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출신 관료

문화공보부가 사이비기자 단속 지침을 시달하면서 사이비기자 행태 사례를 들었다. 공문 빽빽이 나열된 사례 중 ‘일수기자’란 게 있었다. 당시 일반 행정기관엔 과비(課費)란 걸 썼다. 과비는 바닥나고 추경은 멀었고 하면 사채를 빌려쓰곤 했다. 이를 아는 출입기자가 과비로 사채를 빌려주는 것이다. 출입처에 돈놀이를 하니 떼일 염려가 있을리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과비로 빌려주는 출입기자의 사채는 평소 각 과별로 돌아가며 일수돈 걷듯이 ‘돈 좀 달라’며 얼굴에 쇠판 깔고 모은 돈인 것이다. 30여과가 되므로 1개과에 한달 걸러 손을 내밀곤 한 것이다. 이리하여 기자실서도 외면되던 사람이 어떻게 문공부 서기관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그 짓을 했던 행태를 사이비기자 사례로 시달한 공문을 받아본 공무원들이 실소를 터뜨려 화제가 됐었다. 전두환 정권이 막 들어서고 나서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의 언론 탄압은 언론계 출신들이 더 했다. 앞서 말한 ‘일수기자’야 서기관으로 들어 갔지만 언론계에 있다가 고관현직의 벼슬자리에 오른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그래서 정권에 충성심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던 지 언론 탄압에 한 술 더 떴다. 이리저리 이모저모로 숱하게 언론을 괴롭힌 전두환 정권의 언론정책 담당자들 거의가 다 언론계 출신으로 자신이 몸았던 언론에 권력의 칼날을 무소불위로 휘둘러 댔다. 정순균 국정홍보처장의 외지 기고문 파문을 보면서 불행하게 여기는 것은 그 역시 모신문사의 간부급 언론인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영문 번역에 잘못된 점이 있다는 해명도 참작하고 싶고, 언론 탄압의 의도가 꼭 있었다고도 믿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1차적 사실 확인도 않고 기사쓰는 경향이 있다’는 등 무책임하고 파렴치하게 폄훼한 것은 유감이다. 언론인 출신의 윤리로나 고위 공직자의 품위로나 한국 언론을 왜곡하는 글을 굳이 외지에까지 기고한 것은 심히 당치않다. 국정홍보처장이 아니고 나라 망신을 자초한 ‘국치홍보처장’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임양은 주필

'복지만리'

김영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로 1941년 3월 태평레코드에서 발표된 ‘복지만리’는 지금도 중년층 이상들이 애창하는 대중가요다. “달 실은 마차다 해 실은 마차다 / 청대콩 벌판 위에 휘파람을 불며 간다. / 저 언덕을 넘어 서면 새 세상의 문이 있다 / 황색 기층 대륙길에 어서 가자 방울소리 울리며(1절) //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쌈터다 / 파묻힌 성터 위에 청노새는 간다 간다 / 다함 없는 대륙길에 빨리 가자 방울 소리 울리며(2절) // 노래를 부르자 뛰노는 흑마여 / 가슴에 고동치는 혈관의 피 / 하늘은 자주색 싸락눈 싣고서 / 동터 오는 광야의 저쪽으로 달려 가세나” 이 노래는 제목이 같은 영화 ‘복지만리’의 주제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전창근이 감독했고 전창근 윤계선 전옥 전택이가 출연했다. 그런데 이 ‘복지만리’가 친일 유행가로 거론되고 있는 것은 재고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가사 3절이 일본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1940년대 식민통치 압박을 느낄 수는 있지만 내용 자체는 노골적인 친일과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1941년 3월 개봉된 영화 ‘복지만리’는 일제의 정책에 협력한 어용적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래도 민족적 색채 또한 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러나 영화 줄거리는 결과적으로 만주 이주를 미화하고 장려했다. 영화 ‘복지만리’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노래 ‘복지만리’는 음반판매량 5만장을 돌파했다. 1940년대에 발표된 대부분의 친일 유행가들이 적은 판매고를 기록했지만 ‘복지만리’가 5만장이상 판매됐다면 대단한 인기였다. 식민정책에 순응하는 영화의 주제가로서 비록 한계는 있었지만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주를 이민지가 아닌 해방공간으로 마음 속에 간직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2절 가사에 ‘백마를 달리던 고구려 쌈터’라고 나타낸 것은 친일이 아닌 한민족의 염원을 표출한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작사자는 ‘독립과 주권을 회복한 신천지를 복지만리로 상징’했을 것 같다. /임병호 논설위원

이데올로기의 벽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1886~1947)은 1918년 중국 상해에서 청년 동포들을 규합하여 민단을 조직, 광복운동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신한청년당 총무간사에 취임하기도 하였다. 1919년 3월 임시정부 수립에 가담하여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다. 1933년 조선중앙일보사 사장이 돼 언론을 통해 항일운동을 하였다. 1934년 조선체육회장에 취임하였으나 1936년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말살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사가 폐간되자 사장직을 물러났다. 1944년 9월 일본의 패전을 예상하고 조선건국동맹의 지하조직을 전국적으로 확산, 그 위원장에 취임하여 광복에 대비하였으며 10월에는 출생지 경기도 양평 용문산 속에서 농민동맹을 조직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 그 위원장이 되었고, 9월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포, 스스로 부주석에 취임하였다. 이어 10월에는 인민당을 결성, 당수직에 앉았다. 몽양은 1946년 10월15일 신민당과 공산당과의 공동 명의로 ‘좌우합작지지’ ‘입법기관설치 반대’라는 3당합동 결정서를 발표하고 11월 사회노동당을 조직하였다. 1947년 5월 사회노동당을 근로인민당으로 개편, 밖으로는 영국 노동당좌파, 안으로는 좌우 중간노선을 모색하였다. 1947년 7월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한지근(韓智根)이라는 19세의 청년으로부터 2발의 권총사격을 받아 절명했다. 몽양에 대한 소개를 보면 이희승 편저 국어대사전에 독립운동가·언론인으로, 민족대백과사전엔 독립운동가·정치가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정작 국가보훈처에선 몽양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도좌파’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몽양의 후손들이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을 냈지만 ‘아예 심사를 안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일제하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인정해 1995년 이동휘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 적이 있지만 광복 이후까지 사회주의 색채를 유지한 경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독립운동 여부가 독립유공자 서훈의 기준이 돼야 할텐데, 분단된 현실이 안타깝다. /임병호 논설위원

매국의 극치

창덕궁(昌德宮·사적 제155호)은 처음에는 이궁(離宮)으로 창건됐다. 그러나 임진왜란때 정궁(正宮) 경복궁이 소실된 후 복구될때까지 300여년간 역대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봄으로써 본궁 구실을 했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다고 하여 ‘동관대궐’ 또는 ‘동궐’이라고 불렸다. 조선 초기 제3대왕 태종이 즉위하여 도성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조성을 명하여 1405년(태종5)에 완성됐다. 이때 도성에는 이미 종묘(宗廟)·사직(社稷)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조성돼 있어 이 궁은 하나의 별궁(別宮)을 도성내에 두기 위하여 창건한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제9대 성종이 즉위하고부터는 왕이 창덕궁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는 일이 많아졌고 특히 연산군은 재위중 주로 이 궁에서 정사를 봤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때 큰 화재를 당했으나 1647년(인조25)에 옛 모습으로 복구됐으며 효종·현종·영조가 창덕궁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지 2년 뒤인 1912년 창경궁(昌慶宮)과 함께 창덕궁인정전(仁政殿)과 후원(後苑)을 일반에게 관람하도록 하여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을 실추시켰다. 광복 후에도 시민에게 개방되었으며 1980년 그동안 훼손되었던 궁내시설을 정비, 관람을 제한하여 옛 궁궐의 면모를 지켜 오고 있다. 이 창덕궁을 한·일병합에 앞장선 친일파의 거두 이완용(1858 ~ 1926)이 3·1만세운동 직후인 1920년과 이듬해에 잇따라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에게 일본 왕실에 헌납해 이를 별궁으로 만들자고 요청했다는 문건이 얼마전 일본 국립공문서관에서 발견됐다. (일본이 경성에) 새로운 별궁을 만든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시간 또한 오래 걸리는 일임을 지적하면서 당시 창덕궁에 거주하던 순종을 아버지 고종이 살던 덕수궁으로 옮기는 대신 창덕궁을 (일본왕족의)별궁으로 개조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완용의 이런 요청에 대해 사이토 총독이 오히려 “(조선인들의) 반발문제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사료된다”고 거절했다니 아무리 고인이지만 일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을 입증하려던 이완용의 ‘친일 매국행위’가 생각할수록 가증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연예계 정치인

한동안 연예인들의 정계 진출바람이 있었다. 영화배우 이대엽씨(현 성남시장)의 3선, 탤런트 홍성우씨의 2선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비교적 근래인 14·15대 국회의원으로 탤런트 이순재, 최영한(최불암), 강부자, 정한용씨 그리고 작고한 코미디언 정주일(이주일)씨 등이 있었다. 16대 현역 국회의원으로는 영화배우 강신성일(신성일)씨가 유일하다. 근래의 지난 연예인 국회의원은 모두 한번으로 그쳤다. 이순재, 최불암, 강부자씨 등은 이미 브라운관에 복귀하여 연기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정한용씨(48) 역시 TV드라마에 곧 복귀한다고 한다. 오는 11월초부터 방영될 SBS 일일드라마 (최윤정 극본 안판석 연출) ‘흥부네 박터졌네’에서 호방한 방직공장 사장역으로 아내 역인 선우은숙씨와 함께 출연한다는 것이다. SBS의 정한용씨 픽업은 SBS 드라마를 총 기획하는 운군일 큰PD의 기발한 착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전히 변치않은 그다운 성격이다. 정한용씨의 드라마 복귀는 1995년 MTV ‘아파트’ 이후 처음이어서 8년의 공백기간을 깨게 된다. 벌써 20여년 전 일이다. 그 무렵 중앙 일간지에서 방송을 담당한 연유도 있었지만 함께 근무하는 부서에 정한용씨와 서강대 동창인 후배가 있어 그는 회사로 곧잘 놀러오곤 했다. 당시 신인 탤런트로 지적이면서도 소탈하여 서울 무교동 골목 대폿집에서 더러 소주잔을 나누기도 했다. 대중적 메시지를 전하는 성격배우가 되고싶다던 그와 그리고는 소식이 오랫동안 격조하던 중 어느날 신문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것을 안 것은 뜻밖이었다. 그래도 의정생활은 초선 치고는 괜찮다 싶었는데 역시 정치인으로서는 객관적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기왕 본업인 배우로 복귀하는 마당엔 더 옆길을 돌아보지 말고 정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인간사에서 국회의원도 좋지만 배우가 굳이 국회의원보다 못할 게 뭐가 있는가. 오히려 더 보람있는 면이 많다./임양은 주필

전화

1896년 임금이 거주하던 궁(宮)에 자석식 전용교환기가 설치되면서 행정용 전화서비스가 처음 시작됐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화는 1902년 서울~인천간 전화업무 서비스가 개통되면서부터다. 개통 당시 최초 가입자는 5명이었다. 1945년 광복 당시 국내 전화가입자는 4만5천명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에는 ‘청색전화’와 ‘백색전화’ 두 가지가 있었다. ‘청색전화’는 전화국에 신청한 뒤 몇 년을 기다려야 설치되는 것으로 남에게 양도할 수 없었다. 반면 ‘백색전화’는 개인소유여서 마음대로 팔 수 있었다. 서울 강남 개발이 불던 1970년대 중반 영동전화국내 백색전화 한대 값은 100만~120만원이었고 서울시내 일반 주택은 500만원 안팎이었다. 전화가입자가 1962년 12만명에서 1981년 326만명으로 급증했지만 여전히 회선공급이 수요를 따라 잡지 못했다. 강남 일부지역에서는 ‘백색전화’가 200만원을 넘기도 했다. 이같은 회선 부족은 1987년 ‘전국 전화 광역자동화사업’이 완성되면서 완전히 해소됐다. 6조7천억원이 투자됐던 이 프로젝트가 완료되면서 전화신규회선을 신청하면 당일 가설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시내·시외전화는 물론 국제전화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전화가입자는 1988년 1천만명을, 1997년에는 2천만명을 돌파했다. 1999년 KT(한국통신)와 하나로통신이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하면서 통신환경은 유선전화에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로 진화했다. 올해 2월말 기준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수는 1천70만명, 유선전화가입자 2천327만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수치다. KT는 지난해 9월 세계 최초로 차세대 네트워크(NGN) 핵심장비인 ‘액세스 게이트 웨이’를 대전 유성지점에 개통했다. 2007년 NGN 구축이 완료되면 새로운 디지털 라이프가 열릴 것이라는 게 KT의 설명이다. 그때는 또 얼마나 세상이 변해 있을까. 두려워질 정도로 문명이 급속으로 발달하고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현대차

평균 연봉 5천여만원 확정, 연평균 휴일·휴가 일수 166~173일로 세계 최고 수준 전망, 노조의 경영권 일부 참여, 무노동 유임금 등등 현대자동차의 근로자들 처우 내용이다. 이번 노사분규로 연봉을 무려 1인당 연평균 1천만원 인상을 따내어 5천만원 대를 돌파한 현대차를 보고 많은 영세 노동자들은 “정말 환장하겠다…”며 위화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초고임금에 기록적인 휴일·휴가를 즐기고도 과연 경쟁력에 문제가 없느냐가 관심의 초첨이다. 지난해 순익이 1조4천440억원에 이르러 당분 간은 여력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그러나 마침내 고비용을 생산비에 포함시켜 자동차 값을 올리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부품 협력업체를 수탈하게 되면 위기가 불가피하다는 게 ‘여력관측통’ 역시 시인하는 현대차 전망이다. 특히 해외진출에 노조 동의를 의무화 한 것은 의사결정 지연으로 속도경영에 타격을 입어 200만대 해외생산에 차질이 예상될 것으로 보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재계는 해외공장에 노조 동의 같은 경영권 참여는 현대차가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어 놨다며 노조 견제권 강화 추진에 나섰다. 정부 역시 현대차 처럼 되면 기업하기가 힘들다는 인식으로 노측 파업에 대체 인력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측의 여러가지 대항권 보장의 법제화를 서둘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지나치게 이질화 하였다.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사주어 돈을 벌었으면 국익과 공익을 위해 재투자할 생각도 해야 한다. 현대차가 벌었으니까 너도나도 마음대로 떡 갈라 먹듯이 해도 된다는 발상은 나라 형편과 사회 감정에 비해 너무 동떨어 진다. 최고 수준의 고임금에 최고 수준으로 놀아가면서 과연 떡을 얼마나 오래 갈라 먹을 수 있을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현대차 글로벌 전략의 추이가 무척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눈물 화학방정식

‘눈물의 화학’이란 개념으로 분석하면 모든 눈물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세 가지 형태의 생물학적 눈물이 있으며 그 기능은 각기 다르다고 한다. 첫째, 지속적인 눈물이다. 이는 각막을 촉촉하고 깨끗하게 유지시켜 주는 일종의 자동 세척을 위한 눈물이다. 통상 5~6초 사이 매번 눈을 깜박일 때마다 지속적으로 흐르는 눈물로 하루 평균 1~2㎖에 달한다 .이는 먼지 등으로부터 각막을 보호하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접근을 막는 항생물질까지 포함하고 있다. 둘째, 자극에 의한 눈물이다. 양파의 이황화알릴 등 화합물이 눈동자와 접촉하면 이를 씻어내거나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셋째는 희로애락에 따른 감정의 눈물이다. 그런데 눈물의 성분을 정밀 분석하면 지속·자극에 의한 눈물은 물과 염분 외에 프레알부민, 알부민, 면역글로불린, 철과 구리 같은 중금속을 운반하는 단백질 등이 주로 들어 있다고 한다. 감정에 의한 눈물은 지속·자극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성분이 추가로 있는데 중금속 등을 운반하는 단백질 함량은 20%나 많고 프로락틴(젖이 잘 나오게 하는 황체호르몬), ACTH(스트레스의 저항력을 강화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 로이신 엔케팔린(고통을 없애주는 뇌속의 마약물질과 같은 엔도르핀의 중간체), 그리고 특히 중금속인 망간 등이 포함됐다고 한다. 즉 희로애락 감정에 의한 눈물은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화학물질이며 특히 중금속도 내보낸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에서 화학변화를 일으키는데 이것이 눈물과 섞여 다른 중금속과 함께 배출되기 때문에 한바탕 울고 나면 후련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눈물은 인간의 감정을 안전하게 저장하는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의 저수지’와 같겠다. 그 저수지의 수위는 갖가지 인생의 경험, 기쁨과 환희, 슬픔과 탄식, 절망과 분노 등으로 만수위가 돼 사방으로 출렁거리며 넘치곤 하는데 인류는 언제부터인지 이것을 눈물이라 일컬었다. 가슴에 고인 恨을 폭포수처럼 눈물로 쏟아내고 싶은 날이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한하운 문학상

‘나병 환자 시인’으로 생전에 세상의 화제를 모았던 한하운(韓何雲·1920~1975)의 작품 중 ‘전라도 길’은 특히 유명하다. 소록도로 가는 길에 쓴 詩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는 대목은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과 더불어 화자의 나병이 절망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언어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그 객관성은 화자의 비통한 체험에 대한 상상적 추체험(想像的 追體驗)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함경남도 함주(咸州) 태생인 한하운은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하고 함남도청 축산과에 근무했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악화로 사직하고 1948년 월남, 유랑생활을 하였다. 6·25전쟁 후 보육원장·출판사 대표·농장장·농업기술학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나환자 구제운동에 공헌했다. 다행히 나병이 완치됐는데 1949년 첫 시집 ‘한하운시초(韓何雲詩抄)’, 1955년 제2시집 ‘보리피리’,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펴냈다. 그의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성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로 유지한 특징이 있다. 또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였다. 이러한 한하운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국시연구협회, 월간 ‘시와 시인’, 도서출판 ‘청학’이 한하운 문학상을 공동 제정, 시상하고 있는데 올해 제4회 한하운문학상 대상은 수원에 거주하는 김우영(金禹泳) 시인이 수상했다. 김 시인은 육군 일등병 시절인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했다. 한하운 문학상이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전통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여름더위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계곡과 바다는 피서객들로 꽉 차고 고속도로는 어디를 가도 차량 행렬로 뒤덮였다. 이런 TV화면을 보면서 통풍이 잘되는 집 안방이나 거실에 큰대자로 드러누워 망중한의 휴가를 즐기는 실속파 피서도 있다. 삼복 중이니 더운 건 당연하다. 염제다 폭염이다 혹서다 하지만 대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오곡백과를 무르익히는 것이 찜통 더위다. 논물이 쩔쩔 끓어야 새파란 벼가 무럭무럭 자라고, 땅김이 뜨겁게 솟아야 밭곡식 또한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여문다. 우물속에 수박이며 참외를 시원하게 냉장시키던 시절에는 동네 정자나무밑 돗자리나 뒤뜰 감나무 그늘아래 대나무 평상에서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는 것도 참 좋은 피서법이었다. 이젠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시피된 세태이니 그같은 구식피서는 시골에서도 좀처럼 즐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도 좋지만 더위와 맞서는 망서(忘暑)는 더욱 좋다. 더위속에 비지땀을 뻘뻘 흘려가며 더위를 잊는 가운데 일하고 나서 멱감고난 뒤의 개운함이란 마치 하늘을 날을듯한 기분인 것이다. 덥다 덥다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여름이 거의 다 되어간다. 오는 8일이면 벌써 입추다. 그리고 15일은 말복이다. ‘모기 입이 무디진다’는 처서가 오는 23일이다. 다음달 11일이 추석이니 한달 남짓 남겨놓고 있다. 자연의 조화속은 바다의 조류 역시 오묘하여 오는 15일을 지나면 어디를 가든 어김없이 냉수대가 덮치기 시작한다. 해수욕도 다음 주말이면 사실상 종친다. 잔서(殘暑)를 피하는 산행이 많아지게 된다. 세월이 빨라서인지, 다 되어가는 여름 보내기가 아쉬운 생각이 든다. 계절은 태고적 법리따라 한치 어김없이 순리대로 가는데, 인간사엔 역리가 심해 이 여름 더위가 더욱 더 덥게 여겨진다. /임양은 주필

영웅 만들기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리진샤꾸’는 2차대전에서 일제 군벌이 만든 조센징(조선) 전쟁영웅이다. 우리 이름으로 이 아무개가 되는 ‘리진샤꾸’ 일등병은 남양 군도서 미군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다가 총탄이 떨어지자 육탄공격에 나서 총검으로 미군을 10여명이나 차례로 찔러 죽이고 장렬히 전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인 징병을 미화하기 위해 만든 허무맹랑한 얘기인데도 일제는 이를 교과서에까지 실었다. 수년전 중국 서남해에서 미군 정찰기에 측면 추돌해 추락사한 중국 공군기 조종사를 중국 정부는 영웅으로 급조했다. 임무에 끝까지 충실하다가 산화했다며 부인과 아들을 영웅 유가족으로 대접했다. 그무렵 부시 미국 행정부에 대한 강경책으로 중국은 기왕 죽은 공군 조종사를 중국의 인민단합에 구심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미국 여군 제시카 린치 일병은 부시 행정부가 만들어낸 전쟁영웅이다. 린치 일병은 당초 교전중 부상해 포로가 됐다가 특수부대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의 부상은 차량충돌 때문이었으며 구출작전도 과장된 연출인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럼에도 미국 정부는 지난 7월21일 린치 일병에게 청동성장·명예전상장·전쟁포로메달 등 훈장을 무더기로 수여했다. 연약한 여군을 전쟁영웅화 함으로써 미 국민의 대이라크 전승감 고취에 증폭 효과를 기하기 위한 것이다. 고도로 발달된 민주주의 사회는 다원화의 협동체이므로 영웅이 나올 수 없다. 만약 영웅이 나온다면 불행한 시대상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민주주의가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전쟁영웅을 만들어낸 사실은 실로 아이로니컬한 일이다. 한 시대의 시대상 이면에는 진실이 외면된 이토록 추악한 조작도 있다.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도 하지만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도 한다. 우린 어떤 시대에 사는가? /임양은 주필

내부의 권력다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판도라의 상자는 404가지 질병을 비롯, 화재 홍수 등 인간 세계의 온갖 재앙을 안겨주었다. 뚜껑을 열어서는 안되는 계명을 어긴 연유는 신(神)들의 권력 싸움이 발단이었다. 제우스신은 인간이 나쁜 짓만 하는 것을 응징키 위해 불을 몰수했다. 이틈을 타 제우스신에게 소외돼 평소 앙심을 품고 있던 거인신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인간에게 불씨를 전달한 것이 화근이 되었던 것이다. 결국 신들의 싸움 끝에 판도라의 상자가 인간 세계에 전해지고 말았다.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에서도 이같은 예는 많다.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의 권력 싸움 때문이었으며, 고구려 연개소문 아들 남건(男建) 남생(男生) 남산(南産) 3형제의 권력 다툼이 고구려 패망을 가져왔다. 1825년 12월4일, 러시아 ‘12월당원’인 청년 장교들의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난 것은 니콜라이 1세의 등극을 둘러싸고 야기된 궁중 내분이 원인이었다. 권력은 물과 같아 균형을 유지해야 평온하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면 권력의 물이 엎질러져 균형이 깨지고 종국엔 홍수가 나기도 한다.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을 사살한 사건 역시 권력의 균형이 깨진 끝에 일어난 권력 싸움의 소산이다. 요즘 청와대 비서실이 잇따라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정대철 민주당 대표를 두고 음모설이 나오더니, 굿모닝 시티 자금 유입설로 또 음모론이 나온데 이어 이번에는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에 예의 음모설이 제기돼 주목을 끈다. 도전하는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이 권력 싸움을 벌이는 내부의 적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권력층은 하루속히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안정을 찾아야 한다. 권력 싸움으로 인한 피해가 아무 죄없는 국민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임양은 주필

버스 운전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는 순간,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운전기사는 못본 체 할 수 없어 할머니를 태웠다. 때마침 단속 나온 구청직원이 정류장에 차를 바짝 대지 않은 채 승객을 태웠다며 정차위반으로 딱지를 끊었다. 이 모습을 버스에 탔던 신문기자가 목격하고 자사(自社)신문 지상에 운전기사의 선처를 호소하는 글을 썼다. 보도가 나간 뒤 해당 구청 홈페이지에는 “법도 중요하지만 구청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딱지를 뗄 게 아니라 친절상을 주시길 바랍니다”등 운전기사를 선처해 달라는 주문이 꼬리를 물었다. 해당 구청은 그래서 “정상을 참작해 이번에 한해 계도(啓導)조치 합니다”라고 운전기사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구청 홈페이지엔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할머니께서도 기사님께서도 평등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딱지는 꼭 떼야 합니다”라는 글도 함께 보였다. 사실 대도시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거의 버스 운전기사에게 ‘왕따’를 당한다. 배차 시간에 쫓기는 데다 태우더라도 균형을 잡지 못해 ‘안전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퍼런 승객들이 정류장에 서 있는 데도 그냥 지나치는 버스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화제의 운전기사는 정차위반까지 하며 노인을 태웠다. 이 때 현장을 목격한 기자가 신문을 통해 선처를 호소했고, 해당 구청장은 벌금·과태료 대신 계도로 조치했다. 그런데 누구든지 법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자가 나왔다.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주장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원칙론자는 이 세상을 살면서 운행차랑도 행인도 없는 새벽녘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에 따라 길을 건넜느냐, 과속·주차위반은 안했느냐, 핸드폰 수화, 안전벨트 착용 등 교통 관련 법규를 모두 지켰느냐고 따졌다. 태어나서 단 한번도 법이나 공중도덕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이 없느냐고 물었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도, 지체 장애인도 교통법은 지켜야 한다고 당당히 홈 페이지에 올린 그 사람은 얼마나 당당한가. 부럽다. 정녕 하늘을 우러러 정말 한점 부끄럼 없다는 사람들의 얼굴과 눈빛은 과연 어떠한 지 만나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고양이와 생선

예상은 했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민단체 등이 제안한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의원 상당수가 ‘개혁’에 부정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신문이 정개특위 소속 여야 의원 20명을 상대로 실시한 정책 설문조사 결과다. 여야 의원들의 태도는 한 마디로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로 요약된다. 고양이에 생선가게 맡긴 격이다. 주된 반대논리는 “개정 의견이 한국 정치의 현실과 너무 떨어져 있다”이다. 특히 최근 정치개혁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정치자금 기부자의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의원 7명 전원이 “사실상 야당의 정치자금 모금을 막겠다는 발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다. 의정보고회 등을 통한 상시적인 선거운동을 하면서 정치신인들의 등장을 의식해 선거일 180일 전부터 허용하는 선거운동을 반대하는 것도 ‘억지논리’다. 다만 선거자금 수입·지출 때 단일계좌 사용을 비롯, 국외 거주자 우편 투표제 도입, 선거나이 19세로 낮추기, 당내 경선 관리업무 중앙선관위 위탁, 당내 경선 낙선자 본선출마 금지, 비례대표 후보 3명마다 여성 1명 포함 등은 대다수가 찬성했다. 현역 의원들에 유리하거나 생색낼 수 있는 사항인데 반대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정치관계법은 일부 제도만 고쳐서는 정치개혁의 실효성을 높일 수 없다. 정치자금 투명화를 비롯해 각 개혁방안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사안만 제·개정 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회의석 과반을 차지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정치개혁법안을 반대한다면 본회의 처리 전망은 어둡다. 정치개혁특위가 완전 개혁을 원치 않는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원 중심의 국회 정개특위를 즉각 해체하고 시민단체 등의 참여를 통해 정치개혁 특위를 재구성하면 된다. “범국민정치개혁특위를 구성해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여기에서 논의된 모든 사안에 무조건 승복하겠다”고 공언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의 ‘의지’가 생각나서다. 고지식해서 그런지 그 말을 지지대子는 유효한 것으로 믿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어린이 도박게임

사행성 게임기 앞에 아이들이 몰려 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 사행성 게임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성인 카지노 형식을 본뜬 게임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데다 돈처럼 쓸 수 있는 ‘칩’까지 도입하고 있어 더욱 걱정된다. 펀치게임은 원래 목표물을 주먹으로 힘껏 내리쳐 재미로 자신의 펀치력을 확인해 보는 게임이지만 여기에 ‘도박성’을 곁들여 666, 777, 888 등 같은 점수가 나오면 메달이 쏟아지도록 기계를 개조했다. 점수만큼 구슬이 나오게 돼 있는 ‘미니사격기’도 나왔다. 게임기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단추를 누르면 게임기 안 화살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원 안에 배열된 0~25까지의 숫자 중 한 곳에 화살표가 멈추면 해당 숫자만큼 금속메달이 게임기 밖으로 쏟아진다. 메달은 문구점에서 현금 100원과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회전판을 돌려주는 ‘딜러’만 없을 뿐 성인 카지노의 ‘룰렛’과 다를 게 없다. 대부분 ‘0’이란 숫자에 멈추기 일쑤지만, 간혹 ‘5’나 ‘7’앞에 멈출 때면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한 아이가 100원짜리 동전 20개를 모두 탕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15분 안팎이다. 처음에는 5~6학년 남학생들이 주로 했는데 요즘엔 2~3학년들이나 여자애들도 즐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상혼이 초등학교 앞이나 동네 문구점 앞에서 아이들에게 사실상의 ‘카지노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문구점들간의 경쟁이 심해져 일부에서는 메달 대신 돈이 나오는 게임기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이 게임기들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정식 등급허가를 받기는 했다. 그러나 게임기 업체들이 허가를 받은 뒤 게임기에 사행성을 가미해 제조하거나 일반 문구점 주인들이 게임상품을 돈으로 바꿔주는 등 불법 변칙운용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단속 주체가 모호해 어떤 행정기관도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 단속이 실시되는 경우도 없다. 학교측이 어린이게임기 철거를 요구하는 게 효과적인 대응책이지만 그런 일을 할 훌륭한 학교가 있을 리 만무다. 오락의 탈을 쓴 도박게임에 물들고 있는 아이들의 장래가 염려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종교와 종교인

인도의 시크교도는 주로 펀자브 지역에 몰려 있다. 이들이 밥먹는 방법을 두고 칼 부림까지 하는 분쟁에 휘말린 일이 있었다. 마루 바닥에 둘러 앉아서 식사하는 것은 평등을 의미하는 전통 의식이다. 그랬던 게 개화파에 의해 사원에 식탁과 의자가 들어오자 시크교 최고 지도자는 이를 추방했다. 드디어 보수파와 개화파 간에 사원에서 칼 부림이 일어난 게 4년전 일이다. 초자연적 존재의 권능을 신봉하는 종교엔 저마다 믿는 대상이 따로 있고 독특한 의식이 있다. 같은 교파 간에도 시크교처럼 의식으로 싸우기도 하고 이교도에 대한 저항으로 종교끼리 싸우기도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끊임없는 싸움, 중동분쟁은 이를테면 종교 분쟁이다. 인간의 신앙의 자유는 타고난 자연법적 권리다. 어느 나라든 이를 실정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천부의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자유는 다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나의 종교의 자유 또한 인정 받는다. 종교는 샤머니즘이 아니다. 일신의 안위와 기복만을 비는 신앙은 곧 무속신앙이다. 많은 사이비 종교가 바로 이 무속신앙을 틈새로 창궐한다. 자신의 신앙에 확신을 갖는 참다운 종교인일 수록이 타의 종교인 또한 존중하는 것을 보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2001년 5월 카톨릭 교황 바오로 2세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대주교를 만난 자리에서 포옹을 나눴다. 김수환 추기경은 평소 교분이 두터웠던 성철 큰스님이 입적하자 정중한 조의를 표하고, 근세 유림의 거두 김창숙 선생 묘소의 고유제선 큰 절을 올리기도 했다. 목사가 말기 암으로 투병중인 스님을 위해 사랑의 바자회를 연다는 소식이 있다. 광주(光州)의 임의진 목사가 환경운동을 하면서 알게 되어 함께 지역사회 문화활동도 벌인 일철 스님의 투병을 돕기위해 ‘사랑의 음반’ 제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인이 다른 종교인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 사랑이지 개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와 종교인은 구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이 다른 종교인도 사랑할 줄 아는 이런 종교계 풍토의 확산을 기대하고 싶다./임양은 주필

정전협정, 50주년 이후

Y모씨는 나이가 일흔여섯이다. 50년을 왼발이 없는 지체부자유의 몸으로 살았다. 그가 다리를 잃은 것은 1953년7월27일 밤 9시50분께다. 시간을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중상을 입은지 약 10분만에 그날 밤 10시로 예정된 정전협정의 총성이 멎었다는 주위의 말로 그렇게 짐작해 왔다. 동부전선의 포병이었다. 당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조인된 12시간 이후의 정전협정 발효 시간이 다가오면서 국군과 인민군의 전투는 쌍방간에 여느 때보다 더욱 치열했다. 정전이 되기 전에 땅을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피아가 포탄이나 총탄을 있는대로 쏟아부어 섬광으로 칠흑을 밝히는 격전속에 적의 포탄이 Y씨 주변에 작렬한 것이다. “그래도 난 살았지만 함께 싸웠던 부사수는 전사했어…. 지금도 눈에 선해….” 눈망울엔 어느덧 이슬이 맺힌다. “TV로 판문점에서 열린 정전협정 50주년 기념식도 봤지. 그 때 도와준 참전국 노병들이 식장에 참석한 모습을 보니까 (가슴이) 뭉클하더구먼.” 눈에 맺힌 이슬은 이윽고 눈물이 되어 뚝 떨어진다. 한참만에 입을 연다. “평양서 전승 50주년 기념식이라면서 군사 퍼레이드 벌이는 것도 TV로 보았어. 그 사람들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 Y씨는 한국전쟁으로 인민군들도 숱하게 죽었지만 알고보면 그들이 무슨 죄냐면서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 바로 전범자라고 말한다. “세월이란 정말 무서워… 반세기가 지나다 보니 시류가 달라져 이상한 소릴 하는 사람들이 많더구먼. 다 좋은데 전범자 집단을 영웅시하는 해괴한 언사에는 정말 분통이 터진단 말야.” Y씨는 어느새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우리야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 비록 불안한 평화이긴 했지만 목숨 바친 전우들 덕분에 나라를 지켜 이만큼 살았음 더 욕심이 있을 수 없는거여…” 그러면서 지난 세월이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닥칠 세월이 문제라며 걱정한다. 노병은 그 이유를 지금 사람들은 전쟁의 참화를 너무 모르고, 평양의 술수를 너무 모른다고 개탄한다. 정전협정 50주년, 그 이후를 염려하는 Y씨의 말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임양은 주필

배우 2題

‘본드걸’하면 섹스 심벌로 손꼽힌다. 도발적 관능에 얼굴 표정 또한 유혹적이다. 이를테면 첩보전에서 미인계로 등장하는 것이 본드걸이다. 테렌스 영 감독의 ‘007 위기일발’로 시작된 영국의 이 첩보 영화로 무명의 숀 코넬리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으면서 일약 세계적 스타덤에 올랐다. 007은 국가에서 인정한 살인 면허다. 기기묘묘한 기상 천외의 첨단 장비가 동원되어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전개로 공상적 흥미를 유발한다. 영화 007시리즈는 20여편이 나온 가운데 숀 코넬리가 영국 외무성 소속의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역을 가장 많이 했다. ‘007 네버다이’에서 본드걸로 출연한 배우 겸 모델 세넌 레드베터(39)가 근래 영국 리버풀 성당에서 국교회의 사제 서품을 받아 화제가 됐다. “조용한 시골에서 주민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신학박사 사제가 된 본드걸의 인생 전환은 집념의 노력 끝에 일군 놀라운 변화다. 미국 영화인 제리 주커 감독의 ‘사랑과 영혼’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애틋한 사랑을 영상화한 애정영화의 백미다. 친구의 음모로 억울하게 죽은 촉망받던 청년 샘은 천사처럼 착하고 아름다운 몰리를 못잊어 서로 영육을 초월한 사랑을 나눈다. ‘길고 고독한 시간에… 시간은 흐르지만 너무 느려요…오 내 사랑, 내 님이여, 그대의 손 길이 그리웠소…’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주제가 가사의 몇 대목이다. 일본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수상이 영혼을 주제로 하는 영화 배우로 나섰다. 사회당 총재였던 무라야마는 1994년부터 약 2년간 연립 내각의 수상을 지냈다. 그 역시 서민풍이었지만 부인은 식당 종업원 등을 해가며 남편을 내조했다. ‘가리유시’란 제목의 영화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내용 중 비중있는 조연의 노인역을 하는 것이 무라야마 전 수상의 배역이다. 영화는 다음 달에 개봉된다. 그는 올해 일흔아홉살이다. 곱게 늙는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임양은 주필

국제백신연구소

세균성 이질과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의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연구, 백신을 개발하는 국제백신연구소는 한국에 본부를 둔 유일한 국제기구다. 이 국제백신연구소를 자체 채용한 경비원 2명이 지키고 있다니 그동안 사고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2명이 24시간 교대로 건물 내·외곽을 순찰하며 경비하고 있다면 한 명이 경비하는 셈이다. 백신연구소의 중요성에 비해 경비 상태가 너무 미약하다. 국제백신연구소는 한국정부가 연구소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실질적인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1998년 9월 외교통상부와 체결했다. 백신연구소는 외교 공관과 같은 치외법권을 인정 받는 기관에 속한다. 그러나 외교부는 건물 안전조치 문제를 서울대나 교육인적자원부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의 입장은 다르다. 연구비 등 관련경비 지원만을 담당한다고 책임을 회피한다. 서울대 역시 “우리는 부지만 제공할 뿐 경비와 관리는 연구소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모른 체 하고 있다. 하도 답답해 백신연구소가 서울 관악경찰서에 경비문제를 문의했더니 “경찰서에서 처리하기에는 민감한 사안이므로 외교부를 통해 해결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대학 구내에 경비 경찰을 상주시키기가 곤란하다는 입장도 보이고 있다. 유엔개발계획(UNDP) 주도로 1997년 설립된 백신연구소는 서울대 연구공원내 5천여평 면적에 신축한 지하 1층, 지상 5층의 본부건물에서 동물실험실, 최첨단 컴퓨터센터와 연구실 등을 갖췄다. 백신 연구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연구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경비가 철저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생화학 테러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어 특히 그러하다. 그런데도 정부 부처가 경비문제를 서로 떠넘기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국제기구인 백신연구소가 만일 일본이나 북한, 특히 북한에 있게 됐다면 어떻게 경비했을까. 한국처럼 2명이 경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 테러집단이 바이러스를 탈취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임병호 논설위원

미리 쓰는 유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밀라노 공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자신을 군사 기술자로 꼭 취직시켜 달라고 썼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단두대에 오르기 몇시간 전 시누이에게 보낸 편지는 최후의 심경을 담은 ‘유서’이다. 칼 융은 1912년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님은 노예근성을 가진 제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적었다. 콜럼버스가 항해자금을 담당한 관리에게 보낸 편지는 “향료와 광산, 나체로 생활하는 주민”들에 대해 말하면서 새로운 땅을 발견한 흥분을 표출했다. 갈릴레이는 동료에게 보낸 편지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한 달의 경이로운 모습을 호들갑스럽게 전했다. “4개월 사이에 대량의 우라늄으로 핵의 연쇄반응을 일으켜 에너지와 라듐과 유사한 원소를 대량으로 발생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유력해져 왔습니다. (중략) 현재의 정세를 생각하면 정부는 우리나라에서 핵반응 연구를 하고 있는 물리학자 그룹과 접촉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1939년 8월2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무기 연구에 착수할 것을 진언했던 이 편지에는 놀랍게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반핵(反核) 평화운동에 만년을 바친 것으로 알려진 이 위대한 과학자는 사실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를 부추겼던 것일까? 훗날 아인슈타인은 “내 생애에서 커다란 잘못은 그 편지에 서명한 것이었다”고 술회하며 “하지만 그것은 나치가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애써 변명했다. 편지는 세월이 한참 흐른 뒤 편지를 쓴 사람들의 당초 의도를 뛰어 넘어 숨겨져 있던 사고방식과 감정, 애정과 실망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진심이 담겨 있다. ‘유서’ 또한 편지다. 살아 있을 때 미리 쓰는 유서는 가장 절실한 편지다. 받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사실은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다.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 8.9월호가 황금찬 시인 등 문인들이 미리 쓴 유언장을 특집으로 실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유서 미리 쓰기’가 유행할 것 같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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