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실장과 사이버 테러

사이버(Cyber)란 용어는 캐나다 공상과학소설가 윌리엄 깁슨(1948∼ )이 펴낸 Neuromancer(노이로만서)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컴퓨터상의 가상·공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거칠 것 없는 무한의 사이버 영역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컴퓨터는 가공할만한 문명의 이기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인터넷 통신이 보편화 되면서 누구를 막론하고 사이버 테러의 피해자로 불명예를 뒤집어 쓰는사례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사회악으로 대두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5일 아침 오산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네티즌이 K비서실장(별정 6급)을 겨냥해 ‘불륜관계’등을 운운하는 장문의 메일을 띄우면서 시청이 발칵 뒤집히는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난데없는 당혹감에 휘말린 K실장은 불편한 심기를 추스리며 문제의 메일이 음해성 사이버 테러로 밝혀질 때까지 고군분투를 결심했지만 윗전의 집요한(?) 권유로 다음날사직서를 내면서 오히려 의혹을 배가시키는 결과가 빚어졌다며 뒤늦은 후회를 곱씹고 있다. 더욱이 K실장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제출한 사직서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순식간에 수리된 점과 시 당국이 사실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만 몇일이라도 숙고할 여유도 없이 권고사직을 종용한 처사에 깊은 유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항간에는 선거를 앞두고 특정 정치인의 발목을 잡고 K실장 본인의 차기 시의원 낙마를 위해 상대세력에서 치밀하게 준비된 음해와 모함이라는등의 무수한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그는 지금 텅빈 심경으로 칩거하며 사법당국에 수사를 의뢰하는등 사이버 테러에 맞서 오명을 말끔히 씻어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절박한 희망을 불사르고 있다. K실장은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누군가의 돌팔매로 한순간에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감수하고 있다”며 “제2의 사이버 테러 피해자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사태를 파경으로 몰고 온 행위자에게 엄중 경고한다”고 밝혔다. /조윤장기자<제2사회부/오산> yjcho@kgib.co.kr

6·25, KAL기 폭파 책임 없다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비상근 부소장이며 집권 세력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인 황태연(黃台淵) 교수가 지난 27일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21세기 동북아포럼’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은 유아 시절 발발한 6·25 전쟁에 책임이 없으므로 침략범죄 용의자도 아니고, KAL기 폭파를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 발언은 우선 집권당이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 하는 점에서 국민들의 관심이 대단하다. 민주당은 황교수의 발언은 당론이 아닌 한 학자의 소신이기 때문에 정쟁의 빌미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망언이라고 규탄하면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주장과는 달리 대다수의 국민들은 황교수의 발언이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다양한 시각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편향된 시각이며, 더구나 김위원장의 답방을 앞둔 시기에 돌출된 발언이기에 발언의 진의를 두고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대다수 국민들은 김 위원장은 서울 답방을 통하여 6·25전쟁, KAL기 폭파 등과 같은 일련의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으며, 집권층에서도 이런 과거사 문제는 일단 거론되어야 한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런 사과 요구를 김 위원장이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으며, 이와 같은 사과 요구는 김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국민들의 요구는 결코 무시될 수 없으며, 더구나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임을 집권당은 인식해야될 것이다. 황교수의 주장과 같이 이런 과거사문제가 국제법적인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우리도 이런 시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법적 처리는 현실적인 문제라기보다는 통일 후에 논의할 사항이다. 따라서 현재 시급한 것은 국제법적인 사안 이전에 도덕적인 문제이며, 더구나 남북문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집권당으로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여론이나 정서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과거사 문제는 일제침략 행위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문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민적 정서를 우선시해야 된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가뜩이나 국론이 분열되어 이에 대한 치유가 시급한 상황에서 돌출된 황교수의 발언은 지극히 유감된 행위임을 민주당은 분명히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반복되는 전세난 당국 뭣하나

이사철을 앞두고 수도권 주택시장의 왜곡현상이 또 반복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미분양아파트가 남아도는데 다른 한편에선 물량부족으로 전세값이 속등하는 기형적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IMF 사태를 겪으면서 한때 인하소동을 벌인 전세금이 99년 하반기에 오르기 시작하더니 IMF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세물량 부족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서민들의 주거안정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최근 시장조사에 따르면 일산 분당 평촌 인천 등지 아파트 전세가격이 연초보다 500만∼2천만원 오른데다 매물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중소형 아파트 등 일부 평형은 아예 매물을 구할 수 없는 상태다. 산본·일산지역 24평형의 경우 1천만∼2천만원 오른 8천만원에 거래되고 있으나 이미 매물이 동난 상태고, 일산의 32평형과 분당의 25평형도 1억∼1억1천만원으로 1천만∼2천만원이 올랐지만 물건을 찾기 힘든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이처럼 이사철을 앞두고 신도시 지역의 전세물이 모자라 서민들이 허둥대고 있는 상황인데도 미분양아파트가 경기·인천지역에만도 1만5천여가구에 이르고 있으니 주택시장의 왜곡치고는 너무나 뒤틀린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이 수도권 전체의 미분양아파트가 남아 도는데 일부 지역에선 전세물량 부족으로 전세금이 급등하는 것은 한마디로 지역적 수급 부조화가 빚어낸 현상이다. 우선 수도권으로의 계속되는 인구유입과 저밀도 아파트의 재건축 사업으로 늘어난 전세수요가 서울과 가깝고 비교적 주거환경이 좋은 신도시로 몰려 물량부족 현상을 빚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의 주택정책이 질보다는 양적인 공급에 치중한 탓에 주거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 아파트가 급증한 전세수요를 흡수하지 못한 결과다. 이와함께 정부가 소형주택 건설 의무비율을 폐지한 것도 저소득층 전세물 부족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따라서 당국은 전세값 안정을 위해선 공공임대 아파트 공급에 주력하고 무엇보다 물량위주의 주택공급을 탈피, 수요자가 찾는 양질의 주택을 공급하는 과감한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차제에 미분양아파트의 공공임대화는 물론 주택건설 업자의 소형 평수 의무건설 규정을 되살리는 문제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양평군 공무원의 보신행정

자치단체의 행정을 엿보고 또한 이에 따른 행정결과의 검증을 받는 절차는 이미 행정을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지방화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주민들의 힘이자 성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유독 공개할 수 없는 비밀문서가 많아 보이는 양평군의 행정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대외비도 아닌 일반적인 현황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행정정보공개 신청절차를 밝으라는 산업진흥과장의 답변이나 용문역 앞 도시계획도로의 기본 설계안과 추진절차를 극구 내부문서라며 공개를 거부하는 도시계획담당의 보신행정이 양평군 공무원들에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언제부터 출입기자가 자치단체를 취재 대상으로 할때 행정정보공개를 신청했는가. 법적으로 행정의 공개를 규정한 행정정보공개 절차를 존중하지만 양평군 공무원의 이러한 발상은 “지금까지 내부적으로 잘 해온 우리만의 업무를 기자가 뭣때문에 요구하느냐”라는 인식이 바닥에 깔려있는 셈이다. 일반적인 자료의 유출은 거부하면서도 취재와 관련된 민간사업자에게 연락을 급히 취해 취재의 진위를 파악하고 취재가 중지될 수 있는 인맥을 동원하는 일이 이들 공무원들에겐 또하나의 중요한 업무인가 보다. 군청 엘리베이터를 타면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잘못된 것은 고치겠습니다’등 10가지의 행동지침과 동시에 행정의 서비스와 투명행정을 제시한 ‘멋있는 공직자가 되기위한 십계’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또 군은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각 실과소의 민원업무를 일원화해 1층에 주민자치1·2행정실로 통합 운영하며 모범적인 민원서비스를 제시하고자 하는 주민위주의 행정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면엔 일부 공직자들의 보신행정이 폭넓은 인식 아래 자리잡고 있어 이중적인 두 얼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양평=조한민기자 hmcho@kgib.co.kr

숫자와 생활

옛 동양인들은 숫자관념이 희박했던 것 같다. ‘백발삼천척’(白髮 三千尺)이란 과장된 시구가 있다. 다과, 대소를 정확한 수치보다 는 모양새를 들어 즐겨 표현했다. 고전에 나오는 ‘백만대군’이 니 ‘십만대군’이니 하는 말도 규모가 컸다는 것뿐 당시의 인구로 는 당치않는 병력이다. (참고:조선의 경우, 인구가 1천만명을 넘어 선 것은 16세기 중반이다) 조선조 호구조사도 수령방백들이 조정 의 부세량을 줄이기 위해 인구를 줄여 보고 하기가 일쑤였다. 그런 가하면 흉년이나 돌림병으로 인구가 실제로 크게 줄어도 조정의 질 책이 두려워 과거의 호구를 그대로 보고하곤 했다. 해방후 한동안 사회에 성행했던 ‘코리언타임’이라는 것도 숫자관 념의 희박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약속시간보다 30분쯤 늦는 것 은 으레 있는 일이고 1시간이나 늦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개인간 사생활도 그랬고 심지어 무슨 공식행사의 개회시간 같은 것도 그랬 다. 이때문에 그 무렵 국내에 와 있던 외국인들이 붙여준 불명예 가 ‘코리언타임’이다. 현대사회는 수치속에 영위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면 주민 등록번호부터 시작해서 대부분의 남자는 군번을 갖게 된다. 이밖 에 또 있다. 전화, 핸드폰, 승용차, 예금계좌, 카드계좌 번호는 기 본처럼 돼 있다. 이도 한가지에 하나뿐이 아니고 몇개씩 갖기도 한 다. 아마 자기주변의 자기번호를 일일이 다 외우고 있기가 어려울 만큼 우리는 자신도 모른사이 번호속에 파묻혀 살고 있다. 단독주 택같으면 지번, 공동주택같으면 동·호수의 주거번호가 또 있다. 자 기집뿐만이 아니고 친·인척이나 친지가 아파트에 살면 그집 동·호 수도 알고 있어야 할만큼 우리는 숫자와 가깝게 지낸다. 인천시의 각 구청이 추진하는 새주소사업이 들쭉날쭉하고 규격 등 이 통일되지 않아 막대한 예산만 낭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새주 소사업이 주민생활에 편익을 주지 못하고 되레 숫자의 혼란만 주어 서는 아예 안하는 것보다 못하다 할 것이다. /白山

지방도 통행료 징수, 안된다

경기지역에 신설되는 도로 가운데 규모가 작은 시·군도를 제외한 상당수의 지방도로의 통행료를 받으려는 경기도의 계획은 재검토돼야 한다. 도대체 그 많은 각종 세금을 받아서는 어디에 쓰려고 지방도로까지 통행료를 징수하겠다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재원이 부족하고 교통난은 가중되는 현실에서 유료도로화 말고는 수도권 교통난 해소책이 없다는 경기도 당국의 주장은 어려운 국민경제를 고려하지 않은 발상이다. 도로를 신설해서 관리권을 매각한 돈으로 다시 도로를 건설해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는 게 경기도가 추진하는 유료도로의 기본취지라고 한다. 유료도로가 건설되면 관리권을 민간인에게 일괄 매각하고 매각대금은 다른 도로 건설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기도의 재원 마련을 서민들이 부담하라는 셈이다. 현재 경기지역에 건설중이거나 앞으로 신설 예정인 지방도로는 김포시 고촌∼월곶, 화성군 봉담∼평택시, 화성군 송탄∼동탄, 의왕시 학의동∼용인시 구성읍 동백리, 안양시 석수역∼안양역, 양주군 축석∼포천군, 양주군 송추∼동두천시 구간 등이라고 한다. 도 당국이 경기개발연구원에 유료화 도로 타당성 여부를 의뢰해 현재 검토중이라고 하는데 만일 지방도로까지 통행료를 받는다면 서민들의 가계부담을 가중시키는 처사일뿐 아니라 그렇지 않아도 극심해지는 경제난국에 실망하고 있는 국민이 정부를 더욱 불신하게될 게 자명한 노릇이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기반시설로써 국가가 당연히 국민에게 제공해야할 지방도로를 이용하는데 돈을 징수한다는 것은 아무리 교통 소통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결국은 국민이 민간업자의 수익부문까지 부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도로를 생업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인데 고속도로도 아닌 지방도로까지 통행료를 받는 것은 탄력성을 잃어버린 정책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국가가 마땅히 갖춰 놓아야할 기반시설을 국민에게 부담시키려는 경기도 당국의 계획은 백지화하는 게 타당함을 강조해둔다.

어패류 환경호르몬 놔둘건가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굴 홍합 등 어패류가 선박 페인트용으로 쓰이는 환경호르몬인 유기주석화합물(TBT)에 오염됐다는 조사보고는 충격적이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간 구리 안산 수원 안양 등 도내 4개 농수산물시장에서 굴(34건) 홍합(24건)을 수거 조사한 결과 모든 시료에서 인체에 유해한 TBT가 검출됐고 TBT의 분해물질인 DBT도 17건 검출돼 환경호르몬에 대한 감시 및 대책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조사결과를 보면 굴에서는 모두 TBT가 0.4∼0.01㎍/g 검출됐다. 또 홍합에서도 모두 0.2∼0.01㎍/g의 TBT가 검출됐고 DBT는 6건에서 0.049∼0.009㎍/g 검출됐다.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불리는 환경호르몬 TBT가 어패류에 미치는 영향은 해수중 농도가 0.2 이상일때 암컷에서 수컷의 생식기가 자라는 암수교란현상이 나타나고 성장이 느려지며 종내는 폐사하게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더욱 놀랍고 무서운 것은 TBT가 사람의 정자 수를 줄이고 성장억제·생식이상·면역력 저하 등을 초래하는 독성물질로 학계에 보고돼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환경호르몬이 지속적으로 체내에 축적될 경우 생명체의 종(種)을 절멸시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와 있을 정도다. 이처럼 무서운 환경호르몬에 오염된 어패류가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데도 정작 정부당국의 대응자세가 소극적인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염된 어패류의 폐기처분은 물론 해수의 오염원 제거등 방지대책을 당장 세워야 함에도 당국이 속수무책으로 있으니 소비자들로서는 답답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시중 어패류가 TBT에 심각하게 오염된 것은 국내 선박업체들이 미·영·캐나다 등 외국에선 이미 사용 금지된 유기주석 함유의 선박 방오제(防汚劑)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TBT함유 선박 방오제의 경우 우리는 엄격한 사용규제 장치가 없음은 물론 TBT의 권장기준도 아직 없는 상황이니 한심한 일이다. 당국은 당장 환경호르몬에 대한 감시 및 대책마련에 나서야 한다. 환경호르몬 분야에 대한 연구나 이해가 선진국에 비해 원시적인 수준에 있는 상황에서 취하고 있는 당국의 이같은 소극성은 책임있는 정부의 취할 태도가 아니다. 하루속히 국가차원에서 선진국의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오염유발 물질 사용을 엄격히 규제하는 등 종합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전철칸에서

서울시청앞 역이던가, 30대 후반의 주부가 여남은살 되는 딸아이하고 수원행 전철을 탔다. 공교롭게 서울역에서 탄 비슷한 또래의 주부가 우연히 만난 친구인듯 싶었다. 두 주부는 손잡이를 잡고 선채 그간의 소식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정겹게 나눴다. 딸아이가 이리저리 사람들 틈에 시달리는 것을 딱하게 여긴 앞 좌석의 승객이 비좁긴 하나 틈을 내어 앉도록 권했다. 그 아이는 수줍음을 타며 사양하고 아이 어머니는 그래도 고맙다는 목례를 고개숙여 해보였다. 좌석을 양보하는 일도 좀처럼 없고 또 양보해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기가 예사인터에 아이가 앉지도 않은 ‘틈새좌석’ 권유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것이 무척 대견해 보였다. 친구인듯 하는 주부가 지갑을 열더니 만원짜리 두장을 성큼 꺼내어 친구 딸아이에게 주려하자 “아이, 됐어” “왜그래…”하고 승강이가 한참 벌어졌다. 결과는 마음만 받고 돈은 돌려주는 것으로 끝났다. 안양역에 이르러 좌석하나가 비어 딸아이가 앉았고 금정역에선가는 친구가 내리고 좌석이 또 비게 되어 모녀가 비로소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은 그 다음에 있었다. 딸아이가 과자를 꺼내자 그 어머니는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었다. 옆좌석승객은 뭘까하고 조금 궁금해했다. 아! 그것은 비닐봉지였다. 봉지엔 벌써 휴지조각이며 과자봉지 부스러기가 들어 있었다. 이미 길거리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다는 생각에서 자신도 가끔은 버리곤했던 승객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남은 버려도 나는 안버린다는 그 주부의 성숙된 시민의식이 무척 놀라웠다. 아이 어머니는 화서역에 이르도록 딸이 과자를 먹으면서 버리는 부스러기며 종이를 담도록 아이앞에 비닐봉지를 벌인채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비닐봉지를 다시 둘둘말아 핸드백속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여행중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담아 집에 가져가 버리는 무명의 그 주부는 정말 훌륭한 시민이다. 그만하면 아이에 대한 가정교육도 가히 모범적이다. 이윽고 수원역에 닿아 쏟아져 나온 승객들틈에 섞여 모녀는 사라졌지만 그런 사람이 같은 지역사회에 산다는 생각이 자랑스러웠다. 전철칸에서 굶은 담배를 플랫폼에서부터 피워댄 지지대子는 차마 다 피운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릴수가 없었다. /白山

우려되는 ‘ 경비업체 총기허용 ’

오는 6월 중순부터 민간경비업체의 경비원이 총기를 휴대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총기휴대 조건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고는 하지만 시기상조라는 우려감이 먼저 앞선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가 지난 23일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경비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항과 핵발전소, 전력시설 등 국가중요시설 경비를 담당하는 특수경비원에 한해 무기 휴대 및 사용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경비업법 개정안은 공포 3개월후부터 발효되도록 경과규정을 둬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 불안스럽기까지 하다. 현재는 특수경비원으로 한정했지만 장기적으로 여타 민간경비원으로의 총기보유 확산과 총기사고 가능성이 높을 게 염려되기 때문이다. 민간인 총기보유가 과연 타당한가도 문제점이다.민간업체 특수경비원에게 총기 휴대 및 사용권을 허가하는 것 자체가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만일 자질에 문제가 있는 부실 경비업체가 선정될 경우 총기 남용 및 유출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1월 조직폭력배들이 위장 경비회사를 차려놓고 주변 노점상들을 상대로 금품을 갈취해오다 검거되는 등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경비업체의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지난 24일 현재 전국의 민간경비업체는 총 1천838개로 경비직원 수만 8만1천819명에 이른다. 앞으로는 더욱 증가할 게 분명하다. 경찰을 비롯한 경비업법 개정안 찬성론자들은 총기 사용 경비원에 대한 자격요건과 오·남용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했다고 강조하고 있다.그러나 총기사고가 교육과 자격요건 강화 등으로 방지된다면 현직 경찰관의 총기사고는 왜 발생하는가. 무기관리를 엄격히 하는 군대나 경찰에서도 종종 무기 탈취나 도난 등의 사고가 발생하는 상황에 민간 경비업체의 총기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이 법안이 국회본회의에서 통과된다 하더라도 정부는 적절한 후속조치를 취해야 한다. ‘범죄예방이 범죄발생’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특별대책을 수립, 불안요소를 최소화해야할 것이다.

日 역사교과서 왜곡

‘주권침해’3·1운동과 의병봉기 등 조선의 독립운동이 지속됐다는 종전의 일본중학교 역사교과서의 일제강점대목이 ‘당시 국제사회가 승인했으며 일본에 이익된 것만은 아니다’라고 바뀐다. 전쟁터에 강제송환된 종군위안부가 다수였다는 이 대목은 아예 삭제해 언급을 피했다. 종전엔 침략으로 시인했던 일본의 만주 침략을 ‘경제적 이유의 진출’로 아시아침략 또한 ‘진출’ 또는 ‘지배’라고 표현, 침략이란 용어를 삭제했다. 20만명이상의 희생자를 낸 일본군의 중국 난징(東京) 대학살은 그냥 ‘난징사건’으로 의미를 축소하였다. 2차세계대전 또는 태평양전쟁이라고 하는 것을 황국식민사관인 대동아전쟁으로 명칭을 복귀했다. 이밖에도 허다한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본사회의 우경화 경향만은 아닌 자민당 정권 역시 정서를 같이하고 있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이에 적극 대응하기로 한 정부방침이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가운데 중국의 입장표명에 주목할 만한 일본측 반응이 나왔다. 중국 정부가 ‘일본 우익이 만든 역사교과서의 검정통과가 있어선 안된다’고 한 반대의사 천명을 일본이 주권침해를 들어 반박한 것은 크게 주목할 대목이다. 오쿠노 세이스키 전 법무상은 자민당 총무회에서 ‘중국이 정치적 압력을 걸어오는 주권침해에 확실히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오쿠노의 그같은 발언이야말로 망발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여 인접국가에 부당한 인식을 전이케하는 자기네들 처사의 그 자체가 주권침해이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역사기술에 천부당 만부당한 주권침해를 해놓고 이의 시정요구를 되레 주권침해라고 말하는 것은 일본이 패권주의에 얼마나 들떠있는가를 보여준다. 대체로 사무라이정신을 국민정신의 긍지로 아는 것이 일본사회다. 그리고 그들의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은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던 것이었다. 20세기초 꿈꾼 그같은 미몽이 결국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에 심대한 손실을 끼치고도 21세기 들어서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 및 대륙침략의 상흔이 아직껏 남아 있고 생생한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직도 살아 있는 마당에 일제강점은 일본이익만이 아니라는 궤변은 당치 않다.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본역사뿐만이 아닌 아시아 역사의 왜곡이다. 정부의 이에 대한 대처가 지연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역사기술의 주권침해로 규정, 마땅히 시정조치가 있도록 하는 응분의 외교적 노력이 시급히 요구된다. 중국 등과 연대하는 것도 검토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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