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보릿고개가 첩첩산중이다. 부동산 경기 위축에 인건비·원자재값 상승으로 일감이 사라졌다. 인천에서도 종합건설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다. 10년 만의 최다 폐업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인천 건설공사의 지역업체 수주율도 전국 꼴찌 수준이라 한다. 그것도 3년 연속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2023년 인천 종합·전문건설업체의 역내 수주율이 21.9%였다. 인천에서 벌어진 건설 공사에 인천 업체가 참여한 비율이다. 2023년 인천에서 이뤄진 전체 건설공사 금액은 21조6천550억원이었다. 이 중 지역업체는 4조7천350억원어치만 수주했다. 이해 전국 평균 역내 수주율이 40.2%였다. 전국 17개 시·도 중 세종시를 제외하면 전국 최하위 실적이다. 그 이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21년 인천의 역내 수주율은 22.3%였다. 당시 전국 평균은 42.8%였다. 2022년에는 20.9%로 더 낮았다. 당시 전국 평균 역내 수주율 40.7%의 절반 수준이다. 3년 연속 인천이은 전국 최하위다. 인천의 건설 공사액이 적은 수준은 아니다. 2023년의 경우 경기 95조8천78억원, 서울 37조6천69억원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이처럼 공사 규모는 크지만 정작 인천업체들은 20% 정도의 공사만 맡는다. 결국 그만큼 타 지역 업체에 일감을 뺏기고 있는 것이다. 인천 건설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측면도 한 원인이라고 한다. 경기·서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대형건설업체가 적다. 또 지리적으로 가깝다 보니 인천에서 발주된 공사에 경기·서울업체들이 수주전에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하도급 일감까지 경기·서울업체들이 차지하는 결과도 빚어진다. 인천시가 지역 건설산업 활성화 대책을 내놓았다고 한다. 지역제한 가능 사업에 대해서는 100% 제한을 적용할 방침이다. 100억원 미만 종합공사, 10억원 미만 전문·기타공사가 대상이다. 입찰 공고에서부터 ‘지역 업체만 참여 가능’을 명시한다는 것이다. 지역제한이 어려운 대형 공사는 지역업체 의무 공동 도급률 49% 이상, 분리 발주 등을 유도한다. 지역업체 하도급률에 대해서도 70% 이상을 권장한다는 등이다. 그간에도 이런 대책들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무리한 시장 개입보다는 지역 건설업의 경쟁력 저하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형 건설업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현실이 역내 수주율 저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산업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지역 건설업체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의 변방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라오스와 인접한 소도시로 인구는 10만명 남짓하다. 이곳에서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는 일이 벌어졌다. 1954년 5월7일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보자. 당시 이곳에선 프랑스와 베트남(베트민)의 전투가 한창이었다. 베트민은 베트남 민족통일전선 조직으로 월맹으로 불렸다. 외신들의 보도는 이랬다. “(프랑스) 육군이 항공기로 장비를 공수하는 동안 베트민 병사들은 몸에 프랑스 육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의 포신을 묶고 한번에 1인치씩, 하루에 반 마일씩, 3개월에 걸쳐 대포를 운반했다.” 디엔비엔푸는 베트남 주요 도시와 거점들로부터 한참 떨어진 오지에 분지였다. 사실상 육상 접근로가 없었다. 평상시 보급도 쉽지 않았지만 포위 당하면 구하러 갈 방법도, 도망칠 곳도 마땅치 않았다. 프랑스는 이 지역을 평정하지 못하면 전황을 타개하기 힘들다고 보고 항공 보급과 공수부대만으로 요새를 건설했다. 문제는 처음부터 베트남 화력을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병력 열세와 보급 등을 화력과 항공 수송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실은 달랐다. 베트민이 다수의 대공포를 포함한 포병화력을 동원해 프랑스군을 괴롭혔다. 또 간과한 게 있었다. 중국의 지원이었다. 중국은 1년 전 6·25전쟁에서 유엔군으로부터 노획한 대포, 대공포를 비롯한 중화기를 베트민에 무상으로 제공했다. 프랑스는 결국 무릎을 꿇었다. 프랑스군이 떠난 자리에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구호가 쓰인 베트민 깃발이 펄럭였다.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는 붕괴됐다. 베트남은 프랑스 지배에서 해방됐다. 이후 20년이 넘는 미국과 베트남 전쟁의 서막이 열렸다.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베트남은 인도차이나의 변방에서 최대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인력이 우수하고 지하자원도 풍부해서다. 경제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나라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이 밖에도 차고 넘친다.
4월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그러나 5월1일을 계기로 상황은 또다시 달라졌다.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2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중요한 선거를 한 달 정도 앞에 뒀다면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재판도 선거 이후로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행보는 의도적인 선거 개입으로 해석하는 것 외에 다른 설명을 찾을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이 공정성과 중립성, 합리성 등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과도한 음모론에 빠져들고 과격한 대응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번에 대법원이 선거중립의무 위반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은 유감이다. 대법원은 이번 실수와 관련해 앞으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예단하기 어렵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음모론으로 단정하기에는 어색한 요소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법원이 내릴 수 있는 판결 중 무죄 확인과 파기환송도 있지만 파기자판도 있었다. 파기자판으로 유죄와 더불어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면 이재명 후보는 선거판에서 즉시 퇴출됐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선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시기 조절 차원에서 파기환송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파기자판으로 이재명 후보가 낙마하면 민주당에서 다른 후보를 내세워 선거에 참여하는 시나리오를 차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담당하게 된 서울고법이 대법원처럼 법 절차와 국민 감정을 무시하고 재판을 초고속으로 진행하지 않으면 조희대 음모론은 속절 없이 무너진다. 서울고법 판사들은 과연 대법원장 지시에 따라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해 대법원이 6월3일 이전에 최종 선고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인가. 그리고 국민적 지탄을 받으면서 평생 손가락질을 받고 살 것인가. 아마 그들은 대법원처럼 선거에 개입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불편해할 것이다. 지난번 헌법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선고하기에 앞서 제기됐던 음모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헌법재판소가 3월 중순에 결정을 발표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관들의 정치 개입 가능성을 제기했다. 재판관 8명 가운데 5명은 파면에 찬성하지만 3명은 반대하는 상황이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은 기각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4월4일 헌재 판결문을 보면 그런 음모론은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오히려 헌법재판관들이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심의했고 현명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 확인됐다. 근거없는 음모론에 부화뇌동하면서 재판관들을 상대로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인격모욕을 자행한 사람들은 자신의 경박함을 꾸짖고 평생 반성과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조희대 음모론을 생각해보자. 그 음모론에는 대법관을 포함해 대한민국 주요 판사들이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좀비처럼 움직인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3심에서 파기자판을 하지 않은 것과 2심에서 이재명 후보 무죄가 선고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윤 전 대통령이 극적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일부러 복잡한 각본을 채택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사들이 중대 오판을 저질렀지만 음모론에 봉사하는 차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이권 보호나 자존심 확인 차원에서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 없다는 아집의 표출, 또는 저항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 실수에 대해 최고의 경계심은 필요하지만 과격 대응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일부 어리석은 자들이 저열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우리 국민은 고도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대응책을 찾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최상급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2023년부터 중위소득 120% 이하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연 150만원의 기회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경기도의 예술인에게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를 제공하고 도민들의 일상에 예술 향유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는 의미 있는 문화예술 정책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공공재적 가치를 지닌다. 접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휴식을 제공하고 창의성과 문화감수성을 안겨준다. 도민의 삶을 ‘좋은 삶’으로 만드는 데 있어 실질적이며 효용적인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살아가며 함께 성찰해 볼 만한 요소를 제시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사회적 가치 또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예술인이 예술을 지속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예술인의 연평균 소득은 1천55만원이다. 같은 시기 국민 1인당 평균 연소득 2천554만원의 41.3% 수준이다. 예술인은 이러한 소득 수준에서도 예술을 놓지 않고 더 많은 관람객에게, 더 많은 도민에게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제공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며 창작하고 있다. 이러한 예술인의 실정을 바탕으로 경기도는 최소한의 ‘예술 포기 방지 정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에선 예술인 기회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기준으로 정한 예술인복지법 제3조의2 ‘예술활동 증명’을 내세워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예술인의 어려운 생계와 예술이 지닌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며 예술인에게 기회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예술인인지를 구분한단 말인가. 철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따지면 예술인의 기준과 개념은 우주만큼 넓어진다. 그렇지만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서 현존하는 가장 정확한 기준인 예술인복지법 제3조의2 ‘예술활동 증명’을 득한 자로 기준을 세운 것이다. 정부는 법령으로 예술활동을 증명하기 위한 조건을 세웠다. 현실적으로 필요충분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조건을 세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활동 증명’을 득한 예술인 중 이른바 ‘예술인 같지 않아 보이는’ 예술인을 거론하며 예산 낭비라고 비판하는 기사를 접하며 참으로 어이가 없고 깊은 안타까움을 느낀다. 99세 노인은 예술을 못하는가. 연습생은 예술인이 아닌가. 예술인은 눈감는 날까지 예술을 한다. 예술인은 자신의 예술을 벼르기 위해 쉼 없이 연습한다. 법이 정한 ‘예술활동 증명’의 조건을 통과했기에 기회소득을 받은 것이다. 다른 어느 지자체도 살피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앞서 예술인의 활동을 지지하고 도민의 문화적 일상을 창조하기 위해 시행되는 경기도의 예술인 기회소득 정책을 흠집 내고 예산 낭비라 왜곡·폄하하는 행위가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기 바란다.
최근 SK텔레콤에서 발생한 대규모 해킹 사건은 우리 사회 디지털 인프라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악성코드를 통한 침입으로 약 9.7GB에 이르는 유심(USIM) 정보가 유출됐으며 이 안에는 가입자식별번호(IMSI), 인증키(Ki), 유심 일련번호 등 핵심 데이터가 포함돼 있었다. 국회 청문회를 통해 해당 정보들이 암호화되지 않은 채 저장돼 있었던 사실이 밝혀지자 통신사의 보안 관리 체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확산됐다. SK텔레콤은 전 가입자 대상 무상 유심 교체라는 초유의 조치에 나섰지만 이미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번 SKT 해킹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신뢰 기반 사회에서 정보 인프라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많은 국민이 “내 정보도 이미 유출된 게 아닐까” 하는 불안 속에서 정작 해킹 사실을 늦게 알게 되거나 사후 대처 방안조차 알 수 없었던 상황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했다. 이는 한 기업의 실책을 넘어 사회 전체의 정보 보호 시스템이 근본적인 점검과 정비를 요구받고 있음을 뜻한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위상을 무색하게 한 이번 사태는 단지 통신 영역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유사한 구조를 가진 보건의료 분야 데이터 시스템에도 중대한 경고를 보낸다. 의료정보에는 질병 이력, 진료 내용, 정신건강 상태, 유전자정보 등 고도의 민감한 생체정보가 포함돼 있다. 이로 인해 유출 시 사생활 침해는 물론이고 차별, 낙인, 보험 및 고용상의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원격진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개인 의료정보의 수집·활용 범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금 정보 보호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실제 일부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서는 환자의 진료 기록을 활용한 건강식품 마케팅 시도가 알려지며 사회적 논란이 증대됐다. 진료기록 데이터가 어떤 경로로 수집·저장·이용되는지 환자 스스로 알기 어려운 데이터 프로세싱 구조가 일반적인 현실이다. 앱 설치 후 동의만 하면 의료정보가 해외 클라우드에 저장되고 타깃 광고에 활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용자가 알 수도 없고 또 그 동의 선택에 여지가 없기도 하다. 의료비 상담을 받기 위해 앱을 설치한 디지털 소외계층이 선택의 여지 없이 유전자 정보가 넘어가고 그 정보의 안정성이 오리무중이라면 그것은 발전된 기술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기술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 정부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위해 규제 완화와 데이터 활용 촉진에 나서고 있지만 SKT 해킹 사태는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 보호 없는 활용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의료데이터 활용을 위한 그 어떤 정책도 ‘정보 보호’라는 확고한 전제 위에서 논의돼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마이헬스웨이’ 같은 건강정보 통합 플랫폼을 운영하기 전에 암호화, 접근 권한 분리, 이용 내역 투명 공개 등 강력한 보안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부의 정보 관리 체계 역시 개선이 시급하다. 내부인의 접근 권한 남용이나 유출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며 이중 인증이나 실시간 로그 감시 없이 방대한 환자 정보가 저장되는 병원도 적지 않다. 단순히 보안 솔루션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 정보 보호 교육과 정기 감사 체계 등 전방위적 개편이 필요하다. 플랫폼 기업의 책임성도 제고돼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 발생 시 일정 시간 내 신고 및 피해 고지 의무를 법제화하고 보안 인증 획득 여부를 서비스 정보에 의무적으로 표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비대면 진료 플랫폼에 ‘의료데이터 보안등급제’나 ‘환자 정보 활용 고지 의무제’를 도입하는 것은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료기관 역시 진료기록 저장 방식, 제3자 제공 현황 등을 환자에게 명확히 안내하도록 내부 지침을 정비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특성상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제도와 윤리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누가 다루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는가다. 보건의료정보는 개인의 자산이자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공공의 자산이다. 정부, 기업, 의료계 모두 이 기본 전제를 다시 확인하고 실천할 때 우리는 디지털 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SKT 해킹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공공정보 보호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경고다. 다음 피해가 생체정보와 의료 영역이 되지 않도록 지금 이 순간부터 강력한 제도 정비와 사회적 합의가 절실히 필요하다. 경고는 이미 울렸다. 이제는 응답할 차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2025도4697호)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어제 오후 3시에 선고됐다.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조희대 대법원장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특히 “2심 판단에는 공직선거법에 관한 오해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선고에서 밝혔다. 이번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은 제1당 대선 후보이자 지지율 1위 주자의 피선거권 박탈 여부를 다루는 중대한 재판이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TV 중계를 허용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대단했다. 이 사건은 1·2심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그러나 12명의 대법관 중 다수의견(10 대 2)으로 이 후보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검찰은 이 후보가 2021년 대선 후보일 때 방송에서 대장동 개발의 실무책임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과 관련된 발언과 백현동 용도지역 변경과 관련된 국정감사장에서 행한 증언이 허위 사실 공표에 해당한다는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했다. 이에 1심에서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는 허위 사실 공표로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원심을 파기, 유죄 취지로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대법원 선고는 다른 사건에 비해 신속히 선고됐다. 선거법은 ‘6·3·3원칙(1심은 6개월, 2·3심은 3개월 안에 선고)’을 명문화하고 있지만 1·2심은 판결까지 각각 2년2개월, 4개월이 소요됐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에 3월28일 사건 접수된 뒤 34일 만에 판결을 내렸으며 4월22일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지 불과 9일 만에 선고를 했다. 대법원이 이 후보 사건에 대한 심리를 신속하게 진행한 것은 1·2심 판결이 극과 극을 오가면서 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이 혼란에 빠졌으며, 사법 불신도 커진 것을 염두에 두고 대선 전에 정치적 불확실성을 해소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조 대법원장이 4월22일 사건이 소부에 배당된 지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고 당일과 4월24일 합의 기일을 진행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 후보는 이번 판결로 민주당 후보로서의 자격 문제는 물론 대선에서의 경쟁력에도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됐다. 국민과 정치권은 이 후보에 대한 상고심 판결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오는 6·3 대선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데 있어 유능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부천시의회에서 의미 있는 조례가 만들어졌다. ‘부천시 공공의료원 설립 및 운영 조례안’이다. 지역의 공공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지역 보건 체계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시민들이 시작했다는 점이다. 시민이 직접 청구했고 의회가 이를 받아들인 예다. 시민의 참정제도인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에 기초하고 있다. 그만큼 공공의료 체계에 대한 시민의 뜻이 간절함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의료 체계 구축의 핵심은 공공의료원 설립이다.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할 한계가 산적해 있다. 그 타산지석의 교훈이 성남의료원에 있다. 역시 시민·시민단체의 목소리가 출발이었다. 개원 5년이 지나도록 어려움을 겪고 있다. 500여개 병상 가운데 300개 정도 찬다. 하루 평균 입원 환자도 100명 선에 그친다. 누적 의료 손실만 2천400억원이다. 부천시의회도 잘 알 것이다. 조례 제정 과정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주민 청구가 의회에 수리된 것은 2024년 4월 말이다. 곧바로 심사하지 않고 공청회 및 토론회를 준비했다. 2024년 12월3일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 2025년 3월27일 토론회를 열어 찬반 의견도 들었다. 이런 절차를 거친 뒤 4월 29일 조례로 확정했다. 제대로 된 검토 과정을 거친 것으로 평가한다. 이런 태도는 향후에도 요구된다. 병원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이다. 문 닫는 일반 병원도 허다하다. 실패할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 의료 수요 측정, 감당 가능한 재정 예측, 우수 의료인 확보, 도비·국비 지원 방안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여기에 선례로 삼을 지역 공공의료원은 거의 없다. 조례안이 정한 심의위원회가 있다. 그 역할을 할 창구다. 공공의료원 설립과 관련한 타당성 검토를 포함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게 될 듯하다. 구성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경계할 것은 ‘정치적 판단’이다. 특정 정파, 또는 정치인의 치적이 되면 안 된다. 성남의료원이 밟았던 잘못된 전철도 이 부분이다. 특정인의 정치적 셈법이 부실의 위험성을 가리고 서둘렀다. 마침 6·3 대통령선거에 공공병원 증대 공약이 등장했다. 공공병원을 늘리겠다는 민주당 후보의 약속이다. 지역 공공의료원 사업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보인다. 향후 이 공약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다. 치료비 부담 없는 병원을 지자체가 꾸려 가는 사업이다. 예산 부담 어려움이 있고 실패할 위험성도 있다. 그렇다고 시민 생명권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부천시민과 부천시의회의 시작이 그 본이 되길 바란다.
해마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다. 송홧가루가 그렇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거나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서다. 창문을 열어 놓고 외출하면 방 안이 온통 노란색 가루로 덮인다. 길거리에 세워진 자동차에도 수북이 쌓인다. 하루 종일 닦거나 세차해야 한다. 물로 씻어내도 이리저리 번지고 튀는 데다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 꽃가루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된다. 송홧가루가 몸에 닿으면 피부가 빨갛게 붓고 간지러움 증세가 두드러져서다. 목이나 콧구멍 등이 부어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재채기하는 건 물론이다. 알레르기 약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순 있지만 그렇다고 스트레스가 없어지진 않는다. 너무 딱딱하고 현실적인가. 낭만도 있다. 물론 문학이나 영화에서지만 말이다. “송홧가루 날리는/외딴 봉우리/윤사월 해 길다/꾀꼬리 울면//산지기 외딴 집/눈먼 처녀사/문설주에 귀 대이고/엿듣고 있다.” 청록파 시인 박목월의 ‘윤사월’이다. 송홧가루가 내리는 시점이 대부분 윤사월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영화에도 등장한다. 1993년 개봉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다. 주인공 송화는 아버지 유봉으로부터 혹독할 정도로 판소리 교육을 받는다. 유봉은 결국 송화를 통해 판소리의 꿈을 이뤄보겠다며 송화의 눈을 멀게 한다. 눈이 멀어야 진정한 소리의 눈을 뜨게 된다는 지론이었다. 송홧가루 흩날리는 봄날에 송화는 결국 소리를 얻는 대신 눈을 잃는다. 국립수목원이 5월 초 송홧가루 날림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소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주목 등 침엽수 4종의 화분비산(꽃가루 날림) 시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침엽수 4종의 평균 화분비산 시작 시기가 매년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0년대 초 5월 중순에서 지난해 4월26일로 보름 이상 앞당겨졌다. 송홧가루를 피하려면 마스크를 써야 한다. 자연은 때로는 우리를 번거롭게 한다.
동두천시에는 ‘육지의 섬’이라 불리는 걸산마을이 있다. 분명 대한민국 땅 위에 존재하지만 미군기지 안에 있다는 이유로 단절된 채 살아가는 마을이다. 1951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에서 밀려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출입과 거주, 이동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유권 같은 기본적인 헌법적 권리가 반세기 넘게 제한되고 있는 현실은 도무지 지금의 대한민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모습이다. 2014년 한미 양국은 걸산마을이 포함된 캠프 케이시 기지를 2020년경까지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금껏 지켜지지 않았고 반환 시기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부의 책임 있는 조치와 진정성 있는 대책을 기다려 온 주민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뀐 지 오래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기지 사령부는 2022년 6월부터 신규 전입 주민에 대한 출입 패스 발급을 전면 중단했다. 주민등록은 돼 있지만 실제로는 마을에 들어갈 수조차 없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의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중대한 인권 침해다. 시장 취임 이후 걸산마을 패스 문제를 비롯해 지난 74년간 국가 안보를 위해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 온 동두천에 대해 정부가 마땅한 보상과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직접 만나 동두천 시민의 목소리를 전했고 지역발전 범시민대책위원회와 시민들이 다섯 차례에 걸쳐 대규모 궐기대회를 하며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시는 전체 면적의 42%에 해당하는 40.63㎢를 미군에 제공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한미군과 그 가족, 관련 종사자 등 약 2만명이 거주하여 경제가 활기를 띠었지만 대규모 병력의 평택 이전 이후 미군이 급감하며 지역 경제는 점점 침체됐다. 시의 지속적인 반환 요청으로 23.21㎢의 공여지를 돌려받았지만 99%가 산지여서 개발이 불가능하다. 반면 평지로 활용 가치가 높은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17.42㎢는 반환 계획조차 없는 상태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기지의 장기 미반환으로 동두천 경제는 붕괴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제적 피해 수치를 살펴보면 더욱 심각하다. 보산동과 광암동 일대 미군 관련 자영업체의 70% 이상이 폐업했고 공여지 반환 지연으로 인해 연간 300억원에 달하는 지방세 손실, 도시 개발 차질에 따른 매년 5천278억원 규모의 경제 손실 등 누적 피해는 25조원을 넘어섰다. 이러한 여파로 2024년 상반기 실업률 전국 1위, 재정자립도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때 10만 명에 육박했던 인구도 현재는 8만명대로 줄어들어 이제는 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에 필자는 74년간 지속된 안보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으로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 미군 기지 이전을 이유로 제정된 ‘미군 이전 평택 지원법’을 통해 평택은 삼성 반도체 유치, 기반 시설 조성 등 약 19조원을 지원받아 인구 60만 도시로 성장했다. 평택의 선례에 비춰볼 때 동두천도 이에 상응하는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행히 지난해 5월 김성원 국회의원이 ‘주한미군 장기 미반환 공여구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동두천이 입은 피해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담겨 있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치다. 또 2014년 미군의 동두천 한시 잔류 결정에 따라 정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992만㎡(약 30만평)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다. 그러나 조성 이후 분양과 기업 유치는 온전히 지자체의 몫으로 떠넘겨진 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현재 국가산업단지는 경기 침체와 분양가 상승, 업종 제한 등으로 인해 1단계 선분양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조성만 국가가 하고 나머지는 지자체에 떠넘기는 방식이라면 과연 이를 ‘국가’산업단지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이는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사실상 보상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동두천 시민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기업 유치와 2단계 사업 추진에 분명한 책임을 지고 실질적인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한다. 이와 더불어 국제스케이트장 유치도 강력히 희망한다. 동두천은 안보 희생의 상징인 미군 반환 공여지를 부지로 제안했고 자타공인 ‘빙상의 도시’로서의 위상은 물론이고 뛰어난 교통 접근성, 소요산 확대 개발 사업과의 연계 가능성 등에서 타 지자체와 비교해 뚜렷한 경쟁 우위를 지니고 있다. 동두천 지원 특별법 제정, 국가산업단지 조성, 국제스케이트장 유치 여부는 동두천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 과제다. 이제라도 정부는 동두천의 절박한 요구에 응답하고 정당한 보상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