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무관심이 자른 생명줄

2012년 낙태죄 합헌 판결 7년 만에 역사적인 진전을 이룬 2019년, 낙태가 2021년 1월 1일부터 전면 합법화되었다. 여성(女性)으로서 여성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출산(出産)이다. 여성은 태아를 위한 성스러운 집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출산은 행복이어야 한다. 낙태가 여성의 삶을 옭아매고 국가적 폭력 상황이라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낙태에 대한 여성만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의 경험이나 감정을 무시한다. 무관심하게 하는 일들이 이슈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은 1966년부터 인구는 국력이다 라며 피임과 낙태, 이혼을 모두 금지했다. 이 정권 당시 800배 이상이 불법 낙태로 인한 모성 사망률이었다. 1979년 혁명으로 차우세스쿠가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했던 보건 정책이 임신중절 합법화다. 그 후 당연히 모성 사망률이 현저하게 뚝 떨어졌다. 임신중절을 쉽게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보건 기구의 안전하지 않은 낙태비율을 보니 낙태금지국가는 75%, 낙태허용국가가 10%다. 낙태 금지로 원정 낙태나 음성적으로 낙태를 하게 되면 여성의 건강을 더 헤치게 된다. 낙태죄 폐지로 출산이 행복일 수 있다. 통제보다 자율 속에서,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출산(出産)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빠른 시일내에 마련돼야 한다. 낙인과 차별없는 재생산권 보장, 피임 방법과 임신중지 대한 정보에 대한 교육 등 그것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받아야 한다. 여성들이 처한 한계상황을 돕고 보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미혼모나 미혼부 가정에 대한 양육 지원을 대폭 늘린다. 임신 중지 시 지원받는 방법이나 부작용 등 의사 상담을 의무화 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을 통해 공식적으로 67개국이상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임신중지 유도약물의 도입 및 절차 그리고 여성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든다. 출산 이후 삶에 대한 고통과 현실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성교육을 교과 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 태아도 소중한 생명임을 공익광고를 통해 알린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방향에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정부가 인구 관리 목적으로 여성의 몸을 관리하며 통제하였다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안전 절차를 만들어 지원해 줬으면 싶다. 또, 나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통제나 비난하지 않는 더 나은 사회이길 소망해 본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고약한 경자년(庚子年)을 떠나보내며

경자년 벽두 시작된 코로나19는 모든 일상에 듣도 보도 못한 영향을 미쳤다. 모든 것을 마냥 움츠리게만 했다. 이내 진정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한 해를 넘어선 지금까지 그 위세는 전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국민의 한결같은 협조로 우리 방역이 전세계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다. 한편 역병으로 각종 활동이 위축되었음에도 일부 살(殺)풍경은 더 한층 기승을 부려왔기에 유감이다. 각 사안마다 찬반으로 나뉘었다. 이념 등 허접한 선에 의해 둘로 가르고 극한 대립으로만 나아갔다. 하나로 통합될 가능성은 내내 부정되었다. 그러기에 방역의 긴급함에도 이는 우리 사회가 깊이 있게 성찰하여 반드시 중지를 모아야 할 과제로 인식되었다. 이와 같은 과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불현듯 하나의 사실에 착안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언어에서의 분별(分別)이었다. 코로나19로 참 많은 신종 용어가 등장하였다. 역학 전문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코로나19, 팬데믹, PCR검사, 슈퍼 전파자. 방역 처치와 관련한 드라이브 수루, 워킹 스루, 덴탈 마스크, 코호트 격리. 이외에도 일상 변화와 관련한 뉴 노멀, 언택트, 포스트 코로나, 코로나 블루, 코로나케이션, 웹미나 등등. 한데 이 용어에 대해 우리 모두가 즉시 이해하고 공동의 인식을 지향할 수 있을까. 대부분 영어 단어인데 이 용어가 불편한 사람은 없을까. 사실 필자도 어떤 용어는 처음 접하고 그 의미를 한참 궁리해야만 했었다. 때로는 인터넷 등을 검색하기도 했었다. 언어란 대상을 의미 있게 포착하는 존재의 눈이다. 그리고 그 포착된 의미로써 경험 세계를 구축하고 고유의 사고를 한다. 나아가 관련 정서도 형성한다. 우리의 존재 본질은 사람(삶앎)이다. 어떤 상황이든 성실한 삶을 살아내고 이의 성찰을 통해 앎을 얻는다. 또 이 앎을 실천하여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열어간다. 이러한 존재 본질이 모두에게서 구해지기 위해서 우리 언어는 필연적이다. 따라서 코로나 관련 용어도 반드시 우리 언어로 순화되어야만 했다. 신속함을 핑계로 외래어가 별다른 노력 없이 무분별하게 도입된다면 진정한 우리의 의미, 사고, 정서는 생겨나지 않을 수 있다. 또 이해 여부에 따라 특정 계층만이 그 용어를 배타적으로 독점, 활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한해 더욱 두드러진 살풍경은 어찌 생각하면 일부 언어의 혼란과 분별에 의해 더 한층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누구나 충분히 향유할 수 있는 우리 언어를 우선 마련하여야 한다. 연후 보다 진지한 소통에 주력하여야 한다. 작금 우리의 과제인 살풍경 해소는 이런 노력이 모아진다면 서서히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왼씨름 VS 오른씨름 上

씨름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유네스코에 등재됐지만, 현대씨름이 왼씨름인지 오른씨름인지는 아직 논란이 많다. 왼손으로 다리 샅바를 잡기 때문에 왼씨름이란 주장이 있지만, 씨름협회조차 현대씨름이 왜 왼씨름인지를 설명하는 데에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또 씨름협회는 1987년에 현대씨름을 왼씨름에 근거 한 바른 씨름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근대자료나 씨름 원로의 구전에 의하면 현대씨름은 오른씨름일 가능성이 크다. 최초의 전국대회가 열렸던 1927년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는 지금과 반대로 왼 어깨를 맞대고 다리 샅바를 오른손으로 잡는 정규씨름이 정식경기였다. 이때 씨름은 왼씨름, 오른씨름, 통 씨름 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었고, 용어도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대회 참가비를 낸 200명의 선수 중 경기방법에 불만을 품은 150여 명은 경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1929년 조선씨름협회는 정규씨름을 오른씨름이라 하고, 왼씨름은 오른 다리에 샅바를 매고 왼손으로 다리 샅바를 잡는 방식이라고 발표해버렸다. 그러면서 씨름은 지역마다 경기방식이 다르고 왼씨름과 오른씨름을 서로 혼용해서 부르기 때문에 선수들의 주의를 당부하기도 했다. 결국, 씨름대회는 왼씨름과 오른씨름으로 경기를 진행하다 1959년 6월 제1회 전국장사씨름대회부터 왼씨름으로 통일됐다. 이 때문에 대부분 씨름인은 현대씨름을 왼씨름으로 알고 있다. 씨름은 샅바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깨도 매우 중요하다. 샅바 싸움도 상대 선수보다 어깨를 더 낮춰잡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에 결국은 어깨도 중요하다는 얘기다. 오른 어깨를 맞대고 경기를 하는데 왼씨름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 사진으로 남아있는 1910년 이후의 씨름 자료를 보면 지금처럼 다리 샅바에 손목을 넣어 잡는 것이 아니고, 샅바 바깥쪽 부분을 손가락만으로 잡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다리 샅바가 지금처럼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때 언론보도를 보면 왼씨름과 오른씨름의 명칭이 바뀌어야 했었다는 논리도 있고 현대씨름은 오른씨름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편에서 계속.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세계인권선언 72주년과 코로나

지난 12월10일은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7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국제연합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고 나서 불행한 인류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세계인권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백 가지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전 세계 각 곳에서 인권 증진을 위한 문서로 활용되며 연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이 선언문이 완성된 후 2년이 지나 전쟁을 겪었으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는 지금도 세계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분쟁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안타까운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을 위해 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루즈벨트 대통령의 아내인 엘레노어 루즈벨트가 초대 의장을 맡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세계인권선언문을 작성한 위원 중 중국인으로 장펑춘이 참여하였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여 컬럼비아 대학에서 교육철학 박사를 받은 사람으로 서구중심의 기독교적 세계관을 넘어 인본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유교의 인(仁) 사상을 인권의 가치에 담으려고 했다. 세계인권선언문은 초안 작성을 위한 위원회뿐만 아니라 학계, 국제 NGO 등의 자문을 받아 2년에 걸쳐 탄생되었다. 지금 인류의 가장 중요한 인권의 문제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것이다.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현재까지 16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등 인류의 생존이 위협을 받고 있다. 추운 겨울이 오고 코로나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 완벽하지 않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백신 소식이 전해져서 다행이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나라를 위한 백신 보급에는 소식은 없는 반면에 선진국들은 백신 물량 확보를 하고 있다. 인권은 보편적인 가치로서 차별이나 제한 없이 어느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는 가치이다. 선진국들이 자국민의 건강을 위해 백신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국제사회가 가난과 열악한 보건 체계로 어려움에 빠져 있는 국가들이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팀장

[경기시론] 기적

언제부터였던가 따뜻한 봄날에 꽃나무 아래에서 반복했던 약속들이 하얀색이 됐다. 그리고 모진 비바람 속을 헤치며 깃을 세워 움켜잡고 지나며 다짐했던 생각들조차 어디론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또, 단풍이 노을처럼 빨갛게 물든 것을 보며 취한 행동들은 다시 볼 수도 없게 되어 가고 있다. 오늘 필자는 겨울을 상징하는 하얀 눈을 맞으며 오래된 나무 아래 홀로 서서 기적(奇蹟)을 소원해 본다. 요즘 같은 어려운 때 기적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별해야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날까. 기적은 언제 나타날까. 필자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면 과연 어떻게 할까. 왜 지치고 힘이 들 땐 더 기적을 바라는 걸까. 특별한 12월, 특별한 기적을 선물로 받고 싶다. 기적을 각기 다른 어떤 문화나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기적적인 상황에 대해 찾을 수 있도록 종교나 문화가 가지는 특징을 내세우기도 한다. 기적은 인간의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도 없고, 상식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기적은 증명할 수 없으며, 신(神)에 의해 행해졌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일 뿐임을 알면서도 필자가 기적을 바라는 것은 아직도 필자의 몸에 어린아이처럼 순수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성탄절에 오실 산타 할아버지께서 2주간 자가격리를 거쳐 2021년 1월9일에 오신다는 유머가 우습게 들리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오산시 확진자 추가, 용인시 11명 추가, 화성시 283번 확진자 발생, 수원시 532번 확진자, 자택 및 주변 소독 예정, 서울시, 동선은 역학조사 중이며 홈페이지 참조라는 메시지가 연일 띵동 거리며 눈을 자극한다. 코로나19는 벌써 한 해가 넘어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온 시점도 됐으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아직도 두려움이 엄습해 오며 오늘도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해본다. 누우런 이파리를 떼어내듯 마스크를 갈아 끼우며 자유로웠던 지난날이 무척이나 그리운 시간들. 초록의 기운으로 우울감과 답답함을 모두 내보내 보려 창문가를 서성여도 보지만 그래도 기적을 선물 받고 싶은 12월이다. 모든 출산은 기적이다. 잘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할까. 끝까지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늘도 기적을 경험하고 계시거나, 기적을 경험한 모든 엄마를 응원한다. 장영희 에세이 제목처럼 살아온 것이 기적이요 살아갈 것이 기적이지 않은가.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고양이를 위한 변명

요즘 반려동물로 한껏 선호되는 고양이, 한데 필자는 고양이에 대한 상당 거부감이 있다. 우선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 눈이 무섭다. 또 밤새우는 울음도, 아기의 슬픈 그것과 비슷해 한껏 괴기스럽기만 하다. 고양이에 대한 필자의 편견은, 막연한 미신에 따르기도 한다. 오래전 한 소설에서 살아있는 고양이를 가마솥에 찌는 증묘(烝猫)를 알게 됐다. 실상 고양이에 대한 가련함이 우선해야 할 테지만, 그 장면에서 독살스러운 광인(狂人)의 눈빛이 고양이의 눈빛으로 혼동됐다. 부정적 편견의 또 다른 계기는, 일본 고양이다. 일본에서는 앞발을 치켜세우고 마른 세수를 하는 고양이의 작태가, 손님을 부르고 재복을 불러온다는 속설이 있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도자기 마네키 네코가, 일본 도처에서 요란하게 선호돼 왔다. 특히 고양이에게 일본인 특유의 감춰진 혼네 그럼에도 주변과 어울리는 타테마에가 있는 듯. 그리하여 어찌 저들과 닮았기에 고양이는 한층 터부시됐다. 비교적 최근에는 서양 발 고양이가 또 하나의 빌미를 주고 있다. 다름 아닌 살찐 고양이다. 살이 쪘기에 몸집은 비대하고 무척 느리다. 하지만 눈앞에 먹이가 있다면 그 동작은 모두에 앞서 민첩하다. 배가 부름에도 결코 양보하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에 주변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탐욕만을 채우는 일부 기득권 계층이, 살찐 고양이로 비유되고 있다. 또 그들의 탐욕은 스스로 제한되지 않는 무절제를 특성으로 하기에 법률로서 제한해야 한다고 살찐 고양이 법이 논의되기도 한다. 하지만 고양이에게 결코 잘못은 없다. 가만히 있는 생명의 눈을, 처연한 울음을 괜히 싫어했다. 이제까지도 고양이에게 나름 야만을 자행해 왔는데, 이제 또 다른 오명으로 덧칠할 기세이다. 분명 고양이는 느림과 민첩의 도도한 미학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도, 이를 부자의 천박한 탐욕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에 대한 오랜 편견을 쉬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의 살찐 고양이 오명은 벗게 해주고 싶다. 그 오명을 벗기 위해서 고양이로 비유되는 그 사람들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법으로 강제되기 이전이라도 천박한 탐욕을 조금이라도 버려야 한다. 적당한 욕심이 계속되기 위해 모두의 안전이 선행돼야 함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주변을 둘러보고 배려하는 노력이 반드시 앞서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고양이가 아니야, 바로 사람이야.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K-방역 선도국에는 ‘씨름 전용 경기장’이 없다

한국 씨름의 역사는 약 1천600여년이나 된다. 과거부터 단옷날이나 민속 명절이면 전국 각지에서는 씨름대회가 열렸다. 모내기 철이 다가오면 저수지의 물을 어느 마을에서 먼저 사용할 것인가를 두고 마을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써 씨름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민속씨름이 출범하던 1983년에는 이만기라는 천하장사를 배출하면서 씨름이 민속놀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대중스포츠로 다가섰다. IMF 한파로 민속씨름단이 해체되던 아픔 속에서는 이를 안타까워하는 국민이 많았고, 2011년에는 국회가 직접 나서 씨름 진흥법을 통과시키며 음력 5월5일 단오를 씨름의 날로 지정하는 역사적인 일도 있었다. 또 문체부에서는 씨름을 담당하는 부서를 두고 씨름협회에 예산을 지원하는 등 씨름진흥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돌이켜 보면, 씨름은 정부와 국민으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씨름협회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파벌싸움으로 인한 분열을 반복하며 씨름을 활성화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씨름이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스포츠라고 자부하면서 그에 맞는 전용 경기장 건립의 문제에서만큼은 서로 말을 아낀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주변국을 보면, 일본은 공익법인 일본무도관에서 최대 1만4천471명을 수용하는 전용 경기장을 소유하고 있고, 스모의 상징적 공간인 양국국기관은 1만1천98명을 수용하는 전용 경기장이 있다. 유도의 상징적 공간인 강도관은 지하 1층 지상 8층의 건물에 교육도장과 중앙도장이 있다. 또 중국의 중국무술협회는 중국전통무술을 관리하며 올림픽을 개최했던 우슈 전용 경기장을 보유하고 있다. K-Culture와 K-방역이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시점에서 씨름은 아직 전용 경기장조차 갖추지 못한 것을 보면, 그동안 전용 경기장 건립을 위한 씨름인의 의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된 이상 씨름의 상징적 공간인 전용 경기장 건립의 문제는 이제 심도 있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특히, 씨름협회가 씨름 내실화와 세계화에 관심을 높이고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가맹을 통해 국제적인 스포츠로 도약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시점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문체부도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 계획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인천시론] 인천의 친환경 정책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

박남춘 인천시장이 친환경 자원순환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며 쓰레기로부터 인천 독립을 선언했다. 공언했던 대로 2025년 수도권매립지를 종료하고 발생지 처리 원칙에 충실한 환경정의 구현과 미래세대에 녹색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자원순환정책 대전환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천시가 자체매립지와 소각장 건립 사업 후보지 공식 발표하는 등 사실상 독자노선을 본격화하자 그동안 합의문 단서 조항만 믿고 매립 종료에 소극적이었던 서울, 경기 등 각 지자체는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기준 연간 서울 143만t, 경기 125만t에 이르는 폐기물이 앞으로 갈 곳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로 수도권매립지가 사용 종료되면 수도권 특히 서울과 경기의 쓰레기 대란은 불을 보듯 뻔하다. 쓰레기를 반입하거나 이를 막으려는 지자체 간 충돌과 갈등도 우려된다. 인천 내 상황도 복잡하다. 인천시는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매립지에 불연성 폐기물과 소각재를 매립할 예정이다. 즉 소각장 설치가 필수 전제가 된다. 쓰레기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10개 군구별로 1개씩 소각장을 지어야 하지만 재정 절감과 효율성을 고려해 자원순환센터라는 명칭으로 권역별 광역소각장이 들어선다. 하지만 자체매립지로 결정된 옹진군을 비롯해 광역소각장이 신설되는 중구, 남동구, 강화군 등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자체는 즉각 반발했다. 소각장 이전폐쇄를 기대했지만 시설 현대화를 통해 기존의 청라, 송도소각장을 연장 사용하게 될 서구와 연수구 역시 마찬가지다. 각 지자체가 대표적 혐오시설인 소각장 건립을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가 자기 집 앞에서 쓰레기를 소각하고 재를 묻는 것을 반기고 환영하겠나? 그러나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쓰레기를 누군가는 처리해야 한다. 인천과 비슷한 규모의 도시, 일본의 요코하마에서는 40년 전부터 쓰레기를 직매립하지 않고 있다. 주로 소각 형태로 폐기물을 처리한다. 그래서 도시 내 소각장이 많다. 기반시설이자 생활필수시설로 한 도시에만 소각장이 6개나 있는 곳도 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처럼 소각장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주민들의 사랑과 관광객을 끌고 있는 곳도 있다. 중국 역시 경제중심도시 상해 푸동에 세계 최대 규모의 소각장을 건설하고 있다. 소각 형태로 바뀌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다. 박 시장은 스스로 자체매립지, 소각장 문제는 재선이 힘든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 수도권매립지 종료와 자원순환정책의 대전환을 위해 총대를 메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처럼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는 일. 인천시의 친환경 폐기물 정책과 박 시장의 행보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경기시론]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

20세기 뛰어난 철학자인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성당을 관리하는 아버지와 농부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가난으로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자 메스키르히 성당의 신부의 도움으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던 중 건강 악화로 인해 중단하게 되고, 이후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늘 고민하는 모습을 그의 철학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존재, 시간, 죽음 등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철학을 정립했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을 인간의 죽음과 연관지어 설명했는데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이다라고 말하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언젠가 죽음에 다다르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고, 불로초를 찾아 영원한 삶을 꿈꾸던 중국의 진시황도 불과 49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죽음은 삶과 대립되어 보이는 것 같지만 사실 삶의 여정 가운데 죽음이 포함돼 있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이데거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죽음에 대해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의 철학을 해석하자면, 인간은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기한이 있는 삶을 살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삶의 본질을 잘 살펴서 긍정적으로 매 순간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각자의 인생은 언젠가는 죽는 날이 정해져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날까지를 향해서 살아간다. 따라서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늘 반성적으로 고찰하고 앞으로 주어진 시간 속에서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삶의 자세이다. 인간은 삶을 뒤돌아 보며,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왜 내가 그때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내가 왜 열심히 노력하며 삶을 살지 못했을까! 등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때로는 죄책감을 갖고 절망하고 괴로워한다. 인간의 모습이다. 지난 시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교훈으로 삼아 삶을 살아가고, 후회되는 일 중 돌이킬 수 있는 일에 대해서는 용기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여 과거 속에 벗어나 현존하는 인간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존재로서 반복되는 실수를 피하고 진정한 삶을 위해 하이데거의 생각에 귀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이창휘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팀장

[경기시론] 우리의 미래는 안전한가?

일상을 바꾼 코로나19. 필자의 교육원에서 함께 나눠 먹던 한 끼 식사가 너무도 그리운 오늘이다. 코로나19 장기화는 우리의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꿨다. 마스크를 착용해야 외출을 할 수 있으며, 상대방 감정은 마스크에 가려져 알기 어려워졌고 악수를 청하는 것은 실례가 되었다. 세계의 출산율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와 같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싱가포르는 코로나19로 인해 한시적이지만 일명 코로나19 출산 장려금을 내놓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필수가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소모하면서 다른 사람을 상대하기 싫다는 가치관도 더 가속화되어 확산 중이다. 편의점과 마트에서 각종 반찬과 식사, 밥, 면류 등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해동해서 조리 즉시 섭취가 가능하다. 요리를 못해도 된다. 빨래는 세탁기나 빨래방에서 해결한다. 세탁소에서는 다림질이나 옷 관리도 해준다. 신발 빨래도 가능하다. 이렇듯 혼자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정세균 총리가 말한 코로나19가 미증유 상황이라면 필자는 출산 기피가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본다. 이를 그린 영화인 Childen of Men을 얼마 전 봤다. 2027년 영국 런던. 이 세상에서 가장 젊은 18세 4개월 된 디에고가 사망했다는 뉴스로 영화는 시작된다. 필자에게 눈에 띄는 명장면이 몇 있다. 하나는 주인공 테오가 권력자를 방문했을 때 앞으로 100년도 되지 않아 미술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어째서 그것들을 모으냐? 는 질문을 한다. 이에 나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라고 답하는 권력자와 나눈 대화이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미래를 지키기 위해 조금의 힘이라도 더하는데, 그 누군가는 현실만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지금이 미래와 겹쳐 보였다. 또, 미래호(Tomorrow)라는 인간 프로젝트 배를 찾아가던 중에 흑인 소녀가 딸을 낳는 장면이다. 환경오염 등으로 전 세계가 불임인 세상에 생긴 아이. 아이를 지켜 주려는 사람들.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적 억압에 반군이 일어나고, 백기 든 민간인들마저 영국군이 사살하는 아비규환 현장. 아기를 데리고 계단에서 마주친 영국군과 반군이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에 사격을 멈추고 전쟁을 멈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지옥 같은 곳도 평화를 주는 아기.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지켜라는 말이 필자의 가슴에 다시 사명처럼 밀려왔다. 드디어 미래호(Tomorrow)가 아기와 아기엄마를 발견하면서 영화는 끝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2019년 3월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117년 대한민국 인구는 3천181만명 가량이고, 최악에 1천169만명이 될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가 고령화로 인해 복지가 어려워졌다고 자살약과 항우울제를 배급하고 복용을 권고하는 끔찍한 인간 종말을 보여 준 영화는 영화일 뿐인가. 과연 우리의 미래는 안전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우리 마당의 참 광대를 대망하며

마당, 사람들이 다소 낯을 가리기에 금세 하나로 뭉쳐지지 않았다. 이때 마당의 각자를 너름새 있게 하나로 엮어 내는 이가 광대였다. 서먹한 처음에 질펀한 해학 그리고 촌철살인의 풍자로써 마당의 한 정서를 유도했다. 광대는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의 하나 됨만을 지향해 온전히 자신을 죽였다. 광대의 희생으로 마당의 각자는 마음을 열고 마당의 우리가 되는 것이었다. 오랜 동안 각자도생의 목표만을 쫓아 너무도 바빴기에 잠시 해찰할 겨를도 없었다. 하여 마당의 하나 된 삶은 전혀 꿈꿀 수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에게도 마당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그 마당에서 우리는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으로 하나의 정서를, 하나의 생각을 만들 가는, 우리 연대의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마당이 극성스레 열리고 있다. 분명 모두가 하나 돼 우리를 지향해야 할 마당이어야 한다. 한데 그 마당에 자신이 처한 입장만을 고집하는 앙칼진 목소리만이 그득하다. 그 목소리는 누군가를 적대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는 점차 악다구니가 되어 간다. 그리고 대척된 상대방의 목소리도 또 다른 악다구니가 돼 서로 쟁명(爭鳴)한다. 소리만이 아니다. 이제 서로 다다를 수 없을 만치 거리마저 멀어진다. 어찌 그 악다구니가 서로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그 거리는 상당하다. 우리는 터에 따르는 고유의 지평을 가진다. 지평은 세상을 보는 안목이고 또 뭔가를 결정하는 나름의 토대이다. 하여 각자의 지평은, 서로 다른 부분도 일부 있으련만 분명 서로 같이 하는 부분이 더 많다. 한데 지평이 대립하는 경우, 공유 지평은 대체로 무시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지평만이 부각된다. 분별되는 지평으로 각자는 첨예하게 대립하기만 한다. 다툼으로 각자의 지평 나아가 개인이 차츰 왜소해 지는 지점이다. 공유의 동질감을 바탕으로 서로 다른 부분을 조화로이 수용함으로써 더 성숙한 개인 나아가 하나 된 우리로 나아가는 지평 융합의 기회를 저버리는 분명한 퇴영이다. 악다구니 그득한 그 마당에서 하릴없는 필자는, 소리가 클수록, 거리가 멀수록, 벽이 높을수록 필경 그 끝은 있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그리고 지평융합으로 더 큰 하나가 돼가는 우리 마당을 그려본다. 또 그 마당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우리 연대를 배태(胚胎)하는 현묘한 광대의 출현을 꿈꾼다. 협량한 자기 주장이 아니라 격조 있는 해학과 지혜로운 풍자를 구사하는 참 광대를 대망하는 것이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씨름’ 세계화 위한 유네스코 축제 만들자

세계 각국에는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민속축제가 있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Rio carnival)과 독일의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그리고 스페인의 토마토축제(La Tomatina) 등은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축제로 유명하다. 또 유네스코에 등재된 무예축제로는 몽골의 나담축제(Naadam festival)와 터키의 크르크프나르 오일레슬링축제(Kırkpınar oil wrestling festival)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신스카알카축제(Sinjska Alka)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몽골의 나담축제는 벌써 세계 10대 축제로 성장했다. 축제가 열리는 7월 11일부터 13일은 대통령과 국민은 물론 이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모여든 해외 관광객이 울란바토르(Ulan Bator) 경기장으로 모여들기 바쁘다. 터키의 크르크프나르 오일레슬링축제는 659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스탄불에서 두 시간 반 거리의 에디르네(Edirne)에는 축제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로 진풍경을 이룬다. 또 크로아티아에서는 중세시대를 연상케 하는 신스카 알카 마상축제가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다. 대통령과 추기경이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내륙의 작은 도시 신(Sinj)을 방문하고, 대회에 참가한 기사들이 말을 타고 입장하면 이를 뒤 따르는 악단의 행렬과 길가를 가득 메운 수많은 관광객이 이 대회의 긴장감을 더 높여준다. 우리나라에서 이 무예축제들과 견줄만한 유네스코 축제로는 천하장사 씨름대축제가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전통과 민속놀이문화를 강조한 축제라기보다 단지 씨름경기라는 점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씨름축제가 세계적인 축제로 발전해 나갈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BTS와 블랙핑크를 앞세운 K-POP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치솟고 있고, 외국인들의 한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점을 기회로 생각한다면 씨름 유네스코축제는 코로나19 이후 세계적인 축제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다. 11월26일은 씨름이 유네스코에 등재된 날이고 27일은 조선씨름협회의 창립기념일이다. 이를 고려하여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와 씨름 유네스코축제를 연계한다면 다른 국가의 축제 못지않게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민속놀이인 씨름이라고 말하면서 아직 대통령과 총리 등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던 씨름경기장인 것을 생각해본다면, 향후 대한씨름협회와 문체부는 대통령과 총리 등이 함께하는 씨름 유네스코축제, 또 씨름 세계화와 방문객 유입 증가를 위한 축제를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하버드대학 교수 마이클 샌델의 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정의라는 도덕적 가치에 대해 탐구하는 열정을 보였을 것이다. 정의의 사전적인 의미는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이다. 이러한 정의의 개념은 아마도 누구나 인정하고 절대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정치와 사회의 문제를 놓고 보면 정의의 개념이 제각각이고 상대적인 개념으로 적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자에게는 정의롭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정의의 개념은 다수가 공감하는 주장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여야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현안을 살펴보면, 진영의 논리에 따라 정의의 개념이 달리 적용된다. 진영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과정에서 정의라는 단어의 사용은 적절해 보이지 않기도 하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정의의 개념을 상정해 놓고, 서로 상대방의 정의를 선택적이라고 비판하며 자신의 정의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의의 개념이 평가절하를 받지 않고 소중한 도덕적 가치로 남기 위해서는 올바른 단어의 사용이 필요해 보인다. 미국의 사회철학자 롤스(J. Rawls)는 그의 책 「정의론」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하며, 빈곤한 사람들의 복지를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두 가지 롤스의 원칙을 우리 사회에 적용하고 이와 더불어 법을 적용하는 데 있어 매우 엄중하게 해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입법, 사법, 행정의 영역에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하다면 국민은 국가를 신뢰할 수 없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듯이, 의사결정권자는 진영의 논리에 따라 판단을 하지 말고 항상 정의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서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정의로운 판단들이 하나씩 모여서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팀장

[경기시론] 아! 테스형~

함께, 더불어, 같이라는 의미가 또 다른 가치로 되살아나길 소망하며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감사한 오후다. 코로나19도 지켜 주고, 태풍에도, 찬바람도, 눈비에도 필자를 지켜 준 고향이다. 그러나 교통이나 병원, 교육 여건 등 감안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20년 전, 다리품을 팔며 이곳저곳 부동산을 기웃거리다 겨우 마련한 집. 지금은 국토부 아파트 실거래가 조회 사이트가 있다. 직접 부동산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집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그래도 한숨만 나온다. 나를 묶어 놓은 현실이 경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세종시 정부청사에서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때 흘러나온 국민의 힘의 송석준 의원이 튼 영상에 나온 노래 가사이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10억 하던 서울 송파 잠실엘스아파트가 3년 만에 22억원, 4.8억 하던 중계동 건영 아파트가 11억원. 서울은 물론 지방도시까지 안 오른 데가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서민들이 모두 고통 속에 있다. 이에 부동산 시장 안정과 주거복지 위해 노력을 많이 해 왔다고 하는 국토부 김현미 장관은 무엇을 어떻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없다. 사실은 인지하지만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다. 무엇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2000년대 인터넷 시대를 선도하던 야후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던 통신회사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몰락했다. 미래를 모르는 것은 정상이다. 어떤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데 마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착각하는 듯 보인다. 필자는 가을 추수하듯 태어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추수시기를 맞이할 사명이 있는 사람이다. 나무의 빛깔이 달라지더라도 그 본래의 나무의 역할은 변함이 없듯 우리도 우리 자리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결혼의 색을 자연스럽게 물들일 수 없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젊은 세대에 존재세를 부과해 거기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출산부부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향하면 어떨까? 많은 부분이 공익광고가 돼야 하는 이유인 듯하다. 사건사고보다 국민들이 알아야 할 권리와 그리고 의무 등 함께 익숙해져 더불어의 가치를 논했으면 싶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술자리에서 진 빚, 이후 갚아야 할 빚

몇 해 전 한 경험이 불쑥 떠올랐다. 마누라와 지동시장 마실, 올망졸망 순대집들이 정겨웠다. 단골집에 자리 잡고 곱창볶음과 소주를 시켰다. 안주 마련을 기다리는 중, 한 노부부가 옆자리에 앉게 됐다. 등산 후 저녁인 듯 노부부도 국밥과 소주 한 병을 시켰다. 투박한 집이라 식탁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볶음이 요란하게 끊고 있던 찰나, 옆자리 할아버지가 한마디를 하셨다. 국물이 우리 쪽으로 튈까 염려된다 다소 시비조의 내용이지만 할아버지의 표정은 연신 익살스러웠다. 철판 위치를 옮기려던 필자를 제지하며 할아버지는 괜한 소리를 했다면 그리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잠시 서먹한 가운데 왕후의 소주 그리고 시장통 곱창볶음으로 우리의 만찬이 마련됐다. 마누라는 약간의 볶음을 옆자리 노부부에게 건네면서 한 마디, 어르신! 양은 적지만 안주 삼아 드시라고 했다. 마누라의 호의는 이내 한잔 술로 화답됐다. 국밥을 나눠줄 수는 없고, 소주 한 잔 주겠다고 했다. 또 한 잔을 받은 필자는 그냥 말 수 없다며 할아버지에게 다시 한 잔을 드렸다. 이렇게 노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때로는 서로의 얘기에 집중하며 시장통에서의 우연한 한 잔을 즐겼다. 잠시 후 할머니가 우리 쪽으로 다시 오시더니 한마디를 건네셨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두 테이블 술값 모두 계산했다라고 하셔 필자는 놀라며 즉시 노부부를 따라나섰다. 계산을 한다면 우리가 해야지, 이건 아니다라고 했다. 한데 할아버지가 단호한 한마디를 하셨다. 우연히 만난 옆자리 젊은 친구에게 한 잔 사는 것이 즐거웠다고 하신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부담된다면 오늘의 채무를 더 젊은 누군가에게 이후 갚으라고 했다. 노부부의 후의를 통해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세대 간 불편이 일순 해소됨도 느꼈다.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이번 주말 지동시장 그 순대집으로 가서 젊은 누군가에게 빤한 수작해 질펀한 한 잔을 마시고 그 술값을 대신 내줘야겠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여자씨름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지난 4일 위더스제약 2020추석장사씨름대회가 막을 내렸다. 이 대회에는 남자선수뿐만 아니라 꽃가마 주인의 자리를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여자선수들도 출전했다. 여자씨름단이 창단되며 처음 도입된 여자부 단체전 경기와 매화급(60㎏ 이하), 국화급(70㎏ 이하), 무궁화급(80㎏ 이하)으로 진행된 체급별 경기는 그 열기가 남자경기 못지않다. 우리나라에서 여자씨름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 때 1936년 7월8일 부산일보에 의하면, 경성에서 여자씨름대성황(女角力大盛況) 여흥대인기(餘興も大人氣)라는 기사에서 여자씨름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보인다. 용인대학교 산학협력단(2015)의 씨름진흥 기본계획연구 용역에 의하면, 1938년 전북 군산의 옥구, 1940~50년대 경주, 안동, 마산, 진주, 김천, 고령, 의성 등의 영남 지방에서 여자씨름 대회를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 5월24일 연합신문에 의하면, 요즈음 여자씨름대회가 성행하여 일반의 비난을 자아내게 하고 있던바 작(作) 23일 서울특별시 경찰국에서는 동 씨름대회 주최자 측에 대해 금후는 풍기 상 좋지 못하니 일제히 중지하라는 중지령을 내리었다는 기사가 있다. 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한다면 여자씨름은 1930년대부터 시작됐고 지역별로 축제가 열릴 때 여자씨름 경기가 함께 열린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현재 여자씨름은 2011년 구례군청반달곰씨름단을 시작으로 콜핑, 거제시청, 안산시청, 화성시청까지 총 5팀이 창단됐다. 또 여자씨름단을 창단하려는 시군청들이 있고 생활체육으로 씨름을 배우고 대회에 참가하는 각 지역의 여성 동호인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여자씨름은 학교체육이나 스포츠클럽이 발달하지 못해서 수준 높은 선수를 육성하는 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자씨름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스포츠클럽의 여자씨름 프로그램 확대와 제도권 안에서 선수 육성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현재 여자씨름단에는 씨름을 전문으로 배운 선수는 일부이고 유도나 레슬링 등의 타 종목 출신 선수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여자선수를 육성하고 생활체육으로 폭을 더 확대할 방안을 대한씨름협회는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용인대학교에서는 여자씨름 선수도 체육우수자 특별전형으로 선발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초중고의 여자씨름 인프라가 구축돼 여자씨름의 활성화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혐오와 역지사지

최근 우리사회에 혐오표현이 급증하고 있다. 혐오의 사전적인 의미는 미워하고 싫어한다라는 뜻으로, 혐오표현은 다양한 이유로 어떤 개인 혹은 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폭력 등을 함으로써 차별을 조장하는 표현을 말한다. 사람 사이에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존중의 문화가 혐오표현의 급증으로 인해불신과 차별을 낳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출신지역, 국가 등을 이유로 하는 혐오표현이 나타나고 있다. 특정지역 출신 학생에게 코로나야, 바이러스야라고 지칭하고, 외국에서 한국인에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옮기지 말라며 시비를 걸고 폭행한 사례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현상은 인류의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집단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 혐오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존엄성을 부인하는데 발생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은 자신만의 존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개인주의로 타인과 더불어 포용과 존중의 정신이 결여된 것이다. 혐오현상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이 시대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 필요하다. 고대 중국에서 하우와 후직이라는 두 사람은 국가의 일을 돌보는 관리는 자신의 가족보다 백성의 삶을 생각했으며, 공자의 제자 안회는 세상 사람들이 어렵게 산다고 하여 하루에 밥 한 그릇과 물 한잔을 먹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이 말과 행동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충분히 생각한다면, 혐오현상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신이 사용한 부정적인 언어의 사용은 미래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올 수 있다. 인간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타인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인권의 가치를 자아와 타자를 구분하여 적용할 수 없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하고 있듯이, 어떤 국민이 아닌 모든 국민은 존재 자체로서 존엄을 지닌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교차점에서의 쉼

추석(秋夕)하면 어떤 장면이 떠 올려 지나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필자는 모태신앙인이다. 그래서 세시풍속인 차례를 지내는 것을 본적이 없고 할머니와 송편을 빚으며 친척들 맞을 준비를 했었다. 결혼은 나의 위치와 자리를 달라지게 했다. 시댁은 종교가 없다. 아버님께서 차남이라 차례도 지내지 않으신다. 그 대신 가족들이 모여 조촐하게 먹을 음식을 준비한다. 조촐하다지만 준비하는 손길은 분주하다. 추석에 얽힌 여러 가지 추억들을 소환해 냈다. 많이도 달라졌다. 올해는 더 추석 같지 않은 추석이 될 것 같다. 코로나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 미래에 추석의 문화로 자리 잡을 수도 있겠다. 공간 속에 시간이 머물러 있다는 드라마 대사가 떠오른다. 그러면서 추석(秋夕)을 놓고 세상에 없는 정답을 찾아내려고 더 많은 생각들이 교차(交叉)한다. 달이 유난히 밝아 좋은 명절이라는 추석이다. 가족들이 다른 자리에서 보던 저녁달을 한자리에서 함께 바라 볼 수 있는 만남의 명분이 될 수 있는 추석이 역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가을 달빛을 함께 즐길 수 있길 소망해본다. 마스크를 벗는 평범한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나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고통은 나만 받아도 된다. 사소한 것조차 일상이 되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19이지만 그 덕분에 잊고 살았던 평범함이 감사하다. 이 세상에서 나를 보고, 알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의 어려움을 남의 탓으로 돌려야 편안해 지나? 잘 못 된 경험이 이미 과거의 경험이 돼 버렸다. 그런데도 그 잘못된 경험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나 일에 있어 많이 고통스럽다. 경험적 고통으로 다른 사람을 의심하며 불신한다. 사람의 관계를 개선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나의 삶은 피폐해져 간다. 이를 깨닫기까지 많은 길을 돌아왔다. 현대인은 정신병자다. 이런 생각을 하니 이번 추석만큼은 또 다른 나를 기획해 봐야겠다. 이제는 코로나19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 속에 미래를 생각하는 인구정책에 출산(出産), 출생(出生)을 위해 조금의 쉼이 필요하다. 다시 원점에서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보길 원하는 것이다. 지금은 정신과 육체 둘 다 여유가 필요한 때다. 함께할 수 있는 힘 그리고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이 강조돼야 한다. 사회나 국가가 힘들 때 함께 선두에 나설 수 있는 힘이 용기요, 우리의 출발점이 아닐까?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코로나 시대 교실 풍경과 하나의 다짐

코로나19로 모든 일상의 살림살이가 혼란스럽다. 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혼잡한 등하교, 좁은 교실에서의 수업 그리고 다양한 과외활동 등에서 불의의 감염이 염려되기에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에도 인터넷 기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강의를 학생들은 싸강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사이버 강의를 축약해 부르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데 숨겨진 다른 의미도 있지 않을까? 캠퍼스에서 마음껏 발산돼야 할 젊음의 발랄이 뜻하지 않은 횡액에 의해 절제돼야 하는 것. 아무런 인간적 교류 없이 기계 장치로 전해지는 차가운 수업이 계속돼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인생 절정기인 대학생활이 마구 망가졌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감수는 해야 할지언정 그저 싸가지(?) 없는 상황은 아닐까. 싸강으로 매도됨에도 모든 교수는 나름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하고 있다. 필자도 지금까지 수십 개의 동영상을 제작해 왔다. 한 번은 조교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의 모든 동영상 첫 마디가 자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전에 인지하지 못했던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외마디, 자~. 그리하여 필자의 수업은 자수업이었다. 코로나19로 여러 상념을 가지게 된다. 20여년 교수생활 중 초유의 경험을 하면서 필자의 교수 역(役), 강의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 등등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이제까지 필자가 교수됨, 필자가 강의함 그리고 필자가 학생과 관계맺음을 오만하게 생각해 왔었다. 한데 학생이 없으니 교수역도, 강의도, 관계맺음도 없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 사태로 인한 우리 학생들의 비틀거림, 사소한 모든 것에서의 불편, 당연한 것의 박탈 그리하여 너무도 부당한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그 비틀거림, 불편, 박탈, 아픔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지혜롭게 극복해야 한다. 하여 이들을 역설적으로 코로나학번이라 부르고자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이들에게서 느끼는 안쓰러움을 오랫동안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쓰러움이 있기에 반드시 이후에 미처 해주지 못했던 것을 더 많이 해주리라 다짐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동안 이들과 캠퍼스에서, 강의실에서 보다 많은 만남을 가지며, 더 많이 교류하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해야 한다. 이계존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활쏘기’의 유네스코 등재는 가능한가

활쏘기와 씨름, 택견은 우리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자 전통무예다. 이 무형유산들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민족정서에 부합하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씨름과 택견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 그러나 활쏘기는 씨름과 택견보다 더 오래된 신석기시대의 유물 울산 반구대 암각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이 돼서야 국가무형문화재 제142호로 지정됐다. 궁도(弓道)인들 사이에서는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상 유네스코 등재를 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대한궁도협회는 오는 19일 활쏘기의 유네스코무형문화재 세미나를 강행하기로 했다. 이번 세미나는 궁도인들의 의지를 국민들께 알리고 문화재청에서 활쏘기를 유네스코 등재 신청종목으로 선정해달라는 요구사항도 포함돼 있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중인만큼 이번 세미나의 참가인원은 발표자와 토론자들로만 최소화하고 유튜브를 통해 생방송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3월 세미나를 한차례 연기했던 터라 더 이상 늦출 수만은 없는 실정이다. 세미나가 더 늦춰지게 되면 문화재청의 2024년 유네스코 등재 신청종목 선정 심사에서 활쏘기가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2022년은 한국의 전통 장 문화가 유네스코 등재 신청 종목으로 선정됐고, 20102012년까지 유네스코에 접수한 뒤 계류 중인 무형유산 23건과 문화재청의 유네스코 등재 신청 공모에 응한 무형유산 9건 등 총 32건이 우선 유네스코 등재 신청 대상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활쏘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늦었던 만큼 우선 유네스코 등재 신청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갈 길이 매우 바쁜 상황이다. 활쏘기의 경우 유네스코 등재 기준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전통무예진흥법이 있고 궁도와 궁술, 국궁 등의 단체는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사전 동의와 의지가 있다. 또 활쏘기는 민속놀이와 전통무예로서 문화공동체에 기여해왔고,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상 적절한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활쏘기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활쏘기는 걷거나 달리면서 혹은 서서 활을 쏘는 보사(步射)와 말을 타면서 쏘는 기사(騎射)가 있다. 하지만 국가무형문화재는 보사만 지정됐다. 터키는 보사와 기사 모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이 됐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기사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활쏘기의 유네스코 등재를 기원해본다. 공성배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