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배우

좋아서 에로배우(성인영상물 배우)를 시작한 사람, 특히 여성은 없다. 거의가 급박한 경제적 이유로 에로영화판에 발을 들여 놓는다. 호기김이나 극영화 진출이 여의치 않아 시작하는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옷을 벗는다. 하지만 제작환경이 열악해 수입은 시원치 않다. 에로비디오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에는 수익도 괜찮았고 전문배우로서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지만 최근엔 인터넷을 통해 원초적인 외국의 불법 포르노물이 유통되면서 고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출연료도 형편없다. 여배우를 기준으로 에로비디오 한편 찍는데 60만~70만원, 인터넷 성인방송 1일 출연료가 15만~20만원 정도이다. 모바일용 누드 사진이나 동영상은 1일 촬영에 100만~500만원까지도 받을 수 있지만 대개 신인시절 한 두번으로 끝난다. 가끔 돈의 유혹에 못 이겨 해외로 나가는 배우도 있다. 출연료가 낮은 남자 배우들은 어쩔 수 없이 ‘투잡스족’이 된다. 에로배우들을 더 힘들 게 하는 건 사회의 곱지 않은 세상이다. “실제 정사가 아니라 연기”라고 아무리 항변해도 포르노 배우와 동일시한다. 극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옷을 벗거나 정사장면을 연기하는 사람은 스타 탤런트이고, 에로배우들은 정사장면을 실연하는 포르노배우로 여긴다. 더구나 근래 검찰수사가 겹치면서 에로배우들은 ‘죄인의 심정’이 됐다. 처음부터 성인을 대상으로 만든 것이고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심의까지 받았는데도 음란물로 취급해 배우나 감독이나 ‘죽을 맛’이다. 그나마 감독들이 ‘적은 돈에 옷 벗는 배우들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게 위안이다. 우리 사회는 합법의 틀에서 하더라도 성과 관련된 직업군을 천하게 여기고 터부시한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금언은 우리나라에선 통하지 않는다. 물론 현재의 섹슈얼리티의 과잉시대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는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내남 없이 사람들은 에로영화를 즐기면서도 출연배우는 이상하게 보는 이중성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에로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려워 “적금 만기가 돌아오면 이 생활을 접고 조그만 가게를 낼 계획”이라는 한 여배우의 꿈이 봄나무처럼 보기에 좋다./임병호 논설위원

광명역 이용하기 운동

고속철도(KTX) 광명역이 날이 갈수록 황량해져 정말 대책이 시급해졌다. 주5일 근무제로 승객들이 늘어나야 할 금요일에도 역사(驛舍) 안팎이 한산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4월1일 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문을 연 광명역사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정부 탓이다. 당초 광명역을 시발·정차역의 기능을 모두 갖춘 수도권 남부 대표 고속철역으로 활용키로 하고 부지면적 8만평에 건축면적 1만5천평(지하 2층, 지상 2층), 역사 길이만 해도 가로 300m, 세로 150m에 이르는 초대형 건물을 총 4천68억원을 들여 완공했다. 하지만 경부선 출발역인 서울역과 호남선 출발역인 용산역 등의 사정을 감안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단순 정차역으로 개통됐다. 더구나 평일 134대의 고속철 경부· 호남 상·하행선 중 65%인 88대만 정차하고 주말에도 154대 중 98대만 정차하는 단순 정차역으로 전락했다. 광명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수는 8천500여 명 안팎으로 서울역의 하루 평균 6만~9만여 명에 크게 못미치는 실정이다. 개통 때부터 문제가 됐던 연계도로망은 이처럼 저조한 이용률로 더욱 악화됐다. 현재 이 곳을 운행 중인 시내버스는 25개 노선이지만 모두 광명~안양, 광명~서울 순환노선 일색이고 그나마 수원, 의정부, 분당 등에서 광명역을 경유하는 인천공항 리무진 버스들은 광명역을 경유지에서 아예 빼버렸다. 단기간에 대중교통체계를 대폭 확충하고 광명역까지 경전철을 연계하는 방안을 빨리 추진하지 않으면 막대한 예산으로 건립된 대규모 역사가 애물단지로 변할 위기에 처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역사 인근에 위치한 안양 하수종말처리장과 근처 오리농장 도축장 등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악취가 바람을 타고 광명역으로 날아와 이용객들이 더욱 고통을 겪고 있다. 광명역사는 국책사업이 사전성 검토와 충분한 제반 여건 확보 없이 진행됐거나 목표 변경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여실히 보여 준다. 광명역사가 투자한 만큼 활용되기 위해선 우선 버스, 경전철 등 대중교통과 연계한 교통망을 확충하고 악취 제거에 주력해야 한다. 고속철도 기존선로를 활용, 경수선을 광명역사로 연결하고, 시민들이 앞장서 벌이는 ‘광명역 이용하기 운동’도 활성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임병호 논설위원

이광재 의원

이승만 정권의 실세는 박찬일 청와대 비서관이었다. 그땐 비서실장이란 게 없었다. 그의 승인이 없으면 장관도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실세는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이었다. 그 역시 정부 요인의 대통령 면담 일정을 좌지우지하였다. 전두환 정권의 실세는 장세동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충복을 자처할 정도의 절대적 충성심은 절대 권력자의 신뢰를 사기에 충분했다. 노태우 정권의 실세는 박철언 의원이었다. 정권의 황태자라고 불렸을 만큼 대통령의 화려한 후광을 입었다. 김영삼 정권의 실세는 둘째 아들 김현철씨였다. ‘소통령’이라고 했다. 그의 주변엔 항상 해바라기족들이 들끓었다. 김대중 정권의 실세는 권노갑 의원이다. 그를 통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가히 ‘리틀 DJ’라 할만 했다. 정권 말엔 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 ‘리틀 DJ’의 막강한 실세를 이어받았다. 역대 정권의 막후 실세가 앞서 거명한 사람들만은 물론 아니다. 참으로 많다. 공통점은 집권자의 개인 연분으로 유착된 사실이다. 공조직으로 보기보단 사조직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이른바 역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름의 실세들이다. 노무현 정권의 실세인 이광재 의원의 러시아 유전 의혹사건 연루 정황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왕 아무개로부터 실세측근(이 의원)의 측근이 8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일부는 지난 총선에 유입된 것으로 전한다. 이 의원은 그래도 자신은 안 받았다며 당당하다. 물론 그 돈이 참모들에 의해 이 의원을 위해 쓰여졌는지,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는 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진 않았다. 그러나 염치가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적어도 자신이 부리는 사람에게 (설사 배달사고였다 해도) 뭉칫돈이 접촉된 게 밝혀졌으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는 태도라도 보여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않다. “당당하다 못해 보기에 뻔뻔스럽다”는 말이 많은 게 세평이다. 역대 정권의 실세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영어의 몸이 된 사실이다. 정권이 바뀌면 허망한 권력의 힘을 신앙화하는 실세의 오만이 가련하다면 가련하다./임양은 주필

대졸취업 재교육

“보통(초등)학교만 나오고도 면서기 노릇했다” 옛날 어른들이 곧잘 들려준 말이다. 고등학교를 나오고도 외국인하고 영어 몇마디 얘기 나누지 못하는 것을 두고 빗대어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요즘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를 나와도 9급 공무원 하기가 힘들다. 세태가 달라져 그런다손 치더라도 중학교 고등학교 6년동안 영어를 배우고도 영어 회화를 못하는 것은 지금도 문제는 문제다. 또 있다. 옛날 어른들은 “고등학교까지 나온 녀석이 편지 한 장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말도 했다. 지지대子가 어렸을 적에도 그런 말을 들었다. 그 무렵에 한 친구가 “학교에서 편지 쓰는 법은 안 가르칩니다”라고 했다가 되레 혼났다. 한문 투로 시작해서 한문 투로 끝나는 옛날 어른들 생각의 편지 쓰는 법을 안 배운 건 사실이지만 어른들 생각으로는 한심했던 것 같다. 학교 교육은 인성교육이면서 또한 사회적응교육이다. 교육법은 교육의 목적을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의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며…’라고 규정하고 있다. 많은 학비를 들인 대졸자가 그 어려운 취직의 관문을 뚫고 들어가도 업무에 적응하는 덴 평균 20개월 이상이 걸린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가 밝힌 이 조사는 이를 위한 교육비가 또 1인당 평균 6천2백10여만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니까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제조업 분야나 비제조분야를 불문하고 대졸 취업자를 당장 써먹을 수 없어 기업 부담의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광범위하고 정미한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대학교육이 이러한 실정이다. 결국 오늘의 대학교육이 옛날에 ‘면서기’와 ‘편지쓰기’를 들먹이며 학교 교육을 빗대던 어른들의 개탄과 같은 공식이 됐다. 이처럼 사회적응도 당장 안 되는 대학을 들어 가기 위한 입시에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 또 한 차례 심한 진통을 지금 겪고 있다./임양은 주필

문 의장과 성남시장

‘당선사례’란 말은 많이 들었다. 이에 비해 ‘낙선사례’란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당선시켜줘서 고맙다는 게 ‘당선사례’라면 ‘낙선사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설마 낙선시켜줘서 고맙다는 말은 아닐테고, 아마 밀어주었는 데도 낙선되어 죄송하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같다. 그렇다 쳐도 어법이 안통한다. ‘사례’란 감사하다는 뜻이다. ‘낙선사례’이기 보다는 ‘낙선인사’라고 해야할 일이다. 아뭏든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지난 6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실시되어 0-6으로 완패한 여섯곳 가운데 다섯곳을 들려 ‘낙선사례’를 한 것은 당으로 보아선 잘 한 노릇이다. 속맘이야 쓰리고 아프겠지만 ‘와신상담’이란 고사가 있긴 있다. 그런데 문 의장이 성남에서 몹시 상심했던 것으로 들린다. 성남시청 방문에서 이대엽 성남시장이 직접 마중 나오지 않고 비서실장이 영접한 데 대해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 같다. “성남공화국”이라며 역정을 냈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3선 경력의 문 의장 정치 선배다. 당도 틀린 한나라당 소속이다. 문 의장보다 나이 또한 훨씬 많다. 그래도 찾는 손님을 문전 영접하지 않은 걸 잘 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 시장의 차 접대 초청 자리에 아무 말없이 응했다면 도량 넓은 매너로 문 의장의 판정승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역정으로도 성이 안 찼던 지 차를 같이 하자는 인편 제안도 뿌리치고 시청을 나온 건 되레 판정승을 상대에게 내준 결과가 됐다. 문 의장은 평소 처신이 그리 가벼운 사람은 아니다. 이런 데도 참을성이 없었던 것은 집권당 의장이라는 일종의 우월감이 작용됐던 탓으로 보인다. 하긴, 관선시절 같으면 여당 의장 앞에서 시장은 고개도 제대로 못들 처지다. 시청 문전 영접이 아니라 관할 경계지점에 나가 행차를 맞이했을 일이다. 그러고 보면 ‘성남공화국’이란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집권당 의장도 시장자릴 어쩔 수 없는 민선자치의 힘이 얼마나 큰 가를 실감한다. /임양은 주필

원폭피해자 특별법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60년이 됐다. 원폭으로 인해 일본에 강제 징용된 우리 동포들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목숨을 잃은 사람이 부지기수이고 그 후유증 또한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미 타계한 피해자는 말고라도 현재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피해자만 2천316명에 이른다. 사회적 불이익 때문에 피폭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이 1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여기에 원폭 피해자 2·3세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하는 유일한 원폭피해자 복지사업은 재원부족으로 좌초위기에 처했다. 대한적십자사에 4월 1일 현재 남아있는 잔액이 37억원이다. 올해 추가로 지원될 국고 23억원을 합해도 60억원에 불과하다.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원폭피해자에 들어가는 올 한해 예산은 진료비 10억5천만원, 진료보조비 27억9천만원 등 모두 48억원이다. 이미 집행된 12억원 말고 앞으로 36억원이 더 들어가면 기금 잔액이 연말에 24억원밖에 남지 않는다. 정부 지원금을 대폭 증액하지 않으면 원폭피해자 돕기 사업은 2007년에 중단된다. 원폭피해자 기금이 ‘바닥’을 보이는 것은 일본은 생색만 내고, 정부는 무심한 탓이다. 1990년 5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인 원폭피해자를 위해 두 나라에서 각각 40억엔(당시 환율로 248억원)씩의 지원금을 갹출하기로 합의했다.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모든 과거사 배상 문제는 끝났다고 주장해 온 일본은 배상이 아닌 ‘인도주의’ 입장을 내세우며 한국정부가 아닌 민간단체인 대한적십자사에 40억엔의 집행을 위탁했다. 이를 기반으로 설립된 기금은 적십자사에 등록된 원폭피해자들에게 한해 진료비(보험급여 중 본인 부담금)와 월10만원의 진료보조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사망시 장례비로 150만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대한적십자사에 등록지 않은 피해자들은 월 10만원이라는 쥐꼬리만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일본은 이미 1957년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의료법을 제정하고 1998년까지 원폭피해자 35만여 명에게 25조여원을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도 원폭피해자 특별법을 속히 제정하여 피해자들을 국가에서 도와 줘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여성 화폐모델

우리나라 지폐에서 여성이 처음 나온 것은 1962년 5월 16일 발행된 100환짜리 지폐다. 이 지폐의 오른쪽 부분에는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아들이 저금통장을 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권력자가 아닌 보통 사람이 그려진 지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지폐는 1962년 6월 12일 단행된 3차 통화조치로 20여일 동안만 유통되다가 아쉽게 사라졌다. 현재로서는 화폐에 여성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한국은행이 내년 상반기에 새 5천원권을, 2007년 상반기에는 새 1만원권과 1천원권을 발행하겠다고 밝혔다. 크기를 줄이고 색상을 바꿔 세련미를 더하고, 위변조 방지기능도 보강하겠다고 한다. 1983년에 나온 지폐가 20여 년만에 모두 개선될 것 같다. 한국은행은 새 지폐를 빨리 만들어 위폐 확산을 막고 지폐에 들어갈 인물 변경에 따른 국론분열을 피하기 위해 세종대왕, 이율곡, 이퇴계의 도안은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화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정서, 기술력 등을 한 눈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국가상징물이다. 외국인 손에도 들어가는 ‘무언의 외교관’이다. 화폐 인물 교체가 재고돼야 한다. 외국의 경우 자국의 화폐에 등장하는 여성으로는 이탈리아 의학자 몬테소리, 노르웨이 음악가 플라그스타, 스웨덴 노벨문학상 라겔뢰프 등이 있다. 프랑스는 폴란드 출신으로 프랑스인과 결혼한 과학자 퀴리를 택했다. 일본도 지난해 새로 발행한 5천엔권에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를 넣었다. 최근 선구적인 여성운동 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6명의 여성을 화폐에 넣자는 주장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부모를 잃고 기생으로 전락했다가 객주집에서 큰 돈을 벌어 굶주린 제주도민들의 배를 채워준 ‘최초의 여성사업가’ 제주 의녀 김만덕, ‘한국의 잔다르크’ 유관순, ‘여성 정치의 시조’ 선덕여왕, ‘여성해방 운동의 대모’ 이태영, ‘조선시대의 페미니스트’ 허난설헌, 독립운동가 김마리아 등이 지폐의 인물로 거론된다. 신사임당은 항상 거론돼 왔다. 화폐에 여성을 등장시키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일이다. 안 될 이유가 없다./임병호 논설위원

꿈나무 예능발표회

경기도아동복지연합회가 해마다 개최하는 어린이 날 기념 행사는 색다르다. 아동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이 주빈이다. 어제 경기도 문화의 전당 공연장에서 열린 ‘제83회 어린이날 기념식 및 제13회 꿈나무 예능발표회’도 예년처럼 성대하였다. 도지사와 교육감은 참석을 못했지만 도교육청 김성기 교육국장이 ‘어린이 헌장’을 낭독했고, 정창섭 행정1부지사가 기념사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심양금 경기도아동복지연합회장과 황용구 한국아동복지연합회장도 간단 명료한 대회사와 축사로 어린이들의 어깨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들이 다 함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고 ‘어린이날 노래’를 불렀다. 경기도아동복지연합회가 마련한 도시락 점심을 야외공연장 주변 솔숲에서 맛있게 먹은 뒤 열린 제2부 행사는 예능발표로 이어졌다. 파주보육원, 한국보육원, 명륜보육원, 해관보육원, 천혜보육원, 동광원, 애향보육원, 신애원 등 8개팀이 경연했는데 ‘웰컴 투 경기’를 고전무용으로 펼친 애향보육원이 대상을 차지했다. ‘율동-비온 날의 풍경’ ‘난타-평화와 상생의 북소리’ ‘오카리나 합주’ ‘장기자랑’ ‘태권도시범’ ‘기악합주-작은 별 변주곡’ 등이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았고, 한국리듬태권도협회와 향림엔젤 헨드벨 연주단의 특별공연도 멋있었다. 인기상·우수상·최우수상·대상 순으로 시상할 때 마다 학생들은 물론 참가 복지시설들의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 대표들이 무슨 노벨상이라도 타는 것처럼 무대에서 환호를 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순박하여 아름다웠다.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예능발표회가 끝난 뒤 경기도 문화의 전당 로비에서 기념사진을 찍거나 또는 광장에서 선생님들과 노래를 부르는 ‘꿈나무’들의 활짝 웃는 모습들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다. /임병호 논설위원

부부강간죄

도대체 부부강간죄의 성립 기준이 무엇인 지 모르겠다. 말은 하기 좋아서 별의 별 말들을 다 한다. ‘성 거부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행위’라고 말한다. 말은 쉽지만 이 기준 또한 모호하다. 심신이 피곤한 아내에게 남편이 성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수가 적잖을 것이다. 반대로 심신이 피곤한 남편에게 아내가 성을 무리하게 요구하는 예도 적잖을 것이다. 서로가 성을 요구했을 때 응할 의무가 있는 것이 부부다. 그렇지만 응하는 것도 자신의 의사 결정에 의한 것이야 하는 것은 맞다. 인간의 기본권이다. 일방적인 성은 결코 유쾌할 수가 없다. 그러나 또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도중에 흥미를 갖게 되는 수도 있는 것이 서로간의 부부관계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부부강간죄를 포함하는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낸다고 한다. 미국에선 이미 도입된지가 오래인 부부강간죄가 양성평등을 위해 우리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부부강간죄 말을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부부관계 중 아내가 그만 두라고 했는 데도 계속한 남편이 강간죄로 아내로부터 고발당해 법창화제가 된 적이 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란 말도 있고 ‘부부도 돌아 누우면 남남이다’란 말이 있다. 이 두 말은 상반되는 말이지만 다 맞는 말이다. 이같은 모순의 갈등을 해소해가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다. 국가가 안방의 은밀한 부부행위를 간섭하겠다는 생각부터가 잘못이다. 미국이라면 알레르기성 반응을 일으키는 열린우리당이 미국의 부부강간죄 같은 건 왜 좋아하는 지 모르겠다. 우리는 생활문화가 미국과 다르다. 이혼소송 중이거나 별거상태시 폭력에 의한 성행위 등에 적용한다지만 당치 않다. 이 역시 당사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폭력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아내가 남편을 폭력으로 고소하면 현행 법률로도 능히 처벌이 가능하다. 부부강간죄는 화합을 되찾을 부부를 되레 나쁘게 만들어 가정 파괴를 부추길 우려가 무척 높다. 그나 저나 잘 알 수 없다. 열린우리당의 부부강간죄 거론이 정말 열린 생각인 지, 아니면 하릴 없는 잡생각인 지는 독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임양은 주필

꽃게, ‘금게’

꽃게는 얕은 바다 모래땅에서 무리로 생활한다. 원거리 이동을 즐긴다. 서해 연안에서는 북에서 남으로 무리지어 옮긴다. 5~6월이 바로 그같은 계절이다. 그러니까 지금이 꽃게철이다. 담백한 고단백질 육질과 맛깔스런 알이 가득찬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이런 데도 꽃게가 귀하다. 미식가들이 전엔 흔했던 꽃게를 이젠 찾아 헤매야 할 판이다. 값도 비싸다. 산지 소매가격이 한 마리에 2만원이다. 마리당 3천~4천원이면 시장바닥에서 골라 잡아 살 수 있었던 꽃게가 이처럼 ‘금게’가 됐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선단을 지어 밤새 쳐놓은 그물에 걸린 꽃게가 겨우 여덟마리밖에 안 됐다는 근래 보도가 있었다. 서해에서 전 같으면 만선의 호황을 누릴 어민들이 꽃게가 안 잡혀 아우성이다. 건설용 자재로 바닷모래를 마구 채취한 지가 오래됐다. 바다밑 생태계 변화가 꽃게 품귀현상을 가져왔다. 이런 가운데 좀 있는 꽃게마저 중국 어선이 대거 침범해 싹쓸이 해간다. 중국 어선은 북방한계선을 교묘히 넘나들면서 꽃게쓸이를 일삼고 있다. 꽃게가 남하하기 전이 아니면 남하하기가 바쁘게 잡아간다. 여러 해동안 해마다 이러다 보니 한 해가 다르게 씨가 말라간다. 지난 1일 연평도 어민들이 보다 못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불법 조업하는 중국어선 4척을 나포했다. 처음 있는 일이다. 어민들은 한동안 중국어선을 해경에 넘기지 않고 근본적인 대책을 해경에 촉구했다. 하지만 해경인들 별 도리가 없다. 정부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럼에도 이 정부는 중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외교문제로 번지는 것을 기피하고 있다. 이로인해 어민들은 생계가 고달퍼지고 국민사회는 꽃게철에 꽃게를 맛보기가 어려워졌다. 홍어는 옛말에 “만만한 게 홍어 뭐냐”는 말이 있었을 만큼 흔했지만 지금은 구경조차 어려울 정도로 귀해졌다. 꽃게 또한 홍어처럼 귀해져 간다. 이런 세속의 변화가 인재탓 인 건 두려운 현상이다. / 임양은 주필

국공합작

중국 국민당은 쑨원(孫文)의 삼민주의 표방아래 1919년에 창당됐다. 지금은 타이완 정부의 야당 신세가 됐지만 중국 국민정부의 오랜 집권당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1921년 상하이에서 있었던 공산당 창립대회 당시 후난(湖南)성 대표로 참가했다. 1차국공합작(1923~1927년)은 북방의 군벌과 그 배후의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키 위한 정치적 제휴였다. 그러나 북벌을 마친 장제스(蔣介石)는 반공 우파 쿠데타를 감행, 새로운 국민당 정부로 난징(南京)정부가 들어서 1차 국공합작이 깨지면서 공산당은 불법화 됐다. 이에 공산당은 마오쩌둥을 지도자로 장시(江西)성을 거점으로 하는 중화소비에트를 세워 난징정부에 대항, 10년에 걸친 국공내전이 전개됐다. 2차국공합작(1937~1945년)은 일본의 대륙 침략에 대항하기 위한 국공내전의 종식이었다. 이같은 ‘항일민족통일전선결성협정’이 있었던 덴 시안(西安)사건이 극적 배경이 됐다. 1936년 12월12일 공산군 토벌 독려차 시안을 찾은 난징정부의 장제스를 주둔군 사령관 장쉐량(張學良)이 감금해버렸다. 장제스는 석방됐으나 이것이 ‘내전반대’ ‘일치항일’의 분위기를 성숙시켜 국민당과 공산당이 재차 손을 잡은 것이 2차 국공합작이다. 그러나 1945년 8월15일 일본의 2차 대전 패망이후 다시 시작된 국공내전은 1949년 국민당 정부군이 공산당 인민해방군에게 밀려 타이완으로 패주한 그해 10월 마오쩌둥을 초대 주석으로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3차국공합작 기운이 돌고 있다. 2차합작이 깨진 지 60년 만이다. 렌잔(連戰) 타이완 국민당 주석을 맞이한 중국 대륙은 환영 일색이다. ‘양안의 공영’을 내건 렌잔 국민당 주석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과 국공수뇌회담을 가졌다. 독립을 주장해온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의 렌잔 국민당 주석 외환죄 거론은 흥미롭다. 보수정당인 국민당이 합작을 도모하고 진보정당인 민진당이 반대하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임양은 주필

마약

19세기 후반 중국의 최고 사상가로 불린 엄복(嚴復)은 청년 시절 국민적 기대를 받았으나 마약 중독으로 아까운 사상을 썩혀 버렸다. 그는 자신의 저서인 ‘천연론(天演論)’ 등에서 “오늘 참기가 너무 어려워 아편 몇 대를 피웠다”는 기록까지 남겨 천재가 마약에 중독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실감나게 보여줬다. 최근엔 인기 가수 뤄치, 미모의 여배우 주졔가 수년 전 마약 과다복용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그나마 가수 징강산과 두더웨이, 쑤융캉 등은 조금 나은 편이다. 마약 복용 혐의로 2 ~3년 전 줄줄이 형사 처벌을 당해 사실상 연예인으로서의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생명을 잃는 최악의 불행은 면했다. 중국의 사정 당국은 전국 각지의 공안에 마약과의 전쟁을 전개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외신이 전했다. 중독자 최소 1천만명, 마약 관련 범죄 한해 평균 100만건 발생 등의 작년 통계가 나왔을만큼 지금 중국은 마약이 창궐한다고 한다. 3년 전 한국인 마약 사범 신모씨를 사형에 처해 한국과 외교적 분쟁을 일으킨 데에서 보듯 중국은 원료의 재배를 비롯해 제조, 유통망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 외에 마약 사범을 강력하게 처벌한다. 마약의 창궐이 원인을 제공한 1840년의 아편전쟁에서 치욕적 패배를 당해 영국에 홍콩을 무려 156년동안이나 할양당한 뼈아픈 과거가 있는데도 중독자가 최소 1천만명이라고 하니 마약은 인간을 파멸시키는 독소가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도 마약때문에 초비상이 걸렸다. 우리 국민들이 마약 사용을 알코올 중독보다 덜 나쁘게 생각하는 등 불감증이 위험수위에 달했다. 또 성인 남녀 100명 중 4명이 마약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다른 범죄와 비교해 마약사용이 얼마나 나쁜 행동인 지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더니 응답자의 67%가 살인, 폭력, 강도, 절도, 강간, 사기, 성희롱, 알코올 중독보다 덜 나쁘다고 대답한 것은 보통 심각한 현상이 아니다. 더구나 마약이 주부, 학생 등에까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마초 피울 자유를 달라”는 연예인들도 있으니 마약 폐해가 심각하기는 한국이 중국보다 훨씬 더한 셈이다. / 임병호 논설위원

최은희 여기자상

우리나라 최초의 여기자 추계(秋溪) 최은희(崔恩喜·1904~1984)선생은 황해도 연백 출신이다. 1919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니혼여자대학 사회사업학부에서 수학했다. 1924년부터 1931년까지 조선일보 기자, 학예부장을 지냈고, 1927년 근우회(槿友會) 중앙위원, 1948년 대한부인회 서울시부회장, 대한여자국민당 서울시당수(1962), 한글학회 지도위원(1971), 3·1국민회의 대표위원(1971~1973), 3·1운동여성참가자봉사회장(1981) 등을 역임하였다. 3·1운동에 앞장서 두번이나 옥고를 치렀으며 조선일보사 재직 8년 동안 뛰어난 능력을 발휘, 언론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여성기자로서 선구적인 활동을 하는 한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법과 통신강의과정을 수료하는 맹렬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인 여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최초의 방송아나운서를 지냈고, 비행기 취재를 하기도 했다. 8·15 광복 후 여성신문사와 주간생활신보사의 고문을 지냈다. 대한부인회 간부로서 여성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 회의 기관지 ‘풀이’의 주간을 역임하였다. 또 여성실천운동자클럽·서울보건부인회 등을 조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씨 뿌리는 여인’(1957), ‘근역의 방향’(1961), ‘조국을 찾기까지’(1973)와 한국여성근대사를 정리한 ‘여성전진 70년’(1980) 등 명저를 남겼다. 추계 선생은 특히 타계하기 2년 전 모든 재산을 정리, 조선일보사에 5천만원을 맡겨 ‘한국여기자상’을 제정하였는데, 모든 자료는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그리고 가재도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추계 선생의 이름으로 명명, ‘최은희 여기자상’으로 시상돼 온 한국여기자상은 그동안 한국의 저명 여기자에게 시상한 ‘영광의 언론상’인데 제22회 올해 수상자로 경기일보 문화부장이 결정되었음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경기일보 창간사원인 이연섭 부장은 줄곧 문화부에 근무하며 경인지역 언론 창달과 문화예술 발전에 지대한 기여를 한 베테랑 기자다. 시상식은 5월1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독자들과 함께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미리 보낸다./임병호 논설위원

독도특별법

여야가 지난 15일 나란히 제출한 ‘독도특별법’은 여야의 시각차가 너무 크다. 최종안 도출까지 진통이 예상됨은 물론 실현성 없는 선언적 수준에 불과할 우려가 있다. 우선 열린우리당이 제출한 법안은 독도 인근 해양의 어족자원과 해저자원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 독도 주변 해저 대륙붕 개발이나 해양자원, 관광자원 등을 적극 개발하고 이를 장기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실효적 지배를 공고히 하자는 데 역점을 뒀다. 그동안 격리돼 있었던 독도를 국토이용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한나라당 법안은 독도에 실질적 거주 개념을 도입하는 유인도화가 핵심이다. 독도를 단순한 암석이 아니라 주민이 거주하는 확실한 영토를 만들자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독도의 식수 및 농업용수 개발과 경작지 확보를 위한 섬 주변 매립, 방파제와 선착장 설치, 태양열과 조력·풍력 이용을 위한 에너지 시설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적시했다. 독도에 조성되는 토지를 경작할 주민의 거주 대책까지 포함시켰다. 민주노동당은 독도 개발보다는 유네스코가 독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토록 촉구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 영토로 세계에 공표되는 효과를 얻도록 하자는 안을 제시했고, 민주당은 독도지원특별법을 준비 중이다. 여야가 이렇게 각각 법안을 마련했지만 문제는 현실적인 난제가 많다는 데 있다. 독도유인화의 경우 한나라당이 발의했지만 강재섭 원내대표조차 “독도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라고 반신반의하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의 법안 중 관광시설 설치나 인근 해저자원·어족자원 개발도 ‘독도 환경 보존’이란 기본 취지와 상충된다.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은 재론할 나위도 없지만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도 적지 않은 걸림돌이다. 따라서 여야는 이미 제출한 법안을 토대로 하여 심도있는 논의를 거쳐 선언적 수준이 아니라 실효적 지배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공동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야 한다. 독도특별법마저 여야가 논쟁하는 모습을 외국 특히 일본에 보여서는 안 된다. 한가지 분명히 해야할 것은 독도를 일상생활 속의 영토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EEZ 바다모래

물과 모래는 헤푼 개념으로 써왔다. ‘물 쓰듯이 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세월’이란 말이 대개 이렇다. 하지만 물을 물 쓰듯이 하지 못하는 세태다. 절수운동이 점점 심각해진다. 모래도 모래처럼 많지 않다. 어디에 가도 그 흔하던 모래가 이젠 금싸라기가 됐다. 인근 하천을 뒤집고 한강을 파헤치던 모래 채취가 민물에선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바다모래는 염분을 제거한다고 해도 남아 부실공사의 요인이 된다고 했다. 그러든 말든 바다모래 채취 또한 열 올린 끝에 이젠 이마저 품귀 상태다. 연안모래 역시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해변의 모래 사장이 수년 사이에 저절로 없어지는 생태계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옹진군의 바다 휴식년제 실시로 바다모래 채취가 불가능해지자 심해 모래까지 손을 뻗치는 판이다. 건설교통부가 배타적경제수역(EEZ)의 바다모래 채취 허가를 추진하려 들자 해양수산부가 해양환경을 이유로 반대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연안모래 채취는 수심 40~50m 밑바닥에서 채취하는 데 비해 EEZ모래 채취는 100여m 깊이에서 채취한다고 한다. 운송 거리도 EEZ모래는 적잖은 시일이 걸리는 200해리나 된다. 이같은 EEZ모래는 채취작업 및 물류운송의 어려움 때문에 허가한다고 해도 모래 가격이 폭등할 것은 자명하다. 서해안에서 조기나 꽃게가 사라져가는 덴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바다모래 채취로 인한 생태계 변화도 작용된 게 틀림이 없다. 해저환경이 파괴되는 판에 어족자원이 전같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또 걱정이 된다. 모래는 모든 건설작업에 없어선 안되는 필수품이다. 모래가 없으면 건설작업이 올 스톱된다. 이렇게 되면 건설경기가 냉각되고 건설경기 냉각은 국내 경제의 받침축이 무너진다. 가뜩이나 불경기인 판에 사람 살기가 더 어려워진다. 참, 딱한 노릇이다. 이래도 탈이고 저래도 탈이다. 인간의 생활 자체가 곧 자연파괴인 것 같다. 자연환경 보존은 상대적 개념일 뿐, 인간생활에 절대적 자연환경 보존은 불가능하다. 우리네 인간들, 문명의 발달이 새삼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임양은 주필

참전용사 ‘2題’

영국은 6·25한국전쟁 때 우리를 도와준 유엔 참전 16개국의 일원이다. 보병여단 및 해병특공대, 항공모함 1척이 포함된 함정 17척 등으로 총 병력 1만4천198명이 참전했다. 총병력 30만2천483명이 참전한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컸다.(참전 16개국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프랑스·필리핀·터키·타이·네덜란드·그리스·에디오피아·콜롬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벨기에·룩셈부르크) 파주시 적성면 설마리 고지는 영국군에게 잊을 수 없는 격전지였다. 1951년 4월 글로스터 대대가 중공군 63사단을 맞아 벌인 혈전 끝에 대대 병력 622명중 583명이 죽고 39명만이 살았다. 이 전투기념비에서 지난 24일 영국군 참전용사 50명과 전사자 유족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가졌다는 설마리전투 54주년 기념행사 보도는 숙연케한다. ‘영국군 정복에다 스코트랜드 전통 의상의 연주자가 울리는 백파이프 소리에 일제히 발맞추는 발걸음엔 흐트러짐이 없어 곳곳한 자세와 강렬한 눈빛은 50여년전의 젊음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다’는 기사는 백발 노병들의 기개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대한재향군인회 초청으로 이같은 추모 퍼레이드를 가진 참전 용사들은 파주지역 중고등학생 장학금으로 1천800만원을 내놨다. 더욱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설마리전투 생존과 스콧 베인브리지씨의 재로 변한 유골을 이곳에 뿌린 사실이다. 당시 이등병이었던 베인브리지씨는 “한국에 유골을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겨 전우들의 거수경레 속에 한국 산하의 흙이 되었다. 같은 날, 인천국제공항에서는 2002년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고(故)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33)가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고국을 떠났다. ‘서해교전전사자추모본부’ 대표를 맡았던 그녀가 모든 걸 버리기까지는 정부의 냉대를 견디다 못한 분노의 폭발이었던 것 같다. 주기(週忌) 때마다 정부측에서 얼굴을 비치기는 커녕 오히려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방인(異邦人)의 참전용사 유해는 우리 땅에 묻히려 오는 데, 전사한 우리의 참전용사 부인은 고국을 떠나야하는 나라안 풍토가 참으로 부끄럽다./임양은 주필

뇌물소득세

뇌물에 소득세를 매기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 재경소위를 통과해 오늘 재경위전체회의에 상정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의 뇌물 수수행위를 엄단한다는 취지는 좋다.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소득은 정당한 반대급부를 말한다. 예컨대 도박으로 딴 돈이나 사기를 쳐 편취한 돈이나 강도질로 빼앗은 돈은 소득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박판에서의 채권 채무관계, 집창촌에서의 포주에 대한 창녀의 빚 같은 것이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에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소득세가 있는 건 마땅하지만 뇌물을 과연 소득으로 볼 수 있느냐엔 문제점이 많다. 뇌물 자체가 불법인 마당에 합법적인 과세행위가 가능하느냐는 의문이 성립된다. 또 이런 경우가 있다. 뇌물 수수행위엔 유죄판결시 신체형과 함께 으레 전액 추징 선고가 병과되는 것이 관행이다. 뇌물이 불법이더라도 수입인 것은 사실이므로 소득세를 매긴다고 본다면 추징으로 다 토해낸 뒤엔 어쩔 것인가 하는 문제점이 생긴다. 뇌물을 다 내놔 수입이 없는 데 소득세를 매기는 것은 과세의 원칙에 어긋난다. 또 뇌물에 소득세를 받았다면 이 역시 추징으로 내놓은 뒤엔 이미 받은 소득세를 환급해야 할 판이다. 오늘 재경위전체회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진 두고 보아야겠지만 뇌물에 소득세를 매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소득세 따위가 무서워 뇌물을 받을 사람이 안 받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적발안 된 뇌물에는 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뇌물소득세는 결국 수뢰가 들통나 유죄판결이 확정돼야 부과가 가능하므로 소득세를 미리 겁내어 안 받는다고는 볼 수 없다. 법리에 의문이 많은 무리한 입법은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엉뚱한 부작용을 낳기가 십상이다. 뇌물받은 전액을 추징금으로 몰수하는 현행 법원의 관행에 맡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뇌물 공무원은 퇴직금 등을 몰수하는 방안이 소득세 부과보다 오히려 방어 효과가 높다./임양은 주필

문화재 종합병원

아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계획대로라면 2007년에 ‘문화재종합병원’이 설립된다. 진료실·실험실·수장시설·연구실 등을 갖출 문화재종합병원은 문화재 치료법과 효과적인 예방보존 방안을 연구개발, 보급하고 손상문화재에 대한 종합적, 과학적인 보존진료를 시행한다. 생소하지만 문화재종합병원이란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이 회복불능의 ‘중병(멸실·훼손 직전)’에 걸려 있으나 응급치료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고령이 되면 노쇠하거나 각종 질환에 시달리는 것 처럼 문화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에겐 병원이 있지만 문화재는 치료기관(보존처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유산 중에는 의료기술(보존관리 방법)부족 등의 이유로 회복(원형 복원)이 어려운 중환자(국보급 유물)들이 상당히 많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국보 제151호 ‘조선왕조실록’ 중 한지에 밀랍이 도포된 책들이 대표적으로 복원이 쉽지 않은 사례다. ’태종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614책 중 415책이 밀랍본인데, 이 중 131책이 밀랍 경화로 얼룩이 지고 한지가 떨어져 나가거나 들러붙는 등 훼손이 심각하다. ‘세종실록’은 154책 중 86책이 밀랍으로 심하게 손상됐다. 1973 ~ 1975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옥충안교(말 안장 가리개)’는 보존처리 방법을 못찾아 발굴 후 현재까지 글리세린용액에 넣어 보관 중이다. 목재와 비단, 금동, 옥충(비단벌레)의 날개를 혼합해 만들어진 이 유물은 목재와 금동, 옥충 날개 모두 썩거나 부식되는 등 약화돼 있어 종합적인 보존처리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구례화엄사 화엄석경’, 순천 송광사 소장 ‘경질’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표면 오염물질 증가와 균열발생, 안료박락 등으로 훼손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들 환자를 치료해야 할 종합병원 건립과 의사(전문인력) 채용이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처의 협조를 못 받아 표류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중환자들이 다 죽은 뒤 병원을 세우려는 모양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편안하고 즐겁게 가는 길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인간이 존엄하게 죽을 권리’와 ‘누구도 중단시킬 수 없는 신성한 생명’이라는 두 주장 대립은 ‘안락사 논쟁’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쯤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나는 누구에게도 독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비록 그렇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더라도-그런 계획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안락사와 자살에 대한 논쟁은 기독교와 관계가 깊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생명은 하느님이 내린 것으로 안락사든 자살이든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하였다. 따라서 안락사도 살인의 일종으로 처벌의 대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14~16세기)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상이 일어났다. 토머스 모어는 가톨릭신도이지만 1516년 발표한 ‘유토피아’에서 비기독교 사회에선 본인의 의사에 의한 안락사는 용인될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의 철학자 F 베이컨도 ‘노붐 오르가눔’(1620)에서 긍정론을 폈다. 18세기 말부터는 인도주의가 대두되고 의학발달이 계기가 돼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위한 적극적 안락사를 인정하는 흐름이 일어났다. 안락사를 법적으로 처음 인정한 나라는 네덜란드다. 2001년 4월 안락사를 합법화했고 이어 2002년 5월 벨기에가 뒤를 따랐다. 올해 4월 13일엔 프랑스 상원이 소생 가망이 없는 말기 환자가 생명 연장 치료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할 수 있도록 하는 ‘죽을 권리’ 법안을 의결했다. 안락사(Euthanasia)는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 행복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뜻한다. 그리스어로는 ‘쉬운 죽음’을 가리킨다. 안락사는 시술자의 입장에서 행하는, 즉 환자에게 직접 치사량의 독극물을 주사하는 등의 ‘적극적(능동적)안락사’와 환자에게 필요한 의학적 조치를 하지 않거나 인위적인 생명 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수동적)안락사’가 있고, 환자 입장에서의 ‘자발적 안락사’와 ‘무자발적 안락사’가 있지만, “죽어가는 순간이 오래 사는 일 보다 힘들다”는 말처럼 의식도 없이 가족들에게 심적·물적으로 고통을 주며 살면 무엇하는가. 무의식 상태에서의 죽음은 글자 그대로 ‘안락(安樂)으로 가는 영생의 길’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반도를 나가라’

2011년, 일본은 경제가 파탄에 빠지고 외교적으로 완전히 고립된다. 2000년대 중반 달러화가 폭락하고, 2007년 미국이 중동정책 실패를 선언하면서 미국의 힘이 급속히 약해지자 미국만 바라보던 일본 역시 국제 정치·경제적으로 쇠락한 탓이다. 2009년 대선에서 미국 민주당이 승리하고 중국의 힘이 커지자 미국은 일본에 등을 돌리고, 동북아에는 미국, 중국, 러시아, 남북한 중심의 공동안보체제가 정착된다. 이에 일본에서는 실업자와 홈리스가 쏟아지고, 물가는 치솟으며, 흉악한 범죄가 잇따른다. 한편 미국정부의 대북 회유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북한에선 개혁파가 대두하고, 자연스레 남북한 통일기조가 조성된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반대하는 중국은 민주적인 친중국 북한정부 수립을 꾀한다. 이때 북한의 개혁파가 ‘반도(半島)를 나가라’는 작전을 세워 ‘반란군’을 가장한 군대로 일본의 본토를 공격한다. 북한의 최고 엘리트 9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가 프로야구 개막전이 열리는 규슈(九州) 후쿠오카 돔을 무력점검하고, 2시간 뒤 484명의 특수부대가 옛 소련제 특별수송기를 타고 도시로 들어온다. 일본 정부와 각료가 아무 대응도 못하는 사이 후쿠오카(福岡)시는 북한군의 수하로 들어가고, 북한군은 8개 군단 12만명이 일본 본토로 진주하는 마지막 3단계 작전에 들어간다. 일본의 대표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신작소설 ’반도를 나가라’의 배경이다. 류는 아쿠타가와 수상작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69’ 등 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으며 영화감독, 화가, 사진작가 등 전방위로 활동해온 소설가다. 일본작가로는 드물게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아 수차례 방문했고 한국방문기를 책으로 내놓기도 했다. 작년 봄에도 한국을 찾았던 무라카미 류는 일본사회에 대한 암울한 전망, 일본의 미국 중심 외교에 대한 비판적 시선, 중국의 아시아 패권 등 나름의 예견을 종합하면서 북한의 잠재적 위협을 이 가상 정치소설 속에 담았다. 일본 도심의 버려진 소년들이 ‘반란군’을 상대로 폭탄·생물전을 벌이고 이들을 일본 열도에서 몰아내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은 한·일 양국의 최근 정세와 맞물려 미묘한 호기심을 품게 한다. 실제로 북한과 일본이 전쟁을 한다면 어느 쪽이 승리할까. /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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