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 시장 미완의 도전... 진정성 정치의 싹은 틔웠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시정 일선으로 돌아왔다. 국민의힘 1차 경선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도전으로 인천 정치의 존재감을 전국 무대에 띄웠다. 그간에는 인천시장의 대선 도전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인천은 중앙정치의 종속 변수거나 캐스팅보트 정도였다. 인천에 대한 관심도나 도시 브랜드를 널리 각인시킨 성과도 따랐다. 유 시장은 지난 9일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앞에서 출마를 표했다. “정치꾼들의 야욕이 판치는 나라를 바로 세우려 나선다”고 했다. 조기 대선을 겨냥한 도전은 일찍부터 시작했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차원의 지방분권형 개헌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달엔 완결형의 헌법개정안을 공개했다.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도입이다. 양원제를 도입하되 상원은 지역 대표성으로 구성한다. 지방정부의 자치입법·자주재정권을 강화한다는 등이다. 그러나 중차대한 과제임에도 개헌론은 조기 대선 파도에 떠밀렸다. 유 시장은 지방분권형 개헌에 이어 국가적 정책 이슈 선점에 나섰다. 병력난에 대응하는 ‘모두 징병제’, ‘전역증 혜택’ 등이다. 인천에서 1차 성과를 거둔 인천형 저출생 정책들도 주목받았다. ‘천원주택’과 ‘아이플러스 1억 드림’ 등이다. 그 결과 정책 부재 국민의힘 경선에서 새 흐름을 이끌었다. 새로운 이슈들을 창출하고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경제 규모 2위 도시 인천의 성과들도 재평가됐다. 지역경제 성장률, 출생아 수 증가율 1위 등이다. 그러나 팬덤의 늪에 빠진 한국 정치 현실에서 역부족이었다.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더욱 그랬다. 오직 후보 인지도가 지지도로 이어지는 폐쇄적 구조다. 경선 후 유 시장이 소회를 밝혔다. “정치적 야망보다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한 책임감으로 이번 경선에 임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출마했다.” 국민의힘 1차 경선 직후 한덕수 권한대행이 인천을 찾았다. 도화동의 한 ‘천원주택’ 사업 현장을 살펴봤다. “인천 ‘천원주택’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 청년층 주거비 부담 경감에 노력해야 한다”는 멘트를 남겼다. 지금 정국에서 한 권한대행의 행보는 결코 가볍지 않다. 1차 경선을 통과한 국민의힘 후보들도 ‘유정복 끌어안기’에 나섰다. 김문수 후보도 최근 유 시장을 찾아 지지를 부탁했다. 단순한 정치적 손익 계산만은 아닐 것이다. 1차 경선이 끝나고 유 시장이 말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임했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말 그대로다. 미완의 도전이었지만 진정성 정치의 싹은 틔운 것으로 보인다.

[지지대] 대선 TMI

6·3 대선이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역대 대통령선거에 등장한 후보들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을 보면 2대 대선 당시 자유당 이승만 후보의 직업은 현 대통령이었다.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2년 수료한 조봉암 후보의 직업은 저술업이었다. 이들은 3대 대선에서도 나란히 후보로 올랐다. 6대 대선에서 박정희 후보도 대통령이 직업이었다. 나머지 5명의 후보는 무직이지만 경력은 4대 대통령(윤보선), 법무부 장관(김준연), 초대 사회부 장관(전진한) 등이었다. 사업가였던 45세의 김대중 후보는 7대 대선에 신민당 국회의원을 직업으로 삼아 5, 6대 대통령과 맞붙었다. 14대 대선에선 정치인(김영삼, 김대중, 박찬종)과 변호사(이병호), 학교법인 송죽학원 이사장(김옥선) 등이 출마했다. 정당 대표로 이름을 올린 정주영 후보는 현대그룹 창업주로 유명하다. 학력에서는 독학(백기완)도 눈에 띈다. 15대엔 노동자(권영길), 사회사업가(허경영), 목사(김한식) 등이 있었다. 16대에선 총 6명 중 4명(이회창, 이한동, 권영길, 김영규)이 서울대 출신이다. 여기에 노무현 후보까지 포함한 5인의 직업이 정당인이었다. 17대 대선 후보 10명의 직업은 모두 정치인(정당인,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절반이 서울대 학력을 갖고 있었지만 고려대 출신이 당선됐다. 18대 대선에는 청소노동자(김순자), 노동자(김소연), 무직(박종선)도 있었다. 19대 주요 후보들은 정치인이었고 법조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20대에는 허경영 후보가 강연업으로 다시 등장했고 결국 검찰 출신 정치인이 선출됐다. 대선 후보들의 직업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지만 당선자의 퇴임 후 운명은 비슷해지고 있다. 21대 대선 후보들은 역사에 남을 국민의 선택 앞에서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그려 나갈지 주목된다.

[문화산책] 이야기의 그림자, 역사를 덮다

“네 말도 옳고, 니 말도 옳다.”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 황희 정승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고려에 대한 충심으로 두문동에 은거하다 마지못해 출사하고 폐세자에 극렬히 반대해 왕의 미움을 사 유배를 떠나기도 했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뚝심을 배운다. 반면 세종 시절의 황금기를 함께 이끌어가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거주하며 청렴의 대명사가 됐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조선시대부터 황희는 관후하고 정대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이러한 설화들을 묶어 위인전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황희의 이미지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황희의 기사를 한 줄 한 줄 읽어가다 보면 신선 같은 현자라기보다 현실적이고 때로는 능구렁이 같은 기가 막힌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다. 왕자의난 때 중립을 지켰던 탓에 고려에 충성하며 은거했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으며 양녕의 폐세자를 반대해 귀양을 간 것이 아니라 그의 뇌물 수수 및 사사로운 처신을 문제 삼아 탄핵된 적이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자식과 사위의 사건 사고, 국유지를 개인 사유지처럼 행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물론 세종대왕의 국정파트너로서, 왕과 신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위도 불확실한 야사를 어느덧 진실처럼 믿게 됐고 도덕적인 완벽한 인간, 흠결 하나 없는 성역으로 자리 잡아 그 인물의 진가는 사라지고 왜곡만 남게 됐다.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냈다는 파주 반구정은 이러한 설화들이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꾸며져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승전보를 남긴 행주산성도 이와 마찬가지다.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왜군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각종 책이나 매체를 통해 역사적 사실처럼 알려졌다. 각종 기록을 찾아봐도 이 같은 내용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전 기록부터 ‘행주치마’가 이미 존재했고 당시 행주산성은 민간인이 흩어진 터라 민간인을 동원할 여유조차 없었다 전한다. 행주대첩의 일등공신은 치마가 아니라 조선의 발달된 화포 덕분이다. 이 덕분에 최근 행주산성을 방문하면 행주치마에 관한 설화를 안내판이나 설명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예는 전국 각지에서 만날 수 있다. 김포 애기봉처럼 지명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케이스도 있다. 강만 건너면 북한이 바라 보이는 이곳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평안감사와 애기라는 기생의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녀의 한(恨)과 실향민의 마음과 같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는데 실제로 평안감사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고 애기(愛妓)라는 명칭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생성된 것이다. 그 이름 자체가 워낙 유명해져 불리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김포시는 애기봉 설화를 바탕으로 뮤지컬까지 제작하고 있다. 음식의 간이 심심할 때 양념을 치거나 열을 가해 그 맛을 올리기도 한다. 역사를 어려워하거나 낯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첨가하면 사람들의 흥미도 얻고 호응도 받게 되니 이만한 유혹이 어디 있겠는가. 검증되지 않은 설화들을 사실처럼 들이밀었을 때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객관적 사실과 허구가 섞이면서 역사 인식이 흐려지게 되고 ‘재미’와 ‘감성’만 추구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민족주의나 영웅주의에 경도돼 세상을 단순히 흑백논리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정확한 논리와 사고를 지닌 이야기로 거듭나길 바란다.

[천자춘추] 시간이 멈춘 기업, 후계가 없는 시대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2022년 기준 국내 중소 제조업 대표의 평균 연령은 55.3세이며 60세 이상 비율도 33.5%에 달한다. 특히 업력 30년 이상 기업 중 60세 이상 대표자의 비율은 무려 80%를 넘는다. 문제는 이들 기업의 다수가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미 이러한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다. 매년 수만개의 기업이 후계자 부재로 폐업하고 수십만명의 고용이 사라지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25년까지 후계자 미승계로 인해 약 650만명의 일자리와 22조엔(약 220조원)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기업의 폐업은 단순한 노후 문제가 아니라 지역경제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같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 ‘니혼 M&A 센터’를 중심으로 중소기업의 승계형 인수합병(M&A)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 기관은 연간 1천건 이상의 거래를 성사시키며 후계자 부재로 인한 기업 폐업을 줄이고 고용과 기술의 단절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우리도 같은 길을 밟을 수 있다. 중소기업이 사라지면 고용이 줄고, 청년이 떠나며, 지역은 쇠퇴한다. 기술 단절, 산업 공백, 고령화 가속이라는 삼중고에 빠지기 전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먼저 정부는 가업 승계를 적극 장려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과감히 설계해야 한다. 세제 감면 확대, 상속·증여세 유예, M&A 지원 시스템 정비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중소기업에 특화된 경영승계 컨설팅과 맞춤형 금융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도 승계 문제를 시장 기반에서 풀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퇴직 전문인력, 청년 창업자, 지역 대학과 연계한 후계자 매칭, 지분 승계를 지원하는 펀드 등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가치를 잇는 승계’라는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자는 은퇴 전에 후계자를 육성하고 조직 내 권한 이양과 책임 분산 체계를 미리 마련해야 한다. 종업원이 회사를 인수하는 ‘종업원지주회사(EBO)’ 방식도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 고용의 80%를 책임지는 실핏줄이다. 고령화는 막을 수 없어도 대응은 지금부터 가능하다. 기업이 사라지면 일터와 지역도 함께 무너진다. 지금이 바로 준비할 때다.

[기고] 경기학회 10년, 경기의 과거와 미래를 잇다

2025년은 경기학회가 창립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다. 경기학회는 2015년 4월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통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출범했다. 경기학회는 단순한 연구 단체가 아니다. 과거의 지역사 연구를 넘어 경기도라는 거대한 지역공동체를 학문적으로 탐구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경기학회 창립에는 대학교수와 정부출연기관 연구원, 자치단체의 학예사 등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이뿐만 아니라 문화 기획자와 기업인도 동참해 현장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했다. 경기학회의 뿌리는 깊다. 광복 이후 시작된 경기지역 연구 전통을 계승하고 1990년대 지방자치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급속히 발전한 지역학 연구의 흐름을 받아들였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학이 따로 놀던 연구 방식을 넘어 다양한 학문을 융합해 경기도를 통합적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경기학회를 탄생하게 했다. 경기학회는 창립 후 매년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경기도의 역사, 문화, 미래 문제를 다뤘다. 경기학 이론과 방법론, 2019년 경기 천년을 맞이해 경기도의 미래상 제시, 인문도시 연구, 인공지능(AI)이 초래할 기술과 미래 사회 등을 연구했다. 이 외에 경기도 정체성 정립과 당면한 과제를 연구했으며 학회지 ‘경기학연구’를 발간해 경기학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 ‘새로운 경기학’이 필요하다. 2025년 창립 10년을 맞이하면서 경기학회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동안 경기학 연구가 연구자의 관점에서 이뤄지지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 시민의 관점에서 경기도민의 삶과 더욱 맞닿은 연구를 해야 한다. 새로운 경기학은 경기학 연구 지평을 공간적으로 확장하고 시간적으로 미래 사회까지 연장해 연구해야 한다. 경기도는 휴전선과 서해안을 끼고 있다. 따라서 분단의 문제, 중국 나아가 동아시아 문제를 경기학 연구 문제 의식에 포함해야 한다. 시간적으로는 인공지능이 초래하고 있는, 경기도와 인류가 한번도 겪지 못한 미래 사회로의 질주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한국은 20세기와 다른 21세기를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연구의 시선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더러 있다. 2025년 오늘 한국은 다른 나라를 따라잡는 ‘추격의 시대’가 아니라 인류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하는 ‘추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추월의 시대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경기학회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것이다. 경기도를 넘어 동아시아를 품고, 미래를 준비하는 연구를 이어가야 할 것이다. 경기학회 10년,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10년, 경기도를 품고 세상과 소통하는 연구를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인천시론] 배다리 지하차도

‘배다리’라는 우리말이 있다. 이는 ‘작은 배 여러 척을 한 줄로 띄우고 그 위에 널판을 건너질러 깐 다리’나 ‘교각(橋脚) 대신 널조각을 놓아 만든 다리’를 말한다. 정식으로 다리를 만들 시간이 없을 때 급하게 작은 배들을 이어 다리 구실을 하게 하거나, 물길이 넓지 않아 널조각으로 다리를 대신했을 때 이르는 단어다. 따라서 배다리는 땅 이름으로 쓰였다 해도 본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이고, 강원 강릉시나 충남 공주시 등 우리나라 여기저기에 이 이름을 가진 곳들이 있다. 인천에도 동구 금곡동 경인전철 다리 아래 일대에 배다리라는 동네가 있다. 이곳에는 옛날에 인근 괭이부리 쪽에서 갯골을 따라 바닷물이 흘러들어왔기에 배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언제까지 놓여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아직 발견된 바 없고, 이에 대한 옛 분들의 기록이나 증언도 엇갈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전 이곳에 배다리가 있었으니 동네 이름이 배다리가 됐을 텐데, 이젠 머리가 허옇게 센 인천 토박이들에게 이곳 배다리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라 해야 옳다. 그들의 젊은 날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숱한 추억들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에는 1897년 있었던 경인철도 기공식(起工式) 자리, 개교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영화학교와 창영초등학교 등 많은 역사 유적이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그 무엇보다 헌책방 골목으로 유명했다. 1970~80년대에는 50여곳의 헌책방이 모여 있어 이곳을 자주 찾아온 학생과 시민들, 특히 청춘(靑春)들에게 많은 사연을 안겨줬다. 지금은 많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래도 1973년 문을 연 ‘아벨서점’을 비롯해 10여곳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2022년 착공한 ‘숭인 지하차도’가 내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이 지하차도는 중구 신흥동~동구 송현동을 잇는 산업도로의 일부다. 주민들은 이 지하차도가 배다리의 역사·문화적 분위기를 해칠 것을 걱정해 강하게 반대했었다. 이 때문에 인천시가 차도 계획을 세우고도 20년 넘게 진행을 못 했다. 그러다가 ‘지하차도 위에 문화센터와 공원 건설’ 등 여러 조건에 어렵게 합의가 이뤄지면서 공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최근 동구 의회의 유옥분 의장이 임시회 의정 발언을 통해 ‘숭인 지하차도’라는 이름을 ‘배다리 지하차도’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시민들은 물론 인천시나 관할 동구도 그 뜻을 잘 모른다는 ‘숭인’이라는 이름이 붙을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땅 이름은 그 지역의 역사와 특성을 담은 문화적 표현이다. 또 세대를 넘어 전해지면서 주민들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담아내는 소중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이름을 ‘듣도 보도 못한’ 것으로 마구 지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배다리에 아련한 추억을 여럿 간직한 인천 토박이로서 유 의장의 제안대로 지하차도의 이름이 정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경기시론] 독버섯처럼 자라나는 딥페이크 성범죄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심상치 않다. 이에 교육부도 딥페이크 성범죄 대응 강화 방안의 일환으로 학교 디지털 성폭력 초기 대응을 위한 ‘디지털 성폭력 SOS 가이드’를 제작해 발간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관련 피해 발생 시 학교 구성원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학생용, 교사용, 학부모용으로 제작돼 학교 현장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1월 학교폭력예방법의 개정으로 ‘딥페이크 영상 등을 제작하거나 반포하는 행위’가 사이버폭력의 유형에 포함됐다. 이제 딥페이크 성범죄가 학생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공지능(AI) 기술 및 디지털 기기 등을 이용해 다른 사람의 성(性)과 관련된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인 디지털 성폭력은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한 10대 학생들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무단으로 주변 친구를 촬영하는 등 친구의 초상권에 무심하고 친구들의 사진을 다른 사진과 웃기게 합성하는 일은 학교에 이미 만연해 있는데 이러한 행동들이 AI 기술 등을 만나 성적인 폭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의 자녀는 그럴 리가 없을까. 얼마 전 한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의 보호자로 본인 역시 입시학원을 운영 중인 교육자라고 했다. 그런데 특목고를 준비 중인 자녀가 동급생의 사진을 나체사진과 합성해 딥페이크 사진을 제작하고 이를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정황까지 확인된다는 선생님의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상상치 못한 통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며 소위 모범생인 자녀가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의 10대는 다른 학생들을 동의 없이 촬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거의 없으며 딥페이크 합성사진을 만드는 것은 지브리풍 사진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다. 누구라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호기심에 딱 한 번 만든 것이고, 만들지 않고 보기만 한 것이며, 보내준 사진을 보관한 것뿐이라며 본인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학생도 많다. 하지만 유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적인 허위영상물(딥페이크)을 제작하는 것 자체는 디지털 성폭력이며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등을 소지하거나 시청하는 행위 역시 범죄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성폭력은 매우 심각한 학교폭력이다. 교사는 이를 알게 된 경우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할 법률상 의무가 있으며 학교폭력 사안 처리도 진행된다. 디지털 성폭력의 경우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으므로 단 한 번의 행위라 하더라도 강제 전학이나 퇴학 처분 같은 중징계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니 우리 아이만큼은 가해자가 되지 않으리란 막연한 믿음은 버려야 한다. 자녀와 딥페이크 문제에 대해 대화를 해보자. 이를 통해 자녀의 디지털 환경을 확인해야 하고 위험 요소가 있을 경우 적극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기 전에 반드시 동의를 구하도록 하는 등 초상권에 민감해지도록 교육하자. 나의 정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리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타인의 사진이 공개됐다 하더라도 동의 없이 내려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SNS 추천 알고리즘의 문제가 있으니 나쁜 콘텐츠는 절대 보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자녀 스스로 그것을 시청하거나 내려받았을 때의 위험한 결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자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 처벌 수위를 아무리 올려도 본인 행위가 잘못됐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정책일 뿐이다. 가정에서의 교육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디지털 성폭력 관련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기만평] 이런느낌...

[사설] 경선 패배 김동연, 정치 잊고 도정 챙겨라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이 끝났다. 예상대로 이재명 후보가 압승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2위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눌렀다. 예상보다 크게 나쁠 건 없는 결과다. 하지만 뼈아픈 지점이 있다. 충청권과 경기도에서의 성적이다. 충청도는 김 지사의 고향이다. ‘충청 대망론’이 정치적 자산이다. 도지사 당선 직후에 충청도를 찾았다. 뒤에도 틈틈이 찾아가 충청 민심을 챙겼다. 얻은 당원 득표율 7.54%. ‘충청 맹주’라 하기에 빈약하다. 1천400만 경기도 성적은 더 아쉽다. 2022년 이후 3년째 도지사다. 기회소득 복지를 추구해왔다. 역대 최대 규모 예산도 투입했다. 100조원 투자유치 목표도 추진 중이다. 북부특별자치도 구상도 만들었다. 경제발전과 균형발전 도정이다. 그런 경기도민에게 받은 평가치곤 낮다. 이재명 전 대표의 장악력이 워낙 앞서긴 한다. 당원에서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일반 여론에서 기대 이하다. 고민하고 가야 할 부분이다. 김동연 지사의 민주당 경선은 끝났다.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상적’ 기회는 없다. 이제 찾아야 할 곳은 경기도다. 도정 공백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경선 전까지 광주·전남 방문만 열너댓 번에 달한다. 현직 경기지사가 그만큼 갈 이유는 ‘정치’였다. 정부 또는 중앙정치를 향한 메시지가 쉼 없었다. 셀 수 없는 그 워딩의 목적도 ‘정치’였다. 서울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외친 구호 역시 ‘정치’였다. 지역 정치 신뢰도 망가졌다. 경기도의회 국민의힘이 최근 ‘김동연표 안건’을 모두 정지시켰다. 29건을 제출했는데 28건이나 멈췄다. ‘소통하지 않는 김 지사’를 이유로 들었다. 과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상대 잠룡에 대한 견제도 있었다. 하지만 조화롭지 못한 점도 많았다. 같은 민주당과도 매끄럽지 않았다. 김 지사 대권 행보를 견제했다. “경기지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민주당 대표의원의 연설이었다. 복원해야 한다. ‘김동연지사는 경기도지사 연임에 도전할 것인가.’ 경선에 진 그를 향하게 될 질문이다. 면전에서는 안 물어도 속으론 다 궁금해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3~4월 즈음의 소문이 있었다. ‘경선 2위-대선 기여-경기지사 연임-차기 대권 도전’설이다. ‘노골적인 2위 전략’을 전제로 한다. 비명계 단체 합류는 그 즈음 무산됐다. 하루가 급변할 정치 지형이다. 지금 구상이 무슨 의미가 있나. 중요한 건 눈앞의 현안이다. 그게 도정이다. 끊고 맺음이 분명한 것도 큰 정치의 덕목이다. 대권 싹 잊고 도정에 푹 빠져야 한다. 그래야 할 만큼 허비한 시간이 많다.

[사설] 선거용 ‘딥페이크’ 영상, 강력한 규제와 엄벌해야

오는 6월3일 실시되는 제21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딥페이크(Deepfake)가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AI) 기술인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를 뜻하는 페이크(Fake)의 합성어로할 첨단기술을 이용, 유권자들을 현혹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거 결과 자체가 왜곡될 우려성이 있어 공정하고 공명해야 할 대통령선거에 큰 위협 요소가 되고 있다. 선거 때 기승을 부리는 대표적인 사례는 AI 기술 발전으로 특정 후보의 얼굴·목소리 등을 손쉽게 조작, 꾸며낼 수 있게 되면서 이를 활용한 음해·비방·인신공격 등이 난무하고 있다. 평소에도 이런 정치적 목적으로 만든 딥페이크 동영상이 유튜브·엑스·틱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종종 유포됐지만 대선이 다가오자 더욱 극성이다. 대선 후보자들을 직접 겨냥한 딥페이크가 증가하고 있다. 특정 후보가 죄수복을 입고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 있는 모습, 전혀 근거도 없는 특정 후보의 공약을 음성 변조해 악의적으로 편집해 배포하는 행위, 특정 후보의 신체적 부위를 나타내는 동영상을 합성해 비하하는 행위 등등 다양한 형태로 조작해 유포하고 있다. 특정 후보를 타깃으로 삼아 비하하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또는 악마의 모습으로 조작한 딥페이크는 대중에게 혐오를 유발함으로써 투표 시 유권자의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문제는 AI 기술의 발달과 이용의 대중화로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런 식의 딥페이크 동영상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AI로 조작된 딥페이크 영상과 이미지가 퍼져 문제가 됐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사칭한 딥페이크 음성이 유포되거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경찰에 연행되는 딥페이크 이미지가 퍼지는 등 다양한 사례가 발생했다. 이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딥페이크 영상 제작자에게 6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9일부터 ‘AI·딥페이크 특별대응팀’을 중앙 및 시·도 선관위에 설치,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AI 딥페이크 영상의 제작·편집·유포·상영·게시를 일절 금지하고 있으며 위반자는 공직선거법에 의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거법에 위반되는 딥페이크에 대한 모니터링을 더욱 철저히 해 고발은 물론 엄중한 처벌을 해 딥페이크 유포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