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는 없는 게 있다. 절기가 그렇다. 태양의 황도상 위치에 따라 계절적으로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다. 황도에서 춘분점을 기점으로 15도 간격으로 점을 찍어 모두 24개로 나뉜다. 아주 오래된 동양의 우주과학이다. 3월5일은 얼음이 깨지는 소리에 놀라 개구리들도 뛰쳐나온다는 경칩(驚蟄)이다.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의 절기다. 한자로도 겨울잠 ‘칩(蟄)’에 놀랄 ‘경(驚)’이다. 삼라만상이 소생하는 시기다. 이맘때면 농민들은 선농제(先農祭)를 지내면서 차분하게 봄을 맞이하고 농사를 준비한다. 둑제(纛祭)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군령권을 상징하는 둑(纛)에 지내는 제사다. 보리싹점도 있다. 들녘에서 자라고 있는 보리 싹의 성장 상태로 그해 풍흉을 예측하는 농점(農占)이다. 보리의 싹이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내고 생기 있게 잘 자라고 있으면 풍년이 들고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믿었다. 개구리점은 어떨까. 울기는 하겠지만 울지 못하면 논에선 좋은 벼를 거둘 수 있다. 개구리가 울부짖으면 논에서 모내기 상앗대를 끌어당기기 좋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서서 들으면 그해는 일이 많아 바쁘다. 누워 들으면 편안하게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봄은 영어로 스프링(Spring)이다. 용수철도 철자는 같다. 봄과 스프링, 두 단어 모두 솟아 오른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봄은 솟아 오르는 계절이다. 이 계절에 솟아 오르는 대표적인 건 새싹이다. 봄이 오면 땅속에 있던 씨앗들이 발아해 땅을 뚫고 올라온다. 새싹이 올라오는 건 봄의 전령사여서다. 쑥도, 냉이도 한 뼘씩 웃자란다. 둔덕과 야산 등지에서 쑥과 냉이 등도 캘 수 있다. 소생의 계절을 맞아 우리의 믿음도 새싹과 같이 솟아 올라야겠다. 경칩이다. 어깨를 활짝 펴고 솟아오르는 계절을 맞이하자.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최근 아역 출신 여성 배우가 유명을 달리했다. 그를 사망하게 한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악플. 연예계 악플 잔혹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가수 설리 죽음 이후 비극의 사슬을 끊기 위해 20대 국회에서는 소위 ‘설리법’(악플 방지 법안)이 우후죽순 쏟아졌지만 현재까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이젠 일반인도 악플의 표적이 돼 고통받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2월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 유족들에 대한 비난과 조롱이 온라인상에 퍼졌다. 악플은 꼭 인터넷상에 남기는 독화살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며 타인으로부터 근거 없는 평가와 조롱을 하기도, 받기도 한다. 과거 한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서 직장인 33%가 사내 루머에 휩싸였다는 여론 결과도 발표됐다. 언론사의 생태계를 예로 들자면 ‘A기자가 과거에 무슨 일을 했다더라’ , ‘B경찰 사생활에 대해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라’ 등 동료 혹은 기관 직원들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된 확인 절차 없이 ‘정보보고’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남아 있다. 날조된 정보로 인한 구설수에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처지나 상황에 있더라도 초연함을 유지하라는 명언이 있다.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이 되어라’, ‘바다는 소낙비에 젖지 않는다’. 범부중생(凡夫衆生)이 듣기에는 너무나 거창한 문구다. 최근 유튜브를 즐겨 보고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본 한 채널에서 진행자가 악플에 힘들어하는 게스트에게 자신이 본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며 건넨 위로의 말이 생각난다. ‘떨어진 화살을 굳이 집어 들어 내 가슴에 꽂지 마라.’ 진실에 닿지도 않는, 숨어서 하는 말에 자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얼마 전 캡틴 아메리카가 구속됐다. 사실은 미국 마블의 인기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복장을 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 얘기다. 주한 중국대사관과 경찰서 난입을 시도한 혐의로 구속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심지어 이 남성은 미국 중앙정보국(CIA) 블랙요원이자 미군 예비역이라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으며 미국으로 출국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조기를 온 몸에 두른 듯한 ‘코스튬플레이’는 미국도, 한국도 품지 못한 허황된 몸짓으로 남았다. 세계인의 영웅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와 전혀 동떨어진, 경찰 수사까지 받는 피의자 신세가 됐다. 최근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는 캡틴 아메리카의 동료인 ‘팔콘’ 샘 윌슨이 겪는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무게감과 분투를 담았다. 미국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은 캡틴 아메리카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탄생했으며 평범한 인물이 초인적 힘을 갖고 특별한 방패를 들고 적에 맞서는 모습을 수십년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을 상징하지만 세계의 평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상징의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자국 중심주의 관세 정책과 비교하면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결국 캡틴 ‘아메리카’는 지금 인접국이나 다른 여러 나라에도 불안감을 가져다 주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세전쟁에서 결코 예외는 아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변론 종결이 25일 있었다. 12·3 계엄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한 여러 절차를 거치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면서 한때 반미 감정도 있었던 만큼 숙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2011년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영화의 국내 제목이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부제였던 ‘퍼스트 어벤저’인 걸 봐도 당시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보수집회에서는 꾸준히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펄럭인다. 캡틴 아메리카까지 등장해 난동을 부렸다. 다시 한번 미국과 한국에 대한 묘한 괴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정부효율부라는 정부 부처가 있다. 미국 얘기다. 영어로는 ‘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라고 쓴다. 약자로 DOGE라고 불린다. 좀 더 들여다보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명칭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공동 수장을 맡고 있다. 공식 정부 부처는 아니고 의회 승인이 필요한 상황이다. 머스크는 이 부처 운영을 통해 미국 연방 예산을 2조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체이스 최고경영자 또한 이 구상을 거들었다. 이 부처의 약자인 DOGE는 도지라는 인터넷 밈과 머스크가 이전에 관련됐던 암호화폐인 도지코인을 모두 가리키는 번역어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를 공동 수장직에 앉혔다. 부처의 형태는 의회의 법안을 통해 창설되는 연방 부처가 아니라 관리예산국과 긴밀히 협력하는 대통령 위원회의 구성 요소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런 가운데 해당 부처를 놓고 미국 공직사회가 떠들썩하다. 난데없는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있어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폭풍 같은 한 달이 지나갔다. 월권 논란도 나온다. 언론은 ‘몰아치듯 인력·예산 곳곳 칼질’이라는 헤드라인을 달았다. 그 중심에 머스크가 있다. 미국 연방정부 지출의 대대적인 삭감 임무를 맡은 DOGE는 불과 한 달 새 다수의 정부 기관을 돌면서 조직을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정리해고 칼바람을 일으켰다. 이에 트럼프 지지 진영에선 정부 기관의 방만한 운영을 효율화하고 예산을 성공적으로 절감하고 있다는 찬사가 나왔다. 하지만 DOGE가 지나친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일자리를 잃은 공무원들을 비롯해 반대 진영의 반발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정부효율부로 대표되는 미국의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메시지가 제법 묵직하다.
타다 남은 연료 찌꺼기 더미가 수두룩하다. 그 속에 방치돼 있는 건물의 잔해가 스산하기 그지없다. 폭격을 맞은 듯 전봇대가 길가에 쓰러져 있다. 러스트벨트(Rust Belt)로 불리는 쇠락한 산업단지의 모습이다. 독일 연방의회 총선에서 극우 독일대안당(AfD)의 돌풍 원인이 러스트벨트의 민심 변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독일대안당은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옛 동독에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서부 독일 러스트벨트를 중심으로 지지율이 올라가 원내 제2당의 위치에 올랐다. 해당 정당의 정치적 기반이 동독 바깥으로 확장된 대표적인 곳으로 뒤스부르크가 있다. 독일 러스트벨트를 대표하는 도시다. 라인강과 루르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항만을 배경으로 예전부터 철강산업이 발전했다. 2000년에는 독일 전체 금속의 49%가 이곳에서 생산됐다. 철강산업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도 많이 거주해 한때는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다. 이런 가운데 철강산업이 쇠퇴하면서 뒤스부르크의 정치적 풍향도도 급변했다. 1970년대 뒤스부르크 인구는 60만명이었지만 일자리가 감소한 탓에 현재 50만명으로 줄었다. 가장 크게 바뀐 건 이민자에 대한 태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튀르키예와 이탈리아 출신 근로자들을 수용하면서 이민자를 환영했다. 이민자의 노동력을 ‘라인강의 기적’을 일군 원동력으로 삼았다. 하지만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10년 전부터 중동 난민을 대거 수용하면서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확 바뀌었다. 노동으로 돈을 벌기 위한 이민자가 아니라 난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받기 위해 독일에 왔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유럽연합(EU) 난민협정을 거부하고 난민을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독일대안당 지지율을 올린 밑거름이 됐다. 정치는 결국 돌고 돌기 마련이다. 이 같은 열풍이 비단 독일이라는 먼 나라만의 얘기일까.
올해 태어나는 아이들은 ‘베타(β)세대’로 불린다. 2010년 이후 태어난 ‘알파(α)세대’의 다음 세대로 호주의 미래학자 마크 매크린들이 제안한 개념이다. MZ세대의 자녀들이며 2025년부터 2039년까지 약 15년간 태어날 아이들이다. 베타세대는 이전 세대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다. 기성 세대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자랐다면 이들은 인공지능(AI)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에 태어난다. 이를 예고하듯 올해 초 등장한 ‘딥시크 R1’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기존 생성형 AI 시장을 위협하며 기술 혁신의 속도를 가속화했다. 이어 생성형 AI 분야의 선두 주자인 오픈AI는 이달 초 ‘딥리서치’를 공개해 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해당 기술을 사용한 연구자들은 대학원생이 몇 달에 걸쳐 수행할 작업을 단 몇 시간, 심지어 몇 분 만에 해결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변화는 불과 3년 전인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 이후 AI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한 결과다. 베타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이 같은 AI 기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활용할 것이다. 유아기에 새로운 지식을 익히는 과정은 성인이 돼 배우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베타세대는 마치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AI를 빠르게 내재화할 것으로 보인다. AI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메타버스, 양자컴퓨터 등 미래 기술이 융합된 환경 속에서 성장할 것이다. AI와 협력하며 학습하고 창작하며 심지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혁신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다. 베타세대는 인류가 가진 문제에 해답을 제시할 잠재력을 갖춘 세대가 될 수 있다. 최근 글로벌 AI 업계는 미국이 선두 주자이고 이를 중국이 바짝 뒤쫓는 형국이다. 캐나다, 네덜란드, 이스라엘 등도 집중 투자를 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한국은 지난해 9월 발표된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조사 대상 83개국 중 6위로 올랐지만 강대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격차를 줄이기 위해 빠른 국회 입법, 빅테크 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 국내 유치 등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우리는 준비와 지원을 통해 다가오는 베타세대를 맞이해야 한다. 아이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동구 밖에 작은 대장간이 있었다. 그곳에선 대장장이가 쇠를 두들기고 있었다. 엄동설한인데도 그의 이마에는 연신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텅텅’ 하는 둔음이 온 동네에 울렸다. 남해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양식장은 또 다른 경이로움이었다. 넘실거리는 바닷물 사이로 파릇파릇한 김 등이 자라고 있어서다. 그곳에서 생명의 소중함도 느꼈다. 들녘에서 허리를 구부린 채 호미질 하시던 외할머니 모습도 새삼스러웠다. 그 광경 자체가 근면과 성실이었다. 가끔 한 번씩 허리를 펴고 하늘을 올려다보시던 눈매가 애잔했다. 이런 가운데 쇠를 뜨겁게 달궈 도구를 만드는 대장장과 ‘밥도둑’인 김을 양식하는 어업활동, 무릎걸음으로 이뤄지던 호미문화 등이 국가무형유산으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진행 중이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대상은 이외에도 선화(禪畵), 해조류 채취와 전통어촌공동체, 덕장과 건조기술, 마을숲과 전통지식, 전통관개 지식과 문화 등 9종이 포함됐다. 대장장은 전통 철물 제작 기술을 보유·전승하는 장인이나 그런 기술 등을 일컫는다. 충남에선 이미 산업화로 갈수록 사라져가는 야장기술의 맥을 100년 넘게 이어온 당진 대장장 가치를 인정해 무형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다. 2016년이었다. 양식하는 어업활동은 우리나라 바다의 조석 간만 차에 대한 깨우침이다. 해안가 주민의 생업·문화 등 일상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주는 영역이다. 호미문화는 전통 농기구인 호미의 역사, 사용 방식 등을 아우른다. 마을숲과 전통지식 등은 마을 공동체의 주요 공간인 숲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보여주는 무형유산이다. 국가유산청은 공동체 전승 종목을 위주로 국가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보유자나 보유 단체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대해 더욱 꼼꼼히 살펴볼 계획이다. 문화는 우리의 국력을 키우는 근육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지구촌을 지켜온 건 이 같은 문화의 집합체인 문명이다.
지구가 멸망하기까지 단 89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경고가 나왔다. 핵무기 및 인공지능(AI) 위험으로 역대 최근접이라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물론 상징적인 메시지이겠지만 등골이 오싹해진다. 외신에 따르면 지구촌 핵전문가들의 모임인 핵과학자회는 최근 이 같은 수치를 알려주는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를 발표했다. 이 시계를 보면 정확하게 초침이 자정 89초 전으로 맞춰졌다. 지난해 90초 전에서 1초 당겨졌다. 이 단체가 이 같은 수치를 발표하는 건 1947년부터다. 인류가 핵전쟁, 기후변화, 생물학적 위협, AI 등 신기술로 멸망할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이 시계는 자정을 지구가 멸망하는 시점으로 설정하고 자정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하는데 이번에 발표한 89초는 1947년 이래 가장 짧다. 핵과학자회는 이처럼 시간을 앞당긴 이유로 핵전쟁 위험 증대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가 미국과 체결한 신전략 무기감축조약(New START) 이행을 중단하고, 중국은 핵무기를 빠르게 늘리고 있으며, 미국도 핵무기 확대로 기울고 있다. AI를 무기에 접목하려는 시도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기후변화 대응정책 우선순위 하향 조정 등도 원인으로 꼽았다. 첫 지구 종말 시계에선 7분이 남았다고 발표했었다. 하지만 옛 소련이 핵폭탄 실험에 처음 성공한 1949년에는 3분 전으로 조정됐다. 인류가 멸망에서 가장 안전했던 시기는 미국과 옛 소련이 전략핵무기 감축에 합의한 1991년이었다. 당시 시간은 자정 17분 전이었다. 2020년 이후 100초 전으로 유지해 오다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진 점을 반영해 90초로 당겨졌다. 인류 공멸 예방을 위한 명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소중한 행성인 지구를 사랑해야 하는 까닭들이 차고 넘쳐서다.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가장 먼저, 자주 만나는 것 중 하나가 키오스크다. 우리말로 가장 유사한 걸 찾아보면 ‘무인 주문 기계’ 정도가 될 것 같다. 무인, 단어 자체에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는 이 기계는 이상하리만큼 사람을 위축시킨다. 멀쩡히 잘 보이던 단어가 안 보이기도 하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쓰는 게 익숙한 필자에게도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초조함을 준다. 이런 감정은 어르신들일수록 더할 것이다. 오죽하면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하지 못해 햄버거 하나 사 먹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사연이 온라인을 달궜을까. 이런 글을 볼 때면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식사 후면 티타임이 일상인 분들인데, 그렇지 않아도 블렌디드에 프라푸치노 같은 어려운 말들 속에서 무인 주문 기계까지 만나 초조함을 느끼다 발길을 돌릴까 하는 걱정이다. 그러다 얼마 전 우연히 이런 장면을 봤다. 어르신 네 분이 카페에 설치된 키오스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초조해 하고 계셨고 점원들은 음료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그분들 바로 뒤에 선 한 학생이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하며 싱긋 웃었다. 그제야 어르신들의 얼굴에도 안도감 섞인 웃음이 번졌다. 상당한 시간을 기다렸음에도 줄을 선 이들 중 누구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무인 기계에 인정이 피어난 것이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도 우리 앞에서 초조해할 어르신들이 단단하게 이 땅을 지켜 왔기에 새로운 문화라는 이름의 혜택을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바라본다. “괜찮으시면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저도 아직 어려워요”라며 웃어줄 수 있는 인정이 모든 키오스크에서 피어나길.
갑자기 문이 ‘쾅’ 하고 닫히면 난감하다. 이를 막아 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손가락이 끼이거나 다치는 것도 예방해준다. 어린이나 반려동물이 많은 가정 및 사무실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단,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설치가 금지됐다. 도어스토퍼가 그렇다. 생김새가 어떤 동물의 신체 부위에 거는 장치를 닮았다는 이유로 말발굽이라고도 불린다. 종류는 다양하지만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타입과 금속 등으로 만들어진 타입이 대표적이다. 실리콘 도어스토퍼는 문 사이에 끼우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다.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인테리어와 잘 어울린다. 반면에 금속 제품은 문을 열 때 필요한 힘을 줄여줘 노약자에게 유용하다. 이런 가운데 이 장치가 화재 발생 시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즘 상당수 아파트에는 현관문에 설치됐지만 불이 나면 이 장치로 문이 저절로 닫힐 수 없어서다. 경기도내 아파트와 상가 등 방화문에 도어스토퍼가 불법 설치(경기일보 17일자 6면)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2~2024년) 도어스토퍼 등 도내 방화문 훼손·변경행위 신고는 5천614건으로 집계됐다. 화재 시 유독가스를 막아 주고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방화문이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도어스토퍼가 원인이다. 내부에서 계단실로 통하는 출입문 또는 방화구획으로 사용하는 방화문은 언제나 닫힌 상태거나 자동적으로 닫혀야 한다. 방화문에 도어스토퍼 등을 부착하는 등 방화문 변경행위가 적발되면 1차 100만원, 2차 200만원, 3차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방화문에 대한 위법행위 조치는 소방당국이 담당하지만 아파트 등은 단속권한이 없어 강제 철거도 어렵다. 도어스토퍼가 화재 발생 시 안전을 위협한다. 화재가 잦은 요즘이다. 조금의 불편은 감수하더라도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다 안전의식까지 멈춰 버릴까 걱정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위법을 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량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윤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법적인 처벌을 받을 일을 하지 않기에 법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이 살아가면서 과연 법 없이도 살 수 있을까마는 그만큼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사는 사람들은 많다. ‘법(法)’은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정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적 규범 또는 관습을 말한다.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는 말처럼 인간의 사회생활 보장과 질서의 규범이 곧 법이다.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세분화된 다양한 법이 존재하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준법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많은 법을 이해하고 지키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힘든 사법고시를 패스해 법조인이 된 사람들은 수 많은 법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법조인들도 과거의 판례와 법전을 들여다보며 적법과 위법을 따지고 논쟁하는 것을 흔히 접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명확한 법리적 해석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다르고 법리적인 논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12·3 계엄과 그로 인한 대통령 탄핵소추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탄핵심판을 둘러싼 국론 분열을 보면서 사건의 진실과 법의 정의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탄핵심판과 방송 프로그램에서의 법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국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법,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키기로 약속한 최소한의 양심이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법을 몰라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법은 꼭 필요하지만 법조인들이나 정치인들의 ‘언어 유희’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법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 국민들이 살아가는 울타리가 돼 주는 장치가 될 때 법치국가의 위상은 바로 설 것이다.
위험하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보행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전동킥보드로 대표 되는 개인형 이동장치(PM) 얘기다. 이와 관련된 교통사고의 35%를 무면허 운전자가 일으킨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다. 최근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이 발간한 학술지 ‘교통안전연구’에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논문이 게재됐다. 연구팀은 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을 활용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발생한 PM 사고 관련 5천900여건의 데이터를 수집, 이 중 사고자 연령대가 확인된 5천860건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20세 미만이 32.4%로 가장 많았고 20대 32.1%, 30대 14.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은 5.5%에 그쳤다. PM은 원동기 장치 자전거(16세 이상 취득 가능) 이상의 면허가 있어야 운전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고의 34.6%(2천27건)는 면허를 취득하지 않은 이들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무면허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20세 미만이 67.6%, 20대 18.6% 등이었다. 연구팀은 “운전면허 취득을 유도해 적극적으로 운전자를 관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근 1년간 PM 이용 경험이 있는 20세 이상 운전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용규칙에 대한 인지율과 준수율 등에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준수율은 대부분 인지율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PM을 탈 수 있는 도로를 다니고 안전모를 착용한 채 운전하는 경우는 26.0%였고 승차 정원과 음주운전 금지 규칙을 준수하는 비율은 각각 77.0%, 82.0%인 것으로 나타났다. PM 관련 안전교육이 시급하다. 단속 강화를 통해 음주운전, 동승자 탑승 등 PM 운전자의 법규 위반도 적극 관리해야 한다. PM 관련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면 언제 대형 사고로 이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뤼순(旅順)을 국제무역항구로 개방해 일본과 청나라와 조선 등 세 나라가 공동으로 참가하는 평화회를 조직하자. 이들 세 나라는 공동의 군대를 창설해 동북아시아에서 어떠한 전쟁도 막아야 한다. 재무적으로도 공동 출자해 은행을 설립하고 경제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동양평화론’이다. 구애받지 않고 당당한 의견 제시가 늠름했다. 이 같은 주장을 펼친 이는 학자가 아니라 30대 초반의 조선의 젊은이, 안중근 의사였다. 그것도 대학의 연구실이 아니라 북풍한설이 몰아치던 차디찬 북방의 감옥에서였다. 평생을 독립투쟁에 매진했고 중국 하얼빈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1910년 2월14일을 기억해야 한다. 안중근 의사에게 일본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 날이어서다. 42일이 지난 같은 해 3월16일 형이 집행돼 세상을 떴다. 중요한 건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아직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20여년 전 중국 뤼순 감옥터를 찾은 적이 있었다. 그날도 요즘처럼 뺨에 엉겨 붙는 겨울바람이 면도날보다 날카로웠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재판이 진행된 법정과 형이 집행된 공간이 을씨년스러웠다. 뒷마당에는 당시 처형된 이들의 유해가 버려졌던 동산이 쓸쓸했다. 기억은 늘 이 순간에서 머물고 있다. 뜬금없겠지만 일본의 제과회사가 마케팅 전략으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을 밸런타인데이로 만들었다. 1980년 중반부터였다. 그리고 해마다 2월14일이면 젊은이들이 초콜릿을 주고받는다. 원래 밸런타인데이의 유래는 269년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결혼은 황제의 허락 아래 할 수 있었다. 밸런타인은 서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을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을 시켜준 죄로 순교한 사제의 이름이다. 서양에선 그가 순교한 뒤 이날을 축일로 정하고 해마다 애인들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이날 연인에게 초콜릿을 선물하기 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순국한 선열들을 먼저 기려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어서다.
인천이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조기 대선의 가능성이 생기면서, 인천에서 여야 정치권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주목받고 있는 인물은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다.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민주당의 대표적인 주자로 꼽히고 있는 탓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를 통해 인천에 둥지를 튼 이후 2024년 총선에서 당선, 인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한때 이 대표가 연고도 없는 인천에 온 것 자체로 논란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튼 이제는 인천의 국회의원임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인천 연수갑)도 주목받는 인물로 꼽힌다. 이 대표와 함께하는 만큼 대선 주자로 분류가 이뤄지진 않지만, 대통령 탄핵 정국을 이끌고 있는 데다 조기 대선에 이 대표가 출마하면 막중한 임무를 맡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반면 여당에서는 유정복 인천시장이 대선 주자의 잠룡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전국 시도지사협의회장을 맡아 지방분권형 개헌 등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강점인 ‘정책’을 부각시키고 있다. 재선 인천시장과 행정안전부(안전행정부) 장관 등을 거쳐 안정적인 행정가다운 모습과 함께 국회의원 3선의 정치 경험도 갖춘 점이 강점이다. 5선의 윤상현 국회의원(인천 동·미추홀을)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행동에 앞장서며 강경 보수층을 결집시켜 당 내부에서의 지지가 급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 때와 다르게 지지도의 확장성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인천은 2022년 보궐선거에서 이 대표의 등장, 그리고 2024년 이 대표와 원희룡 국토교통부 전 장관의 맞대결 등으로 뜨거워졌던 계양구. 이제는 선거로 인해 인천이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핫플레이스로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를 통해 그동안 정치의 변방으로 불리던 인천이 이제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지’로 우뚝 서길 바라본다.
맥켄지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6세 정도의 청년이었다. 영리해 보이고 용모가 단정한 한 청년은 아직도 한국 정규군의 구식 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군복 바지를 입었고 이들 중 두 사람은 흐느적거리는 낡아 빠진 한복차림이었다.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설마 이 사람들이 몇 주 동안이나 일본군에 항전할 것을 선언해 온 사람들이라니!’ 1907년 경기 양근군(현재 양평군) 인근에서 의병을 만난 종군기자 맥켄지는 1년 뒤 ‘대한제국의 비극’에 글로 옮겼다. “군인(의병)의 영롱한 눈초리와 얼굴에 감도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봤을 때 나는 확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의 동포들에게 애국심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가운데 우리가 이름을 아는 이들은 없다. 무명의 의병들은 나라를 뺏긴 역사와 맞서며 역사를 이어갔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다. 이처럼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나 기억되지 못한 한말 무명의병을 재조명하고 기념하는 작업이 경기도에서 시작됐다. 1895년 을미의병이 봉기된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전투가 시작된 경기도에서 나선 의미 있는 일이다.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12일부터 3주간 매주 수요일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를 주제로 역사문화강좌를 진행한다. 또 의병과 관련된 실태조사와 무명의병 기념을 위한 중장기 계획이 마련될 예정이다. 한 세대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은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윗세대에서 내려오는 기념을 통해 과거의 사건은 재생되고 현재를 성찰하게 한다. 기념은 과거를 현재화하는 힘이 있다. 반복된 기념은 전통이 돼 현재와 미래의 공동체에 정체성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한다. 광복 80주년과 을사의병 120주년, 을미의병 130주년을 맞은 올해다. 우리가 잊고 있던 이들의 희생과 숭고한 가치가 현재에 어떤 질문을 던질지, 어떤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먼저 한국어로 물었다. “동북공정이 정당한가”. 그랬더니 “주변 국가와의 역사적 해석 차이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런데 중국어로 질문하니 정반대의 대답이 나왔다. “중국 동북지역 활성화를 위한 정당한 이니셔티브. 중국 이익에 부합하다.” 김치 원산지를 한국어로 입력했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가 깃든 대표적인 음식”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영어로 물으면 “한국과 관련이 있음”이라며 답변이 모호했다. 중국어로 질문하면 “원산지는 한국이 아닌 중국”이라며 사실과 다른 정보를 내놓는다. 단오절이 어느 나라의 명절이냐는 질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로 물으면 “한국의 전통 명절”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중국어로 물으면 “중국의 전통 명절”이라며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국가정보원이 중국 기업이 출시한 생성형 AI(인공지능) ‘딥시크’에 중국어로 물었을 때 나온 결과라며 공개한 답변이다. 다만 국정원은 문제의 딥시크 질의응답 요약본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앞뒤 맥락이 담긴 원본은 공개하지 않았다. 생성형 AI는 질의와 응답 흐름에 따라 답변이 달라진다. 국정원은 딥시크의 편향적 답변, 또 과도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중국 정부가 언제든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보안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정보 유출 우려로 ‘딥시크 주의보’를 내리면서 이용자 수가 급감하고 있다. 전 세계 딥시크 웹사이트 방문자 수는 지난 5일 기준 2천944만명을 기록했다. 딥시크 방문자 수는 최신 AI 모델 공개 이후인 지난달 28일 4천900만명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각국이 사용 제한에 나서자 2천383만명으로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28일 19만1천556명에서 지난 4일 7만4천688명으로 급감했다. 중국의 우리의 역사 왜곡이 인공지능을 통해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남의 나라 일처럼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재선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슬로건이다. 알파벳 첫 글자를 따 ‘MAGA’로도 불린다. 이런 가운데 유럽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의 극우 성향 정당 지도자들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한자리에 모인다. 유럽의회 내 극우 성향 정치그룹인 ‘유럽을 위한 애국자’ 소속 정당 정치인들이 회합해 세 몰이에 나선다. 트럼프주의(트럼피즘)에 대한 열망을 드러내고 반(反) 유럽연합(EU) 노선을 중심으로 극우세력을 결집하기 위한 자리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주창하는 정치적 구호다. 트럼프 대통령의 ‘MAGA’를 그대로 본떠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세웠다. 이들 정치세력의 주축은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 프랑스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하원 원내대표,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인프라 교통부 장관, 네덜란드 자유당(PVV)의 헤이르트 빌더르스 대표 등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케빈 로버츠 회장도 주빈으로 초대됐다. 유럽의 극우세력이 트럼프 노선을 따라 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EU 체제에 반대하며 유럽의 정치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의도를 품고 있는 것으로도 분석된다. 이번 회의를 주도한 인물은 지난해 11월 ‘유럽을 위한 애국자’의 대표로 선출된 스페인 극우 정당 복스(VOX)의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다. 그는 스페인 내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하지만 지난달 20일 워싱턴DC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등 국제 무대에선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마드리드 회합도 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현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주의의 물결을 이용해 집권에 도전하려는 정치세력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극단주의 세력의 발호가 미국과 유럽만의 얘기는 아니다.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 할 역사적인 사건’. 당시 지구촌 언론들의 헤드라인이었다. 1960년 결성된 영국의 4인조 록밴드인 비틀스 얘기다.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리듬기타, 베이스기타, 키보드, 드럼 등이 이들이 갖춘 라인업이었다. 젊은이들의 열광은 대단했다. 세계 대중음악의 틀까지 바꿔서다. 4년 후에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까지 상륙했다. 이후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브리티시 록의 위대한 행진인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됐다. 1964년 2월7일. 이날은 이들이 미국의 심장인 존 F 케네디 공항에 처음 도착한 날이다. 이날 언론의 제목은 ‘버섯머리의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식민지를 되찾다’였다. 이날을 기점으로 음악적이나 문화적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 생각이 바뀌고, 음악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었다. 이 밴드의 미국 진출을 위해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4만달러를 들여 마케팅 캠페인을 펼쳤다. 당시 최고 인기를 끌었던 ‘에드 설리번 쇼’ 출연계약도 맺었다. ‘I Want To Hold Your Hand’는 빌보드 차트 첫 1위 곡에 제목을 올렸다. 미국에서만 500만장이 팔렸다. 당시 미국인들이 비틀스에 열광하게 된 배경은 명쾌했다. 1년 전 발생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온 나라가 침통해 있어서다. 비틀스의 공연은 미국의 흥분감과 가능성을 재점화시켰다. 10대들에게 혁명적 사회 변화에 길을 터 주는 계기도 제시했다. 기득권층은 반발했다. 특히 정부와 종교계의 반발이 심했다. 미국 이민귀화국은 비틀스의 미국 공연을 금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도는 모두 실패했고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심만 더욱 키우게 됐다. 여기에 잭슨빌 게이터볼 공연 당시 관중석 인종 분리도 깨부쉈다. 21세기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들의 행적을 되풀이하고 있다. BTS의 미국 진출은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버금가는 코리안 인베이전이다.
기나긴 설 명절이 시작되기 전날인 1월23일 영통구청을 찾았다. 영통구민이 구청장을 만나는 것은 당연지사겠지만 평소 좋아하는 구청장과 명절 인사도 나누고 식사도 할 겸해서 만든 기분 좋은 일정이었다. 식사를 마친 구청장의 손에 이끌려 구청사로 들어갔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가 구청사야, 갤러리야.” 말로만 듣고 처음 찾게 된 ‘갤러리영통’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구청장은 어느새 ‘도슨트(Docent·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로 변신했고 그 열정에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필자는 갤러리영통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행정기관에서 멋진 예술의 한 획을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설 명절의 시작을 갤러리영통과 함께했다. 이달 7일까지 열리는 ‘갤러리영통’ 특별기획전은 행정기관의 유쾌한 변신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2025년에 수원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의 생생한 기록물은 수원시민의 자부심을 높였다. 또 홍일화, 김환기, 이배 등 유명 작가 36명의 대표작품 64점은 이곳을 찾은 주민의 관심을 이끌어 내기에 충분했다. 특히 이곳에는 지난해 12월19~27일 관내 수원 매탄고 미술반 학생들의 열정을 담은 회화와 디자인, 공예 등 60여 점이 전시돼 지역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박사승 영통구청장은 “구민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릴 수 있게 돼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지역 문화 예술을 통해 일상 속에서 문화적 풍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지역 예술가들의 소통과 성장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행정기관도 이렇게 시민과 소통하기 위해 변모하는데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는 도대체 언제쯤 바뀔지. 갤러리영통이 주는 여운이 짙은 오늘이다.
설 연휴에 우울한 소식이 또 들려왔다. 일본 이야기다. 이 나라의 대법원 격인 최고재판소가 야스쿠니신사에 무단 합사된 한반도 출신 군인·군무원을 명부에서 빼달라는 유족들의 청구를 기각해서다. 최고재판소는 최근 한국인 합사자 유족 27명이 제기한 야스쿠니신사 합사 취소 소송에서 제척 기간인 20년이 지났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앞서 원고들은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 등을 대상으로 합사 철회, 손해 배상, 사죄문 게재, 유골 양도 등을 요구했다. 이들이 청구한 배상액은 단돈 1엔(약 9원)이었다. 그러나 최고재판소는 원고의 청구 중 야스쿠니신사에 합사자 정보를 제공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 여부에 관해서만 판단했다. 사안의 핵심인 정보 제공의 위법성이나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 등은 다루지 않았다. 양심이 있는 일본 언론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본질을 회피했다는 게 핵심이다. 야스쿠니신사 합사 철회를 원했던 한국인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 사법부에 대해 “‘시간의 벽’으로 도주했다”고 꼬집었다. ‘시간의 벽’은 최고재판소가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정 기간인 제척 기간을 주된 판결 근거로 제시한 것과 연관된 것으로 분석된다. 좀 더 들여다보자. “(한국인) 합사는 1959년 10월보다 이전이어서 이로부터 20년이 지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게 (판결) 이유였다. 합사와 관련해 (최고재판소가) 1심과 2심에선 초점을 맞추지 않았던 옛 민법의 제척 기간을 토대로 위헌 심사를 피한 듯하다.”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언론들은 일제가 전쟁을 벌일 때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가 사실상 국교였으나 전쟁이 끝난 뒤 제정된 헌법은 국가와 관련 기관에 ‘어떤 종교 활동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이 나라가 경제적으로는 윤택할 수 있어도 결코 문명국 지위에는 올라설 수 없는 까닭은 차고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