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일본에서 제작하고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공장에서 조립한 승객용 객차로 1955년 대통령 전용으로 개조됐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박정희 대통령까지 이용했다. 객차 안에 각종 시설과 설비가 갖춰져 있다. 화려한 의장이 돋보이기도 해 전직 대통령 관련 유물로 상징적 가치가 높다. 길이는 24.5m, 너비는 3m, 높이는 3.4m 규모다. 현재 소재지는 의왕시 철도박물관로 142에 위치한 철도박물관으로 한국철도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17일 국가등록문화재 제 419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한글점자 훈맹정음 제작 및 보급 유물은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국가등록문화재 제800-1호이다. 이 유물은 송암 박두성이 1926년 11월 4일에 반포한 6점식 점자 훈맹정음과 관련된 유물 8건으로 총 48점이다. 훈맹정음은 일제강점기 시각장애인을 위한 고유언어 문자라는 점에서 문화적 가치가 큰데, 본 유물은 훈맹정음 사용법에 대한 원고, 제작과정을 기록한 일지를 비롯해 제판기, 점자인쇄기(로울러), 점자타자기 등 한글점자의 제작보급을 위한 기록, 기구 등과 관련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시각장애인사를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문화재 등록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 제공
서희장군묘는 여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고려 초기의 외교가이자 문신인 장위공 서희(942998)의 묘소다. 서희는 광종 11년(960)에 과거에 급제해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성종 12년(973)에 거란이 침입하여 압록강을 건너오자 거란의 장수 소손녕과 담판해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내세워 거란군을 물러가게 했다. 그후 청천강 이북에 있던 여진족을 토벌하고 강동 6주를 설치해 평안북도 일대의 땅을 확보했다. 현재 여주 산북면 후리 산53-1번지에 위치한 그의 묘는 지난 1977년 10월13일에 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옹진 백령도 두무진(甕津 白翎島 頭武津)은 인천 옹진군 백령면 연화리에 있는 자연유산으로, 명승 제8호이다. 백령도는 남한의 서북단에 있으며 14번째로 큰 섬이다. 이 섬 북서쪽 포구가 두무진이다. 두무진에는 수억년동안 파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병풍같이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과 가지각색의 기암괴석이 솟아 있다. 3040m 높이 암벽에는 해국(海菊)이 자라고, 해안에는 염색식물인 도깨비고비갯방풍땅채송화갯질경이가 있으며, 큰 바위 틈에서 범부채가 자란다. 전남 홍도의 기암과 부산 태종대를 합쳐 놓은 듯하다. 문화재청 제공
망월사 범종각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는 탑으로, 조선시대 승려인 천봉당 태흘(17101793)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탑은 넓은 바닥돌 위로 기단을 두고,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바닥돌을 제외한 각부분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각 모서리마다 다섯 개의 구슬무늬를 세로로 두어 장식했다. 탑에 새긴 기록으로 보아 조선 정조 18년(1794)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소재지는 의정부 호원1동 산91번지로 지난 1985년 9월20일에 도 문화재자료 66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강화 참성단 소사나무(江華 塹星壇 소사나무)는 인천 강화군 화도문 문산리 참성단 내에 있는 자연유산으로, 천연기념물 제502호다. 이 나무는 전형적인 관목 모습에 나무갓이 단정하고 균형 잡혀 있으며 사적 제136호인 참성단(塹星壇, 단군이 하늘에 제사지낸 곳)의 돌단 위에 단독으로 서 있기 때문에 한층 돋보이는데, 규모와 아름다움에서 우리나라 소사나무를 대표한다. 소사나무는 잎이 작고 줄기가 고목의 모습을 가져 예부터 분재 소재로 사랑을 받아온 대표적인 전통나무다. 문화재청 제공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은 지금은 주변이 경작지로 변한 봉업사의 옛터에 위치하고 있는 탑이다. 전반적인 구조는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이 때의 석재가 두툼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의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했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나,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 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현재 소재지는 안성 죽산면 죽산리 148-5번지로 1966년 2월28일에 보물 제435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선문염송설화 권1-30(禪門拈頌說話 券一-三十)은 인천시 서구 법명사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0호이다. 고려후기의 승려 각운이 스승인 혜심이 저술한 선문염송집에 대해 화제에 대한 출처와 특수한 선문용어 해설, 격외의 법문 등을 해설한 책이다. 그래서 선문에서 필독의 책으로 이용되었다. 설화는 선문염송의 고화, 즉 옛화두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뜻으로 선문염송의 권수와 고칙에 따라 자세히 설명했다. 이 판본은 숙종 33년(1707) 7월에 전라도 흥양의 팔영산 능가사에서 간행한 것이다. 현재는 법명사 명상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남향집은 과천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는 뒤로 문을 나서는 소녀와 뜰 아래 누워 있는 개 한 마리가 평화롭게 그려진 집안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모후산인(母后山人) 오지호(1905~1982) 작가의 작품으로 그는 동경미술학교 유학시절부터 일본화풍과 차별화한 조선풍의 화면 설계에 주력했다. 인상주의 화풍으로 식민지 현실을 표현한 작가이다. 서구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양식인 인상파 양식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토착화, 자기화를 성취한 작품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소장돼 있다. 지난 2013년 2월21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36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
묘법연화경 권3(妙法蓮華經 卷三)은 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흥륜사에 있는 기록유산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1호이다. 1245년(고려 고종 32년)에 대장도감에서 간행한 재조 본 고려대장경 판본의 전 7권 가운데 권3의 하나로 제5 약초유품(藥草喩品) 제6 수기품(授記品) 제7 화성유품(化城喩品) 등에서 3승의 가르침이 방편에 불과한 것임을 화성(化城)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두루마리 형태로 얇은 닥종이에 인쇄되어 불상의 복장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질과 인쇄물로 보아 조선전기의 간행본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연천 소재 심원사는 중부 내륙의 명산인 보개산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장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유점사 본말사지에 따르면 심원사는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 영원조사에 의해 최초로 창건됐다 전해진다. 이 절에서는 조선 후기 많은 고승대덕이 머무르며 생활하였던 사찰로 위와 같은 많은 암자를 거느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말 의병활동의 본거지로서 건물이 전소되어 재건됐으나 한국전쟁으로 다시 전소됐다. 2003년 발굴조사를 거쳐 극락보전이 복원됐다. 지난 2006년 8월28일 경기도 기념물 제213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불설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佛說長壽滅罪護諸童子陀羅尼經)은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5호로, 7세기 후반에 북인도 계빈국(캐시미르)의 사문 불타바리가 한역한 경전이다. 내용은 동자를 보호하여 죄를 없애고 장수하는 법을 말한 밀교계통의 경전이다. 곧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가 이 경을 쓰고 외우면 아픈 아이도 병이 낫고, 현세에서 장수하게 되고 악도(惡道)의 고통을 잊는다고 하였다. 장수경(長壽經)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불분권 1책이다. 앞부분에는 한글음이 주서(朱書)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학습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임진왜란 이전 간본으로 인쇄상태로 보아 초인본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제공
감로탱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린 불교그림이다. 청룡사 감로탱은 가로 200㎝ 세로 237.5㎝ 크기이며 3단으로 화면구성을 하고 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7여래와 극락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 등을 그려 이상세계를 표현하였다. 특히 불보살의 몸을 금가루로 칠했는데, 이는 다른 불화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의 중간에는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영혼이 극락으로 인도되길 기원하는 제사상을 차려 공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아래부분에는 속세의 여러 장면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당시 풍속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이 불화는 명료한 주제와 안정된 구도, 선명한 색채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중생제도와 유교의 효사상 강조에 따른 종교적 의의 또한 매우 크다. 문화재청 제공
백자 청화 인천부사 이성곤 묘지(白磁 靑畵 仁川府使 李成坤 墓誌)는 조선시대 유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78호이다. 조선시대 묘지석은 주자가례 장례문화 중 마지막 과정의 장례도구로 지상에 세우는 묘지, 묘표와 함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본 묘지석은 인천부사를 지낸 인물의 유물로 인천 지역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이성곤 묘지석은 조선시대 주자가례 문화가 토착화된 18세기(1761, 영조37) 중엽의 절대 연도를 기록한 작품으로 당시 사대부들의 삶과 직업관, 세계관 등 생활상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이다. 국가나 시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청화백자 묘지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이성곤의 청화백자 묘지는 인천지역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예이며, 인천부사의 묘지로서 역사적,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다는 점에서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 제공
크낙새는 딱다구리과의 일종으로 지구상에서 한반도 중부지역에만 생존하고 있다. 현재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암수 구분 없이 몸길이는 46㎝ 정도이며, 수컷은 머리 꼭대기에 진홍색 깃털을 가지고 있다. 광릉(光陵)은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551468)와 왕비 윤씨가 묻힌 곳으로 능 주변의 숲은 조선시대 460여년간 엄격히 보호돼 크낙새가 둥지를 틀고 살 수 있는 울창한 숲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의 자생식물은 790종 이상이 알려져 있고 나이 200년 이상의 크고 오래된 나무숲이 있어 크낙새가 이곳을 생활의 거점으로 서식한다. 크낙새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만 사는 진귀한 새로서 학술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이 대륙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살아있는 자료로서도 의의가 매우 크다. 그러므로 크낙새가 살고있는 이 지역(남양주 진접읍 부평리 산99-1번지)을 천연기념물 제11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범패와 작법무(梵唄와 作法舞(바라춤))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0-1호이다. 불교의식에 사용하는 노래를 범패라 하고, 춤을 작법, 또는 작법무라 한다. 인천에서의 범패와 작법무는 조선 태조 대왕(1398)이 팔만대장경을 강화 선원사에서 지천사로 옮길 때 이운의식으로 행하면서 처음 행해졌다. 그 후 면면히 이어오다가 1928년부터 약사사, 묘향사, 해광사 등지에서 법회에 범패와 작법무인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 등이 추어지게 된다. 바라춤은 일체의 모든 마장을 끊고 부처님의 정법을 찬탄하는 무용으로 작법무라 한다. 인천 바다의 기상을 담아 힘차고 우렁차며 선이 굵은 것이 특징이며, 호국영령을 위해서도 봉행한 점이 타 지역과 다르다. 문화재청 제공
요지는 그릇이나 자기를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남종면중부면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에는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흙이 나오며, 나무와 물이 풍부하다. 제품의 공급지인 서울과 가깝고 한강을 이용한 운반의 편리성으로 인해, 조선 영조 28년(1752) 궁중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으로 지정됐다. 그 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130여 년 동안 285개소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국가 사정이 어려워지자, 분원리 가마터는 개인에게 경영권을 주게 되었다. 이 일대는 조선 전기에서 후기까지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내던 중심지였기에 조선 도자사 연구에 기반이 되는 곳으로 매우 가치있는 곳이다. 현재 소재지는 광주 중부면, 광주읍, 초월면, 도척면, 실촌면, 남종면 일원에 40여만㎡ 규모로 조성돼 있다. 지난 1985년 11월7일 사적 제314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인천근해 도서지방 상여소리(仁川近海 島嶼地方 喪輿소리)는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6호이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관혼상제의 4대 의례를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하고 실행해 왔다. 그 중 상례의 절차는 전국적으로 비슷하나 지방에 따라 변형되어 다소 다른 모양으로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인천근해 도서지방은 지세가 고르지 못할 뿐 아니라 경기도, 황해도와 인접해 있으며 생활수단도 어업으로 이어가고 있어 상여소리도 경기도, 황해도의 민요와 뱃노래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상여소리는 초혼 및 운구, 행상, 산오름과 외나무다리 넘어가기, 가래소리와 회다지소리, 고별소리로 구성된다. 문화재청 제공
외삼미동 고인돌은 모두 2기이다. 북쪽의 것이 1호, 남쪽의 것이 2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의 고인돌을 거북바위 또는 장수 바위라고 부른다. 덮개돌의 가운데를 거북등모양으로 손질하여 멀리서 보면 거북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고인돌은 화강암 계통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1호가 길이 260㎝, 폭 230㎝, 두께 70~90㎝고, 2호가 길이 174㎝, 폭 140㎝, 두께 30㎝다. 1호 고인돌은 탁자식, 2호 고인돌은 뚜껑돌식(개석식)이다. 특히 1호 고인돌은 변형된 탁자식 고인돌로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과 달리 굄돌을 세우지 않고 옆으로 눕힌 형태로 되어 있다. 외삼미동 고인돌은 탁자식과 개석식이 섞여 있어 청동기 시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고인돌에서 남쪽으로 3.5m 떨어진 곳에 개석식 고인돌로 보이는 넓적한 돌이 놓여 있다. 고인돌은 지난 2005년 11월23일 경기도 기념물 제211호로 지정된 바 있다. 문화재청 제공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갑비고차농악(甲比古次農樂)은 인천 강화군에서 전래되고 있는 농악으로,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9호이다. 전통사회에서 농악은 크게 세 가지 존재방식을 갖는다. 첫째, 대보름 무렵에 하는 당산굿이나 마당 밟기와 같은 의식과 관련된 농악, 둘째, 두레꾼과 함께 김매기 등에서 치던 두레굿과 같이 노동과 관련된 농악, 셋째 판굿과 같이 놀이와 관련된 농악이 그것이다. 이런 농사굿은 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 보이는데 지역적으로 먼 강화에서 비슷한 내용의 농악이 보존되고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