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파업

억대 연봉을 받는다 해서 노동 쟁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너무 한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간헐적으로 실시하는 음주 및 약물검사를 하지말고, 비행기를 그냥 타고가도 비행시간에 포함시켜 주고, 외국인 조종사 채용시엔 노조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쟁의 내용엔 이런 요구들이 들어있다. 사측이 들어주지 않는다며 전면파업에 나서 사흘을 넘기고 나흘 째 접어든다. 휴가철을 맞아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안 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다. 전자제품, 섬유, 의약품 등 수출에 항공편을 이용하는 산업계가 타격을 받고 있어 걱정이다. 특히 휴대전화, 모니터, 컴퓨터 부품, 컬러 텔레비전, 반도체 등 전자업계는 더 한다. LCD모니터, PDP 등 전자제품 180t 분량의 수출이 이미 차질을 빚었다. 이대로 가면 정밀기계 부품, 고급 패션의류, 농수산물도 타격이 미칠 것으로 보고 업계는 부심하고 있다. 수출은 경제의 해외 전선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상품의 품질도 좋아야하지만 신용이 생명이다. 약속된 물건을 약속된 납기에 대지 못하면 해외바이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신뢰가 떨어지면 경쟁국이 끼어들어 거래선이 바뀌면서 거래가 중단된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의 파업은 법률적 가치나 사회적 도덕성에 비추어 아무래도 일치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잖아도 나라 경제가 어렵다. 민생도 어렵다. 이런 실정에서 수출에 지장을 주고 민생에 비웃음을 사는 장기 파업은 다시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얼마전에 30대 보라매 4명이 서해에서 숨졌다. 무려 30년이 된 전투기를 타고 훈련 중이던 두 대가 잇따라 떨어지는 비운을 당했다. 이들이 봉급말고 받은 비행수당은 고작 월 80만원이다. 민항 조종사들의 상당수가 군 출신인 것으로 안다. 선배로서 같은 항공인으로서 느낀 바가 없지않았을 것이다. 좋은 조건에서 아주 좋은 대우를 받는 민항조종사들이 벌이는 파업은 생소하게만 들린다. 아흔아홉 섬을 받으면서 백 섬을 채우기 위해 한 섬을 탐내는 것과 같아 보인다./ 임양은 주필

중국의 공룡화

중국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 진출한 국내 섬유업체가 최근 줄줄이 퇴출당했다. 중국 섬유업계의 경쟁력이 그만큼 강해졌기 때문이다. 임금이 싸다는 것도 옛말이 되어간다. 중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기회의 땅이 아닌 강력한 경쟁국으로 떠올랐다. 중국의 위안화 환율 정책이 세계 경제의 향배를 가늠하는 변수로 작용될 정도로 경제규모 또한 공룡화 돼 간다. 올 성장률을 8% 선으로 내다보고 있다. 대륙 인구가 13억에 5대양 6대주 등 세계 도처에 있는 화교 인구가 7억으로 60억 인류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국제적 호감도 또한 높다. 미국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결과 우방인 영국에서조차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65%로 미국의 55%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보도됐다. 프랑스도 58% 대 43%로 중국이 미국에 앞서고, 이슬람권 친미 나라인 터키·요르단에서도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 영국에서 열린 G8 정상회의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공식 초청했을 정도로 세계적 위상이 높아졌다. 경제 성장에 힘입은 부호계층이 급증하면서 빈부의 격차가 심한 게 중국 사회의 큰 병폐가 되긴 됐다. 공산주의 혁명 이전 수준의 빈부 격차로 돌아갔지만 농경사회에서 같은 구조적 불평등의 불만은 별로 없다. 누구나 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사장들이 많은 나라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국가지만 속은 자본주의 사회가 된지 오래다. 자본주의를 하는 우리 나라가 오히려 중국보다 기업 규제가 더 심한 면이 많다. 중국에서 돈을 벌려고 밀항해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대로 더 가면 언젠간 국내에서 중국으로 돈 벌려고 가는 밀항자들이 있게 될지 모른다. 한 해가 다르게 변하는 중국의 발전상은 10년이면 한 세대 차이와 맞먹는다. 중국은 내심 한국을 만만하게 본다. 우리가 중국을 얕잡아 보는 것은 착각이다. 한국 경제는 어느 사이에 일본과 중국의 가운데 끼이게 됐다./임양은 주필

황 교수와 이의동 주민

지난 15일 가진 경기바이오센터 기공식을 평화적으로 치를 수 있었던 것은 황우석 서울대 교수 덕분이었다. 수원시 팔달구 이의동 광교테크노밸리에 조성되는 경기바이오센터 기공식을 주민들은 원래 저지키로 했었다. “충분한 보상없이 일방적으로 개발하려 든다”는 것이 반대 이유다. 그러나 주민들은 황 교수가 행사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공식이 열리는 경기도중소기업지원센터 정문을 120여명이 막고 시위를 벌이기로 했던 계획을 자진 취소했다. 나라의 명성을 드높인 세계적 과학자의 영예에 흠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예전에 대학생 시위가 한창일 때다. 서울대 임종대 교수나 이기백 서강대 교수가 시위를 막으면 감히 스승을 밀어 제치고 교문을 뛰쳐 나가지 못했다. 두 교수는 체구가 좋은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시위 학생들 앞에 딱 막고 서면 기세 등등했던 학생들도 그만 한 풀 꺾어진다. 가로 막고 서있는 스승의 위엄이 커보이기 때문이다. 그 위엄은 순전히 두 교수가 평소에 쌓아올린 높은 학문적 업적에 대한 외경심이었다. 임 교수는 경제학, 이 교수는 국사학의 태두로 평생 학문밖에 몰랐던 분들이다. 시위가 심했을 때도 학생들은 이토록 존경하는 교수 앞에선 여러말 안해도 꼼짝 못하고 스승으로 대접했던 것이다. 이의동 주민들의 깊은 사려가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기공식을 막고 시위를 벌였으면 황 교수가 겪은 변으로 외신에 잘못 보도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이를 막을 수 있었던 황 교수의 권위도 고맙지만, 그렇게 대접할 줄 알았던 이의동 주민들의 마음씨가 무척 고맙다. 이의동 주민들은 손자병법을 빌려 말하면 싸우지 않고 이긴 셈이다. 시위를 안벌이고도 벌인 것에 비할 바가 없는 큰 수확을 올렸다. 보상 관계가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임양은 주필

표현의 자유?

1984년 미국에서 ‘그레고리 존슨 사건’이란 게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선 반대 시위를 벌이던 그레고리 존슨이라는 청년이 성조기(星條旗)를 불태운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었다. 그는 “눈길 한번 안 주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미 법조계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처벌 찬성론자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하나 국가 상징물인 성조기를 훼손한 것은 미국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성조기의 상징성을 인정하니 태우는 것이다. 미국의 가치를 실제로 위협하지 않는 상징적 행위일 뿐”이라고 맞섰다. 연방대법원은 1989년 그레고리 존슨의 손을 들어줬다. 성조기 훼손은 정치적 견해를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 헙법 제1조의 보호대상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난 6월 22일 미국 하원은 “성조기를 불태우면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286표, 반대 130표로 의결정족수(3분의 2)를 조금 넘겼다. 미 하원은 1989년 그레고리 존슨의 성조기 방화사건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이후 이를 불법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4차례 통과시켰지만, 번번이 상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상·하원의 동의가 있더라도 개헌을 위해선 50개 주 의회 가운데 4분의 3인 38개 이상의 주 의회가 비준하는 절차가 남아 있지만, 9·11테러 이후 막강해진 미국의 애국주의 기류와 최근의 보수화 정서가 맞물려 ‘성조기 훼손 처벌’이 통과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워싱턴 정치권에서 톰 들레이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포함될 수 없다”고 확실히 말했고, 2008년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민주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드물게 발생하는 훼손사건 때문에 개헌까지 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십자가를 불태우는 것을 불법화한 것과 같은 이유로 처벌법을 만드는 것은 무방하다”는 입장에 있다. 미 정치권에 애국주의 바람이 불고 았느 것이다. 혹 우리나라 법원이나 국회 어느 정당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속한다”고 황당한 주장을 할까 봐 걱정이 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국기

한 집단을 상징하는 징표를 담은 깃발이 처음 국기가 된 것은 프랑스혁명 때 쓰인 삼색기가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1882년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가면서 태극도안의 기를 사용한 것이 국기 사용의 효시다. 이 태극도안의 태극기가 국기로서 공식화된 것은 1883년 1월이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조약체결 이후 국기제정문제가 논의되다가, 1882년 박영효가 고안한 태극무늬의 기를 고종이 “태극 주위에 사괘(四卦)를 배(配)한다”고 공포함으로써 정식 국기로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공포 당시 태극기의 규격이나 형태에 관한 정확한 명시가 없었으므로 태극기는 각양각색의 형태로 사용됐다. 대한민국정부수립 후인 1949년 2월 국기시정위원회의 결정으로 규격과 문양의 통일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현재의 국기다. 태극기는 신라시대부터 우리 조상이 사랑했던 전통무늬인 태극을 주된 문양으로 함으로써 민족전통에 합일한다. 특히 1883년 공포 이후 일제의 강점이 시작된 1910년까지 28년 이상이나 대내외에서 국기로서의 구실을 했다. 민족항일기에는 국권회복의 상징이었으며 피로 얼룩진 항일투쟁 역사성을 담고 있다. 아울러 전통있는 태극기를 국기로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민족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정치체제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국기의 존엄성 유지를 위하여 1984년 2월21일 법률 ‘대한민국국기에 관한 규정’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 ‘국기에 대한 경례방법’ ‘국기의 제작·게양법’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또 국기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형법’ 제 105·106·109조에서 규율했는데 제105·106조는 모욕을 목적으로 국기의 손상·제거, 또는 더럽히거나 비난한 자를, 109조는 외국의 국기에 대한 동일한 행위도 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국기에 대한 예우가 점차 퇴색하고 있는 경향이 짙다. 이러한 때 한국유네스코 경기도협회·경기도 교육삼락회·대한노인회 경기도연합회·전국문화원연합회 경기도지회가 공동으로 ‘국기 달기 운동’을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임병호 논설위원

아동학대

2005년 1월 현재 전국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은 모두 131개다. 사회복지법상 모두 불법 시설들이지만 당국이 당장 폐쇄시키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정식으로 신고를 한 시설을 제외하고는 ‘부모가 있는 아동’을 보호할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또 신고는 안돼 있지만 종교단체들이 운영 중인 건전한 아동복지시설이 다수인 데다 아이들에게 정부지원금도 지급되고 있어 미신고시설에 대한 일괄적 폐쇄조치를 내리기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이들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자주 발생하는 점이다. 최근 혐의가 드러난 서울 S사찰 예비여승의 아동학대가 그 한 예다. 예비여승은 2002년 주지와 함께 사찰내에 미신고 아동복지시설을 차려 미아 10여명을 데려다 보살폈다. 그러나 아이들을 방안에 감금하고, 아픈 아이들에게 적절한 치료 없이 방치하는 등 학대행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이들은 최근 3년간 은평구청이 아이들에게 지급한 정부지원금 6천700만원 중 일부를 유용했다고 한다. 성남시 S장애아동복지시설의 아동학대도 충격적이다. 지난해 장애아 10여명을 모집한 설립자가 부모들로부터 매달 보호비 및 재활교육비 명목으로 60만~100만원씩 받아 왔다. 그러나 설립자는 18평 짜리 옥탑방에 장애아동들을 감금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빨래방망이 등으로 구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봉사를 생활화하는 건전한 아동복지시설을 욕되게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미신고 복지시설을 생계수단으로 삼아 미아들을 돈 벌이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점이다. 아동학대는 비인륜적인 범죄다. 아동복지시설 관계자의 양심과 선행만을 믿고 시설 운영을 방치·방관할 수는 없다. 아동학대 사실이 드러났거나 시설 기준에 못미치는 미신고시설은 과감하게 폐쇄해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넥타이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로 중앙집권을 강화한 반면에 프랑스 문화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당시 문화의 중심지가 베르사유 궁전이다. 선왕의 별궁이던 것을 본격적으로 개조했다. 1664년에 시작하여 50년만인 1714년 호화 장려한 대궁전을 완성했다. 재위 72년의 약 3분의 2를 궁전 증·개축으로 보냈다. 후세에 제1차 세계대전 강화조약 등이 베르사유 궁전에서 체결됐다. 루이 14세는 궁전에서 무도회를 자주 즐겼다. 이 호화무도회엔 귀족 귀부인 등 국내외의 상류층이 대거 참가하곤 했다. 하루는 목에 댕기같은 천 조각을 감고 나타난 사람이 있어 이를 색다르게 본 왕이 “저 사람이 목에 두른 게 뭐냐”고 물었다. 시종무관은 어디서 온 사람이냐는 물음인 것으로 알고 “크로아티아(croatia)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루이 14세는 이튿날 자신도 목에 댕기를 감고 나타나자 다음부터는 무도회에 참석하는 모든 남자들이 다 목에 댕기를 매고 나왔다. 이것이 오늘날의 넥타이 효시다.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크라바트(cravate)라고 하는 것은 크로아티아에서 유래된 말이다. 크로아티아는 지금의 유고 연방 서북부 지역이다. 일본에선 올 여름에 넥타이가 수난을 당하고 있는 모양이다. 넥타이 업계의 매출액은 30%나 떨어지고, 대신 노타이 와이셔츠 매출액이 30~40%나 오른것으로 전한다. 에어컨을 덜 틀기 위해서는 노타이 차림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넥타이를 풀면 체감 온도가 2도 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모습에서 넥타이 차림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정부도 공무원들에게 정장이 아닌 평상복 차림을 하게 한다는 말이 있더니 뒷소식이 없다. 넥타이는 여성들도 더러 한다. 하지만 남성의 정장으로서는 필수품이다. 공식 석상이나 점잖은 자리엔 넥타이를 매는 것이 예의다. 국내에서는 일본과의 강화수호조약 이후 고종 18년(1881년) 박정양 등이 신문화를 받아 들이기 위해 일본에 간 ‘신사유람단’이 처음 맸던 것으로 전한다. 에너지 및 대기오염 대책의 일환으로 넥타이가 수난받는 시대상 변천이 남의 일 같지 않다./임양은 주필

이번엔 ‘총리 타령’?

이 정권이 하는 모양새가 가관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뜬금없는 연정 타령에 이어 야당의 국무총리 지명권 레퍼터리가 나왔다. 이번엔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이 가수로 등장했다. 한나라당이 선거제 개편에 동의하면 박근혜 대표에게 총리 지명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답답하다. 도대체 대통령중심제에서 총리가 뭐가 그리 대수라고 총리를 그토록 미끼 삼는 지 모르겠다. 정권의 실체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인 것이 대통령중심제다. 총리 지명권이 아니라 총리 자릴 준다해도 결국 대통령이 부리는 사람이다. 만약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국무총리를 맡으면 그건 연정이 아니고 그냥 노 대통령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내각은 역시 대통령의 지배를 받는 게 대통령중심제의 권력구조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그런 얘기가 국민이 먹고사는 얘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일축했다. 일고의 가치도 없이 외면했기에 망정이지 박 대표가 수락했다면 정치 생명은 그것으로 끝난다. 한나라당 또한 와해된다. 여권이 바로 이같은 불로소득을 노려 총리를 낚싯밥 삼은 모양이지만 ‘이부자릴 보고 발을 뻗으라’고 했다. 될성 싶은 말을 해야지 가당치 않는 말을 하면 되레 모자란 사람으로 보이기가 십상이다. 연정이나 총리 타령은 농담으로 보면 농담도 유분수고, 진담으로 보면 진담이 될 수 없어 의식 상태가 의심된다.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 정녕 중·대선거구제로 개편이 절실하게 필요하면 다른 협상 조건으로 개편을 제의하는 것이 떳떳하다. 장관이나 총리같은 감투자릴 놓고 흥정하자고 나서는 것은 정말 치사하다고 보는 것이 사회정서다. 연정은 헌정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면 총리 타령은 정치 질서를 문란케 한다. 또 실정 책임을 실종케 하려는 둔사일 수도 있지만 그런다고 책임이 희석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보고 있다. “지금 민생 형편이 연정이나 총리 타령을 늘어 놓을만큼 한가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노 대통령이나 문 의장의 레퍼터리가 그래선 정말 인기없는 가수로 치부된다./임양은 주필

記者의 직업관

기자는 사람 만나는 직업이다. 각계 각층의 사람을 만난다. 예를 들면 거지도 만나고 왕도 만난다. 하지만 똑같이 대한다. 거지 앞에선 오만하고 왕 앞에서 비굴하면 그는 이미 기자가 아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기 때문에 예의를 지킨다. 취재할 때 건방을 떨고는 기사는 솜방망이 기사를 쓰는 기자는 그 역시 기자가 아니다. 취재할 때는 예의를 다 하고 기사는 예리하게 쓰는 게 기자 정신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기 때문에 많은 말들을 듣는다. 그 중엔 남의 얘기도 많이 듣게 마련이다. 그러나 말을 옮겨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판단 자료로 참고하고 그쳐야 한다. 가령 출입 부서에서 이 사람은 저사람 말을, 저 사람은 이 사람 말을 하는 걸 들을 때가 많다. 들은 말을 이 말은 저 사람에게, 저 말은 이 사람에게 옮겨서는 기자의 품위를 떨어뜨린다. 그 보다는 들은 것으로 그치고 차단해야 한다. 그래야 기자로서의 신뢰를 갖는다. 기자는 사람이 곧 자산이다. 자신을 신뢰해 주는 출입처 사람들이 많은 기자가 유능한 기자다. 비판 기사를 쓰면서 취재원이 하부직원으로 드러나는 기사를 쓰는 기자는 이 역시 기자가 아니다. 설령 취재원은 하부 직원일 지라도 고위 참모나 지휘관에 기사와 관련한 코멘트 등으로 미리 접근해 둠으로써 취재원을 보호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취재원의 직위가 어떻든 취재원을 대외에 결코 밝혀선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불이익이 와도 취재원을 보호하고 불이익을 감수하는 것이 기자 정신이다. 미국 CIA 비밀요원 신분을 폭로한 ‘리크 게이트’ 필화 사건으로 뉴욕 타임스의 주디스 밀러 여기자가 취재원 공개 거부로 법정구속됐다. “취재원을 보호 못하면 언론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거부 이유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사설과 칼럼으로 ‘언론 자유를 위해 개인의 자유를 포기했다’면서 밀러 기자의 용기를 평가했다. 권력의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참다운 기자의 혼이다. 혼이 없는 기자는 대서인 일 뿐이다./임양은 주필

잡초없는 뜰

국내 영한사전의 오류를 끈질기게 지적해온 이재호 성균관대 명예교수(영문학)가 또 ‘그리스 로마 신화’번역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가운데 그동안 국내에서 번역된 문학작품과 영화 음악 연극 미술 등 전문분야의 번역 오류를 꼼꼼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우리나라 번역가들이 아주 많이 틀리는 것 중 하나인 ‘Queen’의 경우 여왕 또는 왕비의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어 문맥에 따라 해석해야 하지만 보통 여왕으로 한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다른 예들도 많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 원작인 영화 ‘마고 여왕’은 ‘마고 왕비’의 오역이다. 헤밍웨이 원작이자 영화로 나온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의 정확한 표현은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나’가 맞다. 이 제목의 출처는 영국 시인 존 단의 ‘명상 17’에서 따온 것인데, 거기서 Bell의 의미는 ‘조종’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Lady Chatterley’s Lover)’으로 번역된 D H 로런스의 소설은 ‘레이디 채털리의 애인’이 맞다. 레이디(lady)는 부인에 대한 경칭이며 ‘lover’는 사전적으로도 애인이다. E 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A passage to India)’은 ‘인도로 가는 항해’의 오역이다. 영화제목 중 ‘라이언의 처녀(Ryan’s Daughter)’는 ‘라이언의 딸’의 오역이고, ‘작은 신의 아이들(Children of a Lesser God)’도 ‘하위신(下位神)’을 잘못 번역한 것이다.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은 ‘타락(몰락)의 전설’을 황당하게 번역한 것이며,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에서 Society는 클럽의 의미로 ‘죽은 시인의 클럽’ 이 맞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오역 비판은 더욱 구체적인데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씨는 “뜰을 가꾸는 자에게 잡초는 숙명이다. 문화의 번역자들에게는 오독과 오역 또한 숙명이다. 잡초를 뽑아주는 것은 고맙지만 저주에 가까운 비아냥은 문화번역 현장을 전쟁터로 만들 뿐, 도움되는 바가 적다”고 심회를 밝혔다. 번역은 어렵다. 이재호 교수가 한국시와 한국소설을 오류 없이 영어로 번역해 주었으면 좋겠다. / 임병호 논설위원

聖地와 골프장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聖地) 인근에 대규모 골프장을 내려고 신청한 허가서류를 반려한 안성시의 조치는 시사하는 바 크다. “법이 아닌 민원이 정책판단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법과 원칙이 통용되는 사회를 위해서라도 소송을 벌이겠다”는 건설사측과 “골프장 건설이 백지화될 때까지 단식농성을 계속하겠다”는 천주교측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내린 불가 결정이어서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미리내 성지는 국내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의 하나다. 우리나라 첫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 성인 묘소 등이 있는 곳이다. 천주교 신자들을 비롯한 일반인, 외국인들이 순례하는 가톨릭 성지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연간 50만~60만 명이 미리내성지를 찾는다. 미리내성지 인근 미산리 일대 30만평(99만㎡)에 (주)신미산개발이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며 안성시에 허가를 신청한 것은 2002년이다. 당시 안성시는 산지상태가 양호하고 민원발생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허가신청을 두 차례 보류했다. 하지만 신미산개발이 입지를 산 아래 쪽으로 옮겨 다시 허가신청했고 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경기도 도시계획위원회로 이첩될 도시계획입안서가 천주교측의 반발로 급제동이 걸렸다. 천주교측이 “가톨릭 성지와 불과 3.2㎞(직선 1.6㎞) 떨어진 곳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특히 신미산개발이 도시계획입안서 제출 전 2번이나 벌목을 해 부지를 개발가능토록 유도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강정근·방상복 신부가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이다. ‘법적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던 안성시가 “적법 여부를 떠나 민원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다시 허가신청을 반려한 것은 다수민원 발생을 의식한 고육책이다. “개발사가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단식으로 인한 피해발생을 막겠다”는 것은 ‘제2의 천성산 사태’와 ‘제2의 지율 스님 사태’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알려지기로 신미산개발은 이미 400억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지역사회의 안정을 도모하려는 안성시 그리고 천주교측과 협의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바란다. 양측 공히 강경 일변도가 능사는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조종사노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투쟁을 보는 국민의 시각은 대체적으로 곱지 않다. 이들 노조의 요구 내용이 정당한 지를 놓고 노사(勞使) 입장을 떠나 논란도 일고 있다. 물론 고도의 기능을 소지한 항공기 조종사라는 특수 전문직이긴 하지만 상당수 요구 조건들이 집단이기주의 시비를 낳을 수 있다는 분위기다. 지금 조종사노조의 파업에 대해 언론사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에는 ‘다같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시점에 평균 억대 연봉자들이 너무한다’, ‘안전을 핑계로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만 하고 있다’, ‘차라리 외국 항공사를 이용하겠다’는 등 비난의 글로 가득찼다. 두 항공사 조종사노조 홈페이지도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해 한동안 서버가 다운됐다고 한다. 같은 항공사 직원인 일반 노조원들도 “조종사노조는 회사 사정을 감안해 파업을 자제해달라”고 시위를 벌일 정도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경우,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조종사 가족에게 비즈니스석(10장)을 포함한 왕복 항공권을 연간 14장 제공할 것, 기장에게 객실승무원의 교체권한을 부여할 것, 여성조종사가 임신 등으로 2년간 쉬어도 상여금·비행수당 등을 포함한 임금 100%를 지급할 것, 모든 출장지 숙박호텔에 4세트 이상의 골프클럽세트를 비치할 것”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측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조종사와 외국인 조종사, 비조합원 등을 투입하면 운항에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맞섰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도 “비행 훈련 심사에 탈락하거나 영어자격증이 없어 국제선 탑승이 불가능한 조종사에 대한 고용 보장” 등을 들고 나왔다. 회사측은 “기량이 부족한 조종사들의 고용 보장은 곧 안전에 대한 위협이다. 안전을 위한 훈련 원칙과 기준은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거리를 두었다. 연봉 2천만원 내외를 받으면서도 밤을 낮 삼아 일하고 있는 사람들, 또는 직장이 없어 일거리를 찾아 헤매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배경논리를 감안한다 해도 과연 그런 것들이 파업 등 강경투쟁을 벌여야 할 만큼 절박한 사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국민적 공감을 사지 못하는 노동쟁의는 ‘배 부른 흥정’이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자제가 요구된다./ 임병호 논설위원

가수노조

가수가 텔레비전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건 정말 고역이다. 시청자가 보기엔 그냥 부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리허설이 이만 저만한 고생이 아니다.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생방송이 건 녹화방송이 건 사정은 같다. 이러고도 출연료는 쥐꼬리다. 별도의 약정으로 초특급 대우를 받는 대형 가수가 아니고는 형편없다. 웬만큼 잘 나가는 30년 경력의 가수 출연료가 30만원인 것으로 전한다. 이러므로 특별히 의상이 필요할 경우나 댄서를 데리고 나갈 경우에는 오히려 적자다. 20 수년 전이다. 지지대子가 방송 출입을 할 당시에 비해 대우가 별로 더 나아진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울며 겨자 먹기로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는 덴 이유가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야 음반이나 콘서트 등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밤 업소 출연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수의 텔레비전 출연이 곧 가수의 홍보이므로 출연료가 박해도 된다고 본 게 또한 방송 관계자들이 그간 가져온 대체적 인식이다. 심지어 출연료 현실화를 말하면 프로그램 제작비가 압박을 받으면 가요 프로그램이 폐지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따르는 광고 수입이 제작비보다 몇 배나 웃돈다. 광고수입에 비하면 가수 출연료를 좀 올려주는 것 쯤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가수지부 창립식이 며칠전 서울 여의도에서 있었다. 남진·최진희·소방차 등이 참석했다. 노조에 가입한 가수는 200여 명이다. ‘가수가 방송 덕을 보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수가 방송 매체에 이익을 주는 것도 사실이므로 출연료 현실화가 있어야 한다’는 게 가수노조측 입장이다. 방송사들은 적자라며 중간광고 등 허용을 요구하고 KBS는 수신료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모두 당치않은 소리다. 방송사 적자는 인력과다 등 방만한 경영이 근본적 원인이다. 텔레비전 방송이 가수의 노동력에 제값을 쳐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임양은 주필

이해찬의 ‘수해 골프’

“상황 보고와 대책 지시가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 국무총리실의 입장이다. 전북 장수에서는 폭풍우로 잠자고 있는 집 지붕이 날아갔다. 이토록 강타한 남부지방의 비 피해는 지난주 토요일부터 시작됐다. 도내 피해도 적잖다. 이 시각에 이해찬 국무총리는 주 5일근무제 확대 실시에 따른 첫 토요휴무를 제주도에서 즐겼다.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에 간 이 총리는 비서실장 등과 한가롭게 골프를 쳤다. 지난 4월 강원도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골프를 쳐 국회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대국민사과를 했다. 그런데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는 일을 이번에는 수해를 당해 또 저질렀다. 중소기업은 주 5일근무제가 그림의 떡이다. 경찰 및 소방관서는 토요휴무는 커녕 오히려 치안수요 등이 늘어 긴장속에 보낸다. 각종 자영업은 가뭄에 콩나듯 하던 손님이 그나마 끊겨 울상들이다. 토요휴무로 쉬는 사람들도 돈 없고, 갈곳 없고, 하릴 없어 방에만 틀어박히는 ‘방콕족’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노동계는 양대 노총이 주도해 임단협 중인 병원·금속·항공노조 등이 줄줄이 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장마로 채소 등 물가는 또 뜀박질을 한다. 무슨 태평성대라고 이 총리는 민생과 동떨어진 토요휴무를 한가롭게 즐겼는 진 모르지만 나라를 염려하는 위정자로 보기엔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 ‘골프는 예약된 일정’이라는 총리실 해명은 당치 않다. 골프 일정을 잡은 것도 잘못이고, 호우경보가 나면 잡았던 골프일정을 취소해야 하는 게 민생총리다운 면모다. 골프를 치면서도 “상황 보고와 대책 지시가 언제나 가능하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은 지난번 산불 골프 때도 들었던 궤변이다. 똑같이 거듭된 총리실의 수해 골프 해명은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들린다. 총리는 재해를 총괄하는 ‘중앙안전관리위원장’이다. 골프장에 있었을 처지가 아니다. 총리직 사퇴 용의는 없는 지 묻는다. /임양은 주필

경기시론/생명주의 다문화 통일론

그동안 호전세력들에 의한 한반도의 6월 위기설을 작금의 남북대화로 보기 좋게 날려버렸다. 여기서는 이러한 평화 분위기를 살려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체제의 주류문화인 서구 기독교 사상과 북조선의 고유문화인 주체사상과의 대화를 통하여 생명주의를 지향하는 다문화 통일론을 제시함으로써 민족의 평화통일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북·미간의 끝없는 대치와 갈등은 정치적 이슈로 포장된 문명의 갈등으로 근본적으로는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정부는 북의 주체문화를 근본적으로 악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북을 ‘악의 축’이라고 하였을 때 ‘악’의 개념은 단순히 정치적 체제나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지칭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개념에서 판단된 ‘악’의 개념으로 지극히 종교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양국간 갈등의 요소가 문화적이고 정신적일 때 갈등의 해소와 치유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신은희 박사가 소개하는 테일러의 ‘인식의 정치’는 대화적 과정 (dialogical process)을 통한 정체성의 변화과정을 뜻한다. 인식의 정치가 실패하고 문화적 충돌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문화의 정체성이 대화의 형태가 아니라 독백의 형태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미국이나 북조선은 둘 다 독백적 문화의 정체성만을 강조하여 왔다. 미국은 기독교적 가치를 기초로 개인적 인권을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을, 북조선은 주체중심의 민족주의 공동체 중심의 정체성을 각각 배타적으로 주장하여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체사상의 종교화 과정을 이해한다면 주체사상과 기독교와의 상호적인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이념으로 출발했다가 종교화 과정을 거쳐 고유문화로 남아 일종의 민족적인 국가종교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주체사상은 1950~60년대 중국과 소련의 반사대주의 개념으로 형성되어졌다. 문화적 사대주의에 관한 문화적 대응으로 북조선은 ‘주체’라는 정치이념을 고안하였다. 1990년 이후부터는 이러한 생명체개념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은 정치적 차원을 훨씬 넘어 본격적인 종교성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어떤 사상이건 철학이건 사상적 변종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다. 어떤 사상의 퇴화와 변화 재창조의 과정은 모든 철학세계에서도 공동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기독교와 주체사상은 모두 끊임없는 자기 개혁과 내부적 수정을 거쳐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에 어울리는 고유문화로서 세계화의 관점에서 다원문화와 생존의 소수문화로서 재구성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다원화과정을 거쳐 북도 수령중심의 생명체 이론이 아닌 인민중심의 주체사상을 회복시켜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두 전통이 각각 시대의 흐름에 따라 내적 문화화하는 과정을 거쳐 만날 수 있는 사상적 접맥은 생명사상일 것이다. 생명운동으로서의 통일 운동은 전체 속에서 부분을 조명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생명주의라는 연대 속에 다양한 표현양식이 허락되는 다문화적인 모자이크의 통일문화는 미국중심의 기독교 근본주의가 주장하는 용광로 통일 문화가 아니라 동북아 균형국가로서 세계의 모든 고유문화와 소수문화가 만날 수 있는 미학적 평화의 문화가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통일 문화다원주의로 하여 ‘인식의 정치’를 창출함으로써 비로소 민족의 평화통일에 한발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노 태 구 경기대학교 교수

황금욕조

금은 예부터 부귀의 상징이었다. 화폐가치는 인플레이션으로 떨어져도 금은 제값을 지닌다. 이래서 전쟁이 나거나 시국이 어수선하면 금값이 치솟는다. 왕이 금관을 쓰고 귀족들이 금장식을 애용한 게 금의 이런 희소가치성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왕관은 아니어도 금붙이는 역시 귀물이다. 동방견문록은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아시아 여행담을 쓴 책이다. 1271년에서 1295년까지 24년간 중국 등지를 여행했다. 몽골에서는 한동안 정치에 간여하기도 했다. 그 무렵 중국은 몽골의 침입을 받아 원나라가 세워졌다. 수도는 지금의 베이징(北京)이지만 그땐 다도우(大都)라고 했다. 동방견문록은 원나라 황제가 있는 궁전은 기둥이 금으로 되어 있다고 썼다. 물론 과장된 얘기다. 그렇지만 이 과장된 얘기에 호기심을 갖게 되어 서구인들의 아시아 발길이 잦아지게 됐다. 1960년 4·19의거 때다. 대학생 등 시위 군중이 당시 ‘서대문경무대’(청와대)로 불렸던 이기붕 국회의장 집을 기습했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였던 그들 내외는 물론 피신한 뒤다. “이기붕 집 수도꼭지는 금꼭지더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실이 아닌 헛소문이었다. 황금수도꼭지가 아닌 황금욕조가 나왔다. 18금 37.5㎏을 들여 만든 황금욕조는 12억원짜리다. 일본 지바(千葉)현의 한 호텔에서 이런 황금욕조를 객실 세 곳에 설치했다. 황금욕조를 말하니까 아프리카 우간다 대통령 이디 아민이 생각난다. 1971년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79년까지 8년간 ‘잔혹통치’로 악명높았던 독재자다. 아민은 황금욕조를 쓰는 등 호사생활의 극치를 누렸다. 1979년 역시 쿠데타로 쫓겨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지난 2003년 8월 병사할 때 까지도 대통령 시절처럼 황금욕조는 안썼지만 호화생활을 했다. 황금욕조를 설치한 일본의 그 호텔은 손님이 원하면 황금 덩어리에 쌓여 목욕하는 장면을 사진 찍어준다고 한다. 이를테면 투숙객 유치상술로 황금욕조를 설치한 모양이다. 인간이 금에 갖는 매력을 이용해도 묘하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든다./임양은 주필

일본의 한국인

이병도 박사의 친구이자 이 박사에게 역사공부를 권유한 최태영 박사는 ‘일본의 지배계층은 거의 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백제와 고구려가 망한 뒤 7~10세기 동안 ‘도래인(渡來人·바다를 건너 온 사람)’은 150만 명이나 된다. 이 중 상당수가 한반도에서 건너 온 사람임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신라와 당나라에 나라를 빼앗긴 백제, 고구려의 중상류층 상당수가 나룻배를 타고 미리 터전을 잡고 있던 친척이 사는 일본땅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성계가 한양에 수도를 세울 때 한양의 인구가 10만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할 때 민족사적 대이동인 셈이다. 7세기 말까지 일본은 부족국가 시절이었다. 그러나 문명화한 인구가 갑자기 대거 유입되면서 그들끼리 다시 말해 부여파, 강진파, 평양파 등이 날이면 날마다 주도권 싸움을 벌였다. 싸움을 벌이면서 주고 받은 암호집이 바로 4천500수에 달하는 ‘만엽집(萬葉集)’이다. 지금도 일본 지배계층의 혈통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키가 크고 이(齒)가 가지런한 동이족(東夷族)은 피지배계층인 아이누족과 남방계인 왜(倭)와는 거의 피가 섞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누족과 피가 섞일 경우 이가 안 좋아진다고 한다. 한국을 향하여 망언을 외치는 일본 지도자들을 보면 우리와 골격이 거의 똑 같다. 최근 한국과 일본인 간에는 골수 이식이 가능한 사람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의 ‘스모’를 보면 “다가 다가 다가가 다가가”라고 심판이 외친다. 일본 사람에게 물어보면 무슨 뜻인지 모른단다. 다만 옛날부터 내려오는 소리라고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금방 ‘다가가서 붙으라’는, 파이팅하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스모는 고구려에서 건너간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고분을 보면 현재 우리씨름 뿐만 아니라 다리 한짝을 높이 들면서 준비자세를 취하는 스모와 똑 같은 벽화도 있다. 일본 왕이 좋아하는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학자들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인 관계는 분명해진다. 일본인들 중에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너무’합니다

국어를 왜곡시키는 방송언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너무’를 꼽을 수 있다. 부사 ‘너무’를 어법에 어긋나게 긍정문을 강조하는 데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요즘 KBS·MBC·SBS 등의 쇼·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방송 중 ‘너무 예쁘다’ ‘너무 아름답다’ ‘ 너무 멋있다’는 등 잘못된 어법을 예전보다 더 많이 쓰고 있다. 마치 일부러 더 그러는 듯한 당치 않은 생각마저 든다. 출연자는 그렇다치고 언어순화에 앞장서야 할 사회자와 아나운서들까지 잘못된 흐름에 가세하려는 듯 ‘너무’소리를 남발하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도, 듣기에도 좋지 않다. 왜곡된 단어를 자꾸 쓰면 격이 떨어져 실망하게 된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확산돼 ‘너무’를 아예 ‘넘’으로 축약해 쓴다. 시사토론에 나온 소위 명사들이 ‘우리 나라’를 ‘저희 나라’라고 말하는 것도 못 볼 것 가운데 하나다. 주지하다시피 부사어(副詞語) ‘너무’는 ‘비가 너무 왔어요’ ‘눈이 너무 내렸어요’ 처럼 ‘한계나 정도, 표준에 지나치거나 못 미치게’란 뜻으로만 써야 한다. ‘장동건 형 너무 잘 생겼다’ ‘이영애 언니 너무 예뻐요’ 처럼 강조의 의미일 때는 ‘너무’ 대신 ‘참’ ‘매우’ ‘아주’로 써야 옳다. 강조나 비교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참’ 따위의 부사로는 강조하는 데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 나머지 부정적 의미인 ‘너무’를 무분별하게 끌어다 쓰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방치할 경우 언어의 원뜻조차 훼손될 우려가 크다. 부사어 ‘별로’처럼 실제 단어의 원뜻 자체가 변해버린 사례도 적지 않다. ‘별로’는 원래 ‘특별하다’는 뜻이었으나 70년 전 신소설기 이후에는 ‘별로 맛이 없다’처럼 쓰임새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말았다. ‘심청전’에 심봉사가 딸 심청에게 음식을 차려주면서 “이 음식이 별로(특히) 맛있구나”란 긍정적 표현이 나오는데 신소설기 이후 고난의 역사를 거치면서 특별한 것이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일이 많아져 용례와 어법이 바뀐 듯 하다. 우리 말을 올바르게 사용케 하고, 저질 언어를 추방하는 데는 방송국 만한 곳이 없다. 국어 보존 차원에서 앞으로 방송이 적극 나서서 잘 못 쓰이고 있는 언어 용례와 어법을 바로 잡아야 한다. / 임병호 논설위원

소년병 위령탑

우리 국민들은 6·25 전쟁 때 생포됐거나 전사한 북한군 ‘어린 병사’는 안타까워 하면서도 국군의 일원인 ‘소년병’은 잘 모른다. 김일성이 어린 아이들을 전선에 총알받이로 내몰았다고 비난하면서 이승만이 소년병을 전선에 투입시킨 것은 말하지 않는다. 소년병은 학도병 중 징집연령 18세 미만인 14~17세의 어린 병사다. 6·25 전쟁 당시 2만여 명의 소년병들이 키 보다 더 큰 총을 들고 전쟁에 뛰어 들었다. 6·25 전쟁 때 ‘다부동(多富洞)전선’은 개전 후 두 달도 안돼 낙동강까지 밀린 국군과 유엔군이 대구의 관문에 구축한 최후의 방어선이다. 이 다부동 전투에서 국군 쪽에서만 매일 500~6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소년병들도 매일 죽거나 다쳐 나갔다. 소년병들은 자원해서 전장에 나온 만큼 앞 뒤 가리지 않고 싸웠다. 1950년 8월 10일 벌어진 포항여중 앞 벌판 전투에서는 국군 제3사단 소년병 71명이 전멸했다. “어머니,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이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드려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 입니다.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포항여중 앞 벌판 전투에서 전사한 이우근 소년병(서울 동성중학교 출신)의 헐렁한 군복 주머니에서 발견된 편지다. 이렇게 순국한 소년병들이 2천464명이나 된다. 그러나 6·25 전쟁이 일어난 지 55년이나 되는데 이 땅엔 소년병을 기리는 위령탑 하나 없다. 살아남은 소년병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는 법률안을 2001년 국회에 상정했으나 5년째 외면 당하고 있다. 현행 법률이 국가유공자로 인정하는 경우를 ‘생명 및 신체를 희생 당한 경우’와 ‘예외적으로 그 공적이 인정되는 특별한 기여를 한 경우’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부는 소년병의 ‘기여’가 ‘특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생존한 왕년의 소년병은 나이가 가장 적다고 하여도 70세다. 칠순 노병들이 타계하면 소년병을 추모할 전우도 후손도 없다. 정부는 국립묘지 묘역에 ‘소년병 위령탑’을 건립해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도리다. /임병호 논설위원

‘애국부부’

인구의 30%가 65세 이상인 사회를 상상해 본다. 초고령사회 치고도 가히 위기 수준이다. ‘나라가 거덜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산성은 극소화되고 소비성은 극대화되는 게 초고령사회다. 우리 나라가 이대로 2050년쯤 가면 이런 초고령사회가 된다. 먼 것 같지만 멀지않다. 지금의 청소년들이 노인이 되면 이러한 기형적 사회가 된다. 초고령사회가 아닌 고령사회만 되어도 인구문제가 심각해 진다. 우리는 곧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의술과 의료장비의 눈부신 발전이 해가 다르다. 인간의 수명은 장수시대로 가면서 신생아 출산은 줄어든다. 노인은 비노동인구다. 사회복지대책 등 복지수요는 증가하는 데 비해 이를 충당할 노동인구는 감소된다. 아들 딸 구별않고 많이 낳는 것이 ‘애국부부’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하나 아니면 둘이다. 숫제 아이를 낳지않는 부부도 있다. 이같은 신세대 부부의 생각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도 많이 낳기가 막상 두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당장 먹고 살기가 바쁜 탓에 키우고 공부시키고 장가 시집 보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정부가 백성들을 잘 살게 만들어 아이를 더 많이 낳고 싶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출산 장려책이다. 무슨 혜택을 주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지금처럼 살기가 어려워서는 출산을 아무리 장려해도 효과가 있을 수 없다. 하긴, 지금보다 훨씬 못먹고 못살던 옛날에도 아이를 생기는 대로 낳았다. 농경시절엔 자녀가 많아 노동력이 풍부한 게 자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시대가 달라졌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를 이미 거쳤다. 정보사회 들어서도 벌써 고도로 치닫고 있다. 정부의 육아정책이 맞벌이 부부 가정에 딱 맞는 현실화가 요구된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천주교교주회의 등 종교단체가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 대책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인구의 미래 재앙을 종교계에서 보다못해 나선 것은 매우 뜻깊다. 하지만 가임여성에게 ‘애국부부’가 많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은 역시 정부의 책임이다. 한데, 이게 잘 될 것 같지않아 걱정이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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