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행궁 御井’

서울 종로구 훈정동 종묘 앞 공원 경내에 있는 조선 초기의 어수우물(御水井)은 깊이 8m, 지름 1.5m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다. 이 우물은 둥근 모양새로 우물 속은 온통 돌벽으로 쌓아 올렸는데 화강석은 정방(正方) 또는 장방형으로 마름한 돌이 쓰여졌다. 석축은 각 단마다에 반월형의 마름돌을 원형(圓形)으로 맞추어 다른 석축이 튼튼히 지탱할 수 있게 하였다. 우물꼭대기 땅바닥 부분에는 네모진 장대석(長臺石)이 정(井)자형으로 놓여 있다. 조선시대 역대 임금이 종묘에 전배할 때면 이 우물물을 마시고 손을 적시었으므로 어수우물로 봉해져 내려왔는데, 그 석축 방법이라든지 석재가 닳고 닳은 상태로 미루어 그 연륜이 매우 긴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수도시설이 완비된 오늘날에 모든 우물들이 메워져서 그 자취를 감춘 중에 유독 이 우물만은 심한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런데 수원에서도 조선조 제22 정조대왕(1752~1800)이 마시던 어정이 발굴돼 올 상반기 중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MBC-TV의 인기드라마였던 ‘대장금’ 촬영지인 화성행궁(華城行宮)과 정조대왕의 영정을 모신 화령전(華寧殿)사이에서 발굴한 이 어정은 가로 세로 각 90㎝이며 깊이는 5.4m이다. 우물안은 40여㎝ 두께의 화강암이 14층으로 쌓여있다. 이 어정은 정조대왕이 아버지(사도세자) 능 참배차 수원에 와서 화성행궁에 머물 때는 어수로, 정조대왕이 승하한 이후에는 제수(祭水)로 사용됐다고 한다. 우물안의 물을 최근 수원시 상수도사업소에 수질검사를 의뢰한 결과 일반세균 암모니아성질소, 대장균, 맛, 색도, 냄새 등 전체 46개 항목에서 모두 합격통보를 받았다. 3년여 전 발굴했다는 이 어정을 지금에서야 공개하는 것이 아쉽지만 관광객들이 화성행궁, 화령전 등을 둘러보고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관광상품화 하기로 했다는 수원시의 계획은 그럴 듯 하다. 200여년 전 우물의 수심이 4.4m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수원명소가 될 이 어정을 ‘화성행궁 어정’으로 명명했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자장가

“자장자장 자는고나 / 우리애기 잘도 잔다 / 은자동이 금자동이 / 수명장수 부귀동이 / 은을 주면 너를 살까 / 금을 주면 너를 살까 / 나라에는 충신동이 / 부모에게 효자동이 / 형제간에 우애동이 / 일가친척 화목동이 / 동네방네 유신동이 / 태산같이 굳세거라 / 하해같이 깊고 깊어 / 유명천하 하여보자 / 잘도 잔다 잘도 잔다 / 두등두등 두등두등 / 우리애기 잘도 잔다” 파주 지방에 전승되는 ‘자장가’다. 자장가는 아기에게 사설내용을 들려주기 위해서 어른들이 부른다는 점에서 어린이들만이 부르는 전승 동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심청가’나 ‘옹고집타령’에도 삽입가요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불려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장가’ 속의 사설 속에는 자식이 금은보다도 소중하다는 어머니의 애정과 더불어 아기가 훌륭히 자라서 나라에는 충신 되고 부모에게 효자 되며 형제간에 우애있고 일가친척과 화목하고 동네사람과 신망이 있는 사람이 돼라는 간절한 기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어머니의 애정과 기대는 상투구절(常套句節)처럼 전국의 ‘자장가’에 고루 스며 있다. 울기만 하는 앞집의 아기와 대비하면서 잘 자는 아기를 칭찬하기도 하고, 아기가 잘 수 있게 앞집 강아지도 짖지 말고 뒷집 닭도 울지 말도록 당부하기도 한다. ‘자장가’에는 아기가 어서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도 그윽한데 지방마다 비유가 색다르다. “둥실둥실 모개야 아무락구 긁아다오 / 둥굴둥굴 모개야 개똥밭에 궁글어도 / 아무락구 긁아다고”(경상북도 봉화) “우리애기 하룻밤자믄 / 물웨크듯 커감져 / 우리애기 이틀밤 자믄 / 벙에 가찌 커감져”(제주도). 부귀나 명예보다 모과(모개)·오이(물웨)·흙덩이(벙에)처럼 건강하게만 자라기를 바라는 서민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엄마들 중 대부분이 자장가를 육성으로 부를줄 모른다고 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과 마음이 성장한다고 하는데 자장가를 듣지 못하는 요즘 아기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임병호 논설위원

죄인된 일본인 인질

제2차대전 당시 미 군함을 들이받아 함께 침몰하곤 한 일본군의 가미가제(神風)특공대 비행병사는 16~17세의 소년들이었다. 귀밑 복숭아털의 앳된 이 소년병들은 출격 직전 일황이 내렸다는 어사주 한잔을 영광된 마음으로 먹고 자살특공 길에 올랐다. 사무라이(武士)의 할복자살은 패배에 대한 책임을 비장한 죽음으로 입증해 보이는 이들의 전통적 자살방법이다. 2차대전 패전 직후,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언니가 조선에 사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언니는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米軍(미군·일본은 美國을 米國이라고 한다)에게 몸을 내주고 있다. 너도 하루빨리 반도(조선)에서 나와 맥아더 점령군사령부를 회유하는 데 힘쓰기 바란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정치권에도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이 있지만 이들은 일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진 않는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자위대 철군을 요구하며 붙잡아둔 3명의 인질 가족들이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다. 공연히 사지(死地)로 가 국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는 일본사회의 눈총 때문이었다. 남의 나라에 간 자국 국민이 억류된 것은 주권침해다. 이를 지탄하는 것을 마땅하다. 일본 역시 그러했으면서도 인질석방의 협상은 거부했다. 죽음을 눈 앞에 둔 자국 국민의 절박한 생사를 초월했다. 우리 같으면 비정하다 하여 야단법석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인질은 다행히 그냥 풀려 일본에 도착했으나 그들 또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거듭거듭 되풀이 했다. 언론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의 모습이다. 사무라이 시대나 가미가제특공대 시대나 오늘이나 아무 변함이 없다. 여느 땐 개인주의를 탐닉하여도 일단 유사시엔 전체주의 의식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 일본사회다. 일본 사람들은 한 두 명씩 상대하면 무난히 완력으로 이길 수 있어도 떼지어 대들면 무서운 그런 사람들이다./임양은 주필

당선자, 니 떨고 있니?

4·15총선 당선자 53명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것은 이미 다 아는 일이다. 이래서 243명의 지역구 당선자의 22%에 해당하는 이들 중 상당수의 당선무효 사태가 쏟아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는데, 또 이만이 아닐 것 같다. 중앙선관위는 선거범죄 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을 더 높였다. 당선무효에 해당된 선거범죄 신고는 5천만원까지로 한 소정의 포상금 외에 1억원의 특별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 바람에 당선자의 선거관련 논공행상에서 불만을 갖게되는 내부 고발이 선거가 끝나고도 상당히 더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막상 당선되고 나면 그동안 수고한 종사원들에게 도리를 닦는 건 인지상정이긴 하지만 이게 그리 간단하지 않다. 논공행상이란 원래 아무리 공평하게 한다 하여도 대상에 따라선 소외됐다고 보아 섭섭한 마음을 갖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또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당선자가 이를 우려하여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선거비리를 인지하고 있는 종사원에게 막말로 1억원을 주어 입을 막는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을 추가로 요구하는 등 당선자의 선거비리를 잇따라 우려먹거나 아니면 종내엔 고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 고발을 조장하는 것은 보기에 썩 좋은 모양새는 아니지만 돈 선거같은 타락선거를 추방, 공명선거의 대의를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잘한 조치다. 선거문화의 개혁 없이는 민주정치의 발전은 기대할 수가 없다. 아마 조직력이란 것을 내세운 당선자들 가운데 이런 내부고발의 위험이 많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선관위가 아무리 많은 포상금을 내건다 해도 선거를 깨끗이 치른 당선자는 아무 겁날리가 없다. 하지만 뒤가 구린 당선자들은 밤 잠이 편치않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이래 저래해서 총선 규모에 버금가는 재선거가 있게 되지 않을는 지 모르겠다. /임양은 주필

출구조사 왜 틀렸나

선거 때마다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것이 방송사 출구조사다. 1996년 제15대 총선 땐 지역구 당선자 예상이 39군데나 빗나갔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는 KBS, SBS가 21군데가 틀리고 민주당이 한나라당보다 의석수가 많은 제1당으로 잘못 예측했다. MBC는 23군데가 틀린 가운데 역시 여대야소(與大野小)로 잘못 예측했다. 이번 4·15총선도 예외는 아니다. KBS와 SBS는 열린우리당 172석으로 예측, 20석이나 틀리고 한나라당은 101석으로 보아 이 또한 20석이나 틀렸다. 흥미로운 건 열린우리당 당선 예측은 너무 많이 보아 틀리고 한나라당 당선 예측은 너무 적게 보아 틀린 점이다. + - 20석의 오류는 전체 의석수 299석에 비추어 무려 6.68%의 오차를 드러내어 + - 5%의 오차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MBC는 열린우리당은 155석~171석으로, 한나라당은 101석~115석으로 두리뭉실하게 예측했다. 이런 예측은 사실상 예측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토록 폭넓게 잡아 두리뭉실하게 예측했는 데도 열린우리당 실제 의석수 152석, 한나라당 실제 의석수 121석에 비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한마디로 제17대 총선의 방송사 출구조사 또한 오류를 범했다. 방송사들은 15·16대 총선의 출구조사가 빗나간 아픈 체험을 토대로 이번에는 꽤나 치밀하게 조사를 벌였는 데도 역시 또 잘못되고 말았다. 한 방송 관계자는 이같은 이유를 조사한 출구 대상자들에게 책임을 돌려 “열린우리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사실은 한나라당을 찍고 거짓말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알고보면 사실과 달리 말한 유권자만의 책임만도 아닌 것 같다. 어느 유권자는 “방송사들의 편파 방송이 역겨워 일부러 달리 응답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방송사 출구조사 오류는 신뢰성 잃은 선거 편파방송이 부메랑이 된 재앙인 것이다./임양은 주필

自 銘

바이런과 셸리, 그리고 키치는 19세기 초반 낭만주의 시대에 별처럼 빛났던 시인들이다. 바이런과 셸리가 낭만주의의 시발점이 된 ‘슈트롬 운트 드랑(질풍과 노도)’의 세월을 살았다면 키츠의 삶은 좀더 은밀하고 영적(靈的)인 향기로 채워졌다. 바이런은 ‘시단(詩壇)의 나폴레옹’이었고,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던 셸리는 인류의 개조를 꿈꾸었다.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후계자였던 키츠는 고전에 뿌리를 두고 지극히 미학적인 예술세계를 지향했다. 바이런의 뜨거운 정열이나 셸리의 웅변에 비해 키츠의 정서는 섬세하면서도 단아했다. ‘희랍의 옛 항아리’라는 詩에서 키츠는 “들리는 멜로디는 달콤하다 / 들리지 않는 멜로디는 더 달콤하다”고 노래했다. 바람을 맞으면 저절로 울린다는 에을리언 하프처럼 섬세한 감성을 지닌 키츠는 1821년 이국 땅에서 연인 패니 브라운이 준 흰색 조약돌을 손에 꼭 쥔채 폐결핵으로 숨졌다. 키츠의 묘비명(墓碑銘)엔 그의 유언에 따라 이렇게 씌었다. “여기 물 위에 이름을 쓴 자 잠들다” 묘비명은 죽음의 형식이자 매장의 양식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인의 공적을 기리는 취지는 같다. 서양에선 교회 내에 매장하는 풍습에 따라 석관의 뚜껑에 묘비명을 새겼다. 우리 나라는 입석(立石)에 치적을 열거함으로써 고인의 명예를 빛냈다. 한때 조선 선비들 사이에선 스스로 짓는 묘비명, 즉 자명(自銘)이 유행했었다고 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숨지기 나흘 전 4언(言)24구(句)로 이렇게 자명을 썼다. “나면서부터 크게 어리석었고 / 자라면서 병이 많았네 / 말년에 외람되게 벼슬이 높았네 … 근심 속에 즐거움 있고 / 저 세상으로 떠나며 생을 마감하는데 / 다시 무엇을 구할 것인가” 안분지족(安分知足)하고 삶에 감사하며 떠나는 마음 가짐이 표연하다. 올해 73세인 원로작가 한말숙씨는 지난해 “평생 감사하며 살다가 한점 미련없이 생을 마치다”라고 미리 남기는 유서를 썼다. 퇴계의 자명을 연상케 한다. 이 생각 저 생각이 많을 때는 자명을 쓰고 싶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족 사랑

KBS-2TV 수목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가 14일 30회로 끝났다. 극본을 쓴 노희경은 작품성이 높은 작가로 손꼽힌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우선 ‘첫번째 시청자’라 할 수 있는 출연진, 스태프부터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한 ‘가족’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받은 원인은 연기자들의 열연과 연출력의 결과지만 결정적인 것은 사실적인 대본이다. 우리 생활에서 가족은 끊임 없는 상처의 원인인 동시에 유일한 위안처다. 인생의 걸림돌이자 때론 징검다리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특별할 것 없는 한 가족의 남루하고 답답하고 고단한 사정을 마치 내 집안 일처럼 생생하게 그렸다. 어머니 영자(고두심)는 착하다 못해 못난 ‘미련퉁이’다. 딴 살림을 차려 자식까지 본 아버지 두칠(주현)은 소실(방민서)을 살리겠다며 어머니(본처)의 콩팥을 요구할 만큼 뻔뻔하다. 매맞고 살다 이혼한 큰딸 미옥(배종옥)은 지겹지도 않은지 또 다시 결혼하겠다고 법석이고, 쿨한 사랑을 자신하던 둘째딸 미수(한고은)는 하필 오빠를 죽인 이혼남 인철(김명민)에게 빠져든다. 형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고 나이트 클럽 삐끼로 일하는 막내 재수(김흥수)는 누나들에 뒤질세라 첫사랑의 홍역을 앓는다. 50대 중반의 ‘천사표 어머니’가 자식들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치매에 걸리면서 ‘꽃보다 아름다워’는 메시지를 던진다. 저마다 사랑에 미쳐, 삶에 지쳐 허방을 짚을 때마다 자식들은 돌아가며 어머니의 가슴에 못질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얼굴에 밥풀 묻은 건 떼줄 수 있어도 맘 아픈 건 어떻게 못해 주는데 어쩌냐”고 가슴을 쓸어 내린다. 어머니의 사랑은 남편을 뺏어간 젊은 여자에게 콩팥을 주고, 처자를 내팽개친 아버지를 껴안는다. 금쪽 같은 피붙이를 죽인 원수마저 용서한다. 모든 가족들을 뉘우치게 한다. ’꽃보다 아름다워’는 때로 지옥이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족을 기꺼이 품는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이지만 아픔에도 향기는 있다. 감동적인 해피엔딩을 선사하며 “미루지 말고, 나중에 후회말고 지금 사랑하라”는 말이 꽃보다 아름답다. /임병호 논설위원

참정권 행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오늘 실시되는 17대 총선의 투표율이 16대 총선보다 12.1% 포인트 높아져 69.1%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예상투표율을 60~65%로 잡는다. 역대 총선투표율을 보면 12대(1985년 2월12일)때 84.6%로 정점에 오른 뒤, 13대(1988년 4월26일) 75.8%, 14대(1992년 3월24일) 71.9%, 15대(1996년 4월13일) 63.9%, 16대(2000년 4월11일) 57.2%로 낮아졌다. 이번 총선의 연령별 유권자는 20대 787만(22.1%), 30대 887만(24.9%), 40대 812만(22.8%), 60대 이상 600만(16.9%)이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의 투표의향이 92.3%로 가장 높았고, 40대 91.5%, 30대 88.7%, 20대 80.6% 순이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 때마다 투표 대신 여가를 즐기는 ‘자발적 권리 포기자’들이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점이다. 투표일이 목요일이기 때문에 금요일인 16일만 잘 활용하면 긴 황금연휴를 즐길 수 있다는 속셈이다. 심지어 “투표가 강제의무도 아니고 뜻이 없으면 안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 다른 문제는 선거법 위반 혐의로 후보자 본인 109명을 입건 수사 중이며, 이번 총선사범 1천743명 중 220명을 이미 구속한 사실이다. 무더기 재보선 사태가 예상된다. 이번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시종일관 ‘빌고, 울고, 굶고, 머리 깎고, 농성하고, 엄살떠는’ 자학성 선거운동 방식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항거수단이거나 종교나 수행 목적의 행위 등을 사생결단식 승부수나 유권자 감성을 자극하는 득표전략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역대 총선 때 처럼 대통령 탄핵역풍·박풍(朴風)·추풍(秋風), 노풍(老風), 노풍(勞風)이 불어 각 정당에 희비를 안겨주었다. 이제 오늘 유권자들이 후보자·정당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황금연휴와 나들이를 즐기는 것도 좋지만 투표는 꼭 하고 떠나야겠다. 투표는 국민의 신성한 참정권 행사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토종여우

호랑이 곰 여우는 전래되는 옛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상징적 동물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아주 먼 옛날에…”라고 하였던 호랑이는 호환(虎患)이 무섭긴 했지만 영물로 쳤다. 곰은 “곰 같이 느리다”느니 “곰 같이 미련하다”느니 했으나 결코 행동이 둔하거나 어리석은 동물이 아니다. 여우 또한 약삭빠른 동물로 비유해 나쁘게 알려졌다. 그러나 알고보면 백년 묵은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다는 옛 이야기 내용만큼 나쁜 동물은 아니다. 지난달 23일 강원도 양구에서 숨진 채 발견된 토종 여우의 사체가 계속 화제를 낳고 있다. 무엇보다 궁금한 사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의문의 여우 변사체가 의문의 사람 변시체보다 사인 규명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독·극물로도 죽지 않았고, 입가에 흘린 피는 혀를 깨물어 생긴 것이고, 굶어 죽은 것도 아니라는 국립환경연구원의 최종 부검결과 발표는 결국 사인은 여전히 오리무중의 의문으로 남겨놓고 있다. 한가지 다행스런 것은 수컷의 토종 여우 사체 고환에서 살아있는 정자를 채취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죽은 여우 몸에서 살아있는 정자 채취가 가능했던 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다. 채취된 토종 여우 정자 1㏄를 냉동 보관해 두고 인공 수정을 위한 암컷 여우를 물색하고 있다는 것이 국립환경원측 얘기다. 호랑이 곰 여우는 국내 산야에서는 이미 멸종되었다. 여우는 1978년 지리산에서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랬던 게 26년만에 비록 죽은 것이지만 토종 여우가 발견돼 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다. 토종 여우의 인공수정을 서둔다지만 국내 동물원에서 사육중인 여우에 토종 여우가 없는 게 문제다. 결국 인공수정을 해도 반쪽 토종 여우가 생산될 수 밖에 없다. 이렇게라도 씨를 남기고 죽은 토종 여우가 대견하지만, 무리지어 함께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암컷이나 새끼들이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한데 영 소식이 없다. /임양은 주필

한맹(漢盲)

고등학생 가운데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들 이름을 한문으로 쓸줄 아는 학생이 얼마나 될 것인지 심히 의문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이름도 한문으로 쓸줄 모르는 학생들이 없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고 한문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없어질 수도 없다. 이름만이 아니고 자신의 주소지도 한문으로 쓰기는 커녕 한문으로 된 제 주소지를 알아 보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學校’(학교)를 學科(학과), ‘文化’(문화)를 文花(문화)라고 쓴 대학생들이 있었다는 일전의 신문보도가 있었다. 그것도 유명대학이라는 학생들 한문 실력이 60%나 낙제 점수였다는 것이다. 한국·중국·일본의 동양 삼국은 한문권 문화다. 부정하고 싶어도 부인될 수 없는 과거가 수천년동안 이렇게 형성되어 왔다. 한문을 모르고는 문화의 뿌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럼 고전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만 한문을 배우면 된다는 이론이 나올 수 있지만 꼭 그렇지가 않다. 한문 수학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은 고전학문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겐 당연한 필수요건 이지만 일반인들도 사회상식 정도의 한문은 알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불가피한 생활문화다. 예를 들어 같은 ‘여정’이란 말도 旅情(여행하면서 느끼는 마음) 旅程(여행의 일정) 餘丁(강서시험 낙방자) 餘情(남은 정) 餘?(덜깬 술기운) 輿丁(가마를 맨 사람) 輿情(사회적 정서) 勵情(정신을 가다듬어 힘씀) 勵正(조선시대 정칠품 벼슬)의 뜻을 가리기 위해서는 한문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말 가운덴 동명이인이 많은 것처럼 이렇게 발음은 같아도 뜻이 다른 말이 수두룩하다. 일본은 자기나라 글과 한문을 병용하기 때문에 학교의 한문교육이 보편화하였다. 우리는 한글 전용이다 보니 한문교육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우리 글을 전용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한문을 모르는 한맹(漢盲)이 되어서는 안된다. 근래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공채시험 때 한문을 출제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멀쩡한 우리의 젊은이들이 잘못된 교육관으로 한맹이 되어가는 사실이 무척 안타깝다. /임양은 주필

후보자 정보 공개자료

자신이 살고있는 (4·15총선) 지역구 입후보자의 개인연설회마다 다 가봤다는 어느 유권자가 이런 말을 했다. “후보자들과 다 악수도 하였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투표일이 사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이런데도 여지껏 표심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이 상상 외로 많은 것 같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요?’라고 씌어진 선거 홍보물이 있다. 입후보자 개인의 홍보물이 아닌 선관위의 ‘후보자 정보 공개자료’의 공보물이다. 이번 총선에 처음 나온 이 후보자 공식 자료는 입후보자들이 만든 자기소개 자료와 함께 선관위에서 각 가정에 우송된다. ‘정확한 평가, 신중한 선택을 위한 정보’(큰 글씨로) ‘이곳에 들어 있습니다!’라고 쓰인 ‘후보자 정보 공개자료’ 표지에는 또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그 사람이 그사람이라고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시겠다고요? 바른 선택을 위한 후보자 정보! 이곳에 들어 있습니다. 꼼꼼히 살펴보시면 올바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돼있다. 공개자료 내용엔 지역구 후보자들의 학력과 경력 외에 후보자 및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의 재산상황, 납세 및 체납, 그리고 후보자 본인의 병역관계, 전과내역 등이 상세하게 수록되어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재산상황이다. 얼마나 성실하게 신고했는 지를 유권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후보자의 도덕성 평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납세 및 체납관계도 역시 마찬가지다. 후보자 개인의 홍보물을 보면 마치 혼자 국정을 다 주무를 듯이 과장된 게 적지않아 혼란스런 점이 많다. 이래서 그 사람이 그 사람같아 마음을 아직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 뿐만 아니라, 표심을 정한 유권자들도 선관위의 ‘후보자 정보 공개자료’를 귀찮게 여기지 말고 꼭 한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꼼꼼히 살펴보시면 올바로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이는 선관위측의 권고다./임양은 주필

혐오시설 유치

"일본 법무성은 작년 말 교도소 신설 후보지 4곳을 확정하고 일부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효고(兵庫), 히로시마(廣島), 야마구치(山口), 가로시마(鹿兒島) 등 4개 현(縣)의 각 1개 도시’라고 애매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도시마다 신문광고 등을 통해 적극적인 홍보전을 펼쳤기 때문에 어디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무려 51곳의 자치단체가 교도소 유치에 나섰다. 교도소가 가장 많이 소재한 홋카이도(北海道)에서는 와카나이(維內)시 등 20개 도시가 신청서를 냈다. 하나 같이 인구가 줄어 들고 재정형편이 어려운 도시들이다. 홋카이도 누마다초(沼田町)의 현재 인구는 4천300여명이다. 탄광이 폐광한 뒤 인구·세대수가 계속 줄어들어 지방교부세 교부금과 국가보조금에만 의존하고 있다. 지방교부세도 인구가 4천명을 밑돌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교도소 유치였다. 교도소는 주민기본대장(주민등록)상의 인구는 아니지만 5년에 한번 실시하는 국세조사(센서스)에서는 주민인구로 산정돼 이를 바탕으로 지방교부세가 책정되기 때문이다. 가령 1천명 수용 규모의 교도소가 들어서면 교도소 직원들과 그 가족까지 합쳐서 거의 2배인 2천명의 인구가 한꺼번에 늘어난다. 지방교부세 교부금은 주민 1인당 연간 10만엔에서 20만엔으로 늘어나 2억~4억엔의 교부세 증가효과가 기대된다. 직원들의 주민세와 소비세도 마을을 살찌운다. 상가·학교·의료시설도 새로 들어선다. 재소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훈련도 이뤄지기 때문에 ‘값싼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계산도 나온다. 많은 지자체와 주민들이 교도소 유치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일본 자치단체는 폐기물처리장 등 혐오시설 유치에도 열을 올린다. 쓰레기소각장, 하수처리장은 물론 화장장, 납골당, 장례예식장 등 심지어 장애인시설 건립도 반대하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단체 주민들과는 전혀 다르다. ‘님비(NIMBY)’현상이 한국에서는 너무 지나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신앙

“하나님과 성경 없이 세계를 바르게 통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1796년 9월17일 한 말이다. 다원화된 현대 국제정세 속에서 대통령을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국민이 동의하는 ‘신앙’을 갖고 있어 행복한 정치가다. 미국은 나라의 통치를 그들 스스로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뢰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워싱턴이 매일 했던 기도 중에는 “하나님께서 미합중국을 당신의 거룩하신 보호 아래 지켜주시기를 간구합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모습을 본받지 않고서는 이 나라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하옵소서”라는 부분이 눈에 띈다. 3대 토머스 제퍼슨은 “기독교가 정부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기독교가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20대 제임스 가필드는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십니다”라고 연설했고 22대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들이면 가장 순전한 형태의 애국심과 최고의 국민정신을 갖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조지 W 부시는 “저는 특별히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며, 용서하시기를 간구합니다”라고 한 바 있다. 링컨의 신앙은 가장 유명하다. 그 이유는 그가 결코 정치적 성공을 위해 신앙을 이용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만 나라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 대표들이 고해성사, 108배, 기도회 등 모든 종교의식에 참석하는 행보가 진실돼 보이지 않는 이유는 신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속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만일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들 처럼 어느 한 종교의 확고한 신앙을 보이면 국민들은 이해하겠지만 아마 정치인들이 ‘종교적 중립 의무’를 어겼다며 탄핵할 것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무제(無題)

"해어화(解語花)란 ‘언어를 해득하는 꽃’이라는 뜻으로 절세가인의 대명사다. 당나라 현종이 나라일을 망쳐가며 총애했던 양귀비를 가리켜 “어떠냐, 연못에 핀 연꽃의 아름다움도 말을 하는 꽃(양귀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한데서 시작됐다. 현종은 양귀비와 주지육림으로 소일했고, 이런 연유로 하여 후세에 해어화는 주연에서 시중드는 미인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헤타이라(hetaira)는 고대 그리스의 해어화다. 남자들 술자리의 시중을 드는 헤타이라는 대부분이 노예 출신의 여성들이지만 빼어난 미모에 소정의 교양교육을 받아 지적 수준이 높았다. 이 때문에 부와 권력을 움켜잡는 헤타이라가 생기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정치가 페리클레스, 철학자 아리스티포스, 조각가 프라크시텔레스 같은 귀족층이 헤타이라를 연인으로 두었다. 페리클레스의 헤타이라 연인 아스파시아는 BC 445년경 정실부인을 쫓아내고 후처로 들어앉아 국정을 농단하였다. 한국의 해어화인 기생(妓生) 역시 높은 교양과 기예를 교육 받았다. 권번(券番)은 이를테면 마지막 기생학교다. 해어화나 헤타이라나 기생은 성산업(性産業)이긴 하여도 매춘을 업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이에 비해 현대사회의 성산업은 매춘이 본업화 했다. 당국은 수년 예정으로 사창가를 다 없앤다고 하지만 사창가는 이미 사양화하였다. 굳이 사창가를 찾지 않아도 될만큼 매매춘이 보편화 하였기 때문이다. 매매춘은 심지어 일부의 주점형 노래방에 까지 파급되어 창녀 아닌 창녀만이 아니고 남창(男娼)도 득실대는 세태다. 술좌석 중심의 성산업이 이제는 식사좌석에 까지 번지고 있다. 여성의 나체를 식탁삼아 그 위에 생선회 등을 가득히 올려놓고 식사를 즐기는 ‘여체성찬’은 원래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미국내 일본 식당으로 건너갔는가 싶더니 이제는 중국에서도 유행인 모양이다. 1인당 음식값이 15만원인 데도 예약을 해야 할 만큼 붐빈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번지 지 않을까 염려된다. 돈이면 뭣이든 다 즐길 수 있다고 보는 세태의 타락상이 어디까지 갈 것인 지 무척 두렵다./임양은 주필

선거관련 난센스

"‘배를 타고 투표하러 간다’는 영국의 해학적 선거관련 속담이 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영국은 판도가 달라졌다. 맨체스터 같은 신흥공업 도시가 생겼는데도 선거대장에는 허허벌판 그대로였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이 선출되지 못했다. 반대로 이농으로 인구가 줄었는 데도 두 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소도읍이 있었다. 심지어 지형이 바뀌어 바다에 잠긴 거리가 선거대장엔 살아있어 투표자들을 배에 태워 그 해상에까지 가서 배 위에서 투표케 하는 웃지못할 난센스가 있었다. 영국이 선거권 확대, 선거구 조정 등 내용의 선거법을 개정한 것은 1832년이다. 갓난 아이에도 선거권을 주자고 하면 해상투표와 같은 난센스라 할지 모르지만 지난 1일 독일 연방의회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국민은 성인들만이 아니라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유소년 인구도 포함돼 있다. 신생아를 포함하는 유소년에게도 선거권을 주어 어른이 될 때까지 부모가 대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로 토론이 제안됐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부모가 아이를 대신해 투표한다면 그 아이의 뜻이 투표에 반영되겠느냐”는 것이다. 토론은 결론없이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의 생각대로라면 도대체가 아이의 선거관련 의사가 제대로 형성될 수 없어 공리공론으로 들리는 얘기다. 이런 데도 선진문명을 자랑하는 독일의 연방의회에서 정식 토론 의제로 오른 것은 희한한 일이다. 가령 우리가 출산율 장려책으로 미성년 자녀 수대로 부모가 투표권을 대리행사케 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말이 안된다고 보아 야단법석이 날 것이다. 우리는 ‘노인이 미래를 결정해선 안된다’며 노인들은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하는 말이 나와 야단이다. 국내 노인들이 독일의 아이들 보다 못한 셈이 되는 잘못된 그같은 의식 또한 난센스이긴 하다. 난센스 치고는 지나치게 참혹하지 않은가 싶다. /임양은 주필

테러가 민주화운동?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민주화운동가로 보는 사회 일각의 주장이 전에도 없진 않았다. 어제 MBC-TV가 방영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79년 김재규는 왜 쏘았나’ 프로그램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하필이면 4·15총선 들어 방영된 것을 두고 MBC측은 “오래 전에 계획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박근혜 효과를 차단키 위한 의도적 편성”이라는 관점도 있는 것 같다. 이에 비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총선과 탄핵정국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김재규 전 부장에 대한 분과위원회 심의를 총선 이후로 연기했다. 김 전 부장의 조카가 신청한 이 심의는 2차 조사까지 마쳐 분과위원회와 본위원회 심의를 남겨놓고 있는 상태다. 유신독재를 처단한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아 사형된 것은 부당하므로 명예회복을 해달라는 것이 심의 신청의 요지인 것 같다. 유신독재가 잘못된 건 맞다. 그러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민주화운동가로 평가되자면 몇가지 의문점이 해소되어야 한다. 우선 당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그 자신이 탄압하였던 현직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 지가 의문이다. 박 전 대통령의 살해동기가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파워게임에서 밀린 소외감 끝에 거사한 뒤 정권장악을 노렸던 것 또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암살이란 테러 방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게 자유민주주의의 덕목 인지 의아스럽다. 민주화운동에 살인을 용납한다면 자가당착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목적지상주의를 미화하는 것은 실로 위험하다. 김 전 부장의 명예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의문에 납득이 가는 객관적 석명이 있어야 한다. 총선 이후에 있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의 분과위 심의와 본위원회 심의결과가 크게 주목된다. /임양은 주필

무례

"조선의 국가 제도는 오례(五禮)로 표현된다. 국가 제사에 관한 길례(吉禮), 왕실 장례에 관한 흉례(凶禮), 군사 훈련에 관한 군례(軍禮), 왕실 경사에 관한 가례(嘉禮), 외국 사신을 접대하는 빈례(賓禮)로 구성됐다. 왕세자가 성균관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은 가례로 특별한 것은 왕세자로 하여금 명륜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도록 규정했다. 왕세자가 비록 장차 국왕이 될 존귀한 몸이라 해도, 이 날만은 학생 자격으로 스승에게 깍듯한 예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오례는 국가 차원에서 국왕과 왕실이 실천해야 할 예에 대한 규정이 대부분이지만 사대부와 일반 서민이 지켜야 할 예도 규정하고 있다. 과거시험 합격자 발표나 향촌의 활쏘기 시합과 관련된 예는 사대부 계층에 해당되는 예였고, 매년 80세 이상의 노인이 초청되던 궁중 양로연에서의 예는 일반서민에 해당되는 규정이었다. 오례의 정비를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의 틀을 확정하려고 한 국왕은 세종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에게 당나라의 ‘통전(通典)’, 명나라의 ‘예서’, 고려의 ‘고금상정례(古今詳定禮)’ 등을 연구토록 했다. 세종은 예제 연구사업에 직접 참여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승하했다. 이후 세조가 세종의 유업을 이어 오례의 정비를 계속하였고 마침내 성종 5년(1474년)에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8권 6책이 완성됐다. 조선건국 이후 예치국가로서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기 까지 1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국조오례의’는 국왕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직분에 따라 실천해야 할 예제를 정리한 책이다. 예가 인간과 인간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라면, 악(樂)은 예에 의해 구분된 인간을 화합시켜 일체감을 가지게 한다.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것은 193명의 국회의원들이 국민에게 보인 ‘무례(無禮)’때문이었다. 무례는 치기와 오기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국회의원들이 ‘국조오례의’를 생각하였다면 제 발등을 찍는 도끼를 손에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무례에 대한 판정을 빨리 내렸으면 좋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여성시대

"영국 왕립연구원 원장이자 약학교수인 수전 그린필드가 BBC 다큐멘터리 ‘여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에서 “20년 뒤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외신이 전했다. 20년 뒤엔 ‘여인천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로 산업구조의 변화를 들었다. 근력을 요구하는 제조업에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산업형태로 변화하기 때문에 ‘여성은 힘을 못쓴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는 요지다. 경제부문에서 여성의 성장세는 이미 뚜렷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미국내 400대 부호’명단에 오른 여성들이 지난해 처음으로 평균 순(純)자산 보유액에서 남성들을 눌렀다. 영국의 맞벌이 부부 3쌍 중 1쌍 꼴로 부인의 소득이 남편보다 더 높다는 통계가 나왔다. 또 신규창업 3건 중 1건은 여성에 의한 것이다. 한국의 재계도 ‘여풍(女風)’이 당당하다. 이미 현정은씨가 재벌그룹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앉았고, 삼성그룹, LG그룹, SK그룹에서도 최근 여성임원들이 잇따라 탄생했다. 갈등을 빚는 직장과 출산·육아문제 해결은 기술발달로 가능해진다. 그린빌트 교수는 “18세기에 최상 상태인 난자를 채취해 냉동보관했다가 원하는 시기에 인공수정, 대리모를 통해 출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란 다소 혁명적인 견해를 내놨다. 먼 미래에는 신체의 어떤 세포에서든 유전물질을 추출, 난자와 수정하는 것이 가능해져 출산에 남자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남성의 추락’ 저자 스티브 존스에 따르면 정액 1㎖ 정자수는 1940년대 1억마리에서 1990년대에는 6천600만 마리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2100년 서구 남성들은 정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다간 남성 불필요론이 나올 것 같다. 요즘 한국 각계각층에서 여성 리더들과 엘리트들의 활동이 대단하다. 여성시대가 도래하였다. ‘위기가 오면 여성에게 손짓한다’는 말이 사실로 나타나고 있다. /임병호 논설위원

KTX는 바람보다 빠르다

"오늘 개통한 KTX(고속철)는 Korea TraineXpress의 약자다. 주행가능 최고 속도는 시속 330㎞이다. 최고 상업운행속도는 시속 300㎞이다. 초당 83㎞다. 지난해 영남지방을 휩쓴 태풍 ‘매미’의 순간 최대풍속(초속 60m)보다 빠르다. ‘KTX는 바람보다 빠르다’는 말이 실감난다. 바람보다 빨리 달리려면 곡선과 오르막 또는 내리막이 가능하면 없어야 한다. 그래서 터널과 교량을 많이 건설했다. 가장 긴 터널은 경북 영동~김천 구간 황학산을 관통하는 황학터널이다. 이 터널의 길이는 9천970m이다. 그러나 KTX는 불과 2분만에 여기를 통과한다. 가장 긴 교량은 천안~오송 구간에 있는 풍세교다. 6천850m나 된다. KTX는 시속 300㎞로 달리다 700㎏의 장애물과 충돌해도 객실에는 충격이 없다. KTX의 동력원은 전기다. 전력은 한전에서 전기를 공급 받아 철도청 전철변전소를 거쳐 차량에 공급된다. 전기를 공급하는 과정은 3중화 개념으로 설계됐다. 전기를 공급하던 변전소에 문제가 있으면 인접 변전소에서, 그곳에 문제가 있으면 다음 인접 변전소에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어 정전이 돼도 KTX는 바람보다 빨리 달린다. KTX 1개 열차의 좌석수는 특실 127석, 일반실 808석으로 모두 935석이다. 수요가 늘어 4분 간격으로 운행시 시간당 15회, 1일 16시간 운행시 총 240회 운행이 가능하다. 왕복 480회 운행이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좌석이용률 1.15를 곱하면 하루 최대 51만6천120명이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해동안 1억8천838만명을 실어나를 수 있는 셈이다. 요금은 서울 ~ 부산까지 4만5천원, 용산 ~ 목포는 4만1천400원이다. KTX는 총 46편성으로 구성돼 있다. 1편성은 열차 20량이다. 이중 12편성을 프랑스로부터 도입했고 나머지 34편성은 국내기술(95%이상·로템)로 제작됐다. 그러니까 KTX는 국산이다. KTX의 생명은 무사고, 무탈이다. 인생은 바람과 같다. 한번쯤 바람에 몸을 실어봄직 하다. / 임병호 논설위원

측근비리 특검

“목돈 2천만원을 무슨 돈으로 예금했나요?” “유흥업소에서 15년동안 일하면서 손님들이 준 팁을 상자에 넣어 보관해둔 돈입니다.” “왜 진작 은행에 예금않고 가지고 있었는지요.” “금융사고가 생길 지 몰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돈을 10년 이상 상자에 넣어뒀는 데 상하진 않았는 지요?” “그래서 참숯을 넣어 보관했습니다.” 선문답 같은 이 참고인 진술조서 작성은 얼마전 김진흥 특검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통령 측근비리에 연루되어 구속 중인 최도술씨 형제 등에게 수천만원씩이 전달된 정황이 잡혀 최씨의 동생을 불러 참고인 조사를 한 게 이같은 선문답식 신문과 진술이 있게 된 것이다. 특검팀은 최씨 동생의 진술이 객관적으로 납득되지 않은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입증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할 수 없이 무혐의 처분했다고 한다. ‘새끼줄을 가져온다고 가져왔는 데 나중에 보니 새끼줄에 황소가 달려 있더라’고 했다는 옛날 어느 소도둑의 말을 연상케하면서도 더 황당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유흥업소 종업원으로 그같은 목돈 예금을 갑자기 하게 된 데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으로 본 특검도 혐의를 더 밝혀내지 못했으니 민중들은 ‘10여년 동안 팁받은 돈을 참숯 넣은 상자에 모아둔 돈’이라는 말을 믿어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금융사고가 날까봐 은행에 못 맡겼던 돈을 어찌하여 돌연히 은행을 믿게 되어 예금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무슨 일에 성과가 많으면 물론 노력도 많은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성과가 없어 힘은 힘대로 더 많이 들어, 그래서 노력을 더해 성과를 올리려 해도 안되는 수가 있는 것이다. 특검팀은 오늘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문을 닫는다. 그간의 수사에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수사에 애로가 많았던 탓인지 기대엔 미치지 못했다. 측근비리가 밝혀진 것 만이라고 믿을 세인이 얼마나 될 것인 지가 궁금하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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