열매를 무료로 나눠주는 공연을 100회 진행하는 것이다. 조씨는 “멤버들과 오산 물향기수목원, 수원 경기도청 벚꽃축제 현장, 안산 바다향기 수목원 등 도내 각 지역을 돌며 모금 공연을 진행했다”며 “처음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나름대로 노하우를 쌓고 관객과 소통하는 즐거움을 느껴 만족스럽게 공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경기 사랑의열매에 전달한 누적 기부금은 약 3천만원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토야프렌즈는 경기 사랑의열매 홍보대사로 활동했고 2018년에는 3년내 1천만원 이상 기부 단체 모임인 ‘나눔리더스클럽’에 가입했다. 지난해 말 토야프렌즈는 90번째 공연을 마치고 올해 91번째 공연에 나설 예정이다. 조씨는 “비록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년 정도 공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공연을 통해 나눔을 전개한다는 경기 사랑의열매와,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노력했다”며 “100번째 공연까지 즐겁게 진행하며 나눔을 실현하고 그 경험을 은퇴 후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데 밑거름으로 삼고자 한다”며 웃어 보였다.

강동천 어깨동무봉사단 회장 “봉사로 시작해 봉사로 끝나는 삶 살겠다”

“걸을 수 있는 날까지 봉사로 시작해 봉사로 끝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도움 없이 일어서기 힘든 분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강동천 어깨동무봉사단 회장(62)의 이야기다. 강 회장은 지난 2011년 한 청소업체의 창설 멤버로 들어간 뒤 ‘나눔봉사단’을 결성해 봉사단장을 맡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다른 봉사단을 만들어 활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뜻을 함께한 사람들과 같이 봉사단체 ‘함께하는 성남사람들’을 지난 2012년 만들었다. 그러나 이후 봉사단은 해체됐고 따로 나온 10명이 모여 지난 2017년 ‘어깨동무봉사단’을 설립하게 됐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봉사를 해야 하므로 어깨동무하면서 일심동체로 봉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깨동무봉사단으로 이름을 짓고 강 회장이 지금까지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강 회장은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제게 나중에 커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사회에 봉사하면서 돈에 욕심을 갖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며 “봉사단과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지인들에게 부탁해 물품을 후원받아 어려운 분들에게 연락하고 찾아다니면서 나눠드린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강 회장과 봉사단은 지난 2017년부터 노숙인 보호시설 ‘안나의 집’에서 노숙인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저녁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또 상대원2동복지관에서는 지난 2021년부터 한 달에 한 번 어르신들을 위한 음식과 반찬을 만들어드리고 점심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이외에도 연말에 얼마가 됐든 좋은 일에 쓰자는 생각으로 회원들이 한 달에 2만5천원씩 회비를 걷어 소외계층을 위한 후원을 하고 있으며 어르신들을 위한 쌀도 기부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소외계층과 형편이 어려운 가정을 도우며 살고 싶다”며 “또 직접 소년소녀가장을 찾아다니면서 장학금 전달도 하고 성장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회장은 “살기 힘들고 불편한 어르신들이 너무 많다. 회원들과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성남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봉사단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후례 장안구여성자원봉사회 회장 “지역이 곧 미래…봉사 통해 지킬 것”

“봉사하는 이유요? 지역이 살아야 이웃이 있고, 저도 있는 법이니까요.” ‘지역이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격언이 있다. 지역의 가치와 기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의미다. 그만큼 지역은 우리가 살아가는 소중한 터전이자,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그런 지역이 시들어 가고 있다. 인프라 부족에 따른 인구 소멸, 재난 발생 등 원인도 다양하다. 다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봉사를 통해 지역 발전에 앞장서고 있는 이가 있다. 김후례 장안구여성자원봉사회 회장(66)이다. 어느덧 34년째다. 그의 봉사는 지난 1987년 10월 수원특례시 장안구 파장동으로 이사 온 지 2년3개월, 분동으로 율천동이 생겨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율천동은 어수선한 분위기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 간 대화는 점점 단절됐고,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은 끝없이 벼랑으로 내몰렸다. 좀처럼 분위기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순간, 율천동 새마을협의회가 생겨났다. 늘 ‘나의 마을, 나의 이웃을 되살려야 한다’는 바람을 품어 왔던 김 회장에겐 천금 같은 기회였다. “고민도 사치였어요. 망설임 없이 새마을협의회에 들어가 곧바로 봉사를 시작했죠. 밤을 새가면서 어르신 1천500~2천명을 대상으로 김장 봉사부터 경로잔치 봉사까지 진행했습니다. 몸살을 앓을 정도로 고됐지만, 뿌듯함 하나로 견뎠죠.”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김 회장의 봉사 정신은 날이 갈수록 투철해졌다. 2000년부터 6년 동안 율천동 새마을부녀회장까지 도맡은 이유다. 이후 2007년엔 장안구여성자원봉사회에, 2013년엔 장안사랑발전회에 각각 들어가 ▲구청 민원인 안내 봉사 ▲청솔복지관 급식 봉사 ▲독거노인 여행 봉사 등을 이어갔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을 넘어 지구촌 곳곳에도 온정의 손길을 뻗고 있다. 결국 지역은 지역으로 통한다는 믿음에서다. 대표적으로 강원도 산불 피해 지원,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피해 회복 성금 전달, 캄보디아 화장실 구축, 몽골 나무심기 등이 있다. 그는 이런 공을 인정받아 수원특례시장상(3회), 경기도지사상(2회) 등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먼 훗날, 누군가에게 귀감이 돼 자연스레 상생·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김 회장. 그의 봉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김 회장은 “한 번은 동네에 무단 투기 쓰레기가 너무 많아 주민들에게 손수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시면 안 된다’고 편지를 쓰기도 했다”며 “주변에선 ‘그게 소용이 있겠냐’고 혀를 찼지만, 현재 그곳들은 꽃밭이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역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목표로 미래 세대에도 고스란히 지역을 물려줄 수 있게끔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지역을 지키는 일이고, 나라를 발전시키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